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감작 하는 인방 매니저-46화 (46/81)

[19] (EP.46) 진실 게임

무슨 트라우마를 말하는거지.

겉보기에는 그저 사람 좋아보이는 헬스 트레이너로 밖에 안 보이는데.

그렇다고 다짜고짜 트라우마를 알려달라고 할수도 없으니까 섣부르게 행동하지 말고 오늘은 여기서 물러나자.

"고생 많으셨어요 엘로디 님~ 내일도 꼭 오기. 약속!"

"야, 약속은 깨라고 있는..."

"약속."

온화한 목소리로 나긋하게 협박하신다.

"히익! 약속 할게요."

"서준 씨도 내일 또 봐요."

"네. 지민 씨."

그때, 벽에 걸린 지민의 사진을 발견했다. 운동 선수 같아보이는 복장, 지금과 다른 웃음기가 하나 없는 표정.

"이건 뭐예요?"

"아. 예전에 선수시절 사진이에요. 선수라고 부르기엔 뭣 하지만..."

"우와아아! 지민 님 멋있어여. 이거 메달 같은데 올림픽 메달이에요?"

"아뇨. 하하... 그런 대단한 메달은 아녜요."

물어볼수록 표정이 더 어두워진다. 아무래도 호감작에서 말한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어보인다.

***

다음날 점심, 싱글벙글 인방 매니지먼트 안.

펑펑 거리는 폭죽 소리가 울려퍼진다.

"엘로디~! 구독자 20만 축하해!"

"축하해. 내가 뭐랬어? 이 선배님 말만 들으면 롱런 한다했잖아~."

"네가 도와준게 뭐 있다고."

예진은 어이없는듯 서연을 째려봤다.

"그런 말 말아요.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모두, 제게 큰 힘이 된걸요!"

"크으. 역시 내 후배야. 잘 키웠어."

"나도 얼른 20만 뉴튜버 되고싶다."

엘로디 머리에 꼬깔모자를 씌어주고 두 사람을 쳐다봤다.

"너희 둘도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 기껏해봐야 1~2만 차이던가."

"우리 매니저 말이 맞아. 20만이나 19만, 18만이나. 크게 보면 별 차이 없어~."

사장님이 케이크에 불을 붙히며 말씀하셨다.

"풉. 뭔가 신기하네요. 최근까지만 해도 1,2천명 가지고 벌벌 떨었는데 이젠 1,2만명 차이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니까."

"그릇이 작으니까 그렇지 뭐."

"시끄러! 이서연. 너보다는 내가 더 빨리 20만 찍을꺼다."

그러자 중지 손가락을 내민다.

"좆까. 무조건 내가 먼저지."

"얘는 상스럽게 그런 말을 하고 있어."

"무, 무슨 생각을 하는건데 미친년아!"

둘다 나를 쳐다보다니 얼굴이 빨개진다. 진짜 무슨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어휴...

"두 사람 다 한창 젊을때네. 나도 20대 초반에는 저렇게 불 같았지~."

"정말요? 상상이 안 가는데..."

시종일관 느긋하게 페이스를 유지하시는 분이.

"응. 전쟁 같은 사회 속에서 늘 예민하고 불안했으니까. 다 옛날 얘기지만."

"전쟁에서는 모두가 패자예요!"

"아~ 그 광고. 요새 자주 나오지~."

케이크 위, 초콜릿 명패에 커다랗게 적힌 숫자 20.

엘로디는 케이크 불을 끄고 초콜릿을 입 안으로 쏘옥 집어넣었다.

"우으음...! 달아. 완전 달아앗!"

"다행이다. 입 맛에 맞아서. 이거 우리 가게에서 가져온거거든."

"넹? 예진 언니 가게에서요?"

"응. 카페 한다고 했잖아."

엘로디는 양 손으로 물개박수를 파닥파닥치며 예진을 바라봤다.

"언제 카페 놀러 갈게요."

"후후~ 환영할게."

"예약하고 가야될걸. 다들 요즘 핫한 예진이 보고 싶다고 난리거든."

라고 말하면서 먹기좋게 8등분으로 잘랐다.

"아, 아이~ 그 정도는 아니야 서준아. 너무 띄워준다."

"저거 띄워주는게 아니라 비꼬는 거야."

"서준이는 너처럼 심성 안 비틀렸거든."

케이크를 접시 위에 올려 사이좋게 나눠주었다. 엘로디는 숟가락으로 퍼먹더니 손으로 뺨을 감싼다.

"우흐윽... 뺨이 녹아내릴 것 같아."

"아하하! 우리 엘로디 리액션 진짜 잘한다. 인기 많은 이유가 있다니까."

"케이크보다 달콤한 건 말이죠. 오늘 파티 한다고 운동을 안 간다는 거예요. 너무 짜릿해 달콤해."

"갈건데?"

단단히 착각해서 행복해하던 표정이 곧바로 부서져 내렸다.

"케이크 맛 뚝 떨어졌어."

"미안. 당연히 가는 줄 알고 말 안 하고 있었어."

"저는 당연히 안 가는 줄 알고."

***

시간은 대략 오후 4시.

사실 오늘 하루쯤 빠져도 되지만 호감작은 못 참으니까. 엘로디의 손을 꼬옥 잡고 헬스장으로 데려왔다.

"오늘 같은 날에 운동하려면 조금 그렇겠지?"

"몹시 그렇습니다."

"그럼 운동하고 저녁 사줄게."

"정말요? 그럼 빡운동 가야죠. 에헤헤. 매니저 오빠한테 뭐 사달라고 하지~."

헬스장 안, 지민은 보이지 않는다. 한창 바쁠때라 다른 사람들을 관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동안 어제봤던 사진이 생각나서 다시 보러갔다.

"어제 이거 더 물어보려고 했는데. 왠지 말하기 꺼려하는 분위기였죠?"

"응... 뭔가 사연이라도 있는듯한 얼굴이였지."

그때 다른 헬스트레이너 한 분이 우리 둘을 찾아왔다.

"아~ 어서오세요. 지민 언니 다른분 봐주시고 계셔서 잠깐..."

이 사람이라면 혹시 알지도 모른다.

"아. 이 사진요? 지민 언니 멀리 뛰기 선수 시절이에요. 어릴때부터 죽기살기로 운동만 하셨거든요. 저 독기 품은 얼굴 보이시죠?"

"에, 엘로디. 절대 안 깝치겠습니다."

"자랑하고 싶어하던 표정은 아니던데... 왜 걸어 두신거예요?"

"아... 아무래도 이런 사진 있으면 더 신뢰가 가잖아요. 제가 사정사정해서 건 거예요."

"그렇군요."

목숨걸고 하던 멀리 뛰기를 지금은 왜 안 하는 건지, 이게 제일 중요하다.

"어쩌다 그만 두시게 된 거예요?"

"음... 그건."

멀리서 터벅터벅 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부상 때문에 그랬어요. 그렇지?"

"아. 언니..."

"그만 운동하러 가요. 아 참! 엘로디 님. 구독자 20만 명 되셨다면서요. 축하드려요."

단순하게 부상으로 그만뒀다기엔 두 사람 분위기가 묘하게 부자연스럽다. 답답해 미치겠네.

"엘로디 님. 어서 옷 갈아 입고 와요!"

"추, 충성!"

"아하하. 기합이 잔뜩 들어가셨네."

운동중인 엘로디를 촬영하며 잠깐 생각에 빠졌다. 호감작 어플로 속마음을 볼 수도 없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끄흐흡..."

"숨 참으려하면 안 돼요. 내뱉고."

"헤으응."

"아하하하. 참 귀여운 숨소리네요."

마침 엘로디 구독자 20만이라 저녁 사주기로 했었지. 이걸 이용하자.

마지막으로 런닝머신을 뛰고 내려오는 엘로디. 창 밖은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세상에... 저 해 뜰때 시작해서 해 질때까지 운동했어요."

한 4시쯤에 와서 5시쯤에 끝났으니까 맞는 말이긴 하다.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thankyou!

팩트) 1시간 운동했다

"어허. 1시간 운동도 대단한 거예요. 엘로디 샤워하고 오겠습니다. 오늘의 엘로디는 여기까지예요. 내일의 엘로디를 기대해주세요."

가벼운 활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는 엘로디. 좋은 바디워시 향이 흘러나온다.

"엘로디 우리 저녁 먹을까? 내가 사기로 했잖아."

"후후~ 그 말을 언제하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지민을 쳐다보았다.

"혹시 같이 가실래요?"

"음..."

"맞아요. 같이 가요! 매니저 오빠가 저녁 사주는 거 흔치 않다구요."

"죄송하지만 헬스장..."

그때 아까 만났던 트레이너가 나타났다.

"뒷정리는 제가 할테니 걱정말아요. 지민 언니 요즘 뉴튜브에다 헬스장 관리하느라 힘들잖아요. 하루 놀다 와요~"

"그럴까..."

엘로디도 나서서 지민의 두손을 꼬옥 잡는다.

"맞아요! 지민 님. 얼른 가요! 한국인은 밥심 아닙니까?"

"바, 밥심..."

여기서 구독자 20만 명을 거들먹거리며 술까지 마시자고 넌지시 던져보았다.

"저희 앞으로도 자주 만날 것 같은데 좀 더 친해지면 좋잖아요."

"매니저 오빠 말에 백번 공감합니다."

"음... 그럴까요."

"꺄아! 지민 님 만세. 메뉴는 제가 정해놨어요. 어서가요~."

엘로디가 정해놨다는 메뉴는 ... 곱창이였다. 웬만한 한국인들 보다 더 한국인 같아보이는 음식이다.

"곱창? 하하! 엘로디 님. 곱창 먹을줄 알아요?"

"에이~ 두 말하면 잔소리죠. 머리 하얗다고 우습게 보다간 큰코 다쳐요."

곱창집 안으로 들어가자 엘로디와 지민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아주머니. 이거 곱창이랑 소주... 일단 한병! 주세여."

"외국인인데 한국말 잘하네~ 좋아요. 제가 계란찜 서비스로 드릴게요."

"오예!"

말만하면 서비스를 받아내는 저 모습 슬슬 신기해지려고 한다. 지글지글거리는 소리에 저절로 침이 꿀꺽 삼켜진다.

"와... 개맛있겠다. 매니저 오빠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구워주셔야해요."

옆에 앉아있는 엘로디는 내 팔을 잡고 마구마구 흔들어댄다.

"응. 그런데..."

헬스 트레이너 분께 곱창을 먹여도 되는걸까 싶어 앞에 앉아있는 지민을 쳐다보았다.

"곱창 드셔도 괜찮으신가요?"

"네. 괜찮아요. 엘로디 님 20만 되셨다는데 치팅데이 하루 가지죠 뭐."

"지민 님 완전 쿨하네요. 저도 치팅데이 동참 하겠습니다."

"엘로디는 항상 먹고싶은 것만 먹잖아."

웃음 소리가 오고가고 곱창을 안주 삼아 술이 오고간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두 사람을 쳐다봤다.

"저희... 진실게임 한번 할까요?"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