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지찬은 천천히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미 어둠이 몰고 온 자리엔 왠지 스산한 바람 온도가 머무는 것 같았지만 다른 생각에 빠질 시간이 없었다.
용케 등산로를 찾아 조금 편안하게 내려가던 와중에 하늘을 올려다보고 새침하게 뜬 달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용서할 수 없어요. 가족이 죽은 게 마치…….’
내 잘못 같아서,
내가 하필 반려의 운명이라서.
나를 위해 살라는 말이 마치 자신에게 벌을 내리라는 말처럼 들렸다.
과연 나를 위해 살아갈 수 있을까. 누군가의 희생으로 태어난 운명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갈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그 원망과 미움의 방향이 정해지고 나자 지찬은 한성이 보고 싶었다.
멈춰 섰던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집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집이라면 차라리.
그래, 차라리 늘 언제나 빛이 새어 나오고 온기가 있던 한성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파도 그곳에서, 울어도 그곳에서.
바로 한성의 옆에서.
‘이젠 돌이킬 수 없어, 그 어떤 것도.’
반려가 될 운명, 그로 인해 겪어야 했던 가족의 죽음.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진실들.
그게 뭐였다고 하더라도 이미 벌어졌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그의 반려고, 이젠…….’
“돌아갈 곳이…… 있어.”
지찬은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자신을 돌이킬 수 없는 운명 속으로 끌어들인 것이 맞지만, 그 운명에 휩쓸렸다면 거기에 맞춰 살아야 했다. 이전과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들을 대신해 더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데는 변함이 없었다.
저보다 더 바보 같은 한성을 생각하면 화가 나고 짜증도 났다. 정말 미련하고 멍청한 신.
주변을 맴돌고 늘 제 뒤에 쫓아오던 향기가 산으로 들어오면서 끊겼다. 풀 한 포기 발견할 수 없는 주택가를 걸어도 제 코끝에서 달랑거리며 쫓아오던 그 향기가 산으로 들어온다고 끊길 리가 있겠는가.
겁 많고 바보 같은 한성이 제 뒤를 서성이다 돌아간 게 분명했다.
차마 다가오지도 못하고, 차마 말을 걸지도 못한 채 그렇게 돌아갔을 게 분명했다.
내리막길에 속도가 붙은 발걸음으로 내달음질 치다 지찬은 도중에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기력이 없어 휘청이는 몸을 바로 잡을 타이밍을 놓쳐 버리고 그대로 굴렀다.
바닥에 쓸려 무릎과 팔꿈치가 쓰라렸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비뚤어진 모자를 다시 고쳐 쓰고서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흐르고 있던 눈물을 거칠게 닦아 냈다.
‘그대가 좋아.’
‘그냥 내 곁에 있는 자체가 좋아’
‘그대가, 내 곁에 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나는 더 바랄 게 없어.’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고, 필연이 계속되면 운명이라던데.’
뒤에서 끌어안고 속삭이던 그 목소리와 나지막하게 말하며 웃던 한성의 얼굴이 겹쳐졌다.
운명,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
하도 운명 타령을 해대는 통에 사전을 뒤져 봤었다.
한성, 그는 이미 알고 있었겠지. 이미 정해져 있는 나의 목숨, 그리고 당신의 안식. 그리고 우리 모두의 처지.
“내가 미운데도 당신이 좋아.”
거칠게 닦아 낸 눈에서 다시 눈물이 떨어졌다. 주저앉아 일어날 생각도 못 한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당신을 좋아하는 내가 미운데, 그래도 좋아.
이렇게 힘들고 아플 때 그 커다란 손으로 잡아줘.
겁이 나면 내 등 뒤에 숨어도 괜찮으니까, 이제 아무것도 없는 나를 좀 안아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엉엉 소리 내 울고 싶은 것을 겨우 눌러 담고 지찬은 일어섰다.
씩씩하게 가서 한성에게 ‘망할 호랑이!’ 하고 실컷 욕해 주고, 그가 내주는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상처를 치료해 달라고 해야겠다.
무릎도 팔꿈치도 손끝도 그리고 내 마음도, 당신의 안식이 올 때까지.
지찬이 바지를 툭툭 털고 다시 한걸음 내딛던 순간,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새 한 마리가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어디서 봤더라, 저번에 집에 인사를 하러 온 그들 중 하나였나 곰곰이 그날의 장면을 떠올려 보려는데 그 많던 동물 중에 새는 없던 게 기억이 났다.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알았는지 주변을 배회하던 새가 뽀르르 날아와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반짝이는 무언가를 부리를 벌려 떨어뜨리고선 재빨리 사라졌다.
저도 모르게 손으로 받아 확인하자, 엄지손톱만 한 크기에 얇고 넓은 유리 조각 같은 게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새가 사라진 방향을 쳐다보다 다시 손 위에 올려진 조각을 바라봤다.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조각을 집다 날카로운 끝에 손끝이 베여 따끔거렸다. 그는 핏방울이 조금 볼록하게 올라오는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떨어뜨린 조각은 안중에 없었고, 자꾸만 욱신거리는 손끝이 신경에 거슬렸다.
핏물을 옷에 문질러 닦아 내고 움직이려는데 갑자기 심장 언저리에서 쿵, 하고 이상한 고동이 느껴졌다.
쿵, 쿵.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몸 전체가 심장이 된 것처럼 울려 왔다.
순간 한성의 집에서 창문을 두드리다 인기척에 놀라 사라진 새가 떠올랐다. 불안함으로 심장박동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저도 모르게 숨이 헉, 하고 튀어나오고 허리가 접혔다. 누가 심장을 움켜쥐었다 풀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지찬은 소리도 못 낸 채 거친 숨만 토했다.
한성이 오는 것을 느끼고 재빨리 사라졌던 새, 왜였을까? 그가 무서웠나?
자신이 혼자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건네주고 간 그 조각.
푸르스름하게 빛나던 그것.
‘비늘, 단단한 비늘 조각……!’
깨닫는 순간 누군가 머리를 세게 치는 것처럼 눈앞이 훅 꺼졌다.
풀썩 쓰러진 지찬의 위로 새가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리고 어둠 속에 있던 인영이 튀어나와 지찬을 가볍게 둘러업고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오늘도 반려 님을 데려오지 못하신 거예요?”
“달에게 가더구나.”
“달한테요?”
“응.”
대답을 끝으로 생각에 잠긴 한성을 바라보다 해가 집을 나섰다. 달을 찾아간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고, 반려 님이 잘 돌아갔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한성을 믿고 손가락만 빨고 있다 보면 둘 사이는 영원히 틀어질지도 모른다. 반려이지만, 서로 앙숙처럼 사이가 나쁜 관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게 물론 서방의 안위도 달렸지만, 한성이 저리 용기를 못 내니 저라도 나서서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다 생각을 한 것이다.
문밖을 나서자마자 해는 하얀 개의 모습으로 어둑해진 골목을 달려갔다.
혹시나 달이 뾰족한 말투로 반려 님께 상처를 주진 않았을지 걱정하면서.
한성은 요 며칠간 지찬의 근처를 맴돌기만 했다.
집 앞까지 가서 벨을 누르려다 망설인 게 수십 번, 그 차가운 문에 이마를 대고 흘러나오는 지찬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주먹을 틀어쥐었다.
단단하고 차가운 문이 마치 지찬의 마음 같았다. 선뜻 다가서지 못한 채 벽에 가로막혀 지찬의 절규를 온몸으로 듣고만 있어야 했다.
이까짓 인간이 만들어 낸 철문 따위, 조금만 힘을 주어 부숴버리면 끝인데 그것이 이리도 힘든 일인지.
차가운 문보다 더 차갑고 어두운 지찬의 한숨과 울음소리가 더 다가서질 못하게 만들었다.
문 앞에 기대어 서서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지찬의 절망을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외면하지 못한다. 외면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오늘도 단 한 번도 자리에서 일어나질 않은 채 잠이 들다, 울다 반복하는 소리를 들으며, 눈으로 직접 보는 것보다 더 잔인한 상상으로 한성은 주저앉았다.
캄캄한 어둠 속에 하얗고 곱던 얼굴 한번 내비치지 않은 채 자신을 더 나락으로 끌고 가는 모습이 눈앞을 어지럽혔다.
가족들이 모두 죽고 혼자 남아버린 병실에서도 그렇게 좌절했었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혈혈단신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지찬은 그에게 너무 커다란 집에 들어가 작은 몸을 웅크리고 한참을 울고 절망하고 아파했다.
누군가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아프고 외로운 마음을 파고들어 너의 반려로 맞이하라고.
답해 줄 수 없었다. 미안하지만, 나도 너무 아파서, 저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괴롭고 힘이 들어서, 한 걸음 다가섰다 부서지면 어쩌나 작은 그 아이가 너무 걱정되어서 그 틈을 파고들 수 없었다고.
오히려, 슬픔이 너무 커 파고들 틈이 없었다고.
‘만약에, 아주 만약에. 그때 너를 맞이해서 모든 걸 털어놓았다면, 지금이 조금 달라졌을까.’
며칠 만에 나온 지찬의 모습은 몰라보게 수척한 얼굴이었다. 그 모습에 이가 갈리도록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수백 년 전 그렇게 원망했던 신을 다시 찾았다.
이게 정말 마지막 선물입니까. 따져 묻고 싶었다.
자신과 이 아이를 얼마나 시험해야 만족할는지, 알고 싶었다.
언제나처럼 지찬의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휘청이는 몸을 볼 때마다 달려가 잡아주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내리누르면서, 떨리는 손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덩치만 큰 겁쟁이 짐승, 내 뒤를 따라오면서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멈췄던 지찬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알고 있었다. 한성은 욕심에 자꾸만 지찬을 찾았다. 이렇게 뒤에서 쫓기만 했다면 좋았을 것을, 제 옆에 두겠다는 욕심 때문에.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자만하고야 말았다.
한성은 제게 늘 항상 찬란했던 지찬을 자꾸만 나락으로 끌어당기는 것은 운명도, 신의 농간도 아닌 바로 자신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면, 나는 찬란했던 너를 만날 주제가 못 된다.’
“한성 님!”
나갔던 해가 다급하게 들어와 한성을 찾았다. 어찌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꼴이 말이 아니었는데도 숨을 고르기도 전에 한성을 불러 댔다.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여 있는 것이 심상치 않아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해를 바라봤다.
“바, 반려 님이…… 반려 님이요!”
달에게 갔다던 지찬을 외치며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사라지셨어요! 어디에도 없어요! 누군가 쓰러진 반려 님을…… 흑, 한성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