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화 (41/60)

41화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를 한 기념으로 한성과 간단한 요기를 한 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핫도그 하나 사 먹는데도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얼굴에 몇 번이나 웃음을 삼켰는지 모르겠다.

집, 일. 정말 딱 두 가지밖에 몰랐던 모양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넌지시 물어보니 망자에 관한 일이라고 했다. 그 말에 지찬이 뜨악한 건 물론이고.

“망자요?”

“응, 간혹 길을 잃은 자들을 저승의 입구까지 안내해 주고.”

“저승? 그럼 귀신이요?”

“응. 그렇게들 이야기하지.”

“아…….”

안색이 파리해진 지찬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성이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말했다.

“왜? 망자가 무서운 게야?”

“공포 영화도 못 봐요.”

“아, 그건 사실상 꾸며 낸 이야기 아니냐.”

“그래도요. 그거랑 비슷하지 않겠어요?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놀라게 하고, 머리 풀어 헤치고 쿵쿵! 다가오고. 으으…….”

몸서리를 치는 흉내를 내는 지찬을 보는 한성의 표정이 어쩐지 난감하게 물들고 있었다.

“보는 자에 따라 다르긴 해. 망자를 볼 수 있는 이들은 모두 진실한 모습을 보곤 한데, 그것이 살아생전 고왔던 진실의 모습이거나 죽었을 때의 모습이거나.”

“일단은 사람이 아니라는 게 무섭다고요.”

“나도 사람이 아니지 않으냐.”

“그렇지만…….”

입을 모아 우물거리는 모습을 보던 한성이 한 손으로 지찬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들도 우리와 다를 게 없어. 해코지한다거나 하진 않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아, 물론, 저승에 가기 싫어 악귀로 변하는 이들도 종종 있긴 하지만…….”

“무서워하라는 거예요? 아니면 안심하라는 소리예요?”

“안심하라는 소리지. 내가 있지 않으냐. 무슨 일이 있거든 내가 꼭 지켜 주마.”

“가능하면 안 보는 게 제일 좋긴 하겠네요.”

한성은 조금 여유로워지면 함께 망자 산책하러 가자고 하려던 계획을 수정해야만 했다. 전부터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이길래 겸사겸사 제가 하는 일을 보여 주면서 함께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리도 무서워할 줄 알았다면.

“하아…….”

미리 알려 줘도 소용이 없었겠구나.

“왜요? 왜 그런 한숨을 쉬어요.”

“만약, 그대가 망자를 볼 수 있다면.”

“그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됐거든요.”

“으응…….”

지찬의 단호한 거절에 말을 삼킨 한성은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골똘히 고민하고 있었다.

평생을 안 보고 살 순 없는 일이었다. 대게 반려들이 신이 하는 일들을 돕거나 비슷한 성향의 힘을 가지게 되는 터라 지찬도 마찬가지로 망자가 눈에 보이기 시작할 게 분명했다.

“어, 저기 할머니…….”

한참 생각에 빠진 한성을 부르는 지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딘가를 가리키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지찬을 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할머니,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계속 같은 자리만 돌고 계시는데…… 어디 아프신 거 아닌가? 길이라도 잃어버리셨나.”

“아…….”

그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망자였다. 지찬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한성의 눈엔 잔뜩 썩어 부패된 몸뚱이를 절뚝거리며 같은 자리를 배회하는 망자였다.

기겁하며 놀라는 게 아닌 걸 보니 아무래도 살아생전의 모습으로 비치는 것 같긴 했지만, 금방이라도 달려가 말을 걸 것 같은 지찬의 허리를 꽉 움켜쥐었다.

“왜요? 날이 더워서 밖에 오래 계시면 큰일 나요. 근처 지구대에라도 모셔다드려야죠.”

“어디 모셔다드리는 건 내가 할 테니 그대는 집으로 돌아가.”

“여기 지구대 어디 있는지 알아요?”

“응.”

지구대 말고 저승 입구는 어딘지 알고 있다. 아마 저게 망자라고 말을 했다간…… 어떤 반응을 할지 내심 기대도 되긴 했지만, 고운 반려 님의 심장을 떨리게 하는 건 자신만으로도 충분하니 말을 아꼈다.

여전히 못 믿겠다는 듯한 눈초리로 함께 가려는 지찬을 등 떠밀어 보내고서 망자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걸어가는 지찬을 힐끔 바라보고 기운을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그러자 움찔 반응하는 망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한성을 쳐다봤다.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어디를 바라보는지도 모를 시선은 느낌만으로 한성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게 했다.

관절이 모두 기이하게 꺾인 채 겨우 절뚝이며 걸음을 옮기던 그것은 뒤통수가 전부 날아가 있었다. 이렇게 그들의 죽음의 순간을 마주할 적에는 매번 씁쓸하기만 했다.

“그대가 머물 곳이 아니야.”

“……가야 합니다…….”

“갈 곳은 정해져 있지.”

“……나의 아이가…… 울고 있어요…….”

“그대의 아이는 이미 세상에 없어.”

“왜죠……?”

눈을 한번 깜빡거린 한성이 망자의 과거를 살폈다.

젊은 시절 아이를 잃은 충격으로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여자, 병원과 집을 오가며 마음을 치료했지만, 그녀는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결국, 죽지도 못하는 목숨줄을 겨우 이끌어 오다 자살.

슬하에 아이가 둘은 더 있었지만, 그들을 모두 배려하기엔 상처와 충격이 너무 컸던 터라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고 살아왔던 젊은 날의 인생. 그리고, 지친 남편과 아이들이 모두 떠나자 혼자 남아 외로움과 고통에 몸부림치다 결국.

“그대의 아이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마.”

미간을 살짝 구긴 한성이 천천히 망자에게 다가갔다.

“수고 많았구나. 고통과 번뇌의 인생을 살아 내기가 참으로 버거웠을 텐데.”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잊고, 가장 강렬했던 무언가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는 망자들은 늘 이렇다.

지찬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모두 느끼고 알아가야 한다는 것.

그것은 저 하나면 족했다. 자신의 고운 반려 님은 그저 내 품 안에서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살기를 바랐다.

망자의 코앞까지 다가간 한성의 주변으로 거친 바람이 몰아쳤다. 그리고 망자와 함께 사라졌다.

멀찍이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지찬이 혀를 찼다.

“저거, 저거. 또 힘을 막 쓰네. 나이 많으신 분 멀미하면 어쩌려고.”

순식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울렁거렸던 지난날의 경험을 떠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멈췄던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향하는 와중에 지찬은 문득 기시감이 느껴졌다.

“근데, 왜 갑자기 일반인에게 힘을…… 쓰지?”

게다가 뙤약볕에 선 사람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림자도 보질 못한 것 같았다. 한성의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 겹쳐지며 못 본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려 해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조금 전의 일인데도 얼굴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에이, 괜히 한성이 망자 얘기 같은 걸 꺼내서.”

어쩐지 서늘하게 와 닿는 공기에 그는 두 팔을 문지르며 좀 더 서둘러 걸었다.

* * *

지찬이 들어오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한성이 집에 도착했다. 소파에 앉아서 몸을 웅크린 채 무언가에 열중하는 지찬의 모습을 보고 천천히 다가갔다.

“나 왔는데.”

“아, 왔어요. 핸드폰 설정 좀 하느라.”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을 텐데도 휴대전화를 만지느라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건성으로 인사하는 지찬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한성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설지찬’ 이름 석 자를 입력하고 번호를 저장하는 모습을 옆에 앉아서 구경하던 한성이 이내 지루한지 몸을 크게 펴 기지개를 켰다.

“이게 카우 톡이라는 건데요. 메시지보다 더 빠르고 편해요.”

“으음.”

“여기 봐봐요. 이거 노란 거를 누르면 이렇게 뜨거든요? 그럼 날 누르면 채팅창이 켜져요. 그리고 요 밑에 눌러서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을 적는 거예요.”

‘안녕’ 하고 두 글자를 친 지찬이 전송 버튼을 누르자 텅 빈 화면에 글자가 올라갔다. 그러자 지찬의 핸드폰에서 ‘카우’ 하고 이상한 소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 자, 여기 나한테 이렇게 메시지가 온 거 보이죠?”

지찬이 똑같이 따라 해보라며 한성에게 핸드폰을 건네줬다. 방황하는 손가락이 허공을 몇 번 어설프게 돌다가 이내 착실하게 수행했다.

“잘하네요. 켜고 끄는 건 이 버튼 누르면 되고요. 전화는 여기 수화기 모양 누르면 되는 거예요. 알겠죠?”

“응.”

버튼을 눌러 전화를 걸기 시작하자 지찬의 핸드폰에서 경쾌한 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의 액정 화면에 ‘한성’이라고 써진 글자와 제 핸드폰에 ‘설지찬’을 보고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구겼다.

“이거, 못 바꾸나?”

“뭐요?”

“설지찬. 한성.”

“이름요? 바꿀 수는 있는데, 왜요?”

“사랑스러운 반려 님이라고 해줘.”

“에?”

낯뜨거운 한성의 말에 지찬이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걸 제 손으로 어떻게 고쳐 준단 말인가.

사랑스러운 반려 님이라니.

“시, 싫어요.”

“왜?”

“그냥요. 그냥 이름이 제일 무난해요.”

“서글프군.”

“아, 또 왜요.”

“사랑스러운 것을 사랑스럽다고 표현도 못 하다니. 이보다 더 서글픈 일이 어디 있겠느냐.”

“홍길동이세요? 그냥 이름 석 자 제대로 부르라니까 말이 많아요. 아, 비켜요. 화장실 가게.”

슬쩍 기대어 안는 한성을 밀어내고 화장실로 도망간 지찬이 얼굴을 부여잡았다.

조금 시무룩해진 얼굴을 보니, 해줄까, 하고 마음이 살짝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런 낯뜨거운 짓은 도저히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정 하고 싶으면 본인이 알아서 하겠지, 싶어 올라오는 열을 식히고 밖으로 나갔다.

커다란 덩치로 제 손바닥만 한 핸드폰을 들고선 여기저기 쿡쿡 찔러 보는 모습을 보며 지찬이 미소를 지었다.

‘저럴 때 보면 귀엽단 말이야.’

“그러면 나는 귀여운 호랑이 님으로 해줘도 괜찮아.”

“망할 호랑이라고 할까 보다.”

덜컹.

삐뚤게 서서 한성의 뒷모습을 노려보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우, 다사다난한 백호의 반려 님. 오랜만이에요?”

“아, 현무 님.”

두 손엔 어디서 꺾었는지 모를 나뭇가지 두 개와 붉은 실 두 개를 들고 들어오는 모습을 지찬은 가만히 바라봤다.

“넌 또 왜…….”

불청객의 등장에 한성의 이마가 와락 구겨졌다.

“와, 그렇다고 너 너무 인상 쓴다. 내가 두 사람을 축하하는 의미로 이렇게 소나무랑 대나무 가지까지 꺾어 왔는데.”

“그건 왜?”

“원래 혼례할 때 소나무랑 대나무 가지에 홍실, 청실을 걸친다잖아. 근데 둘 다 남자니까 청실 두 개로 준비했어.”

나 잘했지? 하는 듯한 표정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오는 현무를 바라보며 지찬이 눈을 도로록 굴렸다. 오늘도 시끌시끌하겠구나. 곧, 해님도 오실 예정인가 보다.

아니나 다를까 뒤이어서 해가 급하게 뛰어들어 왔다.

“표주박을 못 구했어요. 심지어 원앙 잔도 없더라고요!”

“에이, 그냥 술잔으로 해.”

“그래도 가능하면 표주박 한 짝이 더 좋은데 아쉬워요.”

대체 무슨 말을 나누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지찬이 한성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이게 다 뭐예요?”

“아, 둘이 오늘 합환주라도 한잔해야 하지 않겠어요? 초야는 이미 치렀지만 그래도 큰일 겪으셨으니 더 돈독해지라고 준비했죠.”

“네가 꺼져 주면 더 돈독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으르렁거리는 한성의 낮은 목소리에 현무가 입을 쭉 내밀었다.

“이런 것도 친구라고…… 흑…….”

“괜찮아요, 현무 님. 하루 이틀도 아닌데 이제 적응하셔야죠.”

그 옆에서 토닥거리는 해가 더 무서웠다.

부산스럽게 빈 병을 찾아 꺾어 온 가지를 꽂고 청실 두 개를 걸치고선 이젠 술이 없냐며 사방을 뒤적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너 술 마시려고 왔지?”

“어?”

“헤헤, 들켰나 봐요. 현무 님.”

“하아…….”

“야, 내가 다 들었어. 엄청 귀한 술 있다면서? 그런 건 이런 날 마셔 줘야 예의지.”

“대체 누구를 위한 예의인데?”

“수울?”

기가 막힌 한성이 고개를 들어 한숨을 내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귀한 술’을 찾느라 분주했다. 그 옆에 지찬은 현무와 해가 돌아다니는 걸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때 콧노래를 부르며 들어오는 재순을 보고 격하게 반기던 두 사람이 손 하나씩 붙잡고 주방으로 이끌며 ‘술’은 어디에 있냐며 마치 뒷거래라도 하는 듯 속살거렸다.

어차피 다 들리는데.

두 눈을 깜빡이며 끌려 들어간 재순이 주방에 들어서면서 무슨 소리를 들은 건지 기분 좋게 웃는 게 들려왔다.

“원래 늘 이랬어요?”

“응. 근데, 그대가 오고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하구나.”

정작 이 집의 주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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