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震翰 宣諭 三十六年 진한 선유 36년
浩氏 十六歲 호씨 십육세
호씨가 십육세가 되어 장성하자 그 어미가 더는 자식을 이길 수가 없었다. 해서 호씨와 어미는 다툼이 끊이지 않았는데,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온 아들 호씨가 갑자기 제 어미가 음탕하여 제가 이리 재수가 없다며 어미의 목을 졸랐다. 가여운 어미는 순식간에 장성한 아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고 호씨는 어미가 숨겨놓았던 재산을 모조리 가지고 고향에서 달아났다. 호씨가 불러들인 흉사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호씨가 제 어미의 목을 졸라 죽인 날 금상이던 성종의 형제 월왕이 미쳐 이유도 없이 반란을 일으켰다. 9 년전 장자를 잃은 것으로 부족해 이제는 형제마저 잃게 되자 성종은 크게 상심하여 그 상심한 지경이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호운은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다.
호운의 아비는 무두장이였다. 그리 부유한 자는 아니었지만 아비는 외아들로 태어난 호운을 매우 아끼고 사랑했다. 호운이 태어난 해에는 기근이 심해 근방의 집들은 입을 줄이느라 암암리에 자식을 목 졸라 죽였지만 호운의 부모는 그리하지 않았다. 호운은 그것만으로도 제가 충분히 복 받은 생명이라 여겼고, 실제 아비가 죽을 때 까지만 해도 세상이 그리 흉험한 곳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호운이 일곱 살 무렵 아비가 죽었다. 그의 아비는 마차를 만드는 공방(工房)에서 일을 했는데, 어느날 우연히 아비의 공방에 들른 태평왕이 수리를 받은 후 마차 사고로 죽어 아비를 비롯한 공방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대역죄인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성에서 파견된 관리의 재판으로 아비와 일꾼들의 목이 동시에 베어졌다. 저자에 잘린 아비의 목이 걸려있는 모습을 한 달에 걸쳐 보아야 했던 호운이 받은 상처는 어마어마했다. 철모르던 시절이었지만 저를 둘러싼 사람들의 날선 시선을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황제는 그나마 온정을 베풀어 대역죄인의 가족들의 목숨을 살려주고 재산을 몰수하는 것 정도로 마무리 지었지만 그것은 가난한 자들에게는 사형보다 더한 형벌이었다. 당장에 먹을 것이 사라지고 지아비들을 잃은 여인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일부는 아이와 함께 목을 매었고 일부는 구걸을 했다. 그러나 호운의 어미는 그런 여인들과 다른 선택을 하였다. 그녀는 아이를 굶길 수 없다며 기녀가 되었다.
호운의 어미는 표면상으로는 금을 탄주하는 기녀(妓女)였지만 실상 창녀(娼女)나 다름없이 몸을 팔았다. 하긴, 집에서 살림만 하던 여인이 금을 배우면 얼마나 배우고 탄주를 하면 얼마나 했겠는가. 다행히 어미는 얼굴만은 반반하여 아비가 살아있던 무렵부터 뭇 사내들의 추파를 받았기에 기녀가 된 후에는 생활이 그리 곤궁하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그런 그녀를 손가락질 했지만 그녀는 호운에게는 좋은 어미였다. 호운은 어미가 저를 위해 그런 선택을 했다 믿었기에 언제나 어미에게 미안했다. 그러나 호운이 열여섯이 되던 해에 어미가 다른 남정네와 눈이 맞으며 호운의 상황은 다시 곤란해졌다.
앞서 말했듯 그녀는 기녀였고 창녀였다.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팔아야 했고, 그런 자신의 삶에 적응해있었다. 먹고 살기위해 어쩔 수 없다는 변명에 스스로를 납득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사랑이 나타나면서 그녀는 갈등에 빠졌다.
그녀에게는 빚이 있었다. 처음에는 야산에서 몸을 팔던 그녀였지만 점차 야산 생활에 염증을 느껴 마을에 집을 얻고 싶어져 빚을 내 무리해 집을 장만했다. 그러나 그 빚은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컸고, 가만히 두어도 이자가 불어나는 빚을 갚기 위해 그녀는 하루도 빠짐없이 몸을 팔아야 했다. 그렇게 다람쥐 챗바퀴 돌듯 하던 그녀가 사랑에 빠졌다. 결국 그 남자와 하는 일은 손님들과 하는 일과 한치도 다르지 않았지만 그 남자와 침상 위를 뒹군다 해서 돈이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더욱이 한번 눈이 맞은 사내와 배를 맞추고 난 그녀는 다른 사내와 침상을 뒹구는 것이 영 마뜩찮았다. 혹시나 자신이 다른 남정네와 뒹구는 것을 이 남자가 알면 그가 자신을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도 있었다. 그러나 빚은 시시각각 그녀의 목을 졸라왔고 그녀는 일을 그만 둘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그녀에게 천금같은 기회가 찾아들었다.
그녀는 어찌할까 고민했다. 아니, 고민했을 것이다. 적어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하루종일 고민했을 것이다. 호운은 그리 믿고 싶었다. 만약 그렇게 고민하지 않고 그녀가 이리했다면 자신의 처지가 너무 우습지 않은가.
호운은 생전 처음 입는 호사스러운 비단옷을 걸치고 있었다. 머리에는 계집들처럼 구슬로 장식된 잠(簪)을 꽂고 얼굴에는 분칠까지 했다. 사내를 그리 꾸며놓으면 우스워 보일것도 같았지만 워낙에 타고나기를 제 어미를 닮게 태어나 사내치고 곱상한 외모인 호운을 그리 꾸며놓으니 제법 볼만했다. 그러나 지금 호운의 안색은 창백하다 못해 새파랬다.
호운은 커다란 침상위에 앉아있었다. 얇은 벽 너머로 날카로운 교성과 웃음소리, 그리고 끈적한 숨소리와 간헐적인 비명이 여과 없이 들렸다.
'아아 나으리!'
'헉헉…!'
'춤을 추어라!'
'호호호호!'
'후욱, 후욱, 후욱!'
도대체 어디서 들리는 건지도 모를 소리들이 뒤섞여 귓전을 웅웅 울리는 듯 했다. 그 소리속에 둘러싸인 호운은 입술을 깨물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달아나고 싶었다.
그러나 호운은 자신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애원하던 어미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어미가 이 일을 물어왔을 때 호운은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미 어미는 선금으로 금 열냥을 받았고, 일을 되물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미는 호운의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이 어미가 스물넷에 네 아비를 잃고 오늘까지, 이날 이때까지 너를 키우느라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이제 나도 늙었다. 더는 기녀노릇이나 하며 살아갈 수 없어, 운아. 이건 기회야 제발. 제발 이 어미의 얼굴을 봐 오늘 하룻밤만 참아다오!'
어미의 눈물어린 애원에 호운의 마음은 흔들렸다. 그 또한 어미의 고충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과 이것은 별개다. 어미는, 호운에게 몸을 팔라고 했다. 비록 하룻밤이지만 남자를 상대로 창부노릇을 하라고 했다. 호운은 번뇌에 빠졌다. 그러나 어미의 새 남자는 그런 호운의 번뇌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앗 하는 사이에 입이 막혔고 정신을 차려보니 잔뜩 치장된 채 호화로운 방의 침상위에 굴려지고 있었다. 몸이 산뜻한 것으로 보아 기절한 사이에 씻기기까지 한 모양이었다. 도망가려고 문을 열려고 해도 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다.
결국 호운은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고 침상에 앉았다. 포기가 빠른 것은 그의 삶이 그리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다. 목이 잘린 아비의 모습에 가슴아파했을 때 주변에서는 그들을 대역죄인의 가족이라며 돌을 던졌다. 그리고 생전 처음 글공부를 갔던 서원에서 쫓겨나던 날, 아이들은 호운에게 돌을 던지며 창녀의 아들이라 손가락질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싫어도 현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고, 그 후로 호운은 여러 가지를 포기하고 살았다. 가난한 창녀의 아들의 삶은 으레 그런 것이다.
아직 어리다지만 호운이라고 어미가 말하는 몸을 판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르지는 않는다. 호운 또한 몇 번이나 당할 뻔 한 일이다. 일곱 살 무렵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머리가 굵어지며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날 호화로운 마차를 탔던 소년이 호운에게 하려고 했던 짓은 분명 성적인 행위였다. 다행히 그날은 미수로 끝났지만 그런 일은 그때 뿐만이 아니었다. 제 어미를 닮아 반반한 얼굴을 하고 있던 탓에 사내임에도 호운은 몇 번이나 그런 위기에 처했다. 천행으로 한번도 실제로 일을 당한 적은 없지만 이번에는 어미가 자신을 이리 팔려 하니 호운에게는 방법이 없었다.
이 하룻밤만 어찌 견디면 된다. 어미가 받은 선금은 황금 열냥. 보통 선금은 절반이나 삼분지 일인 경우가 많으니 적어도 황금 스무냥을 손에 얻게 된다. 그 돈이라면, 어미의 빚은 모두 사라진다. 그 정도면 어미에게 충분한 보은이 되지 않을까.
호운은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던 것을 곱씹으며 자신을 위로했다. 어차피 여자가 아니니, 몸에 흔적도 남지 않는다. 이것은 그저 살다가 한번쯤은 겪을 수 있는 우울한 일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렇게 호운이 스스로를 위로하는 와중, 굳게 닫혀 있던 문이 덜컥 열렸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호운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제법 호화로운 복장을 한 사내들이 우르르 방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훤칠한 체격의 그 사내들은 하나같이 허리에 패검을 차고 날카로운 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방안에 숨어있는 사람을 찾는 것처럼 좁은 방 안을 꼼꼼히 둘러본 후 고개를 숙였다. 물론 그들이 고개를 숙인 것은 호운 쪽이 아닌 방문 쪽이었다. 사내들이 고개를 숙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사내들 보다 한층 더 화려한 복장을 한 청년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복장은 무척이나 화려했지만 그 복장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청년의 외모였다. 분명 사내가 맞고 계집같은 구석은 하나도 없었지만 새하얗고 갸름한 얼굴에 오똑 솟은 코, 그리고 붉고 선명한 입술은 천하절색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였다. 그는 무심코 호운이 제 처지를 잊고 넋을 잃고 바라볼 만큼 아름다웠다. 그런 청년의 뒤로 허리가 굽은 추레한 노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저 녀석인가?"
청년의 물음에 노인이 안 그래도 굽은 허리를 더욱 굽히며 대답했다.
"예 나으리. 분명 한번도 손님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입니다."
노인은 호운에게도 낯익은 사람이었다. 바로 어미가 일하는 요월루의 주인 소노인이었다. 아까부터 들리는 소리가 심상치 않더니, 이곳이 요월루였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소노인이 저리 저자세로 나가는 것을 봐서는 저 청년이 오늘밤 호운을 샀다는 그자인 모양이다.
호운은 다시 청년의 얼굴을 보았다. 새삼 보아도 잘 생긴 청년이었다. 아마 몇 번을 봐도 잘생겼다는 말 밖에는 할말이 없는 청년이었다. 허나, 저 청년이 오늘밤 자신을 샀다고 생각하니 새삼스레 두려움이 치솟았다.
계집들이 넘쳐나는 항주에서 굳이 계집을 마다하고 경험이 없는 사내를 찾는다는 것은 눈앞의 청년이 진정한 남색가라는 증거였다. 색을 밝히는 사내들 중에 경험이 없는 소년 소녀만을 밝히는 자가 있다더니, 그런 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자들의 취향은 대개 엽기적이기 마련이다. 생긴것이 멀쩡한 청년이 그렇다 생각하니 더더욱 소름이 돋았지만, 의외로 청년은 침상에 앉은 호운을 보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되었다, 나가보아라."
"네 나으리.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소노인이 굽실거리며 사라지자 청년은 노골적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린 아이도 아니고 다 큰 사내이지 않느냐. 그런데 내가 저런 사내를 품어야 속이 시원하다는것이냐."
청년의 말에 검을 찬 사내 중 한명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창기를 원하신 것은 대인이십니다."
"내가 바란 것은 계집아이였다. 저런 사내가 아니라."
"계집은 아니된다는 것을 대인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초경을 맞지 않은 계집이라면 될 일이다."
"있었다면 당장에 구해다 바쳤을 겁니다. 없으니 사내로 참으시라는 겁니다."
꼿꼿한 대답에 청년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손을 휘휘 젓고는 성큼성큼 호운의 앞으로 다가왔다. 딱히 내켜하는 기색은 아니었지만 청년이 다가오자 호운은 저도 모르게 침상위에서 뒷걸음질치고 말았다. 그런 호운의 동작에 청년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청년은 얼굴을 찌푸린 채 성큼, 침상위로 올라왔다.
"왜 피하는 것이냐."
호운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청년을 보았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청년은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떠는 호운을 보고 호기심이 동했는지,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사내 치고 생긴 것 하나는 반반하구나."
정면으로 청년과 눈이 마주친 호운은 겁에 질렸다. 청년은 눈빛이 형형했고 호운이 여태 본 그 어떤 사람보다 강렬했다. 만약 호운이 교태롭게 미소지었다면, 혹은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고 청년을 보았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호운의 태도는 마치 겁먹은 어린 짐승같았고 그것이 청년의 호기심을 동하게 하였다.
그것으로 그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처음부터 청년은 제멋대로였다. 그는 호운을 침상에 밀어 쓰러트리자마자 다짜고짜 하의를 풀어내고는 제대로 풀지도 않은 곳을 무작정 삽입하려 했다. 단단한 것이 몸 안으로 침입하는 감각에 호운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청년의 표정도 썩 좋지 않았다. 아무리 단단히 발기한 성기라도 생전 사내를 받아들이지 못한 곳을 단번에 침입하는 것은 무리였던지라, 청년의 성기는 호운의 입구에서 몇 번인가 용을 쓰다 물러나고 말았다. 청년은 낯선 고통에 눈물이 터져 우는 호운을 보다 혀를 차고 방의 입구와 창에 선 사내들을 불렀다. 어째서인지 방사가 벌어지는 방에서 나가지 않고 버티고 있던 사내들은 청년의 명령에 침상 곁으로 다가왔다.
"벌리고 기름을 부어."
청년은 명령에 익숙한 것처럼 사내들에게 명령했다. 아무리 잘나가는 부잣집 도령이라도 이런 파렴치한 명령은 할 수 없을 텐데 너무나 당당히 요구한 청년의 말에 사내들은 조용히 움직였다.
한 사내가 발버둥치는 호운의 양 팔을 붙들고, 다른 사내는 다리를 벌리고. 또 다른 사내가 향유를 부었다. 마치 제단에 올리는 양처럼 자유를 빼앗긴 호운은 다시금 안으로 침입하는 낯선 감촉과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사내들은 마치 그것이 자신의 소명인양 태연하게 청년의 명령을 이행했다.
이윽고 호운의 입구와 다리 사이가 기름으로 젖자 사내들이 물러나고 청년이 다시금 호운을 짓눌렀다. 아까까지만 해도 입구에서 물러났던 청년의 성기가 거칠게 호운의 몸을 꿰뚫었다. 생전 처음 겪는 고통에 호운은 비명을 질렀지만, 그 비명에 청년의 손이 사정없이 호운의 뺨을 갈겼다.
"시끄러워!"
"…!"
청년의 거친 행동에 겁을 집어먹은 호운이 입을 다물자 청년은 만족한듯 허리를 움직였다. 이윽고 넓은 방 안에는 청년의 거친 숨소리와 끈적한 소리, 그리고 호운의 낮은 흐느낌만이 가득했다. 마침내 청년이 절정에 이르고 안으로 뜨거운 무언가가 역류하는 감각에 호운은 경기를 일으켰다. 남자로 태어나 겪어볼 일이 없는 감각에 소름이 돋았지만 겨우 끝났구나 하는 안심도 들었다.
그러나 호운이 채 숨을 고르기도 전에 다시 시작된 남자의 율동에 호운은 비명을 질렀다. 호운은 청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청년은 그런 호운의 저항을 가볍게 막으며 허리를 쳐올렸다. 아프고 괴로워 미칠것 같았지만 호운을 휘두르는 청년의 표정은 점차 음탕하게만 변할 뿐, 도무지 호운을 배려하는 표정은 없었다.
"제발 그만해요, 제발…!"
청년의 움직임이 잦아든 찰나, 호운이 울며 애원했다. 이미 호운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 그리고 맞아 부은 흔적으로 엉망진창이었다. 반면, 청년은 상의는 커녕 하의조차 제대로 벗지 않았다. 그러나 호운의 다리 사이를 흐르는 흐린 액체는 분명 청년의 것이었고, 호운의 허벅지에 벌건 손 자국을 남긴 것도 청년이었다.
"시끄럽다."
청년의 손이 다시 매섭게 내리 꽂히고 호운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철썩, 가벼운 손짓 같았지만 맞는 족은 머릿속이 울릴 정도의 타격이었다. 청년은 순간적으로 호운의 저항이 약해지자 마음껏 허리를 움직이며 제 욕심을 채웠다. 그 후로도 호운은 몇 번인가 비명을 질렀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사납게 뺨을 갈기는 청년의 손길에 이내 호운은 지쳐 간헐적으로 흐느낌을 흘릴 뿐, 애원하는 말은 더는 나오지 않았다.
청년은 호운의 하체가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제멋대로 휘두른 후에야 만족하듯 앞섶을 추슬렀다. 이미 눈물로 눈이 퉁퉁 부어오른 호운은 제대로 청년을 보지도 못한 채 침상에 파묻혀있었다. 보통이라면 자신이 이리 휘둘렀으니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가지련만, 욕심을 채운 청년은 사내들에게 턱짓을 했다.
"끌어내."
그러자 사내들은 침상위에 늘어져있는 호운을 끌어냈다. 거칠게 끌려가는 몸에 호운은 고통을 느꼈지만 무리한 정사에 지친 몸은 이미 비명도 지르지 못할 정도로 피로해져있었다.
"침수드시겠습니까?"
청년은 귀찮은 듯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정사로 더러워진 이불을 침대위에서 걷어내고 방 한구석에 마련되어있던 새 이불을 깔았다. 그리고 침상이 준비되자 사내들 중 두명이 청년의 의복을 하나하나 벗겨주었다. 새하얀 속옷 차림이 된 청년은 당연하다는 듯 사내들이 준비한 침상에 누웠다.
청년이 침상에 누운 후, 사내들 중 한 사람이 호운을 더러워진 이불에 싸 어깨에 짊어졌다.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호운은 그저 축 늘어진 채 사내들이 하는대로 늘어져있었다. 사내는 그대로 호운을 이불채로 짊어진 채 방을 나서서 기루 복도를 걸었다.
호운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누런 토벽 천정이 보였다. 자신의 방이었다. 도대체 어이 돌아왔는지도 몰랐지만, 주변이 밝은 것으로 보아 벌써 해가 뜬지 한참이 지난 것 같았다. 호운은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눈알만 굴려 주변을 살폈다. 허름한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멀리 어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황금, 이 황금을 봐요! 왕씨와 어미의 웃음소리가 섞여 울리자 호운은 눈물이 핑 돌았다.
몸을 팔고 온 것이 잘한 것은 아니건만, 그래도 돌아오면 어미가 무어라 한마디는 해 줄줄 알았다. 자신이 이리 고통스러운데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고 웃고 있는 어미가 원망스러웠다. 어미에 대한 원망과 설움과 육체의 고통으로 울던 호운은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호운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주변이 컴컴했다. 거의 하루를 잠으로 보냈건만 전신은 여전히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그리 나약한 체질도 아니건만 무엇 때문에 몸이 이리 고될까 했는데, 잘 생각해보니 몸도 고되었지만 마음도 고되었다.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낮에는 그리 쉽게 나오던 눈물이 이제는 흐르지도 않았다. 멍하니 천정을 보며 눈을 깜빡이던 호운은 방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기척을 느끼고 화들짝 놀래 눈을 깜빡였다. 혹시나 어머니일까, 기대감을 담은 호운이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지만 그런 희망은 단번에 부서졌다.
"이제야 일어난 게냐?"
호운의 곁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것은 어미의 남자인 왕씨였다. 저자에서 짐을 나르는 짐꾼인 왕씨는 다른 사내들보다 머리 하나만큼 더 크고 팔뚝도 굵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왕씨의 팔뚝이 호운의 다리보다 굵었다. 평소에는 호운을 소 닭 보듯 하듯 하던 왕씨가 어이 자신의 방에 있는 것인지 호운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사내 맛이 어떠하더냐?"
왕씨의 말에 호운의 눈이 크게 떠졌다. 생각해보니 호운을 기절시켜 기루까지 끌고 간 것이 왕씨니, 거기서 호운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를리 없었다. 치욕스러웠다. 호운이 고개를 돌리자, 왕씨가 느물거리며 웃었다.
"계집인 네 어미도 고작 은자 한냥이면 사는데 달릴것 다 달린 사내놈이 금 스무냥이라니."
"나가십시오."
호운이 애써 가슬거리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왕씨는 능글거리며 호운의 뺨을 쓰다듬었다.
"잔금을 치른 걸로 봐서는 아주 못한게 아닌가 보더구나."
"나가라지 않습니까!"
"어떠냐? 좋았더냐? 아주 까무러치게 좋았더냐? 하긴, 그렇겠지. 아주 정액이 줄줄 흐르더구나. 네 어미가 뒤처리를 할 엄두를 못 내 내게 맡길 만큼 엄청 났지."
왕씨의 음탕한 어조에 호운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어머니가 자신의 그 몰골을 보았다고 생각하니 머리에서 피가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겨우 그런 수치에 정신을 팔 겨를이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왕씨의 손이 이불 안으로 들어와 호운의 몸을 더듬고 있었다.
"뭐, 뭐 하시는 겁니까!"
"이 몸뚱이가 금 스무냥이라는데, 내가 어디가서 스무냥짜리 몸뚱이를 품어보겠느냐."
"이러지 마십시오!"
호운은 없는 기력을 짜내 발버둥쳤지만 호운보다 거의 몸집이 두배인 왕씨를 당해낼수가 없었다. 왕씨는 마치 바윗돌로 찍어누르듯 호운의 몸을 억누른 채 그의 바지를 벗겨냈다. 그리고는 어느샌가 단단하게 치켜서 있던 자신의 성기로 호운의 뒤를 뚫었다.
"아아아악!"
호운의 입에서 높은 비명이 터져나왔다. 항문에 불이 붙은 것처럼 아팠다. 왕씨는 호운이 이리 우렁찬 비명을 지를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는지 당황해 호운의 입을 틀어막으려 했다. 그러나 그런 왕씨의 행동은 한발 늦어버렸다.
"여보, 무슨 일이예요?"
허술한 호운의 방문이 열리고 호운의 어머니가 얼굴을 내밀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방안을 본 그녀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왕씨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자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불렀다.
"부, 부인."
호운의 어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호운과 왕씨를 번갈아 보았다. 통증에 눈물이 어린 눈동자로 어미를 보는 호운의 눈동자는 멍했다. 한동안 굳은 듯 그 자리에 서 있던 어미는 이윽고 성큼성큼 호운과 왕씨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거칠게 왕씨를 호운에게서 밀어냈다. 호운은 어미가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 믿고 그녀를 보았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손톱을 치켜세운 어미의 손이었다.
"이 더러운것, 네가 사내 맛을 보더니 정신을 못 차리는구나! 지금 누구에게 꼬리를 치는게야!"
금을 탄주해 검지와 엄지의 손톱이 튼튼해진 어미의 손톱이 가차 없이 호운의 얼굴을 긁었다. 호운의 얼굴은 금세 피투성이가 되었다. 제 분이 풀릴 때까지 호운의 얼굴을 긁은 어미는 그대로 호운을 침상에서 끌어내려 방 밖으로 굴렸다. 저 가녀린 몸의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그녀는 갑자기 괴력이 솟은 것 처럼 마당을 구른 호운을 그대로 마당으로 패대기쳤다.
호운은 멍한 눈으로 독기가 차오른 어미의 얼굴을 보았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현실일리 없다. 누가 봐도 방금전의 상황은 명백했다. 가해자는 왕씨이고 자신은 피해자였다. 그러나 어미는 자신을 욕했다. 더러운 것이라 했다.
"부인, 진정하시오."
"지금 진정하게 되었어요? 어찌…!"
"내 말을 들어보시오, 내가 잠시 유혹에 넘어가 눈이 뒤집혔었소. 미안하오 부인."
"아무리 그래도 어찌 그러실수가 있어요!"
왕씨가 서둘러 방밖으로 나와 어머니를 달래 그녀를 방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실랑이가 하는 소리가 울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방 안에서 날카로운 비명과 고성, 그리고 욕설이 오간 후 잠시 잠잠해지더니 곧 짐승 같은 남녀의 교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좁은 집이라 평소에도 호운은 어미와 사내의 교합소리를 들어야했다. 평소에는 그것이 어머니가 원하는 것이니 자신이 감내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해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어미가 되어 어찌 자기 자식을 겁간하려 한 사내와 저리 열정적으로 뒹굴 수 있는가. 얇은 문 너머로 어미의 자지러지는 교성이 울려 퍼졌지만 호운은 귀도 막지 못한 채 멍하니 늘어져 그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이내 호운의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찢어진 얼굴에서 흘러나온 피와 뒤섞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호운은 걷고 있었다. 정처 없이 걷는 호운의 두 눈에는 눈물이 줄줄 흘렀다. 몸이 아팠지만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도대체 어디로 걷는지도 모른 채 호운은 그저 걸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호운은 굵은 강줄기 앞에 멈춰 섰다. 도대체 언제 성문을 빠져나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호운은 넋을 잃고 멍하니 강줄기를 바라보았다. 가끔 바람이 부는대로 파문이 이는 강줄기는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다. 저 막힘없이 흐르는 강줄기를 보자니 자신이 한없이 더럽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사실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 자신은 더러웠다. 그리고 초라했다.
호운은 강가에 쓰러져 목을 놓아 통곡했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다시 해가 뜰 때 까지 통곡한 후 목이 쉬어 더는 울지도 못한 호운은 눈물만 흘리다가, 이내 눈물도 말라버린 후에야 자리를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호운의 얼굴은 감정을 모조리 강에 쏟아 부은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멍하니 강을 바라보던 호운은 갑작스레 강렬한 허기를 느꼈다. 그러고 보니 이틀이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 못하였다. 이런 상황인데도 뱃속에서는 먹을 것을 넣으라고 아우성이었다.
결국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이제는 메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뺨을 적시자 호운은 쓰게 웃었다.
호운의 어미가 정사를 마친 것은 아들 호운이 자취를 감춘 지 한참이 지나서였다. 성하지도 않은 몸으로 아들이 사라졌건만 어미는 그를 찾지 않았다. 제 까짓 것이 가 봐야 어딜 간다고 하는 마음 반, 그리고 제 남자에게 꼬리를 친 분노 반이었다. 그러나 그날 하루가 꼬박 지나가도록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슬슬 어미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눈곱만한 죄책감이 가슴을 뭉실뭉실 차올랐다. 그러나 아직 화가 다 풀리지 않아 아들을 적극적으로 찾을 마음은 들지 않았다.
호운이 사라진 다음날 밤, 호운의 어미는 낯선 손님을 맞았다. 무서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 손님은 아들 호운을 찾고 있었다.
"아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
대답을 하는 호운의 어미는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한데 굳이 낯선 손님이 아들의 존재를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어미의 대답에 낯선 손님이 물었다. 그녀는 몰랐지만 그 낯선 손님은 어제 호운을 샀던 청년의 수하였다.
"그것이 사실이냐? 혹,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냐?"
고압적인 물음이었지만 호운의 어미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어제 집을 나선 후에 연락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제 아들을 찾으시는 겁니까?"
어미의 물음에 손님이 대답했다.
"우리 나으리가 네 아들을 데려오라 하셨다."
"네? 혹시 손님의 주인이 제 아들을 사신 분이란 말입니까?"
어미가 깜짝놀라 묻자 손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제 아들을 또 사시겠다는 말입니까? 어, 얼마에 사신답니까?"
어미는 아들을 산 자가 틀림없이 경험이 없는 동남동녀(童男童女)만을 고집하는 호색한이라 믿었다. 그렇기에 어제 아들을 내칠 때 그리 망설임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설마하니 그 손님이 다시 아들을 찾을 줄이야. 어미의 물음에 손님이 대답했다.
"지난밤 처럼 서른냥을 주시겠다 하셨다."
꿀꺽, 호운의 어미가 침을 삼켰다. 수중에 들어온 서른냥으로 이미 그녀는 기녀라는 천한 신분에서 벗어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 또 서른냥이라니. 그 정도라면 부자 소리를 들으며 살 수 있을 거금이다.
"아마 아들은 내일에는 돌아올 겁니다."
어미는 천연덕스레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 길이 없는 손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품안에서 은자를 꺼내 올렸다. 크기를 보아 금 열냥 수준의 금자였다.
"선금을 주고 가마. 아들이 준비되는 대로 보내라."
"네 나으리! 살펴 가십시오!"
호운의 어미는 손님이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콧노래를 부르며 금자를 쓰다듬었다. 생전 이런 거금을 연일 만질 날이 올 줄이야. 콧노래를 부르던 어미는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화들짝 놀랐다. 돌아보니, 그의 남자 왕씨가 서 있었다.
"깜짝 놀랐잖아요, 기척을 하시지요."
어미의 말에 왕씨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어미는 저 사내가 왜 저러나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왕씨가 여상스러운 표정을 짓자 그것을 잊어버렸다.
"그건 왠 금자요 부인?"
"아, 운이를 샀다는 작자가 또 운이를 사겠다며 주고 간 선금이예요."
"그래? 얼마나? 이미 순결을 잃었으니 저번보다는 싸겠지?"
왕씨의 물음에 어미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네, 이번에는 열 다섯냥만 주겠다네요. 그래도 열 다섯냥이면 엄청난 거금이잖아요?"
교태어린 어미의 미소에 왕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그 정도도 엄청난 거금이지. 그런데 혹시 운이가 이대로 나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려고 덜컥 선금을 받았소?"
"고것이 가 봐야 어딜 가겠어요 제 집이 여긴데. 아마 한소리 들은게 서운해 버티고 있는거겠죠.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 아침에는 돌아올테니."
그러나 어미의 자신만만한 대답은 결국 틀리고 말았다. 어미의 말과 달리 아들은 그날 밤이 꼬박 지나고 날이 밝아올 때 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점차 어미의 표정이 초조해졌다.
결국 해가 떠오른지 한참 시간이 지나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그녀는 왕씨를 재촉했다.
"여보 당신이 운이를 찾아보아요. 오늘 밤이 되기 전에도 돌아오지 않으면 계약금을 돌려주어야 할지도 몰라요."
그 말에 왕씨는 선선히 그러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밤이 될 때까지 왕씨도, 아들도 돌아오지 않자 어미의 초조는 극에 달했다. 언제 손님이 선금을 돌려달라 찾아올지도 모른단 생각에 점차 초조해진 어미에게 왕씨가 돌아왔다.
"어서오세요, 운이는요?"
"흔적도 없소."
"이 일을 어쩌지!"
어미는 발을 굴렀다. 도대체 그 배은망덕한 놈은 어딜 가서 이리 속을 썩이는거야. 어미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여보, 당신이 한 번 더 찾아봐요. 틀림없이 멀리 가지는 않았을거예요."
어미의 말에 왕씨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당신은 무얼하고 나만 나가 찾는단 말이오?"
"혹시 우리 두 사람 모두가 집을 비운 사이에 운이가 돌아오면요? 어서 다녀오세요."
어미는 갑자기 왜 이 남자가 미련하게 구냐는 식으로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왕씨는 기묘한 표정을 지은 채 어미에게 한발 한발 다가왔다.
"왜, 내가 나가면 새로 샀다는 집으로 나 몰래 달아나게?"
"네? 그게 무슨…켁!"
이상한 소리를 하는 왕씨의 말에 어미가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볼 찰나, 왕씨의 우악스러운 손이 어미의 목을 졸랐다.
"내게는 스무냥을 받았다고 해놓고 서른냥을 받은 걸로 모자라 이번에는 서른냥을 열 다섯냥으로 거짓말했지? 그런 네년을 내가 믿을 리가 있나! 다 알아봤어, 네년이 나 몰래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집을 샀더군. 내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틀림없이 운이 그놈은 네년이 미리 빼돌려 서른냥을 준다는 그놈에게 보냈겠지? 나 몰래 돈을 받고 시치미를 떼려고 말이야!"
"켁! 켁!"
어미는 왕씨에게 오해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 집은 어미가 새 출발을 위해 왕씨와 함께 살려 한 집이었다. 그 집에서 당신을 닮은 아들을 낳으며 살고 싶었어요, 그 집은 당신을 위한 거예요…! 변명하고 싶었지만 어미의 목을 조르는 왕씨의 손은 용서가 없었다.
어느 순간 껙, 기묘한 소리가 나더니 어미의 몸이 축 늘어졌다. 왕씨는 두 눈을 흡뜬 채 혀를 길게 빼문 어미의 몸을 바닥에 패대기치고 침을 뱉었다. 이미 절명(絶命)한 어미는 제게 침을 뱉는 왕씨를 보고도 아무 말 하지 못한 채 그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더러운년!"
왕씨는 바닥에 쓰러진 어미를 발길질 하고 그녀의 가슴께를 뒤졌다. 난잡하게 옷이 들추어져 허연 가슴이 드러났지만 왕씨의 목적은 가슴이 아닌 그 아래 있는 주머니였다. 왕씨는 주머니를 꺼내들었다. 과연 자신의 생각대로 그 안에서는 이미 전표(錢票)로 바꾼 돈이 꼬깃하게 구겨져있었다.
"내 이럴줄 알았지!"
왕씨는 다시 한번 어미의 시체를 발길질 한 후 방을 나섰다. 그리고는 그대로 어미가 일하던 요월루로 향했다. 마침 요월루의 주인 소노인이 입구에 서 있는 모습이 보이자 왕씨는 얼른 그에게 다가갔다.
"소대인!"
"어? 왕씨로구만! 혹시 아들을 데려온겐가?"
소노인은 반색하며 왕씨에게 되물었다. 그 말에 왕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호운이 여기있을 거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잔금을 받기 위해 찾아온 길이었다. 그런데 소노인의 반응을 보면, 호운이 여기로 오지 않은 게 확실했다. 순간적으로 왕씨는 어이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여기서 미적거리며 서 있어봐야 답이 없었다.
"제가 듣기로는 여기로 갔다고 들었는데 길이 엇갈린 모양입니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왕씨는 큰 소리로 말하고 그대로 요월루를 떠났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그 후로, 왕씨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음날 기름 장수 오씨에 의해 어미의 시체가 발견되었지만 이는 빈민가에서는 흔히 벌어지는 일이기에 별반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는 않았다. 현장을 조사하러 온 포쾌는 어미의 흐트러진 복장이나 세간들이 한바탕 뒤집어진 점을 보고 재물을 노린 강도가 저항하는 어미를 죽인 것으로 사건을 짐작했다. 다만 아들 호운이 자취를 감추고 어미의 정부 왕씨가 자취를 감춘것이 조금 걸리는 일일 뿐이었다.
포쾌는 형식적으로 범인일지도 모르는 아들과 왕씨를 수배했지만 그 외모마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그들이 제대로 잡힐리는 만무했다. 그나마 어미에 대한 수사는 반나절도 이어지지 못했다. 어미가 시체로 발견된 그날 저녁 월왕이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다행히 황제의 밀명으로 성안에 있던 오왕에 의해 반란은 쉽게 제압되었지만 그 일로 성안 전체가 쑥대밭이 되었다. 죽은 자의 수가 천명이 넘었고 수많은 관리들이 줄줄이 잡혀들어갔다.
그 일로 바빠진 포쾌들에게 겨우 창녀가 죽은 사건 따위는 전혀 신경 쓸 거리가 못 되었다. 어미의 죽음은 그렇게 쉽사리 잊혀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