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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31/60)

31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지찬은 눈을 다시 감았다가 떠 봐도 마찬가지인 어둠 속에서 물먹은 솜처럼 늘어진 몸을 일으켜 앉았다.

바닥을 짚은 채 앉자 차가운 바닥이 만져졌다. 어딘가 습하고 칙칙한 공기가 몸을 감싸 돌았다. 제 방에서 쓰러지듯 누워 한참을 울다 잠들었던 것 같은데 지금 있는 곳은 너무 낯설었다.

지찬은 얼굴을 쓸어내리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섰다. 낯설지만 언제쯤엔가 느껴 본 적 있는 이 묘한 감각이 발걸음을 옮기라고 부추겼다.

발바닥이 닿는 바닥은 시릴 정도로 차갑기만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손으로 휘저으며 걷기 시작하자 때아닌 빗줄기가 온몸을 찌를 듯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옷은 잠들었을 때 그대로의 차림이었다. 무서울 정도로 내리꽂는 빗줄기에 모든 게 흠뻑 적셔졌다. 손을 펼친 채 들어 봐도 어둠뿐이었다.

차갑고, 시리고, 아프고, 한 치 앞도 확인할 수 없는 어둠과 공포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지찬은 한기가 밀려오는 몸을 팔로 감싼 채 계속해서 걸었다. 이 길이 맞나? 같은 의문 따위는 생기지 않았다.

온통 멍하기만 했다. 머리카락을 적셔 눈 앞을 가리는 물줄기에도 가리려는 손짓 하나 없이 그냥 온몸으로 맞으며 걸어야 했다.

터벅, 터벅.

발바닥에 닿든 매끈하고 차가운 바닥이 어느새 거칠고 울퉁불퉁해져 작은 돌멩이 같은 것들이 걸리기 시작했다.

잠시 발아래를 바라보던 지찬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회색 연기 아래에 부서진 차 한 대가 외로이 빗줄기를 맞고 있었다.

빠앙!

커다란 클랙슨 소리가 머릿속을 관통하고, 반쯤 나가떨어진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지찬의 눈을 찔렀다.

자신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고 불빛을 피해 눈을 감았다.

주춤거리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선 것은 다시 눈을 떴을 때였다.

깜빡깜빡거리는 불빛 앞에 작은 인영이 등을 돌린 채 서서 흐느끼고 있었다.

붉은 니트를 입은 작은 어린아이.

‘너를 다시 보는구나.’

차에서 떨어져 나온 작고 날카로운 파편들이 지찬의 발아래에 깔려 상처를 내고 있었지만, 아프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아픔을 느낄 수 없었다.

온몸을 때리듯 퍼붓는 빗줄기와 들썩이는 아이의 뒷모습이 더 아팠다. 가슴의 상처가 또다시 욱신거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어디에도 없어요.’

‘뭐가?’

‘아무도 없어요.’

‘누가?’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도 모를 말을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아이에게 묻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도와주세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이끌고 아이에게 다가서려던 순간.

강렬한 불빛이 지찬의 뒤를 덮쳤다.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소름에 뒤를 돌아보자 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지찬의 앞까지 내달려 왔다.

끼이이이익!

굉음을 내며 달려온 차에 놀라 눈을 질끈 감자 어느새 그 차 안에 앉아 있는 자신을 느꼈다.

‘어어!’

‘안 돼!’

‘여보!’

‘아빠!’

쾅, 하는 소음과 함께 슬로모션처럼 차 안에 앉아 있는 모두가 앞으로 고꾸라지고 차창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가루가 되고, 날카로운 비수처럼 조각난 유리와 차의 파편들이 얼굴을 할퀴고 지나가는 순간에도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이미 찢어진 상처에 다시 날아와 박혀 드는 아픔에도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지찬은 아무 말도 못 한 채 그렇게 다시 한번 끔찍한 악몽 같은 그날을 지켜봐야 했다. 살아남은 자신이 받는 평생의 업보라고 생각했다.

여러 번의 둔탁한 소음과 고막을 찢어버릴 듯한 굉음이 들리고서야 차는 멈췄다.

삐익- 삑- 삐익-

고장 난 차에선 알 수 없는 경보음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매캐한 연기와 이미 다친 몸으로 정신을 잃은 제 동생과 부모님을 바라봐야 했다. 숨이 끊어져 가는 그 과정을 지켜봐야만 했다.

쿨럭 내뱉은 기침에 핏덩이가 올라오고 빗물인지 핏물인지도 모를 것들이 계속해서 흘러내려 바닥을 적셨다.

‘혀, 형…….’

작은 손을 꼬물거리며 저를 깨우던 아이는.

‘무서워…….’

딱 한 마디를 남기고서 몸이 축 늘어지고야 말았다.

‘제발, 이러지 마.’

지찬은 있는 힘껏 소리를 내려 애썼다.

‘가지 마요. 아무도 가지 마. 차라리 나를 죽이고 모두 살려 내!’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어 소리를 질러 봐도 무언가에 막힌 것처럼 꺽, 꺽 거리는 소리가 나는 게 전부였다.

‘아무도 없어요.’

다시 낯선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무도 없었다. 거리에 주저앉은 자신과 여전히 비를 맞으며 울고 있는 작은 아이뿐이었다.

무릎을 꿇은 채 손으로 더듬거려 봤자 잡히는 것은 피와 비로 적셔진 아픈 파편이 전부였다.

“허억…….”

‘아파요…….’

“크흑…….흐읍, 제발…….”

‘무서워요…….’

“제발…….”

‘모두…… 형처럼 살아남아 날 잊은 걸까요?’

내내 등을 보인 채 떨고 있던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폭우 속에 서 있는 아이의 얼굴은 비 한 방울 맞지 않은 채 빨간 눈물을 투욱, 툭 떨군다.

“으아아아악!”

“커헉, 쿨럭!”

누군가 숨통을 조이다 만 것 같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터져 나오는 기침에 몸을 뒤집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불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캄캄하고 음습했던 어둠은 여전했지만, 창문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줄기에 방 안의 가구들이 존재감을 알렸다.

심장을 부여잡고 한참이나 숨을 몰아쉬던 지찬이 세운 무릎 사이로 고개를 처박았다.

* * *

휴가 끝에 돌아온 재순은 어딘가 심상치 않은 한성의 분위기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늘 끼니때마다 나와서 함께 한술이라도 뜨던 그였는데, 어쩐지 식음을 전폐한 채 거실에 넋을 놓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싸늘한 집안의 온기가 한성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늘 밝은 얼굴로 다니던 해마저도 시무룩해진 채 집안으로 들어섰다.

“한성 님…….”

그의 앞에 앉아 안색을 살펴봤지만, 그는 뒤뜰 처마 밑에 매달린 풍경만 하염없이 바라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반려의 운명이라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한성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읊조렸다.

“내 욕심을 부린 죗값을 받는 게지.”

“최선을 다하신 거잖아요.”

“최선……. 과연, 내가 한 그것이 그 아이에게 최선이었을까.”

“그렇지 않았으면, 반려 님은 더 일찍이 가족을 잃었을 거예요. 더 아프셨을 수도 있어요.”

한성은 죽음의 그림자가 그들을 덮칠 때마다 그 아이의 미소가 눈에 밟혀 괴로웠다. 아주 조금만 더, 조금만. 운명을 틀어 죽음을 피하게 둔 것이 여러 차례.

그렇게 그들은 조금 더 긴 세월을 살았다.

미소를 잃고, 자책하고, 아파할 그 아이의 눈물을 볼 자신이 없어서. 조금만 더 그 미소를, 해맑은 웃음소리를 듣고 싶어서 주변에 머물러 있는 죽음의 길을 억지로 틀어 두었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그 때문에 지찬 역시, 가슴에 지울 수 없는 기다란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한성 역시나 아파했고, 좌절하고 텅 빈 영혼처럼 살아가는 시간이 왔다. 가슴에 새겨진 상처를 마치 죄의 인장처럼 그렇게 매번 매만져 가며 살아 있음을 깨닫고, 그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지찬이 하루하루를 버티는 꼴을 지켜봐야 했다.

운명을 틀어 지찬에게 예측하지 못한 상처가 생겼을 땐 한성까지 아팠다. 마치 제 잘못인 것처럼, 자신에게 생긴 상처처럼, 오히려 그보다 더하게 아파했었다.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이 운명이거늘, 그것이 그들의 인생이었거늘.

자신의 욕심 때문에, 그 아이의 웃음을 거둬 가는 것이 못내 마음 아파 망설였던 것이 그런 사달을 낸 것이다.

그래서 쉬이 말하지 못했다.

너의 가족을 망자의 길로 인도하던 날, 그들이 길의 끝까지 가서도 모두 네 걱정으로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뒤를 돌아봤다고.

그러니 너는 조금 더 내려놓고 살아가도 된다고.

애초의 잘못은 내게 있으니, 그들 역시 너를 자신의 가족으로 생각하며 마지막 걸음을 마지못해 건넜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그 아이는 내가 잘 지켜 낼 것이다. 걱정하지 말아라.’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꼭, 부탁드려요. 사자(使者)님께 드려도 될 부탁일지는 모르겠지만, 지켜 주신다고 하셨으니 믿을게요.’

‘형아 혼자…… 혼자예요. 무서울 거야.’

홀로 아프지 않게 무섭지 않게 잘 지켜 내겠노라 약속했던 그 모든 것이 그 아이가 반려의 운명을 깨닫고 나자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 같았다.

겨우 품 안에 안아 든 제 아이를, 이제야 품어 보고 보듬어 보던 아이가 다시 떠났다.

‘지독하고 징그러워…….’

낯선 눈빛으로, 날이 선 감정으로 울먹이던 목소리로 원망하고 또 원망하면서.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 아이를 안타까이 잃은 내게 주는 신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반려의 운명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기에 너를 흔들고, 나를 흔들고,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하고, 매번 휘둘리게 만드는 걸까.’

상념에 잠긴 한성을 바라보던 해가 조심스레 다가와 손을 포개어 올렸다.

“한성 님, 반려 님을 데려오세요. 아파도, 괴로워도 이젠 한성 님의 반려잖아요. 멀리 있으면 닿질 못해 더 아프실 거예요. 아시잖아요. 한성 님도 아프셨으니, 아시잖아요.”

해는 눈물이 울컥 솟아오르려는 것을 꾹 눌러 참았다.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 그리고 그 잃어버린 시간과 ‘무언가’를 다신 찾지 못한다는 것.

달과 해도 잘 알고 있다. 사무치는 그리움에 같은 자리를 맴돌며 기다려 봐도 오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누군가를 있는 힘껏 때리고, 원망하고, 아프게 꼬집더라도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이 될 게 분명했다.

한성과 자신들도 그래 왔으니 말이다.

앞으로 쭉 견뎌 내야 할 모든 것들에 대해서.

“겁이 난다. 해야, 겁이 나.”

‘나를 원망하고 할퀴는 것은 괜찮아. 하지만, 그 아이 자신을 스스로 갉아먹고 있을까 봐 그것이 너무 겁이 나.’

한성은 지찬이 자기의 영혼을 갉아먹으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 너무 겁이 났다. 제 두 손 위로 포개어져 올라온 작은 손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그걸 지켜보셔야 해요. 그래야 반려 님을 다시 안아줄 수 있어요.”

그것이 설령, 한성 님의 영혼까지 아프게 하더라도.

“그건 한성 님만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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