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그때 지찬이 빠르게 한성의 몸을 밀어내며 눈을 가린 손을 치웠다. 퍽 소리가 날 만큼 때렸지만, 힘으로 밀린 게 아닌 순순히 물러난 것 같은 느낌에 지찬의 기분은 한층 더 나빠졌다.
“뭡니까!”
“정기를 나눠주려고.”
여전히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 한성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반려 다루기가 이렇게나 어려울 줄이야.’
“정기를 어떤 식으로 나누는데요? 꼭 눈을 가려야 해요? 뭐, 꼭, 뭐라도 할 것처럼…….”
“뭐라도 할 것처럼?”
“아니, 그냥 느낌이.”
“그러니까 그게 뭐를 말하는 거지?”
지찬은 입을 다물었다. 꼭 키스할 것처럼 그랬다고 어떻게 입 밖으로 꺼내겠는가.
물론 이 망할 호랑이는 제 속마음을 모두 꿰뚫고 있을 게 뻔했지만 말이다. 신이냐, 아니냐.
두 갈림길에 서서 자꾸 휘청거렸다.
신이라고 하는 자는 외제 차를 끌고 다니고, 도심에서 제일 유명한 호텔에 도착해 정기를 나눠야 한다고 한다.
삼십이 년 평생을 살면서 외제 차는커녕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어 본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솔직히 진짜 사이비 교주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지찬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모두 헛꿈을 꾼 거라고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기도 했다.
아마 머릿속으론 재고, 따지고, 온갖 상상력을 발휘하면서도 한성을 신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쫓아온 게 분명했지만 말이다.
“내리지.”
생각에 빠진 지찬을 두고 한성이 차 밖으로 빠져나갔다. 지찬은 혼란스러움이 잔뜩 묻은 눈빛으로 한성을 바라보다 따라 내려섰다.
말없이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한성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대로 호텔까지 쫓아가도 괜찮을는지 아직도 작은 의심이 꽃피었다.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한숨만 나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근데, 정말 피할 수 없는 일일까. 난 그저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단, 먼저 떠난 가족들을 위해서였긴 하지만 말이다.
일단 부딪쳐 보자는 생각에 지찬도 한성의 옆에 가서 섰다. 곧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34층 버튼을 누르는 손길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한성도 나름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포커페이스에는 변함없었지만.
“34층에 도착하면 내릴 수 없을 거야. 저번처럼 온몸을 짓누르는 아픔이 있을지도 몰라. 그게 바로 신의 영역이야. 그땐 주작 한 놈의 신력이었지만, 이곳엔 지금 모두가 모여 있어. 그 힘은 인간인 그대가 감당하기엔 아주 벅차. 그리고 난.”
가만히 숫자가 올라가는 걸 지켜보고 있던 한성이 천천히 몸을 돌려 지찬을 바라봤다.
“그대에게 입을 맞추고 정기를 나눌 거야.”
32, 33, 34. 띵-
34층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소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지찬은 저도 모르게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읏!”
문이 열리고 밀려 들어오는 압박감과 울렁거림에 도저히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들기에도 벅찬 중력감이 온몸을 내리찍고 있었다. 겨우 엘리베이터 안전바를 붙든 손도 나가떨어져 버렸다.
제 앞에 선 한성의 구두가 보였다. 숨을 쉬기도 힘들 만큼의 낯설고 이상한 감각이었다. 입을 열고 목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다시 한번 그때의 본능적인 두려움이 지찬의 깊숙한 곳에서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때 스르륵 엘리베이터의 문이 다시 닫히고, 막혔던 숨통이 한꺼번에 터졌다.
“헉, 허억…….”
바닥에 주저앉은 몸엔 여전히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바닥에 기운 없이 늘어진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대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신의 영역은 그 어떤 곳보다 위험하지. 그러기 위해선 그대가 나를 믿어야 해. 나는 그대를 반려로서 아끼고, 지킬 것이야. 그것에는 변함이 없어. 하지만, 그대가 나를 믿지 않는다면 나는 그대를 지켜 낼 수가 없어.”
처음으로 한성의 굳은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왜, 지켜 준다는 그 말이 자꾸만 절박하게 느껴지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자 한성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인간은 참으로 강하구나. 아니면 그대가 강한 것일까.”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은 한성이 한쪽 손을 들어 지찬의 턱을 잡아 올렸다.
“정기를 나누는 것뿐이야. 그러니 너무 기분 나빠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아까와는 다르게 다정하면서도 묘한 음성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한성의 입술이 가볍게 내려앉았다. 아랫입술을 빨아들이며 뜨거운 혀로 입술 사이를 가르고 들어왔다.
주춤하던 지찬이 밀어내지 않고 입을 살짝 벌리자 말캉한 혀가 파고들었다. 지찬의 치아를 훑고, 고개를 살짝 틀어 더 깊숙하고 틈이 없이 휘젓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뜨거운 무언가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느낌에 손을 들어 한성의 셔츠 깃을 움켜잡았다.
굳게 닫힌 엘리베이터 안 작은 공간에 입술 안에서 벌어지는 끈적한 마찰음이 채워지고 있었다.
순간 몽롱해지는 기분에 감은 두 눈을 찡그렸다. 호흡이 가빠 오고, 뒷골이 찌릿하게 울리고 있었다.
정기를 나누는 것뿐이라고 했는데, 지찬은 도저히 지금은 정기고 나발이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키스하는 상대가 남자의 육체를 가진 자라는 것도 까맣게 잊고서 움켜잡은 손을 풀어 한성의 목을 끌어안았다.
한성은 턱을 잡은 손을 풀고 부드럽게 뺨을 쓸어내리며 귓가를 지분거리기 시작했다. 나머지 한 손으로 엘리베이터 안전바를 잡아 지찬을 품 안에 가둔 채 계속해서 입술을 움직였다.
혀로 입안을 휘저으며 지찬의 혀를 찾아냈다. 뜨겁고 말캉한 혀가 엉키고, 조금씩 지찬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혀를 잡아 가두고 입술로 빨면서 다시 놓아주고, 다시 깊숙하게 파고들어 핥고 빨아 당겼다.
춥, 츄릅거리는 소리가 뜨거운 공기를 더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가슴께가 크게 오르락거리며, 한성이 그의 목선을 따라 가볍게 쓸어주자 움찔거렸다.
“하으, 읏.”
살짝 입술을 떼고, 반대로 고개를 틀자 지찬의 입에서 참았던 숨과 신음이 튀어나왔다.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숨결에 눈을 뜰 생각도 못 하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목선을 따라 쓸어내리던 손가락이 남방의 단추까지 내려왔다. 빗장뼈를 따라 가볍게 문지르자 지찬의 고개가 살짝 들어 올려졌다.
“흣!”
그리고 서서히 눈이 떠지자 한성이 지분거리던 손을 들어 지찬의 눈을 가렸다.
“……뭐, 합…… 니까.”
아직은 서로의 거친 숨소리만 들려왔다. 눈을 가린 채 말이 없는 한성의 반응에 지찬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한성…….”
안전바를 붙들고 있던 손을 들어 한성이 입을 가린 채 고개를 돌렸다.
도저히 지금의 제 표정을 지찬에게 보여 줄 수가 없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어디서 울컥 치고 올라오는 못된 감정이 두 눈을 자꾸 멀게 했다.
눈을 감은 채 손길에 반응하던 지찬의 모습을 보자 억눌려 있던 욕망 같은 것이 꿈틀거렸다. 아마 분명히 제 눈빛은 욕정과 욕심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을 게 뻔했다.
천천히 다가간다고 하고서 정기를 나누는 키스 한 번에 겨우 숨기고 억누른 소유욕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처음으로 불러 준 이름, 반려에게 처음으로 불린 제 이름.
조금 더 듣고 싶다. 조금 더 불러 줬으면 좋겠다. 조금만 더 입술을 탐하고, 살결을 매만지고 싶다. 끌어안고 나니 입을 맞추고 싶고, 입을 맞추고 나니 더한 것도 하고 싶어졌다.
반려에 대한 애착은 모두가 강하다. 하지만, 자신의 울타리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애착이 강할 수밖에 없는 한성은 그 깊이가 더 남달랐다.
그리고, 그 상대가 지찬이었기에.
그래서 자신보다 아주 찰나의 인생을 살아온 반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면서 자신의 세상으로 데려오고 싶었다. 물론, 반려의 인생엔 세상의 미련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알면서도 조금만 더 천천히.
“뭐, 하냐니까요. 이것도 뭐 의식 같은 겁니까.”
낮게 잠긴 목소리가 다시 한번 한성에게 파고들었다.
‘젠장, 이러려고 지켜보면서 참았던 게 아닌데.’
낮게 읊조린 한성이 지찬과 제 얼굴을 가렸던 손을 떼어 냈다. 지찬은 감겼던 눈을 뜨고, 깜박거리며 초점을 맞췄다. 흐릿하고 몽롱한 기분은 여전했다.
남자와의 키스라고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반려라 그랬던 건가. 오히려 더 좋았으면 좋았지.
지찬은 재빨리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지워 버렸다. 능글맞은 호랑이가 또 엿듣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하지만, 앞에 한성은 다른 생각에 빠진 듯 지찬의 그런 행동까지 알아채진 못했다.
“……그대가 부끄러울까 봐, 배려한 게지.”
약간의 텀을 두고 말을 꺼낸 한성이 지찬을 바라보며 의뭉스럽게 웃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부끄럽긴 뭐, 뭐가 부끄러워요. 정기를 나누는 의식! 뭐, 그런 거 아닌가요?”
귓가가 아직도 화끈한데 그 모습까지 들킬까 지찬이 소리를 버럭 지르며 일어섰다.
망할 그 정기에 묘한 약이라도 든 건지 여전히 몽롱하고 나른한 느낌에 휘청거렸다. 재빨리 그런 지찬을 붙잡고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럼, 한 번 더 할까?”
“아, 정말!”
지찬은 금세 벌게진 얼굴로 한성의 배를 가격했다. 그냥 본능적으로 내친 손이었지만, 이번에도 별 타격은 못 준 듯했다.
“윽, 아프구나.”
한 박자 느린 리액션에 지찬이 코웃음을 쳤다.
‘누굴 바보로 아나.’
취미지만 복싱을 배웠을 땐 나름 주먹이 맵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이건 신이라 그런가, 호랑이라 그런가. 별 타격을 안 받는 것 같아 괜히 약이 올랐다.
“배가 많이 아프니, 네 정기를 좀 나눠주는 건…….”
“망할 놈의 호랑이가!”
“허, 우리 반려 님은 너무 과격하구나.”
아픈 척을 하느라 살짝 숙인 상체를 바로 한 한성이 손을 들어 지찬의 얼굴에 가까이했다.
움찔 놀란 것도 잠시 입술을 쓸고 지나간 손가락의 느낌에 눈을 치켜뜨자 한성의 살짝 휘어진 눈매가 즐거워 보였다.
반려 님, 반려 님. 그 단어가 괜히 귓가를 간지럽혔다.
“입술이 반짝거리니 자꾸 눈에 들어오는구나.”
그 말의 뜻을 알아차린 지찬의 귓가가 다시 붉게 달아올랐다. 정기를 나눔이라고 쓰고, 키스라고 읽는 그 끈적했던 행위에 미처 삼키지 못했던 타액이 입술에 남아 있었나 보다.
한성은 멀쩡한데 자신만 자꾸 흐트러지는 것 같아 묘하게 기분이 울렁거렸다.
아마도, 신의 영역이기 때문일 거라고 애써 생각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