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EP.20) 운명적인 만남
사장님은 흥미가 생기신듯 서연이의 토끼 머리띠와 예진의 강아지 머리띠를 만져봤다.
"헤... 촉감 좋다. 둘다 잘 가져왔어."
"그런데 이거 하나로 광고 준비 끝난건가요?"
예진은 규모가 큰 광고인데 머리띠만 착용하는게 양심에 찔렸나 보다.
"그럼~ 우리가 전문적인 코스프레 팀도 아니고 이 정도면 엄청난 준비지."
"정 부족하다싶으면 나 대신 바니걸 입든가. 이거 너 줄게."
"그건 싫네요!"
한술 더떠 쇼핑백 안에 담긴 바니걸 복장을 보는 사장님. 아무말 없이 따봉을 하나 날려주신다.
"빨리 출발하기나 하시죠."
"우리 매니저 운전 좀 부탁할게."
사장님의 차 안.
몇번 다뤄본 적이 있어서 익숙하게 시동을 걸었다.
"서준이 운전 잘해?"
"어. 군대에 있을때 운전병이였어. 험한 차도 많이 몰아봤지."
물론 이렇게 여자만 한가득 태워 운전 하는건 처음이다.
"후후. 내가 다른건 몰라도 운전 잘하는 사람으로 뽑았지. 이런 일이 생길걸 알고 말이야."
"라고 하기엔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앞으로 더 생길거야. 여기저기 야외방송도 해봐야지. 우리 매니저! 특별히 광고 잡아 줬으니까 시원하게 내 차 한번 긁어도 그냥 넘어갈게."
"아, 아닙니다."
남에게 차를 맡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안다. 괜히 믿어주고있는 사장님 발등에 도끼를 찍어서야 안 되지.
게임축제가 열리는 건물 앞.
건물 바깥에서부터 방송중인 스트리머들, 코스프레를 한 코스어 들 등등. 축제 분위기가 물씬 흐른다.
"자! 그러면 일단 먼저 내 방송부터 켜볼까?"
"사, 사장님 방송부터요?"
"응."
예진은 긴장한듯 손거울을 꺼내 앞머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해 서준아. 사장님 방송 켰다하면 시청자수 10,000 명이 넘는데... 갑자기 너무 떨려!"
"그러니까 네가 하꼬인 거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서연이도 어색하게 몸을 떨어댄다.
"나보다 네가 더 긴장한것 같다?"
"저, 전혀어어..."
"후후. 우리 시청자분들은 다 좋으신 분들이니까 너무 걱정할 거 없어. 매니저 차 안에 셀카봉 있었지?"
셀카봉을 건네드리자 주섬주섬 휴대폰을 장착시키고 방송을 켜신다.
[방송 제목 : 오늘은 게임축제에 와봤습니다]
"여러분 어서오세요~ 하은하~"
-ㅎㅇㅎ
-ㅎㅇㅎ
-오랜만에 야방 ㄷㄷㄷ
하은마망님이 1,000원을 후원! 잘 쓸게용~
언니 오늘도 예뻐용
"그러게요. 매번 예뻐서 고민이네요."
"극혐."
사장님은 먼저 표정을 찌푸리고 있는 서연에게 다가갔다.
"자. 그러면 우리 회사 멤버들 소개 해보겠습니다. 먼저 서연이부터."
"저? 저요? 어 음..."
목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셀카봉 바라본다.
"예. 제가 그. 요즘 핫한 스트리머 서연입니다."
-서하
-요즘 핫한 스트리머 ㅇㅈㄹㅋㅋㅋ
-메이드복 입어줘~
"야. 내 방 시청자들 채팅, 눈에 다 보이거든? 기억해둔다."
-ㅈㅅㅈㅅㅈㅅ
-어차피 시청자 만명 넘어서 채팅 잘 안보임
"커피헌터 발견했다."
이서연커피헌터님이 1,000원을 후원! 잘 쓸게용
ㅈㅅ
"하하하. 우리 서연이 시청자분들도 서연이 닮아서 씩씩하네요."
-???
-하은/논란
-서연이 욕은 해도 되는데 시청자 욕은 하지마세용
"다음은 우리 예진이 차례."
"아, 안녕하십니까. 올해로 방송 60일차가 된 김예진이라고 합니다. 그, 그리고 뉴튜브도 개설했습니다. 한번씩 들려..."
"너무 딱딱하잖아~ 딱풀인줄."
"..."
-사장님...
-여긴 사장님이 부장개그를 치네
-예진눈나 힘내
"아하하... 재밌네요."
-사회생활 힘들다 ㅠㅠ
-예진눈나 견뎌!
"첫 광고를 맡게 되셨는데요. 각오 한마디 들어봐도 될까요?"
"첫 광고! 화이팅 하겠습니다."
사장님은 의외로 나까지 소개시켜주려고 한다.
"다음은 우리 매니저, 목소리만 출연 부탁할게요."
"매니저 권서준입니다."
-목소리 뭐야...
-목소리 미남인데?
"실물은 훨씬 더 잘생겼답니다. 게다가 요즘 소문이 쫙 퍼졌다니까요? 여기저기 광고도 잘 받아오고 컨텐츠도 잘 짜준다고."
"허허... 아닙니다."
쑥쓰러워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사장님은 조금 더 방송진행 하다가 같이 게임축제가 열리는 건물안으로 들어갔다.
"오. 저 사람 스트리머 최하은 아냐? 옆에는 서연, 예진이고..."
"와. 진짜네 예쁘다."
입장하려 줄을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이 우릴 알아보기 시작했다.
"서, 서준아... 어떻게 해! 사람들이 우리 막 알아본다. 처음이야 이런 경험..."
"난 이런일이 있을줄 알고 미리 싸인 연습해왔어."
"크윽... 나도 해올걸. 부럽다 이서연."
싸인 이라는 말을 듣고 서연이에게 메모장과 볼펜을 건넸다.
"왜?"
"이왕 싸인 하는 거 내가 맨 처음으로 받아 보고싶어서."
"하긴. 너도 나 없이 죽고 못 사는 연청자였지."
뭐라 대꾸 할 말이 없어서 대충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후 메모장에 싸인을 해줬는데 뭐라고 해야할지 되게 심플하다.
"...이게 싸인?"
"맘에 안 드냐?"
"아, 아니... 그런 거보다는."
정직하게 '서연'이라 쓰고 심심했던 모양인지 ☆을 그려놨다.
"별..."
"스타가 되겠다는 의미의 별이야."
"하하! 기가 막히네."
"그치 그치?"
내심 밤새 싸인을 연구 했을 서연이가 생각나서 피식하고 웃었다. 한편, 예진은 초조 해진듯 허공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으으. 내 싸인은 뭐 해야하지?"
"예지닝 하트!"
"사, 사장님!"
잠깐 곰곰히 생각하다 예진을 바라봤다.
"그 커피아트였나... 그거 잘하던데."
"풉. 서준아 커피아트가 뭐야. 라떼 아트지."
커피나 라떼나 똑같은 거 아니였나.
"아하하... 아무튼 그거. 지난번에 방송에서 잘하던데 그런느낌으로 싸인하는 건 어때?"
"으음... 그렇다면..."
메모장과 볼펜을 빌려 즉석해서 싸인을 만들어낸다. 라떼 아트 처럼 따스해보이는 싸인이 탄생되었다.
***
게임 축제 비스트 테이머 대기실 안.
대기실은 마치 연예인 대기실처럼 소파에 옷걸이에 과자까지 마련 되어있었다.
"우와아! 사장님 디저트도 있어요."
"점점 축제 분위기가 달아 오르는구나. 아까 대기실오면서 봤지? 사람 엄청 많았잖아."
"그래서 더 긴장돼요 사장니임... 첫광고를 이렇게 크게 하다니..."
그 말을 기다렸다는듯이 서연이가 입을 연다.
"난 머기업 광고도 해봐서 하나도 긴장 안 돼."
"떨고있는 다리나 좀 어떻게 하시지?"
"...틈새 운동 중인거야."
얘기를 나누던 도중 똑똑 소리와 함께 어떤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비스트 테이머 광고팀장입니다. 혹시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네~"
사장님의 나긋한 목소리를 듣고 대기실 안으로 들어온다. 예전부터 팬이였다며 인사를 건넨다.
"이렇게 광고 맡겨주셔서 고마워요. 열심히할게요."
"아하하. 뭐에 홀린 것처럼 이거 맡을 사람은 하은 씨네 회사 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했지 뭐예요."
그 말을 듣고 상냥하게 웃음 짓는 사장님.
"요즘 인터넷에서도 짤 많이 돌아다니던데 혹시 보셨어요?"
겨드랑이로 유명해진 서연과 고민 상담으로 유명해진 예진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후후~ 둘 다 저희 얘들이네요. 얘들아 어서 인사하렴."
"아, 안녕하십니까! 김예진입니다."
"안녕하세요. 서연이에요."
"두분 다 너무 긴장하신 거 아녜요? 이러니까 하은 씨 첫광고 생각나네요. 언제였지...?"
그날 일을 떠올리며 피식 웃는다.
"엄청 긴장해서 '제가 잘못했어요. 광고주님 고소하지말아주세요.' 그랬던거 같았는데. 하하하."
"풉~ 팀장님도 참. 언제적 일을. 그나저나 그 일까지 아시는 거 보니 찐팬이신가보네요?"
"하하. 그럼요. 초창기때부터 봤다니까요."
예진은 사장님을 따라 웃는다.
"사장님이 긴장하는 모습... 왠지 상상이 안가네요."
"아줌마 지금도 긴장은 안 해도 맨날 덤벙거리긴 하잖아요."
"인간미 넘치는 거라고 해줘."
슬슬 약속 시간이 다가와 세 사람에게 시간을 알려주었다.
"설마 이 분이... 하은 씨네 회사 매니저?"
"맞아요."
"크으... 익히 말씀 들었습니다. 반가워요."
"아. 예 저도 반가워요."
나 까지 유명 인사가 되기라도 한 걸까. 팀장과 악수를 나눴다.
"그러면 이따 부스에서 뵙겠습니다."
팀장이 먼저 대기실로 떠난다. 이후 세 사람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매니저 너 남아있게?"
"아."
하긴 서연이 바니걸로 갈아 입어야하지.
"우리 매니저 응큼하다니까~."
"서준아 미안. 서연이 옷 다 갈아입으면 전화할게."
"아냐. 마침 화장실 좀 다녀올려고 그랬어."
사장님까지 호감작이 되어 있었다면 그냥 옷 갈아입는걸 감상 했을텐데 아쉽다. 진짜로 화장실이나 다녀와야겠다.
게임 축제 그 큰 건물 안에 화장실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아서 온갖 곳곳을 해매었다. 그러다 겨우겨우 남자화장실 표식을 발견했다.
"후우... 드디어 찾았다."
어서 가서 오줌싸야지 하는 순간, 남자 화장실 안에 어떤 여자가 팬티를 내리고 오줌을 싸고 있었다. 그것도 일어선채 소변기 앞에서 말이다.
"뭐야 씨발."
"아, 안녕하세여..."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발 머리, 마법소녀를 코스프레 한 복장. 억양과 파란 눈동자를 보니 외국인 같아 보인다.
"자, 잠시..."
당황해서 후다닥 화장실을 나가 표식을 다시 확인했다.
여기 남자 화장실 맞는데? 여자는 뒤로 돌아가라고 화살표까지 친절히 밑에 적혀 있잖아.
[운명적인 만남]
[눈 앞의 그녀를 영입하세요]
이런 미친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