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60)

32화

불도 켜지 않은 집 안에 숨어 있듯 지낸 게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를 시간이 흘렀다.

화장실 한두 번 다녀온 거 말고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니, 나중엔 화장실마저 갈 의욕도 힘도 없었다. 지찬은 그렇게 무릎을 세운 채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 잠들다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정신을 차리고서는 몰려오는 자괴감에 울음을 삼키다 지쳐 잠들다 다시 저 스스로가 한심해 어이없는 헛웃음을 실실 쪼개기도 했다.

꿈이 무서워 잠들지 않으려 일어나 앉아 있었지만, 이미 기력이 없는 몸은 까무룩 잠에 빠졌다가 깨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다행히 다시 그 꿈을 꾸진 않았지만, 잠드는 것이 무서운 것은 여전했다.

‘꿈이 무서운 거야? 아니면 현실이 무서운 거야?’

속 안에 무언가가 물었다.

‘어떤 자들은 현실이 무서워 꿈으로 도피처를 찾는다던데, 너는 둘 다 무서우니 어쩐담. 도망갈 곳이 없구나?’

마치 악마처럼 속삭였다. 너 스스로 목을 졸라 보라는 듯이 말이다.

‘그도 너를 기만한 거야.’

반려가 된 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아니, 나는 죽을 생각이 없어. 여전히 그들은 내 가족이고, 나는 그들을 대신한 삶을 살아 내야 해.’

‘모두가 너를 기만했어. 너는 외톨이야.’

어디서 기생하고 있는지 모를 악마의 속삭임이 자꾸만 가슴 언저리를 치고 올라왔다. 불쑥불쑥 검고 더러운 못된 손을 내밀어 잡으라고 강요했다.

한성의 잘못이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다.

현무의 반려도 그러했고, 그가 제게 했던 모든 행동이 어딘가 수상쩍은 부분은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 저를 위해서였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온 인생 전부를 부정당하는 것은 견뎌 내기 어려운 과제였다.

내 가족이 가족이 아니고, 나는 그들에게 속할 수 없는 존재였다는 것이 혼란을 일으켰다.

행복했고, 소중했고 아름다웠다. 누구에게도 그러하듯이 말로는 모두 설명할 수 없는 애틋함도 있었다. 그건 가족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분명했다.

억지로 배우거나 강요당해서는 알 수 없는 감정이었기에.

그들의 틈에 자신이 속할 수 없는 존재였다고 해도 가족은 가족이었다.

가족이 아닐 리가 없었다.

억지로 끼워 맞춘 인연이어도 인연은 인연이라고 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다.

함께 어린 시절을 지내고, 추억을 쌓고, 웃고, 울었던 그 모든 것들을 부정할 수는 없는 거였다.

“가족이야.”

지찬은 다시 한번 제 속 안에 악마에게 경고하듯 일부러 소리를 내 말을 내뱉었다.

수십 번 혹은 수백 번을 생각하고 곱씹어 봐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세상에 끼워 맞췄다 해도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동생이 그곳에서 날 잊고 산다고 해도 기억하고 있는 건 나 하나면 충분했다.

“행복했어요. 엄마, 아빠…… 지한아.”

‘정말이야.’

휘청이는 몸을 바로 하고 냉장고에 걸어가 생수를 들이켰다. 차가운 물이 몸의 길을 만들어 내며 안으로 굽이치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어디든 나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나자 달이 떠올랐다.

‘옆 산 중턱 어딘가에 늘 있습니다.’

‘어, 음, 네. 뭐…… 풍경이 좋습니다.’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부끄러워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흔한 위로 한마디 없이 그냥 그 곁에 앉아 풍경만 바라봐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달이라면 분명히 그러리라 생각했다.

지찬은 며칠 만에 말이 아닌 꼴을 대충 정리하고 운동화에 발을 구겨 넣었다. 기력도 없고 어질어질했지만, 집안에만 있으려니 못된 마음에 영혼까지 털릴 것 같았다.

오랜만에 나선 집 밖은 유난히 밝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구름에 가려 해는 없었지만, 습기 가득한 바람이 부는 것이 나름 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모자를 눌러쓰고 천천히 걸었다. 늘 지나치는 공원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익숙한 향기가 따라붙는다.

‘바람이 몰고 온 습기 때문에 나는 향기일까, 아니면 당신일까.’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힘이 들 때면 찾았던 공원이었다. 늘 항상 코끝에 따라오는 풀 향기가 좋아서, 불어오는 바람에 사각거리는 나뭇잎 소리가 좋아서, 햇빛이 반사되는 호수가 좋아서, 그렇게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모든 게 다 무의미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아서 왔던 곳이었다.

‘늘 곁에 있었을까, 나를 언제부터 쫓아다녔을까, 나를 언제부터 알아봤을까. 덩치만 큰 겁쟁이 짐승, 내 뒤를 따라오면서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멈칫했던 발걸음을 다시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산 중턱 어딘가라고만 했지 정확히 어딘지도 모른 채 지찬은 그냥 무작정 산을 올랐다.

처음엔 등산로를 타고 올라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적을 데를 골라 슬며시 옆길로 빠져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물 한 병을 들고 무식하게 올라오긴 했지만, 더 헤매다가는 산 타다 쓰러지겠다 싶어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말이 통하는 누군가 있지 않을까, 자만한 것도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산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이미 기력이 없는 상태였던지라 쉽게 지쳤다.

게다가 등산로가 아닌 말 그대로 산을 타고 있으려니 얼마 걷지 못하고 커다란 돌 위에 주저앉았다.

“후…… 힘드네.”

머리도 어질거리고 공복 상태가 오래되자 그냥 드러눕고만 싶었다. 그래도 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요한 느낌이 싫지는 않았다.

그냥, 이대로 잠시 앉아 있다가 내려갈까. 생각하던 찰나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바, 반려 님?”

나무 사이에 숨어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다람쥐 한 마리가 말을 걸어왔다.

“아, 오랜만이에요.”

“산엔…… 어쩐 일로…….”

지은 죄라도 있는 건지 선뜻 다가오진 못하고 멀찍이서 꼼지락거리며 말을 늘어뜨리기만 했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저, 전 아무것도 몰라요! 사, 사실 그 영감도 반려 님이 아실 거로 생각해서 말을 꺼냈다고 하셨는데 지금 엄청 후회하고 계세요. 지, 진짜예요!”

지찬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의 일로 다들 숨어 있었나 보다.

그때 느꼈던 반려의 감정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던 건지 다들 지찬의 눈치를 보느라 선뜻 다가서질 못하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한성의 집에서도 나가 며칠간 살았는지 죽었는지 전혀 기척이 없던 이가 갑자기 산에 나타났으니, 다들 놀랄 만도 했다.

그때 꺼냈던 이야기 때문에 혼이라도 내려 찾아왔다 생각한 것이다.

“아뇨. 그거 말고, 혹시 달님이 어디 계신지 아세요?”

“아……! 달님 만나러 오셨어요?”

“네. 중턱 어딘가라고만 들어서 정확한 위치를 모르겠어요. 아시면 좀 도와주실래요?”

“그럼요! 이 산은 제가 꽉 잡고 있죠! 저 따라오세요!”

폴짝 뛰는 다람쥐를 바라보면서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섰다. 순간 눈앞이 휙 뒤집히면서 휘청였지만, 옆에 있는 나무를 움켜잡고 심호흡을 했다.

“조금, 천천히 부탁드릴게요.”

발 빠른 다람쥐가 순식간에 사라질까 염려해서 말을 꺼내자, 냉큼 뛰어가려던 녀석이 멈칫하고 천천히 걷는 게 보였다.

지찬은 피식 웃고선 가파른 산길을 타기 시작했다. 제멋대로 뻗쳐 있는 가지들을 피하고 날카로운 돌과 미끄러운 길을 조심하며 한참을 가다 보니 어느 순간 다람쥐가 멈춰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바로 저곳이에요. 저 나무 돌아서 조금 더 안쪽으로 가시면 달님이 계실 거예요.”

“아, 고마워요. 덕분에 헤매지 않고 잘 왔네요.”

“별말씀을요. 반려 님께서 제게 처음으로 부탁하신 건데요.”

쑥스러운 듯이 몸을 비비 꼬는 다람쥐를 지나쳐 그가 가리킨 나무를 돌아 조금 더 들어가자 예상하지 못했던 공간이 나타났다.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장정 여럿이 누울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랗고 기이하게 생긴 바위와 그 아래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었다.

기이한 바위 위엔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지찬은 잠깐 멈칫했지만, 한성의 집에서나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고 다시 다가갔다. 고개를 돌린 달이 지찬을 발견하고 놀란 듯싶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절벽 아래를 바라봤다.

“오랜만이에요. 달님.”

“이리 빨리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게요.”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선 무식하게 산을 타느라 더러워진 바지를 툭툭 털고 달의 옆에 올라가 앉았다.

“저 올라와도 안 무너지죠?”

“이미 올라오시고선.”

“하하, 그러게요.”

머리를 긁적이고 달이 바라보는 곳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바로 아래가 절벽이라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바위 위에 앉아 바라보는 풍경은 정말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좋네요.”

“오래 계시진 마세요. 아무리 결계 안에 있는 산이어도 밤엔 위험하니까요.”

달의 걱정에 지찬이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럴게요, 작게 대답하면서.

그때, 바람에 나부끼는 치마에 놀라 지찬이 옆을 바라보니 어느새 작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바뀐 달이 다시 자리에 앉고 있었다.

“어? 원래 변신 못 하는 거 아니었어요?”

“저나 해는 한성 님의 신수니까요. 귀찮아서 안 할 뿐이지 어떤 식으로든 변하는 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편이 반려 님이 더 편하실 것 같아서요.”

“고맙습니다.”

그러고는 한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지나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이파리가 사각거리며 부대끼는 소리를 들어 가면서 그렇게 침묵했다. 부는 바람에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해가 기울기 시작하고 불그스름한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우거진 나무 아래로 그늘이 늘어져 지친 몸에 한기가 돌았다.

지금 당장 쓰러질 것처럼 힘들고 고된 것은 맞지만, 숨통이 트여 일어나기가 싫었다. 여기서 일어서면 어디로 가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싫었다. 자꾸만 어딘지 모르게 자신을 덮쳐 오는 어둠이 이젠 낯설기만 했다. 예전과 다른 외로움과 어둠이 순식간에 자신을 깊은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버릴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한성의 집으로 돌아가느냐.

그것 역시 아직 갈피를 잡지 못했다.

더 늦기 전에 가야 한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한성이 미운가? 라고 자문하자면, 밉다. 하지만 밉지 않았다.

양 갈래의 마음으로 나뉘어 어디로도 발을 뻗지 못하는 애매한 난관에 들어섰다.

지찬은 저를 속이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말해주지 않은 그가 미웠다. 가족이 아니라며, 반려의 운명이라는 말을 하는 그의 입이 미웠다.

신은 정의의 사도가 아니라고 했던 신이 미웠다.

신이라서, 신이기 때문에. 신이니까.

얼마만큼이나 그도 수많은 죽음과 아픔을 지켜보고 방관해야 했을지 알지는 못하지만, 또 그렇게 생각하면 그가 선뜻 말을 내뱉지 못했던 이유가 이해가 가기도 했다.

나 때문이니까.

그래, 사실은 내가 더 미웠다. 그보다 더.

한숨을 푹 내쉰 지찬이 가만히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그 모습에 옆에 얌전히 앉아 있던 달의 입이 떨어졌다.

“한성이라는 신은 어찌나 멍청한지.”

“네?”

“그런 멍청한 신의 옆에서 속이 터질 것 같더니, 반려 님도 다르진 않네요.”

“……네?”

갑작스러운 달의 말에 지찬의 눈이 커졌다.

“전 기다리지 않습니다.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우리가 기다리는 그 ‘무언가’라는 것은 이제 없다는 거.”

아, 한성에게 들었던 해와 달의 과거가 떠올랐다.

미련이 남아 한성의 곁에 머무르기로 했다던 그들이었는데, 달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건 해, 그 녀석도 마찬가집니다. 마음이 약해 빠져서 한성 옆에서 은혜를 갚겠다며 그러고 있는 거지. 전 한성을 원망하지 않아요. 그냥 싫어하는 거지. 한성은 자신을 용서하지 않았어요.”

지찬은 고개를 돌려 나지막하게 말하는 달을 바라봤다.

“그 신은 너무 바보 같아서 자기 연민에 빠진 거나 다름없어요. 우린 이미 알고 있는데, 그는 여전히 우리를 위해 살겠다는 머저리 같은 소리나 하죠. 그만 그 죄책감을 내려놨으면 좋겠습니다.”

한차례 서늘한 바람이 둘을 휘감고 사라졌다. 한성을 빗대어 얘기하고 있지만, 꼭 저에게 하는 말 같아 가슴이 시큰거렸다.

“남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다 자기 마음 편해지자고 하는 짓이잖아요. 가장 멍청하고 열등한 놈이나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반려 님.”

달이 고개를 돌려 지찬의 눈을 바라봤다. 작고 어린 아이의 눈 안에는 지찬이 느낄 수 없는 수많은 고뇌와 세월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반려 님도 부디 이기적이게 사세요. 남을 위해 살지 마세요. 그거 당하는 사람은 정말 기분 더럽거든요.”

“하하…….”

그런가요, 지찬은 자신 없는 말투로 중얼거리고선 시선을 피했다. 어느새 어둑해져 가는 밤하늘을 바라보자 초승달이 떠올라 있었다.

“오히려 그만큼 악질적인 이기주의가 없을 겁니다. 이기적으로 굴라는 건 남을 위해 살라거나, 빼앗으라는 게 아니잖아요. 당연히 반려 님이 가져야 할 것을 욕심내고, 당연한 권리를 챙기라는 겁니다. 충분히 이기적으로 굴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요. 그런 이기심은 괜찮아요. 자신을 위해서 선택하세요. 더는 누군가를 핑계로 자신을 감춰 두지 말고.”

달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지찬도 따라 일어섰다.

“그러니까 부디 용서하세요. 자기 자신을.”

울컥, 가슴 밑에서 무언가 치고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눈가가 시큰거려 괜스레 코를 한번 훌쩍이고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말로 배웅하진 않았지만, 돌아가는 지찬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봐 주며 서 있는 달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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