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EP.61) 사장님 생일파티
"은퇴요...?"
"응. 생각보다 차분한 반응이네. 역시 내가 필요없는 거지? 흑흑."
오히려 이런상황에서도 날 배려하듯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뇨. 사장님이 회사에 없으면 어떻게 해요. 기둥이 없어지는거와 마찬가진데."
"풉. 사장 자리는 확실하게 너한테 인수인계하고 갈거야."
"저요...?!"
내가 사장이 된다고? 잠깐 솔깃하긴 했지만 난 누구보다 내 그릇을 잘 아는 사람이다. 당연하지만 나보다는 옆에 계신분이 사장에 더 잘 어울리시지.
"이유를 여쭤볼수 있을까요? 혹시 멘탈적인 부분때문에..."
겉은 괜찮아 보여도 속은 이미 너덜너덜 해졌을지도 모르신다.
"아니. 그런 건 아냐. 사람이 뭔가 하다보면 욕도 좀 먹을 수 있는 거잖아. 그런걸로 기죽진 않지."
다행이다. 하긴 멘탈에 있어선 다들 인정할만큼 든든한 사장님이니까.
"그러면 대체 왜..."
"스스로 걸림돌이 되었다고 생각했거든. 우리 스트리머들은 점점 성장해 나가는데 난 제자리 걸음 하는 기분이라고 해야하나."
"사장님은 유일하게 골드버튼 가지고 계신 스트리머시잖아요. 논란 없이 제자리 걸음만 해도 대단하죠."
그러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그러니 논란없을때, 박수칠때 떠나야지. 나는 한물 간 옛날 스트리머인걸. 이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비켜줄때도 됐지."
이런 이야기를 오늘 갑자기 홧김에 정한건 아닐테고 전부터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겠지. 왜 눈치 체지 못한걸까.
"그래도 동의 못해요. 사장님 같은 대단한 사람이 걸림돌이라니..."
뭔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벌써 사장님 집 앞에 도착하고 말았다. 하필 이럴때만 신호가 안 잡히는 건데.
"저, 저기... 사장님! 한번만 더 생각..."
"우리 매니저. 그동안 고마웠어."
그렇게 성과없이 내 자취방으로 돌아와버렸다.
다행인 점은 멘탈케어 미션를 꼭 오늘 내로 해결해야한다는 건 아니였다.
'한마디로 은퇴하기 전까지만 마음을 바꾸게 하면 된다...'
잠깐 안도의 한숨을 쉬려던 찰나 사장님의 뉴튜브에 의미심장한 공지가 올라왔다.
[오늘 너무 무리해서 술 마셨나봐요 ㅠㅠ 며칠 쉬고 곧 있을 생일날 방송 켤게요! 그때 중대 발표도 할거니까 꼭! 보러 와주세용]
-하은님 건강보다 방송이 우선인거 아시죠?
-하은눈나 군대 가?
-몸조리 잘하세용 ㅠㅠㅠ
-또 서연이가 속 썩였네
"아..."
맞아. 곧 사장님 생일이지. 이 것도 전혀 모르고 있었네. 그 동안 사장님한테 너무 무신경했다.
생일날 은퇴 발표를 하려고 저런 공지를 남기셨겠지. 앞으로 남은 시간은 이틀. 시간 제한이 생겼다.
"하..."
이 일은 혼자 처리할 일이 아니다.
정말로 걸림돌이 되는건지, 자리를 비켜주는 걸 원하고 있는 건지 먼저 물어봐야할듯 싶다.
***
"뭔 개소리야! 그, 그 아줌마가 은퇴라니! 그것도 우릴 위해서라니 그게 뭔 씨발 말도 안되는 소리야."
"그러게. 서준아 정말이야?"
사장님이 과음으로 회사를 쉰 날.
스트리머들을 모두 불러 어제 있었던 일을 전해주었다.
"Is this an out of season april fools joke?!"
다들 심각한 반응이다. 말은 없지만 지민도 꽤 충격받은 표정이고.
"응... 그래서 뭔가 하기전에 물어보고 싶었어. 정말로 사장님이 걸림돌이 되는것 같아?"
"그럴리가 있나. 내가 맨날 엘로디나 김예진한테 짜증 내는 적은 있어도 단 한번도 누굴 걸림돌이라 생각한 적은 없어."
"짜증 내는건 알고 있는 모양이네."
서연이 말고 다른 스트리머들도 바라봤다.
"다른 사람들 생각은 어때?"
"서연이가 좀 거슬리긴한데 내가 연장자로서 이해해줘야지."
"네가 왜 연장자야 미친년아."
"생일 2달 빠르잖아."
엘로디도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이렇게 말했다.
"엘로디도 일맥상통 합니다."
"지민 씨는 어때요?"
"누군가를 걸림돌이라 생각한 적은 없지만 사장님 마음이 이해가 가네요. 원래 리더라는 자리가 늘 잘 하고 있는건지 의심하게 되는 자리니까."
역시나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 스트리머들 모두 사장님을 원하고 있다. 이어서 어제 남긴 사장님의 공지를 보여주었다.
"생일날 중대발표... 이거 은퇴 얘기하려고 그러는거겠지? 서준아?"
"응."
"무, 무슨 방법이 없을까?"
분명 방법은 있을 거다. 그동안 해결 못할 미션을 준 적은 단 한번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뒤통수를 가격해서 기절시키고 스튜디오에 감금시키는 거예요."
"엘로디 지금 우리 진지하거든?"
"에. 저도 진지한데용."
예진은 말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사장님 생일 파티를 열려고 해."
"생일 파티?"
박수칠때 떠나려 하고,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본인은 필요없지? 라고 물어봤었지.
"회사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란걸 깨닫게 해드릴거야."
"좋네여. 폭풍을 부르는 사장님 돌아와 생일파티 대작전!"
"크흡..."
***
대망의 당일, 사장님 생일날.
며칠 전부터 사장님 몰래 회사를 꾸며놓았다.
"이거 풍선은 이쪽에다 둬야할까. 아니면 저기다..."
예진이가 풍선을 잡고 바들바들 떨고있다. 귀여워서 그냥 뒤에서 꼬오옥 안아주었다.
"꺄아아! 서준아. 놀랬잖아."
"너무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냥. 혹시나... 파티가 잘못 되어서 사장님이 은퇴하면 어떻게 해."
서연은 질투 하는듯한 표정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풍선 위치 하나로 은퇴하겠냐? 생각을 좀 해라."
"풉."
"왜, 왜 웃는데?"
"너 괜히 긴장 풀려고 나한테 시비거는 거지?"
정곡을 찔린 서연은 그만 말을 잃어버렸다. 다른 팔을 벌려 바라보자 그 품 안으로 들어왔다.
"그 아줌마 은퇴 안 하겠지?"
"안 할거야."
마침 케이크를 사러간 엘로디와 지민이 도착했다.
"뭐죠! 저흰 엄청 심사숙고해서 케이크 사왔는데 세 분은..."
"다들 긴장하고 있다길래 안아주고 있었어."
"서준 씨. 저... 긴장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자연스럽게 뻔뻔히 거짓말 하는 실력이 수준급이다.
"하하. 그러신가요."
"엘로디는 빅그릇이라 이런 걸로 긴장하지 않지만! 매니저 오빠가 긴장하고 있으신거 같으니 특별히 어울려드릴게요."
예진과 서연은 여기까지 안기로 하고 케이크를 사온 두 사람을 와락 껴안았다.
"이제 사장님 오실 것 같아. 준비하자."
또각또각-
사장님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다들 숨죽인 채 폭죽을 잡고 대기했다.
"음...?"
사장님이 들어오자 다들 팡! 팡!하고 폭죽을 터트려 주셨다.
"다들..."
"사장님! 생일 축하해요."
"고마워."
그리고 케이크에 불을 붙이려고 했는데 서연이가 다짜고짜 본론으로 들어가버렸다.
"아줌마! 매니저한테 다 들었어요. 은퇴 한다면서요!"
"아하하. 한번에 훅 들어 오는구나. 응. 전부터 결정했던 일이였어."
"으으..."
부들부들 떨고있는 서연의 어깨를 토닥이는 사장님.
"그래도 회사에 필요한 건 얼마든지 지원해줄테니까 걱정하지마."
"회사에 필요한 건 아줌마 그 자체라고..."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헉. 우, 우리 서연이 우는 거니?!"
"서연이 말이 맞아요. 은퇴 다시 생각해보면 안 될까요?"
"우리 예진이까지..."
눈을 그렁거린채 사장님을 바라봤다.
"으으음... 나 뭔가 잘못 생각했나. 다들 내가 은퇴하면 반길줄 알았는데, 스트리머 상 후보가 한명 줄었다면서..."
"저희를 뭘로 보신 거예요. 애초에 아줌마 없는 올해의 스트리머 상이 의미 있겠냐고요."
다들 동의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맞아여. 상도 못 땄으면서 은퇴 하지마세여! 지지마 맞서싸워."
"..."
말문이 막힌듯 한 사장님.
점차 마음이 변해가는 거처럼 보였다.
"하아... 어떡하지?"
"뭐가 문젠데요. 제가 아줌마라 불러서 그래요?"
"아, 아니이... 그런 건 아닌데."
사장님은 휴지를 한장 가져와 울고 있는 서연의 눈을 토닥토닥 닦아주었다.
"안 되겠다. 우리 매니저. 은퇴는 나중으로 미뤄야 할것 같아."
"아주 나중으로 미루세요."
"그럼 올해의 스트리머 상 받으면 그때 깔끔하게 은퇴할까?"
"그 정도면... 뭐. 괜찮겠네요."
그러자 서연은 사장님의 옷자락을 꼬옥 붙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제가 매년 상 받아서 평생 은퇴 못하게 만들 거예요...!"
그때 휴대폰 알림이 울려댔다.
[미션 성공! 사장님 멘탈 케어하기.]
[최하은의 추가 정보가 해금 되었습니다.]
"아하하. 근데 나 서연이 우는 모습 처음본다. 이런 거 방송에 보내야 하는데."
"시끄러워요!"
분위기도 다시 돌아온 거 같으니까 다시 케이크 초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양초 개수가 좀 적게 들어있다.
"양초가 두개 밖에 없네?"
"맞아요. 일부러 그렇게 해온거랍니다!"
엘로디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 하으니! 스무번째 생일 축하해."
"하하하! 고마워. 엘로디."
후우~
시원하게 촛불을 끄며 우리를 바라보는 사장님.
"좋아. 은퇴는 일단 없던 걸로 할건데 대신 새로운 목표가 생겼어!"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이렇게 소리쳤다.
"나도 이 악물고 올해의 스트리머상 전쟁에 참여할거야. 너희들이 선택한 사장이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
"그렇게 나와야지. 두고 봐요. 아줌마."
"이제 더 안 우는거야? 영상이라도 찍어둘걸."
"다, 닥쳐요!"
이제 자리앉아 케이크를 먹으며 새로 추가된 사장님의 정보를 확인했다.
[싱글벙글 인방 매니지먼트 사장, 스트리머 최하은.]
-나이 : 28세
-평균 시청자 수 : 10,000명
-뉴튜브 구독자 수 : 100만명 이상
성 경험 횟수는 0회, 운이 좋군.
그리고 추천 컨텐츠는 놀랍게도 운동이였다. 정말 등잔 밑이 어두웠네.
"근데 나 중대 발표라고 말한 건 어떡하지?"
"평소 아줌마처럼 어그로 였다고 하고 시원하게 욕 먹어."
"우리 서연이! 아, 아까랑 태도가 너무 다른거 아니니?"
저래야 서연이지. 이제야 모든게 다 원래대로 돌아온 기분이다.
"그럼 새 컨텐츠 하기로 했다하면 되죠."
"새 컨텐츠? 딱히 생각나는건 없는데..."
"그런 거 하라고 우리 서준이가 회사에 있는 거잖아요."
"맞아여! 우리 매니저 오빠가 그거 하난 기가 막히죠."
스트리머들의 시선에 내게 쏠린다.
"마침 시켜보고 싶은 게 있긴한데."
"편하게 말해봐."
"지민 씨랑 같이 운동 방송 해보시죠."
"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