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震翰 宣諭 二十七年 진한 선유 27년
浩氏 七歲 호씨 칠세
성종의 장자 태평왕이 호씨가 살던 서남부로 유람을 갔다 마차 바퀴가 빠지는 사고로 세상을 떴다. 일설에 의하면 태평왕이 어린 호씨를 보고 호의를 가져 제 마차를 탈 기회를 주었는데, 심성이 사악한 호씨가 저보다 뛰어난 태평왕을 시기하여 바퀴를 지지하는 기둥에 톱질을 해 놓았다고 하였다. 이를 몰랐던 태평왕은 그대로 마차에 올라 목숨을 잃었으니, 이 일로 성종은 식음을 전폐하고 사흘 밤낮을 통곡하였다.
세상이들은 이 사고가 호씨의 탓으로 일어난 것을 몰랐으되, 호씨의 아비는 그러하지 않았다. 호씨의 아비는 제 피가 섞인 아들이 벌인 참담한 짓에 괴로워하다 결국 세상을 볼 면목이 없다며 목을 매어 죽고 말았는데, 호씨는 목매달린 제 아비를 보고도 뻔뻔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으니 가히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는 말에 걸맞는 자였다.
浩家之錄 호가지록
호운은 아비가 무두질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비의 울퉁불퉁한 몸에서는 연신 땀방울이 흘러내렸고 아비의 굵은 팔은 두꺼운 쇠가죽을 두드리고 있었다.
캉캉!
가죽을 두드리는데도 쇠를 두드리는 듯 경쾌한 소리가 울리는 모습을 호운은 멍하니 보았다. 공방 여기저기에 아비와 비슷한 모습을 한 사내들이 있었지만 호운에게는 아비의 모습이 제일 근사해 보였다.
"운이 뜨겁지 않느냐?"
"아니, 안 뜨거워."
호운의 아비는 동그란 눈을 뜨고 자신의 앞에 앉은 아들을 보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뜨겁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호운의 어린 뺨은 이미 열기에 데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뜨거워도 아비와 함께 있겠다는 아들의 마음이 느껴져 아비의 입가에는 연신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데 아비가 목이 마르구나. 시원한 물이라도 한잔 떠다 주겠니?"
"응!"
아비의 말에 호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냉큼 공방을 나섰다. 그리고는 쪼르르 우물가로 향해 달려갔다. 어른들에게는 허리 높이인 우물은 어린 호운에게는 지나치게 높았다. 어린 호운은 낑낑거리며 줄이 달린 물통을 우물에 던졌다. 풍덩! 우물에 물통이 잠긴 소리를 들은 호운은 물통을 걷어 올리기 위해 줄에 손을 뻗었다. 그러나 너무 높은 곳으로 팽팽하게 당겨진 줄은 호운이 손에 닿지 않았다. 호운은 평소처럼 발디디고 설 통이 없나 주변을 살폈지만 주변에는 그가 발을 딛을 만한 통이 없었다. 사실 이는 이틀 전 주변에서 놀던 아이가 우물에 빠져 익사 할 뻔하여 위험하다며 어른들이 통을 치워서 였는데, 그 사실을 모르는 호운으로서는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저 아이를 도와주게."
낑낑거리며 줄에 손을 뻗던 호운은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뒤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호운이 그토록 낑낑거리며 매달렸던 우물의 줄을 당겨 물통을 걷어 올렸다. 호운은 까마득히 올려봐야 하는 사내의 등장에 입을 쩍 벌렸다.
"물을 받지 않느냐?"
사내의 물음에 멍하니 고개를 들었던 호운은 곧 허둥지둥 작은 표주박 한가득 물을 담았다. 그리고는 사내를 향해 냉큼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호운이 허리를 숙인 통에 표주박에 가득 찼던 물이 반절 이상 바닥으로 쏟아졌다. 이에 호운이 당황하자 쿡쿡,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호운이 웃음소리를 쫓아 시선을 돌리자 시커먼 그림자를 만든 사내의 뒤로 생전 처음 보는 사내아이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내아이는 호운보다 대여섯 살은 많아 보였는데, 새하얀 얼굴에 반짝반짝 윤이 나는 비단 옷을 걸치고 있었다. 필시 귀한 집안의 아들일 것이라 생각해 호운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이런 식으로 공방에 찾아오는 귀한 손님들은 호운 같은 아이가 똑바로 바라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운이 본 아이는 그것에 불쾌감을 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귀엽다는 듯 호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공방의 아이더냐?"
"네."
위축되어 호운이 대답하자 아이는 호운의 긴장을 풀기 위해서인듯 빙긋 웃었다.
"물을 떠 오라는 심부름 중이었느냐?"
"네."
호운이 순순히 대답하자 아이는 또 다시 귀엽다는 듯 호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같은 아이건만 하는 행동은 어른 같아 호운은 아이가 이상하다 생각했다.
"그럼 심부름을 마치고 저리로 오겠느냐?"
호운은 아이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마차 공방에서 일하는 아비를 둔 호운마저도 생전 처음 본 화려한 마차가 골목 옆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호운은 전체가 화려한 모양으로 수놓아진 화려한 마차의 생김새에 입이 쩍 벌어졌다.
"제, 제가요?"
더듬거리며 호운이 묻자 아이는 선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리로 오면 마차를 태워주마."
아이의 제안에 호운은 뛸듯이 기뻐졌다. 호운은 냉큼 고개를 끄덕이고 표주박을 들고 아비에게로 달려갔다. 아비는 절반만 남은 표주박의 물을 보며 웃으며 마셨다.
"아버지, 나 놀러가도 돼?"
호운의 물음에 아비는 이런? 하는 표정을 지었다. 호운은 아비를 따라나선 날이면 어지간하면 하루종일 공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들뜬 표정의 아들을 보며 아비는 그러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근처에 친구들이 지나다 아들을 유혹했겠거니 하고 말이다. 아비가 고개를 끄덕이자 호운은 날듯이 공방을 뛰어나갔다. 혹시나 마차를 태워준다는 아이가 마음이 변해 먼저 가기라도 할까, 호운은 숨이 막힐 정도로 뛰어나갔다.
그러나 마차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 모습에 호운의 입가가 헤 벌어졌다.
"타라."
마차에는 미리 그 아이가 타고 있었다. 호운은 아이의 호의에 망설임없이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는 호운이 타자마자 출발했다. 희미하게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분명 이동중인게 분명한데, 타고 있는 사람에게는 진동이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호운은 엉덩이가 푹신한 의자에 신기한 듯 발을 굴렸다. 그러자 호운의 맞은 편에 앉아있던 아이가 다시 웃었다. 창밖의 풍경을 보니 점차 속도를 내는 게 느껴져 호운은 창밖을 보기 위해 몸을 내밀려 했다. 그런 호운을 아이가 말렸다.
"몸을 내밀면 위험하단다."
아이의 말에 호운은 그런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맞은 편에 앉아있던 아이가 호운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리고는 호운에게 다가와 앉으며 물었다.
"그런데 말이다."
"네?"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있느냐?"
"네?"
마차를 탄 적이 있느냐는 말일까. 호운은 멍한 표정으로 아이를 보았다. 생전 처음 타보는 마차에 흥분한 호운은 아이가 제 엉덩이를 슬그머니 쓰다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아이는 호운이 멍청한 표정을 짓자 좀 더 대담하게 호운의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엉덩이 끝으로 시작한 손놀림은 엉덩이 골로 이어졌고, 허벅지와 그 허벅지 사이에 있는 고간을 미묘하게 스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명백한 성적 행동이었지만 아직 어린 호운에게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와 닿지 않았다. 아직 발기해 본 적조차 없는 어린 아이가 무슨 의미를 알까.
그러한 호운의 순진한 반응에 아이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호운은 어째서 이 아이가 이리 거친 숨을 내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엇!"
갑작스레 아이가 호운을 들어 제 무릎 위에 앉혔다. 똑같은 아이지만 일곱 살의 호운과 열세살 남짓의 아이는 체격 자체가 달랐다. 호운은 엉덩이 골 사이로 무언가 딱딱한 것이 느껴져 허리의 옥장식에라도 부딪힌걸까 싶어 자세를 고치려고 엉덩이를 움직였다. 그 움직임에 호운을 끌어안은 아이의 숨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
하악하악. 어느새 마차에는 아이의 거친 숨소리가 가득 차고 호운은 점차 겁이 났다. 처음에는 그저 영문을 모를 아이의 행동이 점차 두려워졌고, 엉덩이 사이로 무언가 젖은 감촉이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놔, 놔주세요."
호운의 목소리가 떨리자 아이는 오히려 호운의 고간을 뒤져 그의 어린 성기를 움켜쥐었다.
"익!"
너무나 강한 힘에 호운의 등이 경직되자 아이는 그대로 허리를 들썩거렸다. 눈물이 핑 돌것 같은 통증에 호운이 벌벌 떨자 아이의 숨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 고간을 더듬거리던 아이의 손이 마침내 바지 안으로 들어오자 호운은 비명을 지르려 했다. 그 순간이었다.
"워워워!!"
갑자기 마차가 요동을 쳤다. 그 반동에 호운은 아이의 몸에서 튕겨 나와 마차 벽에 얼굴을 박았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얼굴이 아팠지만 무서운 상황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안도가 커 호운은 허겁지겁 마차 문을 열고 뛰어 내렸다. 뒤에서 아이가 제지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호운은 뒤도 보지 않고 뛰었다. 그런 호운의 엉덩이에는 젖은 흔적이 분명했는데, 누가 보면 실금을 했으리라 믿을 흔적이었다.
"무슨 일이냐!"
"갑자기 여우가 튀어나와서 그만, 죄송합니다 태평왕 전하."
호운이 사라진 것을 본 아이가 신경질적으로 외치자 마부가 쩔쩔 매며 대답했다. 태평왕이라 불린 아이는 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거만하고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 이미 호운은 저만치 달아난 후였다.
"너 때문에 한창 좋다 말았지 않느냐!"
"송구합니다 전하. 다시 공방으로 갈까요?"
태평왕은 자신의 코앞까지 와 고개를 조아리는 사내를 걷어차고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 천것이 아무리 아이라 하더라도 방금 도망치고 또 거기 있겠느냐! 그렇지 않아도 내가 네놈 때문에 그까짓 천것의 구멍을 탐할 정도로 굶주렸는데 모두 엉망이지 않느냐!"
겨우 열세살 남짓한 아이가 하는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수하는 그저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마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태평왕은 마차의 문을 신경질적으로 닫은 후 아직 발기해 있는 자신의 성기를 보고 인상을 썼다. 태평왕이라는 칭호처럼 황족으로 태어난 그는 열두살 무렵부터 성행위에 눈을 떴다. 그 후로는 손이 닿는대로 행위를 해 왔기에 이런 식으로 잔뜩 흥분했다 상대를 놓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쳇!"
태평왕은 곧 자신의 성기를 주무르며 숨을 씩씩 몰아쉬었다. 원래 천것을 안는 취향은 없었지만 그래도 제법 반반한 얼굴이나 생기가 넘치는 모양새가 안을 맛이 날 것 같았다. 그런 상대를 놓쳤으니 화가 나 성기가 팽팽해졌다. 이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자신의 성기를 쓰다듬고 있던 태평왕은 점차 마차의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못하였다. 마침내 마차가 우뚝섰지만 그는 제 성기를 위로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열중해 있던 태평왕은 마차의 문이 갑자기 열리자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뭐야!"
그러나 태평왕의 신경질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마차의 문을 열고 검은 옷의 사내들이 올라탔기 때문이다. 그들이 손에 각각 병장기를 들고 있는 모양새가 과히 좋은 의도로 접근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뭐, 뭐냐!"
태평왕이 긴장해 외치자 검은 옷의 사내들 사이로 그보다 두어살 어린 열 살 남짓해 뵈는 아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에게 맞추듯 검은 장포를 걸친 아이는 분명 사내아이였지만 눈이 부시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아이는 그 미모에 어울리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빙글빙글 웃었다.
"너?!"
"이런 형님, 그게 다 무엇입니까. 아랫것들 보기 민망합니다."
아름다운 아이의 지적에 태평왕이 허둥지둥 자신의 고간을 숨기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앞에 있던 검은 옷의 사내에 의해 제지되었다. 사내는 곧장 태평왕의 어린 성기를 붙들었고 그것으로 이미 태평왕은 전의를 상실했다.
"네, 네놈, 천것이 이 무슨, 무슨 짓이냐!"
성기를 쥐어진 고통에 태평왕이 이를 딱딱 부딪히며 외치자 어여쁜 아이는 오히려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천것이 그래도 반은 피가 섞인 형님이라고 형님의 욕정을 풀어주고자 하는데 무엇이 잘못 되었습니까?"
"이, 이놈이!"
태평왕이 흥분해 외치기 전에 그의 입에 재갈이 물려졌다. 읍읍거리며 소리를 지르는 태평왕을 보며 아이는 빙글빙글 웃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이 우제가 개 짖는 소리에 민감하여서 말이지요."
아이는 핏발이 서 자신을 노려보는 태평왕을 보며 미소지으며 말했다.
"마침 한적한 산길이니 즐길 시간은 충분하겠군요. 그럼 형님, 느긋하게 즐기십시오."
아이는 미소를 지으며 문을 닫았고 태평왕은 세명의 사내들과 실내에 남겨졌다. 태평왕은 사내들의 얼굴을 재빨리 보았다.
-네놈들, 나를 건드리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누구인줄 알고! 황상의 장자 태평왕이다!
태평왕은 상대를 윽박지르려 했지만 재갈에 막혀 그의 외침은 그저 신음으로 끝났다. 그리고 설령, 그가 외쳤다 하더라도 사내들은 위축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내들의 손은 망설임없이 태평왕으로 뻗어졌고 곧 좁은 밀실에는 억압된 비명과 피냄새, 그리고 정액의 내음으로 가득찼다.
한편, 숨이 막힐 정도로 달려 마차에서 멀어진 호운은 덜덜 떨면서 길을 걸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랐지만 어쩐지 두렵고 떨렸다. 이제는 마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건만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결국 호운은 몇걸음 가다 못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나 곧, 마차가 자신을 쫓아올지도 모른단 생각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어?"
엉덩이를 털던 호운은 손바닥에 하얗고 끈적한 것이 묻어나오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것이 무엇을까. 그러고 보니 아까 아이가 자신의 엉덩이에 무언가 젖은 것을 발랐던 것이 생각나 호운은 찜찜한 생각에 무릎에 손에 묻은 액체를 닦아내었다. 그리고는 아이가 다시 쫓아 올 새라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호운이 이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은 것은 좀 더 시일이 지난 후였다.
태평왕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그 일이 있은 후 꼬박 삼일이 지나서였다. 황상이 가장 총애하는 아들이자 장자인 태평왕의 연락이 없어 걱정이 된 황상이 직접 병사를 풀어 수색한 후에야 그는 발견되었다. 병사에 의해 발견된 태평왕의 모습은 말하기도 끔찍한 것이었다. 하의는 벗겨져 피투성이였고 전신이 사내들의 정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마차 안에 겁간을 당한 모습으로 죽어 널부러진 태평왕의 모습에 신하들은 보고를 올리는 것도 망설였다. 그 보고를 받은 황상은 처음에는 거짓이라 여기고 보고를 올린 부하의 목을 베었지만, 연달아 똑같은 보고가 올라오자 경악하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황상은 어이해 태평왕이 호위도 없이 마부와 단 둘이 그리 외딴곳에 있었는지를 추궁하였지만 연유를 아는 자가 없었다. 장자를 잃은 황상의 속이 타들어갔지만, 그는 일단 태평왕의 비참한 죽음을 숨겨야했다. 때문에 그는 태평왕의 마차가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는 공방에 죄를 덮어 씌웠다. 태평왕이 그 공방에서 마차 바퀴를 수리했는데, 그 마차 바퀴가 빠져 그가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 공방에 씌워진 죄목이었다.
황상은 공방의 일꾼들이 변명을 할 틈도 주지 않고 그들을 모조리 참수하였다. 보통 황족을 상하게 하면 대역죄인이라 하여 그의 삼족을 멸하지만, 이것이 있지도 않은 죄라는 것을 스스로가 아는 황상은 일말의 양심으로 남은 가족들은 재산을 몰수하는 정도로 죄를 사하여 주었다. 황상은 아들을 잃은 슬픔에도 양심적인 처우를 한 스스로의 이성에 안심하며 아들을 해친 범인을 잡는데 골몰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태평왕 사건은 황상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로 자리하게 되었다.
호운은 멍하니 아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비는 잠들어 있는 듯 두 눈을 감고 있어 호운이 저를 보는 줄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
호운은 높다란데 있는 아비를 향해 말을 걸었다. 그러나 아비는 말이 없었다. 호운은 아비에게 손을 뻗었다. 평소라면 거칠고 커다란 아비의 손이 호운을 마주 안아주건만, 아비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아버지."
호운이 높다란 아비를 향해 버둥버둥 손을 뻗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비는 미동도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장대에 매달려 버둥거리던 호운을 뒤늦게 달려 나온 어미가 붙들었다.
"이놈아, 여기가 어디라고 온 게야!"
어미는 눈물로 퉁퉁 부은 얼굴로 호운을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아비에게 가려고 버둥거리는 호운을 안고는 아비를 뒤로했다. 정말이지 호운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찌 아비가 저리 높다란 대 위에서 얼굴만 남아 데롱 거리는지,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찌해 사람들이 아비의 얼굴을 향해 돌을 던지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을 끌어안은 어미의 얼굴이 얼룩진 눈물을 호운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미는 어젯밤 찾아낸 관제묘로 다시 호운을 데려왔다. 벽이 다 무너져 바람이 씽씽 부는 관제묘 안은 썰렁하니 냉기가 돌았다. 호운은 어미의 몸에 바싹 달라붙어 누웠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허름하지만 바람을 잘 막아주던 튼튼한 집이 있었는데, 붉은 옷을 입은 아저씨들이 오더니 호운은 어미와 함께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들은 커다란 종이를 꺼내 어미의 앞에서 큰 소리로 읽었다. 그들은 어미에게 죄인의 가족이라 말했다. 아직 어렸지만 호운은 죄인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죄를 지은 사람을 뜻했다.
죄는 어려운 것이었다. 아이들의 신발에 말똥을 집어넣거나, 수박을 서리하거나 하는 것 보다 훨씬 나쁘고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데 그 짓을 누군가 지었다고 어른들은 말했다. 호운은 그들이 하는 어려운 말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말을 다 이해한 듯 어미는 바닥에 쓰러져 통곡했다.
그길로 줄곧 어미는 호운의 손을 잡고 울면서 마을을 배회했다. 어미는 처음에는 친하게 지내던 채소가게 왕씨 부인을 찾아갔다. 그러나 왕씨부인은 호운 모자를 보자마자 팽하고 돌아섰다. 그 다음에 어미가 찾아간 사람은 기름가게 오씨였지만 오씨도 모자를 외면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몇사람이나 친하던 사람을 찾아가 외면당한 어미는 울면서 호운의 손을 잡고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날이 저물자 어미는 다 쓰러져가는 관제묘에 자리를 잡았다. 색이 바랜 관우상이 을씨년스러웠지만 어미가 함께 있어 그리 무섭지는 않았다. 다음날 호운이 일어났을 때 주변에는 어미가 없었다.
배가 고파 호운은 저도 모르게 저자로 나아갔다. 그러나 호운의 수중에는 돈이 한푼도 없었고, 돈이 없는 호운에게 저자에 파는 음식은 그림의 떡이었다. 그렇게 침을 질질 흘리며 저자에 팔리는 음식을 구경하던 호운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저도 모르게 그리로 따라갔다. 혹시나 기예단이라도 온 것인가 호기심을 느낀 호운은 구름처럼 모여든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아비를 만났다.
아비는, 목만 남은 높다란 장대 끝에 꽂혀 덜렁거리고 있었다.
어미는 그런 호운을 보고 울었지만 호운은 이 일이 무슨 일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단지 아비의 넓은 품이 그리웠고 배가 고팠다. 그러나 어미가 화를 내며 우는 통에 호운은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저 어미가 하는 대로 따라왔다.
"어머니, 배고파."
호운의 말에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감은 것으로 보아 잠든 것인지도 모른다. 호운은 몇 번인가 배고프다며 어머니를 불렀지만 어머니는 계속 눈감은 채였다. 결국 호운은 저도 어머니를 흉내내듯 눈을 감았다.
그때 호운의 배가 눈치 없이 꼬르륵 울었다. 그 소리에 잠든 것 같았던 어미가 호운의 엉덩이를 아프도록 꼬집었다. 그 손길이 너무 매워서 호운은 저도 모르게 엉엉 울었다. 호운이 울어도 어미의 손길은 풀리지 않았다. 결국 호운은 엉엉 울다 지쳐 잠들고 말았다.
아무것도 못 먹은지 꼬박 이틀이 지난 아침, 여전히 일어나 보니 어미는 없었다. 호운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꼬르륵 배가 울었다. 그러나 어제의 교훈으로 저자에 가 보았자 더 배만 고프다는 것을 안 호운은 관제묘를 나서 주변의 산기슭을 뒤졌다. 혹시나 나무열매라도 주워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다 호운은 멀리서 씩씩거리는 숨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호운에게 기억에 있는 숨소리였다. 그날, 마차에서 호운의 엉덩이를 만지던 아이의 숨소리와 같았다.
혹시나 그 아이가 쫓아왔나 싶어 머리가 쭈뼛 선 호운은 얼른 풀숲에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소리가 나는 방향을 보았다. 그러나 의외로 마차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아이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기어가며 주변을 살핀 호운은 마차가 없다는 것이 안심해 이내 맥이 풀린듯 풀숲에 코를 박았다. 바짝 조여졌던 숨통이 겨우 틔는 것 같았다.
"하악! 하악!"
그런 호운의 숨통을 다시 조이는 것처럼 누군가의 급한 숨소리가 들렸다. 호운은 다시 깜짝 놀라 바닥에 바싹 붙은 채 다시금 소리가 나는 방향을 찾았다. 이번에는 방향을 바로 찾아, 호운을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를 낸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풀숲에 엎드린 두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호운의 어미였고 또 한 사람은 기름가게 오씨였다. 이틀 전 호운 모자를 매몰차게 거절했던 이가 어찌 어미와 함께 있는지 호운은 알수가 없었다.
어미는 가슴과 엉덩이를 허옇게 드러낸채 오씨의 밑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오씨도 엉덩이를 드러낸 채 어미에게 몸을 바싹 붙이고 있었다. 둘이 한참동안 씨근거리며 들썩들썩 거친 소리를 내다가 오씨가 끅끅 거리는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어미의 품안으로 쓰러졌다.
그 기이한 광경에 호운은 어째서인지 나서지 못하고 그저 숨을 죽인 채 바라만 보게 되었다. 한참 어미의 가슴위를 지분거리던 오씨가 주춤주춤 바지를 챙겨입고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내 평소에도 호씨가 그렇게 마누라 자랑을 해대기에 어느 정도인가 했는데 요물은 요물이구만. 남편이 죽은지 겨우 이틀 만에 다른 남자랑 배를 맞추고 말이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돈이나 줘요."
어미가 손을 내밀자 오씨가 동전을 바닥에 던졌다. 어미는 일순 얼굴을 일그러트렸지만 곧 말없이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주워 담았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말해놓지. 호씨 마누라가 닷냥이면 다리를 벌린다고 말이야."
"괜히 마누라에게 까지 입방아 찧지 말아요. 여편네들에게 머리를 뜯기는 건 사양하고 싶으니까."
어미가 새침하게 말하자 오씨가 다시 침을 뱉고 등을 돌렸다. 호운은 오씨가 사라질 때 까지 숨을 죽이고 있다가 오씨가 모습을 감추자 슬금슬금 어미에게 다가갔다. 막 가슴을 여미던 어미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다 호운을 발견하고는, 그야말로 귀신이라도 본 것 마냥 창백한 얼굴이 되었다.
"엄마…?"
호운이 어미를 부르자 멍하니 굳어있던 어미가 갑자기 귀신같은 형상이 되어 호운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호운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이게 다 네놈탓이야, 네놈탓! 네놈탓이야!"
호운은 어미가 왜 이리 갑자기 발광하듯 자신을 두들겨 패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속절없이 어미가 지쳐 쓰러질 때 까지 얻어맞아야 했다. 호운을 두드리는데 지친 어미는 가슴을 허옇게 드러낸 채 통곡하기 시작했다. 호운은 얻어맞아 아픈 것 보다 어미가 우는 것이 너무나 슬펐다.
"엄마 울지 마, 엄마."
호운은 어미를 달래려 노력했지만 어미는 목이 쉴 정도로 통곡했다. 그렇게 한참을 통곡하던 어미는 비스듬하던 태양이 머리 꼭대기로 갈 때 쯤 차림을 정돈 한 후 호운의 손을 잡고 저자로 향했다. 그리고는 오씨에게서 받은 돈으로 호운을 배불리 먹였다.
그리고 호운은 창녀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새로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