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러-27화 (27/42)

힐러-track 25

임수와 부하는 상자 다섯 개를 사무실 바닥에 내렸다. 대여한 컨테이너를 가게 옆에 두고 임시 사무실로 사용하는 중이다. 부하들이 물러가자 임수가 말했다.

“사장님 본가에 갔더니 모친께서 미리 준비해 두셨더군요. 한번 안 오시는지 궁금해하십니다.”

“언제 시간 봐서. 이게 전부인가?”

“예. 종잇조각까지 모조리 모아두셨답니다.”

기하는 상자에 든 걸 책상에 쏟았다. 낡은 서류며 노트, 디스켓은 보기만 해도 질릴 지경이다. 임수가 물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데이터를 가져오라고 하셨습니까?”

“코카인이 요즘 몸에 이상신호가 온다더군. 주치의도 원인은 모른다 했고.”

임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럼 곤란하잖습니까?”

“곤란한 정도가 아니지.”

코카인이 휘청이면 파라디소도 휘청일 만큼 그는 주요 수입원이다. 뒤통수 후려치는 정보고 뭐고를 떠나, 가장 궁금한 건 힐러의 능력이 영원불멸한지 아닌지다. 천상의 노래가 없는 파라디소는 빈 껍데기니까. 코카인 힘이 소진되는 날이 올 때를 대비해 전국에 또 다른 힐러를 수배했다. 힐러의 목소리를 갖고 태어나도 변성기가 지나면 평범한 목소리로 전락한다. 그전에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

“나머지도 샅샅이 뒤져봐. 쓸만하다 싶은 건 보고 하고.”

“예. 그런데 제가 이해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는 데까지 해 봐.”

“알겠습니다.”

임수는 서류 더미를 보며 한숨 쉬었다. 기하는 콧대를 손가락으로 지압했다. 자신은 물론 부하들도 며칠간 가게에 매달리느라 제대로 눈 붙이지 못했다. 아까 차 회장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차명환이 야바를 원하든 코카인을 원하든, 원하는 걸 들어주라고 했다. 자신을 거역하면 이번엔 경고로 끝내지 않겠다는 말도 함께. 아마 차 회장도 아들이 가망 없다는 걸 예감하고 생전에 원풀이라도 해줄 생각일 것이다. 차명환이 별 볼 일 없는 야바 노래에 홀렸을 리는 없다. 분명 가면을 벗겨 그 얼굴을 본 것이다. 차이석만으로도 골치 아픈데 엉뚱한 파리까지 꼬였다.

대리인을 통해 가게를 넘기라는 의사를 전했지만 소유주에게선 아무 소식이 없다. 되는 일이 없다. 뒷목이 뻐근했다. 이럴 때 코카인 노래를 들으면……. 기하는 혀를 씹었다. 이래서 코카인 노래를 경계하는 것이다. 차이석에게 귓구멍이 뚫렸을 때도, 이번 급습 사건 때도, 요즘 뜻하지 않게 코카인 노래를 자주 들었다. 녀석 노래를 들으면 개운해지는 건 분명하다. 고객들도 그 느낌을 원해 찾고 또 찾는 거겠지.

그때 휴대폰이 울려 받아들었다. 부하 목소리가 넘어왔다.

[사장님…. 조, 조금 전에 차 전무가 와서 야바를 데려갔습니다.]

기하는 볼을 꿈틀거렸다.

“가서 회수해 와.”

[죄송합니다. 쫓아가긴 했는데 중간에 놓쳤습니다.]

“멍청한 새끼들.”

기하는 욕을 씹으며 휴대폰을 내던졌다. 추적 단말기를 꺼내 노트북에 연결하고 전원을 켰다. 화면에 뜬 위성 사진을 빠르게 탐색했다.

차를 타고 온 곳은 부둣가였다. 2층으로 된 초호화 요트는 스포츠카처럼 속도감 있게 생겼다. 요트로 들어서는 발걸음도 문 여는 손길도 거칠었다. 불 꺼진 선실은 유령선 같이 적막했다. 언젠가 한번 코카인 대타로 온 곳이었고, 차이석과 처음 몸을 섞은 곳이었다. 차이석은 야바를 선실 벽에 내몰았다. 그는 진회색 슈트 재킷을 벗어 던지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했다.

“이제 우리 둘뿐이니까 말해 봐. 차명환한테 가지 말하고 했는데 왜 기어코 가는지 말이야.”

“나는 갈 거라고 했어.”

“내 얘길 귓등으로 듣는 사람은 세상에 별로 없어. 내가 깨끗하게 청소했으니까.”

“그런 협박 안 통한다고 했지?”

“눈물 나게 열렬하군. 그 자리에 내가 없었다면 더 대단했겠는데?”

발화점에 도달한 그의 얼굴이 시야를 압박해왔다. 그는 저열한 언사를 쏟아냈다.

“아까 네 꼴이 어땠는 줄 아나? 아무한테나 다리 벌리는 싸구려 매춘부 같더군. 반 송장 것도 세우겠던데?”

짜악───!

야바는 오만방자한 그의 뺨을 올려붙였다. 날카로운 소음이 선실을 쩡 울렸다.

“그런 싸구려한테 발정하는 네 입맛도 싸구려야. 너 같은 거 하고 더 할말 없으니까 약이나 내놔.”

그는 고개를 삐딱하게 튼 채 시선을 움직였다. 눈동자는 피가 거꾸로 솟구친 육식동물이었다.

“발톱 세우는 고양이는 볼기짝부터 두드려주는 게 먼저지.”

“아으……!”

그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야바의 엉덩이를 터트릴 듯 쥐고 당겨갔다. 입술을 삼키고, 이빨로 야바의 혀를 두 동강 낼 듯 씹었다. 피 맛이 느껴졌다. 진저리치며 그에게 발길질하고 어깨를 두드려팼다. 그의 숨소리는 동물의 허기진 울음소리 같았다. 차이석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행동은 난폭했고 눈빛은 끔찍했다. 야바는 헐떡이며 그 입술을 물어뜯었다. 입술이 떨어진 틈을 타 힘껏 밀치고 선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입속에서 피 맛이 감돌았다.

“하아! 하아……!”

허공에 뭉친 제 입김을 헤집고 앞만 보며 달렸다. 그의 아파트에 가는 줄 알았다. 약만 받고 오려 했는데 위험을 감지했을 때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좀 더 철저했어야 하는데 패를 모두 보여줬던 게 어리석었다. 요트 뒤쪽에 당도한 순간 둔기에 맞은 양 굳어버렸다. 요트가 이미 부두에서 훌쩍 멀어졌기 때문이다. 눈앞이 캄캄했다. 자신이 수영을 못 한다는 걸 알고 여기에 끌고 온 게 틀림없다. 허둥지둥 구명조끼를 찾을 때였다. 맞은편에서 차이석이 석양을 등지고 걸어왔다. 그는 입가에 묻은 피를 혀로 훔치며 포위망을 좁혔다. 역광을 받은 그의 눈에 핏대가 섰고 초점도 흐렸다. 야바는 숨을 조이며 난간에 올라섰다. 그가 흠칫, 멈춰 섰다.

“멍청한 짓 하지 마. 거기서 뛰어내리면 프로펠러에 감겨서 형체도 없이 갈리니까.”

물살을 가르는 요트의 움직임에 어지럼증이 났다. 야바는 마른침을 삼키며 눈에 가시를 세웠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야. 빨리 요트 돌려.”

“배는 자동 운항이고, 끄려면 내가 가야 되지. 그런데 나는 너를 포획하지 않으면 여기서 움직일 생각이 없어.”

야바는 털을 곤두세우고 몸을 긴장시켰다.

“마음대로 해. 내가 행방불명되면 기하가 칩을 추적해서 찾아올 거야. 그럼 너는 빼도 박도 못 하게 살인 용의자가 되겠지. 어차피 너는 기하도 경찰도 알량한 돈으로 매수하겠지만, 살인자라는 꼬리표는 영원히 따라다닐 거야. 네 아들도 살인자 자식이라는 낙인이 찍혀서 돈과 마약이나 친구 삼겠지. 결국 구제 못할 약쟁이로 살다가 너를 저주하면서 옥상에서 뛰어내릴 거야. 그러니까 네 아들 살리고 싶으면 빨리 요트 돌려!”

“…….”

“살 떨리는군.” 차이석은 실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좋아. 우선 내려와서 말해. 그렇게 도망만 치면 제대로 얘기할 수 없잖아.”

“싫어. 니가 자꾸 쫓아오니까 도망가지.”

“먼저 도망친 건 너야.”

“아니야. 니가 먼저 쫓아왔어. 좀 전에도 내 목 분지를 것 같은 얼굴로 쫓아왔잖아.”

“대체 내가 왜 네 목을 분지를 거라고 생각하지?”

“목을 분지를 것 같이 굴었으니까.”

“좋아.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됐나?”

“거울이나 보고 말해.”

“하아.” 차이석은 머리카락을 쓸며 한숨을 퍼트렸다. 내리깐 눈이 되돌아왔을 때 흉폭함이 누그러진 상태였다.

“지금 네 꼴이 어떤 줄 알아? 겁먹은 야생 고양이 같아. 이리와. 아니, 내가 갈 테니 그대로 있어.”

차이석의 발이 신중하게 떨어졌다.

“……오지 마!”

야바는 몸을 잔뜩 웅크렸다. 그 순간 큰 파도가 밀려와 손이 미끄러졌다. 공중에 몸이 떠오르며 차게 굳은 그가 휘영청 멀어졌다. 어떤 상황이 일어났는지 판단하기도 전에 뼛속까지 얼리는 물에 빨려 들어갔다. 음낭에는 그의 숨결과 음란한 마찰음으로 포화상태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몸도 의식도 바닷속으로 까라졌다. 짜디짠 바닷물이 코와 입속에 들이쳐 고통스러웠다. 발이 닿지 않는 암흑의 바다는 고요했고, 그만큼 공포스러웠다. 그때 날렵하게 곧은 육체가 포말을 일으키며 잠수했다. 검은 물결을 휘감은 그는 창공에서 활강하는 새처럼 자신을 낚아챘다. 물 위로 나오자마자 몸부림쳤다. 차이석은 뒤에서 자신의 고개를 뒤로 젖혀 어깨에 기대해 했다. 젖은 입술이 귓가에 부딪혔다.

“쉿, 쉿. 몸에 힘을 풀고 나한테 맡겨. 아니면 기절시키는 수밖에 없어.”

그는 자신의 허리를 감고 한쪽 팔로 물살을 갈랐다. 늘어진 뱃살이 그의 팔을 먹어치웠다. 그는 요트 사다리로 자신을 먼저 올려보냈다. 갑판에 오르자마자 주저앉아 기침을 쏟아냈다. 차가운 바닷물이 몸에 쩍쩍 붙어 뼈마디가 욱씬거렸다. 뒤이어온 차이석은 자신을 안아 선실로 걸어갔고 곧장 자신의 젖은 옷을 벗겨 냈다.

“하, 하지 마!”

“저체온증으로 죽기 싫으면 가만있어.”

보이기 싫다. 허벅지만 한 팔뚝, 층층이 겹친 허릿살, 어디 하나 살덩이로 뒤덮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거침없는 손아귀에 야바는 팬티만 걸친 꼴이 되었다. 물에 젖은 붕대가 늘어져 무릎이 드러났다. 그가 상처 난 야바의 다리를 훑었다. 그는 어딘가로 사라졌고, 다시 돌아왔을 때 마른 수건과 헐렁한 옷을 들고 있었다.

“응급처치할 게 없군. 옷이 대충 마르면 근처 병원에라도 가지.”

“…….”

차이석은 커다란 수건으로 야바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았다. 수건의 보드라운 감촉 너머로 그의 숨결이 피부에 흩어졌다. 또 다른 의미로 소름이 돋았다. 그가 가져온 셔츠를 껴입었다. 뱃살을 가리니 그제야 마음이 진정됐다. 바닷바람이 몸에 달라붙어 찐득거렸다. 이빨이 부서지도록 몸을 떨었다. 그는 상체를 세우고 셔츠와 바지를 벗기 시작했다. 넓은 어깨와 긴 다리는 물처럼 힘찬 선이었다. 자신도 작은 키는 아닌데 그와 나란히 서면 훨씬 작은 느낌이다. 그의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물기가 이마와 가슴 근육을 타고 음모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보면 위험해.”

야바는 눈을 돌렸다. 그는 물기를 닦은 다음 헐렁한 바지를 입었다. 딱딱한 슈트보다 느슨한 옷차림이 잘 어울렸다. 그의 시선이 야바의 맨다리로 미끄러졌다. 뼈가 울릴 만큼 몸이 떨렸다. 야바는 수건을 여미며 살을 감췄다. 오랫동안 자신을 응시하던 그가 바닥에 떨어진 재킷을 들었다. 안 주머니에서 항우울제를 꺼내 케이스 채로 내밀었다. 야바는 알약 몇 개를 꺼내 허겁지겁 삼켰다. 차이석은 팔짱을 끼며 삐딱하게 섰다.

“내가 너를 죽일 거라니 나도 금시초문이군. 이제 생명의 은인이 됐으니 이유를 들을 자격은 되겠지?”

“몰라서 물어? 다른 사람은 속여도 나는 못 속여.”

그는 인내심 있게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야바는 약을 꿀꺽 삼키고 시선을 모로 세웠다.

“숙소에 불 지르고 용역 깡패 보낸 거 너잖아. 너 때문에 내가 그동안 모은 재산 전부 다 없어졌어.”

독극물도 하마터면 날릴 뻔했다. 불알 값도 책도 모두 물거품이 됐다. 그날의 아찔함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차이석 입술에서 바람이 샜다.

“내가 한 짓이라고 생각했단 말이지.”

그는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내가 안 했다고 하면 믿을 건가?”

“너 같으면 너를 믿겠냐?”

야바는 턱을 꼿꼿이 세우고 대꾸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믿을 건지 말해봐.”

“아무것도 하지 마. 넌 그냥 가만있는 게 인류 평화를 위한 일이야.”

차이석은 긴 다리를 뻗어 거리를 좁혔다. 야바는 벽에 붙어 경계를 기울였다.

“차 회장은 가짜 힐러 놀음 이후에 계속 파라디소를 벼르는 중이었어. 경계가 느슨할 때를 기다렸다가 공격한 거지. 상대방이 안심할 때 뒤통수 치는 게 늙은이 특기니까.”

“거봐. 딱 너 하는 수법이잖아.”

차이석은 목 안으로 웃었다.

“나라면 그 정도에서 안 끝났지.”

웃음기 증발한 그의 눈이 야바의 눈 속으로 깊숙이 침투했다. 그가 손을 뻗어왔다. 상처입은 동물을 달래듯 야바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았다.

“나 아니야. 차 회장이야.”

야바는 시선을 내리며 입술을 씹었다. 저 눈빛에, 매끈한 혓바닥에 속아 넘어갈 줄 알았다면 한참 잘못 판단한 거다. 그렇지만 조금 전 물에 빠진 걸 건져낸 걸 보면 사실인 것 같은데 차명환한테 못 가게 하려고 혈안 된 걸 보면 또 아닌 것 같다. 모르겠다. 그가 자신을 기만하는 건지, 뭔지. 언제부턴가 진실을 보는 눈이 무뎌진 것 같다. 자신의 노래를 원하는 차명환이 싫지 않다. 그런 차명환에게 기어코 가려는 건 우연히 라도 차이석을 볼까 싶어서였다. 우연히 라도 차이석에게 노래를 들려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아직 미심쩍은 부분이 많아도 그의 두통을 잠시나마 잊게 하고 싶은 건 변함없다. 코카인이 그마저 가로챈다면 자신은 내장이 꼬여 복통으로 죽었을 거다. 야바는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야? 진짜 니가 안 했어?”

그는 심장에 손을 대고 허리를 굽혔다.

“항우울제에 대고 맹세하지.”

장난스러운 행동이지만 표정만은 진지했다. 야바는 미간을 찌푸리는 걸 마지막으로 경계를 풀었다. 그가 한숨을 흘리며 재킷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필터 끄트머리를 문 채 고개를 기울여 불을 붙였다. 정제된 동작에 맨 상체가 움틀거렸다. 담배 연기 사이로 그의 눈동자가 와 닿았다.

“예전에 먹던 약은 완전히 끊었나?”

“그럭저럭.”

“대답이 시원찮은데.”

그는 덧붙였다.

“앞으로 뭘 봐도 놀랄 필요 없어. 새로운 걸 받아들일 땐 그만한 고통도 따르기 나름이니까.”

“왜? 내가 왜 놀라는데?”

“뭐든. 아프지 않던 곳이 아프거나, 보이지 않던 게 보이거나.”

그는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고 담배를 물었다. 매끈한 손가락에 걸린 담배연기는 새벽 바다의 물안개 같았다. 야바는 연기를 홀린 듯이 쳐다보았다.

“피고 싶나?”

그가 물었다. 야바는 대답했다.

“한 번도 안 펴봐서 피고 싶은지 아닌지 모르겠어.”

차이석은 신기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았다. 담배 한 모금을 마시더니 야바의 뒷머리를 당기고 고개를 기울여 다가왔다.

“천천히 마셨다가 뱉아.”

그는 입술을 포개며 연기를 입속에 흘려보냈다. 눈물이 고일 정도로 목이 따가웠다. 꾸역꾸역 폐부 깊이 빨아당겼다. 연기는 기체지만 끈끈한 액체 같았다. 내장을 횡단하고 온 연기를 밖으로 내보냈다. 연기는 그의 얼굴 위에 유영했다. 야바는 입술을 벌리며 더 달라는 눈빛을 했다. 인공비치에서 나오는 물 반사광이 그의 이목구비에 스몄다. 그는 볼이 들어갈 만큼 연기를 빨고 야바의 입속에 흘려보냈다. 이번엔 혀도 함께였다. 두 덩이의 혀와 매운 연기가 뒤엉켰다. 그는 연기를 뭉개며 야바의 입천장을 질감 나게 긁었다. 그 리듬에 맞춰 중심을 비볐다. 움츠러든 신음이 새어 나왔다.

“으…….”

야바는 몸을 비틀어 마찰을 피했다. 두 개의 입술이 젖은 숨을 번갈아 토했다. 땀내와 애욕 냄새가 뒤엉켰다. 그는 야바 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머리 위로 올렸다. 고개를 비틀며 다가와 야바의 아랫입술을 보드랍게 물었다. 그는 고상하지 않은 언어를 내 깔았다.

“내 목구멍까지 혀 집어넣고 입천장 핥아 봐. 너도 그거 좋아하지?”

얼굴에 열이 올랐다.

“아니야.”

“좋아하잖아. 거길 혀로 세게 긁어주면 성기 빨아줄 때보다 축축한 소리를 냈잖아.”

“아니야.”

“좋아하잖아.”

어서. 그는 뻔뻔하게 입술을 벌렸다. 약 공급자는 초조해 보였다. 야바는 입을 꽉 여미고만 있었다. 그는 한숨 쉬며 고집스런 입술을 가르고 들어왔다. 혓바닥이 건너 쪽으로 빨아갔다. 엇갈리고 뒤섞인 살덩이의 율동에 턱이 바들바들 떨렸다. 가랑이를 압박하는 하체는 숨이 멈출 만큼 발기했다. 담배는 이미 바닥에 떨어져 연기만 내뿜었다. 술보다 독한 혓바닥이 입천장을 세게 긁어댔다.

“으…하으……!”

그의 말을 부정할 수 없을 만치 선명한 교성이었다. 벅찬 호흡을 그가 모조리 받아 마셨다. 완강하게 맞댄 하체는 일정한 목적 아래서 움직였다. 규칙적인 리듬에 변조를 주기도 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차이석은 야바의 팬티를 끄집어 내리고 자신도 바지를 내렸다. 잔뜩 발기한 성기 끝이 구멍으로 달려들었다. 야바는 그를 뱉어내고 문으로 달려갔다. 그는 욕설 같은 신음을 뱉고, 뒤에서 야바의 다리 한쪽을 들어 올렸다. 허리가 갈라질 정도로 등줄기가 당겼다. 귓불에 더운 숨결이 퍼지고, 뒷구멍에는 더 뜨거운 것이 닿았다.

“하아…. 니가 차명환 집에서 노래할 때부터 쑤셔 넣고 싶었어.”

“다신 그렇게 노래하지 마.” 그는 사나운 언어를 씹었다. 구멍에 부대끼는 성기보다 귀에 흘러드는 음성이 더 음란한 도구였다. 부조리한 쾌감에 피가 얼굴로 역류했다. 셔츠에 들어온 그의 손이 젖꼭지를 만졌다. 숨이 차올랐다. 허리가 조르듯 경련했다. 그는 야바 목덜미를 급하게 핥으며 성기 끝을 구멍에 맞췄다. 뜨거운 것이 안으로 파고들려는 찰나였다. 어디선가 폰 진동음이 들렸다. 그는 무시했지만 자신을 그럴 수 없었다. 이상하게 신경 쓰였다. 그리고 얼마후였다.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렸다.

차이석은 혀를 차며 끈덕지게 우는 폰을 집었다. 폰 너머로 어렴풋한 남자 목소리가 넘어왔다. 그의 눈빛이 위험한 빛을 뿜었다. 차이석은 폰을 귀에 댄 채 선실 밖으로 나갔다. 야바는 속옷을 추스르고 따라나갔다. 모터보트 한대가 방향을 선회해 요트로 접근했다. 그 안에는 기하와 똘마니 두 명이 버티고 있었다. 야바는 얼어붙고 말았다. 자신의 머리에 박힌 칩이 위치를 알려줬을 거다. 기하는 상체를 드러낸 차이석과 셔츠 바람에 팬티가 전부인 자신을 번갈아 보았다. 멀리서도 놈의 살기가 살가죽을 후려쳤다. 차이석은 자신을 등 뒤로 당겨 기하의 시야를 차단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습니까?”

“우리 애들이 근방까지 따라붙었으니까요. 대충 여기일 것 같아 왔습니다.”

“당신 똘마니는 동네에서 따돌렸습니다. 그렇게 눈에 띄는 밴이 따라오는데 내가 못 봤다니 투명 망토라도 썼나 보군요.”

기하는 대답했다.

“물론 중간에 놓쳐서 전무님 폰으로 위치 추적을 했습니다. 전무님도 동의 없이 우리 애를 데려가셨으니 할 말 없으리라 봅니다.”

“이렇게 빠른 시간에, 이 망망대해의 정확한 위치를 말입니까?”

기하는 당황했지만 그건 잠시뿐이었다.

“요즘 기술이 좋아서 이 정도는 얼마든지 추적 가능하더군요.”

차이석은 느릿하게 시선을 틀었다. 야바에게만 들리도록 중얼거렸다.

“이상하지? 내 폰은 위치 추적이 불가능한데 말이야.”

마치 빠르게 두뇌 회전하듯 그의 눈이 번뜩였다. 그는 야바에게 시선을 둔 채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 치고. 이 녀석 오늘 지명할 테니 두고 가요.”

“지명 출장은 미리 예약하셔야 하고, 믿을만한 고객이 아니면 보내지 않는 게 철칙입니다.”

“그래서 믿을만한 차명환한테 보냈습니까?”

“저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만약 이번에도 차 회장을 거스르면 경고로 끝내지 않겠다고 했으니까요.”

“차 회장의 말 그대로 돌려주죠. 고양이는 두고 가요. 겨우 경계를 풀어놨는데 이대로는 아까워서 못 보냅니다.”

기하는 비린 미소를 지었다.

“가게 소식은 대충 들으셨겠죠. 차 전무님이 자주 드나들던 지하층도, 손님을 받던 녀석들 모두 불타버렸습니다. 보수 공사가 완료되면 꼭 한번 들리십시오. 주변에 백합과 향료도 뿌려놓겠습니다.”

“신경 써줘서 고맙지만 당분간 이 녀석으로 충분합니다.”

차이석은 태연자약했지만 눈빛은 칼날이 부딪칠 때의 찰나 같았다. 야바는 입술을 깨물었다. 기하는 잊을 만하면 자신을 이렇게 두드려패서 깨운다. 눈꺼풀을 억지로 뜯어서라도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기하의 뜻대로 사고가 차가워졌다. 기하는 약오른 눈으로 이를 갈았다.

“좋은 말할 때 내려보내라고 했습니다.”

“너무 뻣뻣하게 굴지 말아요. 오늘 내 기분에 따라 지분증여 날짜가 당겨질지 모르니까.”

기하의 입매가 굳었다. 볼을 꿈틀거리던 그가 야바를 응시했다.

“그럼 야바에게 직접 선택하라고 하죠. 파라디소는 가수의 의향도 존중하는 곳이니까요.”

야바는 놈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살기 가득한 기하의 시선이 맞부딪혔다. 놈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뭔가를 쥔 듯 주머니가 불룩해졌다. 지금 당장 오는 게 좋을 거야. 신중하게 판단하라고. 그 눈빛이 경고했다. 온 신경이 기하의 주머니로 향했다. 뒷머리가 바늘로 후벼 파이는 것 같았다. 기하가 제의한 순간부터 자신에게 선택할 권리는 없었다. 야바는 물고 있던 아랫입술을 뱉으며 걸음을 옮겼다. 차이석은 자신의 팔뚝을 잡아챘다.

“오늘 너를 지명했다는 말 못 들었나?”

야바는 입술을 벌렸다가 닫았다. 처연한 붉은빛이 볼에 부서졌다.

“놔. 갈 거야.”

“가지 말라고 했어.”

시선의 파편에 날아들어 눈을 둘러싼 막을 벗겼다. 붙들린 제 손을 잡아빼자 그가 집요하게 옭아 쥐었다. 야바는 주머니에 넣은 기하의 손을 힐끔거렸다. 이빨이 부서지도록 오한이 일었다. 바르작거리는 몸을 그가 팔로 조였다. 필사적으로 차이석의 품에서 벗어났다. 사다리로 내려와 모터보트에 올라탔다. 기하는 야바의 어깨를 감싼 채 차이석을 향해 승자의 미소를 던졌다. 보트는 곧 출발했다. 요트 난간에 있는 차이석이 멀어졌다. 그의 시선이 부딪쳐왔다. 태양을 빨아들인 동공에 통제되지 않은 감정이 뒤섞였다. 피비린내를 닮은 바닷바람이 몸에 엉겨붙었다.

부두에 도착했다. 기하는 자신을 차 뒷자리에 밀어 넣자마자 뺨을 올려붙였다. 턱이 빠질 만큼 고통스러웠다. 놈은 자신의 셔츠를 벌려 뭔가를 찾았다. 이번엔 다른 걸 확인하듯 손가락으로 뒷구멍을 들쑤셨다. 음모 없는 자신의 성기가 드러났다.

“놔! 아읏……!”

야바는 놈의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배에 발길질을 퍼부었다. 앞 자리에 앉은 깡패들이 뒤를 힐끔거렸다. 기하는 목에 핏대를 세웠다.

“눈깔 돌려!”

깡패들은 사색이 되어 자세를 고쳐앉았다. 야바는 발버둥치다 차이석이 준 항우울제를 떨어트렸다. 팔을 뻗어 케이스를 쥐려는데 기하가 멱살을 틀어 올렸다.

“똑똑히 알아둬. 지하층이 개판이라 저 새끼가 너한테 손 뻗는 것뿐이야. 네 말대로 넌 시체니까.”

“가게 보수 공사 끝나면 나도 지하층에서 일하면 되겠네.”

“너 이……!”

기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야바는 눈을 치켜떴다. 공중에 멈춰선 손이 머리통을 감쌌다. 기하는 야바의 입술을 깨물고 혀를 빨아댔다. 야바는 무슨 일인지 인지 못한 채 눈만 끔뻑였다. 하아. 그가 오물 같은 숨을 쏟아부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하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떼어냈다. 입에 묻은 타액을 닦으며 놈을 노려보았다. 이 행위가 얼마나 역겨운지 자신의 표정을 보고 부디 뼈저리게 알기를 빌었다. 기하는 눈가를 일그러트렸다. 이내 재킷을 벗어 야바의 다리를 가렸다.

“네 발로 온 게 기똥찬 선택이었는 줄 알아. 앞으로도 그렇게 하는 거야.”

기하의 목덜미에 감긴 전갈 문신이 시야에 박혔다. 집게와 꼬리를 자르면 전갈도 피 흘릴까?

야바는 희미하게 말했다.

“나 벌점 얼마야?”

“그건 왜?”

“살인은 벌점이 얼마야?”

기하의 시선이 날아와 박혔다. 야바는 셔츠를 추스르고 창문에 머릴 기댔다. 바닥에 떨어진 약 케이스를 발로 밟아 가렸다. 차는 곧 출발했다. 망망대해를 유영하는 요트는 장난감만큼이나 작아졌다. 어쩐지 차이석은 아까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을 것만 같았다.

그 길로 기하는 자신을 임시 거처에 내리고 가게로 갔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떨어진 직후였다. 집안은 고요했다. 방으로 가 바지를 대충 껴입었다. 바닷물에 찐득거리는 몸을 씻고 싶었다. 욕실로 가다가 흠칫 놀라고 말았다. 어두운 마당, 평상 위에 코카인이 앉아 있는 것이었다. 들어올 때 미처 못 봤다. 자신이 오는 걸 뻔히 봤으면서도 시치미 떼다니 코카인은 딱히 하는 짓 없이 신경을 긁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카락만 아니라면 시체로 의심할 만큼 그는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이상한 공기, 이상한 밤이었다.

그는 수돗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흙의 살점을 야금야금 파먹었다. 비록 작은 물방울이라도 한곳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면 결국 제 몸집보다 큼지막한 구멍을 만든다. 자신이 매일매일 코카인에게 독극물을 먹였듯이, 언젠가 커다란 보상을 안겨주리라 의심치 않았다.

“왜 이렇게 조용해?”

고자들 행방이 궁금해서라기보다 코카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려는 의도였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일 새 숙소로 이사 간대서 모두 필요한 생필품 사러 갔어. 세준 형도 함께 갔고.”

“너는 왜 안 갔는데?”

“불편해서.”

야바는 혀를 찼다. 한때 신처럼 군림하다가 인간으로 좌천된 꼴을 보자니 전에 없던 우정이 샘솟았다. 진작에 저랬다면 좋았을걸. 하지만 너무 늦었다. 살아 있는 걸 확인했으니 그만 갈 길로 가려던 참이었다.

“차이석 씨하고 어디 갔었어? 그 사람한테 노래 불러줬어?”

그것은 자신의 연인과 바람난 상대를 추궁하는 말투였다. 야바의 눈초리는 차가워졌다.

“왜? 나는 노래 불러주면 안 돼?”

코카인은 이윽고 자신을 향해 고개 돌렸다. 표정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괜한 수고는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결국엔 네가 울게 될 거니까.”

“무슨 헛소리야?”

“글쎄, 그게 헛소리일지 아닐지는 차차 알게 될… 거야…….”

뭐라 쏘아붙이려다가 그만두었다. 불빛에 드러난 그의 낯은 하얗게 질렸고 식은땀으로 범벅이었기 때문이다. 위태로운 모습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코카인은 어깨를 수축하며 기침했다. 그 순간 앞으로 무너지며 마당에 나뒹굴었다. 그는 팔을 짚어 일어서려 했고, 힘없이 고꾸라졌다. 헐떡이는 입술에선 점액질만 흘려보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웩……! 으윽……!”

코카인은 몸을 웅크린 채 입에서 뭔가를 쏟아냈다. 자신의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그건 분명히 피였다. 피……. 야바는 입을 막으며 터지는 탄성을 억눌렀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어올랐다. 핏물은 코카인의 입술에서 턱으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무너지고 다시 일어났다. 그 모습은 거미줄에 포획된 나비같이 청초했고, 경이로웠다. 결국 머리를 고꾸라트린 그가 자신을 보았다.

도와줘.

눈동자는 처절한 외침이었다. 야바는 재빨리 대문을 보았다. 닫힌 대문 틈 아래에서 깡패들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그들은 가래침을 뱉으며 시서덕거릴 뿐 안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사람들이 돌아오려면 얼마나 걸릴까? 조금만 늦게 왔으면, 코카인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부디 조금만……! 그와 몇 발 떨어진 곳에 내려앉았다. 무릎을 쓸어안고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가 죽어가는 절경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음미했다. 야바는 고요했고 차가웠다.

“왜 그래? 괴로워?”

하지만 자신이 당한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코카인은 백열등 불빛 아래서 몸을 떨었다. 핏물에 젖은 입술이 벌어졌다 닫혔다. 쌕쌕거리는 숨소리는 생의 막바지에 도달한 나비의 날갯짓처럼 처절했다. 야바는 눈을 크게 뜨고 죽음의 소리를 경청했다. 이제 곧 사람들이 몰려오겠지. 모두 신의 죽음에 오열하겠지. 파라디소의 보물을 잃은 기하가 얼마나 미쳐 날뛸지 상상만 해도 뱃속이 오싹했다. 사투를 벌이던 그가 이윽고 흰자위를 뒤집으며 눈을 감았다. 모든 움직임을 그쳤다. 모두…….

“…….”

야바는 신중하게 몸을 움직였다. 늘어진 주검의 어깨를 발로 툭툭 건드리고, 오똑한 코에 손가락을 댔다. 그는 숨 한 자락도 내보내지 않았다. 야바는 땀에 젖은 그의 머리카락을 정돈해주었다.

“불쌍해라. 너무 억울해하지 마. 나도 곧 따라갈 테니까.”

사랑하는 내 친구, 그만큼 죽이고 싶었던. 그의 얼굴과 옷을 적신 핏물은 성수보다 신성했다. 창백한 피부는 독 사과를 먹고 잠든 동화 속 주인공 같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영원토록 간직하게 한 건 마지막 배려이다. 생각보다 조금 이르지만, 이렇게 초라한 무대라는 게 안타깝지만 상관없다. 이곳에 와서 그가 발산하는 빛에 자신은 매일매일 타 죽어갔다. 잿더미만 남은 자리엔 죄책감을 추월한 증오가 돋아났다. 오랜 시간 동안,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던 혼자만의 가시밭길일질지언정 평생 염원하던 작품을 비로소 완성한 것이다. 바로 자신이, 그의 발뒤꿈치에도 못 따라갔던 자신이! 이름조차 없는 박테리아가 거대한 자연을 쓰러트린 것이다! 살리에르가 무덤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할 것이다! 솔직한 악의는 강요된 용서보다 순결하므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으므로. 신의 몰락 앞에 전신은 환희로 달구어졌다. 야바는 입을 가린 채 키득거렸다. 손등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부신 조명 대신 궁색한 백열등만이 그를 밝혔다.

“역시 내가 이렇게 되길 바랬구나.”

“……!!”

야바는 뒤로 넘어가 바닥에 나앉아 버렸다. 너무 놀라 비명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환청을 들은 거라 생각했다. 영원토록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코카인의 눈꺼풀이 틈을 벌렸다. 빨갛게 익은 흰자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살가죽이 경련했다. 그는 무덤에서 부활한 신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묻은 입가를 닦으며 미간을 설핏 찡그렸다.

“달아. 물엿에 하지 말걸 그랬어.”

갈라진 벽틈에서 스산한 바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안에서 자신을 고요하게 목도하는 코카인은 그 풍경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죽음 앞에 에너지를 쏟아부어 더는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코카인은 경악으로 질린 야바를 보았다.

“역시 그건 독극물이었지?”

어떻게…어떻게…….

자신은 병신같이 입술만 달싹거렸다. 그는 이 순간만을 기다린 것 마냥 눈을 휘번뜩거렸다.

“어떻게 살아났느냐고? 그야 죽을 이유가 없으니까. 네가 정수기에 독극물 넣는 걸 본 사람이 생각보다 많더라구. 내게 들켰던 날도, 그전에도 헤쉬쉬까지 그걸 목격했는데 왜 너를 가만뒀을 거라고 생각해?”

그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미소 지었다. 미소는 잔악할 만큼 화사했다.

“그 애들 눈에는 안 보였으니까.”

야바는 숨을 그쳤다. 시야가 뒤틀리며 그를 담은 풍경과 그의 음성이 흘러내렸다.

“네가 들고 있던 독극물은 나만 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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