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앞에서 수저를 들고 맛있게 밥을 뜨고 있는 한성의 얼굴이 어쩐지 개운해 보였다. 지찬은 그 모습이 또 우스워 피식 웃었다.
조금 늦게 내려간 한성과 지찬에게 밥과 국을 다시 따뜻하게 데워 준 재순은 일찌감치 방으로 들어갔다.
가만히 밥을 먹던 와중에 주방과 통하는 창고 옆에 포대 몇 자루가 놓인 것을 보고 지찬은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저건 뭐예요?”
“음?”
커다란 포대 자루의 정체를 묻자 한성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한번 퍼먹은 밥을 다시 푸고 입안에 욱여넣는 꼴을 보니 당황한 것 같기도 했다.
“뭔데요?”
“아…… 고추.”
“고추요?”
“응, 말린 고추.”
어쩐지 아까부터 매운 냄새가 나는 것 같더라니.
“근데 왜 저기다 꺼내 놨어요? 이모님이 꺼내 두신 건가?”
“내가 그랬어.”
말린 고추는 어디에다 써먹으려고 그러나 싶어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한성이 헛기침하며 물을 삼켰다.
“사실, 그대에게 각방 선언을 듣고 문을 다 잠갔어.”
“2층 방 전부요?”
고개를 끄덕이고 뒷덜미를 긁적이곤 난처한 웃음을 흘리는 한성을 보아하니 제가 없는 사이에 꽤 머리를 굴렸던 모양이었다.
“근데, 거실이 문제더라고. 그래서 말린 고추라도 널어 두면 잘 곳이 없으니 합방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김치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지찬은 그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금 저거 나랑 각방 쓰기 싫어서 수 쓴 거라는 거예요?”
“응.”
밥을 더 먹지도 못하고 육성으로 웃음이 터진 지찬이 한참이나 배를 잡고 웃었다. 얼마나 싫었으면 저렇게까지 했을까 싶기도 하고, 온종일 머리를 싸맸을 모습을 상상하고 나니 우습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
“아니, 그러게. 이기지도 못할 술은 왜 마셔선.”
“원래 주사는 없었단 말이지.”
“또 나 때문이에요?”
“아니, 아니. 그대 때문일 리가. 내가 문제야. 내가.”
깜짝 놀라 손사래를 치며 부정하는 한성을 보며 물을 한 모금 넘겼다.
“의왼데요.”
“뭐가?”
“한성이 그렇게까지 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 난 그냥 힘으로라도 납치해서 방에다 가둬 둘 줄 알았는데.”
그 말에 한성의 표정이 뜨끔해졌다.
물론, 그 생각도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혹여나 지찬에게 미움받진 않을까 염려되어 1차 고민에서 기각했던 방법이었다. 정 안 되면 그렇게 했겠지만 말이다. 아주 최후의 수단으로.
“진짜 그런 생각을 하긴 했나 보네요.”
“안 했다고는 하지 않겠어. 그래도 평화적인 방법을 찾아보려고 나름 애쓴 게야.”
그리고 그는 걸치고 있던 셔츠 주머니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 식탁에 얌전히 꺼내 놓았다.
방문을 모두 다 열어 본 게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와 닿지는 않았지만, 열쇠 꾸러미를 보고 나자 다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거 왜 이렇게 순순히 넘겨요? 내가 각방 쓰자고 하면 어쩌려고요.”
“반려 님이 그렇게까지 매정하진 않을 거라고 믿는 게지.”
아예 털어놓고 나니 시원해 보이는 한성의 눈빛이 지찬의 반응을 살피긴 했지만, 아까보단 덜 위축된 느낌이었다.
“흐음, 날 너무 모르는 거 아니에요?”
“지찬아…….”
필살기 나왔다. 한성이 부르는 제 이름에 약한 건 어찌 알고, 이렇게 잘 써먹는 건지.
물론, 그 필살기가 없어도 각방을 쓰려는 마음은 없었지만 이렇게 한 번씩 한성을 골려 먹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었다.
“가끔은 괜찮지만, 너무 자주 골리진 말거라. 내가 오늘 종일 어찌나 불안했던지.”
“알았어요. 빨리 마저 먹어요.”
내려놓았던 젓가락을 들며 웃은 지찬이 식사를 다시 시작했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재순의 음식은 정말 기가 막혔다.
특히나 격렬한 운동 후에 먹는 맛은 정말 꿀맛과도 다름없었다.
“밥 먹고 저거 다시 집어넣어요. 주방에 매운 냄새가 진동해요.”
“응.”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인 한성이 맛있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어둡게 내려앉은 바깥에 비해 이곳은 빛이 참 밝았다. 따뜻하고, 포근하고, 기분 좋은 공간.
그리고 마주 보고 앉은 한성까지.
바라보는 시선에서 건네는 말 한마디에서 나를 배려하고, 아끼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한성의 모든 것들이 지찬의 마음을 더 풍족하게 채워 줬다.
* * *
‘내 약과!’
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옆에 앉은 현무를 바라봤다. 어쩐지 원망스러운 눈빛이었지만, 대놓고 밉다고 하진 못하고 그저 작은 입술만 뾰로통하게 내밀 뿐이었다.
‘재순 씨한테 더 만들어 달라고 하자. 해야, 너도 저번에 함께 만들어 봤다며. 이젠 네가 직접 해보는 건 어때?’
‘그렇지만! 재순 씨 손맛은 못 따라가겠는걸요. 그래도 현무 님, 이걸 다 드시면 어떡해요!’
‘에이, 저번에 산삼주 네가 마지막 잔 마셨잖아.’
‘산삼주는 산삼주고요. 이건 약과잖아요.’
먹는 거로 한참을 투덕거리는 현무와 해의 뒤에서 재순의 비명이 들려왔다.
놀란 이들이 주방으로 한달음에 달려가자 재순이 손가락을 잡고 주저앉은 모습이 보였다.
‘어머, 죄송해요. 칼에 살짝 베였는데…….’
쥐고 있는 손가락에선 그녀가 말한 만큼 살짝은 아니었는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놀란 지찬이 ‘헉’ 하고 숨을 삼키는데 누군가 그의 몸을 흔들었다.
“……찬아, 반려 님.”
“어?”
눈을 뜨고 보니 옆에선 핸드폰 알람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고, 한성이 지찬의 어깨를 흔들며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꿈을 꾸느라 그리 앓는 게야.”
“아, 꿈…… 어…… 그냥 개꿈이요. 요즘 피곤한지 꿈을 꽤 꾸네요.”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며 안쓰러운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한성을 보고 지찬은 피식 웃었다.
“요즘 많이 바쁜 게야? 이리 피곤해해서 어찌 나가려고.”
“괜찮아요. 꿈일 뿐인데요. 어제도 푹 쉬었고 지금 컨디션 좋아요. 나 좀 씻을게요.”
휴대전화의 알람을 끄고 욕실로 향했다. 그런 뒤에서 준비하고 내려오라는 한성의 목소리를 들으며 문을 닫았다.
세면대에 비치는 제 얼굴을 한참을 바라보니 피부가 약간 까슬까슬해진 것 같기도 했다.
“흐음, 잠은 푹 자는 것 같긴 한데…… 아닌가?”
그는 요리조리 돌려 보며 바라보다 느긋하게 여유 부릴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유니폼이나 다름없는 정장을 챙겨 입고 1층으로 내려가니 오랜만에 해가 와 있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지찬을 발견한 해가 해맑게 웃으며 반겼다.
“반려 님!”
“해님,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바쁘셨어요?”
“별일 없으면 달이랑 있는 시간이 많긴 해요. 오랜만에 반려 님도 뵙고 싶고, 겸사겸사 약과도 떨어졌고…… 헤헤.”
“아, 달님도 잘 지내고 계시죠?”
그날 이후 만날 기회가 없던 달을 떠올리며 안부를 물었다.
그때 지찬이 달을 만나고 사라졌던 날 밤, 늘 평정심을 유지하던 달마저도 놀란 기색을 감추질 못했다고 전해 들었다.
괜히 걱정을 끼친 것 같아 미안했는데. 언제 주말에 한성과 한번 산책 삼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한 지찬이 해에게 다가갔다.
“그럼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망부석처럼 그러고 있어요.”
“달님답네요.”
그 말에 해가 히죽 웃고는 벌떡 일어났다.
“재순 씨가 오늘 같이 약과 만들자고 해서 왔어요. 저번에 어깨너머로 돕기도 하고, 배우기도 했는데 꽤 재미나더라고요.”
그때 이후로 약과 만들기에 재미가 들렸는지 내심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지찬 군! 여기, 이거 토스트 가져가요.”
재순이 주방에서 알루미늄 포일에 포장한 토스트를 들고 와 지찬에게 건네줬다.
처음 출근하기 시작한 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따끈한 토스트를 만들어 손에 쥐여 주는 덕에 배곯을 일 없이 든든했다.
“그럼 다녀올게요. 해님도 약과 많이 만들어서 가져가세요. 제 것도 조금만 남겨 주시고요.”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하자 해가 두 팔을 크게 벌려 아주 많이 만들겠다며 저만 믿으라고 큰소리를 쳤다.
한성이 다가와 가방을 챙겨 주고 살짝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정돈해 줬다.
“힘들면 언제든 연락해. 데리러 갈 테니까.”
“알았어요. 이따 봐요.”
가방을 건네주는 손끝이 닿았다 떨어지는 것이 아쉬워 한성이 손을 뻗어 다시 지찬의 손을 움켜잡았다.
“무리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아요.”
지찬은 매일 한성과 재순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하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물론, 퇴근 후에 늘 반겨 주는 이가 있는 따뜻한 공간도 좋았다.
집을 나서며 문 앞에서 말없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관리인에게도 꾸벅 인사를 했다.
사람이 아니라고 했던 것 같은데, 평범한 아저씨 모습을 하고선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해가 몇 번이나 말을 거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지찬이 모르는 방법으로 대화를 나누는 건지 말소리는 들을 수가 없었다.
가볍게 열리는 육중한 문을 벗어나 길을 걸으면서 집을 나올 때 한성이 꼭 쥐었던 손을 펴서 바라봤다.
요 며칠 자꾸 피곤해하는 지찬을 보며 데려다주겠노라고 했던 한성의 걱정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 승용차에 타는 것은 조금 겁이 났다. 괜찮은 것 같다가도 한 번씩 몸이 경직되는 느낌이 있어서 가능하면 타고 싶진 않았다.
일하면서 타야 하는 버스나 택시는 어쩔 수 없는 거였지만, 가장 소중한 사람과 함께 타는 것은 너무 두려웠다.
* * *
본사에서 직접 관리하는 가맹점이기 때문에 어느 곳이든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지찬의 외근은 잦은 편이었다. 점주의 불만이나 요구 사항도 들어줘야 하고, 모든 것을 수용하지 않더라도 들어주는 척이라도 해야 서로 간의 불화가 극대화되지 않는다.
그걸 잘 알고 있어서 지찬은 본사 사무실보단 가맹점을 도는 일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입사했을 때부터 맡아 왔던 가맹점의 점주와 함께 이야기도 나누며 식사를 끝내고 나오자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상가 1층까지 내려와 쏟아지는 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팔을 톡톡 건든다.
“형.”
“어? 단이 씨.”
여전히 파리한 안색으로 지찬에게 아는 척하는 단을 바라보며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또 무슨 일이려나.
“한번 뵙고 싶긴 했는데, 이렇게 또 만나네요.”
“아…… 무슨 일로?”
그러고 보니 저번에 단과 처음 마주쳤던 그 건물이었다.
“그냥, 그때 죄송했어요. 그 말 하고 싶어서…….”
“아뇨. 뭐, 지난 일이고. 별일 없었으니 다행이지만.”
시무룩하게 말끝을 흐리는 단을 바라보다 지찬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일부러 형 찾아다닌 건 아니에요. 저 여기에 학원 다니거든요.”
“그렇구나. 이제 끝난 거예요?”
“네, 비도 오고 컨디션이 별로라 일찍 들어가 보려고요.”
“그러게요. 비가 다 오네. 쉽게 그칠 것 같진 않은데.”
단이 메고 있는 화구 통을 보니 이 건물 3층에 미술학원이 있다고 들은 것이 생각났다.
머리도 샛노랗고 피어싱까지 있는 모습에 소위 말하는 날라리 같은 부류의 아이가 아닌가 생각도 했었지만, 역시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없는 거였다.
대책 없는 듯했던 그의 지난날의 과오를 생각해 보자면 화가 날 만도 했지만, 어쩐지 단의 얼굴을 보니 쉽사리 화를 내기가 어려웠다.
아마도, 단의 아픔을 알아서일까.
“어머, 설 대리! 우산 가져가!”
그때 방금 밥을 먹고 헤어졌던 점주가 뛰어와 장우산을 건네줬다.
“비가 이렇게 오는 줄도 몰랐지 뭐야.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다시 돌아오지, 여기서 뭐 했어.”
“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죠.”
“아유, 정말 대책 없어. 이 비 다 맞았다간 감기 걸려요. 자, 이거 쓰고 다음엔 기쁜 소식 두 배로?”
“이거 제가 정말 들고 가도 되는 거 맞나요? 어쩐지 부담되는데요.”
지찬은 장난스럽게 받아치는 자신의 팔을 툭 치고 인사하며 돌아가는 점주를 바라보다 단을 쳐다봤다.
“우산 없으면 근처 정류장까지나 편의점까지 같이 가요.”
“괜찮아요.”
“아프다면서. 비 맞고 더 아프려고 그래요?”
“감사해요…….”
아마 제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 거절했겠지. 하지만, 아프다는 사람을 그냥 두고 발걸음을 옮길 만큼 냉정한 성격이 못 됐다. 그렇다고 더 세심하게 챙겨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본은 하고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커다란 우산 안에 남자 둘이 들어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주저하던 단이 앞에 지하철역까지만 부탁한다는 말을 하자 지찬은 끄덕이며 대신 답하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오 분도 걸리지 않아 지하철 입구에 다다르자 단이 한숨을 푹 쉬고 지찬을 바라봤다.
“형, 저 그때 했던 행동은 잘못된 거 알아요. 하지만, 그때 했던 부탁은 진심이에요. 지금도, 여전히.”
“단이 씨, 우리 서로 좋은 관계는 아니잖아요. 그런 일이 생긴다면 당연히 그럴 테지만, 그걸 우리의 책임으로 짊어지게 하진 말아요. 옆에 있는 단이 씨가 막아요. 모든 잘못과 책임을 우리한테까지 떠넘기는 건, 너무 이기적이지 않아요?”
지찬의 말에 움찔 놀란 단의 얼굴이 더 파리해졌다.
“그런 의미는 아니었어요. 그냥…… 그냥…… 죄송해요.”
무언가 더 말하려던 단이 입술을 짓이기고는 꾸벅 인사하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지찬의 어깨에서 힘이 쭉 빠졌다.
‘내가 과연 저 사람의 입장이라면.’
청룡이 과연 얼마나 큰 욕심을 부리고,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안다고 해도 모르겠다. 저 아이가 아닌 이상은 제가 모든 걸 이해하기는 어렵겠지.
발걸음을 돌려 다시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어가는 지찬의 뒷모습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본사로 돌아가 보고서 작성을 하고, 개발팀에서 나눠주는 신메뉴 샘플을 맛보고 평가하는 회의 시간도 진행했다.
어느 부서든 마찬가지지만 가맹점 점주와 가장 자주 만나며 실 메뉴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영업팀이었다.
어떤 맛의 차이가 있는지 또는 메뉴의 추가나 감소로 인해 늘어나는 손실 또는 이득에 관한 부분에 대해서도, 점주를 얼마나 잘 설득하느냐에도 달린 문제고 말이다.
정말 비가 와서 온몸이 처지는 건지 퇴근 시간이 다 돼가자 지찬은 녹진하게 퍼지는 기분에 책상에 머리를 박은 채 한숨을 쉬었다.
“설 대리, 요즘 살이 왜 이렇게 빠져? 휴가 다녀오고서 무슨 일 있었어?”
“아뇨. 그냥 자꾸 피곤하네요. 쉬다가 일하려니 그런가?”
“맞아. 나도 그러더라. 근데 자기는 휴가 동안 살이 쪽 빠져서 와서 얼마나 놀랐다고.”
“저 그렇게 빠졌어요?”
“응, 잘 챙겨 먹고 있는 거지? 귀찮다고 집에 가서 인스턴트나 라면 같은 거 먹으면 몸 상해.”
“아녜요. 요즘 정말 잘 먹고 있어요.”
“그럼 다행이긴 한데, 살이 너무 빠지니까 괜히 걱정된다. 어디 아프진 않고?”
“네.”
살이 그렇게 빠졌나? 매일 보니 잘 모르겠던데. 손을 들어 얼굴을 매만지자 볼살이 조금 들어간 것 같기도 했다.
재순이 차려 주는 밥도 정말 잘 먹고 있고 오히려 혼자 살 때보다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은데, 지찬은 조금 의아했다.
‘아, 하긴. 거의 매일 밤 한성에게 시달리다시피 하니까 몸이 안 남아나지.’
끝까지 가진 않더라도 가벼운 페팅 정도로 끝내는 때도 있으니 거의 매일 밤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꼭 손만 잡고 자자고 하다가도 눈만 마주치면 입술을 빨아 대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그러다 보면 그게 자꾸 밑으로 내려가고.
얼굴이 화르르 타올랐다. 아무리 신혼이라지만 너무 심한데.
근데 이렇게 피곤하다가도 한성 곁에 눕고 나면 저도 모르게 그렇게 다가오는 것에 응해 버리니 스스로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좋은 걸 어떡해. 결론은 그거였다.
조금 피곤해도 좋은 걸 어떡해.
띠링, 소리에 핸드폰을 들어 보니 한성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회사 앞이야.]
배시시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눌러 담고 있자 ‘퇴근합시다’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 가방을 챙기고 나서는 발걸음이 아까와는 다르게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