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28/60)

28화

“그자는 떠났어. 달아, 그자와는 달라. 내가 알아.”

“알긴 뭘 알아! 언니는 벌써 잊었어? 괴물이 되어버린 호랑이를 피해 손톱이 벗겨지도록 나무를 올랐어! 입을 막고, 숨을 참고, 눈을 감아도 결국엔 찾아내 우릴 찢어 죽인 놈이 바로 저놈이라고!”

달이라고 불린 아이의 말에 한성이 숨을 토해 냈다.

방금 제가 들은 말이 무슨 말인지, 저 아이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슨, 무슨 소리냐.”

“모른 척하지 마. 네가 아니어도 네 동무였겠지.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물어뜯고 찢어발기고! 모든 것을 부쉈어. 혼자 죽지 못해 괴물로 변한 네놈들이! 바로 이곳에서!”

“읏…… 달아…….”

한성의 온몸이 벌벌 떨려 왔다. 폭주했던 다른 신이 있었단 말인가. 그자가, 이 아이들을.

‘그럼, 내가 지금 하려고 했던 짓은. 그자와 다름이 없잖은가.’

죽음을 포기하고, 괴물이 되려고 자처했던 자신의 선택이 또다시 이 아이들을 죽일 뻔했다. 그리고 또 다른 희생을 만들어 내려고 했단 사실이 믿을 수가 없었다.

한성이 그리도 아끼던 아이 역시 신들의 욕심으로 희생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원망하고 원망했던, 자신의 소중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앗아 갈 만큼 이기적이기만 했던 신의 과오를 자기 스스로 반복하려 했다는 사실이 소름 끼치게 무서워졌다.

그때, 달의 뒤에 앉아 있던 해의 몸뚱이가 풀썩 기울어지며 쓰러졌다. 아까 옮겨 간 검은 연기가 이미 아이의 몸집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언니!”

쓰러진 해의 몸을 붙잡고 연기를 날려 보려 손짓을 해봐도 흩어졌다 다시 제자리로 오길 반복했다. 검은색으로 일렁이는 것은 점차 몸집을 부풀려 갔다.

한성은 그 모습에 놀라 달려갔지만, 달의 날카로운 함성에 저지당했다.

“오지 마!”

“그대로 두면 위험…….”

“위험한 걸 알면서 왜 그랬어! 왜! 너희는 언제까지 우릴 괴롭혀야 속이 시원해!”

“아이야, 내가…… 내가 하마. 내가 구해 주마.”

“자신도 구하지 못한 짐승이, 누가 누굴 구한다고?”

“저 검은 것만 내가 거두어 가마.”

죽은 자의 영혼이라 더 쉽게 물드는 연기에 달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한성에게 곁을 내줬다. 여전히 못 미더운 짐승이었지만, 의지할 수 있는 단 하나밖에 없는 언니를 잃는 것이 더 끔찍하게 싫었다.

달은 씩씩하게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 내고 한성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한성은 손을 펼쳐 해의 이마 위를 짚었다. 검은 연기가 불룩 튀어나와 요동을 치는데도 한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집중했다.

사방이 고요해지고, 스산하게 불어오던 바람 소리마저 멈췄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한성의 모습을 숨죽여 바라보는 것 같았다.

가슴속에서 울렁거리며 파도치는 무언가를 조금씩 몸 전체로 퍼뜨리자 따뜻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한성 님, 한성 님!’

아이와 함께 달과 별을 벗 삼아 마을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올랐던 때가 떠올랐다. 미성의 목소리가 한성을 달콤하게 불렀었다.

‘저것 좀 보셔요. 참으로 곱지요?’

말갛게 웃는 얼굴로 아이는 한성을 향해 작은 입술을 움직였다.

‘동틀 무렵,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저기에서 해가 빠끔히 고개를 들어요.’

작고 여린 손가락으로 가리킨 그 너머엔 아직 새까만 어둠뿐이었다. 아이는 그 어둠을 지나 동이 트기만을 바랐다.

‘붉은 머리가 요렇게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 하늘이 어찌나 예쁘게 물드는지, 한성 님께 꼭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아직은 새까맣게 어둡기만 하구나.’

‘원래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해요. 그 빛이 너무 강해서 달과 별의 빛이 닿지 못해 그런 거라고.’

‘재주만 좋은 줄 알았더니, 머리도 비상하구나.’

‘스승님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이리 저를 띄워 주시는 분은 한성 님밖에 없을걸요?’

‘그럴 리가, 네가 얼마나 영특한 아이인지 이 마을의 모든 이가 입을 모아 칭찬하던걸.’

막 떠오르기 시작한 해보다 더 붉은 얼굴로 수줍게 미소 짓던 아이였다.

‘한성 님, 저는 그리 생각해요. 가장 찬란한 순간의 전엔 늘 이렇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이 있을 거라고.’

맑은 눈망울을 빛내던 아이는 해보다, 달보다, 별보다 더 밝게 빛났다.

‘그래서 저는 하나도 두렵지 않아요. 한성 님, 혹시나 신이 되는 고행길에 어둠이 있더라도 꼭 이겨 내셔야 해요. 저렇게 찬란하게 빛나는 해를 만나실 게 분명해요. 믿어요.’

작은 주먹을 꼭 쥐고서 한성을 믿노라며 설레는 표정으로 기쁘게 웃었다.

‘나는 어찌도 이리 가슴이 아픈지, 그때의 나는 네게 무어라 답했던가. 아니,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구나.’

그저 아이의 고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속으로만 되뇌었다.

‘그래, 내게 가장 찬란한 너를 만나러 오마.’

하얀 빛무리가 한성의 몸 전체를 감쌌다. 은은하게 피어오르던 빛이 일순간 소리 없는 폭발을 만들어 냈다.

-신이 되기로 한 자, 이 모든 것들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낯선 목소리가 한성의 귓가를 울렸다.

-네가 아끼던 그 아이의 희생도, 지금 너의 앞에서 사라져 가는 영혼의 무게도 감당할 수 있겠느냐.

한성은 고개를 떨궜다.

‘그 아이의 희생은 내가 감히 감당할 것이 못 됩니다. 찬란할 순 없겠지만, 살아내 보고 싶습니다. 이 끝이 어찌 되었다더라, 네가 없는 생은 전혀 찬란하지 못하였느니라, 꼭 그 아이를 만나 투정 부릴 겁니다. 그때까지만, 제 앞에 있는 아이들을 거둘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어둑해지는 산중을 하얀빛이 밝히고 눈부심에 눈을 질끈 감았던 달이 눈을 떴을 땐 한성의 모습이 바뀌어 있었다.

생김새가 바뀐 것은 아니지만, 한동안 바깥을 떠돌기만 해 더럽고 상처투성이였던 그의 몰골이 깔끔하게 변모했다.

방금 막 단장을 끝마친 것처럼 새 비단옷과 윤기 나는 머리카락, 남자치고 고운 피부 결이 그러했다.

해 역시 그녀를 감싸던 검은 연기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누워 있는 표정은 편안했다.

“미안하구나. 어리석었던 나 때문에.”

“아니에요. 나리가 절 구해 주신 거잖아요.”

어느새 눈을 뜨고 한성을 올려다본 해가 빙긋이 미소 지었다.

“나는 널 구한 게 아니야. 원래 내게 있어야 했던 것을 거두어 갔을 뿐이지.”

“혹시 다시 검은 것에 먹히시는 건 아니지요?”

“그렇진 않을 게야.”

한성은 씁쓸하게 웃었다.

“너희가 있기엔 이곳은 너무 쓸쓸하지 않으냐. 가는 법을 모른다면 내가 안내해 주마.”

“아뇨. 저희는 기다리고 있어요.”

해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무엇을?”

“음, 잘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부터 희미해졌거든요. 그냥 무언가를 기다려야만 할 것 같았어요.”

달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해의 얼굴은 여전히 천진난만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던 달이 고개를 휙 돌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입술을 꾹 깨물고는 단 한마디도 없었다.

“원래 망자의 기억이 그렇지. 그래도 오랫동안이나 이곳에서 버텼구나.”

“해와 달이 뜨는 것을 번갈아 세면서 그렇게 지냈어요. 무섭긴 했지만, 누군가 꼭 데리러 올 것만 같았거든요.”

이 작고 여린 아이들이 기다리던 것은 아무래도 제 어미였던 모양이다. 찰나의 시간처럼 한성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모습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어둡고 음습했던 그날 밤 역시, 엄마를 기다리다 두 손을 꼭 잡고 산 중턱까지 올라 마중을 나간 자매였다.

달이 유난히도 희고 밝았던 그날 밤, 제 어미를 기다리며 산을 오르다 헐떡이며 쓰러져 있는 그림자를 보고 놀라 도와주려 했던 어린 자매.

사람도 호랑이도 아니었던 악귀의 모습이나 다름없었던 폭주한 신의 무자비한 손에 그렇게 아까운 목숨을 둘이나 희생당했다.

그리고 한성 자신이 그런 악귀가 되어 이 불쌍한 영혼들의 마음을 다시 할퀼 뻔했다는 사실에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 아이를 잊지 못해 살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더니, 똑 닮아 맑게 빛나는 어린 눈동자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조금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긴 것 같았다.

‘그대도 그걸 원하나? 내가 짐승만도 못한 괴물이 되어 천지 분간 못 한 채 날뛰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어떻게든 조금 더 꾸역꾸역 살아남아 그대를 만나러 가는 날만을 그리워하는 게 좋겠는가. 그래서 이 아이들에게로 이끌어준 것은 아닌가.’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 누군가 팔을 톡톡 건들었다. 옆을 바라보니 해가 풍경을 주워 들고 한성에게 건네고 있었다.

“나리께 소중한 물건이지요? 소리가 참 맑고 고와요. 분명, 나리도 이 풍경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다시는 검은 것에 나리를 내주지 마셔요.”

눈물이 한두 방울, 방울져 내리다 이윽고 멈출 수 없을 만큼 쏟아졌다.

‘그대는 내가 참으로 못나 보이겠구나. 늘 내 걱정만 하던 그대에게 마지막까지 큰 짐을 지게 했는가 보다. 나는 이렇게나 어리석고 한심하기만 한데.’

손안에 들어온 작은 풍경을 가슴으로 안고서 한참을 울고야 말았다.

조금 더 살아 보겠노라, 다짐했다. 그대가 내 걱정을 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져 꼭 다시 그리운 그 얼굴을 보러 가겠다고.

“나를 따라가지 않겠느냐.”

여전히 한성의 곁을 지키고 선 두 아이를 바라보며 말을 했다.

“영으로는 그리 오래 떠돌지 못한다. 저승으로도 가지 못한 길 잃은 영은 언제고 사라지게 되어 있어. 나를 따라오너라. 조금의 생을 더 나누어주마. 너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때까지, 혹은 그 미련이 사라질 때까지.”

“저는…… 좋아요. 사실 이곳은 조금 무서워요. 하지만, 그래도 기다려야만 할 것 같아서.”

“언제든 이곳에 와도 괜찮다.”

“난 싫어. 저런 멍청한 신 밑에 있으면 나도 멍청해질 것 같단 말이야.”

“달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래도 나리께서 우리 생각해서 해주신 말인데, 그리고…… 우리가 갑자기 사라지면…….”

“달이라고 했느냐.”

“흥.”

“네, 달이어요. 저는 해, 그리고 이 아이는 제 동생.”

“이곳에 머물러도 괜찮다. 너희를 거두겠다 한들 너희의 자유까지 간섭할 마음은 없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사라지지 않고 머무를 수 있게 해준다면야…….”

이곳에 미련이 남은 것인지 달이 저 너머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한성은 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일어섰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감았다.

‘아이들을 거두게 해주십시오. 이 아이들에게 주었던 상처까지, 모두.’

신이 되고자 했던 자들에게 처음 각성을 하고 나면 자신의 곁에 둘 신수를 선택할 기회가 생긴다.

그 고행길이 너무 길고 지쳐 신이 된 자의 곁에 남는 이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부리는 신수가 있는 신은 거의 없었다.

‘나의 마지막과 처음을 지켜봐 준 이 아이들에게 조금의 시간을 더 나누어주고 싶습니다.’

한성의 간절한 기도에 어두운 산중에 두 줄기 빛이 내려와 아이들의 몸을 감쌌다. 투명하게 사라지던 영혼은 다시 제 색깔을 찾아 오색 빛으로 물들었다. 그런 느낌이 신기한지 해는 연신 제 손을 오므렸다가 피길 반복하며 빙그르르 돌았다.

“와! 신기해요!”

“호들갑은.”

달은 그저 가만히 앉아 등을 돌린 채였지만, 슬그머니 손을 들어 얼굴을 만지작거리는 것이 못내 귀여웠다. 아직, 아이였다.

“근데, 점점 추워요. 하아, 와! 입에서 하얀 것이 나와요! 이것도 요술인가요?”

“바보야, 그건 입김이야. 날이 추우니 나는 것이지.”

“하지만, 우린 여태 그런 것이 없었잖아!”

“추위를 못 느꼈지. 사람이 아니니.”

아하, 깨달은 해의 끄덕거림에 한성이 피식 웃었다.

“달아, 이곳에 남을 게냐.”

“네.”

“그럼, 이 산 밑으로 거처를 정해야겠구나. 너희가 언제든 와서 쉴 수 있게.”

“저도 당분간은 달이 곁에 있을게요.”

한성이 새로운 거처를 만들어 그들을 다시 찾았을 무렵이 새싹이 돋아나던 봄, 어느 날이었다.

여전히 산중에 틀어박혀 서로를 의지한 채 산 아래를 바라보던 아이들은 한성이 다시 찾았을 때 기쁘게 맞아주었다.

아마도, 그날 이후 기다리던 누군가는 한성이 된 게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과거의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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