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반려의 기운이 끊겼다. 정확히 말하면 한성이 친 결계, 즉 서쪽에서 사라졌다.
지찬이 사라진 곳으로 한성이 서둘러 쫓아갔지만,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달까지 내려와 상황을 둘러보고 있었다. 관리하는 산에서 사라진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기가 막히는 상황에 다들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해는 동동 발을 구르며 울먹이고, 달은 주변에 기거하는 짐승들을 다그쳤다.
한성은 기운을 퍼뜨려 실마리 한 조각이라도 찾아보려 애썼지만, 지찬은 이미 서방에서 떠난 후였다.
대체 누가 감히, 백호의 반려를 데려갔는가.
이렇게 대담한 짓을 할 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기를 바랐다. 사방의 균형을 위해 단서도 없이 무작정 그의 구역을 이탈해서 쫓아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때 멀리서 달이 한성을 불렀다.
“여기, 이게 있어요!”
달이 들고 있는 것은 푸른 빛을 내뿜고 있는 청룡의 비늘 조각이었다. 한성은 더럽고 추악한 음기가 섞인 것을 빼앗듯이 잡아챘다.
“손대지 말아라. 추악한 것이 섞여 있어 너희에게 해롭다.”
그리고 잡아 든 것을 손안에서 바스러뜨렸다.
싸늘하게 변한 한성의 표정에 모두 할 말을 잃은 채 바라봤다.
“겁도 없이, 나의 반려를.”
불같이 치솟을 줄 알았던 분노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미 벌어진 일이기에 한시라도 빠르게 지찬을 데리러 가야만 했다.
“다녀오세요.”
달이 한성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서방의 주인 모두가 자리를 비우는 만큼, 해와 달이 지켜 내야 할 일이 많아진다. 그만큼 힘의 소모가 커지는 데에도 혹시나 사방신이라는 허울 때문에 고민하진 않을까, 먼저 꺼낸 말이었다.
어차피 한성을 두고 해와 달이 움직인다 한들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신수와 신의 힘 차이는 그만큼 크니까 말이다. 게다가, 신의 영역에 들어간 이무기를 모두 죽일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진 청룡이라면 더더욱.
“오실 땐 꼭 반려 님과 함께이셔야 해요! 안 그럼 집에 걸쇠를 모두 잠가 버릴 겁니다!”
“다녀오마.”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짐짓 밝게 배웅을 하는 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 나자 돌풍이 몰아쳤다.
한성의 몸을 휘감은 바람은 찰나의 순간 머물렀다가 한성과 함께 사라졌다.
* * *
똑, 똑.
물방울이 한 방울씩 느리게 떨어지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눈을 떠도 보이는 것은 오직 암흑뿐이었다. 익숙했다, 이런 느낌이.
순간 동공이 커지면서 벌떡 일어난 지찬이 주변을 다급하게 둘러봤다.
꿈인가, 다시 꿈이야? 산길에서 쓰러졌는데 대체 난 어디 있는 걸까. 왜 하필 꿈속에서 정신이 든거지.
손을 펼쳐 찔린 손가락을 확인해 봤지만, 전혀 이상이 없었다. 역시 꿈이구나.
음습하고 차갑고 스산한 공기가 팔에 닿는다. 지찬은 쓱쓱 문지르며 다시 한 발 한 발 내디뎌 앞을 향해 걸었다.
동굴 속처럼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검은 공간을 울려 대고 있었다. 앞으로 걸으면 걸을수록 그 소리는 점점 커졌다. 맨발에 닿는 바닥이 얼음장처럼 차가워 시렸지만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뭐든, 빨리 보여 줘. 내 안에 어떤 것이 있다 해도.’
겁이 났지만, 겁나지 않았다. 꿈속에서 자신을 옥죄어 오는 것들은 이제 겁나지 않는다. 하지만, 불길함 속에 정신을 잃은 뒤라 현실이 더 겁이 났다.
자신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빨리 깨어나야 했다.
찰박, 찰박. 발에 축축한 습기가 느껴지다 걸으면 걸을수록 물이 차올랐다. 바닥을 겨우 찰박거릴 정도의 물이 어느새 발목을 집어삼켰다.
점점 차오를 것 같은 두려움에 지찬은 고개를 내려 아래를 내려다봤다. 여전히 깜깜한 어둠 속,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음습한 공간이었다.
고개를 들어 올리자 푸른 인영이 아른거렸다. 용기를 내 몇 발자국 더 걷다 말고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발을 적시고 있는 물이 온통 새빨갛고 끈적이는 핏덩이들이었다.
놀란 지찬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지만,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돌아갈 수도 없었다.
어서 더 앞으로 가라는 듯이 보이지 않는 그것은 지찬을 자꾸만 재촉했다. 푸른 인영은 빛에서 점점 사람의 형태로 바뀌어 갔다.
주변은 느꼈던 그대로 동굴의 형태였지만, 지찬이 알고 있는 모습보다 더 기괴했다. 천장에선 마치 찌를 듯 날카롭고 예리한 종유석이 아래를 향해 뾰족한 끝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 끝을 타고 한 방울, 두 방울, 톡톡 떨어지는 것은 모두 핏빛이었다.
그 사람의 형태를 한 것은 피로 이루어진 물가에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찰박찰박 발로 물을 차올리거나 두 손으로 퍼 올렸다 주변으로 흩뿌리길 반복했다.
그 행동이 너무나 순박한 데에 비해 그가 가지고 노는 것은 모두 역하고 비릿한 냄새가 나는 핏물인 것을 보고 지찬이 저도 모르게 헛구역질을 했다.
“우욱, 하아…… 너, 너…….”
“역겨워요?”
처음으로 아이가 지찬에게 말을 걸어왔다. 머릿속을 울리는 그의 생각이 아닌, 지찬에게 내뱉는 말이 동굴 안을 어지럽혔다.
두 손으로 퍼 올린 핏물을 자신의 빨간 니트 위로 흠뻑 적시면서 지찬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새하얗고 마른 아이, 어딘가 지쳐 보이는 표정, 하지만 즐겁다는 듯 억지로 끌어 올린 입가의 미소가 비틀어져 있었다.
“뭐야, 너 누구야.”
“이것들이 다 뭔지 알아요?”
다시 고개를 돌려 발로 물을 차 올린 아이가 성큼성큼 지찬의 앞으로 다가왔다. 고약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코를 움켜쥐고 뒤로 물러나지만, 여전히 막혀 있는 어두운 벽은 지찬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이게 바로 형의 ‘가족이었던’ 사람들의 피예요. 그래도 역겨워요? 맞아. 역겹지. 역겹고 더럽죠? 그들의 피와 맞바꾼 목숨이 어때요?”
지찬이 미간을 찌푸렸다. 얼마 전까지 도와 달라고 흐느끼던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들의 피? 그것과 맞바꾼 목숨이라니.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즐거워요? 살 만해요? 살아 있으니 행복하죠? 처음엔 이것들도 참 따뜻했는데, 자꾸 식어 가.”
노려보는 지찬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는 제 할 말만 떠들고 있었다.
“너 뭐냐고!”
“그들의 희생으로 힘도 생명도 가졌으니 즐겁고 행복해야지. 그럼요. 아니, 아닌가? 왜 형은 불행하지 않아요? 살아 있어서? 그 사람들은 형이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더러운 벌레 보듯, 역겨운 오물 보듯 바라보지 않을까?”
비린 웃음이 활짝 펴진다. 정말 즐겁다는 듯이 웃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는 내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온몸을 잠식했다.
“살아 있다는 기분은 어때요?”
“마치 널 보는 것 같아.”
그 말에 처음으로 아이가 반응했다. 고개를 귀엽게 갸웃거리지만, 옷에 밴 핏물과 튀어 올라 볼을 따라 흐르는 핏자국이 소름 끼쳤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꾹 깨물던 지찬이 입을 열었다.
“불쾌해.”
“우핫, 하하하! 진짜, 진짜!”
기쁘다는 듯이 폴짝 뛰며 웃는 아이를 바라보다 지찬은 다시 아랫입술을 물었다.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해.’
“불쾌하면 나랑 그냥 여기서 살지. 형은 원래 삶에 미련이 없었잖아요. 원래는 죽고 싶었잖아. 대신 살아가는 거, 그런 거 하나도 즐겁지 않았잖아. 차라리 나도 데려가지. 나도 그냥 죽을걸. 그때 함께, 나도.”
숨을 훅 몰아쉰 아이가 발작하듯 입을 크게 벌리며 소리를 질렀다.
“나도 따라 죽을걸!”
좁은 동굴 안에 아이의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마치 커다란 스피커 앞에선 몸처럼 전체가 윙윙 울리는 느낌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귓가를 때리는 아이의 찢어진 고함이 자꾸만 손발을 떨리게 했다.
“이젠, 이젠 아니야. 네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 꺼져.”
달달 떨려 오는 몸이 수치스러웠다. 불안하고 두렵고 서늘한 공기에 숨이 막혀 왔다. 아이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빙글빙글 웃어가며 지찬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아닌데? 아니잖아. ‘그’도 당신을 기만했어. 형이 돌아갈 곳은 어디에도 없어.”
“너였구나.”
그동안 내 틈을 파고들던 악마 같던 속삭임.
“혼자서도 깨어날 수 있잖아. 근데, 정말은 두려운 거지? 꿈도 현실도 모두 도망칠 곳이 없어서.”
“아니야.”
“내 목을 졸라 봐. 내가 죽어야 형은 여기서 벗어날 수 있어.”
어서 해보라는 듯이 아이가 고개를 들어 피로 물든 목을 보여 줬다.
“이건 꿈이야. 날 죽여도 괜찮아. 어차피 꿈인데?”
한걸음, 더 다가선 아이를 본 지찬이 시선을 피했다. 이제는 손을 가만둘 수 없을 정도로 떨려 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가야 했다. 하지만, 나갈 방법은? 정말 저 아이를 죽여야 하는 걸까. 이게 정말 꿈이 맞긴 한 걸까. 지찬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대체 너는 뭐길래 나를 이렇게나 몰아세우는 거야.’
“거봐, 역시 무서운 거야. 돌아갈 곳은 어디에도 없어. 꿈도, 현실도. 모두 형을 이방인으로 몰아세울 거야. 그냥 이곳에 나랑 같이 잠들자. 어때? 이미 죽어버린 형네 가족들만 재수가 없던 거지. 백호의 반려가 될 거로 생각했겠어? 그랬으면 진작에 형을 죽여 버렸을지도 몰라. 이름만 가족이지, 원래 형의 가족은 아닌, 컥!”
“이미 죽은 사람들을 모욕하지 마. 내 가족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야.”
지찬은 아이의 목을 틀어쥐었다. 한 손에 잡히는 여린 목을 잡아 누르는 생생한 느낌이 소름 끼치게 무서웠다.
‘하지만, 나가야 해. 네가 무엇이든 나는 여길 나가야만 해.’
꺽꺽거리며 목이 잡혀 발버둥 치는 아이를 보다 놀란 지찬이 황급히 손을 뗐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쿨럭거리던 아이의 입에서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혀, 형…… 아파. 왜, 이래……?”
천천히 고개를 드는 아이의 얼굴이 죽은 동생, 지한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헉, 허억…… 아니야, 아니야!”
울컥 솟아오르는 토기를 애써 참으며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 그러자 그 얼굴이 비틀어지고 피식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로 돌아온다.
온몸을 들썩이며 기괴한 소리로 웃던 아이를 보던 지찬이 그대로 몸을 돌려 자기를 막고 있던 투명한 벽을 온 힘을 다해 내려쳤다.
“내 가족으로 장난치지 마!”
꿈쩍하지 않는 벽을 다시 한번 내려치자 쩌억, 하고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추억을 이딴 식으로 더럽히지 마!”
와장창,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앞이 깜깜해졌다. 귓가에 기괴한 웃음소리와 함께 아이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면서 지찬은 잠에서 깼다.
‘이게 바로 형의 어둠이야. 진짜, 어둠.’
“쿨럭, 쿨럭! 하아…….”
“이제야 일어나네요.”
숨을 몰아쉬던 지찬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고 바라보니 낯선 방 안이었다. 몸을 움직이려 해봐도 의자에 묶인 채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조금 앳된 목소리가 들리고서 저벅저벅 발소리에 몸을 움츠렸다. 그러다 지찬의 옆으로 낯선 남자가 걸어 나왔다.
“오랜만이죠?”
“너…….”
샛노란 염색 머리에 비쩍 마른 몸, 그리고 창백하리만치 새하얀 얼굴. 청룡의 반려였다.
“나 기억해요? 단이에요. 홍단.”
“뭐 하는 거야?”
다른 의자를 끌고 와 앉은 단이 다리를 꼰 채 피식 웃었다.
“어때요? 반려가 된 소감이.”
“뭐 하자는 거냐고 묻잖아.”
“형은 반려가 된 게 행복해요?”
“하…….”
뭐 만나는 놈들마다 죄다 행복하냐 묻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자꾸 이런 꼴을 당하면 행복하겠냐.’
지찬은 짜증이 솟구치는 걸 참고 이를 악물었다.
“이거 풀어.”
“못 풀어요.”
“왜?”
“기다리는 중이거든요.”
“뭘?”
“……글쎄요.”
단이 어깨를 으쓱이고 지친 미소를 지었다.
“뭘 기다리는지는 내 알 바 아니야. 그러니까 빨리 풀어!”
“풀면 도망갈 거잖아요.”
당연한 소리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묶어 두는 이유가 궁금했다. 기다리는 게 뭘까, 청룡? 나를 잡아서 무슨 짓을 하려고.
신과 반려의 목숨은 스스로 끊을 수 없지만, 타인에 의한 죽음은 받아들여진다. 그 생각이 들자 겁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이 제 목숨을 원한 거였다면 왜 바로 죽이지 않았을까. 의문투성이였다.
“형은 행복해요?”
“네가 보기에 지금 내가 행복한 것 같냐?”
“진짜 성격 대단하네. 이 상황에서도 그렇게 까칠하기 있기예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그만 보내 줘.”
뒤로 묶인 팔을 흔들면서 반항해 봤지만, 양쪽 발목까지 묶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의자와 함께 덜컹거리는 것뿐이었다.
“나는 아니에요. 나는 행복하지 않아요.”
지찬은 시선을 틀어 다른 곳을 바라보면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듯 아무렇지 않게 중얼거리는 단을 쳐다봤다.
“벌써, 삼 년이나 흘렀네. 처음엔 나한테도 이런 행운이? 싶었죠. 정말,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어요.”
“네 과거사 궁금하지 않아.”
“난 다시 태어난 게 아니었어요. 그런 게 아니야…… 쿨럭, 쿨럭!”
갑자기 기침을 시작한 단이 가슴을 부여잡고 한참이나 허리를 펴지 못했다. 그리고 작은 탁자로 기어가서 약통을 집어 들었다. 몇 번이나 뚜껑을 열려고 시도했지만, 덜덜 떨고 있는 앙상한 손가락이 헛손질을 반복했다.
단은 겨우겨우 약 한 알을 빼내 입에 삼킨 후에 그대로 팔 위에 이마를 얹어 놓고 거친 숨을 토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지찬의 미간이 심하게 구겨졌다.
“뭐야, 왜 그러는데.”
“하아…… 내가, 행복하지 않은…… 후우…… 이유예요.”
마른세수하고 자리에 다시 돌아온 단의 얼굴은 조금 지쳐 보였다.
“이 아픔이 때때로 나를 찾아와 절망을 안겨 줘요……. 나는 계속 절망하고 있어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치켜든 단이 숨을 크게 내쉰다.
“형, 나는 반려가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