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외전 2
‘주장(鑄匠)께선 언제까지 그 아이를 데리고 계시려나.’
‘누구?’
‘아, 그 왜 있잖아. 몇 해 전에 데려온 이름도 없는 그 아이.’
‘아아, 어차피 자식 없는 집이라 별 상관없지 않아?’
‘예끼, 이 사람 보게. 다들 쉬쉬하고는 있지만, 그 집 아이가 들지 않는 것이 다 그 애 때문이라고 하더라고.’
‘그런 말이 어딨는가.’
‘이 아이면 됐으니 더는 아기 갖는 것에 부담 느끼지 말라고 하였다더군.’
‘워낙 부인이 몸이 약하기도 하니까 그러는 게지.’
‘아무튼, 그 말 때문에 부인이 며칠을 앓아눕기도 했다니 어찌 보면 그 애 때문이 아닌가.’
‘애먼 애 잡지 말고 어디 가서 그런 말 마시게!’
‘설마 바깥에서 낳아 온…….’
‘에이! 생소리는! 자자, 일이나 합세!’
아이는 그들에게서 보이지 않을 기둥 옆에 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부 빠짐없이 듣고 있었다.
종(鐘)을 만드는 이들은 나무로 종의 골조를 세운 후 삼끈으로 칭칭 감아 밀랍을 바르기 전에 잠시 쉬고 있던 참이었다.
밀랍이 다 녹았으니 사람들을 불러오라는 심부름에 종종걸음으로 달려온 아이는 차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지금 아이는 ‘스승님’으로 불리고 있는 주종장(鑄鐘匠) 중에 제일 어르신 격인 남자가 주워다 기른 아이였다.
그의 부인은 갑자기 나타난 어린아이에 대한 반감과 불신이 제일 컸고, 아이를 싸고도는 모습에 입에 담지도 못할 의심을 사기도 했었다.
너덧 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는 처음에 벙어리라고 해도 믿을 만큼 입 밖으로 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부인은 끊임없이 아이에게 물었다.
‘이름이 무어냐’
‘네가 사는 곳은 어디였느냐.’
‘혹, 네 어미를 무어라 불렀는지 기억하는 게 있느냐.’
하지만, 아이는 어쩐지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십삼 년이 지난 지금은 많이 퇴색되고 바래진 기억이었지만, 제게 싸늘하게 당부하던 한 여자의 목소리는 아직 남아 있었다.
‘지금부터 넌 어미도 아비도 없는 천애 고아다. 네 이름도, 이곳도, 모두 잊거라.’
양어깨를 움켜쥔 손의 악력과 다급하고 냉정하게 말하던 여자의 억양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는 그렇게 자신의 이름도, 어미의 얼굴도, 살았던 곳도 모두 잊었다.
잊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곱던 옷을 모두 벗겨 허름하고 악취가 나는 저고리만 대충 입혀진 아이는 등을 밀치는 손길에 멍하니 바깥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손길에 이끌려 허둥지둥 좁고 더러운 골목을 돌고 돌아 언덕배기에 올라섰을 땐, 자신이 살았던 집이 마치 석양 속에 삼켜지는 것처럼 그렇게 불타고 있었다.
‘잊으세요. 모두 잊으세요. 아무것도 모르시는 겁니다. 이름도, 저도, 저곳에 계셨던 모든 이들도 잊으셔야 해요. 아무것도 모르셔야 합니다.’
그렇게 익숙한 얼굴이 돌아섰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온 남자가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여태껏 길러 주기 시작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그게, 아이의 ‘스승님’이었다.
아이는 이름이 없었다. 이름을 지어주려고도 하질 않았다. 그저, ‘아이’라고 불렸다.
아이를 데려온 남자는 훗날 성인이 되는 해에 이름을 다시 돌려주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청렴하고 기백이 좋았고 영특했지만 시기하는 이들의 못된 꾐에 넘어가 멸문당한 가문의 이름이라도 말이다.
그렇게 아이가 정말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터를 잡아주고자 했었다.
이름 없이 살기를 십여 년.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문들을 모를 리 없었다.
아이는 점점 자신이 없었다. 스승님의 도움으로 이곳에서 평온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어느 곳에도 자신의 자리는 없었다. 환영받지 못한, 받을 수 없는 존재였다.
오히려 굴러온 돌 같은 자신 때문에 힘들어하는 주변인들을 보기 괴로웠다. 세상에 허락되지 않은 이름, 존재, 생명.
그 누구도 자신을 달가워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이의 마음속에선 작은 욕심이 피어났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였으면 하는 마음과 존재 자체를 인정받았으면 하는 마음.
그래서 눈물이 났다. 원망스럽기도 했다. 억지로 잊힌 기억은 이제 다시 되돌아오지도 않았다. 어린 날의 그것이 어찌나 두려웠던지, 잊으란다고 정말로 잊어버린 저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아이는 스승님이 전언하라고 했던 심부름은 까맣게 잊고서 그대로 도망치듯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보고 듣고 자란 것이 종을 만드는 주종장의 옆이라 나름 솜씨 좋은 손재주 덕에 조금씩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스승은 달가워하질 않았다. 책의 글자 하나라도 더 보고, 세상을 알아 가길 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책을 붙들고 있으면 ‘출신도 불분명한 천것이나 다름없는 녀석이 활자를 보고 있다니, 기가 막히는군’이라며 조롱했고, 스승의 옆에서 주종장들의 심부름을 도맡아 하면 ‘천성이 천해 남의 뒤치다꺼리는 꽤 하나 보오’라며 비웃었다.
그런 주변의 달갑지 않은 시선과 뾰족한 말투에 시무룩해진 아이에게는 가끔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지나치는 스승님의 그 짧은 온기만이 위로의 전부였다.
‘이겨 내거라. 사내대장부가 그깟 추문 하나로 흔들려선 안 된다. 이겨 내야만 한다.’
흐린 기억 속의 여자는 잊으라 했고, 제 곁에 있는 스승은 이겨 내라고만 했다.
아이는 서글펐다.
* * *
아이는 자리에서 벗어나 그대로 달려 나갔다. 위태롭게 지탱하고 섰던 땅이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그런 소리는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도 매번 그 크기가 부풀려져 아이에게 다가왔다. 이젠 더는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모도 없는 천애 고아에 이름도 없는 천하디천한 목숨이었다. 제 스승이 어떤 연유로 대가 없이 자신을 거두어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마저도 미천하고 부질없는 목숨을 억지로 붙들고 있는 것 같아서 자신이 없어졌다.
‘이대로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텐데…….’
그렇게 울면서 뛰어가던 아이는 길게 뻗어 있는 담장을 지나 모퉁이를 돌다 마주 오는 무언가와 세게 부딪치고 말았다.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찾는 동네 뒷산을 향해 뛰던 그것이 버릇되어 앞도 보질 않고 무작정 달리기만 하느라 생긴 사고였다.
묵직한 돌덩이에 부딪힌 것처럼 그대로 뒤로 튕겨 나가떨어진 아이는 그제야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을 까만 소매에 쓱쓱 문질러 닦고 앞을 바라봤다.
고운 비단 신발부터 시작해 윤기가 흐르는 옷감이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어느 집 양반님이라도 됐던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라 할지라도 자신과 전혀 다른 신분이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천한 것이 조심성 없이 더럽혔다며 매질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던 게 기억난 아이는 더 올려다보질 못하고 몸을 더 움츠렸다.
그런데 스윽, 부드러운 옷감이 스치는 소리가 들리고 아이 위에 있던 그림자가 더 진해졌다.
“괜찮은 것이냐.”
움찔.
낮고 깊은 울림을 가진 목소리였다. 게다가 자신을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걱정하는 말투에 아이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히익!”
고개를 올리자마자 보이는 건 허리를 숙인 채 내려다보고 있는 한 사내였다. 얼굴이 너무 가까웠던 탓에 놀란 아이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자 사내는 허리를 세워 일어섰다가 조심스레 무릎을 굽혀 앉았다.
“다치진 않았고?”
“……네, 네.”
“한데, 왜 그리 우는 게야.”
사내는 아이의 눈가에 매달린 눈물을 조심스레 손으로 닦아 냈다.
그 행동에 놀란 건 오히려 아이였다.
더럽다며 못 본채 지나치거나 재수 옴 붙었다며 바닥을 향해 침을 뱉고 가 버리는 이들이 수두룩한 곳에서 처음으로 이상하리만치 따뜻한 온기가 와 닿았다.
“이, 이건…… 다쳐서 우는 게 아니라…….”
“마음을 다친 게로구나.”
아이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커다란 손으로 제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길에 울컥 눈물이 흘렀다.
아무도 제 마음 따위는 들여다보지 않았다. 먹고 살기 바빴고, 어쩌다 굴러 들어온 낯선 아이는 그저 그들에게 귀찮지만 익숙한, 그런 존재일 뿐이었다. 먼저 다가서서 손을 내민다거나 끼니 한번 챙겨 먹었느냐는 물음 따위도 없었다.
처음 받아 보는 타인의 따뜻한 손길과 다정함에 아이는 처음으로 펑펑 울기 시작했다. 목 끝까지 차오르던 설움이 터졌다.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지난날들.
선이 그어진 타인이라는 것에 먼저 손 내밀 용기도 없었던 아이는 그렇게 그림자처럼 조용히 그들의 삶에 섞이지 않게끔 살아왔다. 숨을 죽이고 발걸음의 소리 또한 낮추면서 말이다.
물과 기름 같은 관계라고 생각해 왔다. 아득바득 용을 쓰고 기를 써도 그 속에 녹아들 수 없는 기름처럼.
더럽고 꾀죄죄한 차림에도 덥석 끌어안아 토닥이는 손길에 십여 년을 참아 왔던 울음을 모두 쏟아 낸 아이가 그제야 상황 파악을 했다. 파드득 놀라 몸을 밀자 사내는 순순히 물러났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이젠 조금 진정이 되는 게냐.”
“네, 네. 제가 귀하신 분께 실례를…… 아니, 주, 죽을죄를…….”
“실례도 아니고, 죽을죄는 더더욱 아니다. 아파하는 이의 곁을 지키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하는 일 아니냐.”
“그…… 아…….”
당황한 마음에 말을 잇지 못하고 더듬거리는 아이를 바라보던 사내는 나지막이 웃으며 손을 뻗었다.
“나는 한성이다. 그리고, 이럴 때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할 것 같구나.”
“고,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저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냥…… 아이라고…….”
“네 이름을 아직 못 찾은 게로구나. 때가 되거든 네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게다.”
아이는 한성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 말을 깊게 생각할 여력도 없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가 자신과 다르게 귀한 신분일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다정한 목소리도 온기를 머금은 손길도 모두 좋았지만, 이렇게나 고운 비단옷을 입은 남자와 얘기하는 법은 배운 적이 없었다. 혹시 제가 실수라도 하진 않을지 머리를 조아리며 땅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고개를 들거라. 앞을 보아야 제대로 된 걸음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
부딪힌 자신을 책망한다 생각한 아이는 더 깊게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아이의 걱정과 다르게 한성은 숨죽여 웃고는 다시 한번 아이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죄, 죄송, 아니. 고, 고맙습니다. 아니. 어, 그게…….”
“무엇이든 어떠냐. 네가 다치질 않았다면 그걸로 되었다. 나야말로 고맙구나.”
쭈뼛거리며 고개를 들어 눈치를 살피던 아이의 눈에 한성의 얼굴이 들어왔다. 비단옷보다 더 수려한 용모로 기분 좋은 웃음을 짓는 남자의 얼굴이 낯설기도, 기묘하기도, 신비하기도 했다.
그 웃음에 마음을 안정시키는 무엇이라도 있는 건지 천천히 미소가 전염되어 아이의 얼굴에까지 피어났다.
“급히 어딜 가던 중이 아니었던 게냐.”
“아…… 그냥, 바람을 좀 쐬러…….”
“홀로 다급하게 갈 정도로 좋은 곳이면 내게도 소개해 줄 수 있겠느냐.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길이 익숙지 않구나.”
“그냥 뒷산…… 이라.”
“혹, 말동무가 필요하거든 나를 써먹어도 되는데.”
“가시는 길이 험할지도 모릅니다…….”
“그 어떤 험한 산세도 내 발아래에선 평지와 같지. 못 믿는 게냐? 꼭 보여 주어야겠구나.”
소리를 내 웃던 한성은 주춤주춤 움직이는 아이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앞장서서 걷는 아이는 몇 걸음 걷다 뒤를 보고,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저…… 힘드시면 굳이 오르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나를 뭐로 보고, 이 정도는 평지를 걷는 거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