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과거의 이야기
얼마나 걸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이 걸음의 시작이 어디서부터 시작이 된 건지도 희미해졌고, 울부짖던 목소리마저도 잠잠해진 지 오래였다.
“제발 날…….”
낙엽은 바스러지고, 어느새 언 땅 위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만 갔다.
얼어붙은 땅이 한성의 발자국으로 녹아 들어갔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 버린 발걸음과 거친 숨소리에도 걸음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제발 날…….”
앙상하게 마른 나뭇가지들이 온몸을 긁어 왔다. 한성이 지나가는 자리는 불씨가 타오르다 꺼지길 반복했다.
메마른 표정, 모든 것을 놓아버린 허망한 눈으로 그는 애타게 찾았다.
‘내가 가는 길에 있기를. 제발.’
잔뜩 얼어붙은 얼굴에 다시 눈물 자국이 깊게 팼다. 울컥 솟아오르는 눈물은 하얗게 김을 뿜으며 흘러내리다 굳어버렸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인지도 모른 채 하염없이 걷던 두 다리가 풀썩 꺾였다. 땅을 짚어야 할 두 손은 무언가를 꼭 감싸 쥔 채 몸으로 나뒹굴었다. 무릎까지 올라온 눈밭에 그는 그대로 파묻혔다.
잊을 수 없었다. 한성의 온몸과 세포가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어찌 너를 잊고 살아남아 신이 된다는 말이냐.’
“제발 나를 죽여 줘…….”
미처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이 갈라진 입술 사이에서 쇳소리 같은 흐느낌으로 흘러나왔다.
스스로 목숨을 끊지도 못하는 기구한 생, 그깟 신이 뭐라고.
가슴속에 원망과 분노가 들끓는 용암처럼 폭발했다.
‘제발 누군가 나를 죽여 주오. 가진 힘과 내 생까지 모두 드릴 터이니 보잘것없는 나의 목숨 하나만 가져가시게.’
눈밭에 파묻혔던 한성이 두 팔을 바들거리며 들어 올렸다. 잔뜩 얼어 굳은 두 손 사이에 쇳덩이 하나가 소중하게 숨겨져 있었다.
억지로 손을 떼어 내 왼쪽 손가락에 걸린 물건이 툭 쳐지면서 맑은 풍경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적막한 깊은 산중에선 들어 볼 수 없는 그런 청아한 소리가.
‘이게 바로 한성 님이에요.’
‘내가 이리 생긴 게야?’
‘하지만, 소인의 부족한 재주로는 한성 님의 전부를 담을 순 없더라고요.’
‘부족하긴, 나는 마음에 든다. 이걸 만드는 내내 나를 떠올려 준 게 아니더냐?’
‘이걸 만들지 않아도 떠오릅니다. 시시때때로 제 머릿속을 얼마나 어지럽히시는지 모르실 겁니다.’
이 소리만큼 맑은 눈동자로 수줍게 바라보던 아이의 얼굴이 가슴을 찌르는 칼날처럼 관통했다.
‘네가 준 이것을 이렇게밖에 쓰질 못해 미안하구나. 그 사과는 네게 가거든 그때 하마. 부디 내치지 말거라.’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풍경의 추를 뒤흔들며 사라졌다. 어쩐지 애달프게 들리는 풍경 소리에 한쪽 팔로 얼굴을 가리며 터져 나오는 울음을 내뱉었다.
‘이것밖에 안 되는데, 신이라는 허울 좋은 탈을 뒤집어쓴 짐승밖에 되질 않는데.’
한번 왈칵 터져 나온 울음은 끝도 없이 메아리쳤다.
더는, 이제 더는. 너 없이 사는 생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풍경을 들고 있던 나머지 팔 한쪽도 힘없이 바닥에 툭 떨궜다. 스산하게 마른 가지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전부였다.
그때, 바스락거리며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풍경 소리를 듣고 온 산짐승인가. 아니, 산짐승이었다면 오히려 도망가고도 남았을 텐데.
천천히 팔을 들어 기척이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빼곡하게 들어찬 나무 사이에 몸을 숨긴 어린아이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한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리가 낸 소리여요?”
힘없이 누워 있는 한성을 보고 용기가 생겼는지 아이가 한 발짝 앞으로 나와 말을 건넨다. 그런 아이를 보고 한성은 다시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봤다.
나약하고 어린 아이다. 자신을 죽여 줄 수 있을 만한 이가 아니었다. 미련 없이 눈을 감은 한성의 귓가에 사박사박, 조심스레 눈을 밟으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인지 다시 내 주시면 안 돼요?”
바로 옆까지 다가온 아이가 풀썩 주저앉아 한성의 손에 엮여 있는 풍경을 발견하고 손을 뻗으려 할 때였다.
“가거라. 위험한 산중에 어찌 어린 너 홀로 있는 게냐.”
“혼자는 아니에요. 달이와 함께인데.”
한성의 낮고 탁한 목소리에 움찔한 아이가 손을 거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져 봐도 되나요? 딸랑딸랑, 고운 소리가 너무 예뻐요.”
“기다리는 이에게 가거라.”
“나리는 누구를 기다리나요?”
제 안방처럼 주저앉아 재잘재잘 묻는 아이의 목소리에 눈을 뜨자 바로 앞에서 한성의 얼굴을 조목조목 뜯어보고 있는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계집아이의 눈은 참 맑기도 했다. 마치, 그래. 그 아이처럼.
눈밭을 걸어온 아이치고는 멀끔한 모습에 한성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산 사람이 아니로구나.
“너는 나를 죽여 줄 수 있느냐.”
아이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동그란 눈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일렁였다.
“아니요. 아니어요. 저는 그저 고운 소리에 이끌린 것이지 나리를 헤치려는 마음은 전혀 없어요. 오해하지 마시어요.”
아니나 다를까 눈에 눈물방울이 맺혀 도르륵 흘러내린다.
‘저런 아이에게 무엇을 바란 것인가. 너의 손이라도 빌려 달라 말할까, 이미 산 자가 아닌 이의 손을 빌려 나를 죽여 달라고.’
그것도 그 아이의 눈을 닮은 어린 계집아이에게.
환멸을 느꼈다. 이미 죽은 자에게 목숨을 끊어 달라고 애걸해야 하는 괴롭고 속절없는 이 마음이. 과연 이 생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조차 모르겠다.
“가거라.”
내뱉는 한성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죽여 줄 수 없다면, 다른 이를 찾아야 한다. 이곳에 누워 시린 하늘이나 감상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었다.
잔뜩 굳어진 손을 꽉 쥐자 왼손에 엮인 풍경이 차갑게 손안으로 파고들었다.
“가! 썩 꺼지거라!”
“나리…….”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앉자 아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한성을 불렀다. 순간 일렁이던 분노가 터져 나왔다.
“죽지도 못하는 자를 불러 무어 한다고, 나를 조롱하는 게냐! 썩 꺼져!”
소리를 지르고 팔을 휘두르자 땅이 흔들렸다.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분노인지 모르게 온몸을 타고 올라와 잠식했다.
성난 고함에 산새들이 성급히 날아오르고, 천지 분간되지 않는 땅의 울음에 산짐승들이 몸을 숨기려 들썩였다.
그런 한성의 모습에 놀라 엉거주춤 일어나다 엉덩방아를 찧은 채 멍하니 올려다보던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당장 꺼져! 꺼지라고!”
쿵쿵, 심장이 터질 것처럼 요동쳤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맥박이 날뛰고 입에서 왈칵 피가 터져 나왔다.
무릎을 꿇은 채 바닥을 움켜잡아 보지만, 손안에 눈만 바스러지며 녹아 없어질 뿐이었다.
한성의 입에서 기괴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지를 비틀어 속 안이 사달이 난 것처럼 눈앞마저 깜깜해졌다.
‘제대로 각성하지 못한 신이 폭주하게 되면, 괴물로 변한다던 말이 사실이었나.’
제 몸을 타고 흐르는 모든 피와 고동이 거꾸로 처박혔다.
괴로웠다. 괴롭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너무 괴로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차라리 분노와 원망에 모든 몸을 맡기고 누군가 저를 죽여 주기만을 바랐다.
고운 뺨을 붉히며 수줍게 제게 풍경을 건네주던 아이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신으로 제대로 각성하거든 영원히 함께하자며 약조하려 했지만, 아이는 그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마을 전체가 역병에 걸려 순식간에 수많은 생명이 사그라들었다. 그 아이라고 예외일 것은 없었다. 그 아이의 운명이 아니었다. 예기치 못한 사고였다.
한성이 신으로 각성하는 것을 미루는 동안, 청룡이 될 뻔했던 이무기와 청룡의 대립으로 신지(神地) 내 그들이 방위하는 주변에 온통 말도 안 되는 천재지변이 난무했다. 하필 그 아이와 한성이 있던 곳도 그 범위에 속하는 곳이었다.
막을 힘도 없었다. 심지어 막을 힘이 있더라도 그가 손 뻗을 수 없는 구역이었다. 사방신의 위치가 그랬다. 동, 서, 남, 북을 조화롭게 살펴야 하지만, 제가 방위하는 곳이 아니라면 그 어떤 참견과 간섭도 허용되지 않았다.
‘진짜 신’이 그걸 원했기 때문이다.
한성은 소중한 이도 지키질 못하는 나약한 신이었다. 인간의 생이 그리 길진 않으니 조금만 더 지켜보겠다며 곁에 머물던 게 화근이었다.
차라리 빨리 신으로 각성하고 아이를 제 구역에 두고 지켜 줄 것을 그랬다는 걸 너무 뒤늦게 깨닫고야 말았다.
곱던 얼굴에 시름이 가득하여 초췌해진 모습으로 끝까지 한성의 걱정을 하던 아이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한성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으아아아아!”
명치 끝에서부터 뜨겁고 역한 기운이 순식간에 한성의 온몸을 잠식했다.
신의 반열에 올라 스스로 목숨도 끊을 수 없는 허울만 좋은 감투를 뒤집어쓴 짐승일 뿐이었다.
눈을 감기 전까지 한성을 지켜보던 두 눈이 아른거렸다. 피부가 흉측하게 썩어 짓물러도 한성을 바라보던 두 눈만큼은 세상 무엇보다 맑고 고왔다.
뒤늦은 후회에 몸서리치며 신의 자리를 포기하고 짐승으로, 괴물로 돌아가는 제 모습을 그 아이가 보지 않았으면 했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영혼으로 떠돌든, 저승에서 다음 생을 기다리든 그 아이는 이런 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몸이 점점 검은 기운에 휩싸이면서 한성은 부디, 멍청하고 나약한 신을 잊어주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왼손에 엮인 풍경을 풀어 바닥에 버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발목을 잡는 연약한 손길이 느껴졌다. 도망간 줄 알았던 계집아이가 제 발을 부둥켜안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어둡고 습한 기운에 닿은 손이 타들어 가는 모양새가 되어도 붙잡고 놓을 생각 없이 그렇게 매달려 있었다.
“제가 잘못했어요. 울지 마세요. 나리, 울지 마셔요.”
아이는 하얀 얼굴에 온통 눈물범벅이 되어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려도 계속해서 한성을 올려다보며 제발 울지 말라는 말만 되뇌었다.
‘운다니, 누가. 네가 아니고 내가?’
아이를 바라보던 한성이 두 손을 들어 펼쳤다. 덜덜 떨리는 손은 사방을 헤매고 다녔던 흔적으로 더럽고, 피떡이 되어 갈라진 채였다.
손을 들어 얼굴에 올리고 나니 그제야 뜨거운 물줄기가 느껴졌다. 제 영혼을 잠식하려던 연기는 작은 아이의 몸을 휘어잡기 시작했다. 약하고 여린 영혼일수록 어둠에 물들기 쉬웠다. 그 어둠이 그런 순수한 것을 좋아했다.
‘아프고, 괴로울 텐데 왜 너는. 왜?’
온몸을 휘몰아치던 검은 연기가 일순간 멈췄다. 계속해서 올려다보는 계집아이의 눈빛이 너무 맑다 못해 자꾸만 잊지 못하는 이를 떠올리게 했다.
툭, 가만히 서 있는 한성의 몸에 돌멩이가 부딪혔다. 다시 눈 속에 무언가 푹 파묻히는 소리가 들렸다.
미처 한성에게 날아오지 못하고 중간에 파묻힌 커다란 돌멩이를 바라보다 시선을 바로 하니 아까 작은 계집이 몸을 숨기다 나온 곳에 또 다른 아이가 서 있다.
아이는 입술을 꾹 물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어 가면서 손에 쥔 작은 돌덩이들을 하나씩, 하나씩 한성을 향해 던졌다.
눈물이 그렁하면서도 앙칼진 표정으로 돌을 집어 던지던 아이가 이윽고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눈밭을 뛰어왔다.
서로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한성의 발밑을 부둥켜안고 있는 아이를 떼어 내 뒤에 앉히고선 그 앞에 팔을 벌린 채 섰다.
“나쁜, 나쁜 호랑이. 한 번으로도 모자라 두 번이나 우릴 해하려 해!”
“아니야, 달아. 저 나리는…….”
“언니는 가만있어! 저렇게 울부짖던 호랑이가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거라고! 두 번 속지 말란 말이야!”
“달아…….”
“죽으려거든 혼자 곱게 죽어! 사람의 탈을 뒤집어쓴 짐승 새끼 때문에 왜 우리가!”
새된 목소리로 울먹임을 감추며 소리를 질러 대는 아이가 제 발치에 떨어진 풍경을 주워 들어 한성에게 던졌다.
“짐승만도 못한 괴물! 너야말로 썩 꺼져! 가라고!”
“아니야, 나리는 괴물 아니야. 울고 계시잖아. 아프시잖아.”
아이가 던진 풍경이 눈 속에 파묻히며 소리마저 감췄다.
짐승만도 못한 괴물이 맞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죽음을 갈구하던 저는 짐승만도 못한 괴물이나 다름없다. 이런 몰골로 대체 누구를 만나겠다고.
한성은 하얀 눈 아래 떨어진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 무릎을 꿇은 채 주저앉았다.
“네 녀석 때문에 우리는 이곳에서 셀 수도 없는 시간을 살았어. 짐승만도 못한 괴물로 변한 네놈 때문에! 우리는……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