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ide story 01 (11/13)

차 소리가 들리자 인섭은 읽던 책을 덮었다. 무릎에 앉아 있던 고양이가 귀신같이 주인의 의향을 알아채고 비켜 주었다.

인섭은 현관으로 달려갔다. 문이 열리기도 전에 문을 열어 주자, 문밖에 서 있던 남자가 조금 놀란 듯 눈을 치떴다.

“말 안 듣네요. 누군지 확인하고 열라니까.”

“이우연 씨 차 확인한 겁니다.”

인섭이 창가를 가리켰다. 이우연이 넥타이를 끄른 후, 인섭을 끌어안았다.

“나 보고 싶었어?”

“…네. 보고 싶었습니다.”

사흘간 보지 못했던 것뿐인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난 기분이었다. 이우연은 인섭의 목덜미에 코를 묻고 숨을 들이켰다.

“일은 잘 끝내셨어요?”

“네, 덕분에.”

이우연이 고개를 들어 인섭에게 키스했다. 입을 맞추는 와중에 재킷을 벗어 소파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 그는 인섭의 허리를 번쩍 안아 들어 아일랜드 테이블에 올렸다.

“하아….”

한참 맞물렸던 입술이 벌어지자 인섭이 밭은 숨을 몰아쉬었다. 이우연이 가볍게 입술을 쪽 부딪치고, 아랫입술을 장난스럽게 깨물며 웃었다.

“깔끔하게 다 마무리됐어요. 이제 바쁜 일 없을 거예요.”

미성년자 때 일으켰던 폭력 사건 때문에 변호사가 제 법정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후로는 딱히 미국에 올 일이 없어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는 그사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유산 상속 문제까지 얽히고 만 것이다.

아들의 정신 병력을 문제 삼아 후견인으로 남으려던 어머니와 법적인 문제를 정리하느라 이우연은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한국에서 문제없이 생활해 온 기록과 수입을 증명하고 꾸준히 치료를 받은 서류까지 제출했다. 만에 하나를 걱정하는 변호사의 말에 이우연은 한국에 남아 있던 빌라를 정리해서 모두 기부해 버리고 말았다. 원래 가지고 있던 돈도 아닌 제가 번 돈을 기부했으니, 당연히 매우 아름다운 결말을 가져왔다. 그 사실을 전해 들은 어머니의 표정도 가관이었다.

딱히 돈 욕심 때문에 벌인 일은 아니었다.

“다행입니다.”

인섭이 이우연의 뺨을 다정하게 어루만졌다.

제 것을 모두 인섭에게 주고 싶었다. 어떤 형태로든 인섭에게 속하고 그와 얽히고 싶었다. 그러려면 신변 정리를 완벽하게 해 두어야 했다.

“주말 전에 다 끝난다고 했잖아요.”

인섭의 생일을 기념해 이번 주 주말에 스위스로 여행을 가기로 계획했다. 이곳으로 이사 온 뒤 근교로는 짧게 여행을 다녔지만, 본격적으로 떠나는 건 처음이었기에 인섭은 잔뜩 들뜬 상태였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이우연은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일을 마무리 짓고 돌아온 것이다.

“식사는 하셨어요?”

“별로 생각 없네요.”

“많이 피곤하실 텐데, 쉬셔야죠.”

인섭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남자는 피곤하면 자지가 선다던데.”

이우연이 인섭의 손바닥에 제 뺨을 비비며 입술을 대며 중얼거렸다.

“난 피곤하지도 않고 자지도 섰으니 어쩌죠?”

“…그….”

갑작스러운 발언에 인섭이 조금 당황한 듯 눈을 껌뻑였다. 이우연은 인섭의 뒷덜미를 끌어당겨 어리광을 피우듯 입을 맞추었다.

“…괜찮으세요?”

인섭이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없을 때 남자가 거의 잠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얼마 전이었다. 침대 옆 테이블에서 수면제를 발견해 이우연에게 직접 물은 것이다.

“거의 못 주무셨을 텐데….”

“섹스하고 자면 돼요.”

한 치의 물러섬 없는 성욕이었다. 인섭은 하는 수 없이 이우연의 목을 끌어안고 다시 입을 맞추었다. 이우연이 인섭이 입고 있던 니트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손끝에 걸리는 유두를 더듬어 비틀자 인섭이 아, 하고 얕은 신음을 흘렸다.

“피곤해요?”

이우연의 갑작스러운 질문의 의도를 몰라 인섭이 네? 하고 되물었다.

“인섭 씨 자지도 섰길래.”

이우연이 인섭의 다리 사이를 주무르며 말했다. 짓궂은 장난에 인섭의 얼굴이 새빨갛게 익었다. 이우연이 눈에 가느스름한 웃음이 걸렸다.

“올라갈까요?”

이우연의 물음에 인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인섭의 다리를 제 허리에 감게 하고 가볍게 들어 올렸다.

“안 떨어지게 꽉 잡아요.”

떨어트릴 리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이우연은 매번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인섭이 있는 힘껏 목을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보잘것없는 힘으로 매달리는 인섭이 너무 귀여웠다.

거실을 가로질러 가는 중에도 이우연은 참지 못하고 몇 번이나 인섭에게 키스했다. 입술이 맞물리고 비벼지는 그 간단한 행위가 머리가 아득해질 만큼 다디달게 느껴져서 그는 결국 계단을 오르지도 못하고 벽에 기댄 채로 키스를 퍼부었다.

“으, 응….”

인섭이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이우연은 헐렁한 니트 사이로 손을 넣어 인섭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손에 감기는 살갗의 감촉이 소름 끼칠 만큼 부드러웠다. 인섭의 등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몇 번이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서 박아 줄까?”

입술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이우연이 나직이 물었다. 의사를 묻는 게 아니었다. 선 채로 너랑 교미하고 싶다는 선언이었다. 선 채로 하는 게 어떻게 하는지 알지 못해, 인섭은 겁먹은 눈으로 이우연을 바라보다가 그냥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무엇을 바라건, 그냥 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우연이 낮게 하, 하고 웃었다. 인섭의 등이 벽에 짓이겨지듯 밀쳐졌다. 남자의 커다란 손이 인섭의 바지를 잡아 뜯으려는 순간,

딩동.

낮은 벨 소리가 울렸다. 인섭은 퍼뜩 놀라 이우연에게서 몸을 떼어 냈다.

“신경 쓰지 마요. 올 사람 없으니까.”

저녁이 되면 고용인들은 모두 돌아가고 집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이우연이 무시하고 인섭을 다시 끌어안았다.

하지만 몇 번이나 다시 벨이 울렸다.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우연이 숨을 길게 내쉬고 인섭을 바닥에 내려 주었다. 인섭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게이트와 연결된 월페이퍼 화면을 확인했다.

배달원 모자를 쓴 남자가 인섭의 이름이 적힌 상자를 가리켰다. 인섭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게이트를 열어 주었다.

“뭐 주문했어요?”

“책을 몇 권 주문하긴 했는데….”

오늘 오전에 확인했을 때만 해도 배송 준비 중이라고 떠 있던 것을 떠올리고 인섭은 언뜻 눈가를 찌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인섭이 달려 나가려고 하자 이우연이 그의 어깨를 붙들었다.

[누구세요?]

[배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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