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재순은 오른손을 다친 이유로 강제적인 휴가를 보내고 한성이 주방일을 맡았다.
처음에 자신이 하겠다며 두 팔 걷고 나섰을 때 지찬은 반신반의하긴 했지만 의외로 꽤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한참이나 웃었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앞치마를 메고서 주방을 누비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재순이 입고 있던 앞치마라 분홍 꽃무늬가 잔뜩 들어간 그것은 한성과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미스매치였달까.
한성이 국자를 들고서 작은 종지에 국물을 조금 담아 지찬에게 건네주자 지찬이 맛을 보고 ‘오케이’를 받으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마저도 일상에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며칠간 이어진 서로 간의 소꿉놀이 같은 주방일은 어쩐지 더 친밀해진 기분이 들었다.
지찬도 돕고 싶긴 했지만, 혼자 해 먹는 거는 라면과 계란 프라이가 전부였던 터라 그냥 두 손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성이 원하지도 않았고 말이다.
가능하면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곱게만 살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것을 보고 지찬은 쑥스러워 뒷덜미를 긁적였다.
“하지만, 여기서 손에 물 안 묻힌다고 내 손에 물이 아예 안 묻을 순 없는데요.”
“그리고 그대는 요리에 별 자질이 없잖으냐.”
“그렇죠.”
“그럼 할 수 있는 내가 하는 것이 맞지.”
맞는 말이기도 했다. 먹는 입맛이야 미각이 살아 있다고 해도 어쩐지 제 손으로 음식을 만들려고 하면 똑같은 레시피를 보고 따라 해도 미묘하게 달랐다.
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맹숭맹숭한 그 맛은 어쩌다 한번 먹으면 먹겠지만 매일 먹으려면 꽤 곤욕일 게 분명했다.
“그럼 설거지는 내가 할게요.”
“바깥 일 하느라 바쁜데 그것도 내게 맡겨.”
“그래도 같이 먹은 거잖아요.”
“그럼 차라리 외식할까?”
설거지시키기 싫어서 외식하자는 한성이나 그래도 설거지는 제가 하겠다고 나서는 지찬이나 둘의 고집을 꺾을 이는 아무도 없었다.
끼니는 잘 챙겨 먹나 걱정이 된 해가 찾아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돌아갔다.
결국, 지찬에게 두 손 두 발 다 든 한성이 설거지하는 지찬의 뒤에 찰싹 붙어 혼쭐이 나기도 했다.
“그냥 나가서 차 좀 들고 있어요.”
“난 차보다 이게 더 좋아.”
“내가 불편하니까 그렇죠.”
“두 손은 자유롭지 않으냐.”
“두 손만 자유로우면 뭘 해요. 지금 덩치 산만 한 호랑이가 등에 매달려 있는데.”
“그럼 내가 설거지를 좀 도와줄까?”
등 뒤에서 손을 뻗어 지찬이 들고 있는 컵을 빼앗으려다 손등을 꼬집혔다.
“아야.”
“안 아프면서.”
“마음이 아픈 게지.”
“하…….”
“어서 호, 하고 좀 달래 주거라.”
지찬은 한성의 손등에 물을 끼얹어 묻은 거품을 씻어주고는 제 손도 닦은 채 뒤 돌아 한성을 마주 봤다.
그는 그 모습에 정말 ‘호’ 해주려나 싶어 제 가슴을 톡톡 두드렸다.
“여기, 여기 마음이 아파.”
지찬은 한성이 톡톡 두드리는 가슴께로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다가 이빨로 콱 깨물었다.
“윽!”
깨물린 곳을 움켜잡으며 미간을 살짝 찌푸린 한성을 새침하게 노려본 지찬이 이를 갈며 일갈했다.
“한 번만 더 설거지하는 거 방해하면 진짜 각방이에요!”
그 말에 시무룩해진 한성이 얌전히 소파에 앉아 차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어쩐지 조금 처진 뒷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은 지찬이 마저 남은 설거지를 끝내려고 다시 물을 틀었다.
뽀득뽀득 설거지하는 와중에도 방금 봤던 한성의 뒷모습이 생각나 자꾸만 웃음이 지어졌다.
참아 보려고 입술을 감쳐물고 헛기침을 하는데도 마치 숨기지 못하는 재채기처럼 웃음소리가 삐져나왔다.
‘한성이 들으면 삐칠 텐데.’
싱크대에 물기를 닦아 내고 손까지 수건에 톡톡 두드려 마무리했다. 가끔 아이같이 삐치는 한성을 어떻게 달래 줘야 할까 고민하면서 뒤로 도는 순간, 누군가 심장을 움켜쥐는 것처럼 숨이 턱 막혀왔다.
“허억!”
지찬은 왼쪽 가슴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은 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쿵, 쿵, 쿵 심장은 살아 있다고 격렬하게 뛰고 있는데도 마치 누군가 심장을 움켜쥔 것 같은 고통에 가는 숨만 색색 몰아쉬었다.
‘혼자 행복해요?’
쿵.
‘그는 당신을 계속 기만하고 있어.’
쿵.
‘왜 나만 버려져야 해.’
쿵.
“아…… 아니야.”
‘맞아. 모두 날 버렸어. 형도 지금 행복해 죽겠다고 날 조롱하고 있는 거잖아.’
쿵.
대체 너 누구야.
“쥐새끼가 어디 갔나 했더니 감히 내 반려 몸속에서 기생하고 있었구나.”
익숙한 음성에 겨우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자 한성이 무서운 눈빛으로 지찬을 쏘아봤다. 정확히는 지찬 안에 있는 어린아이의 영혼이었다.
“너 혼자서 이 몸에 들어올 생각을 한 것은 아닐 테고.”
천천히 무릎 꿇어 눈높이를 맞춘 한성이 손을 들어 지찬의 두 눈을 가렸다.
계속해서 답이 없는 영혼에 한성은 피식 웃었다.
“그래, 묻는다 한들 네가 대답할 의무는 없지. 하지만, 그곳에서 나와야 할 이유는 있어.”
눈을 가린 손에 작은 빛이 일렁이면서 지찬의 몸으로 조금씩 흡수되고 있었다.
“영악한 것이 깊숙이도 숨었구나.”
“하, 한성…….”
“쉬이…… 괜찮으니 조금만 기다리거라.”
이상한 느낌이 온몸을 타고 돌았다. 오싹하게 차가운 것이 가장 깊숙한 곳까지 샅샅이 훑어 내리는 것처럼 울렁이고 거북했다.
‘싫어! 날 가만히 내버려 둬!’
“네가 길을 잃은 것 때문에 가족들도 이승을 떠나지 않으려 해서 한참을 애먹이더니.”
‘뭐?’
“두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겠나? 정유년(丁酉年) 진월(辰月) 사일(四日) 십칠 시 사십구 분 사망, 사인은 사고사. 차 안에 있던 네 가족 모두 저승 입구로 인도되었다.”
‘그럴 리가…….’
“나와서 이야기하지. 네가 거기에 오래 머무를수록 나의 아이가 아파.”
‘날 빼내려고 수 쓰는 거잖아!’
“믿지 않는다면 억지로 끌어낼 수밖에.”
한성의 손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기운이 더 강하게 몸속을 돌고 있는 피까지 얼릴 기세로 휘몰아쳤다. 거친 숨을 내쉬던 지찬이 힘에 겨워 손을 들어 한성의 손목을 잡았다.
괴로워하는 지찬을 바라보던 한성의 입매가 잔뜩 굳어졌다.
“미리 말하지만, 내가 널 꺼낸 순간, 네 앞으로의 생도 모두 절멸이 될 것이다. 저승의 문턱도 밟지 못하고 이곳에서 소멸할 것이야. 그러면 네 부모도 형제도 다신 볼 수 없겠지.”
그 말에 지찬이 움찔 떨었다.
‘안 돼, 아냐, 한성. 그건 아니에요. 그러진 말아요.’
지찬은 한성의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더 주어 매달렸다.
‘알잖아. 아이가 부모를 잃고 얼마나 힘든지, 당신도 알잖아요. 날 봐서 알잖아.’
가린 눈에서 물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는 한성의 마음도 썩 좋진 않았다. 지금 제게 중요한 것은 반려, 지찬 하나뿐이었다. 이깟 작은 영혼 하나가 제 반려의 마음에 기생해 성치도 않던 마음을 자꾸 파먹었을 생각을 하면 당장에라도 끌어내 찢어버리고 싶었다.
이 사실을 까마득하게도 모른 자신도 한심했다.
‘반려를 지키겠다고? 네가 이러고도? 겨우 마음속에 기생한 어린 영혼 하나 못 알아채고선.’
제 아이가 왜 살이 빠지는지, 왜 그리고 괴로워했는지, 왜 자꾸만 꿈을 겁내 했는지를 지켜보았으면서.
힘만 아무리 세면 무엇하다고. 더 세세하게 지켜보고 작은 하나라도 의심하고, 확인했어야 하는 것이었는데.
힘을 흘려보낸 지찬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아이의 영혼이 느껴졌다. 한성은 혹시나 지찬의 몸에 무리라도 갈까 싶어 최대한 조심스럽게 잡아채고 밖으로 끌어냈다.
순간 헛구역질을 하면서 힘들어하는 지찬의 등을 조심스레 토닥이고는 어느새 옆에 서 있는 관리인에게 명령했다.
“붉은 오랏줄을 매어 두거라. 이따 가마.”
여전히 답이 없는 그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작은 구 형태로 된 붉은 빛을 감싸 쥐고 밖으로 사라졌다.
“하…… 하아…… 욱…….”
“너무 괴롭거든 차라리 그냥 토를 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지찬이 한성의 팔을 잡아챘다. 헛구역질 때문에 힘들어 눈물이 새어 나오고 숨마저 헐떡이는데도 걱정스러운 눈빛이 역력했다.
치밀어 오르는 토기를 간신히 참아 가며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한성이 나지막하게 이야기했다.
“그 아이는 내가 저승까지 데려다주마. 네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하지 않으마. 그러니 제발 그 아이 걱정은 그만두고 네 몸부터 추스르거라.”
지찬을 부축해 2층으로 옮겨 자리에 눕힌 한성이 한참 곁에서 토닥이며 그가 곤히 잠들기만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진 지찬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넘겨 주고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 올려 준 채 밖으로 나섰다.
알진 못해도 지찬의 마음을 많이 갉아먹었을 게 분명했다. 악귀는 아니지만, 악귀만큼 영악하고 질이 나빴다. 사람의 마음 깊숙한 어둠에 기생해 있는 영혼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 어린아이 혼자서 꾸민 일은 아닐 게 분명했다.
잠깐의 빙의가 있어도 못 견뎌 하는 것이 사람의 몸이거늘, 그나마 반려의 몸이라 버텼을 게 분명했다. 몸이 견디더라도 마음과 정신이 온전치 못했을지도 몰랐다.
지찬이 저렇게 잘 버텨 준 것은 천운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한성이 주먹을 콱 틀어쥐었다.
생각 같아선 당장에라도 찢어 죽여 버리고 싶다.
안타깝고 너무도 아까워 손 하나, 말 하나도 조심할 수밖에 없는 제 반려에게 그만한 시련을 주었으면 그것은 더한 일을 당해도 싸다.
그 어떤 폭풍우가 와도 바람 한 점 없이 평온한 한성의 집 바깥에선 나무들이 사시나무 떨듯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오직 한성의 집에서만 거친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쉽게 진정할 수 없는 분노가 한성의 속에서 거칠게 요동쳤다.
* * *
붉은 오랏줄에 묶인 아이가 파들파들 떨며 한성을 올려다봤다. 말없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한성은 몇 분째 요지부동이었다.
“내가 네게 했던 말은 모두 진실이었다.”
낮게 어둠의 가장 끝까지 내리꽂는 듯한 한성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한낱 망자의 몸으로 신 앞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날, 너의 가족은 너와 같이 저승으로 인도될 예정이었지.”
한성을 바라보던 아이의 눈빛이 잔뜩 흔들렸다.
‘그럴 리가…… 없어요.’
“신의 이름으로 내가 거짓이라도 말한단 말이냐. 내가? 너에게? 뭐 때문에?”
‘모두 날 잊었다고 했단 말이에요. 날 잊고 잘 살아가고 있다고…….’
“네가 그리도 보고 싶어 하는 가족이 널 잊는 것이 그리도 억울한가.”
꼿꼿하게 우뚝 선 채로 아이를 내려다보는 한성의 눈빛은 세상 무엇보다 차가웠다.
“너를 잃은 아픔에 고통받고, 괴로워하고, 오로지 네 이름만 부르짖기를 바랐느냐.”
‘아…… 아니요…… 그런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할 말이 남아 있는 모양이구나.”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려 지찬이 잠든 2층의 창가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이기심에 나의 소중한 아이가 아팠어. 내가 말했지. 내가 했던 말은 모두 진실이었다. 네 앞으로의 생도 모두 절멸시킬 것이라고 했던 것도 모두 전부.”
그 말에 창백한 아이는 입술이 더 파리해지면서 덜덜 떨었다.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그저 살아 있는 몸을 통해 가족이 잘 살고 있는지 딱 한 번 확인하려고 했을 뿐이에요. 처음은 그런 이유였어요. 정말이에요…….’
“처음은 어떤 연유였다 한들 결과는 그렇지 않았지. 너는 내 아이의 가장 깊숙한 아픔까지 건드리며 함께 아프길 원했어.”
‘무, 무서웠어요. 혼자서…….’
“그만.”
창가에 머무르던 시선을 돌려 다시 아이를 바라본 한성이 날카로운 눈을 빛냈다.
“너를 그리 하라고 시킨 이가 누구냐.”
커다랗게 동공이 커진 아이가 시선을 피했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울먹이는 아이를 더 차갑게 내려다봤다.
“잘 선택해라. 망자인 너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것도 나, 세상에서 절멸시킬 수 있는 것도 바로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