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울렁거리고 거북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매번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아직 별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기도 했지만, 하루가 지날수록 자꾸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바깥을 나선 지찬은 어디서 느껴지는지 모르겠는 한기에 몸을 떨었다.
덥고 숨 막히던 여름은 지났다. 바람은 선선해졌고, 사람들의 옷도 조금씩 길어졌다.
그래 봤자 그날 이후로 몇 주밖에 지나지 않았다. 세상의 종말을 알고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지만, 막상 생각해 보면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느낌은 없다.
그저 꿈속에 울고 있는 자신을 봤으니 ‘내가 울어야만 하는 일’이 끔찍하게도 싫을 뿐이다.
그것이 만약에 한성과 관련된 일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그렇게 매달렸다.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자만하면서 뛰었다.
과정은 바뀌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일상의 작은 꿈이라도 가장 최악의 결과를 막아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바뀐다 한들 어느 것이 최악의 결과인지도 이젠 단언할 수가 없었다.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열 시를 조금 넘어가는 시간.
요즘은 다른 꿈은 꾸지 않고, 끊임없이 달리는 꿈이었다. 악몽 같은 그 시간, 숨이 차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도 멈추지 못했다. 달리면서 뒤를 돌아보지도 못했다. 고개를 트는 순간, 멈추는 순간 무언가에 잡아먹힐 것 같았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깨어나면 한성의 품 안이었다. 저를 바라보는 눈빛은 여전히 따뜻하고 걱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결국엔 회사에 사표를 내기로 했다. 천천히 일상을 정리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누군가의 압박이나 권유도 아니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했다.
한성과 그들이 있어 지찬은 지금의 ‘나’로 있을 수 있는 힘을 얻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예민한 신경은 온통 그곳에 머무르면서 일상을 살아 낼 자신이 없었다.
과거는 버리고, 미래를 받아들여야 하는 때라고 생각했다. 이젠 시끄러운 침묵 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품 안에서 만져지는 사직서를 옷 위로 툭툭 두드리고선 숨을 크게 내쉬었다.
* * *
그러나 순식간에 처리될 줄 알았던 지찬의 사직서는 여전히 팀장 자리 위에 놓여 있었다.
책상 위에 팔꿈치를 대고 손깍지 낀 채 한숨을 쉬던 남자가 결심한 듯 지찬을 바라봤다.
“휴가 다녀와. 연차 안 쓴 거 이번에 날짜 조정해 줄 테니까 머리 좀 식히고 와.”
“팀장님…….”
“나는 이거 못 받은 거야. 너 휴가 낸다고 위에서 욕먹어도 사직서는 못 받아줘. 요즘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좀 쉬다 와.”
며칠 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지만, 본능적인 감이 그렇게 말했다.
불안에 떨며 한성과 자신이 살아왔던 인간의 인생 모두 잡겠다고 버둥거리다 둘 다 놓칠까 봐 겁이 났다.
한고비를 넘겼다고 한들, 인간보다 더 긴 인생을 살아가는 지찬과 한성, 그리고 이제 자신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이들에게 또 다른 고비가 찾아온다면, 그땐 후회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 이르다 생각하긴 했지만, 퇴직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서요.”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키고 싶다. 물론, 갑작스레 사직서를 받은 팀장으로선 사직의 이유 중 제일 어이없고 황당한 이유라고 생각할 게 뻔했다.
그럴싸한 ‘개인적인 사정’에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는 말이 사회생활 수년 차 팀장에겐 젊은 대리의 철부지 소리라고만 느껴졌을 거였다.
“설 대리, 직업도 없이 어떻게 소중한 사람을 지킨다고 그래!”
멀쩡한 직업과 돈이 있어야 너도 살고 소중한 사람도 지킬 수 있는 법이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떠드는 팀장을 바라보던 지찬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팀장님은 어느 한순간에 누군가를 잃어 본 적이 있으세요? 만약에 그 미래를 팀장님이 알고 있다면 팀장님은 어떤 선택을 하실 건데요…….’
절대 이해 못 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속으로 삼켜 내는 말이 목구멍에 아프게 걸렸다.
눈을 내리깔고 입을 꾹 다문 지찬의 모습을 보던 팀장은 자신의 말에 수긍했다고 생각하고선 사직서를 그대로 서랍에 집어넣었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싶으면, 네가 힘이 있어야 하는 거야. 돈이든 지위든. 그러니까 며칠 쉬고 와. 그리고 지키면 돼. 설 대리가 요즘 많이 힘들어서 그래. 머리 좀 식히고 와.”
지찬은 그냥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자리로 돌아왔다.
팀장의 말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성과 엮이기 전까진 지찬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먼저 떠난 가족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 돈과 지위까지는 아니었지만, 남들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 내야 먼저 간 그들을 위로하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사회에 순응하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그런 것.
많은 생을 살아 내지 못했던 가족의 인생을 대신해서 보란 듯이 살아 내겠다고 다짐했던 순간부터는 멀쩡한 회사에 취직하고, 매달 월급을 받으며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는 것이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반려의 운명으로 안타깝게 헤어진 가족도 소중했지만, 현재 제 곁에 있는 한성도 소중했다.
새롭게 만난 그 인연도 귀했다. 너무도 오랜만에 느껴 보는 온기, 말소리, 타인의 손길들이 더없이 소중했다.
지금 곁에 있는 이들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 할 때였다.
요즘 꿈 때문에 생각이 많아졌던 지찬은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은 무엇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그저 손 놓고 바라보기만 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헤매는 것 같았다.
지찬은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가맹점에 다녀오겠노라 보고하고 나가는 지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팀장의 한숨이 깊어졌다.
그는 그저 서른둘의 치기 어린 반항이라고 생각했다.
* * *
매주 한 번씩 오는 이곳은 이젠 껄끄러운 장소가 되어버렸다. 단을 만났던 곳이고, 단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생각되자 의도하지 않아도 자꾸 떠올랐다.
가방을 고쳐 잡고 상가 안으로 들어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팔을 움켜잡았다. 센 악력이 아니지만 갑작스러운 손길에 놀란 지찬이 뒤를 돌아봤다.
“형…….”
전보다 핼쑥해진 단이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겨우 열었다. 지찬은 심장이 쿵쾅거렸다. 저도 모르게 잡힌 팔을 거세게 뺐다.
휘청이는 몸을 보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공포가 단번에 몰려왔다.
분명 보이는 것은 파리한 안색의 단뿐이었지만 정체 모를 냉기와 묵직한 공기가 손끝을 떨리게 했다.
“도망, 쳐요…….”
“뭐?”
그에게서 겨우 타고 넘어오는 목소리는 가늘었고, 위태로웠다.
“집으로 가요. 백호 님이 있는 곳, 으로요…… 하아.”
“무,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하얗게 질린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 맺혀 있다. 서 있는 것도 버거운 몸인 게 분명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백호 님의 집에서 나오지 말아요.”
한쪽 무릎이 풀썩 꺾인다. 단은 숨을 한참이나 몰아쉬면서 계속해서 말을 꺼냈다.
“빨리요. 빨리, 가요.”
“왜, 무슨 일인데 그래요. 괜찮은 거 맞아요?”
심상치 않은 단의 모습에 지찬이 허리를 숙였다.
“나한테서 떨어져요. 형, 보면…… 분명 죽이려 들 거예요.”
다가가려던 지찬의 몸이 움찔 떨렸다. 지금 무슨 소리를 듣고 있는 건지 정신이 혼미했다. 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났으며, 제게 하는 이 말의 의미가 대체 무얼 뜻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사람, 이제…… 이성을 잃었, 쿨럭, 어요. 하아…… 여기, 경계와 가까운 곳이라 금방 그가 올 거예요.”
자꾸만 무너져 가는 단을 바라보며 어쩌지도 못하는 지찬을 바라보고 바닥을 짚은 손으로 주먹을 틀어쥐었다.
“빨리 가요! 형을 보면, 그도 더는 망설이지 않을 거야. 이제 나 때문에 누군가 죽는 건 싫어요. 그런 힘으로 생을 잇고 싶지 않아요. 제발, 가요!”
멍청하게도 묻고 있었다. 왜냐니.
알고 있었는데도 다시 확실한 답을 원했던 거였다. 청룡이 저를 노리고 있다. 아니, 우리를 노리고 있다. 우리 모두를.
지찬은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신발이 바닥을 끄는 소리가 귓가에 아프게 박혔다. 쉽게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겨 그대로 뒤돌아 뛰어갔다.
불안함으로 심장은 터질 것처럼 쿵쾅댔다. 손을 뻗어 택시를 잡아탔다.
그러나 최대한 빨리 가 달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쾅, 소리와 함께 택시가 크게 들썩였다.
장난감처럼 너무도 쉽게 뒷바퀴가 들어 올려졌다. 그러고는 다시 제자리를 찾듯 굉음을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충격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앞 좌석 시트에 얼굴을 박았다.
낯설지만 익숙한 굉음과 충격이었다. 택시 보닛 위로 묵직한 무언가가 떨어졌다. 충격에 움직여지지 않는 고개를 들 생각도 못 했다. 지찬은 사고 회로가 정지되는 것 같았다.
그 충격에 정신을 잃은 기사는 핸들에 머리를 처박고, 그 무게에 짓눌린 경적은 ‘빠앙!’ 하며 거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앞 좌석을 움켜쥐고 고개를 옆으로 옮기자 택시 보닛 위를 밟고 서 있는 청룡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눈은 이미 빛을 잃은 상태였다.
인간의 생 앞에 대놓고 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형형하게 빛나는 푸른 기운의 빛이 그의 몸 전체에서 폭발하듯이 들끓고 있었다.
눈빛만으로도 제 목을 틀어쥐어 숨통을 끊을 것 같았다. 굳어 있던 지찬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었다.
발을 내딛는 순간 온 힘을 다해 뛰어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에게 잡히는 순간, 모든 게 엉망이 되어 끝날 거라고.
처음 겪어 보는 낯설고 날카로운 두려움 앞에서 무릎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청룡은 차 문을 열고 나오는 지찬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망갈 수 있다면, 도망가 보라는 듯이.
맹수처럼 천천히 보닛을 내려와 고개만 지찬을 향해 돌렸다. 사람의 모습이었지만, 그의 한쪽 팔은 기이한 형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푸른 비늘이 가득했다. 마치 용의 발 같기도 했다.
기괴하다고 느낄 만큼 커다란 손과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푸른 비늘에선 냉기보다 더 차갑고 불안한 빛이 울렁거렸다.
문을 열고 선 지찬은 그 공포감에 짓눌려 발걸음을 돌리지도 못한 채 섰다.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고 이를 악물었다.
어느새 다가온 그의 반려가 청룡에게 달려들어 껴안았다.
“그만요. 이제, 그만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길거리는 사람들의 비명과 가로막힌 차들에서 나는 경적으로 가득했다.
혼란 그 자체였다.
두려우면서도 빙 둘러 처음 보는 낯선 존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엔 호기심이 가득했다.
“영화 찍는 거야?”
피식, 웃음이 났다. 누구는 지금 목숨줄이 끊길까 봐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참 태평했다. 지찬은 뒤로 돌아 있는 힘껏 뛰었다. 가방은 버린 지 오래였고, 주머니에 있는 휴대전화를 찾으려고 바지를 더듬거렸다.
“제발!”
떨리는 손을 주머니에 넣으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겨우 잡은 휴대전화의 버튼을 눌러 힐끔 바라봤다. 그리고 익숙한 번호를 찾아 1번을 누르려는 찰나,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 지찬이 행인과 부딪혀 휴대전화를 놓치고 말았다.
뒤를 돌아보기가 무서웠다. 익숙한 일상을 걷던 행인들의 표정은 점점 경악으로 물들었다. 싸늘한 기운이 등을 덮쳤다. 조금이라도 힘을 빼고 속도를 늦추면 그대로 잡아먹힐 것 같았다.
‘제발…….’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길이 있는 곳을 향해 거침없이 달렸다. 위를 바라보며 경악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지나쳐 갔다.
지찬은 이를 악물고 계속해서 달렸다.
아무것도 없다. 손을 내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성을 부르고 싶지만, 유일한 연락 수단인 전화까지 놓쳤다. 아니, 오히려 휴대전화를 놓친 게 다행이다 싶었다.
그날의 불안한 꿈, 바로 오늘이라면. 청룡을 계속 이끌어 한성과 멀리 떨어지게 만든다면.
그러면 그렇게 자신이 울어야 했던 일이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땀이 쏟아지고 심장은 곧 터질 것처럼 온몸을 울렸다. 숨이 목 끝까지 차오르고, 심지어 입안이 바싹 말라 침도 삼켜지지 않았다.
뒤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달리던 지찬의 눈에 파란빛이 건물에 반사되어 보였다. 고개를 살짝 들어 저 멀리 앞에 있는 높은 빌딩을 바라보자 그 유리창에 청룡이 비쳤다.
그는 이미, 본체를 드러냈다.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는 하늘 위에 솟아올라 숨차게 달리는 지찬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달리던 발걸음을 서서히 멈췄다. 뛰어 봤자 소용이 없었다. 저 커다란 본체에겐 지찬의 뜀박질이 하찮은 벌레만도 못하게 보일 터였다.
지찬은 뒤를 돌아 하늘에 있는 청룡을 올려다봤다. 숨을 토해 내듯 몰아쉬면서 비현실적인 존재와 대치했다.
‘말도 안 돼…….’
인간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제가 다스리는 구역이 아닌 남의 구역까지 침범한 자가 그 말까지 고분고분 들으리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