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한성은 아이에게 자꾸만 무언갈 말하게끔, 털어놓게끔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어쩌면 늘 혼자였던, 괴롭거나 생각이 많아지면 오르던 자신만의 공간에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신이 났던 걸 수도 있었다.
누군가를 탓하고 싶진 않지만, 아직 어린아이에겐 혼자라는 것, 누구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절망감은 무거운 짐이나 마찬가지였다. 우연히 만난 낯선 사내에게 저도 모르게 주절거릴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라도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었다.
묵묵히 아이의 이야기를 듣던 한성은 그저 가끔 눈이 마주칠 때마다 편안한 웃음을 지어주곤 했다.
“그래도 이곳에 있으면 제가 존재하는 이유를 어떻게든 찾아내곤 해요.”
“이를테면?”
“지는 석양이 아름답다든가, 오늘은 바람이 참 따스하다든가, 꽃이 예쁘게 피었다든가 하는 것들로요. 자연은 알아주지 않아도 피고 지고, 떠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하잖아요. 일상을 살아 내다 보면 그것이 너무 자연스러워 느끼지를 못하는데도. 그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제대로 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텐데도 말이에요.”
“…….”
“그래서, 저도 자연과 같지 않을까. 혼자 위로하곤 했어요. 나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내 이름을…… 내 존재를…… 잠시 잊고 있는 걸 거라고.”
“영특하구나.”
“아, 아뇨. 저는…….”
“신은 너를 참 많이 아끼나 보다. 네가 잊고 있는 것들, 그리고 잃은 것들. 모두가 신의 뜻대로일 것이야. 너를 너무 아끼는 나머지 온전히 자라기까지 숨기고 싶었던 걸 수도 있겠구나.”
“신이 정말 있을까요?”
“……신은 어디에든 있어. 네 옆에도.”
조심스러운 아이의 말에 한성은 웃으며 답했다.
“아직은 아니지만…….”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성을 바라보자 그는 저 멀리 붉게 지는 석양을 바라봤다.
“나는 많은 시간을 떠돌아다녔단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듣고, 보고, 살아왔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것이 내 운명이려니, 그렇게. 한데, 이번엔 이곳에 터를 잡아도 괜찮을 것 같구나. 그러니 아이야, 가끔 나의 동무가 되어 말을 나누어주지 않겠느냐.”
“제가…… 그래도 될까요?”
“네가 원하는 일이라면.”
처음으로 아이의 얼굴에 해사한 웃음이 걸렸다. 석양빛에 물들어 발그레한 뺨으로 수줍게 웃는 아이의 얼굴은 세상에 그 어떤 것보다 맑고 소중했다.
* * *
여전히 이름 없는 ‘아이’로 불렸지만, 처음으로 자신을 인정해 주고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생겼다는 자체만으로도 아이는 조금씩 밝게 성장했다.
어떤 일이든 자신의 본분을 다하며 살기 시작했고, 주눅 들어 늘 그림자가 가득하던 얼굴엔 조금씩 미소가 깃들었다.
자신의 존재를 누군가 알아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는 꽃봉오리에서 만개하듯 점차 피어나기 시작했다.
원래 성정 자체가 영특하고 배려가 많았던 아이였던지라 밝아진 얼굴만으로도 사람들은 아이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일이 끝나면 한성을 찾아 쉴 새 없이 부리 같은 입을 조잘거리며 하루에 있었던 이야기를 떠들었다.
그런 아이를 매일 반기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웃어주는 한성은 아이에게 스승만큼이나 애착이 가고 소중한 귀인이었다.
한성 역시 이따금 아이가 있는 주물사에 가서 스승과 이야기를 나누고 마을 사람들의 일을 자신의 것처럼 도우며 살았다.
언제 어디서 나타난 어느 집안의 누구인지도 몰랐지만, 마을 사람들은 마치 예전부터 있던 사람처럼 그를 대했다. 어느 사람 하나 그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성이 나타나 이곳에 터를 잡은 뒤로 조용했던 마을은 더 평화로워졌다. 매해 풍년이었고, 인자하고 인품 좋은 관리가 마을을 이끌었다.
모두가 당연시하던 한성의 존재를 아이만 홀로 신기해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한성이 신의 고행길에 오른 영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날엔 아이는 마치 예상했던 것처럼 침착하게 받아들였다.
“어찌 그리 쉬운 게냐.”
“예삿분이 아니시라 생각은 했습니다. 마치, 신이 현존한다면 한성 님 같은 분일 거라 어렴풋이 생각은 했지요. 아니, 그리하였으면 하고 기도도 했습니다.”
“지금은 어떠하냐, 혹여 내가 무섭거나 곁에 두기 어렵거나…….”
“한성 님은 그 자체로도 빛나셨습니다. 처음 뵈었을 때부터 제겐 귀인이나 다름없으셨어요. 신보다 더. 곧 신이 되신다고 한들, 한성 님이 한성 님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쑥스럽게 뺨을 붉히며 말하던 아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꼭 고백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정을 들키기라도 한 듯 얼굴이 더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러자 한성은 조심스레 아이의 손등 위로 손을 겹쳐 잡고 나지막하게 미소 지었다.
“고맙구나.”
* * *
“한성 님, 이것 좀 보셔요.”
말갛고 반짝이는 눈이 한성을 올려다봤다. 성인이라고 하기엔 몸집이 작고 가녀린 아이의 곁에 선 한성이 그를 사랑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냐.”
“제가 처음으로 조각한 문양이에요! 음통에 조각을 해도 좋다는 스승님의 허락을 받았어요! 어떠신가요? 그, 용을 보신 적이 있나요? 전해져 내려오는 신수도(神獸圖)를 보고 그린 것인데…….”
쑥스러운 아이의 웃음에 한성은 유심히 커다란 조각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턱에 손을 올리고 잔뜩 굳은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자 해맑던 아이의 얼굴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왜, 왜요? 한성 님이 보시기에 너무 볼품…… 없나요?”
한성이 힐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니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 낼 것처럼 두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작은 아이를 골려 주려 했었지만, 금세 피식 웃음이 쏟아졌다.
그러자 아이는 한성의 장난을 깨닫고 몸을 일으켜 발을 굴러 댔다. 까맣게 탄 얼굴에 티가 날 정도로 붉어진 아이는 한성의 옷 소매를 부여잡고 투정 부리듯 몸을 흔들었다.
“아이참! 한성 님, 빨리요!”
“나는 갓 태어난 용이 앉아 있는 줄 알았구나.”
과장된 한성의 목소리에 아이가 밉지 않게 눈을 흘기다 함께 웃음이 터졌다. 맑고 고운 웃음소리에 한성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검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고 미암석을 조각하느라 거칠어진 작은 손을 조심스레 잡았다.
아이는 그 거친 손이 부끄러운지 자꾸 뒤로 감추려고만 했다.
“왜 이리 피하는 게야.”
“전…… 손이 아주 거칠어 한성 님 고운 손에 흠집이라도 날까 두렵습니다.”
“네 손이 이 용처럼 날카로운 발톱을 가졌다 해도 나를 흠집 내진 못할 것이야.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응?”
주저하던 아이가 두 손을 한성에게 천천히 보였다.
“참 신기하구나. 이 작고 여린 손이 이렇게나 수려한 조각을 만들어 내다니 말이야. 손끝이 섬세하여 마치 살아 있는 것같이 잘도 만들었구나.”
“……정말요?”
“응, 마치 비단 같다. 어찌 이리 고우냐.”
“놀리지 마셔요.”
아이의 작은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양 볼이 발갛게 올라온 모습을 보니 한성의 얼굴이 절로 행복에 물들었다.
“……내가 신이 되면, 나의 반려가 되어줄 테냐.”
“네……?”
당황한 아이의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당황했는지 눈을 연신 깜빡이는 통에 고인 물기가 톡톡, 방울져 떨어졌다.
“울 만큼 싫은 게야?”
“아니, 아니요! 제가 어찌 감히…… 저같이 천한 것이 어찌 한성 님의 바, 바…… 반려를…….”
“쓰읍, 누가 천하다는 게야. 모두 아름다운 생이다. 어찌 천하고 귀한 것으로만 나뉠 수 있겠느냐. 나의 생에선 아무것도 소용없다. 나와 함께 긴 생을 살아야 하니 그것이 걱정이지.”
씁쓸한 표정의 한성을 올려다보던 아이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성 님과 함께 긴 생이라면 오히려 더 좋은걸요!”
그 모습을 보던 한성은 아이의 손을 들어 올려 손등에 입을 맞췄다.
“그래. 나도 너와 함께라면…… 참으로 행복하겠구나. 더 바랄 것이 없을 게야.”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한성이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신에게 졸라 보아야겠다. 어여쁘고 귀한 너를 제발 내 곁에 두게 해달라고 말이야.”
그 말에 아이는 두 눈에 눈물이 방울져 내리는 것도 모른 채 한참이나 한성을 바라봤다.
“너를 다시 데리러 오마. 그땐, 너의 이름도 함께.”
* * *
지찬이 자리에서 일어나니 한성은 곁에 없었다. 빈자리를 손바닥으로 훑자 따뜻한 온기가 아직 식기 전이었다.
부스럭거리는 이불을 쓰다듬던 지찬은 한동안 한성의 빈자리를 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한참이나 넋을 놓고 있던 지찬은 바깥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두 눈을 깜빡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자 뒤뜰에 무언갈 바라보고 있는 한성의 뒷모습이 보였다.
지찬의 얼굴에 아주 작은 미소가 피어났다. 마치 한성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유리창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계단을 지나 거실로 나가자 여전히 그 자리, 자세 그대로 서서 작은 풍경을 바라보는 한성의 옆 모습이 보였다.
유난히 바람이 많은지 맑은 풍경 소리가 쉼 없이 들려왔다. 뱅그르르 도는 백호의 작은 모양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지찬은 그대로 한성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눈치챈 한성이 지찬을 바라보곤 조금 놀란 눈으로 지찬을 껴안았다.
“뭐가 이리 급해 뛰는 게야.”
풀쩍 뛰어오른 지찬이 한성의 품에 코알라처럼 매달리자 한성은 반려의 예상치 못한 행동이 재밌기만 했다.
엉덩이를 받쳐 들고 품에 꼭 매달려 오는 지찬의 어깨에 코를 묻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잘 잤어?”
한 손으로 등을 토닥이는데도 지찬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계속해서 한성의 어깨에 얼굴을 비비고 머리카락을 쓰다듬다가도 양팔로 꼭 끌어안기만 했다.
“악몽이라도 꾼 게야? 얼굴 좀 보여 줘, 지찬아.”
그날 이후 어떤 꿈이라도 질색을 하며 깨어나는 지찬이 안쓰러워 방장산 늙은 여우 영감에게 불면증에 좋다는 묘약까지 얻어 오기도 했었다.
어느 날은 지찬이 울면서 그런 말도 했었다.
‘내가 꾼 건 악몽이 아니에요. 그냥 찰나의 꿈도 아니었어요.’
잊을 수 없다고. 그저 꿈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아프다고.
‘내가 기억할래요. 내가 기억하고 싶어요. 괜찮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을 기억하는 일이었나 봐요. 그러니까 난 힘들지 않아요.’
작고, 여리지만 강인한 자신의 반려가 안쓰러워 한성은 품에 안긴 지찬을 더 꽉 끌어안았다.
그때 멈췄던 풍경 소리가 다시 듣기 좋은 음악처럼 들려왔다.
“한성.”
“응. 반려 님.”
“한성 님…….”
“……응?”
“한성 님…… 한성 님, 약조 지켜 주셨네요.”
“……지찬아?”
지찬은 한성 품에서 떨어져 나와 자리에 서고 두 손으로 한성의 얼굴을 조심스레 부여잡고 올려다봤다.
“신이 되면, 반려가 되어 달라던 그날의 약조. 잊지 않으셨네요. 제가 드린 풍경도…… 이리 곱게 잘 간직해 주셨네요.”
“……무, 슨…….”
“꿈에서 봤어요. 그 아이가 지금의 당신을 봤다면 이런 말을 했겠지? 약속 지켜 줘서 고맙다고. 날 잊지 않고 반려로 맞아주어 고맙다고.”
다는 아니지만, 꿈을 꿨던 것은 마치 지찬의 한 부분처럼 기억에 스며들었다.
거친 손등을 매만지던 한성의 조심스러운 손길, 석양을 바라보며 했던 대화들,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몰래 밤늦게까지 작은 풍경을 만드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던 밤까지.
“신에게 졸라 보겠다던 당신의 투정이 정말 먹힌 것 같다고.”
지찬은 자꾸만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눈물샘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계속해서 흘러나오는데도 미소가 지어졌다. 당황한 한성의 얼굴이 우습고 재밌었다.
그러다 이내 한성 역시 지찬과 비슷한 얼굴이 되었다.
커다랗고 온기 가득한 손을 들어 지찬의 눈물을 계속 닦아주면서 미소 짓고 있었다.
“이제야, 네 이름을 전해 줄 수 있겠구나.”
“……이름이요?”
“역모를 꾸몄다는 음해에 멸문당한 네 가문을 찾아 헤맸다. 늙은 시종 하나를 찾아내어 숨겨 둔 네 가문의 족보와 가보를 전해 받았지. 그것에 네 이름이 있었다. 명예를 복원시키고 이름을 찾아 네게 갔던 날이었어…….”
“……아이가, 내가 아팠던 날이었네요. 그날.”
“응,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리될 줄은 몰랐다. 아니, 다 변명이지.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신의 반열에 올랐더라면…….”
“아뇨. 그건 한성의 잘못이 아닌걸요. 아이도 알아요. 그저 기다렸어요. 마지막으로,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서.”
지찬은 옛 추억이라도 곱씹는 것처럼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았다.
신과 신이 되지 못한 신수들의 싸움이라고 했다.
허겁지겁 아이를 찾아와 손을 꼭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던 한성의 이야기.
분명 수백 년이 지난 이야기일 텐데도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마을에 역병이 돌아 죽음의 그림자가 짙어졌다. 한성이 보고 싶으면서도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혹여나 이 지독한 병이 그에게 해라도 입힐까 염려스러웠다. 비명과 울음소리로 소란스럽던 마을은 일순간 조용해지고 작은 숨소리 하나 남지 않았었다.
적막만 감돌던 마을에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한성은 기어이 아이를 찾아내 끌어안았었다.
‘미안하다.’
‘아니, 이리 가면 안 된다. 이리 쉽게 너를 보낼 수는 없는 일이야. 아이야, 제발.’
‘너 없이 나는…….’
여전히 따뜻한 한성의 품, 눈물 역시 온기로 가득했다. 절망으로 얼룩진 한성의 목소리에 아이는 그저 웃어 보였다. 그게, 한성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다.
“어떤 이름으로 불렸어도 난 나였어요. 아이도 설지찬도. 고마워요. 잊지 않아줘서.”
<외전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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