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화 (57/60)

57화

위에서 양동이로 퍼붓는 듯 내리는 비에 얼굴을 손바닥으로 훔치고 다시 하늘을 바라봤다.

그때 단이 지찬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형…….”

저를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단이 지찬을 잡아끌어 바닥에 내팽개쳤다. 순식간에 바닥에 나뒹굴게 된 지찬이 얼굴을 찌푸렸다.

바닥에 누워 온몸으로 퍼붓는 비를 맞게 되자 호흡까지 삼켜지는 것 같았다.

“하윽, 너……!”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순간.

펑! 대지가 흔들리고 물이 차올랐다. 위태롭게 흔들리던 건물이 무너졌다. 미처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의 끔찍한 비명이 들렸다. 야속하게 퍼붓는 물은 갈라진 도로 틈 사이로 비집고 차올랐다. 약해 빠진 도로는 구멍이 뚫리고 거센 물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도로에 있던 이들이 빠져나가 적막함만 감돌던 곳에 다시 몇몇 인간들이 뛰쳐나왔다. 무너지는 건물을 보고 차라리 밖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몸을 뒤집어버릴 듯한 바람에 전봇대를 붙잡았다. 펼쳤던 우산은 무용지물이 되어 날아가 나뒹굴었다. 넘어지고, 휘청이고 부딪혀 가면서도 도망가는 발걸음은 멈추질 않았다.

모두 발목까지 차오르는 물살을 가르며 이곳을 벗어나려 애썼다. 순식간에 다시 아수라장이 된 주변을 바라보던 지찬이 울음을 삼켰다.

“대체…… 왜 이래야만 하는 건데…….”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조차 못 한 채 제 어깨를 부여잡았다. 백호의 각인이 새겨진 곳을 손끝으로 더듬거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비통했다.

손등은 잔뜩 긁혀 성한 곳이 없었다. 핏방울이 맺히기도 전에 빗물에 씻겨 내려갔다. 건물 안이나 밖이나 어느 곳도 안전한 곳은 없었다.

그것을 아는 사람들은 다시 건물 안으로 숨어들었다. 원래 있던 곳의 책상 아래, 식탁 아래. 장롱 속, 제 몸 하나 집어넣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몸을 구겨 넣었다. 함께 끌어안고 울었다.

그들의 비명과 울음소리가 바깥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형, 도와줘요.”

단이 울음을 토해 내며 누워 있는 지찬에게 엉금엉금 기어 다가왔다. 그러고는 바닥에 널린 날카로운 유리 파편을 들었다.

소중한 동아줄이라도 되는 양 움켜쥔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무뎠지만 날카로웠다. 단의 손바닥을 파고들어 깊은 상처를 내고 피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너, 뭐 하는…… 거야.”

어느새 누워 있는 지찬의 위로 타고 오른 단이 흠뻑 젖은 얼굴로 내려다봤다. 당황한 지찬은 단을 밀쳐 낼 생각도 못 한 채 흔들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도와줘요. 도와줘요.”

단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도와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거 내려놔. 뭐 하려고 그래!”

지찬이 다급하게 외쳤다. 아슬아슬해 보이는 단의 상태가 불안했다.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쏟아 내면서도 유리를 쥔 손은 바들바들 떨 정도로 힘이 실려 있었다.

“흐윽, 혀엉…… 제발…… 제발요.”

단은 유리 파편을 자신의 심장 위로 올렸다. 그리고 지찬의 손을 이끌어 제 손위로 겹쳤다.

“죽여, 죽여 줘요…… 이대론, 안 돼요…… 흐읍, 형…… 제발요.”

단에게 잡힌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어디서 생긴 힘인지 도저히 풀리질 않았다. 그는 두 손으로 지찬의 손을 겹쳐 잡고 힘을 줬다.

얇은 티셔츠 한 장을 꿰뚫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피부를 할퀴고 핏빛으로 된 실금을 만들어 냈다.

“하지 마…… 이게 뭐야. 단! 하지 마!”

“내가, 죽어야…… 그래야, 흐윽…… 그래야 끝나요. 형…….”

지찬의 눈이 크게 떠졌다. 울컥, 토악질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파랗게 질린 단의 입술이 사정없이 떨렸다. 두 눈에선 계속 눈물이 흘렀지만, 지찬을 바라보는 눈빛엔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지 마. 단아…….”

벗어나려고 무릎을 세워 바둥거렸다. 하지만 소용돌이치는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던 지찬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기만 했다.

심장을 찌르려는 단과 버티려는 지찬의 힘이 비슷했다.

“이렇겐 못 해. 이건 아니야!”

“흐윽, 흡…… 미안해요. 이렇게밖에…… 이것 밖에…….”

그 순간 쾅 하고 커다란 굉음과 함께 무언가 그들의 옆으로 떨어졌다.

한성이 한 손으로 단을 들어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그리고 지찬을 잡아 일으키곤 제 뒤에 세웠다.

엉망인 몰골은 한성도 마찬가지였다. 이마가 찢어지고 목 언저리에 깊게 팬 자국이 가득했다.

“한성!”

“응.”

등 뒤에 서서 한성을 훑어보는데 다리 아래에선 계속 핏물이 빠져나왔다.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보자 옆구리에 난 깊은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옷은 찢겼고, 피부는 무언가에 그을린 듯 까맣게 베인 자국이 기다랗게 이어졌다. 피가 계속해서 흘렀다.

지찬은 손이 벌벌 떨렸다. 한성의 손을 움켜잡으려는데 뒤이어 따라온 청룡이 한성 앞을 막아섰다.

이미 그 역시 아까 봤던 모습이 아니었다. 거친 상처가 곳곳에 보였다. 그의 동공은 여전히 뱀 같았다. 그는 소름 끼치는 눈으로 비죽 웃었다.

팔을 들어 올리자 본체의 팔처럼 변했다. 날카롭고 짙은 푸른색의 비늘이 날 세우고 있었다. 그는 매처럼 날카로운 발톱을 들어 한성에게 향했다.

“네 반려를 먼저 죽일 걸 그랬지.”

“나야말로.”

단은 청룡의 뒤에서 주저앉은 채 울고 있었다. 고개를 사정없이 흔들며 제발 그만두라고 외쳐도 청룡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청룡은 서늘한 살기를 띄우며 천천히 한성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한성은 손을 펼쳐 청룡을 막아섰다.

“땅에선 멈춰라.”

“왜?”

여전히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는 청룡은 한성을 무시한 채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이미 많은 인간이 죽었다. 더는 땅 위에 피해를 줄 수 없어.”

“그건 네 사정이고. 난 상관없어. 네놈의 목숨만 끊을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거냐.”

“저 위에 있는 꼰대 같은 소릴 하고 있네. 너와 네 반려의 목숨부터 걱정해 보시지?”

청룡은 한 걸음 더 내디뎠다. 한성은 미간을 찌푸리고 힘을 주기 시작했다. 바람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청룡을 향해 날아들었다. 제정신이 아닌 줄은 알고 있었지만, 세상의 파멸이라도 원하는 건지 청룡은 거침없었다.

빗줄기는 다시 거세지고 벼락이 땅 위로 내리꽂혔다. 쾅! 콰르릉, 천둥이 울고 벼락은 아슬아슬한 도로 위를 꿰뚫어 땅을 갈라지게 했다.

쩍 갈라진 땅의 균열 사이에서 물이 차고 넘쳤다. 발목까지 차오르던 물은 점점 불어나 무릎을 집어삼켰다.

한성이 힘을 내어 쏜 것을 어깨에 빗맞은 청룡이 잠깐 휘청이다 다시 걸어왔다.

그의 표정은 아무것도 담질 않고 있었다. 형형하게 빛나던 눈동자는 탁하게 변했다. 거침없이 다가오는 그에게 한성은 다시 한번 날을 세운 바람을 날렸다.

그때마다 청룡은 기괴하게 변한 팔로 막고 찢어진 상처를 힐끔 바라보고 말았다.

커다란 굉음과 함께 낙뢰가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엉망이 된 도로에 떨어진 그것은 차를 두 동강 내고 어마어마한 파열음을 만들어 냈다. 물살이 커다랗게 일렁이고 떠다니는 파편들이 속절없이 흔들렸다.

청룡이 손을 뻗자 하늘에선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구름 사이를 진동하는 날 선 빛이 조금씩 커다래졌다. 순식간에 비가 멈추고, 적막감만 감도는 와중에 하늘을 울리는 진동이 요란해졌다.

지찬의 앞을 막아선 한성은 한 걸음 더 나가 바람을 일으켰다. 귀가 찢어질 것처럼 엄청난 바람의 소리는 순식간에 커다란 회오리를 만들어 냈다.

도로를 잠식한 물이 딸려 올라가면서 커다란 파도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삼켜지고, 처참하게 부서져 갔다.

손을 내려 커다란 불덩이 같은 낙뢰를 내리자 몸집을 부풀린 회오리가 그것을 집어삼켰다. 청룡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애쓰는군.”

낙뢰를 집어삼킨 회오리가 강한 바람을 만들어 내며 허공을 돌다 하늘에서 공중 분해되어 사라졌다.

“네놈은 정말.”

한성이 이를 악물었다. 답이 없었다. 계속 같은 짓을 반복하게 될 뿐이었다. 억지로 퍼부은 천재지변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미, 많이 늦었다.

다시 몰아치는 바람에 시야가 가려진 지찬은 엉망이 된 채 달라붙는 머리카락을 거칠게 넘겼다. 그때 손을 뻗어 날카로운 바람을 날린 한성 앞으로 가느다란 인영이 불쑥 끼어들었다.

“컥…….”

“다, 단아……?”

작은 몸집이 위태롭게 버티고 섰다. 청룡의 앞을 가로막은 단의 몸이 휘청였다. 날카롭게 파고든 형체 없는 바람은 배를 관통하고 사라졌다. 허리를 숙이며 힘겨운 기침을 뱉었다.

“쿨럭, 쿨럭!”

청룡의 상의 위로 피가 흩뿌려졌다.

“단아!”

청룡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을 끌어안았다. 차갑게 식은 몸을 끌어안자 한기가 몰려왔다. 사람의 체온이라고 하기에 어려운 얼음장 같은 단의 몸이 청룡에게로 힘없이 안겨 왔다.

지찬은 그 모습을 보고 입을 틀어막았다. 사지가 온통 떨려 왔다.

“너…….”

한쪽 팔로 단을 끌어안은 청룡이 분노했다. 빗줄기가 퍼붓는다. 상상 이상의 양이 순식간에 땅을 점령했다.

금방이라도 한성에게 달려들 것처럼 구는 청룡의 팔을 단이 잡아끌었다. 움찔한 청룡은 금세 단을 내려다봤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청룡을 올려다보는 단의 애처로운 표정이 마치 바람 앞에 촛불처럼 연약하게 흔들렸다.

청룡은 이를 악물었다. 작게 욕설을 내뱉고 숨을 몰아쉬었다.

“저 녀석의 힘을 줄게. 단아, 조금만 기다려.”

세로로 길게 찢어진 그의 동공이 더 커다래졌다. 으드득거리며 그의 살갗 위로 파란 비늘이 솟아올랐다. 턱 아래부터 목까지 날 선 비늘이 빛났다.

그때, 안겨 있던 단이 청룡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진운…….”

“단아, 조금만, 아주 조금만 기다려.”

“하, 할 말이…… 있어요.”

어깨를 끌어안은 단이 숨을 몰아쉴 때마다 울컥울컥 아랫배에서 핏덩이가 쏟아져 나왔다.

이미 썩은 몸뚱이를 참 오래 억지로 붙잡아 왔다는 사실에 단은 아무도 모르게 웃었다.

“나의 신.”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청룡의 눈이 흔들렸다.

“나의 하늘…….”

단을 붙잡고 있는 팔에 힘이 실렸다.

“단아…….”

“사랑, 했어요…… 쿨럭. 하아…….”

“아냐, 너 안 죽어. 그런 말은 나중에 해도 돼.”

“당신, 이…… 있어서,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던, 나를…….”

“단아, 제발…….”

“내, 생이…… 행복, 했어…… 사랑할 수 있, 어서…… 아름, 답다고 느꼈어요…….”

청룡의 얼굴에 절망이 찾아왔다.

“아니야, 단아. 아직은 아니야.”

이를 악문 청룡이 한성을 노려봤다. 한성의 힘만 있으면 단이 아픈 것쯤은 단번에 없앨 수 있었다. 그렇게 믿었다. ‘진짜 신’이 된다면 단도 자신도 아픔 없이 끝도 없는 영원의 시간 동안 행복하게 사랑만 하고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진작에 죽였어야 했다. 단이 아무리 그만하라고 저를 붙잡고 울었어도, 그날 반려를 찾아온 한성의 뒷덜미를 물어뜯어 죽였어야 했었다. 멍청하게도 제게 온 기회를 놓쳤던 청룡은 이를 갈았다.

청룡은 복잡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한성을 향해 팔을 뻗었다.

인간들과 쉽게 정을 나누고 어울려 산 허울만 좋은 백호라는 신은 이 상황에서조차 자신들을 안타까이 동정하듯 바라보는 것 같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반려와 함께 죽여 백호의 힘을 가로채고, 나머지 현무와 주작까지 잡아먹어 진짜 신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런데 팔을 뻗어 힘을 내려는 순간, 청룡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사랑해요.”

단의 손에 청룡의 뒷덜미에 있는 역린이 뽑혀 나왔다. 역린을 뽑는 데 힘을 모두 쏟은 단의 팔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청룡은 바들거리는 손으로 뒷덜미를 더듬거리며 움켜잡다가 나머지 무릎이 풀썩 꺾였다.

“커헉…… 단아.”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닥에 쓰러지듯 앉은 단을 내려다본 청룡이 천천히 단의 손아귀에 들린 푸른 비늘 조각을 바라봤다. 그 손안에 파랗게 날 선 비늘은 점점 색을 잃어 갔다.

단의 얼굴이 온통 젖어 있다. 괴로웠지만, 어쩐지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단은 손을 들어 올려 청룡을 쓰다듬고 싶었다. 하지만, 자꾸만 힘없이 축 처지기만 했다.

진작에 이랬어야 했다. 다른 것을 잡아먹으며 흉포하게 날뛸 때마다 단은 그저 울었다. 그만하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청룡과 함께 있는 시간을 조금 더 늘리고 싶어 욕심부린 것이 이런 사달을 냈다.

지찬의 말처럼 자신은 너무 이기적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을 다치게 했고,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잘못 없는 신수들이 청룡의 발톱에 찢겨 나가고 먹힐 때마다 차라리 진짜 신이 벌을 주었으면 하던 바람도 있었다.

스스로 끊어 내지 못한 채 또 남의 손을 빌리고자 했다. 하지만, 신은 그리하질 않았다. 세상의 균형이 무너져 내려도 방관하고 또 방관했다. 매일 밤을 울며 기도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마치, 너 스스로 끊어 내라는 듯이.

진작에 이랬어야 했다.

결국에 단은 고개를 청룡의 가슴에 기댔다. 청룡이 그런 단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이제, 그만…… 해요.”

“다…… 단, 안 돼…….”

단은 날카롭게 뽑힌 역린을 겨우 들어 올려 아까 베인 상처에 깊숙하게 꽂아 넣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길 것처럼 들이쉰 단의 입에서 피가 울컥 터져 나왔다.

역린이긴 하나 청룡을 이루고 있던 하나였다. 마지막까지 함께이고 싶었다.

신이 사라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했다. 역린만큼은 제 썩은 몸과 함께했으면 했다.

역린이 뽑힌 청룡은 신으로서의 생이 끝났다. 멈췄던 단의 시간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 겨우 찔러 넣은 역린 덕에 자신의 목숨을 손쉽게 끊을 수 있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내 망설임이, 당신을 여기까지 망가뜨려 놨어.’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퍼부었다. 청룡의 스러진 몸은 조금씩 세상에서 지워져 갔다. 물방울로, 공기로, 바람으로 흐트러졌다.

결국, 허공에 기댄 단의 몸이 앞으로 풀썩 쓰러졌다.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비는 끊임없이 내렸다. 쓰러진 단의 몸을 삼키고 출렁였다. 탁한 물살이 휩쓸고 지나갔다. 파도가 치고, 해일이 밀려왔다.

세상의 마지막처럼 그렇게 모든 것을 쏟아붓고 집어삼켰다. 계속해서 집어삼키고, 집어 삼켜졌다.

지찬은 입을 틀어막고 주저앉았다. 한성의 힘에 이끌려 물살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왔지만, 단을 집어삼키는 파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흐읍…….”

벼락이 치고 천둥이 울렸다. 세상이 끝날 것처럼 어둡다. 탁하고 어두운 물살에 휩쓸리는 것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무서웠다. 누군가 눈앞에서 죽게 되리라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우리 서로 좋은 관계는 아니잖아요.’

‘그걸 우리의 책임으로 짊어지게 하진 말아요.’

어떤 식으로든 결단이 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는 아니었다.

‘우리한테까지 떠넘기는 건, 너무 이기적이지 않아요?’

죄송하다며 파리한 안색으로 가 버리는 단이 떠올랐다.

“흐윽…….”

“지찬아.”

떨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울고 있는 지찬을 끌어안았다.

이 와중에 한성에게 큰일이 없다는 것에 안심이 되는 저 자신이 싫었다. 한성의 품에 안겨 울고 있는 지금이 현실 같지가 않았다.

세상을 집어삼킬 것 같은 비는 순식간에 그치고, 아수라장이 된 도시만 남았다.

다행히 한성의 결계 덕분에 이 근방만 처참한 꼴이었다. 자칫 잘못 했으면 서방의 모든 길 위가 초토화됐을 게 뻔했다.

한성은 지친 지찬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여전히 흐느낌이 남아 있었다. 들썩이는 등을 토닥이며 한숨지었다.

“그대는 나쁜 꿈을 꾼 거야. 그리하자.”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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