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러-32화 (32/42)

힐러-track 30

“차가 많은 도로가 아니라 사고 당시를 목격한 사람은 없었어. 한참 뒤에 인근에 사는 노인네가 신고했다더군. 차량을 조회했더니 강 사장이 뜨지 뭐야.”

박 형사는 누런 이를 보이며 혀를 찼다. 그는 절차 없이 기하를 인도하며 한 달에 한 번씩 봉투 찔러준 값어치를 했다. 기하는 그를 따라가며 복도 끝자락을 노려보았다. 부하들 발소리도 쫓아왔다. 고작 몇 분 전, 박 형사의 전화를 받고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 믿지 않을 것이다. 박 형사가 멈춘 곳은 시체 보관실 앞이었다. 문이 열리자 비장이 뒤집힐 만큼 악취가 코를 찔렀다.

“이거 원. 워낙 심하게 타서 알아보겠어?”

박 형사는 안으로 걸어갔고 하얀 천을 들췄다. 하나, 둘, 셋. 모두 시커멓게 탄 시체였다. 일제히 화상으로 머리카락이 벗겨졌고 눈, 코, 입은 함몰돼 알아볼 수 없을 만치 참혹했다. 어질어질한 정신을 필사적으로 균형 잡았다. 동공을 빠르게 움직였다. 야바는? 야바는? 머릿속엔 온통 그 이름만 맴돌았다. 박 형사는 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렸다.

“사망 추정시간은 두어 시간 전쯤이야. 승용차 망가진 정도나, 도로에 난 타이어 자국, 중앙 분리대가 박살 난 걸 보면 덩치 큰 차로 들이받았을 가능성이 커. 승용차가 전복됐지만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엔진 폭발로 인한 화상이야. 비가 와서 꺼지긴 했는데 거의 다 탄 뒤라……우웩! 웨에엑! 씨발. 내 형사생활 15년 동안 이렇게 지독한 건 처음이야!”

박 형사는 고개 돌리고 구역질을 쏟아냈다. 그러다 가장 안쪽에 있는 시체를 곁눈질했다.

“아, 쟤는 뒷좌석에 탄 놈인데 차 문에 머리가 끼여서 하악골이 완전히 망가졌지.”

눈앞이 하얘졌다. 야바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뒷자리에만 앉는다. 아직 무너지지 않는 건 희망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하는 목소리를 쥐어짰다.

“……좀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뭐, 지금 본다고 알아보겠어? 하악골이 부서져서 치아 대조는 좀 어렵고 화상이 심해서 지문채취도 불가능해. 유전자 감식이야 시간도 오래 걸리고 복잡한데…….”

박 형사는 길바닥 출신의 죽음을 빨리 처리하고 싶은 기색이다. 기하는 힘 풀린 다리를 움직여 시체에게 다가갔다. 불규칙한 피부 표면은 흑갈색으로 변해 진액이 흘렀다. 천장을 향해 누워 있지 않으면 어디가 앞인지 모를 만큼 얼굴과 몸 근육이 눌어붙었다. 사람의 육신이 아니라 통째로 익힌 고깃덩이였다. 욕지기가 역류했다. 기하는 천을 확 벗겨 냈다. 상체에 비해 하체는 손상이 덜했다. 신장이나 몸집은 녀석과 엇비슷했다. 사타구니 쪽으로 손을 가져가 중심을 더듬었다. 화마에 눌어붙었지만 분명히 음낭은 비어 있다. 아니, 아니다. 우연의 일치다. 녀석과 닮은 점을 찾아갈수록 뼈마디가 떨렸다. 시체 뒤쪽 목덜미로 손을 넣었다. 작은 움직임에 머리통은 주저앉을 듯이 흐물거렸다. 뒷머리로 손가락을 쑤셔 넣고, 오랫동안 내부를 헤집었다. 손가락에 걸리는 것을 천천히 잡아뺐다. 손마디 크기의 금속은 거의 녹아서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칩이 분명했다. 기하는 발작처럼 손으로 입을 가렸다. 쇄도하는 현기증에 다리가 비틀거렸다. 부서지도록 칩을 움켜쥐고 신음을 씹어 물었다. 박 형사는 넌지시 말했다.

“잘 좀 달래지 그랬어. 전에도 연합파가 가게를 개판으로 만들었다면서? 걔들 뒷배가 워낙 빵빵해서 검사들도 함부로 안 건드린다고.”

누구의 소행이든 이유가 뭐든, 머리는 사고를 거부했다. 살가죽이 한올 한올 찢기는 고통뿐이다. 불과 두 시간 전, 야바가 돌아오면 사라진 DVD에 관해 문책하려 벼르고 있었다. 차라리 그때 시간은 멈춰야 했다. 그 순간 한가지가 뇌리를 스쳤다. 야바를 무작정 안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강 사장! 뭐 하는 거야?! 아직 조사 안 끝났…이봐!”

박 형사가 달려들었다. 복도에서 대기하던 부하들은 얼결에 박 형사를 막아섰다. 기하는 야바를 안고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숙소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갔다. 질척한 늪을 헤치듯 다리는 무거웠다. 쉬고 있던 가수들은 갑작스러운 불청객에 당황했고, 불청객이 안은 것을 보며 경악했다. 코카인 방문을 걷어찼다. 방 주인은 이제 막 씻고 나왔는지 머리카락을 털고 있었다. 기하는 그 앞에 주저앉았다. 코카인이 완벽한 힐러라면! 죽음의 강을 건넌 사람도 불러들이는 목소리의 주인이라면…!

“……살려내.”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녀석이 DVD를 빼돌렸든 뭐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돌아와만 준다면……. 처음 코카인의 반응은 단순한 놀라움이었다. 이어 품에 안긴 참혹한 육신에 얼굴빛이 파래졌다. 그는 눈앞의 주검을 알아보지 못했다. 기하는 절규했다.

“야바를 살려내! 당장 노래해서 살려내!! 당장!!”

코카인은 수건을 떨어트렸다. 경악에 물든 눈동자, 노래 대신 기괴한 신음성이 흘렀다.

“이게……야바…라구요?”

뒤에서 누군가의 숨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내부는 피가 얼 만큼 싸늘해졌다. 기하는 코카인의 멱살을 잡았다.

“조금 전에… 사고를 당했어. 너는 살릴 수 있을 거야! 어서 노래해! 어서!”

코카인은 목적지를 잃은 분노에 온몸을 떨고만 있다. 숙소가 습격당했던 날 자신의 폭력에 무력했던 것처럼. 그러나 지금은 그날처럼 다그쳐선 안 된다. 기하는 덜덜 떨리는 손을 내렸다.

“좋아. 당장 시작하기엔 무리겠지. 시간을 줄 테니 준비되면 말해.”

“그, 그게 야바라니……. 대체 어떻게 된 거에요?”

“그런 거 따질 시간 없어! 너는 노래를 불러야 하고 정신 똑바로 차리는 것만 생각해!”

“대체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제발 이성 좀 찾으세요! 야바가 어떻게 된 거 냐구요?!”

“사고가 났다고 했잖아! 이렇게 알아보지도 못할 만큼 끔찍하게 타 죽었단 말이다!”

녀석은 죽었다. 그러니 코카인이 다시 살리면 된다. 핏물 고인 기하의 시선을 코카인은 충격에 휩싸여 마주했다. 그렇게 나약한 표정은 치워. 너는 신이잖아! 어쩌면 죽은 영혼도 불러들이는 완벽한 목소리일지도 모르잖아?! 불타버린 육신은 고기 같이 퍽퍽했고, 가벼웠다. 정체를 알지 못할 수분이 야바의 얼굴로 추락했다.

노래해. 제발…….

목소리가 공기에 부서졌다. 야바를 으스러지도록 껴안았다. 피부에서 진물이 흘러 옷을 더럽혔다. 진짜 야바가 맞냐고, 누군가 물었다. 내부는 거세당한 울음소리로 얼룩졌다. 그 한가운데 기하는 넋 놓고 앉아 있었다. 누군가 방안으로 달려왔다. 남자는 손에 든 봉투를 떨어트렸다. 그 안에서 빵과 우유가 나뒹굴었다. 얼빠진 남자는 기괴한 신음을 냈다. 죽음의 악취는 순식간에 공간을 물들였다.

바닥을 긁는 이동침대 바퀴 소리, 소독냄새. 축축한 의식으로 세상의 소음이 들렸다. 뿌연 풍경 속, 유일하게 선명한 색채를 띤 사람이 있었다. 며칠 만에 보는 그였다. 모든 건 순식간이었다. 덤프트럭이 승용차를 공격했고, 정신을 잃었다. 손목에 박힌 주삿바늘과 이동 침대의 흔들림에 가슴이 무너졌다. 왜 내가 여기에 있어? 여긴 어디야? 나한테 무슨 짓 하려는 거야? 틈 벌린 손가락에 차이석의 손이 얽혔다. 늘 갈림길에 섰던 그의 눈동자가 지금은 단호했다. 싫어! 그런 짓 하지 마! 기하가 알아낼 거야! 그러나 목소리는 의식 아래 눌려 나오지 않았다. 이동침대가 수술실 앞에 멈췄다. 푸른빛 수술복과 마스크를 쓴 의사가 다가왔다. 눈이 예쁜 남자였다.

“이분이 오늘 집도의셔. 대한민국 최고의 신경외과 전문의시지.”

남자가 소개한 중년 의사는 차이석과 눈인사를 나눴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중년 남자가 대답했다.

“미세 현미경과 뇌 내시경을 통해 실시간으로 검사하면서 동시에 수술 진행합시다. 머리에 동전만 한 구멍을 뚫어서 이물질을 제거하는 방법인데, 그 과정에서 생길 일은 우리도 장담 못합니다. 아무튼 한번 해보죠.”

마스크 뒤에 숨은 언어들은 무신경하고 차가웠다. 수술실 문이 주둥이를 벌렸다. 빛줄기가 달려들자 정신을 잃었다. 다시 정신이 소등됐을 때 야바는 수술대에 누워 있었다. 커다란 기계가 일제히 자신을 겨냥했다. 천장에서 내린 공기는 온기를 휩쓸고 바닥으로 빠져나갔다. 벽에 걸린 타이머에 붉은 숫자가 눈알을 번뜩였다. 의사들은 자신을 에워쌌고 간호사는 수술 도구를 날랐다. 드디어 심판대에 올라선 것이다. 저들은 자신의 악행을 가름하고 결단내릴 심판관이었다. 차이석도 있었다. 물빛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날렵한 눈이 흉기처럼 박혀 든다. 그가 풍기는 나른함은 입술과 콧날 때문이었단 걸 이제야 깨달았다.

마취하겠습니다. 누군가 말했다. 몸속으로 낯선 약물이 침투했다. 잠시 후 눈앞이 아득해졌다. 무뎌지는 감각 속에 어떠한 감정이 싹을 키워갔다. 토하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았다. 이미 심판대에 올랐으며 시간은 촉박했다. 차이석은 온몸이 귀가 된 듯 미동을 감지하고 자신의 입가에 귀를 댔다. 야바는 가느다란 숨소리를 보냈다.

“……무서워.”

차이석의 목덜미가 눈에 띄게 경직했다. 그는 느릿느릿 고개 돌려 시선을 겹쳤다. 음영이 드리운 눈동자는 차가움과 뜨거움이 교차했다. 자신의 입술을 매만지는 손길에 생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졌다. 두려움은 덩치를 불려 갔다. 혈관에 퍼지는 마취약에 혀가 굳었다. 눈꺼풀은 곧 무너졌다. 함몰된 의식 저편으로 사람들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육신도 정신도 깎아지른 어둠으로 빨려 갔다.

그러나 표면적인 감각만 마비됐을 뿐 모든 게 느껴졌다. 머리 가죽을 태우는 뜨거움, 두개골 열리는 소리, 뇌 속을 헤집는 금속의 감촉, 괴성을 지르며 대피하는 벌레 소리…. 먼 옛날, 엄마의 자궁 속에서 세상을 보았던 태곳적 기억처럼 말이다. 차이석도 느낄 수 있었다. 초조와 고독으로 그는 굳어 있었다. 뚫린 건 뇌인데 전신이 비틀리는 것 같다. 저 눈빛 때문이다. 자신이 반푼이의 닫힌 세계에서 유일한 보호자였듯이 그도 이 밀폐된 세계에서 유일한 존재였다. 그가 흔들리면 이 세계도 흔들린다. 이 세계를 지키려면 그를 지켜야 했다. 그의 눈동자에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야바는 겨울 같이 적막한 솔베이지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아아…….

Kanske vil der ga bade Vinter og Var. og næste Sommer med, og det hele Ar

겨울이 지나고 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죠. 여름도 지나고, 한 해가 가버리는군요…….

men engang vil du komme, det ved jeg vist og jeg skal nok vente, for det lovte jeg sidst.

하지만 이것만은 확신해요. 당신이 다시 돌아오리란 걸, 다시 돌아올 거에요.

솔베이지는 페르귄트의 파괴적인 구애와 달콤한 맹세에 눈이 멀고 만다. 그러나 페르귄트는 권력과 색욕을 찾아 맹세를 짓밟고 떠나간다. 방탕하게 살다 귀향한 그 앞에 머리가 센 솔베이지가 기다리고 있다. 지친 페르귄트는 솔베이지의 무릎 위에서 길고 험난했던 세월을 위로받는다. 식어가는 연인을 보며 그녀 또한 영혼의 구원을 얻는다. 오물 같은 사랑이 썩어 문드러져도 연인의 맹세를 믿었으므로, 긴 기다림은 신앙과 같았으므로. 구슬픈 멜로디는 뇌를 헤집는 끔찍한 감촉도, 차이석의 잿빛 눈동자도 모두 뒤덮었다. 대부분은 암흑이었다.

og venter du hist oppe, vi træffes der, min Ven

기다릴게요. 당신이 나에게 돌아오는 날까지…….

아아아……

늦은 밤 병실 안은 고즈넉했다. 민우가 한숨을 터트렸다.

“수술 경과는 좋아. 일단 깨어봐야 알겠지만 빠른 시간 안에 퇴원도 가능할 거야.”

“깨어나면 바로 퇴원하고 싶은데.”

이석은 말했다. 언제 위치가 노출될지 모른다. 지금은 조용할지라도 여기는 위험하다. 민우는 미간을 찡그렸다.

“일단 경과부터 보고 나서. 참, 해민이가 그러던데 너 두통 심해졌다면서? 쟤 깨어나려면 시간 좀 걸리니까 그동안 너도 검사 좀 받아봐. 간호사한테 미리 말해뒀으니까 괜히 병 키우지 말고. 알았지?”

민우는 돌아서다 말고 뭔가를 건넸다.

“아, 그리고 쟤 머리에서 나온 거야.”

그가 건넨 건 작은 칩이었다. 문 너머로 민우의 걸음 소리가 사라졌다. 불 꺼진 병실 창문으로 불빛이 내려앉았다. 손에는 어느덧 땀이 흥건했다. 이석은 침대 맡에 서서 야바를 내려다보았다. 마취된 고양이는 평화로이 누워 있다. 야트막한 숨결에 입속이 말랐다. 특별히 부러지거나 찢어진 곳은 없지만 멍 자국이 꽤 많다. 승용차가 전복됐다고 해도 심부름꾼들의 일 처리는 두말할 필요 없이 깔끔했다. 수술은 끝났지만 아직 숨돌리긴 이르다. 이제 녀석도 자신의 계획에 흡수했다. 어쩌면 모든 계획의 중심축이 바뀐 지도 모른다. 이석은 손바닥을 펼쳐 칩을 주시했다. 절반이 금속이고 나머진 플라스틱 재질이다. 폭발력은 떨어져도 뇌에 치명타를 입혀 즉사시킬 위력은 있다. 칩을 입속에 넣고 구석구석에 밴 뇌 진물과 피를 쭉쭉 빨아먹었다. 비린 향이 혓바닥을 지나 식도로 넘어갔다.

그 길로 병원에서 빠져나왔다. 되도록 멀리 차를 몰아 공터에 세웠다. 본넷에 걸터앉아 잇새로 굴리던 칩을 손바닥에 뱉었다. 뇌 진물과 피가 씻겨나간 칩은 깨끗했다. 이것이 녀석을 노예로 전락시킨 정체이다. 헤드라이트가 비치는 바닥에 칩을 던졌다. 안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표적을 겨냥했다. 강인하고 정제된 메탈 곡선이 활강했다.

탕탕탕────!!

칩은 단말마를 터트리며 폭발했다. 몇 번 더 쏴 갈겨 녀석의 족쇄를 파괴했다. 강기하가 눈치채는 건 시간문제지. 상관없다. 모든 건 수술 시간을 벌기 위한 쇼였으니까. 이를 빠드득 갈며 사방에 총을 난사했다. 고막을 터트릴 듯한 총성이 공기를 난도질했다. 불덩이는 식지 않는다. 총알이 떨어졌을 무렵 흉폭한 숨소리만이 어둠에 흩어졌다. 강기하. 이건 애피타이저에 불과하다.

비보를 들은 차명환은 석고처럼 굳어 있었다. 그다음 반응은 비웃음이었다.

“…지금…그 말을 믿으라는 거냐?”

코카인은 무감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룸메이트의 목숨을 두고…헛소리할 리가 없잖습니까. 마지막으로 대표님께 왔던 날 숙소로 돌아가다가 야바가 탄 승용차가 전복됐습니다. 사인은 엔진이 폭발해서라고 하더군요.”

차명환은 눈을 굴리다가 침을 삼켰다. 코카인의 표정에 그의 입술에 박힌 조소가 뽑혀 나갔다.

“…엊그제까지 멀쩡하게 노래하고 갔어. 그런데…뭐가 어째? 너 같은 딴따라 나부랭이 말을 믿을 것 같나?

“믿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저희 쪽에선 야바의 신원을 모두 확인했고…….”

뜨거운 것이 올라와 코카인은 목소리를 물렸다. 바닥에 시선을 두고 말했다.

“그 애가 맞았습니다.”

“허, 헛소리하지…마…….”

경련하는 그의 손이 머리카락을 물어뜯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앞으로 그에게 일어날 일을 알려주기로 했다.

“야바는…… 이제 여기에 오지 않을 겁니다.”

차명환은 숨을 멈추었다. 파랗게 떠는 입술과 흑색 얼굴은 죽어가는 나무 같았다. 커다래진 눈에는 두려움과 혼란스러움, 마지막 종착점은 분노였다. 차명환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절규했다.

“개소리하지 마! 꺼져!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아무것도 안 믿어! 꺼져!!”

쨍그랑───!

코카인을 향해 컵이 날아들었다. 파편이 튕겨 얼굴을 할퀴었다. 그때부터 차명환은 닥치는 대로 기계를 던지고 때려 부쉈다. 팔뚝에 박힌 주삿바늘을 뽑아내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경호원이 덤벼들어 그를 바닥에 짓눌렀다. 간호사는 진정제를 투여했다. 차명환은 발광을 멈추지 않았다. 경호원과의 몸싸움에 옷이 찢겼다. 그의 발길질에 간호사는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이거 놔! 놔 이 새끼들아! 그럴 리가 없어…! 걔 빼돌리려고 개수작 부리는 거 모를 줄 알아?! 니들 모두 가만 안 둬! 모두 죽여버린다──!”

차명환은 이를 갈며 저주의 말을 쏟아냈다. 충혈된 눈동자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세상 모든 분노와 절망이었다. 세 번째 진정제를 맞았을 무렵 그의 오열은 잦아들었다.

“괜찮아? 아주 발광을 했나 보네. 여기까지 소리가 다 들리던데?”

밴에서 기다리던 헤쉬쉬가 찢어진 이마를 수건으로 눌렀다. 코카인은 고개를 비틀어 그 손을 피했다.

“내버려 둬. 어차피 곧 기력 딸려서 날뛰지도 못할 거니까.”

“뭐?”

헤쉬쉬가 물었다. 코카인은 충동적으로 말하고 싶었다. 자신만 알고 있는 그 비밀을. 그러나 입술을 닫아 맸다. 헤쉬쉬는 더 묻지 않고 좌석에 기대앉았다. 자신 외에는 관심 없는 저 성격이 이럴 땐 편리하다. 헤쉬쉬는 한숨 쉬며 제 머리를 헝클었다.

“나도 믿기지가 않는다. 똘아이 그 새끼 제발 좀 사라졌으면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얼마 전부터 가전제품을 내다 버리면서 헛소리를 하길래 그냥 똘아이 짓 하나 싶었는데, 이렇게 되려고 그랬나 봐. 애들도 충격받아서 울기만 하고 사장도 어디에 처박혔는지…….”

“그래도 축복받은 죽음이야. 세상엔 애도 없는 죽음도 많아.”

헤쉬쉬는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기에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상대의 음주운전과 운전자 부주의로 인한 전복사고. 길바닥 출신의 죽음 앞에 공권력의 판결은 간단명료했다. 사장은 시체를 무단으로 빼돌렸지만 박 형사의 입김으로 무마되었다.

“이상하지? 미우나 고우나 10년을 살 부대끼며 살았는데 난 왜 눈물이 안 날까? 그렇다고 후련하지도 않아. 내가 이상한 걸까?”

“아직 실감 안 나는 거겠지. 나도 그러니까.”

야바를 눈엣가시로 여겼던 헤쉬쉬마저 예상외의 모습을 보였다. 차명환은 야바의 죽음에 상상 이상으로 쇼크 받았다. 가수들은 비탄에 빠졌으며 사장은 야바의 시체를 데리고 잠적했다. 일 중독자인 사장의 모습에 부하들은 술렁거렸다. 세준은 동생의 주검을 안아보지도 못하고 빼앗겼다. 그리고 매일 울었다. 자신에게 찾아와 노래를 부탁했지만 그는 구원받지 못했다. 모두 야바의 죽음 앞에 절망했다. 야바, 야바, 지긋지긋했다. 자신이 죽어도 이런 반응일까.

“제일 열 받는 게 뭔 줄 알아?”

코카인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스스로 값어치를 잘 알고 그걸 이용하는 사람은 경쟁자를 분노하게 하지만, 스스로의 값어치를 전혀 모르면서 주변을 매혹 시키는 부류는 경쟁자를 타락하게 하지.”

정말 개 같은 일이지 않은가. 물론 이 마음은 누구도 몰라야 하며 자신은 능숙하게 감출 수 있다. 차이석은 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지만 그 역시 며칠간 연락 두절이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까? 왜 동료의 죽음보다 주변 사람의 반응에 더 날을 세우는 걸까? 차명환처럼 야바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걸까? 실감 나지 않아서일까? 이 기형아 같은 감정은 야바에 대한 증오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신성하며 애도할 의무가 있다.

믿기지 않는 건 나야! 미칠 것 같은 건 나란 말야! 마음 놓고 미쳐 날뛸 수 있다면 앞으로의 날을 조금 더 잘 견딜 것 같다. 입술을 씹고 살갗이 파이도록 주먹을 쥐었다.

야바가 죽었다. 지옥에서 탈출할 희망도 사라졌다.

작살 같은 햇살이 야바의 눈두덩을 들쑤셨다. 거대한 에너지에 눌려 한동안 눈 뜨지 못했다. 따뜻한 공기, 스킨 향, 볼에 닿은 서늘한 감촉이 현실로 이끌었다. 눈 뜨고 제일 처음 보인 건 누군가의 어깨였다. 강인한 선을 따라갔을 때 차이석이 몽롱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태양의 에너지 같은 눈동자에 어지럼증이 일었다. 그는 단추 몇 개를 풀어헤친 회색 스트라이프 셔츠를 입고, 늘 뒤로 넘겼던 머리카락은 자유로이 헝클어졌다. 좀 더 어려 보였고, 훨씬 편안해 보였다. 그는 손에 머리를 괸 채 모로 누웠다.

“어때? 상처가 당기거나 현기증은?”

아니. 모스 부호처럼 눈을 깜빡거렸다. 머리의 둔통과 어깻죽지가 아픈 것 말곤 괜찮았다. 그에게 붙들린 시선을 떼어냈다. 주삿바늘이 매달린 제 손등과 병원 특실 못지않은 실내는 차명환을 연상케 했다. 마지막 기억은 병원이었는데 언제 여기로 옮긴 걸까. 정신이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장소가 바뀌어 적응하기 어려웠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회복만 잘하면 돼.”

뇌가 무뎌져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멀거니 눈만 깜빡이자 그가 말했다.

“칩 말야.”

그건 머리통이 날아갔다는 것보다 더한 충격이었다. 손을 들어 머리를 더듬었다. 머리에는 압박 붕대가 감겼는데 머리카락은 그대로였다. 이럴 줄 알았다. 굳은 혀를 깨물며 목소리를 밀어냈다.

“거짓말하지 마. 머리카락은 멀쩡하잖아.”

“수술 부위만 머리카락을 제거하는 방법이야.”

“그럼 칩은? 보여줘.”

“수술 끝나고 바로 없앴어. 그대로 두면 위치가 노출되니까.”

“나 수술하는 거 잘 감시했어?”

“물론. 빨아먹고 싶을 만큼 예쁜 뇌수도 봤고.”

정신 나간 소릴 하는 걸 보니 의혹이 더 부풀었다. 야바는 눈에 모서리를 세웠다. 그가 입술을 말아 올리며 자신의 눈 아래를 건드렸다.

“그렇게 덮어놓고 의심할 때마다 네 눈알을 씹어먹고 싶은 거 아나?”

“…….”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기 불가능했지만 사고 이후 못해도 이틀은 지났을 텐데 아직 머리통이 무사한 걸 보면……. 심장이 울렁거리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야바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야? 진짜 빼냈어?”

“수술 장면 녹화분 가져오라고 해야겠는데.”

장난스러운 말투지만 표정만은 진지했다. 눈을 감았다가 뜨며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는 현실과의 통로이므로 그 길이 인도하는 대로 가야 한다. 칩을 제거했다니 믿기지 않았다. 드디어 저주에서 풀려난 거다. 아, 어쩌지. 어쩌지. 미칠 것 같다. 등에서 날개가 돋아나 날아갈 것 같다. 자신의 고약한 성격도 칩 때문인지 모른다. 어쩌면 착해질지도 모른다. 칩을 박으라고 한 장본인은 기하가 아니라고 들었다. 이 순간만은 기하도, 칩을 박으라고 한 인간도 용서할 수 있다. 알몸으로 거리를 달리든, 창문을 깨고 날아가든, 뭐든 하고 싶다. 야바는 입술을 깨물며 발가락을 모았다가 펼쳤다. 심장이 날뛰어서 구역질이 나왔다. 그는 굳은 얼굴로 상체를 일으키고 자신을 살폈다.

“그런데 여기에 있어도 돼?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받아야 하잖아. 뇌수술인데 후유증이라도 생기면, 실밥 터져서 뇌수가 흘러나오거나 곪아서 썩으면…….”

그가 목 안으로 웃었다.

“병원보다 여기가 더 안전해. 주치의도 자주 들릴 거고.”

말을 멈춘 그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관통해왔다.

“너는 이제 세상에 없는 사람이야. 그건 차명환한테도 마찬가지지.”

그를 감싼 공기가 냉랭해졌다.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차이석은 표범처럼 상체를 주욱 세웠다. 되돌아온 눈길은 거짓말처럼 느슨해졌다.

“맘마 먹어야지. 나비야.”

“…….”

차이석은 자신을 부축하고 등에 베개를 대주었다. 침대 반동에 현기증이 일었다. 이불이 내려가자 자신이 속 비치는 흰색 셔츠와 팬티만 걸쳤다는 걸 깨달았다. 이불을 끌어 올려 두꺼운 허벅지를 가렸다.

“내 옷 줘.”

“그 옷은 참아. 벌써 쓰레기통으로 직행했으니까.”

“그럼 바지라도 줘.”

“너한테 맞는 바지가 없을 텐데.”

차이석은 자신의 사타구니 안쪽을 적나라케 응시했다. 방을 나가는 그의 뒤통수를 힘껏 노려보았다. 문득 찹찹한 감촉이 발목에 감겼다. 노란 생물이 혀를 날름대며 자신의 발등에 머리를 문지르고 있었다. 요망한 것이었다. 온통 빨간색이라 확실치 않지만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야바는 양 미간을 찡그렸다. 분명히 냉동실에 넣었는데 아직도 목숨이 붙어 있다니, 대체 어디에 넣어야 저 꼴을 안 볼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요망한 것을 발로 밀어냈다. 하지만 끈덕지게 오고 또 와서 제 머리를 비비적댔다. 발로 걷어차려 할 때 차이석이 한발 앞서 뱀 머리를 잡아 올렸다.

“달라붙지 마. 몸이 차가우면 안 되니까.”

그는 뱀을 저만치 밀었다. 죽과 밑반찬이 놓인 상을 야바 허벅지에 올리고 침대 모서리에 앉았다.

“저 녀석 계속 식음을 전폐했어. 아무리 싱싱한 먹이를 줘도 눈길 한번 안 줬지. 왠지 이유를 알 것 같군.”

차이석은 뱀을 날카로이 주시했다. 그러고 보니 구렁이는 전보다 홀쭉해 보였다. 요망한 것은 나중에 처리해도 되니 허기부터 달래고 싶었다. 뜨거운 건 못 먹는 편이라 죽이 식기를 기다렸다. 이 시간, 그의 공간에 있는 자신이 이상했다.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건 자신인데 차이석이 되레 묘한 표정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새 신발을 선물 받은 아이의 눈이었다. 갑자기 난입한 침묵에 죽 그릇만 노려보았다. 입김 같은 시선이 이마에 달라붙었다. 어느 정도 식은 죽을 입에 떠 넣었다. 고소한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한 수저 더 뜨는 순간, 숟가락을 내던졌다. 죽 위에서 벌레가 알을 까는 것이었다.

“으……!”

숟가락이 나뒹굴었다. 차이석이 받지 않았다면 상도 엎었을 거다. 언제 여기다 알을 깠는지 치가 떨렸다. 야바는 손톱으로 혀를 긁으며 갖은 인상을 썼다.

“왜 그래?”

“벌레가 죽에다 알 깠어.”

그는 눈을 좁혔다.

“어디 볼까.”

차이석은 야바의 턱을 잡아 올리고 입안쪽 살과 혀 아래를 살폈다. 문득 혀끝에 닿은 시선이 두터운 빛을 냈다.

“꿈틀거리는데.”

야바는 숨을 들이켰다. 입을 헹구려고 몸을 뒤척이자 그가 다시 턱을 잡아챘다. 그의 손가락이 파고들어 입술을 벌렸다.

“잠깐. 움직이고 있어.”

그의 시선은 혓바닥에서 입술로 턱으로, 목덜미로 유연하게 떨어졌다. 그 궤적을 따라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았다. 어깨를 움츠렸다. 그의 눈길이 셔츠 깃 속으로 미끄러졌다. “이런.” 그가 탄식했다. 옷으로 들어갔나 보다. 겹겹이 접힌 뱃살은 벌레들이 종종 반상회를 여는 곳이다. 그들도 낯선 환경에 떨어져서 대책회의가 필요한 거다. 수술 부위가 당겨서 확인할 순 없지만 온몸이 간지러워 견딜 수 없는 기분이었다.

“됐어. 샤워하면 돼. 욕실 어디야?”

“당분간 샤워는 금물이야. 손으로 잡으면 벌레가 으깨져서 모공에 들어갈지 모르고, 불로 태울 수도 없고, 어쩐다…….”

한순간 그의 눈동자에 불순한 빛이 스쳤다. 그는 자신이 입은 셔츠 단을 끄집어 올렸다. 야바는 다급하게 셔츠를 내렸다. 뱃살도 보이기 싫지만 허리에 있는 화상 자국은 더 보이기 싫었다. 다시 그가 셔츠를 올리자 푹 퍼진 살 무더기가 드러났다.

“뭐, 뭐하는 거야? 하지 마…!”

그의 머리가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물기 묻은 점막이 젖꼭지를 감쌌다. 유두를 빨고 치아로 아프지 않게 긁기도 했다. 그는 밀어내는 양손을 옥죄고, 젖꼭지와 주변 살을 깊이 빨아갔다. 그가 주는 감각은 수치심을 금세 앞질렀다.

“으읏……하지 마…! 그만…….”

혀와 입술은 노골적인 마찰음을 만들었다. 내려뜬 그의 눈매와 콧날이 셔츠 아래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잘 깎인 턱선과 목덜미가 혀의 율동에 맞춰 움직였다. 적나라한 광경에 등줄기가 뻣뻣했다. 미끌미끌한 감촉에 머리가 눅눅해졌다. 아래쪽에 피가 몰렸다. 무심결에 다리를 잡아빼다가 그의 것을 쓸었다. 혼탁한 신음이 가슴에 퍼졌다. 혀 놀림은 성급해졌다. 그러면 또 야바는 몸을 바르작거렸다. 혀 융기가 느껴질 만큼 움직임은 집요했다. 젖꼭지가 녹아 없어지는 것 같다. 그것은 고문에 가까웠다.

“하아…으…….”

야바는 턱 아래까지 올라온 옷을 물어뜯었다. 허벅지에 비벼오는 그의 중심은 공격적일 만치 단단했다. 그때 노란 생물이 침대 위로 올라왔다. 야바 가슴에 매달린 차이석의 턱 아래로 노란 대가리를 밀었다. 차이석은 날 세운 눈으로 뱀 머리를 잡아챘다. 뱀은 차이석 팔에 몸통을 휘감았다. 슉슉, 이를 보이며 공격적인 소릴 냈다. 차이석은 그대로 뱀 머리를 이불에 짓누르고 고개를 떨어트렸다. 물먹은 살덩이가 젖꼭지를 감아올렸다. 혀는 반대쪽 돌기로 미끄러져 감쌌다. 뱀 꼬리가 살벌한 곡선으로 꿈틀거렸다. 야바는 할딱이며 그의 머리를 밀어냈다. 차이석은 젖꼭지를 입속 가득 빨아들이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턱과 입 주변은 타액으로 번들거렸다. 아마 자신의 가슴도 그러할 것이다. 그는 미간을 구긴 채 입속에 든 걸 짓이기듯 턱 운동을 시작했다. 목울대를 울리며 꿀꺽 넘겼다. 그제야 차이석의 행위가 벌레 박멸이 목적인 것을 깨달았다. 벌레를 먹다니, 충격인 장면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는 눈을 짓궂게 반짝였다.

“또 다른 덴? 말 나온 김에 모두 잡아버리지.”

“저리 가! 저리 가!”

그는 이번에 팬티로 손을 넣었다. 손가락에 똬리 틀린 성기를 향해 혀가 돌진했다. 저 입속으로 들어가면 머리가 터져 죽고 말 거다. 그의 어깨를 밀어내던 순간이었다. 초인종 소리에 차이석은 멈칫했다. 그는 혀를 차며 야바의 옷매무새를 정돈해주고 밖으로 나갔다. 다시 돌아왔을 때 민우란 사람을 달고 왔다. 활기찬 에너지와 세련된 맵시는 도무지 의사 같지 않았다. 의사는 야바의 수술 부위를 살폈고 몇 가지 질문과 당부를 남겼다. 이내 차이석에게 추파를 던졌다.

“잠깐 좀 보자.”

두 사람은 방 밖으로 나갔다. 손가락 거스러미를 뜯어대며 그들이 나간 문을 주시했다.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침대 아래서 노란색 뱀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 빨간 눈알을 보니 손이 근질거렸다. 사냥 직전의 살쾡이 마냥 눈에 가시를 세울 때였다.

“순이 냉장고에 넣지 마.”

그의 목소리가 뒷덜미를 잡아챘다. 이어 현관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야바는 손을 거두고 침대에 누웠다. 젖꼭지에 남은 감촉을 지우려고 이불을 물어뜯었다. 빈 음낭도 수술에 지쳤는지 힘없이 늘어졌다. 붕대 감긴 머리를 매만졌다. 속박에서 풀려났다는 사실은 실감 나지 않았다. 뇌 수술이라니, 왕따 못난이에게 제법 화려한 이력이 생긴 거다. 이래도 되는 걸까. 이 평화로운 일상이 자신의 것이 맞는 걸까? 아직 아무 일 없는 걸 보면 기하는 아직 눈치 못 챘나 보다. 아직은……. 튜브로 떨어지는 수액이 주삿바늘을 통해 혈관으로 스몄다. 규칙적인 낙하운동에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쟤 앞으로 여기 계속 둘 거야?”

현관 밖으로 나오자마자 민우는 물었다. 이석은 입술을 끌어당겼다.

“나한텐 얼씬도 못 하게 하더니….”

민우는 눈꼬리를 뾰족하게 떴다.

“너 머리 검사한 거 결과 나왔어. 종양이나 뇌질환도 없고 약쟁이 주제에 깨끗했어. 두통과 이명은 약만 끊으면 낫는 병일 거야.”

이석은 벽에 어깨를 기대고 삐딱하게 섰다.

“약 입에 안 댄지 한 달 가까이야. 더 넘었을지도 모르고.”

“거짓말. 얼마 전에 요트에서 했을 거 아냐?”

“술은 했지만 전혀.”

이미 마약보다 더 지독한 것에 취했기 때문이다. 오늘 눈뜨자마자 고양이 노래가 못 견디게 고팠지만 회복할 때까지는 참아야 한다. 그건 아랫도리 사정도 마찬가지다. 민우는 눈가를 찌푸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끊은 지 한 달이면 중독 반응이 거의 안 나타나거나, 미미하게만 나타나거든? 그런데 너 뇌파 검사도 그렇고 혈액검사도 그렇고, 호르몬 수치나 혈중 산소치가 굉장히 낮았어. 독소 생산량도 평균을 훨씬 웃돌았고. 그건 심각한 말기 중독 환자한테나 나오는 수치인데. 너 혹시 최근에 항생제 맞은 적 있어? 결핵이나 폐렴에 걸린 적은? 그 약들이 마약 가 반응을 일으키기도 하거든?”

“전혀. 검사가 잘못된 거 아닌가?”

“뇌파와 혈액, 조직 검사가 풀세트로 잘못될 리 없지.”

코카인 노래를 들은 사람에겐 실제로 마약 반응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최근 코카인 노래를 들은 적은 거의 없다. 야바 노래만 집중적으로 들었으니까. 그 순간 이석의 입매가 얼었다. 왜 코카인은 차명환을 두고 흥정하면서까지 자기의 노래만 들으라고 했지? 터무니없는 고집을 부리는 인물이 아닌데 말이다. 이석은 코카인 노래를 마지막으로 들었던 시기를 계산했다. 그때 민우가 자신의 어깨를 주먹으로 가볍게 때렸다. 그 바람에 사고에 제동이 걸렸다.

“아무래도 네 혓바닥보다 뇌파가 더 솔직한 모양이다. 너 약 빨리 안 끊으면 큰일 나. 정 힘들면 클리닉이라도 다녀.”

민우가 돌아가고 현관문을 열었다. 안과는 달리 바깥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엘리베이터 입구와 비상구, 복도에는 검은 제복의 경호원들이 경계를 기울였다. 심부름꾼의 보고에 따르면 강기하는 거처에 틀어박혀 있다고 한다. 가짜를 끌어안고 말이다. 궁상맞은 꼴을 구경할 수 없는 게 아쉬웠다. 아직 잠잠하지만 놈이 정신을 차리면 얘기는 달라진다.

방에 들어섰을 때 고양이는 햇볕을 받으며 잠들어 있었다. 조금 전 민우의 말을 곱씹으며 녀석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이석은 한쪽 팔을 침대에 대고 상체를 숙였다. 족쇄를 풀어헤친 고양이는 편안해 보였다. 순이는 고양이가 방심한 틈을 타 대담하게 고양이 앞발에 제 머리를 밀착했다. 꼬리는 고양이 뒷발에 감겨 있다. 이석은 미간을 좁혔다. 그간 식음을 전폐하며 마음고생 했던 놈이니 한 번쯤 눈감아 주기로 했다. 곡옥처럼 웅크린 고양이와 그를 휘감은 버미즈 파이톤은 도색잡지의 한 컷 같다. 제 몸에 비해 큰 옷을 입어 옷 틈으로 하얀 쇄골과 어깨가 드러났다. 옅은 빛깔의 유두도 희끔거렸다. 중심으로 열기가 몰리며 그간 쌓였던 갈증이 포악해졌다.

녀석이 회복하면 저 혓바닥과 음모 없는 성기부터 먹어치울 것이다. 손가락 마디마디, 발뒤꿈치, 눈알도 빨아먹을 생각이다. 머리에 난 구멍에 혀를 쑤셔 넣고 뇌수를 핥고 싶다. 물론 감창 같은 자장가도 곁들여서. 빛의 분말이 고양이 목덜미와 어깨에 부서졌다. 그리고 볼에 떨어진 속눈썹 하나. 자신의 공간에서 다른 생물이 주는 기묘한 포만감, 그것은 생의 첫 발견이다. 녀석의 목덜미에 코를 묻고 체향을 깊이 마셨다. 혼을 묶는 그 아찔한 죽음의 냄새를 말이다. 야바의 입술과 속살의 질감을 음미하며, 이석은 무덤 같은 평화 속으로 기꺼이 합류했다.

“이제 나하고 살자. 나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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