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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震翰 宣諭 五十二年 진한 선유 52년.

浩氏三十二歲 32세

진성왕에게 호씨같은 간교한 자가 붙어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오왕이 호씨를 부러 제 궁으로 초대하여 진성왕과 떼어놓고는 하였다. 이에 호씨는 오왕의 본심을 알아차리고 오왕에 대해 입에 담기도 민망한 말들을 늘어놓았는데, 그 말을 믿은 진성왕이 오왕을 오해하여 형제간의 우애가 상하였다.

그 와중에 성종마저 승하하니 이같이 참담한 일이 또 있으랴.

도성에 온지 석달째 되는 날, 호운은 진성왕부의 내부를 걷고 있었다. 이번에도 오왕에게 불려갔다 나흘 만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질리겠지 질리겠지 하는 호운의 기대는 매번 자신을 부르는 오왕에 의해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오왕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매번 호운을 자신의 궁으로 불러들여 농락했다. 매번 달아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호운은 유란란의 입장을 생각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계속해 반복되는 일에 호운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호운은 한숨을 쉬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대인."

호운이 방 안으로 들어서자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송연이 고개를 조아렸다. 이번에도 진성왕부로 돌아온 호운을 맞이하는 것은 송연 단 한 사람 뿐이다. 이미 진성왕부 내에서는 호운이 오왕의 분풀이를 위해 종종 정궁으로 불려가 고초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상황이었다. 유란란 덕분에 기를 못 펴는 진성왕의 여인들은 호운이 고초를 당한다는 소식에 반색하였고 유란란도 호운을 부르는 오왕을 막지를 못했다. 그들은 호운 한 사람이 오왕에게 감으로서 진성왕부에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오히려 반기는 기색이 있었다.

결국 저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호운은 절망하고 슬퍼하지 않았다. 그저 체념하였다.

"목욕물을 준비해 뒀어요."

송연이 눈치를 살피며 말하자 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은근히 목욕시중을 들 기세로 수건을 드는 송연의 손에서 수건을 빼앗은 호운은 그대로 송연을 방 밖으로 보내고 문을 닫았다. 매번 진성왕부로 돌아올 때 지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시일이 지나면서 몸이 익숙해져서인지 예전처럼 업혀 들어올 일은 없었다. 호운은 지친 팔을 독려해 옷을 벗고 방에 준비된 넓은 목욕통에 몸을 담궜다. 따스한 물에 짜르르하니 지친 근육을 감쌌다. 이미 정궁을 나서기 전에 여관들의 손에 씻겼지만 호운은 제 손으로 직접 자신의 몸을 씻고 싶었다. 물의 온기에 취하듯 나른해진 호운은 자신의 등 뒤로 문이 슬그머니 열린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그 열린 문틈사이에 크게 벌어진 작은 눈동자도 알아채지 못했다.

오왕에게 불려갈 때마다 호운이 며칠씩 앓아눕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진성왕은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마도 오왕이 제게 쌓인 분을 호운을 때리는 것으로 풀고 있으리라 짐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졌다. 

그것은 호운의 시비 송연의 말로부터 시작되었다. 언제나 호운의 시중을 드는 송연이지만, 호운은 오왕에게 불려갔다 돌아오면 한동안은 송연을 그가 목욕할 때 주변에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였다. 이에 의아함이 생긴 송연이 오늘 몰래 호운을 훔쳐보니, 온 몸에 방사의 흔적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아직 어린 송연이었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도저히 여자와 관계해 생길 흔적이 아니라는 것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송연은 호운의 몸에 난 흔적에 너무 놀라 경악하였지만 곧 그것을 진성왕에게 고하였다. 이 일이 심상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일을 전해들은 진성왕은 곧장 호운의 방으로 향했다.

마침 목욕을 마치고 나와 아직 알몸이던 호운은 갑작스러운 진성왕의 등장에 몹시도 당황했다. 진성왕은 벌거벗은 호운을 가리려는 호운의 양 팔을 잡아끌었다. 순식간에 목욕통 밖으로 끌려나온 호운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손목이 비틀린 호운이 이를 악물자 진성왕은 흐릿하게 웃었다. 진성왕은 잇자국과 빨아올린 자국, 그리고 손으로 쥔 흔적이 선명한 호운의 몸을 샅샅이 살폈다. 전혀 낯선 타인에게 겁간당한 흔적이 역력한 몸을 내보이는 상황에 호운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노, 놓아주십시오."

호운이 진성왕의 손을 뿌리치며 어설프게 수건으로 제 몸을 가렸다. 진성왕은 순순히 호운의 손을 놓아주었지만 자리를 비켜주지는 않았다. 

"이제 보니 오왕 그놈이 색다른 취미가 있구나."

진성왕의 말에 호운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이어진 진성왕의 말에 그가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누구를 상대한 것이냐. 설마 오왕 본인은 아닐 테고, 그놈의 수하들이냐? 흔적을 보니 한두 놈이 만든 흔적은 아닌 거 같은데. 윤간이라도 당한 것이냐?"

진성왕의 물음에 호운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대답해라!"

진성왕은 고개를 숙인 호운의 머리채를 거칠게 끌어올려 시선을 마주치며 물었다. 그러나 호운은 여전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뒤늦게 호운이 왔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그를 맞이하기 위해 방을 찾은 유란란이 호운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방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여전히 벌거벗은 호운의 몸에 난 흔적을 보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이…이것이…."

유란란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만 크게 벌렸다.

"오라버니…."

말을 잇지 못하는 유란란의 뒤로 복치운의 얼굴도 보였다. 나란히 경악한 남매의 얼굴을 보며 호운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마치 제가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마냥 남매의 눈을 직시할 수 없었다.

"놓아주십시오."

호운이 겨우겨우 입을 열고 그리 말하자 진성왕이 이번에는 순순히 그를 풀어주었다. 그러나 그가 앞을 막고있어 옷을 가지러 갈수가 없어 호운은 발가벗은 채 세 사람의 시선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오왕 그놈이 명령한 것이겠지. 내 비의 오라비를 더럽히면 내가 어디 눈 하나 깜짝할 줄 알았나보구나. 어리석은 놈."

진성왕은 호운이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이 제 말에 대한 수긍이라 여겼다. 사내로 태어나 여러 사내에게 윤간을 당했으니 무어라 말을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말이다. 스스로 의문을 푼 진성왕은 수긍했지만 유란란은 그럴 수 없었다.

"전하, 앞으로 오라버니를 오왕전하께 불려가지 않게 해 주세요."

유란란의 청에 진성왕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럴수는 없다. 오왕 그놈이 얼마나 간교한지는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이대로 오라버니를 계속 오왕께 보냈다가는…."

유란란의 말에 진성왕은 코웃음을 쳤다.

"사내가 겨우 이깟 일에 꺾이겠느냐. 계집이라면 모르되 사내가 아니더냐. 네 오라비가 오왕에게 불려가 그놈의 분기를 푼다면 내게는 손해를 볼 일이 전혀없지."

만약 호운이 유란란의 누이였다면 진성왕은 다른 결정을 했을지도 모른다. 왕비의 누이를 욕보이는 일은 왕비를 욕보이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운은 사내였다. 진한은 예로부터 남색 풍습이 만연해 있어 남자 첩도 들이는 것이 예사였지만 공공연하게 떠들 일은 아니었다. 만약 호운이 계집이었다면 오왕은 진성왕의 총비 유씨의 누이를 욕보였다며 자랑스레 떠들었을 테지만 사내이기에 소문이 퍼트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제 분을 풀기위해 호운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 오왕의 행동이 진성왕은 그저 가소로웠다.

"내 의원을 보내줄 테니 잘 정양하여라." 진성왕은 그렇게 말하고 유란란의 허리에 손을 감았다. 호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유란란은 거의 끌려 나가듯 진성왕의 품에 끌어안겨 방안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 후 남은 것은 호운과 굳은 듯 문 앞에 선 복치운 뿐이었다. 복치운은 진성왕과 유란란이 사라진 후에야 몸이 풀린 것처럼 천천히 움직여 활짝 열린 문을 닫았다. 그리고 방 안으로 들어와 아직 고개를 숙인 채 그 자리에 선 호운에게 바닥에 벗어놓았던 옷을 건넸다.

호운은 아무말 없이 복치운이 건넨 옷을 걸쳤다. 부끄러움과 말로 할 수 없는 껄끄러움이 복받쳤다. 호운은 옷을 다 입은 후에도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그런 호운에게 복치운이 손을 뻗었다.

철썩!

언젠가의 광경이 다시 재연되었다. 이번에도 복치운의 손을 쳐낸 호운은 아차 하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또 복치운이 마음을 상했을까 해서였다. 그러나 복치운은 곧은 눈으로 똑바로 호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에 어둑한 상념이 스며있기는 했지만 방금 전 호운의 행동으로 마음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았다.

"쉬십시오 형님."

복치운은 다시 한번 호운에게 손을 뻗어 그를 침상으로 안내했다. 이번에는 호운도 그 손을 밀쳐내지 못했다. 복치운은 호운을 자리에 뉘여 준 후 침상을 정돈해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운은 별다른 말이 없는 복치운의 태도에 오히려 불안을 느꼈다.

"더럽다고…여기는 것이냐."

겨우 말문을 연 호운을 말에 복치운이 걸음을 멈췄다. 

"아니면 동정하는 것이냐."

이어진 호운의 말에 복치운이 주먹을 쥐었다. 손등으로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주먹을 쥔 복치운이 말했다.

"아니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복치운은 그리 말하고 그대로 방을 나섰다. 그 동안, 복치운은 단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로부터 이틀 뒤 호운은 다시 오왕에게 불려갔다. 오왕과 재회한 후 늘 이런 식이었다. 이, 삼일 정도 진성왕부에서 몸을 추스르고 나면 오왕에게 불려가 참담한 일들을 감내해야했다. 점점 지쳐가는 것을 스스로 알면서도 호운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호운은 시종들에게 둘러싸인 채 정궁 안을 걸었다. 언제나 오왕에게 불려올때는 이런식이었다. 마치 호위를 하는 시종들에게 떠밀려 꼼짝도 없이 오왕의 침전으로 끌려들곤 하였다. 지금이라도 뒤돌아서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예전처럼 훌훌 털고 떠나기라도 할 수 있으면 좋았으련만. 유란란이 진성왕 곁에 있겠다고 한 이상 그것조차 자유롭지 않았다.

시종들에게 의해 다시 침전으로 안내된 호운은 눈앞의 광경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오왕이 있으리라 예상하긴 했다. 그런데 문제는 오왕이 혼자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오왕의 품에는 자그마한 체구가 안겨 연신 신음을 울리고 있었다.

"흐윽, 아흑 전하! 전하!"

오왕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데도 제가 바삐 허리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비명처럼 신음을 흘리는 소년의 모습에 호운은 굳었다. 소년은 스스로 자신의 성기를 만지며 몸을 뒤틀어댔고 벌어진 입에서는 쾌락에 취한 신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격해지는 소년과 달리 오왕의 표정은 담담한 채였다. 아니, 오히려 따분해 보이기까지 했다. 결국 오왕은 자신위에서 연신 신음을 내뿜는 소년을 밀쳐내었다. 아직 그의 성기가 꼿꼿하게 선 모양을 보면 절정에 달해 그런 것은 아닌 듯 보였다. 오왕에게 밀쳐진 소년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오왕에게 무릎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작은 입으로 오왕의 성기를 삼키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호운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욱, 하고 구역질을 참는 소리를 냈다. 구역질이 났기 때문이다.

그 소리에 소년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던 오왕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호운을 확인한 순간 시큰둥하게 있던 오왕이 갑작스레 소년의 머리채를 붙들고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고 기다란 성기가 소년의 작은 입속으로 거칠게 틀어박히고 빠지는 것을 몇 번 반복하더니 어느 순간 소년의 목에서 쿠르륵, 물이 역류하는 것 같은 소리가 나고 오왕이 부르르 허리를 떨었다. 그리고는 마치 먼지를 털어내듯 소년의 몸을 밀쳐냈다. 벌거벗은 채 밀쳐진 소년은 입안에 맺힌 것을 꿀꺽 삼키고 오왕을 애원하듯 보았다.

"전하…."

아직 소년의 성기는 발기한 채였다. 

"제발…."

"이리 와라."

오왕의 명령에 소년이 홍조를 띄고 고개를 들었지만 그 명령은 그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호운은 시종에게 등을 떠밀려 한걸음 한걸음 침상으로 다가갔다. 침상까지 앞으로 두 걸음도 채 남지 않은 거리에서 호운은 멈춰 섰다. 

오왕은 침상 앞에 멈춰선 호운을 보더니 턱을 괴고 명령했다.

"벗어라."

오왕의 명령에 호운은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까지 오면서도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 매번 배신당하는 기대를 매번 품고 있었다. 그런데 고작 이틀 만에 그런 기대는 무너지고 현실을 이랬다.

"벗으라고 명했다."

차가운 재촉에 호운은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일단 벗기 시작하자 망설이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호운은 순식간에 알몸이 되어 오왕 앞에 섰다. 아직 호운의 몸에는 오왕이 남긴 흔적들이 고스란했고 개중에는 아직 피딱지가 앉은 상처도 있었다. 오왕은 벌거벗은 호운을 본 순간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 표정의 의미를 호운이 생각해보기도 전에 그가 호운에게 손을 뻗었다. 

곧 오왕의 손에 이끌려 호운이 침상 위를 뒹굴자 소년은 눈치를 살피며 침상 아래로 내려갔다. 오왕이 말없이 손을 들자, 시종이 얼른 기름병을 그에게 대령하였다. 오왕은 그 기름을 손가락 가득 묻히고 호운을 정복할 준비를 시작했다. 아직 채 상처가 아물지 않은 곳으로 오왕의 손가락이 파고들자 호운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나 오왕은 그런 호운의 표정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적당히 기름을 바른 후에 자세를 잡았다.

어느새 발기한 것인지 토정한지 일각도 지나지 않은 오왕의 성기는 배에 닿을 만큼 팽팽하게 발기한 상태였다. 오왕은 그대로 망설이지 않고 호운의 안으로 침입했다.

"흠…."

오왕은 천천히 성기를 안으로 밀어 넣으며 콧소리를 냈다. 호운에게는 그저 고통이었지만 안을 파고든 오왕은 그저 넣는 것만으로 뱃속이 저릿저릿했다.

'이상한 일이로군.'

오왕은 참으로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가 도착하기 전에 소년을 안은 것은 일부러였다. 그러나 역시, 느낌이 달랐다. 안으로 들어가기만 해도 좋은 이런 느낌을 가진 자는 적어도 그의 처첩 중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여태 안은 그 누구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호운을 품에 안은 오왕은 또 다시 본능만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밭은 숨소리를 내며 토정한 오왕은 여전히 축 늘어져있는 호운의 성기를 보고 미간을 찡그렸다. 왠지는 모르지만 그게 기분이 나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랬다. 그러다 오왕은 타당한 이유를 발견했다. 여태 안은 소년들이 절정에 이를 때의 조임을 기억하기에 눈앞의 사내 또한 절정에 이르면 또 다른 쾌락을 선사해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왕은 호운이 절정은 커녕 발기하는 모습 자체를 본적이 없다. 가끔 고통이 심할 때 미미하게 굳은 성기를 보면 발기가 아예 되지 않는것 같기는 하지만….

오왕은 철벅이는 물소리를 내며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다 침상 옆에 버려진 개처럼 쪼그리고 앉은 소년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곧장 기진맥진한 호운을 일으켜 앉히고 뒤에서 호운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호운은 의식을 잃은 것처럼 눈꺼풀이 내려앉아 있었지만 오왕은 앞으로 두 세번은 끄떡없을 것 같았다.

"너."

"네 전하."

오왕의 부름에 이제나 저제나 하는 얼굴로 앉아있던 소년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옷도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소년을 보며 오왕은 자신이 끌어안은 호운의 다리를 양옆으로 벌리며 말했다.

"한번 세워보아라. 네 정도의 혀 놀림이라면 어쩌면 설지도 모르지."

오왕의 말에 소년은 슬금슬금 눈치를 살폈다. 오왕의 성기를 입에 무는 데는 망설임이 없었던 소년이지만 호운의 성기를 입에 무는 데는 자꾸 머뭇거렸다.

"뭘 하는 게냐!"

오왕의 일갈에 소년은 얼른 호운의 앞으로 다가와 축 늘어져있는 성기를 입에 넣었다. 몽롱해져있던 호운은 갑자기 성기가 따스한 것에 싸이는 감각에 저도 모르게 어깨를 꿈틀 떨었다. 

소년이 호운의 성기를 입안에서 굴리다 천천히 입밖으로 내밀고 삼키기를 반복했다. 그러자 오왕의 눈에도 호운의 성기가 점점 굳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안쪽이 연동되었는지 오왕을 삼킨 내부가 잘게 경련하기 시작했다.

"흐음!"

오왕은 그 감촉을 느끼려는 듯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뒤로 느껴지는 감각에 내려앉았던 호운의 눈꺼풀이 서서히 뜨였다. 호운은 가물거리는 눈으로 자신의 앞에서 엎드린 사람을 보았다. 긴 머리를 늘어트린 새하얀 몸이, 달빛을 받은 잉어처럼 눈부셨다.

'부용….'

호운은 저도 모르게 길게 늘어트린 머리칼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가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 드러난 얼굴에 호운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아…!"

그것은 경악성이었지만 오왕은 그리 받아들이지 않았다. 동시에 호운의 안으로 파고드는 그의 동작이 더욱 거칠어졌다. 그와 동시에 호운의 성기를 빠는 소년의 압력도 강해졌다. 눈앞의 이가 진부용이 아니라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꼈음에도 오랜만에 흥분하기 시작한 성기는 본능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학! 밭은 소리를 내며 호운이 바르르 몸을 떨자 그와 연결되어 있던 오왕의 몸에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움직이지 않아도 오왕을 받아들인 호운의 안이 전율하듯 부르르 떨어 그의 성기를 자극하였다. 점차 거칠어지는 숨소리에 맞춰 호운의 안도 용트림을 하듯 꿈틀거렸다. 뜨겁게 자신을 자극하는 감각에 오왕은 망설이지 않고 절정을 향해 달렸다. 

결국 소년의 입안에서 절정에 달한 호운이 사지를 굳힌 순간 오왕도 호운의 안에서 절정에 다다랐다. 

평소에는 혼자 씨근거리던 오왕의 숨소리에 섞여 호운의 거친 숨소리가 실내에 울렸다. 강제로 토정당한 충격에 자실감에 빠진 호운은 허덕이듯 겨우 겨우 숨을 쉬었지만 오왕은 호운이 느낀 절정을 그대로 느낀 듯 충족한 얼굴로 호운의 등에 입술을 대었다. 그런 오왕의 눈에 서서히 뒤로 물러서며 입가를 훔치는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볼이 부풀어 안에 무언가를 머금고 있음을 암시하는 모습에 오왕은 인상을 찡그렸다.

"뱉어라."

생각보다 먼저 말이 나갔다. 오왕이 그리 명하자 소년은 눈치를 살피더니 침상 옆에 마련된 대야에 입안의 것을 뱉어냈다. 오왕은 끈적한 것이 소년의 타액과 섞여 대야를 채운 물속에 섞여드는 모습을 확인한 후에야 찡그렸던 미간을 폈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에게 안겨있는 호운의 땀에젖은 피부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뼈가 도드라진 갈비를 타고 오른 손은 천천히 가슴의 우두를 지분거렸지만 호운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오왕이 호운의 얼굴을 확인해 보니 이미 호운은 기절한 후였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오왕의 행동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호운의 성기에는 관심조차 보이지않던 이가 손으로 호운의 성기를 주물러대고 그를 흥분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호운은 혐오감에 아무리 자극을 주어도 발기가 되지 않았다. 사내이기에 성기를 직접 자극하면 흥분하는것이 당연했지만 목덜미로 닿는 숨소리나 피부에 닿은 감촉이 상대를 오왕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호운의 흥분은 싸하게 식었다. 이래도 저래도 도저히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오왕은 처음 호운을 입으로 받아들였던 소년을 다시 침전으로 불러 들였다. 소년은 당황한듯 보였지만 이미 한번 했던 일인지라 순순히 명을 들어 호운을 흥분시키는 것을 노력하였다. 그러나 호운은 이번에는 쉽게 발기를 하지 못하였다. 이에 오왕은 화가 나 소년을 닦달해댔지만 방법이 없었다. 수차례 그 일을 반복한 후, 오왕은 호운이 의식이 없어질 무렵에야 발기를 한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그때에 맞춰 소년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런 오왕의 예상대로 몇 번의 교합이 끝나 기진맥진한 호운은 쉽게 발기하여 오왕은 전보다 더한 쾌감을 얻게 되어 만족하였다. 

하지만 호운은 아니었다. 그는 사내를 상대하는 것으로 모자라 소년에 의해 발기하는 자신이 견딜 수 없이 싫었다. 끔직했다. 그러나 오왕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 소년을 부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호운의 피폐함은 날로 더해져만 갔다.

마침내 호운이 도성에 도착한지 정확히 백일 째가 되는 날의 아침이 밝았다. 호운은 침상에 누운 채 가만히 천정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틀 전 진성왕부로 돌아왔으니 아마 오늘밤에는 다시 불려갈 것이다. 그러나 이제 호운은 한계에 가까웠다. 지치고 괴로웠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서 느껴지는 것이 절망 뿐이라 호운은 낙담했다.

멍하니 천정을 바라보고 있던 호운은 방문 앞에서 들린 인기척에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치운아."

방 안으로 들어선 것은 복치운이었다. 열흘 전 보고 처음으로 보는 복치운의 얼굴에 처음에는 기꺼워 한 호운이지만 곧 열흘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얼굴을 흐렸다. 그날 있었던 일은 호운에게는 참으로 수치스러웠던 일이었다. 그러나 복치운이 그 일을 어찌 받아들였는지를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했다.

지금도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복치운의 시선에 자리가 너무나 불편하였다. 한참동안 말없이 호운을 바라보던 복치운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오며 입을 열었다.

"도성을 떠나요."

"치운아?"

"이대로는 안되요. 도성을 떠나요 형님."

복치운의 어조는 침착했지만 호운은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안된다. 내가 가면 란란이가 무슨 해를 당할지…."

"누님은 정식으로 첩지를 받은 총비예요. 무슨 일을 당한다 하더라도 진성왕이 막아 줄 겁니다. 하지만 형님은 진성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막을 구실도, 의지도 없는 입장이에요. 이대로 있으면 형님만 상할게 뻔해요."

"치운아."

"괜찮아요 형님. 형님이 사라진다고 해도 누님에게는 해가 가지 않아요. 물론 형님이 도성에 있으면서 오왕의 부름에 거절을 한다면 문제가 생길수도 있지만 형님이 자취를 감춰버리면 천하의 오왕도 수가 없지요. 그러니까 형님. 도성을 떠나요."

복치운은 이미 결심을 한듯 흔들리지 않는 어조로 말했다. 생지옥이라 여겼던 순간 구원의 빛이 스미자 호운은 흔들렸다. 몸의 괴로움과 마음의 괴로움이 이미 차고 넘쳐 누구라도 자신을 구해준다면 매달리고 싶은 상황이었다.

"정말…그리해도 란란이에게 해가 가지 않겠느냐."

그러나 마냥 유란란이 걱정스러운 듯한 호운의 말에 복치운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한참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님. 형님을 처음 만난 날, 누님이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세요? 어머니가 왕의 귀비까지 올랐던 사람이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그 맹랑하지만 가련했던 아이들에 대한 기억을. 호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복치운은 목소리를 낮추고 말하였다.

"그게 사실이라면 믿으시겠어요?"

"나는 그게 사실이라 믿는다."

"그리고, 제가 그 왕의 핏줄이라면 믿으시겠어요?"

복치운의 말에 호운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게…무슨 말이냐."

호운은 여태 유란란의 말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유란란은 자신의 어미가 왕의 귀비였다 말하며 '한때' 라고 말하였다. 때문에 왕의 귀비까지 되었다가 버려진 여인의 자식이리라 어림짐작 했을 뿐이다. 그런데 복치운이 그 왕의 아들이라니.

"그러면 란란이도 왕의 핏줄이란 말이냐."

"아니오. 누님은 어머니께서 귀비가 되기 전에 성혼하였던 분과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그러니 저와 누님은 반쪽만 피가 통하는 남매이지요."

복치운의 말에 호운의 머릿속이 단번에 어지럽혀졌다. 

"그렇기에 누님은 처음 도성으로 가면서 형님의 100일간이라는 제안을 수락했을 거예요. 아마 처음에는 누님도 도성에는 길게 머물 생각이 없었을 테니… 누님은 알고 있어요. 제가 도성에 오래 있었다가는 어떤 일이 생길지. 분명 그들은 지금도 누님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을 거예요. 그러다 보면 차츰 저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게 될거고…저에 대해 알게 된다면 그들은 저를 절대로 살려두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라니."

"오왕과 황제. 그 두사람이요."

오왕과 황제가 왕의 핏줄이라는 이유로 복치운을 죽이려 한다? 그럴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던 호운은 곧 저도 모르게 제 손으로 입을 가렸다.

"반란을… 일으킨 월왕의 핏줄이었던게냐."

"아버지는 반란을 일으킨 적이 없어요! 모두, 아버지를 미워한 황제의 계략이었지요. 하지만 그들에게는 아버지가 반란을 일으킨 폐왕(廢王)이기에, 폐왕의 핏줄인 더 또한 목숨을 부지할 수 없어질 겁니다."

"갑자기 그런 중대한 이야기를 내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형님이 망설임 없이 도성을 떠나도록 하기 위해서예요. 형님은…아마 이대로라면 누님을 신경써 몸이 망가질 때 까지 이 자리를 버티고 계실테지요.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있을수만은 없습니다. 그러니 형님. 저를 위해서라고 생각하시고, 도성을 떠나요."

말을 하는 복치운의 절절한 표정에 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복치운은 호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반색하며 그의 손을 잡았다.

"잘 생각하셨어요 형님!"

복치운은 호운의 손을 강하게 쥔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준비는 제가 이미 마쳐두었습니다. 형님은 술시를 알리는 종이 들리면 왕부 뒷문으로 나와주시면 됩니다. 이미 통행증도 마련해 두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일을 란란이는 알고 있느냐."

호운의 물음에 복치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통행증을 어찌 마련하였겠습니까. 누님이 마련해 주신겁니다."

그 말에 호운의 마음이 한층 가벼워졌다. 

그 밤, 술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기도 전에 호운은 왕부의 뒷문근처에 서 있었다. 조금 더 시간을 지체했다가 혹여 자신을 부르는 오왕의 심부름꾼이 먼저 와 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복치운은 호운에게 말한 것처럼 술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 작은 마차를 몰고 모습을 드러냈다. 허름한 마차였지만 바퀴는 제법 튼튼해 보이는 것이 긴 여행에 적합할 듯싶었다. 복치운은 호운을 마차 안으로 들어가라 한 후 자신이 직접 마차를 몰았다.

어두운 도성의 거리가 창밖으로 스쳐가자 호운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었다. 어째서인지 아까부터 심장이 요란스레 쿵쿵거렸다. 이 불안함이 무얼까 더 생각해 보기도 전에 마차는 도성의 성문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한참을 부지런히 달리던 마차가 갑자기 멎었다. 호운은 불길한 예감에 마차 밖을 살짝 살폈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싼 병사들을 발견해 저도 모르게 급한 숨을 들이 마셨다. 말을 탄 수십명의 병사들이 마차를 에워싸고 있었다. 마치 사냥꾼이 짐승을 모는 것처럼 마차를 에워싼 병사들의 모습에 호운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복치운이 묻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병사들 중 한 사람이 물었다.

"거기에 호씨라는 자가 타고 있느냐."

다시 호운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닙니다. 여기에는 제 어머님이 타고 계십니다."

"확인을 해 봐야겠다."

"어찌 외간 남자가 아낙의 얼굴을 확인하려 하십니까?"

복치운의 말에 대답을 하던 병사가 큰 소리로 외쳤다.

"마차 문을 열어라!"

"네!"

마부석에 앉은 복치운이 어찌할 틈도 없이 마차의 문이 열리고 호운의 모습이 병사들의 앞에 드러났다. 처음 복치운과 이야기를 하였던 병사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참으로 해괴한 일이로군. 어미가 타고 있다더니 타고 있는 것은 사내가 아니더냐. 설마하니 저 사내가 너를 낳은 어미라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병사의 말에 복치운은 무어라 말을 하지 못하고 마차의 고삐만 쥐고 있었다. 병사는 그런 복치운을 보고 코웃음을 치고 다른 병사들에게 명했다.

"끌어내려라!"

"예!"

순식간에 마차에서 끌려나온 호운을 보며 복치운이 마부석에서 뛰어내려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건장한 체격의 복치운이라도 단련된 수십명의 병사를 상대로는 속수무책이라, 그는 순식간에 포박 당해 바닥을 뒹굴었다.

"치운아!"

호운이 놀라 복치운의 이름을 불렀지만 곧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병사들에게 질질 끌려 길가에 세워져 있던 다른 마차에 태워졌다. 이는 언제나 오왕이 호운을 불러들일 때 보내는 마차였다. 그 마차의 모습에 호운은 이 일이 오왕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호운을 태운 마차는 금세 방금 달렸던 길을 거슬러 달리기 시작했다. 마차안에 갇힌 호운은 창가에 달라붙어 복치운의 모습을 보았다. 멀찍이, 바닥에 쓰러져 병사들의 발에 짓밟히고 있는 복치운의 모습이 보였다. 

"치운아!"

호운이 큰 소리로 외쳤지만 그 목소리는 복치운에게 전해지지 않았고, 달리는 마차에 의해 복치운의 모습은 눈 깜짝할 사이에 멀어져 사라졌다.

호운은 병사들에게 양팔이 잡혀 정궁 안으로 질질 끌려들어갔다. 복도를 오가던 시비들은 모두 그런 호운을 못 본 척 하며 길을 비켰다. 호운이 끌려들어간 곳은 언제나처럼 오왕의 침전이었다. 침전 안에 자리하고 있던 오왕은 호운이 병사들에게 끌려 나타나자마자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끌려온 호운을 바라보는 오왕의 표정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번뜩이는 눈빛은 그가 평소와 달리 매우 화가 난 상태라는 것을 알렸고, 호운은 그 눈빛에 부르르 떨었다.

"꿇려라."

오왕의 명에 병사들은 호운을 바닥에 무릎 꿇렸다. 오왕은 병사들에게 억눌린 호운을 가만히 보다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감히 본 왕의 명령을 무시하고 도성을 빠져나가려 하다니."

담담하면서도 냉담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호운은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았다. 이런 자들에게 호운 같은 자의 목숨은 파리 목숨보다 못하다. 여태는 호운의 몸이 마음에 들어 살려주었는지 모르지만 명을 거역한 것이 기분이 상했다면 호운의 목을 친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곧 오왕은 자신의 허리에 찬 옥대(玉帶)를 풀었다. 얇은 비단이 겹겹이 겹쳐진 옥대를 풀어든 오왕은 그대로 옥대를 채찍처럼 휘둘러 호운의 등을 내려쳤다.

철썩!

옷 위로 타격을 당했음에도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고 호운의 몸이 떨렸다. 오왕은 그런 호운의 모습을 확인하고 연이어 옥대를 휘둘렀다. 철썩철썩, 옥대가 몸을 후려칠 때마다 호운의 몸이 사정없이 떨렸다. 그렇게 한참을 호운의 등을 두드리던 오왕은 피가 터지고 나서야 손을 멈추었다.

"벗겨라."

오왕의 명에 시립하고 있던 병사들 대신 내관들이 앞으로 나서 호운의 옷을 벗겨냈다. 곧 벌겋게 부은 등의 한 가운데 가로지르는 붉은 핏줄기가 드러나자 오왕은 옥대를 던지고 혀를 찼다.

"이리로."

오왕의 명에 움직인 것은 호운이 아닌 내관들이었다. 그들은 오왕의 폭력을 참느라 굳어있던 호운을 질질 끌어 침상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오왕이 그를 침상에 뉘이라는 눈짓을 하자 망설임 없이 침상에 뉘이고 나머지 옷을 벗겨냈다. 오왕은 벌겋게 부은 호운의 등을 손으로 훑으며 냉담하게 말했다.

"본왕의 은혜로 여기서 멈출 테니 감사하여라."

그렇게 말하면서 등을 흐르는 피를 자신의 손가락에 듬뿍 묻히고는 슬그머니 궤적을 그리듯 등을 쓸어 손가락으로 호운의 밀지를 파고들었다. 피에 젖은 손가락은 손쉽게 호운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고통을 참던 호운은 또 다른 고통을 알리는 오왕의 행동에 그저 이를 악물었다. 변한 것은 전혀 없었다. 

늘 그렇듯 오왕은 수십명의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호운을 농락하기 시작했다. 평소와 달리 십수명의 병사가 더해졌지만 오왕에게 신경쓰이는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왕이 바짓자락을 풀어 호운의 안으로 파고들어가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그 중 한 사람이 조용히 침전을 빠져나갔지만 그 또한 그가 알 바가 아니었다.

오왕은 평소처럼 호운을 상대로 제 욕심을 채우다 그가 한계에 다다른 듯 하자 내관에게 호운을 흥분시킬 소년을 불러오라 일렀다. 그냥 해도 좋았지만 역시 흥분한 호운이 절정에 달할때의 쾌감은 그 무엇도 비견할 바가 못 되었다.

"왕야."

힘없이 늘어진 호운의 턱을 빨고 있던 오왕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소년이 도착했다 생각하고 기진해 침상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호운의 몸을 일으켜 앉혔다. 아직 연결된 채로 몸을 움직여서 그런지 호운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방안으로 들어온 것은 오왕의 예상과 다른 인물이었다. 오왕은 시종의 뒤로 선 장대한 체구의 청년을 발견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것은 서융이었다. 붉은 갑주를 걸친 서융은 마치 석상이라도 된 것 마냥 그 자리에 굳어있었다. 표정은 평소처럼 무표정으로도 보였지만, 크게 벌어진 두 눈에 지금 그가 느끼는 경악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런 서융의 시선은 오왕에게 앉혀져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는 사내에게 쏠려있었다.

그 표정에 오왕은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자신 뿐 만이 아니라 융 또한 이 사내에게 집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순간적으로 스친 표정이지만, 그 표정에 오왕은 많은 것을 알아챘다.

'아직 이로군.'

오왕은 이미 융이 이 사내를 잊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그의 표정은 13년 전 처음 융을 거둬들이던 그때와 한치도 다르지 않았다. 품안의 사내를 제 것이라고 외치며 발악해대던 야생짐승같은 본능이 그 눈동자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오왕은 그런 융의 속내를 알아채고서는 일부러 태연한척 말을 건넸다.

"서장군은 잠시 기다리거라."

오왕의 말에 서융의 눈빛이 사납게 일렁거렸다. 본능처럼 그의 손이 검을 향해 움찔거리는 것을 보고서도 오왕은 태연했다. 그는 오히려 보란 듯이 일으켜 앉힌 호운의 어깨에 입술을 대고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운이 작게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그것은 쾌감이 아닌 고통의 소리였다. 이미 호운과 수차례 잠자리를 함께한 오왕은 호운이 이미 한계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호운이라는 사내는 한계가 되어 제정신을 놓을 때가 되어서야 발기를 하는 사내였다. 마치 발기를 하는 것이 큰 죄라도 되는양 제정신을 때는 무슨 방법을 동원해도 절정은 커녕 발기조차 하지 않았다.

오왕은 혹여 호운이 정신을 놓을까 신경쓰며 허리를 움직이던 것을 멈추고 손으로 호운의 몸을 지분거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 오왕이 기다렸던 소년이 당도하였다. 이미 지난번 오왕이 호운을 불러올 때 불러와 자신에게 명했던 것이 무엇이었던지 아는 소년은,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와 침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오왕에 의해 양다리가 벌려진 호운의 가랑이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자신이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곧 실내에 당과를 빠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빠는 소리가 들리고, 호운의 숨소리가 점차 거칠어졌다. 소년의 등에 의해 가리 워져 있었지만 지금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소리나 호운의 숨소리를 보면 확연했다.

오왕은 그 소리에 맞춰 자신도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수차례 절정에 달한 오왕의 정액들이 호운의 속에서 마찰하는 소리가 방안을 낮게 울렸다. 점점 빨라지는 마찰음에도 서융은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흑…!"

마침내 호운이 울음같은 신음을 토해내고 고개를 떨구자, 오왕이 호운의 목덜미에 이를 세운 채 부르르 허리를 떨었다. 이미 힘없이 무너진 호운의 몸을 따라 오왕의 상체도 숙여졌다. 그리고 그 입에서 만족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호운의 가랑이 사이에 앉아있던 소년은 얼른 몸을 뒤로 빼고 입안에 머금은 액체를 침상 옆에 있는 대야에 뱉어냈다. 물이 찰랑하게 차 있던 대야에 뿌옇게 번져가는 액체를 흘긋 본 오왕은 아직도 장승처럼 서 있는 서융을 보았다. 서융은 여전히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지만 그 두 눈은 아까보다 더욱 어둡게 침잠되어 있었다. 그 아래 깔려있을 불길을 알면서도 오왕은 태연했다. 그는 정신을 잃은 호운의 몸을 그대로 끌어안은 채 서융에게 물었다.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인가. 내 한동안 서장군은 황상의 곁에서 떨어지지 말라 명하였다만."

오왕의 물음에 서융은 잠시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곧 평소처럼 충실한 신하의 가면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즉시 침전으로 드시라는 황상의 명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

벌써 자시가 넘은 심야다. 그런데 침전이라니. 그 말에 오왕은 짚이는바가 있어 천천히 물었다.

"위독하신가."

서융이 고개를 끄덕이자 오왕은 그제야 호운에게서 품을 떼어냈다. 의식이 없는 호운은 오왕의 손이 떨어지자 힘없이 침상위로 쓰러졌다. 오왕은 두 눈을 감고 침상에 쓰러져있는 호운을 가만히 보다 곧 손짓을 했다. 머지않아 시종들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벌거벗은 오왕의 몸에서 정사의 흔적을 닦아내고 의관을 갖추었다. 순식간에 의관을 갖춘 오왕은 여전히 꼼짝도 않고 선 서융을 보며 말했다.

"앞장서거라."

서융은 오왕의 말에 깊게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이기 전 그의 눈길이 향한 곳이 어디인지 뻔히 알면서도 오왕은 그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오왕은 침상에 드러누워 급한 숨을 색색 몰아쉬는 자신의 부친을 바라보았다. 부친이라 하지만 살가운 느낌은 없었고 오왕에게 그는 그저 황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도 전에는 풍채가 당당했었는데 자리에 몸져누운 후에는 말린 과일처럼 쪼그라들어 최근에는 완연한 병자의 모습이 되어버렸다. 오왕은 그런 참담한 황제의 모습을 무덤덤하게 보았다.

오왕의 어미인 여인은 주제를 모르는 여자였다. 천한 신분으로 황상의 넘치는 사랑을 받으면 과분해 해도 부족할 것을, 그녀는 언제나 저를 놓아달라며 황제에게 하소연했다. 그러나 황제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고 황궁 안에서 그녀는 서서히 병들어갔다.

오왕의 첫 기억은 저를 때리는 어미의 하얀 손이었다. 오왕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따스한 어미 품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의 어미는 어미이면서도 황제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오왕을 끔찍하게 미워했다. 매를 들 때는 오히려 그녀가 이성적인 날이었다. 그녀는 때때로 정신을 놓은 사람처럼 손톱으로 오왕을 할퀴어대며 소리를 질러대곤 했는데, 그럴 때는 시종 그 누구도 나서서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어렸던 오왕의 일상은 어미의 울음과 비명과 분노와 매질의 연속이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죽었을 때 오왕은 그다지 슬퍼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기뻐했다. 대들보에 목이 매여 데롱 거리던 그녀를 처음 발견한 것이 오왕이었다. 머리는 사방으로 풀어헤치고 창백한 얼굴에 혀를 길게 빼물고 죽어있는 그녀는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근처로 접근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추악했다. 그러나 소식을 듣고 달려온 황제는 그 추한 시체를 끌어안고 통곡했다. 오왕은 오열하는 아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말이 아비지, 오왕에게는 길가를 굴러다니는 돌멩이 보다 낯선 자였다. 황제는 언제나 야음을 틈타 어미의 침실에 들어 밤을 보내고 사라지곤 하였다. 한번 황제가 어미의 침실에 든 것을 구경한 적이 있는 오왕은 그 괴이한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벌거벗겨져 짐승처럼 사지가 묶인 어미위에서 마찬가지로 벌거벗은 황제가 해괴한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어렸던 오왕에게도 그것이 정상적인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 낯선자가 통곡하는 모습을 오왕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그 후 황후의 궁으로 옮겨진 후에도 오왕의 생활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나아진 감이 있었다. 황후는 천출인 오왕을 경멸하긴 했지만 그의 어미처럼 직접 손을 댈 성격의 여자가 아니었다. 그저 그녀는 오왕에게 천한 것들이 입는 것과 먹는 것을 줘 그를 천것처럼 키우려 했을 뿐이다. 매질과 울음과 비명이 없는 생활에 오왕은 그저 만족했다. 그러나 그 만족하던 생활은 어느날 자신을 찾아온 아비로 인해 끝나고 말았다.

오왕은 황제가 자신을 찾았던 그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아마 황제는 오왕이 황후로 인해 어떤 대접을 받는지 뻔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를 방치한 것은 오왕에게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날 오왕을 찾아온 황제는 오왕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귀비를 많이 닮았구나."

첫 마디가 그것이었다. 귀비가 오왕의 어미를 뜻함임은 오왕도 잘 알고 있었다. 황제는 치졸한 옛 연인에 대한 향수로 오왕을 제대로 된 황실의 핏줄로 대접하였다. 고작, 죽은 정인을 닮았다는 이유로 길가의 돌멩이 취급하던 오왕을 군으로 봉하고 왕으로 봉하는 어리석은 자. 그렇기에 오왕은 황제를 경멸하였다.

눈앞에서 기식이 엄엄하여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황제를 보면서도 오왕은 거짓으로라도 걱정스러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황제도 거기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가 오왕에게 바란 것은 충성스러운 신하도 사랑스러운 아들도 아닌 그저 정인을 닮은 그림자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이미 황제의 유언은 모두 작성된 후였다. 황후나 진성왕 일파는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황제는 자리에 몸져누우면서부터 이날을 준비했다. 황제의 유언은 차기 황제를 정하는 정황(定皇)부터 장례절차, 그리고 차후 국정에 대한 세세한 것을 지시한 여러 장의 봉서로 만들어졌다. 그 중 일부는 오왕이 가지고 있었고 일부는 궁의 모든 일을 총관하는 태감이, 그리고 나머지 일부는 예관에서 가지고 있었다. 이미 할 말을 모두 마친 그이기에 황제는 새삼 자신을 부르는 황제의 태도가 납득이 가지를 않았다.

그러나 숨을 색색 몰아쉬면서도 자신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황제의 시선에 오왕은 연유를 깨달았다. 죽는 그 순간에도 옛 정인을 닮은 이 얼굴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이 천하를 지배하였던 황제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생각에 오왕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이리도 어리석을까.

"사실을…말해다오…."

"무엇을 말입니까."

숨을 색색 몰아쉬며 황제가 물었다.

"태평왕을 해한 것이…정녕 월왕이었더냐."

거칠던 황제의 숨소리가 점점 부드러워지더니 눈빛 또한 또렷해졌다. 오왕은 이것이 사람이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회광반조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지금 알아서 어찌하시려구요. 지금이라도 유지를 고치시렵니까."

대답을 하는 오왕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은근히 월왕이 범인이 아님을 말하는 오왕의 얼굴을 보고 황제는 후후후,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역시 너였구나…. 역시 너였어."

말을 하면서도 황제는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무엇이 그리 우스우십니까."

황제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웃었다. 그러다가 길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는 참으로… 네 어미와 같이 잔인해서… 꽃처럼, 꽃같이 아름다운 얼굴로………비수 같은 말을… 토해내는데 거리낌이 없구나…."

오왕을 잔인하다 말하면서도 황제는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한참동안 넋을 잃은 듯 미소지으며 오왕의 얼굴을 바라보던 황제가 미소를 거두며 말했다.

"차라리… 이런 순간에는 월왕 그놈이 범인이라 해 주었다면 좋았을…것을. 그렇다면 월왕 그놈이 그리, 그리 타락했구나 하고… 비웃으며, 죽어 네 어미를 보며 당당히… 네가 사랑한 놈이 고작 저것뿐인 놈이라고 그렇게…."

황제의 숨소리가 점차 거칠어졌다. 오왕은 그 말을 듣고서야 황제가 월왕이 범인이라고 고한 자신의 말에 순순히 납득한 것을 이해했다. 자신의 어미가 황제를 그토록 미워했던 것이 월왕의 탓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황제는 요족이라면 치를 떨었다. 그 모든 것이, 단지 치졸한 연정 때문이라는 사실에 오왕은 어이가 없었다.

"어머니가 월왕을 사랑하신 겁니까."

오왕의 물음에 황제는 거친 숨만 내쉬었다. 대답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듯 보였다. 그 태도에 오왕은 답을 얻었다.

'한심한 자.'

당장이라도 숨이 끊길 듯 거칠어진 황제의 숨소리를 들으면서도 오왕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황제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다 끝내는 끅, 하는 소리를 끝으로 고개가 떨구어졌다. 오왕은 황제의 목에 손을 대어 보았다. 더는 희미하던 맥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황제가 절명한 것을 확인하고도 오왕은 한참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서융은 황제의 침상앞에 선 오왕을 모습을 보다 가만히 바닥을 노려보았다. 마음을 가라앉혀야했다. 아까부터 본능이 자꾸 눈앞의 오왕의 목을 베고 자신의 것을 되찾으라 충동질하고 있었다. 오왕이 사라져야 자신이 것이 돌아온다며 본능이 울부짖는 소리를 서융은 애써 억눌렀다.

처음 부하가 오왕이 보고해 왔을 때만 해도 서융은 눈살을 찌푸렸다. 부하는 저 오왕이 지금 사내를 안고 있다 했다. 그러나 곧 그것도 있을수도 있는 일이라 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은 사내를 안을 수도 있겠지. 사내라는 것은 본디 상대가 누구든 간에 제가 하고 싶으면 하게 되어 있는 생물이니까."

"하지만…."

부하는 말에 뜸을 들였다. 그러자 서융은 눈썹을 찌푸렸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라. 그리 뜸을 들이지 말고."

서융의 채근에 부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장군. 그저 왕야의 행동이 무척 기묘해 보여 그렇습니다. 도망치던 사내를 끌고 오라 명하시더니 직접 매질을 하시다가 침실로 끌어들이시는 모습이…."

"도망치던 사내를 끌고 오라 명했다?"

그 말에 서융의 머리에 불길한 것이 스쳤다. 도망치던 사내. 도망치던 사내라니. 그런 서융의 의구심을 모를 부하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거기에 그 사내를 품으시면서 직접 손을 대시고 입을 대시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혹시나 해 다른 내관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쉬쉬하지만 벌써 한달이 족히 넘은 일이라고…."

그 말에 서융의 두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한달이 족히 넘었다 했다. 그 말로 상대가 그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기에 오왕이 그리 대할자가 천하에 또 있을것 같지가 않았다.

서융은 갈등했다. 이 자리에서 당장 박차고 나가 오왕의 침전으로 향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황제의 침전 앞을 지키라 명을 받은 상황이다. 만약 그리로 갔는데 안겨있는 사내가 그가 아니라면? 만약, 그리로 가지 않았는데 안겨있는 사내가 그라면?

갈등하던 서융에게 대전내관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 대전내관의 입에서 나온 말로 서융은 망설임없이 정궁으로 향했다. 황제가 오왕을 불러오라 명한 것이다.

그 말에 서융은 서둘러 정궁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의 눈 앞에 보인 풍경은 자신이 예상한 것 보다 더욱 나빴다. 보는 순간 피가 거꾸로 돌고 절로 살의가 일었다. 지금도 잊으려 해도 머릿속에서 방금 전 광경이 수없이 반복되었다. 힘없이 떨리던 다리나 물기어린 눈매, 그리고 몸 곳곳에 남은 붉은 흔적들까지. 그것에 제 품안에 있었다면 여한이 없었을 텐데 그것은 오왕의 아래서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하필이면, 하필이면 오왕의 아래서.

'오왕이다, 결국.'

오왕은 저에게 권력을 준 사람이고, 앞으로도 쭉 권력을 줄 이였다. 아마 그 정도라면 평생 서융을 부귀영화 속에서 살게 해 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주더라도 단 하나는 절대 그에게 쥐어주지 않을 자였다.

서융은 바닥으로부터 시선을 올려 황제의 곁에 선 오왕의 등을 노려보았다. 저 사내가 호운을 안았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안았다.

제 것을 도적질한 도적이 저놈이다.

주체할 수 없는 살기가 일었다. 당장이라도 오왕의 머리를 쳐버리고 싶을 정도로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그러나 서융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이성이 치밀어오르는 본능을 억눌렀다. 그도 이제는 어른이 되었다. 예전처럼 앞만 보고 달릴 정도로 풋내 나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서융은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기 위한 수단을 떠올렸다. 시선은 오왕의 등에 고정된 채였지만 그의 머리는 바삐 여러 가지 수단을 떠올렸다. 서융은 그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을 떠올리며 마른 혀를 적셨다.

절로 입가로 날카로운 미소가 떠올랐다.

황제가 붕어하였다는 소식은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널리 퍼져나갔다. 뒤늦게 황제의 붕어소식을 들은 황후는 분기를 참지 못하고 발을 굴렸고 진성왕이 허둥지둥 황궁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황제의 임종을 지킨 오왕이 정황의 교지를 받들고 옥좌에 앉은 후였다. 옥좌에 앉은 오왕은 선황의 사체가 채 땅에 묻히기도 전에 연호를 바꾸었다. 통상적으로 연호는 선황의 장이 끝난 후에 바꾸는 것이 관례임에도 오왕은, 아니 새로운 황제는 선황의 유지를 내놓으며 연호를 선유에서 옥우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것이 천하의 주인이 뒤바뀌었음이 만천하에 선포하는 일이 되었다.

[vulpes] 호가지록 (下) 

 현휘 04-06 22:18 | HIT :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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