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track 09
“명환이가 의식불명이다.”
마치 부고를 알리는 음성이었다. 늦은 아침잠을 깨운 건 차 회장이었다.
“양 박사 말에는 어제 힐러가 다녀간 이후부터라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이석은 이불을 끄집어 내리며 모로 돌아누웠다. 뜻밖의 희소식에 머리가 맑아졌다.
“별거 없었습니다. 노래 두 곡 부르고 끝이었어요. 이틀간 힐러와 신경전 하느라 피곤했나 보죠.”
“그렇게 간단히 넘길 일이 아니야. 양 박사도 뚜렷한 이상소견이 없어서 지켜보자지만, 어젯밤부터 이 시간까지 눈 한번 뜨지 않은 게 이상소견이 아니고 뭐냐?”
“설마, 노래 몇 곡에 생사가 오가는 걸 믿는 건 아니시죠?”
“그건 두고 봐야 알 일이지. 똑똑히 듣거라. 행여 명환이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사기꾼은 가만두지 않을 거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다.”
차 회장은 짓눌린 숨을 쉬고 말했다.
“넌 오늘 임 회장한테 연락해서 점심이라도 함께하거라. 명환이 소식이 증권가에 나돌고 있다. 공식 입장을 발표하기 전에 경영진부터 다독이고, 제발 한 번만이라도 직함에 걸맞는 일을 해보거라. 회사에서 노닥거리라고 그 자리에 앉힌 게 아니니까!”
뚜뚜. 통화 종료음이 들렸다. 차명환이 의식불명이니 당장 차 회장 발에 불똥이 떨어졌다. 흠…이석은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불 속에서 알비노 버미즈 파이톤이 이석의 맨 상체 위로 미끄러졌다. 살갗에 닿는 뱀의 피부는 서늘하고 요염했다. 노란색과 주황색 무늬로 된 미끈한 몸체를 쓰다듬었다.
“맘마 줄까?”
그는 벌떡 일어나 주방 뒤에 있는 다용도실로 유유히 걸어갔다. 제일 안쪽에 직사각형의 유리관이 보였다. 그 안엔 예닐곱 마리의 토끼가 톱밥을 베고 단잠이 빠져 있다. 이석은 담배를 삐딱하게 문 채 유리 뚜껑을 열었다. 그중 제일 통통하게 살 오른 토끼를 골라 거실로 나왔다. 휘파람을 불었다. 이불 속에서 게으름 피우던 순이가 미끄러져 왔다.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먹이를 감지한 본능이었다. 이석은 손아귀에서 버둥거리는 토끼의 코를 건드리며 말했다.
“아픈 건 금방 끝날 거야. 저 녀석은 타고난 사냥꾼이거든.”
동시에 토끼를 던졌다. 사냥감은 필사적으로 도망쳤으나 더 빠른 포식자가 화려하게 휘감았다. 발악하는 사냥감을 한치도 틈 없이 똬리 틀자 뼈가 부서지고 눈알이 터졌다. 초식동물은 희미한 비명을 끝으로 목을 늘어트렸다. 순이는 입 근육을 벌려 제 머리보다 몇 배는 큰 먹이를 삼키기 시작했다. 이석은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번들거리는 몸체로 사냥감을 휘감아 뼈를 부수고, 산채로 독식하는 모습은 몹시 매혹적이다. 파충류는 인간과 교감하기 가장 까다로운 동물이다. 개처럼 시시콜콜하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이토록 사랑스러운 룸메이트는 없다. 오랜 시간 먹이를 삼키는 모습을 보며 이석은 욕실로 발길을 돌렸다.
샤워하고 나오니 순이의 목이 불룩해졌다. 익히지 않은 빵 조각을 물었다. 식탁에 걸친 검정 재킷을 팔에 끼우고, 바닥에 흐트러진 서류를 발을 이용해 한쪽으로 치웠다. 검은색 서류 가방에는 잡지 한 권을 넣었다. 땡―엘리베이터 벨 소리가 울리고 문이 양쪽으로 미끄러졌다. 각국의 명차 전시회를 방불케 하는 주차장이 보였다. 도시를 달려온 폰티악이 태령그룹 사옥 정문 앞에 잿빛 미끈한 몸채를 세웠다. 정문에서 경비가 달려와 이석에게서 열쇠를 넘겨받았다. 무리지어 오가는 남녀 직원들이 이석에게 인사를 건넸다. 임직원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올라왔다. 문이 열리자 시원하게 발을 뻗어 사무실로 들어섰다. 도착했을 때 오전 11시였다. 생머리를 단정히 묶은 여비서가 일어나 인사했다. 왜 이제야 왔느냐는 원망 어린 시선도 함께. 아마 조금 전까지 회장에게 시달린 모양이다.
“오셨습니까? 전무님.”
“안녕.”
이석은 인사를 던지고 로비에 들어섰다. 여비서가 말했다.
“아까부터 차 회장님께서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 부장님이…….”
성재가 막 사무실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그는 코끝을 찡그리며 말했다.
“자알 한다. 시간이 몇 신데 이제야 출근이냐? 일단 들어와.”
성재는 사무실 주인인 양 성큼성큼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요새 얼굴 보기 어렵다? 어디 좋은 데 뚫은 거면 같이 즐기지?”
이석은 책상으로 가 잔뜩 밀린 서류를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너 질렸어. 나도 이젠 신선한 얼굴이 필요하다고.”
“날 버리면 너만 손해일 텐데? 내 입이 네놈 거기보다 가볍다는 거 몰라?”
“기회가 되면 어떤 게 더 가벼운지 맞춰보지.”
“어이. 어이.” 성재는 양미간을 구겼다. 이석은 서류에 빼곡한 활자를 건성으로 보며 말했다.
“차명환 지금 의식불명이라더군.”
“안 봐도 상상이 가는군. 야바위가 싸가지 부리면 뒷골 당기고도 남지. 아니면 노래가 거품 물고 쓰러질 만큼 개판이었나?”
“고양이는 상관없어. 올 것이 온 것뿐이야.”
“고양이?” 성재는 눈썹을 접었다. 그러다 의기양양하게 다리를 꼬았다.
“다음주에 우성랜드 임 회장하고 자리 마련했다. 노인네가 어찌나 바쁜 척하는지 시간 잡느라 애먹었어.”
“시간 더 당겨 봐. 말 나온 김에 오늘 어때?”
이석은 지갑에서 파라디소 회원 카드를 꺼냈다. 도금된 카드에 박힌 P자 로고가 팽팽한 햇살에 부딪혔다.
“강간플레이라면 말만 들어도 세울 거야. 파라디소 사장한테 실감 나게 연기할 물건으로 준비하라고 해두지.”
“뭐라? 점잖은 척하더니 상종 못 할 변태였잖아. 이거 원. 동양화에 조예 깊다고 해서 아버지도 그림 선물까지 했는데 헛돈 썼군. 그건 또 어떻게 알아냈냐? 확실한 거냐?”
“일단 찔러 봐. 걸려들면 좋고, 아니면 말고.”
“찌르는 거야 내 특기지.”
성재는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카드를 받았다. 이석이 뒤에서 지휘하면 성재는 전면에서 선봉장 역할을 맡았다. 우성랜드는 차 회장 측근이며 5번째로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임 회장만 잘 구슬리면 경영진을 통째로 손안에 쥘 수도 있다. 가장 먹음직스러운 동시에 가장 손질하기 까다로운 사냥감이니 누구보다 은밀하고 철저해야 한다.
“초반부터 냄새 남기지 말고 잘 움직여. 차 회장 이빨 빠졌어도 호랑이는 호랑이니까.”
“조만간 명환 형님한테 한번 들리마. 돌아가시기 전에 얼굴 한번은 봐야지. 간다.”
성재가 나가고 인터폰에서 차 회장 목소리가 넘어왔다.
[임 회장과 약속 잡았느냐?]
“오늘 저녁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실수 없이 잘하고 오너라. 명환이 반드시 나을 테니 적어도 주총 때까지만이라도 입단속 잘 시키고. 임 회장 동양화에 조예가 깊으니 신경 써서 준비하거라.]
임 회장을 위한 황홀한 선물은 성재가 잘 전달할 것이다. 차 회장 목소리가 물러나자 이석은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벽면 전체로 된 창문을 통해 타락한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부와 권력이 집약된 건물이 다투듯이 창공을 향해 뻗어 있다. 그는 손바닥을 창문에 대고 기품 없는 왕국을 쓰다듬었다. 차 회장이 쌓아올린 세계가 이 손아귀에 떨어지면 조각조각 찢어발겨서 쓰레기 공화국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절망에 허덕이는 늙은이 얼굴을 짓뭉개 줄 것이다. 늙은이가 총애해 마지않는 아들도 함께 말이다. 그때 휴대폰이 몸을 떨며 책상 위를 돌아다녔다. 폰을 귀에 가져가자 천 찢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이석의 모친이었다. 모친이 내뿜는 격한 술 냄새가 여기까지 퍼지는 착각이 들었다.
“술 드셨어요?”
[그럼 내가 집에 틀어박혀서 할 게 술 마시는 것 말고 더 있어? 안 마시면 미칠 것 같아서 마셨어! 미치기 전에 마셨다고!]
“그러길래 모임 나가시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그것들, 주둥이로는 내 비위 맞추면서 눈빛은 나를 깔고 앉는 거 모를 줄 알아? 걔들이 날 뭐라고 부르는지 알기나 하냐구! 내가 아들과 남편보다 더 자주 보는 게 운전기사인 거 알고나 있니? 대체 집엔 언제 올 거야?!]
“주말에 시간 봐서 가죠.”
[그 얘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지난주에 했어. 그 지난주에도! 지난달에도! 누가 그 인간 아들 아니랄까봐 하는 짓도 그대로 따라 하니? 나 여기 처박아두고 니들끼리 시시덕거리고 있지? 네 누나들처럼 죽어나간 다음에나 찾아올 거냐고! 흑…으흑…!]
폰 너머에서 혀 꼬부라진 울음이 들렸다. 그녀는 번듯한 집에서 태어나 완벽한 외모와 학벌을 가졌다. 그에 걸맞은 완벽한 남편에 완벽한 자식을 원했다. 그녀가 생산한 자식들은 남편과 비롯된 애정의 결정체라기보다 오랫동안 꿈꿔온 미래도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상향에 누구도 동참하지 않았다. 결국, 모친은 망가지기 시작했고, 모든 걸 잃은 두 손에는 술병만 남았다. 니들 전부 용서 안 해! 여기서 쥐죽은 듯이 살라고?! 가만 안 둘 거야! 히스테릭한 목소리가 등 돌린 가족을 저주하고 자신의 신세를 조소했다. 잠잠했던 두통이 기승을 부렸다. 칼로 저미는 통증이 이석의 뇌를 들쑤셨다. 시신경까지 당겨진 듯 그는 한쪽 눈을 찡그렸다.
“주말에 시간 나면 찾아가죠. 술병 내려놓고 곧장 침대로 들어가요.”
그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폰을 껐다. 라이터를 꺼냈다. 라이터 바닥면을 열자 백색 가루가 보였다. 코카인을 손등을 얹고 혀로 핥았다. 의자 등받이에 고개를 젖히며 숨을 깊숙이 들이마셨다. 혀끝에 놓인 낱알 하나하나를 음미했다. 곧이어 뭉근한 감각이 올라왔다. 바다를 건너온 가구들, 조명 달린 천장이 회색빛으로 일그러졌다. 코카인은 뒤끝도 없으며 기분 좋을 만큼 몽롱하게 하는 마약의 진미였다. 두통 완화에도 도움을 준다. 그러나 백색 천국이 오늘따라 밋밋했다. 약을 좀 더 빨아들였다. 시간이 지나도 황홀경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문득 강한 환각제가 당겼다. 한순간 본능을 풀어헤치게 하고, 정신을 난잡하게 하는 농도 짙은 환각제. 비록 뒤끝이 지저분한 싸구려 마약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석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엄지를 위아래로 움직여 번호목록을 뒤졌다. 신호음이 가고 얼마 후였다. “여보세요….”맑은 보이 톤이 넘어왔다. 그는 풀린 눈으로 사무용 의자에 몸을 늘어트렸다.
“내 생각 많이 했어?”
희미한 웃음소리가 이석의 귀를 간질였다. 이어 차분히 정제된 목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이석은 그답지 않게 말문이 막혔다. 강렬했던 노래 알갱이가 입속 구석구석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잔향은 아무리 씻어내도 사라지지 않고 입속을 타들어가게 했다. 며칠간 코카인의 노래를 듣지 못해서이다. 이 목마름에 다른 이유는 없다. 그는 고개를 젖힌 채 눈을 감았다. 늘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노래 불러 봐.”
그래, 단순히 약기운 탓이다.
코카인은 침대에 걸터앉아 난감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막 잠에서 깬 눈빛은 설렘에 젖어 있었다. 그는 이내 달콤한 표정을 지우더니 화장실로 들어갔다. 야바는 잠자는 척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콧잔등까지 덮었던 이불을 끄집어내리고 몸을 일으켰다. 발소리를 낮추고 걸어가 화장실 문에 귀를 갖다 댔다. 그 순간, 안쪽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바는 더이상 빠를 수 없는 속도로 이불에 들어가 눈을 꽉 닫았다. 서랍 여는 소리, 발소리에 이어 다시 화장실 문이 닫혔다. 곧이어 물소리에 섞여 어렴풋이 노랫소리가 들렸다.
야바는 입술 거스러미를 뜯으며 화장실을 노려보았다. 누굴까? 누구길래 코카인이 그런 표정을 짓게 했을까? 왜 갑자기 화장실에 들어갔으며 노랫소리는 왜 들리는 걸까? 야바는 이불을 걷어치우고 책상으로 걸어갔다. 책상 서랍을 완전히 빼내자 공간이 생겼다. 그 속으로 팔을 집어넣고 노란색 봉투를 꺼냈다. 화장실은 눅눅하고 보완성도 미비해서 독극물을 이곳에 옮겼다. 야바는 독극물을 아낌없이 정수기안에 쏟아부었다. 차이석의 일은 일대로 자신의 작품은 작품대로 진행해야 했다. 바쁘다고 해서 아침기도를 빼먹는 사람은 없으니까.
야바는 책 한 권을 가져가 침대에 배를 깔고 누웠다. 어제 코카인이 쓰러졌다고 들었다. 주치의는 원인을 찾지 못했다. 당연했다. 자신이 만드는 독극물은 전문서적과 TV, 영화를 통해 다년간 긁어모은 자료를 토대로 제조한 것이다. 몸에 빠르게 흡수해 천천히 세포를 잠식해서 죽어서 배를 갈라야만 원인을 알아챌 수 있다. 몇 가지 화학약품을 혼합했기에 딱히 부를만한 이름은 없다. 기회가 생기면 지어줄 생각이다. 아직 가위의 쓰임새는 정하지 않았다.
30여 분 뒤에 코카인이 나왔다. 수분을 촉촉이 머금은 그의 볼에는 홍조가 피었다. 향긋한 샴푸향도 함께 따라왔다. 이 향기를 그 누군가도 전화기를 통해 맡았을 거다. 코카인은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의식하지 않는 행동마저 넋 놓게 할 만큼 우아한 몸짓이었다.
“벌써 깼어?”
“그렇게 시끄럽게 하는데 안 깨고 배겨?”
“미안. 어젯밤에 샤워를 안 하고 잤더니…….”
야바는 책을 넘기며 코끝으로 웃었다. 귀신 같은 기하를 속여도 자신은 못 속인다. 그의 바지 주머니에 든 휴대폰에 자꾸 시선이 갔다. 통화 목록에서 제일 첫 번째 찍힌 이름이 뭔지 알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코카인은 수건을 빨래 바구니에 던지고 물었다.
“그런데 너 요새 뭐 하고 다녀? 며칠간 출근도 안 해서 다들 궁금해하고 있어. 혹시 누가 지명한 거야?”
“언제부터 나한테 관심 있었어? 다들 신경 끄라고 해.”
“같이 사는 사람한테 이 정도 관심도 못 가져?”
“같이 산다고 해서 속속들이 알 건 없잖아.”
“그래. 맞아.” 코카인이 읊조리다가 알 수 없는 눈으로 물었다.
“혹시… 차이석 씨하고 연관된 거야?”
사고가 멈춰버렸다. 정말로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는 의도였다. 깊은 내막까진 모른다고 해도 바보가 아닌 이상 짐작하고도 남을 거다. 어찌 보면 코카인도 알 권리가 있다. 그가 보호하고자 한 건 코카인이니까. 그래, 잠시 잊고 있었다. 하지만, 기하의 함구령이 아니어도 말할 생각은 한 움큼도 없었다.
“차이석하고 관련 있었으면 좋겠어? 아니었으면 좋겠어?”
이번엔 코카인의 미간이 어두워졌다.
“말하기 싫으면 됐어.”
코카인은 정수기로 걸어가 물을 받아 마셨다. 야바는 입술을 씹으며 그 모습을 보았다.
“암 환자 고치는데 얼마나 걸려?”
갑작스런 물음에 물잔을 든 코카인 손이 경직됐다. 그는 굳은 얼굴로 시선을 건넸다.
“그건 왜 물어?”
“궁금하니까.”
“그게 왜…갑자기 궁금한데?”
“그럼 넌 내가 왜 궁금해하는지를 왜 궁금해하는데?”
“내가 대답하면 너도 요즘 뭐 하고 다니는지 말해줘.”
벌써 저 질문만 두 번째다. 알고 싶어서 애간장이 탔다는 거다. 손쉽게 궁금증을 풀어줘서 손해 볼 리가 없다. 야바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걸어갔다.
“말하기 싫으면 관둬. 어차피 내가 알아봐야 써먹을 데도 없으니까. 보일러 끄지 마.”
코카인의 시선이 발목에 따라붙었다. 잡는다. 잡는다. 어서 잡아. 하나 둘 셋.
“……상태가 어떠냐에 따라 달라.”
야바는 냉랭한 눈으로 돌아보았다. 코카인은 말을 이어갔다.
“1기는 보름이면 완쾌하고, 2기는 한 달, 4기는 적어도 두 달쯤 필요해. 암세포는 빠르고 질겨서 하루가 다르게 증식하니까.”
저 말이 사실이라면, 차명환은 코카인이 아니라 코카인 할아버지가 와도 살 가능성이 희박한 거다.
“혹시 힐링 받는 사람이 너를 믿지 않으면 안 통한다거나 그런 게 있어?”
“분명히 힐러를 믿으면 치유에 도움되지만, 거부한다고 해서 효과가 없는 건 아니야. 의사를 안 믿는다고 수술이 실패하는 건 아니잖아. 서로 비슷한 거야. 목소리는 분명 물리적인 작용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 사실 나도 뭐라 말할 처지가 안 돼. 사장님한테서 기본적인 정보만 듣고 내가 경험한 걸 바탕으로 결론 낸 거니까. 사장님 부친이 모은 데이터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직접 본 적은 없어.”
그래? 야바는 무심하게 대꾸하는 척하며 코카인 말을 남김없이 주워담아 외진 곳에다 구겨놨다.
“넌 힐링 할 때 주로 어떤 생각해?”
코카인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간 노래에 관해 잘난 척하더니 오늘은 웃기지도 않는 반응의 연속이었다.
“……당연히 고쳐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그렇게 시시한 거 말고.”
“시시해서 미안하지만, 그게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거야. 넌 걸음마도 안 떼고 뛰어다닐 수 있어? 힐러에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고쳐주려는 마음가짐이 첫걸음을 떼는 거야. 환자의 마음도 중요해. 나를 믿고 받아들이면 힐링 효과는 훨씬 배가 되니까.”
어린 날 코카인은 노래를 두려워했고, 그를 신봉하는 광인들을 거부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보란 듯이 어리석은 광인 위에 군림했고 그들을 동정하는 여유까지 쟁취했다. 이제 환자를 치유하고 못 하고는 그의 자존심의 척도가 된듯했다. 차이석은 잦은 두통이 있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 매일 코카인 노래를 듣던 그였는데 왜 낫지 않는지 궁금했다. 또 왜 자신도 그러한지 모르겠다. 모르겠다.
“그동안 실패한 사람은 있어? 그러니까 너를 믿고 왔는데 결국 죽은 사람.”
“없었어. 너무 늦게 와서 손도 못 댈 상황만 제외하면. 그런데 최근에 손을 못 대고 있는 사람이 생겼어. 육체적인 질병에 걸린 건 아니지만…. 아직 내가 부족한 탓이겠지. 어쩌면 암환자보다 더 까다로운 게 정신적인 치유가 필요한 사람일지 몰라.”
코카인은 올곧은 시선을 쳐올렸다. 몹시 거슬리는 눈빛이었다. 염산이 있다면 뿌리고 싶을 만큼….
“하지만, 그 사람은 내가 고쳐주고 싶어. 꼭 그렇게 할 거야.”
정오가 되었다. 점심 무렵에 일어난 고자 가수들은 밥숟가락을 놓자마자 시내로 나갔다. 그들은 일주일 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해소 했으며, 명품과 고가의 패물이 빈 음낭을 채우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야바는 머리카락이 눈썹에 걸려 미용실에 갔다. 오는 길에 화공 약품점에 들렸다. 청산가리나 아세틸콜린, 레세르핀…이 약품들은 미량만 팔아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야 했다. 가끔 신분증을 요구할 땐 행인에게 부탁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모은 독극물이 지금까지 뿌듯한 양이 됐다.
오후의 끝 무렵, 야바는 어렵사리 구한 약품을 품어 안고 숙소로 향했다. 날을 세운 눈으로 바닥만 노려보며 걸었다. 어제 극악의 아리아를 불러서 목 상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생강즙과 배즙을 연달아 들이부어도 소용없었다. 아침에 코카인이 노래 불러줬던 대상이 누구인지 생각하느라 뇌가 짓무를 지경이다. 코카인의 폰은 비밀번호를 걸어놔서 통화 목록을 확인키는 불가능했다. 예전에 자신이 코카인 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모조리 날려버린 이후부터 잠근 것이다.
동네 어귀에서 코흘리개 아이들이 팽이를 돌리기에 푹 빠져 있었다. 야바는 눈살을 구겼다.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때 묻지 않았다는 고정관념은 개나 줘버려야 한다. 아이는 더럽고 귀찮았다. 울거나 웃으면 만사 해결될 거라는 정신머리부터가 글러 먹었다. 차 사고로 내장 터진 고양이를 발견한 양, 야바는 아이들에게서 멀찍이 돌아가려 했다. 그때 경적이 울리자 아이들은 바퀴벌레처럼 흩어졌다. 그 사이로 검정색 BMW가 지나와 야바 옆에 멈추었다. 선팅 된 문이 내려갔다. 기하는 날렵한 슈트 차림에 행커칩까지 갖추고 운전석에 타고 있었다. 껌 딱지 임수는 뵈지 않았다. 그는 가끔 이렇게 불시에 방문해서 고자 가수들 음낭을 쪼그라들게 했다. 기하는 서늘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 해 거기서?”
“보면 몰라? 걷고 있잖아.”
“숙소 가는 거면 타.”
“싫어.”
야바는 곧장 걸어갔다. 차는 세상에서 제일 위험천만한 도구였다. 한국 사람은 침대보다 차 안에서 죽을 확률이 높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검은 차가 뒤를 졸졸 따라왔다.
“너 목소리가 왜 그래?”
“내가 뭐?”
“평소에 미리미리 연습해 두라고 했잖아. 기름칠도 안 한 악기로 소리를 쥐어짜니 당연히 망가지지. 이 추운 날 외투도 안 걸치고 돌아다니다가 아예 드러눕고 싶나? 잔말 말고 타.”
이렇게 지방과 살이 많은 사람은 추위에 무딘 걸 저런 것들이 알 리가 없다. 지금은 목 상태가 저조해서 대꾸하기도 귀찮았다. 하지만 기하는 끈질겼다.
“그렇게 넋 놓고 걷다가 어디서 떨어지는 화분이나 물벼락 맞는다.”
“…….”
야바의 걸음이 멈춰 섰다. 미처 그 생각을 못했다. 야바는 눈을 굴려 좌우를 살폈다가 뒷좌석에 냉큼 올라탔다. 따스한 공기가 꽁꽁 언 지방을 녹여냈다. 기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거기로 가지?”
“나 원래 여기에 탔어.”
“앞으로 와.”
“싫어.”
기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앞으로 오라면 와. 내가 운전사냐?”
“변호하는 사람은 변호사고, 병 고치는 사람은 의사야. 운전하는 사람은 운전사야. 싫으면 임수한테 운전대 주고 사장하면 되잖아. 자꾸 시비 걸면 내릴 거야.”
기하는 살벌하게 노려보다가 피식하고 기분 나쁘게 웃었다. 구역질 날 만큼 느끼하게 말이다. BMW가 부드러운 엔진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벨트 매.”
놈이 어떠냐면…. 보통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는 편이었다. 반항하고 억압하고 더 세게 반항하기를 십여 년간 반복하다 보니 결국 나가떨어진 건 기하였다. 야바는 기하의 옆모습을 훔쳐보았다. 보통 부화시기는 3,4일이면 충분했다. 얼마 전 벌레를 옮긴 지가 언젠데 아직도 증세가 없었다. 놈의 악독한 피에 벌레알들이 떼죽음 당한 게 틀림없다.
“그만 봐.”
기하가 불쑥 말했다. 백미러에 갇힌 날카로운 눈과 얽혔다.
“그렇게 쳐다보지 말라고 경고했어.”
아마 자신이 일명, 쑤셔버리고 싶은 눈을 했나 보다. 야바는 입을 꽉 다문 채 보란 듯이 노려보았다. 그는 꽤 오랫동안 눈싸움을 하다가 전방을 보았다.
“어때? 일할 만한가?”
“그냥 그래.”
거짓말이다. 매일 그 시간이 기다려졌고 차이석이 데리러 오는 시간이 가까워지면 심장은 이성을 배반했다. 아주 가끔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기하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고는 손을 뒤로 뻗었다. 항불안제였다.
“받아. 오늘쯤 다 떨어졌을 거 같아서 가져왔어.”
야바는 약을 쥔 손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약은 항상 기하가 가져다줬다. 왜 기하는 이렇게 귀찮은 짓을 마다않고 약을 구해오는 걸까? 도대체 왜? 언제부터였을까? 지금껏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이 새삼 궁금해졌다.
“나 언제부터 이 약 먹었어?”
“1, 2년 전쯤부터였지.”
“왜?”
기하의 얼굴이 묘하게 바뀌었다.
“그건 새삼스럽게 왜 묻지?”
“그냥 내가 왜 궁금해하는지 알려하지 말고, 대답이나 해.”
무표정하지만, 복잡해 보이는 기하의 얼굴이 마음에 걸렸다.
“너 살리려고 먹인 거야. 그렇게만 알고 있어.”
기하는 짤막한 대답을 끝으로 운전에 집중했다. 도대체 언어라는 도구를 유용하게 써먹질 못하는 인간이다. 주먹질이나 칼부림이 가장 유창한 대화방식일 테니 당연했다. 야바는 약을 뒷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다. 코너를 돌아 숙소 아파트가 보일 무렵 기하가 입을 열었다.
“혹시나 입 잘못 놀릴까 싶어서 말하는데, 차 전무와 차명환 서로 배다른 형제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같은 엄마가 아니었어?”
금시초문이었다. 차이석이 왜 형제를 죽이려고 하는지, 왜 부친을 단순히 정자를 제공한 사람으로 지칭하는지 궁금했지만, 그냥 그렇구나 생각했다.
“차명환은 차 회장 두 번째 부인한테서 태어났어. 차 회장이 대학 시절부터 연애했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조강지처나 다름없었지만, 집안이 변변치 않아 반대가 심했어. 결국 차 회장은 정치가 집안 여자와 강제로 결혼해서 차이석과 딸들을 낳았지. 지금은 차 전무만 남았지만.”
“왜?”
“누나 둘 다 같은 해에 죽었어. 하긴, 너는 그쪽 일은 잘 모르겠군. 그 집안은 여자들한테 마가 끼었는지 개판이었거든. 차 회장이 그렇게 만든 건지, 그렇게 돼서 차 회장이 외면한 건지 몰라도 말이야.”
“어떻게… 개판인데?”
차명환과 친형제가 아니란 사실보다 더 놀라운 말이었다. 기하가 뒤를 힐끗 보았다.
“차 전무 모친은 결혼 후에 알콜 중독으로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이 한다더군. 그런데 차 전무의 누나들이 더 답 없었지. 아마 10년 전쯤이었을 거야. 첫째 누나는 평범한 회사원과 결혼하려다가 차 회장 반대에 부딪혀 음독자살했어. 죽은 뒤에 보니까 임신 6개월이었다는 거야. 당시 애 아빠가 태령그룹 사옥에 찾아와서 칼까지 휘두르고 엄청났었지. 둘째 누나는 원래 정신병이 있어서 집안에서도 애물단지였는데 첫째가 죽고, 1년도 안 돼서 둘째마저 집 앞 골목에서 죽었다더군. 그것도 한겨울에 알몸으로. 그 당시 태령가에서 언론을 막느라 돈깨나 쏟아부었다지.”
기하는 핸들을 매끄럽게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차 회장은 딸들 장례식에 한 번도 나타나지도 않았다더군.”
그건 허허벌판에서 고대유적을 발굴했을 때의 놀라움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야바는 눈을 홉 뜬 채 숨을 그치고 있었다. 꽉 막힌 가슴을 어떤 감정이 헤집었다. 야바는 물컹한 좌석에 몸을 묻으며 창문에 이마를 기댔다. 혼자만 들리도록 속살거렸다.
“우리 엄마도 그랬는데…….”
오늘처럼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밤, 엄마는 속옷만 입은 채 얼어 죽었다. 동사자가 엄마의 아름다움에 홀려서 데려간 것처럼, 그의 누나도 동사자를 매혹 시킬 만큼 아름다웠을 터였다. 외적인 윤택함과 가난한 눈빛…. 그는 균형이 어그러진 세계를 매일매일 걷고 있었던 거다. 그의 스무 살은 혈육의 배신으로 얼룩졌던 거다. 그래서 그토록 위태로워 보였던 거다. 고환을 도둑맞은 자신처럼…. 야바는 팔을 감싸며 눈을 감았다. 그를 빨리 만나고 싶었다. 빨리 만나서 그 메마른 눈을 다시 한번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다. 할 수 있다면 비틀린 눈동자에다 자장가를 불러주고 싶었다.
검은 물속이었다. 눈을 떴을 때 명환은 광활한 심해 밑바닥에 알몸으로 누워 있었다. 검은 바다가 싸늘한 비웃음 뿌리며 주시했다. 여자의 울음소리 같은 물의 이명이 머리카락과 살갗을 유린했다. 죽음과 소멸의 공간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뿐, 그 어떤 생명도 느껴지지 않았다. 명환은 필사적으로 숨을 내쉬었다. 병마에 점령당한 육신은 썩은내를 풍겼다. 주변에 있는 모래더미가 무덤처럼 올라와 있었다. 길동무를 찾는 망령들이 절규했다. 명환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코와 입속으로 얼음장 같은 물이 들어찼다. 절망과 두려움에 발을 차올려도 몸을 짓누르는 수압에 손가락도 움직이지 못했다. 절망의 물이 미약한 발악까지 잡아먹었다. 그 순간이었다.
아아아아……
그것은 거대한 바다보다 풍부한 울림이었다. 이 어둠보다 차갑고, 질척한 노랫소리였다. 그리고 애달프며 구슬펐다. 심해 속 포유류의 소리를 닮은 가느다란 파장이 물의 이명과 화음을 이루었다. 곧 노랫소리는 빛과 암흑을 지배했다. 명환의 사지를 묶은 봉인을 풀어헤쳤다. 목소리가 이끄는 대로 헤엄쳐갔다. 멀리서 붉은색 빛 타래가 정령의 춤처럼 하늘거렸다. 내장이 비치는 유빙의 악마처럼 유유히 부유하고 있다.
아아아아…아………
환상적인 노래가 더 가까이 오라고 유혹했다. 두렵다. 어쩐지 두렵고 소름 끼쳤다. 명환의 이성은 거부하지만, 본능은 목소리를 따라가고 있었다. 피보다 짙은 음성에 홀려 다리를 박차는 순간이었다. 붉은 덩어리에서 빛줄기가 돌진했다. 명환의 살갗을 파고들어 내장 깊이 들어갔다. 안에서 응축된 빛이 촉수처럼 뻗어 나갔다. 삽시간에 두개골을 박살 내고, 눈알을 터트리고, 고막을 파헤쳤다. 명환의 비명도, 거대한 바다도, 붉은 소용돌이에 삼켜졌다.
으, 으, 크아아악―――――!!
“헉! 헉……!”
명환은 물속에서 허우적대듯 손을 내뻗었다. 맑은 공기가 콧속에 들이치자 눈을 부릅떴다. 시뻘건 저녁놀에 침수된 방안이 보였다. 여긴 심해 속이 아니다. 다행이다. 명환은 몸을 일으켜 아무도 없는 방을 둘러봤다. 언제부터 잔 건지 시간도 가늠할 수 없었다. 얼마나 생생한 악몽이었는지 온몸에 땀이 축축했다. 살가죽이 떨렸다. 바람 소리도 없는 적막감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침대맡에 있는 벨을 신경질적으로 눌렀다. 아픈 사람을 두고 자리를 비우다니! 당장 잘라버리고 그 바닥에 발도 못 붙이게 할 것이다! 몸의 수분이 모두 마른 양 명환의 입속이 타들어갔다. 토할 듯이 뱃속이 끓어오르고 뼛속까지 한기가 파고들었다. 기괴한 몸 상태가 초조했다. 불현듯 미치도록 청각을 자극했던 그 원색적인 목소리가 떠올랐다. 아니, 떠오른다기보다 귓가에 잔향이 남아 맴도는 듯했다. 그를 기점으로 소리 파동은 점차 뇌를 점령했다. 듣고 싶다. 다시 듣고 싶다. 오감을 긁어 내리고, 환각을 불러일으키는 끔찍한 자극을. 그 소리 마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