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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6/60)

6화

신을 적으로 돌리겠다니 미친 게 분명했다.

‘근데 자기들끼리도 막 싸우고 그러나.’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그 꼴 안 당하고 싶어서 지찬은 연회인지 뭔지 가겠노라 덥석 약속했다.

사실 약속하고서 1초 만에 후회했지만, 어쩐지 안도하는 듯한 한성의 눈빛에 취소라는 말이 덥석 내뱉어 지지가 않았다.

“하아…….”

생각해 보면, 그때 작은 새에서 산적으로 변한 그도 주작이라고 했는데, 신들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때 느꼈던 이상한 기분을 다시 느끼게 될까 두렵기도 했다.

특별히 자신에게 적개심을 드러낸 게 아니었는데도 도망치고 싶었던 그때의 그 떨림.

그게 바로 신인가. 하지만 매일 마주치는 한성은 그런 위화감이 전혀 없었다.

그래, 바로 위화감이었다.

지찬은 오랜만에 본사 사무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곧 회의가 있는데 앞에 켜 놓은 컴퓨터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반려라는 것은 취소를 못 한다고 했다. 아니, 안 한다고 했던가.

못 하든 안 하든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머지 반쪽이라는 호랑이가 전혀 자신을 놔줄 마음이 없는 듯한데 말이다. 따지고 보면 망할 호랑이라고 욕은 실컷 했지만, 그도 신이지 않은가.

“백호…… 하. 백호라…….”

“응? 호랑이? 지찬 씨, 왜 이렇게 호랑이를 찾아? 백호 보고 싶어?”

자신도 모르게 검색창에 백호를 치고 있던 것도 모른 채 넋이 나가 있는데, 옆자리에 입사 동기 송 대리가 그 모습을 보고 말을 걸어왔다.

“보, 보고 싶다니! 그딴 놈이 뭐가 보고 싶어.”

“놈? 누가 보면 철천지원수인 줄 알겠어. 호랑이 귀엽잖아. 덩치 큰 고양이 같고, 저번에 우리 애랑 동물원 가서 봤는데 의외로 겁이 많더라. 그때 진짜 웃겼는데.”

어깨를 툭툭 건들고 회의실로 들어가는 동기를 바라보면서 지찬이 뒷말을 곱씹었다.

“겁이, 많다라…… 겁이 많긴 했지.”

그리고 한숨을 푹 쉰 지찬이 노트를 챙겨 들고 따라 일어섰다.

* * *

하계 휴가 계획서를 작성하고서 퇴근한 지찬은 오랜만에 조용한 공원에 앉아 사색에 잠겼다.

딱히 어디 갈 곳도 없어 휴가가 썩 내키지는 않지만, 연회라는 것도 그렇고, 반려인지 뭔지에 대해 생각을 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도저히 일에 집중이 안 되니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있었다.

열심히 살아도 모자란 판에, 별 이상한 고민으로 골머리를 썩인다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커피 한 잔을 사 들고 어둑해져 가는 공원에 앉아 바람에 잔물결이 이는 호수를 바라봤다.

‘왜 하필 나일까.’

그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10여 년 전 했던 질문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었다.

화목했던 가족, 한 겨울밤의 끔찍했던 악몽.

지찬에게 남은 건 사고에서 살아남아 겨우 부지한 목숨 하나, 그리고 가슴의 흉터.

그리고 모든 걸 잃었다. 눈 떠 보니 모든 게 부서지고 사라진 상태였다. 작별을 말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었다.

병원에 누워 있는 사이에 가족들은 모두 작디작은 유골함에 모셔져 있었고,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살아갈 희망을 잃은 채 죽기만 바랐는데도 제 몸은 그 소원을 무시한 채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가족들의 목숨 값으로 받은 보험금이 입금되고 한참을 울었다.

유골함을 보면서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현실적으로 찍힌 통장의 냉정한 숫자를 보고서 터져 나왔다.

이게 정말 내 가족의 마지막이구나.

“후…….”

지찬은 욱신거리는 가슴의 상처를 옷 위로 쓰다듬었다. 아프지 않다. 아플 리가 없었다. 기억은 퇴색되어 가고, 희미해져 갔다. 하지만 그렇게 희미해지는 기억 속에서도 가장 강렬했던 순간만 진해졌다.

이제는 어디로 표출해야 할지 모르는 외로움과 고통에 찬 빈 함성을 삼켰다.

살아남은 자의 책임감, 그리고 죄책감.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나의 세상에 빈틈이 생겼을 뿐, 아무도 그것을 알아차리는 이는 없었다.

옆을 보니 어느새 하얀 개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한성과 함께 있던 개였으리라.

마치 곁에서 조용히 위로하듯 얌전히 앉아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무척 다정했다.

“너도 신이니.”

그 말에 하얀 개의 고개가 돌려졌다. 말없이 그저 바라보는 말간 눈동자에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해태다.”

앉아 있는 벤치 뒤에서 한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은은하게 풀 향기가 났던 거로 봐선 아마도 자신이 이곳에 있을 때부터이지 않을까 싶었다.

“해태? 그 경복궁 앞에 있는 석상이요?”

“응, 그 돌덩이는 상징적인 의미지. 그것이 본체이기도 하지만.”

“신수, 말하는 거죠. 그럼.”

“맞아. 신수라고도 표현하지.”

“개가 해태라니, 세상 참…….”

“끼잉.”

헛웃음을 짓는 지찬의 옆에 하얀 개가 불만이라는 듯 한성과 지찬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하지만, 지금 네 모습은 개가 맞지 않느냐.”

부드럽게 웃어 보인 한성이 하얀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마도 개라고 불리는 걸 별로 좋아하질 않는 듯했다.

“이름도 있습니까?”

“응. 해, 해라고 부르거라.”

“해……. 예쁘네요.”

“초야만 치르면 해와 대화도 통할 터인데…….”

“아, 진짜. 콱, 연회도 안 나가는 수가 있어요.”

“누가 뭐라 했느냐. 그냥, 그런 방법이 있다. 일러 주는 것이지. 흠.”

하얀 개는 금세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꼬리를 살랑거리며 일어섰다. 지찬도 한성을 힐긋 노려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내일인가요?”

“음, 세 시쯤 데리러 올 테니 그때 함께 가면 되겠구나.”

“난 아직 반려 한다고 한 거 아니니까, 허튼짓하면 가만 안 둬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선 지찬이 한성과 개를 한 번씩 바라보고 걸음을 옮겼다. 맥주 한잔하고 기절하듯 잠이나 자야겠다 생각하면서 집으로 향하자 한성은 더는 뒤따라오지 않았다.

* * *

지찬은 오랜만에 정장을 벗어 던지고 가벼운 남방에 면바지를 꺼내 입었다. 날이 더워 청반바지를 입을까 하고 들어 올렸다가 그만뒀다.

‘연회라고 하는데 한복 같은 걸 입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신들의 연회라는데 뭔가 거창한 느낌이 들어 옷 고르기가 까다로웠다.

뭐 입고 오라는 것도 없었는데 쓸데없이 괜히 고민하는 기분에 머리를 긁적이다 제일 무난한 옷을 껴입었다.

짙은 네이비 색 남방 단추를 잠그면서 거울을 바라보자 머리카락이 그새 자라나 눈을 찌르고 있었다. 대충 왁스를 비벼 머리를 정돈하고 시간을 확인하자 약속 시각이 다가왔다.

신발에 발을 욱여넣으면서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 참. 신의 연회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막혔다.

“이거 설마 사이비 아니야?”

알고 보니 네트워크 마케팅 뭐 그런 거 말이다. 이런 식으로 데려가서 감금하고 똑같은 소리 반복하면서 세뇌하는 사기꾼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면, 그랬으면 과연 그때 내가 겪었던 그 두려움은 뭐지.’

사이비라면 의자를 집어 던져서라도 탈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대충 그런 맘으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 집 앞에 서 있는 외제 차에 잠깐 멈칫했다.

‘설마, 아닐 거야.’

아니겠지 싶은 마음은 가볍게 무시하듯 까맣게 코팅된 창문이 스르륵 내려갔다.

“야, 타!”

‘미쳤냐, 백호랑이.’

지찬은 누가 들을세라 창피해 재빨리 옆자리에 올라탔다. 역시나 깔끔하게 맞춰 입은 듯한 정장을 입은 한성이 운전대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뭡니까?”

“뭐가 말이냐.”

“이 차요.”

“내 찬데?”

지찬은 방금 잘 정돈하고 나온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싶은 심정을 살짝 억누르며 다시 물었다.

“신이라며?”

“음, 신이지…… 신 맞지.”

“신도 차 몰아요? 그것도 이런 외제 차를?”

“그럼 요즘 같은 세상에 변신해서 날아갈까? 위성에 찍혀서 미사일 맞으라고?”

뭔가 반박할 수 없는 말에 지찬의 입이 다물렸다.

‘아, 진짜. 뭔가 사이비틱하단 말이야.’

“사이비가 뭔진 모르겠지만, 좋은 뜻은 아닌 것 같구나.”

“하, 속마음도 읽어요?”

“아니, 아닌데. 그런 적 없는데. 그럼 출발이나 해볼까.”

어이없는 표정으로 한성을 바라보던 지찬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하…… 내리고 싶다.”

어쩐 일인지 한성은 대답이 없었다.

“이거 속마음 아니거든요. 그냥 대답해도 되는 건데.”

“아…….”

“아, 는 무슨. 진짜 환장하겠네.”

사이비 느낌 물씬 나는 신과 함께라니. 빠르게 지나쳐 가는 바깥 풍경을 보면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지찬은 아무래도 단단히 잘못 걸린 듯싶었다.

그리고 수 분 후에 도착한 장소에 지찬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렸다.

“여기가 어디……?”

“호텔이구나.”

“호텔인 건 나도 눈이 달려서 알고 있거든요. 연회라면서요.”

“여기서 한다기에 온 게지.”

“시공 이동 이런 거 안 해요? 난 또 무슨 숲속이나 하늘에서 하는 줄 알았네.”

“우리 반려 님은 상상력이 풍부해서 재밌군.”

“하…….”

오히려 이상한 취급 하는 한성의 말투에 지찬이 픽 웃고 조수석 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잠깐, 가기 전에 해야 할 게 있어.”

“뭔데요?”

“지금 그 상태로는 위험해서, 임시방편으로 내 힘을 나눠야 한다는구나.”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잔뜩 경계하는 말투에 한성은 기어를 잡고 있던 오른손을 들어 지찬의 눈을 가렸다. 흠칫 떠는 움직임에 망설임 없이 그대로 몸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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