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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로 회귀했다 나 남잔데-1화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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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흐으으응! 형, 나, 이사, 이상해... 나올 것 같아. 흐으으응!!”

    “좋아, 해민아?”

    “응. 죽을 것 같아, 형. 더 해 줘. 더. 계속해줘. 세게 박아줘. 흐으으윽!!”

    풀려버린 눈이 허공을 바라보는 듯 하더니 이내 감겨버렸다.

    그 눈꺼풀 위에 입술이 와서 닿자 해민은 몸을 자르르 떨면서 소름이 끼치는 듯 몸부림을 쳤다.

    “흐으으응, 혀어어엉! 사랑해. 사랑해애애!”

    해민은 형의 목을 가득 끌어안고 비명 같은 고백을 했다.

    퍽퍽 소리를 내면서, 해민의 몸을 가를 듯이 들어와 안을 거침없이 헤집는 살몽둥이에 해민은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그를 바라보려 했다.

    그러나 다시 눈에 키스가 퍼부어지는 바람에 그 고운 눈을 다시 감아버릴 수밖에 없었던 해민이었다.

    이제 곧 전역할 형이다.

    너는 나를 기다려주고 싶어도 주위에 있는 놈들이 너를 가만 놔두지 않을 거라고 했었지만.

    그의 말이 틀렸다.

    해민은 자기가 그 약속을 지켰다고 생각하면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지고지순 강해민.

    한 남자를 사랑하면 다른 사람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것이 해민의 모토였다.

    그리고 마지막 휴가를 나온 형과 몸을 섞으며 이제 형을 기다리면서 몸부림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감격을 하고 있었다.

    형은 쉽게 사정하지 않았다.

    해민도 쉽게 사정하고 끝내버리고 싶지 않았다.

    형이 저로 인해서 천상의 절정을 오래오래 느끼기를 바라면서 해민은 제 애널에서 형의 페니스가 빠져나가려고 할 때마다 애널에 힘을 주어 그것을 물어댔다.

    그때마다 형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달뜬 신음 소리가 해민에게는 무엇보다 듣기 좋은 칭찬 같았다.

    “쌀 것 같아. 해민아.”

    형이 해민에게 더욱 밀착하며 말했다.

    “응. 형.”

    형의 얼굴과 몸은 땀으로 번들거렸다.

    한 시간은 안 돼도 40분은 넘게 박아댄 것 같았다.

    그가 부딪쳐댄 곳이 이제는 얼얼할 지경이었다.

    해민도 이제 그와 같이 사정을 하면서 나른한 쾌감을 즐기며 그의 곁에서 쉬고 싶었다.

    파파파파팟, 소리를 내면서 형이 마지막 스퍼트를 하는 동안 해민은 입을 벌린 채 가까스로 호흡을 하고 있었다.

    형에게만 허락한 곳.

    그곳에서 형의 페니스가 사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제 은밀한 곳이 형의 정액으로 가득 채워질 거라는 상상이 해민을 더욱 흥분시켰다.

    형이 사정하기 전에 해민이 먼저 사정을 했다.

    제 페니스를 훑은 것도 아니고 손을 댄 것도 아닌데, 민감해진 해민의 페니스에서 진한 정액이 뿜어져 나왔다.

    그걸 본 형의 얼굴에 웃음이 감돌았다.

    자기가 정복하고 자기가 만족시켰다는 성취감이 명확하게 그의 얼굴에 걸려 있었다.

    “흐으으윽!”

    사정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해민은 형의 정액이 제 내벽을 때리는 것을 느꼈다.

    “혀어어어엉!”

    가슴에 화살을 맞고 쓰러지는 병사처럼 해민이 소리쳤다.

    이내 형의 움직임이 느려지더니 완전히 멈추고 해민의 위로 그의 몸이 쓰러졌다.

    해민은 진한 정사 후의 노곤함과 깊은 만족감을 느끼며, 땀에 젖은 그의 등을 쓰다듬었다.

    “해민아.”

    “형.”

    해민은 형을 바라보며 감격적인 말을 기대했다.

    그동안 기다려줘서 고마워.

    뭐 그런 말이겠지만.

    형은 원래 말을 잘 하지는 못하니까 대단히 멋지게 말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고무신 거꾸로 신지 않고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그런 얘기겠지.

    그러면 괜찮다고, 건강하게 전역해줘서 고맙다고 말해야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해민은 형의 말을 기다렸다.

    형은 불러놓기만 하고 말을 하지 않더니 해민에게서 빠져나갔다.

    뽁, 소리가 나고 그의 페니스가 빠졌지만 그가 쏟은 정액은 흐르지 않았다.

    형이 준 정액이 아까워서 애널에 힘을 주고 잠깐이라도 그걸 제 안에 갖고 있으려고 해민은 애쓰고 있었다.

    옆으로 구른 형은 해민을 바라보지 않았다.

    해민은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별 것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전역하고나면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아질 테니까.

    그러니까 생각이 복잡해서 그런 걸 거라고, 해민은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그러나 형의 몸이 옆으로 굴러지고 그의 구릿빛 탱탱한 등이 보였을 때 그에게서 나온 말은 마치 그의 등이 하는 말 같았다.

    “이제 그만 만나자.”

    “...”

    청천벽력이라더니.

    이게 무슨 말인 건지.

    그... 그... 그런 말을 하면서, 할 거면서, 지금 뭘 했다는 건가?

    그 생각이 지금 갑자기 든 것은 아닐 테고, 도대체 언제부터 그 생각을 하고 있다가, 아니...

    해민은 뺨을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멍청히 벌어진 입도, 제가 그러고 있다는 걸 깨달은 후에 곧바로 다물었다.

    “너도 알아들은 걸로 이해한다.”

    형이 허리를 튕겨 그 반동으로 일어나더니 대충 제 몸만 닦아내고 옷을 입고 방을 나갔다.

    해민은 걸음이 옮겨질 때마다 역동적으로 꿈틀거리는 그의 몸을 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허! 하는 소리와 함께 실소가 나왔고 긴장이 풀린 애널에서 그가 싼 정액이 토해져나왔다.

    먹고... 버린... 거야?

    개 같은 말이, 그 개 같은 일이... 왜... 나한테 일어나?

    해민의 머릿속은 복잡한 실타래처럼 엉켜들어갔다.

    너는 혹시 그 이유를 알아? 라고 물으려는 것처럼, 해민은 침대 곁의 거울을 바라보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여신의 현현이라고 불리는 흠잡을 곳 없는 매끈한 몸과 얼굴이 고스란히 비춰지고 있었다.

    '여자 같은 남자를 좋아할 거면 여자를 만나지 왜 남자를 만나겠어?'

    그나마, 전에 만나다가 헤어진 형은 헤어지는 이유라도 말을 해 주었었다.

    이번에도 그게 이유인 건가?

    거울 속의 해민이 아랫 입술을 부르르 떨면서, 붉어지는 눈시울을 하고 있었다.

    “울지마! 네가 왜 울어?”

    그래도.

    좋아했었는데.

    정말 많이 좋아했었는데...

    그게 오로지 저 혼자만의 감정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버거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해민이 자살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모텔에서 나와, 삶을 비관한 것처럼 걷기는 했지만, 그리고 부주의한 운전자가 모는 차를 발견하지 못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죽으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굉음과 함께 부웅 떠오르던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해민의 옆에는, 형을 만나기 전에 도서관에서 읽다가 빌려온 책이 같이 떨어졌다.

    [History of Herman. 제국을 멸망시킨 침궁(寢宮)의 남자]

    하얀 피부의 주위로 번지는 붉은 핏물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었다.

    ***

    눈을 뜬 곳은 한없이 낯설었다.

    바닥과 벽에서 차가운 냉기가 스며나와서 해민은 저절로 몸을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가 어디야?’

    라는 생각 뒤로 자기가 지금 잠에서 깨기는 한 건가 하는 생각이 이어졌다.

    그러나 해민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해민이 깨어난 것을 해민보다 더 먼저 알아차린 사람이 있었다.

    “마지막 끼니가 될 텐데 잠 자다가 거르게 될 줄 알았더니. 용케 일어나시네요. 어서 드세요. 저승길 가시려면 배는 해야지요.”

    고개를 돌려보니 웬 여자가 더러운 쟁반을 바닥에 밀고 있었다.

    가까이 들고 와서 주는 것조차 싫은 모양이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지금 저 여자가 무슨 말을 한 건가 하는 생각이 해민의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그 여자도 그곳에 같이 있은지 오래 되었는지, 햇빛을 보지 못한 것 같은 얼굴은 지저분했고 어두운 색깔의 로브를 대충 두르고 있는데.

    로브?

    웬 로브?

    해민은 얼른 일어나 앉아 제 상태를 살폈다.

    이게 뭐지?

    내가 왜 이런 걸 입고 있지?

    하늘거리는 쉬폰으로 된 하얀 옷이 마치 그리스 여신들이 그림 속에서 입고 있던 옷을 연상시켰는데 그걸 보고서 해민은 자기가 아직 깨지 않은 모양이라고 단정지어 버렸다.

    좀 더 자고 일어나면 이 꿈이 끝날 거라고 생각하면서 해민이 다시 눕자 로브를 두른 여자가 다시 쟁반을 좀 더 밀었다.

    “그래도 드시라니까요. 곧 처형장으로 이동할 건데 아무 것도 안 먹으면 어찌 걸어가려고 그러십니까.”

    이 여자.

    누군지는 몰라도 하는 말이 아까부터 살벌했다.

    저승길은 웬 말이고 처형장은 또 무슨 말인지.

    해민은 기분이 나빠서 벌떡 일어났다.

    “나를 압니까?! 아까부터 기분 나쁘게 그게 무슨 소리인 거요?!”

    초면이기는 하지만 그런 소리를 듣고 가만 있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제법 크게 소리를 질렀더니 이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해민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황비 마마? 이제 목이 잘리겠다고 생각하니까 무서워서 그냥 정신줄을 놔 버리신 겁니까? 그러려면 차라리 그 전에 정신줄을 놔버리지 그러셨습니까? 그 좋으신 황제 폐하께서 몇 번이나 용서를 해 주시고 다독여주실 때 그리하셨으면 이렇게까지 되는 일은 없지 않았겠습니까?”

    해민은 여자가 하는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여자가 조금 전에 분명히 자기를 황비 마마라고 불렀다는 것을 깨닫고 그야말로 어안이벙벙해졌다.

    “내가... 내가 왜 황비...라는... 겁니까? 나는...”

    남잔데?

    해민은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시는 것을 느꼈다.

    여자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해민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해민이 정신이 나가버린 건가 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내, 내가, 황비라면 네가 지금 감히 그 따위 표정으로 나를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냐!”

    해민은 갑자기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솟았는지 그 여자를 다그쳤다.

    지금 자신의 꼴을 보아서는, 그리고 자기가 있는 곳을 보아서는 이상한 곳에 처박혀 있는 것 같고 그곳은 아무래도 감옥 비슷한 것 같고 자기는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는 몰라도 처형이 예정돼 있는 사형수 신세가 돼 버린 모양인데.

    빨리 상황 파악을 해 놓지 않으면 영문도 모르고 처형장에서 목을 내놓게 생겼다.

    지금은 눈 앞에 앉아 있는 여자의 도움이 절실했다.

    무슨 이유로 그런 것인지 자기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기는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여자는 해민의 말을 듣고 기가 죽은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제 태도를 고쳤다.

    “하문하시지요.”

    여자가 말했다.

    “소리를... 질러서 미안하다.”

    존댓말을 할 뻔 했지만 이렇게 조금 겁을 주는 것이 말이 잘 통할 것 같아서 해민은 계속 그렇게 밀고 나가기로 했다.

    “충격을 받아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나는 남자이니라. 그런데 왜 나를 황비 마마라고 하는 것이냐.”

    그러자 그 여자가 해민을 바라보았다.

    뻔한 것을 자기가 말을 해야 하는가 하는 얼굴이었다.

    그러다가 포기한 것처럼 한숨을 쉬었다.

    해민이 황비가 맞다면 해민의 앞에서 감히 저렇게 한숨을 쉬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경을 칠 노릇이었을 테지만 죽음을 앞둔 상전을 제대로 모시겠다는 의지는 거의 없어보였다.

    하긴, 곧 죽을 사람인데 둘만 있는 그곳에서 무슨 짓을 한다고 해도 해민은 자기가 어디에 가서 하소연을 할 수도 없겠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은혜를 베풀어주는 것처럼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입을 열었다.

    “이곳은 헤르만 제국이라는 것까지 모르실 것 같지는 않으오나 나중에 다시 또 일일이 물으실까 하여 미리 말씀을 드리옵니다. 황제 폐하께는 황후 마마가 계시오나 황제 폐하께서 황비 마마를 지극히 아끼시어 마마를 황비의 위에 봉하셨사옵니다. 마마께서 신분이 낮음에도 황제 폐하의 총애를 받는다는 이유로 고관대작들을 무시하여 고관대작들이 반발하자 그것을 무마하려 하신 것이지요.”

    허. 대박!

    해민은 속으로 그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여자는 해민이 장난을 하는 건가 하면서 반신반의한 채로 얘기를 시작했다가, 자기 얘기를 듣는 해민의 표정이 정말로 진지한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로 자기가 누군지 모르고 있다는 말인 건가 하면서.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황비를 향해서 갖고 있던 적대감이 조금은 사라졌다.

    어차피 곧 죽을 사람인데 미움을 오래오래 간직해서 무엇 하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여자는 쟁반을 들고 해민의 앞으로 다가왔다.

    “드시면서 들으셔도 되옵니다. 황비마마.”

    “아. 알았으니까 제발. 황비마마라는 말은 하지 말거라.”

    황비라니.

    황비마마라니.

    이 여자가 보고 있지만 않다면 해민은 이 이상한 옷자락을 들추고 제 고추가 제대로 붙어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죽을 것 같았다.

    나오고 있는 목소리를 들어도 남자 목소린데.

    제 모습을 확인하고 싶어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런 장식도 없는 텅빈 벽이 이어지고 있을 뿐 거울도 없었다.

    그 빵을 먹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굴어서 빵을 베어 물려고 했더니 어찌나 딱딱한지 이가 나가 버릴 뻔 했다.

    이 여자가 나를 골탕먹이려고 그런 건가! 하면서 노려보자 그 여자는 안타까운 얼굴로 해민을 바라보았다.

    “제국의 꽃께서 어찌 이리 되셨사옵니까. 황비 마마. 그러니 황제 폐하의 총애를 입으셨을 때 그리 패악하게 굴지 않으셨으면 좋았지 않습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해민이 멍하니 바라보자 여자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듯이 얘기를 제대로 시작하려고 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오지만 않았다면 해민은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었을 거였다.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놀라기도 했지만 여자가 갑자기 지른 비명 소리 때문에 해민은 더 놀랐다.

    “괜찮습, 괜찮으냐.”

    “예, 예. 저는... 괜찮사옵니다. 황비마마.”

    여자는 해민이 자기를 걱정해주는 게 별 일이라는 듯이 해민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그리 놀란 것이냐.”

    여자는 대답을 하는 대신, 유일하게 창문이 나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는데.”

    그렇게만 말을 했을 뿐 해민에게 정확한 대답을 하지는 않고 여자는 일어났다.

    해민은 그 여자가 한 말의 의미를 즉각 깨달았다.

    형장으로 데리러 온 시간이 아직 안 됐을 텐데 사람들이 찾아온 것을 이상하게 여긴 것 같았다.

    정말로, 이게 꿈이 아니라 내 앞에 일어날 일이라는 말인가...

    해민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

    문을 두드린 사람들은 안에서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거나 하지 않았다.

    감옥이라는 곳이 그렇게 굴러가는 곳이던가.

    해민은 우락부락하고 거친 사내들이 자기를 데리러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면서 심호흡을 했다.

    서서히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길을 걷다가 굉음을 듣고 제 몸이 떠오르던 것.

    그리고 떨어지면서...

    해민은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들어 고개를 저어 기억을 털어냈다.

    나. 죽었었다...

    해민은 결국 그 사실을 떠올리고 말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곳에 있는 것이고.

    왜 하필 이곳에서 나는 다른 죽음을 예비하고 있는 것인가.

    이렇게 잔인한 장난을 설계한 존재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한없이 원망이 들었다.

    해민이 고개를 들었을 때 그곳에는 적대감이 가득한 시선으로 해민을 바라보는 남자가 있었다.

    이제 저런 시선은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자기가 살아놓은 삶은 아니었지만 지금 해민이 뒤집어쓰고 있는 이 몸의 주인은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삶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산 모양이었다.

    “황비마마.”

    해민을 또 그 호칭으로 부른 남자는 손에 묵직한 것을 들고 있었다.

    해민이 눈을 뜨고서 처음 보았던 여자는 어느새 해민의 곁으로 다가와서 해민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고했다.

    “대제사장 움베르트이옵니다.”

    자기가 알려주고는 있지만 설마 그것도 모르는 것이냐 라는 듯한 얼굴로 여자가 말했다.

    해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의 꽃이신 일레노이 황비마마를 뵙사옵니다.”

    일레노이.

    여기에서 그것이 자신의 이름인가 했지만 어차피 그 이름을 사용할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해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해민은 어쩌다가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건지 생각하려고 했다.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일로 인해서 자기가 누구에겐가 원한을 사서 이런 저주를 받게 된 것은 아닌지.

    이제는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죽은 후에도 영면에 들지 못하고 이리 저리 떠돌아다니면서 죽기 직전의 몸 속에 들어가 온갖 고통을 다 당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그런 짓을 당할만큼 끔찍한 짓을 저지른 적은 없는 것 같아서 해민은 고민을 했다.

    대학에 다닐 때 방학동안 공장에서 장난감 만드는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혹시 그때 만든 장난감에 유해물질이 있어서 아이들의 몸이 상한 것은 아닌가?

    언젠가 읽은 적 있던 소설의 내용과 맞물려 그런 생각까지도 들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지금 자기에게 일어난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움베르트는 일레노이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었다.

    베일을 벗은 얼굴은 창백했고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한 것처럼 야위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레노이의 아름다움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일레노이가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다면 헤르만은 전혀 다른 역사를 쓰게 됐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헤르만인들은 없었다.

    일레노이의 아름다움은 악마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 때문에 고관대작들이 황제께 주청을 드려, 악마의 빛이 일레노이의 얼굴에서 스며나오는 것을 막아달라며 억지로 흰 베일을 쓰고 다니게 하지 않았던가.

    움베르트는 죽음을 앞둔 황비의 얼굴을 홀린 듯 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자기가 그곳에 온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다.

    움베르트는 짙은 붉은 색 보자기로 감싼 책을 황비에게 건넸다.

    해민은 지금 그런 것이나 보고 있게 생겼나 하면서도 대제사장이라는 자가 조심스럽게 건네는 책을 받아들었다.

    보자기를 젖히자 그 안에서 책이 나왔다.

    “어...?”

    헤르만.

    제국의 이름이 헤르만이라고 했을 때 해민은 그 이름이 왜 자기에게 익숙할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다른 충격적인 말 때문에 거기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책을 받아든 지금 그는, 자기에게 그 이름이 왜 그렇게 익숙했는지 알 수밖에 없었다.

    “성궤를 모시는 장막 안에, 아무도 드나드는 이 없는 그곳에, 이것이 있었사옵니다. 그리고 그것을 황비마마께 전하라는 계시가 들렸사옵니다.”

    움베르트가 해민에게 말했다.

    해민은 움베르트가 하는 말을 듣지 못하고 있었다.

    벌어지는 입술을 다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는 제목을 훑었다.

    [History of Herman. 제국을 멸망시킨 침궁(寢宮)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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