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반려가 아니라니?”
지찬의 말에 단이 제 옷소매를 걷어 무언갈 보여 줬다. 팔을 휘감은 것은 조금 위협적으로 보이는 청룡의 각인 증표였다. 푸른 빛이 돌고 있는 그것은 어쩐지 금방이라도 흉포하게 날뛸 것 같은 모습이었다.
“반려지만, 반려가 아니에요.”
그리고 고개를 조금 숙여 한참이나 무언갈 생각하는 듯했다.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형이 깨어났으니 그는 이미 알고 있을 거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어.”
“나는, 그가 나를 포기했으면 좋겠어요.”
지찬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단을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봤다. 자신을 해칠 것 같진 않은데, 자꾸 몸을 타고 오르는 소름 끼치는 위화감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여기, 이곳에 암 덩어리가 자라고 있어요.”
“뭐?”
단은 아까 움켜쥐던 가슴을 툭툭 치면서 정말 가볍게도 말했다.
“난, 반려가 안 되는 운명이었어요. 나는 죽었어야 했거든요.”
“그게, 뭐야……?”
“반려는 윤회를 거듭해요. 반려의 힘은 그대로, 그 힘을 실을 육체는 윤회를 거듭하죠. 형도 그 힘을 가진 껍데기는 수십 번의 윤회 끝에 완성된 육체일 거예요. 우리는 그렇게 말해요. 미완성과 완성.”
단은 자신을 가리키며 미완성, 그리고 지찬을 가리키며 완성이라고 했다.
“그는 더 큰 힘을 원했어요. 그래서 자신의 반려를 계속해서 찾아다녔죠. 미완성인 육체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어요. 자신의 본래 힘만 얻을 수 있다면.”
“…….”
“우리의 시간은 각인과 각성 이후부터 멈춘다는 걸 알고 있죠?”
고개를 끄덕이는 지찬을 바라본 단이 일어나 어둡게 쳐 놓은 커튼을 활짝 젖혔다. 창밖은 아직도 한밤중이나 다름없었다.
“내 몸도 멈췄죠. 인간의 몸이니까요. 내 병도 멈춘 거예요. 아니, 하…… 뭐랄까, 더 자라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상태가 된 거죠.”
등을 돌린 채 어둠이 짙게 깔린 바깥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을 했다.
“삼 년이에요, 벌써. 근데 난 이미 지쳤어요. 이런 몸으로 영원과 가까운 삶을 살아간다는 거. 짐작이나 해봤어요?”
“……수술은?”
“제가 말했잖아요. 전 죽었어야 했다고. 이미 전체로 퍼진 암은 손쓸 수도 없는 상태였어요. 수술도 불가능하죠. 만약 가능하다 해도 타인에 의해 갈라진 육체, 그리고 어쩌면 식물인간처럼 누워서만 지낼 거예요. 운이 좋으면 죽을 수도 있겠죠.”
자기 죽음을 말하는 데 운이 좋다니, 단의 말에 지찬이 어딘가 한 방 크게 얻어맞는 듯했다.
“너 설마…… 이상한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지?”
“걱정하지 마세요. 형을 헤칠 생각은 없어요.”
“그런 걸 묻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건 너도 알잖아!”
“……눈치가 빠르네요.”
“스스로 죽을 수 없으니 다른 사람 손을 빌리겠다 이거야?”
“네. 그는……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하거든요.”
“너는?”
“저도요. 그런데요. 사랑 때문에 견딜 수 없는 것도 있어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하는 단의 표정이 어두운 창가에 비쳤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그 처연한 눈매에 지찬의 입이 꾹 다물렸다.
하지만, 다른 이의 손을 빌려 죽겠다는 게 고작 자신을 납치해 한성을 끌어들이겠다는 그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거였다.
“이건 아니야. 다시 생각해.”
“형이 하루빨리 각인하기를 기다렸어요.”
“한성을 네 자살 도구로 생각하지 마!”
“그럼 형이 절 죽여 주실래요?”
“네 고통이나 아픔, 난 몰라. 그래, 알 수 없어. 그렇게까지 아파 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모르면 그냥 계속 모른 척해 주세요.”
“청룡은? 혼자 남겨지는 네 반려는?”
그 말에 단이 멈칫하고 허공을 올려다봤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던 시선이 다시 창가에 비친 지찬을 향한다.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아니.”
“언젠가 그가 더 많은 욕심을 부리거나 폭주하게 되면 백호 님이 꼭 죽여 주세요.”
쾅!
“내가 왜 네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지 모르겠군.”
단은 한성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동요가 없었다. 그저 살포시 웃으며 거칠게 문을 부수고 나타난 한성을 바라봤다.
“우리의 끝은 그래야만 하니까요.”
“그 전에 네 목숨줄부터 끊어주마.”
“한성!”
한성이 다짜고짜 단의 목을 틀어잡고 들어 올려 벽에 처박았다. 쿵 소리와 함께 나가떨어진 단이 풀썩 주저앉은 채 기침을 내뱉었다. 그리고, 허탈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우습나?”
“네, 막상 죽음이 눈앞에 와 있다고 생각하니 우습네요.”
“단아!”
한성과 비슷한 체격의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흉흉한 기운으로 가득 찬 남자가 한성과 지찬을 노려보고 단을 바라봤다.
“남의 구역에서 뭐 하는 거야.”
“네가 몰랐던 일이라고 하진 않겠지. 감히, 서방의 반려를 납치한 쥐새끼 같은 네 반려 말이야.”
“말조심해. 단, 너 지금 이게 무슨 일이야.”
이를 갈듯 한성에게 내뱉던 가시가 단을 향했다. 허망하게 주저앉아 있던 단이 천천히 일어나 시선을 피하자 그의 앞에 가서 어깨를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너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물었잖아!”
“죽여 달라더군. 그래서 그리 해주려던 참인데, 눈치도 없이 빨리 오셨군.”
쾅! 순간적으로 청룡의 몸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오고 굉음과 함께 유리창이 산산조각이 났다.
“입, 닥쳐. 너한테 물은 게 아니야.”
“너야말로 힘 적당히 풀어. 내 반려에게 해라도 가하면, 네 반려도 지금 당장 목숨줄을 끊어버릴 테니까.”
순간적인 힘에 지찬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마 언저리에서 뜨끈한 기운이 밑으로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눈두덩이 위로 떨어지는 기분에 고개를 숙이자 핏방울이 바지에 툭, 떨어졌다.
“아…….”
작은 지찬의 소리에 한성이 다가와 무릎을 꿇은 채 올려다봤다.
“괜찮은 거야?”
“욱…… 미, 미안한데, 피 못 보겠…… 욱.”
힘으로 줄을 끊어버린 한성이 지찬을 안아 들었다.
“다시는 이런 장난, 곱게 받아주지 않아. 특히 너. 죽고 싶거든 저 녀석을 먼저 죽여. 그럼 네 시간도 풀리겠지.”
“그만, 그만하고 가요.”
지찬이 한성의 품 안에서 조용히 말했다. 으르렁거리는 울림이 그제야 잠잠해진다.
한성과 지찬이 사라진 방 안엔 적막만 감돌았다.
“단아…….”
“이제…… 못 하겠어요.”
고개를 떨군 채 흐느끼듯 말하는 단을 바라보는 진운의 얼굴이 굳어졌다.
“단아…….”
“내 하늘이었고, 내 신이었잖아요.”
“많이 아픈 거야? 내 힘을 더 줄게. 조금만 참아. 응?”
“이제, 당신 힘으로 연명하는 이 목숨. 지긋지긋해.”
“네가 아파서 그래. 아파서 지금 잠깐 흔들리는 거야. 조금만 기다려. 내가 힘을 더 모으면, 그땐 너도 아프지 않게…….”
“……하아. 진운…….”
울컥 울음을 계속 참아 내며 단이 입술을 다물었다. 진운의 어깨에 기대어 울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에요.’
바보 같은 나의 신은 나를 놓아줄 줄을 몰라서, 자꾸만 나를 어린아이 취급을 한다. 아파서 부리는 작은 투정으로밖에 보질 않아.
진운은 그런 단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거렸다.
‘내 하늘, 나의 신. 나의 목숨도 이젠, 제발 거둬 가 주길.’
수천 번을 빌고 빌어 봐도 닿지 않는 기도는 오늘도 가로막힌 채 단의 울음 속에서 묻혔다.
* * *
한성의 품 안에 안긴 지찬은 넋이 나가 있었다. 가볍게 안아 든 것도 놀라울 일인데 그런 저를 안고 뛰어올라 소용돌이치는 바람 속으로 사라지자 눈 깜짝할 사이에 한성의 집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게 뭐야…….”
대답도 하지 않고 그대로 소파에 지찬을 내려 두고 사라지는 한성의 모습에 지찬은 입만 벌린 채 앉아 있었다.
“반려 님! 으앙!”
그때 해가 우당탕 뛰어들어 오면서 소파에 앉아 있는 지찬을 향해 달려들었다. 폭 안기는 작은 체구의 아이를 안아주며 얼떨떨한 기분으로 있는데 뒤에서 한성이 약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해야, 반가움은 조금 이따 나누고, 반려 님 아픈 곳부터 치료하자.”
“헛! 다치셨어요? 다치신 거예요? 어디요? 얼마나요? 이 못된 것들! 감히 반려 님을 다치게 하다니!”
“무릎은 제가 넘어진 거고, 이마 찢어진 건 한성 때문입니다.”
“크흠…….”
“뭐요? 이 고운 이마를 찢어 놓은 게 한성 님이라고요? 곱게 모셔 오라 그랬지 누가 이마까지 찢어 놓고 모셔 오래요?”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한성을 향해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는 해를 보면서 지찬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이것 봐. 막 대하는 건 해님, 당신이라니까.’
“아녜요. 뭐, 진작에 팔다리를 풀어줬다면 덜 다치긴 했겠지만, 안 풀어준 건 한성 탓이니까. 아예 잘못이 없다고 할 순 없네요.”
“아이고! 묶여 있는 반려 님은 안 풀어주고 대체 뭐 하셨대! 내가 못살아!”
시어머니나 마누라 잔소리보다 더한 해의 구박에 한성이 자꾸 헛기침하면서 지찬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쓸린 무릎을 소독하고서 약을 발라 주는 내내 그는 지찬을 바라보지도 못했다. 일부러 시선을 피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무릎에 계속 약을 덕지덕지 바르고 있는 모양새를 보다 말고 지찬이 팔 한쪽도 내밀었다.
“여기도요. 여기도 까졌어요.”
“어, 응.”
또다. 쳐다보지도 않고서 제 팔만 요리조리 바라보면서 상처를 확인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찬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자 한성의 어깨가 아주 살짝, 움찔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런 모습을 함께 지쳐보던 해가 답답했던지 한성의 등을 철썩 내려쳤다.
“아이고! 답답해! 팔 다 하셨으면 이마도 해주셔야죠! 지금 막 피가 철철 나는데! 이러다 흉 지면 어쩌실 거예요! 한성 님이 책임지실 거예요?”
닦달하는 해를 바라보면서 소파에 등을 기댔다. 시끄럽긴 하지만, 따뜻했다.
이제야 어딘가로 돌아왔다는 게 실감이 난다.
“어머, 반려 님 오셨네요.”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온 재순이 지찬에게 알은체를 하다 분위기를 보고 놀라 달려왔다.
“어쩌다 다치셨어요? 소독은 하고 발라 주시는 거예요?”
“응, 이거…… 맞지 않나……?”
“아휴! 한성 님! 이건 식염수잖아요.”
“어?”
“보자, 여기 이거, 이게 과산화수소예요. 이걸로 소독하셨어야 했는데…….”
“내가 이럴 줄 알았어! 한성 님은 할 줄 아는 게 뭐예요!”
한 번 때리기 시작하니 손맛이 좋은지 등을 팡팡 두드리는 해의 모습을 보면서 지찬이 웃음이 터졌다. 갑자기 웃기 시작한 지찬의 모습에 해와 재순이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바라봤다.
“괜찮아요. 식염수도 상처 세척에 좋다고 하더라고요.”
계속해서 팔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한성을 바라봤다. 그리고 한성의 손 위에 제 손을 겹쳐 올렸다.
“언제까지 피할 거예요? 겁나요?”
아까부터 조금씩 떨리던 한성의 손끝을 모르지 않았다. 급작스레 변한 둘의 분위기에 재순이 해를 끌고 약과를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냐며 자리를 피했다.
그러자 한성이 지찬의 손 위에 이마를 올린 채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
“뭐가 그렇게 겁나요.”
“미안해.”
“나 멀쩡하게 왔잖아요.”
덩치는 커다래선 아무 말도 못 한 채 주눅이 들어 있는 모습을 보니 또 가슴 한쪽이 시려 왔다.
“망할 호랑이.”
“얼마든지 욕해도 좋아.”
“나보다 더 아파하면, 욕도 못 하잖아…….”
어쩐지 눈가가 시큰해졌다. 코를 훌쩍이고 눈을 두어 번 깜빡거리자 그제야 한성이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울지 마.”
“울게 만들잖아요.”
“미안…….”
“그놈의 미안 소리, 그만 좀 해요. 나 여기로 돌아온 거야. 언제까지 그렇게 겁낼 거예요.”
상체를 숙여 한성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겁내지 말고, 안아줘요. 내 뒤에 숨어도 좋으니, 언제든 날 안아줘요.”
‘아플 때마다 슬플 때마다 추악한 어둠이 날 덮칠 때마다.’
“내가 제일 무서운 건, 바로 그대야. 그대만 곁에 있어준다면 난 겁낼 것이 하나도 없어.”
겁쟁이 호랑이였다. 그래도 지찬은 지금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와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초승달에서 달이 차오르는 것처럼 우리도 조금씩 채워 나가다 보면 언젠간 만월이 되어 서로에게 빛이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둥글고 탐스럽게 말이다.
피식 웃는 지찬의 눈꼬리에 눈물 한 방울이 대롱거리며 매달렸다. 그러자 품 안에서 빠져나온 한성의 입술이 그 위로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