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30/60)

30화

지찬의 말에 일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서로 눈치를 보다 속살거리는 목소리가 웅성거리면서 들려온다.

“아직 모르신 거 아니야?”

“그럴 리가, 반려 되시면 다 아시는 거 아니었어?”

“한성 님께서 말씀을 안 해주신 거 아닐까?”

“그럼 어떡하지? 한성 님한테 혼날지도 몰라.”

“대체,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좀 알려 주시겠어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웅성거리는 그들의 말소리를 가만히 듣다가 한 자, 한 자 씹어뱉어 냈다.

“죄송합니다. 반려 님. 알고 계시는 내용인 줄 알고…….”

“아뇨. 죄송하실 건 없으니 말씀하세요.”

딱 잘라 말하는 지찬의 모습에 아까 말을 건네던 이가 헛기침을 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 자세한 것은 한성 님께 여쭤보시는 게 더 나으실 것…….”

“한성이 제게 말하려 했다면 저는 진작 알고 있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어쩐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 지찬은 짜증이 솟아올랐다.

‘뭔데 다들 숨기려고 안달이지. 아니, 한성은 대체 왜 내게 말하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그랬다. 늘 중요한 무언가는 쏙 빼놓고 제게 얘기를 하는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처음 반려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그리고 그 후에 현무나 해에게 들은 이야기, 방금 저와 나누었던 과거의 이야기 모두.

‘무언가’ 빠져 있었다.

“사실은…….”

“아뇨. 됐습니다. 역시 한성에게 직접 듣는 것이 좋겠네요.”

왜 내게 자꾸 숨기는지, 언제까지, 어디까지 숨기려 할지.

가슴에 돌덩이가 얹힌 것처럼 숨이 막혀 왔다.

그때 타이밍 좋게 한성과 해가 함께 뒤뜰로 나와 지찬에게 알은체를 했다.

“이야기는 조금 나누었느냐.”

“반려 님, 뜰에 계셨군요.”

“인사는 이쯤이면 된 것 같고, 모두 돌아가 주시겠습니까.”

싸늘한 지찬의 목소리에 한성이 의중을 살피려는지 빤히 바라봤다.

일단 모두 사라지면, 그때.

속으로 곱씹었다. 혹여나 다른 생각이 물밀 듯이 떠밀려와 한성이 변명 한 글자라도 생각해 낼 시간을 줄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이들이 하나둘 눈치만 보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순식간에 텅 빈 뜰에는 한성과 해, 그리고 지찬뿐이었다.

“반려 님, 무슨 일 있으셨어요? 혹시 저들이 무례하게 굴었나요?”

“아뇨. 오늘은 해님도 그만 돌아가 주셨으면 합니다. 한성과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예상치 못한 지찬의 반응에 해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동그란 눈망울로 한성과 지찬을 번갈아 바라보다 꾸벅 인사하고 사라지자 둘 사이엔 적막만이 감돌았다.

“무슨 일이 있든 게야? 그대가 이리 나오니 덜컥 겁이 나는구나.”

평소처럼 몸을 부대껴 가며 장난스럽게 다가온 한성을 밀어내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심상치 않은 지찬의 분위기에 자세를 바로 했다.

“처음 각인한 날 기억해요?”

“그럼, 그 일을 어찌 잊겠어.”

“내가 했던 말도 기억해요?”

“각인하자고 했던?”

“말하기 불편하거나 싫어도 나한테는 알려 줘야지. 아무것도 모르고 당신이 말하는 영원과 가까운 삶을 살 순 없잖아요.”

“반려 님.”

“맞아요. 나 그쪽 반려야. 그쪽 반려라며, 근데 왜 나한테 숨기는 게 그렇게도 많아요?”

“무슨 내용인지 알아야 내가 말을 해줄 게 아니냐.”

자꾸만 목소리가 높아져 가는 지찬을 달래려 한성이 조심스레 손을 잡았다. 하지만 곧장 뿌리치고 쏘아보는 지찬의 눈빛에 한성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반려의 운명, 뭡니까.”

“뭐?”

“내가 모르는 게 있잖아요. 반려의 운명이라는 게 뭐냐고요.”

“…….”

입을 굳게 다문 한성의 모습에 지찬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네가 아플까 봐.”

“아픈 건 내 몫이에요.”

맞다. 아픈 것은 당사자의 몫이 맞다. 하지만, 그런 그를 덤덤하게 지켜볼 수 있으리란 장담을 하지 못하겠다는 게 더 정확했다.

그래, 네가 아플까 봐는 어쩌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반려는…….”

어쩐지 싸늘한 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딸랑거리는 풍경의 소리마저 한성을 질책하는 듯했다. 곱고 예쁘던 그 소리가 어쩐지 가슴을 후려치고 있었다.

“반려의 운명은…… 홀로 태어난다.”

“혼자?”

“그대들에겐 가족이 없어. 엄밀히 말하자면, 존재하지 않는다.”

“난, 가족이 있었어요.”

조금씩 떨려 오는 지찬의 목소리가 한성의 입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원래 명이 짧은 자들에게 너를 끼워 맞춰 세상에 두는 게지.”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지찬은 입술이 바짝 타오름을 느꼈다.

“그대의 가족은 아니야. 반려는 철저하게 혼자가 되는 운명을 타고나지. 그래야만 세상의 미련이 깊지 않기 때문에 반려로서 살아갈 수 있거든.”

“하…….”

눈앞이 새까매지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온다.

“그들이 빨리 명을 달리한 것은 그냥 그들의 운명이었던 게야.”

순간적으로 강하게 욱신거리는 가슴 밑을 부여잡았다.

‘여기 상처가 이렇게 있는데, 아직도 아픈데.’

지찬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가족의 연으로 태어났다기보단, 그대를 세상에 끼워 맞추기 위한 하나의 방법…….”

“그만. 그만, 해요.”

“지찬아…….”

“부르지 마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마.”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려 와 제가 느끼기에도 볼썽사나웠지만, 자꾸만 숨이 막혀 말 한마디 내뱉기가 힘이 들었다.

“그럼, 나는…… 가족도 뭣도 없이 그렇게 혼자인 운명이었다고요?”

“네 친구 역시 곁을 떠날 운명들인 게지. 이곳을 떠날 운명. 잠시 찰나에 스친 인연치고는 꽤 깊은 관계를 맺었더구나.”

“운명, 운명이 뭔데…… 운명, 그딴 게 다 뭐라고.”

굳이 함께 있던 이들의 죽음을 보면서까지 상실감을 느끼게 해야 했던 그 운명이라는 게 뭐라고.

“애초에! 날 그냥 혼자 태어나게 했으면 된 거잖아. 내가 나를 깨닫기 전부터 날 혼자 뒀으면 된 거잖아! 왜, 왜! 이십 년을 곁에 두고 온 마음을 다 주게 하고서…… 왜, 그러고 빼앗아 가요. 왜…….”

결국엔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아닐 거야. 아닐 거다.’

지찬은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 자신만 철저한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어.’

이십 년 가까이 서로를 보듬고 지내왔던 모든 것을 거짓으로 만드는 이 상황이 진실일 리가 없다.

자신을 세상에 혼자 버려두기 위해 끼워 맞춰진 거라니.

“기적이라는 게 있는 거잖아요. 애초에 내가 없었으면 더 살았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인 거잖아!”

“아니, 아니야. 지찬아.”

“신이 왜! 신이 왜…… 왜!”

주먹을 틀어쥐었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는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눈앞은 눈물로 한 치 앞도 보이질 않았다.

“미안하다…….”

“하지 마!”

낮게 읊조리는 한성의 목소리에 불덩이 같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무것도 하지 마. 당신은 아무 소리도 내지 마.’

벌떡 일어나 서자 눈앞이 핑글 돌아 휘청거렸다.

그런 지찬을 잡으려 한성이 손을 뻗었지만, 벽을 짚은 채 다가오지 말라는 듯 손을 들어 보이는 모습에 그는 올렸던 손을 멈췄다.

“지독하고 징그러워…….”

울컥 울음이 토해져 나왔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걸 깨달은 병실 안의 제 모습이 떠올랐다. 기억이 퇴색되고 지워질 만도 하건만, 혼자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 버린 그때의 그 시절은 가슴의 상처에 각인된 것처럼 찾아와 눈앞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조금 더 오래 살게 됐어요. 엄마, 우리 가족들의 몫을 내가 전부 받았나 봐.’

얼마 전까지 가족의 몫까지 충실하게 살아 내겠다고 다짐했던 게 떠올랐다.

따뜻하고 투박했던 손으로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던 아버지, 다른 형제와 마찬가지로 투덕거리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우애 깊었던 제 동생까지.

‘신은 정의의 사도가 아니야.’

쾅!

‘정의의 사도가 아니란 건 나도 알겠어.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

문을 있는 힘껏 내려쳤다. 주먹이 얼얼한 것보다 숨통을 막고 있는 울음과 현실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나와 집으로 향했다. 끝도 없이 토해지는 울음을 눌러 담고 무작정 집으로 향했다.

길을 걸으면서도 터져 나오는 울음에 걸음을 멈추길 여러 번, 집에 도망치듯 들어왔다.

자신이 가족을 잃고 이 어둠이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렸단다.

철저하게 혼자가 된 자신이 반려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게 신이 짜 놓은 인생이라고.

가슴에 뜨거운 덩어리가 막혀 있는 것 같아 터벅터벅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차가운 물이 시끄럽게 쏟아져 나오고 욕조 안으로 들어가 온몸을 적셨다.

옷 위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어찌나 아픈지 또 울음이 터졌다.

지찬은 머리카락을 적시고 얼굴을 때리는 물줄기 아래서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두 다리가 떨려 주저앉자 금세 차오른 물이 찰랑거리며 바깥으로 흘러넘쳤다.

형용할 수 없는 지찬의 감정이 넘실거리며 그 작은 공간을 가득 채울 것처럼 계속해서 끊임없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온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운데 얼굴만 뜨거웠다. 아무리 찬물을 뒤집어써도 멈추지 않고 흘러나오는 눈물이 뜨겁고 아파서 두 손으로 가린 채 지찬은 하염없이 비명을 질렀다.

‘너를 갉아먹는 일이니까. 한성 님을 믿어 봐.’

‘저 위에 신이 병신이지. 한성 님의 잘못은 아니잖아.’

그제야 현무의 반려가 제게 하려던 말의 뜻을 알 수 있었다.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죽음을 마주해야 할지 자신도 모른다던 그녀 역시, 반려의 운명을 받아들였겠지.

‘미안하다…….’

‘네가 아플까 봐.’

저보다 더 아픈 눈으로 말을 꺼내던 한성이 떠오르자 두 주먹으로 물을 내려쳤다. 철썩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물이 욕실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하지 마…… 흐윽…….”

‘내 인생을 거짓이라고 하지 마. 내 가족을 모두, 아니라고 하지 마. 운명이라고 하지 마.’

“제발, 제발 미안하다고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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