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track 21
“말하지 않으면 약은 없어.”
뒷골목을 전전하는 약쟁이처럼 비열한 눈동자에 불꽃이 이글거렸다. 혀를 비비는 손가락은 원하는 말을 듣고야 말겠다는 듯이 확고하다. 열기가 전신으로 퍼져 눈앞이 흐릿했다. 말하지 않으면 약은 없다. 이 서글픈 밤을 견뎌낼 수도 없다. 그 말만 하면 돼? 그럼 약 줄 거야……? 야바는 눈을 감고서 시야를 차단했다.
“머…….”
할딱이는 자신의 숨결은 죽음에 육박한 물고기같이 조용하고 처절했다.
“……먹어 줘. 구멍…휘젓고…흘러넘칠 때까지 싸…으읏……!”
차이석은 자신의 팔을 잡아채 어딘가로 걸어갔다. 보폭은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재킷이 떨어지고 구두가 맨발에서 벗어나 제각각 뒹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복도에 들어섰다. 형수라는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가 도어락 버튼 눌렀다. 삑삑, 손이 여러 번 엇나갔다. 그는 욕설을 뱉으며 다시 시도했다. 이윽고 문이 열리자 그는 자신을 현관 안으로 끌고 가 입술을 빨기 시작했다. 코오롱 향이 확 퍼졌다. 혀와 목구멍을 핥는 숨소리, 충돌해 오는 시선은 몸서리쳐지는 뜨거움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거실 한가운데 누워 있었다. 차이석은 혀에 매달린 채 야바의 셔츠를 끌어 올렸다. 드러난 젖꼭지를 손바닥으로 쓸다가 셔츠 목을 잡아 찢어 끄집어 내렸다. 양쪽 어깨가 노출되고, 위아래로 둘둘 말린 셔츠는 양팔을 포박한 셈이었다. 보여주기 싫었다. 탄력 없는 고깃덩이 같은 이런 몸뚱이는……!
“읏…그만, 잠……!”
다급한 목소리는 그의 입속으로 먹혔다. 그는 야바의 혀를 들이마셨다가 혀로 피스톤질 했다. 과즙 같은 침이 나오자 이석은 목울대를 울리며 받아마셨다. 양쪽 유두를 비비적거리던 손이 아래로 주욱 미끄러졌다. 그가 입술을 조금 떼어냈다.
“내 목덜미 빨아. 타액 듬뿍 묻혀서 혀로 비벼.”
“싫…어.”
“어서.”
“싫…….”
“그럼 약도 없어.”
야바는 입을 꽉 다물고 노려보았다. 그는 자신의 턱을 잡아 눌러 입이 벌어지게 했다. 혀로 야바의 입술 근처를 배회하며 안으로 들어올락 말락, 혀끝을 건드리기도 했다. 미끌거리는 선율에 눈이 풀렸다. 얼었던 몸은 금세 달구어졌다. 야바는 주저하며 고개를 움직였다. 그의 목덜미를 입술에 머금고 탄탄한 피부와 맥동하는 핏줄을 혀로 문질렀다. 목덜미는 야바의 타액으로 점차 번들거렸다.
“하아…….”
그가 신음과 한숨을 번갈아 냈다. 동시에 엉덩이를 당겨가 중심에 맞대 비벼 올렸다. 성급한 놀림에 휩쓸려 현기증이 났다. 충혈되고 도드라진 돌기가 혓바닥 유희에 젖어들었다. 그의 혀는 가슴에서 옆구리까지 포물선 운동을 하며 배꼽 골을 따라 내려갔다. 물속을 유영하는 뱀의 곡선같이 어떠한 경로를 따라 애무했다. 그는 배꼽과 치골 사이를 코끝으로 문지르며 살냄새를 맡았다. 허벅지 안쪽 살을 핥고, 양손으로 야바의 가랑이를 한껏 벌려 고개를 떨어트렸다. 곧바로 성기를 물어 빨아대기 시작했다. 으응…! 허리가 높이 떠올랐다. 그러나 살갗이 타는 자극에도 성기는 숨죽이고 있었다. 이석은 축 늘어진 것의 밑동부터 넓고 축축하게 핥아 올렸다.
“고집 센데.”
“안 돼…! 안……으응…!”
다시 모양뿐인 생식기가 그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날카롭게 세운 혀는 귀두에 파인 곳을 헤집었다. 혀는 뱀의 교미처럼 성기를 휘감고 얽혀들었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자극하며 고립됐던 감각을 끄집어올렸다. 야바는 손이 저릿하도록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기하가 자신의 무단 외출 사실을 알고 언제 리모컨을 누를지 모른다. 당장 뒷머리가 날아가고 뇌수가 흘러나와도 두렵지 않았다. 그가 주는 감각 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차이석은 성기가 눅눅해질 정도로 매달렸다가 그 아래로 목표점을 바꾸었다. 아래로 내려온 입술이 초라한 음낭을 머금었다. 본능적으로 몸이 굳었다. 마냥 휩쓸리다 그제야 머리가 차가워졌다. 허벅지를 조이고 그를 밀어내도 밀착한 입술은 강도를 높여 갔다. 그의 어깨에 발길질을 퍼부은 뒤 기어서 도망쳤다. 허벅지에 걸린 바지 때문에 고꾸라졌다. 곧바로 발목이 붙들려 끌려갔다.
“놔! 아읍……!”
“가만있어.”
갈라진 음성은 섬뜩할 만큼 다급했다. 그는 야바의 머리를 바닥에 짓누르고 가랑이를 벌렸다. 높이 솟구친 엉덩이에 숨이 닿았다. 그는 음낭 전체를 머금은 채 쭉쭉 소리 내다가 혓바닥을 맞대 문질렀다. 늘 비었던 공간은 음란한 마찰음과 그의 숨결로 채워졌다. 말라 비틀어진 껍데기는 타액으로 윤기를 머금었다. 감당 못할 것들을 떨치려고 허리를 비틀었지만 움직임은 한층 집요해졌다. 음낭을 괴롭히던 살덩이가 회음부를 따라 올라가 구멍으로 파고들었다. 음낭이 빨린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충격이었다. 야바는 바닥을 그러쥐며 몸서리치는 감촉을 견뎠다. 그는 아이스크림 파먹듯 혀끝으로 구멍을 헤집었다. 수치심과 쾌감으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를 집어문 뒷구멍이 멋대로 움찔댔다. 그의 숨결이 엉덩이골 사이에서 꿈틀거렸다. 살덩이는 더, 더 안으로 침범했다. 적나라한 율동에 눈앞이 핑핑 돌았다.
“아윽…! 하앗…으…….”
야바는 몸을 뒤틀었다. 민감해진 피부감각이 달아오르고 성기는 더디지만 분명히 단단해지고 있었다. 차이석은 상체를 일으켜 야바를 뒤집고 눕게 했다. 혀로 손으로, 야바를 쉼 없이 더듬다가 그는 입고 있던 셔츠를 단박에 벗었다. 셔츠 단추가 사방으로 튕기자 자신과 비교도 안 되는 몸이 드러났다. 시원하게 뻗은 골격과 굴곡이 뚜렷한 근육은 한눈팔 수 없을 만치 화려했다. 불건전한 정신과 완벽한 육신, 그 균형이 어그러진 세계……. 그의 바지 지퍼가 풀리자 팽팽하게 부푼 페니스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남근 아래 꽉 채워진 고환도, 질투심을 아프도록 후벼 팠다. 자신에겐 없는 남성, 자신에겐 없는 미래였다. 그는 바닥에서 경련하는 야바의 두 다리를 어깨에 걸쳤다. 활짝 드러난 입구에 불기둥이 닿고, 불룩한 귀두 머리가 들어왔다 나갔다.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기억하는 몸이 본능적으로 경직했다. 그는 높은 위치에서 수직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야바는 머리를 젖히며 입술을 깨물었다.
“아윽…….”
그때는 그가 약에 절은 채 덤벼들어서 끔찍하게 아팠다. 지금 그는 다치지 않도록 신중하지만 그럼에도 두 번째로 받아들이는 그가 여전히 벅찼다. 뒤쪽에 신경이 몰리자 앞에 몰렸던 감각은 순식간에 증발했다. 그는 야바의 아랫배를 더듬으면서 자신을 삽입했다. 꽉 깨물고 있던 야바의 입술을 혀로 덧그리며 고통을 덜어갔다. 절반쯤 물렸던 수컷은 구멍에 들어가는 뱀처럼 안으로 빨려 갔다. 성기는 그의 눈빛만큼이나 포악해졌다. 허리를 밀어 진입하던 그가 멈췄다. 눈썹을 찡그리며 진한 숨을 토했다. 그는 야바의 손을 가져가 손가락 사이를 핥았다. 혀가 지난 자리는 번들거리는 타액에 젖어들었다. 조금 전까지 코카인의 물에 독을 탔던 손은 음탕한 도구로 바뀌었다. 코카인에게 매일 독약을 먹였다고 하면 그는 뭐라고 할까? 자신의 턱에 퍼지는 목소리는 혼탁했다.
“아프면 말해. 난 이제 곧 눈에 뵈는 게 없어질 것 같으니까.”
온몸의 통점이 그곳을 물어뜯는 것만 같아 숨쉬기도 버거웠다. 가끔 보이던 잔혹한 눈빛은 죽음을 탐하는 자의 것이다. 죽음이 아니면 메마른 삶을 자극할 수 없는 거다. 그가 이런 몸에 흔쾌히 발정하는 건, 정성 들여 쾌감을 선사해 주는 건 자신이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시체이기 때문이다. 시체는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 헐떡이는 목소리는 물기에 서렸다.
“아니. 안 아파…….”
차이석의 눈이 짙어졌다. 그는 야바 어깨 옆에 손을 짚었다. 뜨거운 시선이 내리꽂혔다. 그 시선은 부서지도록 아팠다. 페니스는 완전히 밖으로 나갔다가 깊이 들어왔다. 뿌리 끝까지 결합한 채 얕게 들락거렸다. 부딪치는 곳이 불에 덴 것같이 화끈거렸다. 입구가 수축하며 팽팽히 부푼 남근을 꽉 잡아 움찔거렸다. 그가 리듬을 타다가 허리를 돌리며 좌우 벽을 번갈아 훑었다. 쾌락의 파고가 높아졌다. 그가 치고 들어올 때마다 어디선가 땀방울이 튀었다.
“하아…핫……앗…….”
“신음소리 흘리지 마. 귀에 퍼부어줘.”
차이석은 야바 입가에 귀를 틈 없이 갖다 댔다. 그가 귀두만 묻은 채 자잘하게 진동하자 뭉근했던 열락이 날카로워졌다. 야바는 기둥을 빨며 극렬한 감각을 붙잡았다.
“하아…아래가 녹아내릴 것 같아. 입술로 빨아주는 것 같아…….”
“으응……하앗…!”
저속한 언어는 고문에 가까웠다. 그는 뜨거운 눈으로 구멍으로 들고 나는 것을 주시했다. 완전히 삼켜졌다 빠져나올수록 욕망은 번들거리며 더 단단해졌다.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차이석은 야바 입속에 손가락을 밀어 넣고 타액을 묻혀갔다. 미끈거리는 손으로 야바의 성기를 감아 쓸었다. 아래가 흘러내릴 만치 전신이 격랑 쳤다. 그때 방 한쪽에 흐트러진 이불이 꿈틀거렸다. 노란색 생물이 머리를 내밀었다. 번들거리는 빨간 눈알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두 갈래로 갈린 혀를 날름거려 이 상황을 탐색했다. 그가 주는 쾌감에 파충류는 두 개로 세 개로 흔들렸다. 몇 분인지 몇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진액이 넘쳐나고, 몸이 쾌락으로 요동쳤다. 머리가 아득했다. 극치의 정점으로 내몰리는 육신이 크게 휘어졌다.
“하앗……! 아으……!”
이석은 야묘의 입술을 씹으며 몰아닥치는 지독한 사정감을 삭였다. 한껏 풀린 투명한 농색의 동공, 홍조로 물든 살결은 야바가 흥분했다는 증거였다. 분홍빛 입구와 체모 없는 나신은 소년같이 덜 여물었지만 마른 몸은 부드러우면서 탄력적이다. 자신이 주는 자극에 허리를 젖히고, 감도 높게 휘감는 속살은 고급매춘부처럼 난잡했다. 내부가 피스톤 질 하기 빠듯하게 성기 중앙을 조였다. 따뜻하고 촉촉한 속살의 질감은 타고난 것이다. 약을 하고 섹스해도 이보다 더한 극락은 보여주지 못한다. 이석은 참았던 시간만큼 폭주했다. 야바는 견딜 수 없는 듯 손을 휘적거렸다. 그 손이 이석의 등을 감쌌다. 보드라운 감촉과 서툰 몸짓은 흩어진 조각을 그러모았다. 요트에서는 분명 이 녀석이다. 아니어도 상관없다.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이 뭉개졌다. 타액에 범벅된 입술 안에서 빨간 혀가 몸을 뒤틀었다. 페니스를 집어문 내벽이 자신을 빨아당겼다. 그는 사나운 음성을 짓씹으며 페니스를 깊숙이 꽂아넣었다. 근육에 고인 땀방울이 야바 가슴에 튀었다.
“헉… 하아……씨발.”
“하읏…! 앗! 아읏……! 으응…핫……!”
그는 허리를 뒤로 잡아뺐다가 들어왔다. 입구 후벽을 여러 각도로 찌르며 내벽 점막을 자극하고 빠져나갔다. 절정의 문턱에 다다르자 그는 격렬한 움직임을 멈추고 얕게 삽입질 했다. 야바의 겨드랑이 아래를 이빨로 긁었다. 간지러움과 날카로움이 교차해 등줄기가 당겼다. 배에 뭉쳤던 뜨거운 것이 가라앉을 무렵 그는 다시 안으로 깊숙이 드나들었다. 사라질 것 같았던 정욕은 그곳에서 한 발자국 디디고 올라섰다. 다시 올라서고, 다시 올라서며 축적됐다. 끄트머리에 맺힌 우윳빛 분비물, 미증유의 극쾌감에 야바의 성기는 선명하게 곤두서 있었다. 또 눈앞이 아뜩해지려 하자 그가 느리게 피스톤질 했다. 말고삐를 죄었다가 풀 듯이 내벽 구석구석을 찌르며 미칠 것 같은 감각을 낚아채 갔다. 횟수가 반복될수록 육체는 혹독하게 내몰렸다. 형벌처럼 가혹한 쾌감이었다. 폭발하는 것을 쫓으려고 야바의 허리가 들렸다. 그의 것이 깊숙한 속살에 닿은 그때부터였다. 야바는 정신없이 교성을 내질렀다. 그는 넘쳐나는 소리를 입술로 감싸 모두 받아먹었다. 신이 허락지 않은 행위로 쾌락을 도둑맞은 육신을 그가 모조리 채우고 있었다. 그는 이제 멈추지 않고 아래를 몰아쳤다. 저속한 말만 쏟아내던 입술은 짙은 호흡만 토했다. 그가 경직된 복근을 밀어붙이는 순간 엉덩이가 높이 들렸다. 눈앞이 무너졌다. 끔찍한 자극이 관통해 온몸을 후려쳤다.
“하읏……!”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부패하고 썩어 있던 무언가 속박을 풀어헤치고 전신으로 번졌다. 어룽대는 시야로 그의 복근에 뿌연 액체를 쏟아내는 자신의 성기가 보였다. 내벽의 근육이 그를 잡아당기자 그는 리듬을 잃었다. 엉덩이를 난타하는 속도가 다급해졌다. 짐승처럼 야만스럽게 안을 휘저으며 허리를 뒤로 젖혔다. 그 순간 뜨거운 것이 안으로 난폭하게 뿜어졌다. 그를 담은 사타구니가 파들파들 떨렸다. 질퍽하게 사정한 그는 야바를 끌어안아 가슴을 밀착했다. 파열하는 심장 소리가 서로의 몸을 두드리고, 그의 눈동자가 먼저 도착했다. 거친 숨결이 야바의 젖은 이마에 쏟아졌다. 전신이 나른해지고 귀가 울렸다. 손가락은 널브러져 꼼짝할 수 없었다. 그는 오늘따라 자신의 머리카락에서 시선과 손을 떼지 않았다. 손마디에 감았다가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매만지기도 했다.
“원래 이름, 뭐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느껴지는 건 맞닿은 체온과 그의 눈빛이었다. 소리를 너무 질러 목이 칼칼했다. 야바는 입술을 달싹였다.
“…세진이……장…세진…….”
마지막으로 제 이름을 소리 내 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언젠가 진짜 이름을 증오하지 않는 날이 올까…….
“장세진.”
차이석이 자신의 이름을 입술에 품었다. 이상했다. 그의 입술을 통한 이름은 그렇게 혐오스럽지 않았다. 그는 읽을 수 없는 눈으로 응시하며 야바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거둬갔다. 그는 자신의 아랫입술을 맛보고 혀뿌리를 긁으며 이름의 여운을 음미했다. 축축한 음성이 이마에 내렸다.
“자장가…또 불러 봐.”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싫…어.”
“말 안 들으면 약도 없어.”
나른한 음성은 단호했다. 잠깐 잊고 있던 약에 대한 갈급증에 목이 탔다. 약이 든 바지는 멀리 떨어져 있다. 야바는 바지를 곁눈질하고 입술 거스러미를 이로 뜯었다.
“그럼…이건 빼고 해…….”
“안 돼.”
그는 몸부림치는 야바를 상체로 눌렀다. 손에 깎지를 끼우고 머리 위로 끌어올렸다. 팔 근육이 역동적으로 꿈틀거리며 다그쳤다. “어서.” 그는 습윤한 목소리에 비해 초조한 눈빛이었다. 아마 자신의 표정을 본다면 지금 그와 비슷할 것 같다. 손만 뻗으면 쥘 수 있는 거리에서 약을 두고 애간장이 탄 그런……. 야바는 깨물었던 아랫입술을 뱉어내고, 슈베르트의 자장가를 불렀다. 그러나 신경은 온통 구멍에 들어찬 것에 몰렸다.
“자장… 자장… 노래를 들으며……으…움…직이지…마……하으…….”
“노래 멈추지 마. 절대…….”
이석은 순식간에 단단해진 성기를 뒤로 뺐다가 찔러넣었다. 중심을 녹진하게 움직이며 야바의 입가에 귀를 밀착했다. 그는 야바 뺨이 척척해지도록 깨물고는 고개를 떨어트려 유두를 빨았다. 미끈거리는 감촉에 간신히 숨만 헐떡였다.
“으응…귀여운 너 잠잘 적에 하느작… 하느작…나비 춤춘…읏…흐으……하앗…! 안 돼. 움직이지…….”
“하아…….”
신음인지 노래인지 모를 소리가 이석의 입속에서 뒤섞였다. 그는 노래를 계속하라는 듯 성기를 잡아뺐다가 쳐올렸다. 맞물린 곳을 야트막하게 피스톤질 했다. 안에 잔재 했던 쾌감의 부스러기가 격렬하게 충돌했다. 야바의 성기가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가 잘라낼 듯 야바의 혀 아랫부분을 혀로 긁어대자 자장가는 서로의 신음 소리에 뭉개졌다. 엉덩이를 쳐대는 찰진 타격음과 들락대는 움직임, 입구에 엉겨붙는 정액의 질퍽거림, 정신없이 흔들리다 절정이 기습처럼 찾아왔다. 한 곳에 몰렸던 피가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끝도 없는 극치감에 결국 정신은 무너졌다. 그의 어깨에 걸린 도시야경이 녹아내렸다.
이석은 기절한 야바의 입술을 지분거리며 입속에 남아 있는 자장가를 샅샅이 핥아 먹었다. 공명하는 음색은 교성같이 농밀했다. 꿈속을 부유하는 멜로디는 죽음 같은 최음제였다. 능숙한 기교는 없지만 다듬어지지 않았기에 잔여물이 떠다니는 심해였다. 그때 시원하면서 부드러운 느낌이 이석의 허벅지를 스쳤다. 순이였다. 비늘로 둘러싸인 몸통이 소리 없이 미끄러져 야바의 허벅지를 감았다. 등줄기에 있는 불규칙한 무늬가 일렁거렸다. 그간 훌쩍 자라 2M를 넘어섰고 야바의 팔뚝 두 배의 굵기다. 알비노 버미즈 파이톤은 정액에 범벅된 야바의 하체에 혀를 날름대며 냄새를 감지했다. 꼬리를 좌우로 흔들다가 턱에서 나온 쾌락액을 하얀 허벅지에 묻혔다. 서늘한 감촉 때문인지 야바 입술에서 희미한 신음이 흘렀다. 그 순간 순이의 배 아래에서 성기가 불쑥 나왔다. 꼬리를 직각으로 굽히고는 제 성기를 야바 사타구니에 마찰했다. 그건 분명 짝짓기 상대에게 하는 구애의 몸짓이었다. 순이는 요염한 외형이나, 본성이 길들지 않은 수컷이다. 이석은 녀석을 뜯어내 멀리 밀어냈다.
“이봐, 이봐. 이 녀석은 네 상대가 아니야.”
똬리 틀 듯 야바를 휘감은 채 놈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박았다. 땀에 젖은 그의 팔뚝은 미끈거리는 뱀 비늘 같다. 순이는 슉슉, 공격적인 소리를 냈다. 시뻘건 눈알과 이빨을 번뜩이며 자신의 소유임을 드러냈다. 서슬 퍼런 이석의 눈빛은 냉혈동물과 흡사했다.
“손대지 않는 게 좋아. 가죽 벗겨지기 싫다면 말이야.”
살기를 감지한 녀석이 뾰족한 이빨로 이석의 손을 물었다. 동시에 적으로 인지한 이석의 팔을 몸통으로 감아올렸다. 근육과 뼈를 으스러트리고도 남을 엄청난 힘이다. 그는 손으로 민첩하게 파충류 목을 압박했다. 손등에 박힌 이빨이 뽑혀나가자 팔에서 뜯어내고 멀리 내던졌다. 머리를 바짝 세운 채 반격할 틈을 노리는 놈과 기 싸움을 벌였다. 이윽고 녀석이 머리를 내리며 방으로 기어갔다. 성기도 갈라진 틈 속으로 사라졌다. 이석은 다시 야바에게 자신을 깊이 파묻고 중심을 움직였다. 내부에 가득 찬 정액이 새어나왔다. 그의 음모에 엉겨붙어 야바의 빈 음낭을 적셨다. “으…….”반쯤 기절한 야바가 앓는 소리를 흘렸다. 적당하게 컬이 진 머리카락은 이마에 달라붙어 지독하게 색정적이다. 낭창한 구멍은 끊을 정도로 죄는 게 아니라 입술로 감싸 안는 점막 같다. 매춘부 같은 모습으로 일일이 몸을 떨며 순진한 반응으로 갈피를 못 잡게 해 농락했다. 문득 약을 하지 않고 거세당하지 않았던 때의 녀석이 궁금했다. 부드럽게 오가던 자맥질이 성급한 율동으로 변해갔다. 절정이 아랫배를 조여왔다. 그는 야묘의 은은한 체향을 뒷골까지 닿도록 마시며 내벽으로 정액을 토했다.
“하아…나비야…….”
광기 어린 도취가 맹수같이 날뛰었다.
눈 떴을 때 야바는 손을 뻗어 바닥부터 더듬었다. 뒤통수도 날아가지 않았고 뇌수도 흐르지 않았다. 벽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켰다. 알고 있는지 어떤지 몰라도 기하가 리모컨을 누르지 않았다는 거다. 지금이라도 일어나야 하는데 아래가 녹아 없어진 듯했다. 입속은 헤집어진 양 얼얼했고, 목과 볼은 물기에 젖었다 마른 것처럼 당겼다. 시선을 움직여 자신을 팔 안 가득 안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얼굴을 바짝 붙인 채 깊이 잠들어 있었다. 땀에 젖었다가 마른 머리카락에 새벽 기운이 내려앉았다.
야바는 사람들이 깨어나기 전의 고요함을 좋아했다. 그 어떤 삶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새벽. 엄마는 그 소리를 사람들이 깨어나기 전의 정적이라고 했다. 먼지 낱알 떨어지는 소리, 동이 숨을 터트리는 소리, 새순이 땅을 밀어 올리는 소리, 그 모든 세상의 소리에 홀로 귀 기울이고 있으면 비로소 그 소리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처절한 혼자만의 정적, 그것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사랑은 그 뼛속 시린 적막 가운데 발견하는 또 하나의 소리라고. 엄마는 남의 서방을 넘보다가 동사자한테 잡혀가고 말았다. 언젠가 자신이 더 이상 차이석의 뒷모습을 쫓지 않는 날이 오면 동사자의 하수인도 사라질까…….
야바는 허리를 옥죈 팔을 풀어내고 그의 품에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이불 서걱대는 울림이 듣기 좋았다. 하반신은 물론 뼈 마디마디가 녹아내리는 듯했다. 넓은 거실 한쪽에 이석의 바지가 보였다. 약 케이스를 꺼내 다섯 알을 허겁지겁 털어먹었다. 케이스는 휑해졌어도 불안함은 한결 사라졌다. 저 멀리 뒹구는 자신의 바지를 꿰입었다. 상의는 도무지 입을 수 없을 만치 목이 늘어나고 찢어졌다. 거실을 두리번거리다가 어떤 방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벽면 전체가 거울로 된 드레스룸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야바는 흠칫하고 말았다. 몇 겹이나 겹친 뱃살이며 팔뚝이 붉은 반점으로 도배된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런 몸을 그에게 훤히 드러냈다는 걸 상상하니 새삼 볼이 화끈거렸고, 그가 이런 몸에 발정했다는 것도 불가사의했다. 벌레들이 꾸물꾸물 기어나와 귓바퀴에서 새벽 운동을 했다. 그러고 보니 수시로 나타났던 벌레들이 그와 몸을 섞을 때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신음소리와 몸을 기어 다니는 혓바닥뿐이었다.
거울 문에 파인 홈을 밀자 넓은 드레스룸이 보였다. 양쪽에 걸린 슈트와 정리된 옷들을 둘러보다가 물빛 와이셔츠를 골라 팔을 끼워 넣었다. 품이 넉넉해 보이는데도 이 몸을 담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야바는 끙끙대며 간신히 단추까지 잠갔다. 드레스룸 문을 닫는 순간 또 흠칫 놀랐다. 방 한켠에서 요망한 것이 잠자고 있는 것이다. 눈꺼풀이 없어 자는지 깼는지는 몰라도 일단 미동은 없었다. 어젯밤 거실에서 본 것 같은데 차이석이 옮겨놓은 모양이다. 야바는 입술을 깨물며 요망한 것을 노려보았다.
이석의 지갑에서 택시비를 꺼냈다. 약도 가져왔다. 요망한 것은 잘 처리했다. 숙소에 도착해 창문으로 들어갔다. 보초 서는 깡패 두 명은 정문 쪽에서 졸고 있었다. 나머지는 밴에서 잠깐 눈 붙이는 건지 보이지 않았다. 위치 추적 장치는 사장실 깊숙한 곳에 있어서 일부러 체크 하지 않으면 모른다. 가장 무서운 건 룸메이트의 밀고이다. 창문으로 들어와 욕실에 발을 딛는 순간까지 머리통이 날아가 뇌수를 뿌리는 상상만 했다. 다행히 우려하던 일은 생기지 않았다. 샤워기는 꺼져 있었다. 변기 물탱크 뚜껑을 여니 독극물 봉투는 그대로였다. 야바는 욕실 문을 쳐다보았다. 저 문 너머에서 기하가 서슬 퍼런 눈으로 기다릴지도 모른다. 독극물을 알아차린 코카인이 곧바로 비명을 지를지도 모른다. 야바는 문을 열기 전에 심호흡부터 했다. 이제야 약기운이 도는지 머리가 뭉글뭉글해졌다. 어금니를 깨물며 문고리를 잡아 비틀었다.
“…….”
오면서 이 방에서 일어날 일을 모조리 상상했다. 그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했다. 그런데 이건 전혀 예상 못 한 상황이었다. 기하는 없었고 코카인은 침대에서 잠들어 있었다. 코카인은 인기척에 눈을 떴다. 눈을 부비며 일어나더니 시선을 맞춰왔다. 그러다 굳은 눈길로 자신의 목덜미 언저리를 밟아갔다. 한순간 그의 눈동자에서 싸늘했던 무언가 나타났다가 자취를 감추었다. 심장이 날뛰었다.
“대체 어딜 갔다 온 거야? 어제 깡패들한테 너 씻는다고 둘러대느라 진땀 뺐어. 너 한번 들어가면 안 나오는 거 아니까 별다른 의심 없이 갔고. 나한테 빚졌다.”
“…….”
그는 기지개 켜고 일어나 정수기로 걸어갔다. 잔에 물을 받아 한번에 마셨다. 맥박이 빠르게 솟구쳤다. 들켰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모를 수도 있다. 증거물은 모두 감췄고 그 봉투가 뭔지는 꿈에도 모를 거다. 시선을 느낀 그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코카인은 잔을 내리고 물 묻은 입술을 닦았다. 입술을 훔치는 손끝에는 햇살 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하.”
이석은 한쪽 다리에 체중을 실으며 삐딱하게 섰다. 잠이 덜 깬 눈으로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고양이는 이번에도 자신이 잠든 사이 도망쳤다. 통금 시간을 늘리든가, 머리에 칩이 들었다는 망상을 없애든가 방법이 필요하다. 순이에게 물린 손에 얼음찜질이나 해서 냉동실 문을 열었는데 그 안에서 앙증맞게 잘 말아 둔 순이를 발견한 것이다. 추위와 사투 벌이는 녀석을 이불로 덮어 마사지했다. 대체 어떻게 이 사나운 녀석을 잡아 냉동실에 차곡차곡 넣었는지 미스터리다. 알비노 버미즈 파이톤 성체는 4m에 달한다. 아무리 성체가 아니라고 해도 순순히 당할 녀석은 아니다. 가사 도우미와 장비서도 놈에게 혼쭐난 적 있다. 고양이 목을 비트는 것쯤 일도 아니다. 순이는 야생이 그대로 살아 있는 타고난 사냥꾼이다. 이건 누가 봐도 순이가 녀석을 봐 준 것이다. 담배 문 그의 입술이 묘한 곡선을 그렸다.
“이봐. 너도 녀석 노래에 홀린 거냐?”
서서히 체온을 찾은 순이는 혀를 날름거렸다. 뱀은 귀가 퇴화해 듣지 못하나 피부를 통해 미세한 울림을 감지한다. 온몸으로 들은 거다. 그 음울한 노랫소리와 질퍽한 신음을. 어디선가 진동이 울렸다. 한쪽에 뒹구는 폰을 어깨와 귀에 끼우고 마사지를 계속했다.
[크아아악――――!! 다 꺼져! 나가―――!!]
[도련님! 도련님! 어떡해요……! 그이가 어젯밤부터 너무 괴로워해요!]
요란하게 부수는 소리, 남자의 절규소리 아래로 흐느낌이 넘어왔다. 여자는 쫓겨났는지 차명환의 울부짖음은 거리감이 느껴졌다. 발작을 시작하면 차명환은 진통제 외엔 모조리 거부하며 건장한 사내가 덤벼도 감당 못한다. 잠깐 통증이 줄었나 했는데 아무리 코카인이라고 해도 암세포의 번식을 따라잡지 못하는 건가.
[그이가 코카인 씨 노래를 들으면서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어요. 제가 듣기엔 너무 좋았는데 그이는 탐탁잖게 생각했거든요. 제가 코카인 씨를 너무 믿은 걸까요…? 차라리 다 그만두는 게 맞을까요? 흐윽…도련님. 어떡해요…. 양 박사님이 마음의 준비하고 있으래요…….]
이석은 눈을 꿈틀거렸다. 여자는 곁에 있으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을 만큼 예쁜 소리를 했다.
“그 말은 지난달에도 했잖습니까. 진통은 늘 있었던 거니 괜찮아 질 겁니다.”
[진통제를 아무리 맞아도 소용없어요. 당장 어떻게 될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워요…….]
“그런데 제가 뭐라 말하기 곤란합니다만, 노래는 둘째치고, 아무래도 김 회장이 타이밍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간경화가 호전되는 시점에 때마침 코카인 노래를 들었고 그가 고쳤다고 맹신하는지도 모르죠. 사람 심리가 그렇잖습니까.”
[정말 그럴까요……?]
여자는 한숨을 흘렸다. 그나마 힐러의 존재를 믿던 그녀마저 불신이 싹 텄지만 기적을 바라는 마음은 여전할 것이다.
“코카인은 처음부터 이 일에 손대기를 꺼렸고 기회를 봐서 그만두려 할 겁니다. 그동안 김 회장이 밀어붙여서 억지로 힐링 받았다고 해도, 형님이 거절당하는 것보다 거절하는 게 낫겠죠.”
차명환은 거절당하는 걸 견디지 못한다. 평생 차 회장이 쳐준 방어막에서 곱게 자란 한 떨기 꽃이다. 아직 확답은 없지만 만약 코카인이 마음먹고 덤비면 결과가 어떻게 달라질는지 예상할 수 없다. 지금은 포기하는 쪽에 희망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코카인 스스로 물러나는 것보다 차명환이 자르는 게 여러모로 보기 좋다.
“결정은 어디까지나 형님 몫입니다. 다른 건 생각할 필요없이 형님 생각만 하길 바랍니다.”
[네. 도련님…. 나중에 저이 괜찮아지면 전할게요. 아, 저 찾나 봐요. 그만 가볼게요. 참, 저이 괜찮아지면 내일 정밀 검사받으러 서울 가요.]
통화 말미에 그녀가 말했다. 이석은 통화를 매듭짓고 폰 모서리로 턱을 가볍게 두드렸다.
“곰과 우정을 나눠라. 그러나 언제든지 손도끼를 준비해 두라.”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분명 쓸데가 있을 거다. 야바가 거기에 몸담은 동안은 신중할 필요도 있다. 신호가 가는 동안에도 그는 꽁꽁 얼어붙은 파충류 몸을 이불로 말아 마사지했다. 불현듯 붕대 감긴 손이 시야에 걸렸다. 그제야 손에 통증이 없다는 걸 인식했다. 어제만 해도 지독했던 통증이 지금은 거짓말처럼 잠잠한 것이다. 그는 손을 쥐었다 펴며 반대쪽 손을 살폈다. 순이에게 물린 곳은 바늘구멍만한 이빨 모양이 둥그렇게 났고 그 중심으로 피멍이 넓게 번졌다. 그 상처는 욱씬거렸다. 기나긴 신호음 끝에 딱딱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이 시간에 어쩐 일로…….]
파라디소 사장은 생각도 못했는지 당황하면서도 반가운 음성이다. 이석은 목안으로 웃었다.
“내 목소리 그리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