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가지록 (上)
북방 진한 성종이 제위하던 시절에 호씨 성을 가진 사내가 태어났다. 그 사내의 생년이 언제인지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으나 서남에 심한 가뭄이 들어 백만이 굶어죽는 사태가 벌어졌을때 태어난 자가 아닌가 추측될 뿐이다. 어찌 그런 추측을 하는가 하면 이 호씨라는 자가 매우 흉한 기운을 타고나 주변에 불운을 몰고 왔기 때문이다.
호씨는 타고나기를 천하게 타고 나여 성품이 저열하기 그지없었다. 뿐만인가. 생김새도 속내를 드러내듯 흉험하기 그지없어 한번 그를 본 자는 제 눈을 씻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였다. 그런 호씨가 손을 대고 바라보고 지나간 땅에는 사고와 다툼이 연이어 일어났는데, 작게는 호씨의 부친이나 근처에 살던 이들이 이유 없이 급사한 것이 그렇고 크게는 호씨가 살던 서남에 유람을 왔던 태평왕이 급사한 일이 그랬다. 어찌된 영문인지 호씨만 얽히면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 죽어나는 자가 허다했다.
제 타고난 운이 그리 흉흉하다면 몸을 사릴 만도 하건만 호씨의 사악한 성정은 제 타고난 운보다 더욱 지독하여 주변 사람들 모두가 호씨를 경원하며 손가락질을 하였다. 그러나 호씨는 그 모든 비난에 태평하고 까딱없고 뻔뻔히 살았고, 불쌍한 호씨의 어미는 그래도 제 자식이라며 그를 보듬어 안았다. 그러나 배은망덕한 호씨는 돈에 눈이 멀어 제 어미를 죽이고 고향에서 달아났으니, 이때가 고작 열여섯이 되었을 때였다.
그 후 호씨는 천하를 유랑하며 악행을 계속하였다. 한때 아내를 얻어 장가가기도 했지만 타고난 제 성정을 어이하지 못하고 아내를 살해하고 또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되어 몇 년 동안은 호씨의 소식이 뚝 끊기었다. 그리해 몇 년이 지나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도성이었다. 어찌하다 그가 어떻게 도성까지 갈 수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무엇을 하러 도성으로 향했는지는 분명했다.
도성에 온 호씨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미모의 아내를 함께 데리고 도성에 왔는데, 호씨같은 추악한 자와 어울리지 않는 그 미모의 여인은 호씨에게 팔려 시집온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었다. 호씨는 도성에 오기 전에 아내를 다른 사내에게 팔아 돈을 벌곤 하였는데, 아내가 벌어들이는 돈에 욕심이 커져 마침내 도성까지 온 것이었다.
도성에 도착한 호씨는 무작정 진성왕을 찾아갔다. 그가 덕이 높고 동정심이 많다는 소문을 들은 호씨는 무작정 진성왕을 찾아가 제 아내를 동생이라 거짓말을 하며 아내로 맞아 달라 간청하였다. 혓바닥에 기름칠을 한 듯 간교한 호씨의 말에 그들 부부를 불쌍한 처지의 남매로 착각한 진성왕은 한눈에 호씨의 아내에게 반해 그녀를 제 첩으로 맞아들였다. 그 덕에 호씨는 호의호식하며 살았는데 그 아내가 진성왕의 총비(寵妃)로 첩지까지 받자 그에게 재물을 건네며 아첨하는 자가 끊이지 않았다.
호씨가 진성왕에게 아내를 넘긴 그 해, 금상(今上)이던 성종이 승하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같은 해 아내를 잃어 마음이 좋지 않았던 진성왕은 이 일로 크게 낙심해 칩거를 하며 불공을 드리기 시작하였다. 황위마저 물리며 불공을 드리는 진성왕의 정성에 결국 황위는 동생이던 오왕에게 돌아갔으니, 이가 바로 현종이었다. 호씨는 진성왕이 황위마저 물린 채 불공을 드리자 불만이 가득하였다. 이미 호씨는 일개 번왕(藩王)의 총비가 끌어들이는 재물로는 만족하지 못할 지경으로 욕심이 비대해진 상태였다. 때문에 호씨는 진성왕의 명이라는 거짓을 고하며 종종 현종의 근처를 얼씬댔는데 그 모든 것이 현종을 해치기 위한 수작이었다. 그러나 현명한 현종은 이미 호씨의 사이함을 꿰뚫어 보고 있어 그의 간교한 수에는 당하지 않았다.
그런데 현종 제위 2년 겨울. 호씨의 아내에게 태기가 있었다. 이미 진성왕은 불공을 드린다며 여색을 멀리한지 오래라 아내의 몸에 손을 댄 적이 없으니, 이는 분명 호씨의 씨였다. 호씨는 아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에 대경했다. 이 일을 진성왕이 알게 된다면 제 목이 멀쩡할 리 없었던 탓이다. 때문에 호씨는 멀쩡한 아내의 배를 발길질하며 아이를 죽어라 죽어라 하였다. 그런데 죽으라는 아이는 죽지 않고 엉뚱하게도 진성왕이 급사하여 호씨와 그 아내는 하루 아침에 거리로 내몰리고 말았다.
순식간에 거리로 나앉은 호씨는 더욱 더 신경질이 나 아내의 배를 차며 아이를 죽어라 하였다. 이에 겁에 질린 아내는 부른 배를 감춘 채 도성에서 달아났는데, 이때가 현종 제위 3년의 봄이었다. 만삭의 몸으로 도망친 아내가 혹여나 제 허물을 사람에게 말할까 겁에 질린 호씨는 아내를 쫓았다.
마침내 호씨가 아내를 찾았을 때 마침 그녀는 아이를 낳고 있었다. 태어난 아이는 흉악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제 아비인 호씨와 한치도 다르지 않은 생김이라 아이의 혈통은 누가 봐도 확연한 것이었다. 호씨는 아이를 낳은 아내를 보고 분을 못 참고 아내를 죽이고 태어난 아이를 안은 채 달아났다.
호씨는 우는 아이를 안은 채 칠흑 같은 밤을 달려 강가로 향했다. 마침내 강가에 이른 호씨는 아이를 강보 째 강물에 집어 던졌는데, 어이 된 일인지 작은 아이가 강에 빠지는 소리가 벽력이 치는 소리보다 컸다. 이에 놀란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호씨는 그 자리에서 병사들의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호씨가 던진 것이 무엇인지 확인한 병사들은 추악한 얼굴을 한 아이의 시체에 깜짝 놀라고 그 얼굴이 호씨와 같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이튿날 아내의 사체가 발견되고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자 사람들은 경악하고 말았다.
결국 이 일은 도성에 있던 현종에게 까지 전해졌는데, 이미 호씨의 사이함을 꿰뚫고 있던 현종은 직접 그를 추국(推鞫)하기로 하였다.
마침내 현종의 앞에 대령된 호씨는 현종을 앞에 두고도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죄를 묻는 현종에게 오히려 입에 담기도 민망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대전의 모든 사람들이 그 욕설에 얼이 빠진 틈을 타,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위사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 현종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하늘의 뜻으로 현종을 노린 호씨의 칼은 도리어 제 가슴을 찔렀고 호씨는 그 자리에서 거꾸러지고 말았다. 가슴에 칼을 맞았으니 응당 숨이 끊어져야 하건만 호씨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현종을 원망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현종은 그 흉험한 모습에 호씨를 감옥에 가두고 그의 처벌을 논하였다. 시일이 지날수록 하나씩 드러나는 죄목에 처벌은 일년이 넘도록 지연되었다. 그의 죄목은 장지문에 다 적어도 못 적을 만큼 많았고 입에 올리기도 참담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현종은 호씨의 죄를 낱낱이 알기 위해 그의 일생을 조사하라 명하며 수백명의 조사관을 천하에 파견하여 그의 죄를 서책으로 기록하도록 하였다.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호씨를 옥에 가둔 후에 도성에 흉사가 끊이지 않았다. 도성에서 연일 수많은 사람이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았는데 그 중에는 현종의 두 아들과 모후인 황후도 포함되어 있었다. 계속된 흉사에 현종이 차근차근 생각해보니 이 모든 일이 호씨가 옥에 갇힌 후 벌어진 일이었다.
이에 더는 호씨의 처벌을 미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현종은 그의 죄목을 다 채우지 못한 서책을 바치라 명했다. 서책을 받아본 현종은 그 내용에 놀라 이 같은 흉험함을 문자로도 남겨서는 아니된다하여 그 서책을 직접 태웠는데, 그 연기가 하늘에 닿으니 마른 하늘에 벼락이 치기 시작하였다. 이 흉험한 징조에 현종은 지체하지 않고 호씨를 벌하라 명하였다. 구체적으로 호씨가 어떤 벌을 받았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이 시기에 사지가 잘리고 눈코입이 도려내진 시체가 도성 밖에 버려졌으니 이가 호씨이리라 짐작될 따름이다.
그 후 도성에서 모든 흉사가 사라지고 천하가 태평성대가 되었다. 이는 모두 흉사를 몰고 오는 호씨의 존재가 사라진 덕이었으니, 현종은 이 후 부정을 막고자 입으로 호(浩)라는 성씨조차 거론하는 자가 없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