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track 07
의외였다. 아니, 충격에 가까웠다. 이름처럼 외모도 싸구려일 거라 짐작했다. 자신에게 포위된 녀석이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트렸다. 자그마한 턱을 쥐고 억지로 들어 올리자 얼굴에 홍조가 번졌다. 불투명한 농색 눈망울은 어지러이 돌아다녔다. 음울한 무표정과 밤이 녹아든 그 눈동자를 응시했다.
앞에 있는 얼굴을 표현하자면… 햇볕 없는 곳에 서식하는 생물 같았다. 혹은 앙칼진 야묘(野猫) 느낌이었다. 빛이 닿지 않아 눈동자는 갈색과 회색 물감이 혼합된 신비로운 색채였다. 항상 뭔가 뚫어지게 보며 폐부를 찌르지만, 결국 아무것도 보지 않는 눈이기도 했다. 섬세하게 굴곡진 입술은 수시로 물어뜯는 습관이 있는지 피딱지투성이였다. 저 마른 체형이 하나 더 들어갈 만큼 어처구니없이 큰 셔츠는 찢어지고 늘어져 하얀 어깨를 훤히 드러냈다. 길게 뻗은 목선이며 옷 아래 보이는 피부마다 긁은 자국이 선명했다. 한번 시선을 사로잡히면 녀석이 얼굴을 돌리기 전까지 한눈팔지 못하게 하는 끈적한 점성을 가진 얼굴이다. 창백하도록 하얀 색채와 낭자한 핏빛이 어울리는, 원초적이며 다듬어지지 않은 도색. 그것은 방치된 미모였다.
“입술과 콧잔등이 정액으로 범벅된 게 어울리는 타입이 있지. ”
저 닳고 닳은 껍데기를 한 꺼풀 벗기고 밑바닥까지 낱낱이 들쑤신다면 어떠한 진짜 얼굴이 나올까. 음험한 욕망이 꿈틀거렸다. 어둠에서 파충류 같은 이석의 눈동자가 사납게 번들거렸다.
“천사에게 실컷 강간당하고 매음굴에 버려진 사탄의 얼굴을 한…….”
야바는 흐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탄의 얼굴? 정액으로 범벅된…. 그게 다 무슨 뜻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의미를 알아채고 싶지만 그는 너무 가까이에 있었고, 그의 향기가 뇌를 무능하게 만들었다. 이석이 자신의 얼굴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려웠다. 한편으론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별로 좋지 않다. 저렇게 충격받은 얼굴을 예상했어도 직접 확인하니 상상보다 훨씬 나쁘다. 서리 낀 차창 위로 도살장 입구에 선 돼지 상이 비쳤다. 야바는 얼굴을 숙이며 밤 그림자 속으로 깊이 숨어들었다. 눈을 감아버렸다. 그럼에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시선이 있었다. 뺨에 잔 경련이 일었다. 역시 가면을 벗는 게 아니었다. 야바는 입술을 꾹 씹으며 응축되는 감정을 분산시켰다.
“빠, 빨리하기나 해.”
말끝이 비참하게 떨렸다. 야바는 그 떨림을 냉랭한 표정 아래 간신히 감추었다. 물끄러미 보던 이석의 입술이 이지러졌다. 온통 눅눅한 그에게서 유일하게 퍼석한 건, 저 눈이었다.
“분부대로.”
그가 곧바로 머리를 기울여 다가왔다. 물살에 떠밀리는 착각이 일어 야바는 눈을 감고 숨을 멈추었다. 이어 야바 입술이 축축한 곳으로 빨려들었다. 물컹한 살이 입술선에 닿아 노긋하게 더듬었다. 살덩이는 다물린 입술을 헤치고 왔다가 안쪽 살과 치아만 가볍게 건드렸다가 다시 빠져나갔다. 그의 향기가 옅어졌다가 다시 짙어졌다. 그가 야바의 아랫입술을 끼워 문 채로 좌우로 비볐다. 미미하게 살 부대끼는 소리와 자늑자늑한 감촉에 턱이 떨렸다. 느닷없이 그가 야바의 입속으로 손가락을 박아넣고 잡아 벌렸다.
“더 크게 벌려봐. 그럼 혀를 마음껏 움직일 수 없잖아.”
차이석이 턱을 쥔 손가락으로 입술을 두드리자 머뭇머뭇 입술을 벌렸다. 공간이 벌어지고 축축한 혓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미끌거리는 혀를 끄집어내 야바의 입술선에 대고 느리게 모양을 그려갔다. 그의 시선이 감겨들었다. 눈을 감아야 할지 떠야 할지 모르겠다. 교접한 입술이 서로에게 젖어들었다. 야바의 치아를 가볍게 훑고 불쑥 들어와 입천장을 반복적으로 핥았다. 입술 전체를 감싸는 강한 자극에 전신이 흐물거렸다. 그는 뾰족하게 세운 혀를 더 깊은 곳까지 미끄러트리고 끈적한 점막을 한 바퀴 쓸었다. 야바는 목구멍에 움츠렸던 신음을 풀어 헤쳐버렸다.
“으…….”
심장 박동수는 화려한 변주곡처럼 점점 빨라졌다. 머리는 뜨거웠다가 차가웠다가를 반복했고, 벅찬 호흡은 감당키 힘겨웠다. 맨정신으로 키스할 땐 차이석이 어떤 표정일지, 어떤 느낌일지 알고 싶었는데 그걸 가늠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때처럼 매달리던 가난한 키스가 아니라 이석이 주도하는 키스였다. 갑자기 그는 야바의 뒷머리를 포악하게 잡아 젖혔다. 번들거리는 그 눈동자가 낱낱이 까발리며 주시해왔다.
“신음 소리 참지 마. 그리고 귀에다 해줘. 난 목소리 패티시가 있거든.”
이석의 혓바닥이 야바의 목선을 타고 턱으로, 관자놀이까지 주욱 찰지게 핥았다. 음란한 움직임을 따라 어깨가 꽉 움츠러들었다. 이석은 얼굴 각도를 바꾸고 입술을 깊이 겹쳐왔다. 야바의 볼록한 아랫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가 터트릴 것처럼 혀로 짓눌렀다. 볼 안, 잇몸, 매끄러운 살을 핥으며 천천히 유영했다. 서로의 혀가 쩍쩍 달라붙고 피부는 녹아내릴 것처럼 뜨거웠다. 그의 혀는 똬리 틀 듯이 야바를 휘감아 뿌리까지 사로잡아 문질렀다. 몸통으로 먹잇감을 옥죄어 숨통을 막고 강한 턱으로 천천히 삼키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점막에 침이 고일 때쯤 독약 같은 타액을 받아 삼켰다. 한 번 입에 담으면 혀를 녹이고 내장을 짓무르게 하는 독성 강한 키스였다. 그의 것이 혓바닥에 원을 그리다가 꾸욱 깊이 찔러 왔다.
“응…! 하아…아…….”
이석의 숨결도, 혀의 마찰도 점차 거칠어졌다. 사납게 세운 혀가 한번에 밀려와 깊이 움직였다. 그는 급하게 야바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우고 자기 쪽으로 당겨왔다. 다리를 벌리게 하고, 허벅지에 앉혔다. 야바는 입술을 물린 채 딸려오다가 차 천장에 머리를 쿵 찍혔다. 입속에서 신음이 뭉쳤다. 이석은 입술을 살짝 떼어내며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아팠어?”
이석은 거즈 붙은 이마를 뭉근하게 쓸어주었다. 상냥한 손짓에 야바의 눈가는 음울한 잿빛으로 번졌다. “아니. 안 아파.” 야바는 그의 어깨에 볼을 묻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모든 신경이 그의 입술과 손길에 향해서 다른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입속에 가득히 저릿한 감각뿐이었다. 이석은 야바의 턱을 가볍게 깨물며 탁해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혀를 쑤셔 넣을 테니 목구멍까지 삼켜서 빨아 봐. 쭉쭉하고 소리 나도록….”
저속한 말에 귓불로 열이 몰렸다. 그는 입술을 포개왔다. 혓바닥을 상하 좌우로 얽고 삽입행위처럼 앞뒤로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야바의 눈이 풀어지고 피부도 눅눅해졌다. 중심에 뜨거움이 몰렸다. 하지만, 그 이상 뚜렷한 반응은 없었다. 또다시 그가 혀를 축축한 목구멍까지 미끄러트리자 야바는 농도 짙은 소릴 내며 찔러준 혀를 삼켰다. 아프지 않도록 부드럽게 머금으니 그에게서 거친 숨이 터졌다. 동시에 그가 허리를 쳐올렸다. 열기 모인 중심을 밀어붙이고 비비자 야바의 엉덩이가 꽉 조여들었다. 스스로도 당황스러운 반응이었다. 엉덩이를 뒤로 잡아빼자 그가 곧장 둔부를 당겨와 잡아 벌렸다. 팽팽하게 솟구친 중심이 야바의 엉덩이골에 마찰했다. 급한 움직임에 차체가 흔들렸다.
“흣, 하아….”
“으…으응……핫…….”
축축하면서도 볼륨감 있는 목소리였다. 달큰한 입김과 신음이 귀에 감기자 이석의 정수리에 열이 치달았다. 야바의 하체가 이석의 배 언저리에 닿았다. 저 난잡하기 짝이 없는 표정에 비해 녀석의 중심은 밋밋했다. 문득 이석의 턱 움직임이 둔해졌다. 희미한 피 냄새, 설익은 혀 놀림, 등에 번지는 밋밋한 체온, 그것은 기묘한 기시감이었다. 하지만, 녀석이 뿌리는 향기가 기시감을 휩쓸어갔다. 아무래도 좋다. 감춰둔 쾌락의 비밀을 캐내듯이 야바의 혀뿌리와 더 깊은 아래쪽을 범했다. 피딱지 앉은 입술은 보기보다 감촉이 뛰어났다. 타액에 젖은 야바의 턱 끝은 떨고 있었다. 이석은 갈급증이 생겼다. 더불어 농담이 선명한 피부와 입술을 감상하고 맛보느라 정신없이 즐거웠다. 녀석이 수고비를 요구했을 때 흥을 깨버린 눈치 없음이 짜증스러웠다. 입술 좀 빨아주고 혀만 대충 휘둘러줄 생각이었다. 진정코 여기까지 올 생각이 아니었다.
“하아…으…응…….”
혀를 빨리고 목덜미를 물린 정도로 구석에 내몰린 야묘는 한심할 만큼 애처로웠다. 가쁜 숨소리와 달구어진 뺨, 흐리게 풀어진 눈동자는 갈 데까지 간 퇴폐였다. 불빛에 젖은 속눈썹에 정액을 뿌려도 아찔할 것이다. 하아…. 이석의 신음은 짙어졌다. 서로의 더운 입김이 차 유리에 서렸다. 차 불빛이 야바의 볼에 스몄다가 사라졌다. 그는 야바의 셔츠 목을 아래로 끌어내려 불툭 나온 목덜미와 쇄골을, 어깨와 유두를 허겁지겁 빨았다. 녀석은 겁에 질린 것처럼 이석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바쁘게 눈을 깜빡이자 긴 속눈썹이 이석의 뺨을 간질였다. 그의 성기는 지퍼를 열면 곧장 튕겨 나올 듯이 사나워졌다. 이제 녀석의 입술은 음식을 섭취하는 기관이 아니었다. 생식기였고 음탕한 공간이었다. 몸의 본능은 처음 몽정하던 때로 회귀한 것처럼, 기교도 느긋함도 없이 오직 말초적인 신경만을 좇았다. 이석은 다급하게 허리띠를 풀고 지퍼를 열었다. 입술은 끊임없이 보드라운 피부를 빨아당겼다. 이대로 녀석을 먹어치워도 이상할 것 없는 농염한 열기였다.
그때였다. 톡톡, 창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석은 질주를 멈췄고, 야바는 파드득 몸을 떨며 입술을 떼었다. 서로 거친 숨을 쉬며 시선을 돌렸다. 창밖에서 양복을 입은 남자의 하반신이 보였다.
“실례합니다. 우리 애 좀 데리러 왔는데 있습니까?”
무뚝뚝한 얼굴이 떨어졌다. 임수였다. 야바는 한순간 심장이 떨어져 나갈 뻔했다. 뿌연 창문 너머에서 들여다보던 실장은 이석에게 묵례했다.
“잠깐 담배 사러 나간 사이에 가셨다더군요. 우리 애는 데려가겠습니다.”
이석은 가파른 숨을 쉬며 혀를 찼다. 그리고 실장의 출현이 짜증스러울 만큼 달아올랐던 스스로에게 놀랐다. 그는 고개를 돌려 허벅지에 올라탄 야바를 응시했다. 야바는 온통 젖은 채 입술만 쥐어뜯고 있다. 흔들리는 눈동자와 손동작은 보는 사람마저 불안하게 했다.
“어쩐다. 난 구경꾼이 있어도 상관없는데.”
야바는 벌게진 얼굴로 젖은 입술을 손등으로 가렸다. 자신의 둔부에 깔린 성기는 여전히 열기를 뿜으며 발기했다. 정욕을 고스란히 드러낸 그의 눈동자와 맞닿은 하체가 녹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차에서 나가면 이대로 모두 끝날 것만 같았다. 다신 그 별장에 갈 일은 없을 거고 코카인도 안전해졌다. 그리고 임수는 굳건히 서 있었다. 야바는 조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차 문을 열고 다리를 밖으로 뻗었다. 그때 차이석이 어깨를 잡았다.
“기다려.”
그는 허리를 앞으로 숙여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열린 지퍼 사이로 그의 중심이 우뚝 솟구쳐 있다. 종이 다섯 장을 끄집어낸 이석이 야바 손에 쥐여 주었다. 야바는 손에 놓인 푸른빛 수표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 동그라미 개수보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하느라 머리가 멍했다. 조금 전 키스는 이 수표와 같은 의미일까? 그래, 키스는 수표였다. 키스는 수표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신을 녹였던 키스마저 퍼석하게 느껴졌다. 오랜 침묵 뒤에 그의 목소리가 이마 위에 흩어졌다.
“모자란가?”
이석이 다시 지갑을 열었다. 야바는 몸을 돌렸다. 차 밖으로 나와 바로 옆에 세운 임수 차에 올라탔다. 입가와 목덜미에 찬 바람이 들러붙자 그제야 그곳이 온통 타액 범벅임을 깨달았다. 임수 차에 올라, 문 닫을 때까지 한 번도 그를 보지 않았다. 몇 분 뒤 임수가 운전석에 앉았다.
“일이 잘됐다고? 사장님이 기다리시니까 전화부터 드려. 벨트 매고.”
임수는 시동을 넣으며 백미러를 통해 쳐다보았다.
“이마는 또 왜 그 모양이야?”
야바는 눈을 치떴다. 눈치 없는 곰 새끼.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온전히 그를 마주한 처음이었고, 이제 다시 오지 않을 마지막이었다. 야바는 임수가 앉은 운전석을 발로 걷어찼다.
“강에 처박히기 싫으면 하지 마.”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바의 발길질은 더욱 거세졌다. 퍽퍽 대는 소음을 뚫고 놈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함부로 흘리고 다니지 마. 차 전무가 누구한테 열 올리는지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 저런 사람이 한 번 잔인해지면 어디까지 떨어지게 하는지 몰라?”
야바의 발길질이 그쳤다. 입을 꽉 다문 채 임수를 노려보았다.
“내가… 뭘 흘리는데?”
임수는 백미러를 통해 야바를 쳐다보았다.
“반말하지 마. 너 그런 거 있어. 가끔 손님들이 너한테 하는 거 보고도 모르나?”
“내가 뭘 흘렸는데?”
“반말하지 말랬어.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임수는 전방을 바라보며 말했다.
“방금전 건 나도 못 본 걸로 하지. 너도 없던 일로 쳐.”
“생각해 주는 척하지 마. 토할 거 같으니까. 가서 일러. 그래야 기하한테 칭찬받지. 넌 그 낙으로 살잖아.”
임수는 살벌한 눈초리를 보냈다. “반말하지 말고 벨트 매.” 덧붙이며 운전에 집중했다. 임수 말대로 자기도 모르게 감정을 줄줄 흘리고 다녔던 걸까? 그래서 차이석이 이런 경계를 그은 걸까? 왜 자신은 감정을 좀 더 세련되게 처리 못 할까? 코너를 돌자 이석의 차가 사이드미러 바깥으로 밀려났다. 이제 다 끝났다. 내일이면 그는 또다시 낯선 눈을 할 거고, 코카인에게 몰두할 터였다. 앞으로 욕심이 불어난다고 해도 모두 상관없는 일이었다. 가면 벗기 전에 미리 다짐받아둔 건 올해 들어 제일 잘한 짓이야…. 그렇게 읊조리며 안전벨트를 매고 안락한 의자에 몸을 맡겼다. 웅크린 손안에서 수표가 퍼석하고 신음했다. 푸른빛 종이를 구겨지지 않게 쥐었다. 차가운 색채가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실장 차가 코너를 돌며 사라지자 이석은 시동을 걸었다. 날렵한 폰티악이 미끄러져 도로에 진입했다. 약간은 흥분에 들뜬 손이 핸들을 돌렸다. 차 회장의 표정과 그런 표정을 짓게 만든 녀석이 떠올라 웃음을 짓씹었다. 열려 있는 지퍼 사이, 속옷 아래 욕망은 고집스레 불룩 솟았다. 신열의 여운에서 쉽사리 헤어나질 못하자 이석은 담배를 집어 물었다. 허전한 입속을 독한 담배연기로 채우고 길게 토했다.
야바, 야바…싸구려 마약. 그는 입안에 감도는 타액을 혀로 핥았다. 가면 아래 감춘 얼굴은 숫말 발정제다웠다. 고급 매음굴에서 일하는 녀석은 두 가지 부류가 있다. 노골적으로 상대를 유혹해 외진 삶에서 벗어나길 바라거나, 정말로 아무 생각 없거나. 그 어느 쪽이건 밑바닥이란 건 변하지 않는다. 애초에 대가로 키스를 요구한 걸 보면 분명하지 않은가. 고작 키스라니…. 박아달라고 했어도 들어줄 의향이었다. 벌레 운운하는 걸 보아, 거창한 트라우마가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게 죽은 누이와 겹쳐서 다신 마주치고 싶지 않은 녀석이기도 했다. 어쨌든 녀석을 선택한 건 탁월했고 깔끔한 마무리였다. 오늘만은 누구의 방해도 없이 혼자 축배를 기울이고 싶었다. 폰을 집어드니 이미 부재중 전화가 십여 통이 찍혔다. 차 회장이었다. 조수석에 던지려는데 한발 앞서 진동이 울렸다.
“아악―――――!! 크윽――――! 저리 가! 더러운 손 치워!!”
“거기 다리 잡아!”
연락을 받고 다시 별장으로 차를 돌렸다. 이석이 도착했을 때 차 명환은 끔찍한 고통에 몸을 뒤틀었다. 차 회장의 골 주름에 패색 짙은 기온이 드리웠다. 한때 혈기왕성했던 시절은 여명 뒤로 사라졌으나 특유의 옹고집은 간직했다. 명환의 거친 발악으로 주삿바늘이 모두 뽑히고 빈 구멍에서 핏물이 줄줄 흘렀다. 하나, 둘 셋! 남자 간호사들이 호흡에 맞춰 명환을 침대 위에 올리고 사지를 짓눌렀다. 의사는 재빨리 팔뚝에 강한 진통제를 놨다.
명환은 바닥에서 몸부림치고 뒹굴었다. 주삿바늘을 수도 없이 찔러 이젠 혈관까지 너덜거렸다. 곳곳에 침투한 암세포가 뼈를 갉아먹고 내장을 녹였다. 이제 주변 장기까지 모조리 암세포에 점령당했고, 진통제를 아무리 쏟아부어도 불구덩이를 뒹구는 고통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명환은 이석의 바짓가랑이를 쥐어뜯었다. 이제 그만 좀 고통스럽고 싶다. 제발! 제발!
“아윽―――! 죽여 줘! 차라리 죽여 줘―――!”
이석은 말라 비틀어진 살가죽을 한 명환을 내려다보았다. 눈물과 콧물에 얼룩져 울부짖는 저 얼굴을 구둣발로 깔아뭉개고 싶다. 자신에게 매달린 손을 꺾어버리고, 으스러트리고픈 충동이 일었다. 형제의 악다구니는 그 어떤 음악보다 아름다운 선율로 다가왔다. 생기 빨린 몰골은 그 어떤 명화보다 시각을 충족시켰다. 그 모든 경멸감은 정제된 이목구비에 감추었다. 능숙하게 발톱을 숨기는 재능은 부친에게 물려받은 것 중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능력이다.
겨울이 막 들어선 별장에 고즈넉한 새벽이 찾아왔다. 바람이 낙엽을 한바탕 몰고 가자 도베르만이 귀를 쫑긋 세웠다. 경호원들도 플래시를 비추며 별장 근처를 돌아다녔다. 전쟁 같은 시간이 지난 별장 내실은 고요가 감돌았다. 번잡한 속세와 동떨어진 이곳은 여명이 웅크리며 아침을 기다렸다. 이석은 홀로 방에 남아 명환의 앙상한 몰골을 보았다. 죽음에 다가서는 모습은 그 어떤 구도자보다 숭고했다.
차 회장은 숨만 쉬는 시체 곁을 지켰다가 자정이 넘어서자 본가로 갔다. 차명환이 천성으로 타고난 의지박약과 우유부단함은 차 회장의 고민거리였다. 벼랑에서 기어 올라오지 못하는 자식은 가차없이 버렸던 차 회장이지만, 차명환은 예외였다. 이석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러나 누나들은 달랐다. 어리석게도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잊고, 부친이 드나들던 현관을 자주 쳐다봤다. 혈육에 대한 그녀들의 갈망만이 부친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그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끈이 잘려나간 지금, 이석에게 차 회장은 짓밟고 올라서야 하는 계단에 불과했다.
담배를 물고 지포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불을 붙이려는데 산소호흡기 호스가 시야에 걸렸다. 폐까지 암세포가 침투해 호흡기에 의지했다. 숟가락들 힘도 모자라 떠먹여 줘야만 배를 채웠다. 대소변도 해결 못 해 틈만 나면 이불에 싸질러 역겨운 냄새를 풍겼다. 멀쩡했을 때도 지금도, 뭐 하나 제힘으로 못 하는 산송장이다. 이 공간과 인력은 쓸데없는 사치였다. 흠…이석은 담배를 삐딱하게 문 채 은색 라이터 뚜껑을 젖혔다. 탁탁. 불꽃이 터졌다. 생과 사를 잇는 통로가 찌직거리며 타들어갔다. 그 순간 명환이 얇은 신음을 내며 의식을 되찾았다. 이어 부패한 생선 눈알이 모습을 드러냈다. 태연하게 라이터를 집어넣은 이석은 의자에 앉았다. 차명환은 방안을 빙 둘러보며 물었다.
“아버지는…?”
“아까 가셨습니다. 내일 아침 임 의원님과 조찬이 있다더군요.”
“너도 그만 가봐라. 내일 회사 가려면 좀 쉬어야지.”
이석은 어둠보다 더 차갑게 웃었다. 누군가 곁에서 있지 않으면 단 1초도 견디지 못하는 겁쟁이치고 제법 용기 있는 발언이다. 하지만, 마음에도 없는 소리라는 건 공포에 질린 눈동자가 증명하고 있다. 이석은 담배를 끼운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썹을 매만졌다.
“좀 더 잘 알아보고 데려왔어야 했는데 실수였습니다.”
“니가 무슨 잘못이냐? 너야 아버지가 시키시는 대로 데려온 것뿐이고, 그 오만방자한 새끼가 사람 잘 못 건드린 거지. 애초에 네 형수가 입을 잘못 놀린 것도 있어. 네 형수, 착하긴 한데 어쩔 땐 너무 답답하게 굴어서 말야. 아, 그 사람 나 수발하느라 힘들어하는 거 같길래 친정에 보냈다. 아버지도 자주 들리시고, 너도 신경 써 주니까 없어도 불편한 건 없거든.”
허공을 응시하던 차명환은 힘겹게 눈동자를 움직였다. 그는 한참을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정말로 그런 일이 있을까? 그…힐러라는 녀석이 정말 김 회장과 김경화를 낫게 했을까?”
“나도 소문으로만 들어서 확답은 못 드립니다만 오늘 보니 별로 믿음이 가진 않더군요. 한의학이건 양의학이건 뭐든 알아보죠. 국제 암 센터에도 최고 의료진을 의뢰했습니다.”
“이석아…….”
이석은 부름을 따라 시선을 내렸다. 명환은 입을 여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나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우리 아버지가 태령그룹 사장이라고 자랑도 못 했다. 동네에서도 남의 남편 끼고 산다고 손가락질당했어. 내가… 처음 집에 인사드리러 왔을 때 할아버지 눈빛을……잊지 못한다. 나는… 그때 벌레였어. 길바닥에 있는… 토사물이었어. DNA로 친자확인까지 해 드렸는데도… 그 눈빛은 안 달라졌다. 할아버님께…인정받기 위해서라도…이대로는 암이란 놈한테 안 당할 거다.”
“너무 서운해 말아요. 손수 업어 키우던 저조차도 친자확인 하셨던 분이니까요.”
“적어도 넌 손주로 인정받고 있잖아….”
명환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릴 적부터 넌 사진으로만 만났었지. 아버지가 안 보여주시려는 걸 몰래 지갑을 들췄더니 있더라고. 괜한 자격지심이 들었다. 처음 배다른 동생의 존재만 듣고 막연하게 적대감을 가졌으니까. 나와는 완벽하게 다른 세계 사람이니 세상 모든 사람을 발아래 깔아뭉갤 안하무인인 줄 알았어. 뉴스 보면 재벌 누구가 살인까지 저지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게 비일비재라잖아. 하지만, 내가 잘 못 생각했다. 너 아니었다면 집안사람들 멸시를 견디지 못했을 거야. 우리 어머니도 너한테만은 고마워하시는 거 알아 둬라.”
이석은 초연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명환은 말을 이어갔다.
“임원들… 뒤에서 나한테 뭐라고 지껄이는지 모를 줄 알겠지. 이제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만 더하면 인정받을 수 있는데…. 반드시 할아버님보다 오래 살고 말 거다. 벌레는 약하지만, 생각보다 목숨이 질거든…큭큭…….”
명환의 일그러진 웃음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웃음과 눈물이 뒤엉킨 소리가 어둠에 흩어졌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왜 하필 나야. 왜…….”
이석의 눈빛이 어둠에서 번뜩거렸다. 그건 그 몸에 흐르는 천박한 피 때문이야. 세포와 근육처럼 한몸이 된 노예근성 때문이지. 면역체계의 결함이나 발암 인자에 노출돼서가 아니라, 그 천박한 피가 살을 갉아먹고 뼈를 녹이는 거라고. 그러니 날고 기는 의사들도 손 쓸 도리가 없을 수밖에. 그 외에 다른 이유가 있나? 이석은 새하얀 이불을 끌어다 산송장의 몸을 덮었다.
“오늘은 그만 쉬어요. 시간 봐서 또 들리죠.”
링거액을 살피고 돌아서는데 이석의 팔에 깡마른 손이 얽혔다. 명환은 말라 터진 입술을 뗐다.
“부탁이… 있다…….”
야바는 거실 벽에 걸린 거울에 이마를 비춰보았다. 거즈엔 피가 그득 배어 끄트머리에도 때가 끼었다. 계속 시선이 갔고 손이 갔다. 모르핀이 거울 속으로 불쑥 끼어들었다. 야바 이마를 힐끔 보았다.
“아, 드럽게! 거즈 좀 새로 갈아! 한 시간이 멀다 하고 씻어 재끼고, 남이 쓴 비누는 손도 안 대면서…. 참, 너 대체 어제 어딜 갔었냐? 무슨 일이길래 실장까지 대동한 건데?”
“알 거 없어.”
야바는 대답만 내던지고 제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코카인! 나 손 베었어!”
그때 메사돈이 손을 쥐고 코카인에게 달려갔다. 코카인은 이미 감기에 걸린 필로폰에게 붙들려 있었다. 가수들은 병원에 가지 않고 코카인에게 의지한다. 가끔 코카인에게 고환을 만들어 달라는 경우도 있는데 몸에 침투한 병마는 없애지만, 이미 잃어버린 신체 일부는 재생불가라고 했다. 코카인 노랫소리가 숙소 구석구석에 울리자 야바는 귀를 틀어막았다. 이마가 찢어졌어도 저 힘을 빌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가 유세 떠는 꼴도 보기 싫고, 이 상처가 조금도 거추장스럽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침과 점심을 걸렀다. 그간 벌레를 퇴치하려고 안 해 본 짓이 없는데 모두 소용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아사시킬 작정이었다. 점심 무렵, 고자 가수들은 단체로 마트에 갔다. 모르핀은 함께 가자고 칭얼댔지만, 야바는 전혀 동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람이 바글거리는 곳에 갔다간 온갖 세균에 감염될 거다. 행여 옆 사람과 카트 신경전을 하다가 패싸움이 날지도 모른다. 모두 팔다리가 부러져서 병원에 실려가는 도중에 고장 난 엘리베이터에 갇히면 제시간에 출근하지 못할 거다. 패싸움하는 와중에 폰을 떨어트려서 전화도 못 할 거고, 그럼 분명 머리에 있는 알람시계가 작동하고 말 거다.
“그럼 설거지나 해 놔! 빨래도 좀 돌리고! 거실 청소도!”
모르핀은 귀찮은 일만 떠넘기고 숙소를 나섰다. 코카인과 헤쉬쉬도 외출했다. 야바는 혼자 남아 침대에서 뒹굴었다. 제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어젯밤에 닿았던 감촉을 떠올렸다. 침대에서 뒹굴다가 베개 끄트머리만 사용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얼른 중앙으로 머리를 옮겼다. 베게 끄트머리에서 자면 남는 공간에 지나가던 귀신들이 쉬어간다. 하루는 잠결에 몸을 뒤척이다가 입이 턱까지 찢어진 여자와 눈이 마주치고 기절할 뻔했다. 그때 일을 생각하니 소름 끼쳐서 벌떡 일어났다.
화장실에서 깨끗한 거즈로 바꾸고 그가 갈아준 건 상자에 넣어 책상 서랍 한켠에 놓았다. 그 옆에 있던 책을 들추자 파란색 수표 다섯 장이 꽂혀 있다. 그게 백만 원짜리라는 건 오늘 아침에나 알게 되었다. 수표를 도로 넣으려는데 살벌한 책 제목이 못마땅했다. 다른 책에 넣으려 해도 모두 범죄관련 서적뿐이었다.
야바는 외투도 안 걸치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근처 서점에서 시집 한 권을 샀다. 작자나 내용은 관심 없고, 표지와 재질만 따져 골랐다. 숙소에 돌아오니 똘마니 하나가 라면을 끓여 먹고 있었다. 똘마니는 다짜고짜 야바를 끌고 사무실에 갔다. 기하가 급히 호출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임수가 어제 일을 보고 한 건가 싶었다. 함구하겠다던 놈을 믿지도 않았지만, 괜한 배신감이 들었다. 손님과 사적인 신체 접촉이나 따로 돈 받는 건 규칙위반이다. 그렇다면 어젯밤 차이석과 했던 일은 개인적인 걸까? 앞으로 벌점이 얼마나 남았을까? 1,000점을 꽉 채우면 아웃이고, 자신의 벌점은 640점이다. 차이석과 키스한 것과 수표를 숨긴 사실까지 합하면 100점이니까 벌써 740점…….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파라디소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 사장실 문을 열었다. 불안함 반, 귀찮음 반으로 들어서는 순간 야바는 저도 몰래 뒷걸음질쳤다. 기하 맞은 편에 이석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잿빛 슈트 차림의 그는 날렵한 옆모습을 보이며 통화 중이었다. 생각도 못한 터라 사고가 정지했다. 본능적으로 가릴 것을 찾았지만, 있을 리 만무했다.
“글쎄요. 장담은 못 하겠군요. 그쪽이 어떻게 나올지…….”
차이석이 상대방과 대화를 주고받다가 야바를 발견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야바 앞에 서더니 손을 들어 올렸다. 널찍한 손바닥으로 야바의 눈과 코언저리를 가렸다가 뭔가 확인을 마친 듯이 손을 떨어트렸다. 손이 내려가자 찬바람 머금은 얼굴이 눈 속을 파헤치고 들어왔다. 그는 야바와 눈을 얽은 채 통화를 이어갔다.
“물론 목을 조르고 싶었던 심정은 이해하지만, 어젠 형님이 과했습니다. 아무리 설득해도 그쪽이 마음을 안 풀어서 말이죠. 지금도 병원에 가야 된다고 고집을 안 꺾는데…흠…….”
이석은 야바 이마에 붙은 거즈를 스윽 건드렸다. 온후한 손짓은 상대를 안심시켰지만, 직선으로 부딪히는 눈동자는 자칫 한눈팔았다간 서걱 살을 벨 듯한 예리함이 있었다. 그는 느닷없이 야바의 팔을 붙들어 소파에 앉히더니 폰을 내밀었다. 야바가 멀거니 있자 폰 들린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받아.”
“누군데?”
“차명환. 직접 말하고 싶다는군.”
“애간장이 바짝 달았어.” 그가 낮게 덧붙였다. 야바는 그가 넘겨주는 폰을 받았다. 차이석은 상체를 구부린 채 무표정한 얼굴로 응시했다. 야바는 폰을 귀에 갖다 댔다. 상대방이 건넨 첫 마디는 쉭쉭 거리는 불편한 호흡소리였다. 어쩌면 악에 치받쳐 이를 가는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저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서로가 한참 동안 팽팽한 숨소리만 주고받았다. 문득 희미한 흐느낌이 들렸다. 깊숙한 흐느낌은 점점 격해지고 끅끅거리는 소리로 변했다. 그 순간이었다.
[살려줘…….]
짓눌린 흐느낌은 마치 명왕성 끝자락에서 오는 것 같다.
탁――――!
야바는 소스라치며 폰을 끊어버렸다. 머리가 하얘져 손도 움직이지 못했다. 귀신 본 낯을 한 야바에게 눈길이 집중했다. 기하는 눈을 얇게 뜨며 물었다.
“뭐래?”
“……나한테 살려 달래.”
단어 구석구석에 기름칠해야 할 만큼 뻑뻑했다. 기하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그는 빠르게 고개 돌려 이석을 응시했다. 차이석은 소파에 깊이 등을 묻은 채 꼬았던 다리 위에 손을 올렸다.
“차명환이 너한테 목숨을 맡겨보기로 했어.”
“왜, 왜? 어젠 분명히 안 한다고 했잖아.”
“암세포가 뇌까지 침투했나 보지.”
야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제 실성한 놈처럼 난동부리던 차명환이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꾼 건지 혼란스러웠다. 물론 자신이 코카인이라는 가정하겠지만, 전혀 예상 못 한 일이기에 사고가 뭉개졌다.
“나, 나는 그런 거 못해. 난 살려줄 능력 없어.”
“알아. 그런 능력이 있다면 널 선택할 이유가 없으니까.”
차이석이 대답했다. “제기랄.” 맞은 편에서 기하는 안면을 신경질적으로 쓸었다. 사무실 안에서 유일하게 여유로운 건 차이석뿐이었다.
“당황할 필요 없어. 예상했던 변수였고, 어차피 네게 힐링 능력이 없으니 빈 깡통이나 마찬가지니까. 일단 출발하지. 지금 너만 오길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어.”
생각을 정리도 하기 전에 차이석이 야바의 팔을 붙들고 일어나려 했다. 그때 기하의 목소리가 길목을 붙들었다.
“몇 가지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차이석이 자리에 앉으며 시선을 돌렸다. 기하는 말을 이었다.
“하나는, 야바가 먹는 약이 있습니다. 아침은 저희가 챙기면 되지만 저녁엔 누군가 챙겨줘야 합니다. 혼자서는 거르기가 일쑤니까요. 두 번째는, 이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가면은 절대 벗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아무리 코카인의 대타라고 해도 얼굴을 노출 시키면 차 후에도 곤란하니까요.”
“약은 뭡니까?”
“항불안제입니다. 보시다시피 머리가 정상이 아니라 자주 헛소리를 할 테니 새겨들으실 필요 없습니다.”
“미친 건 너잖아. 멀쩡한 애들 잡아다가 전부다 고자…….”
기하는 재빨리 일어나 야바의 입을 틀어막았다.
“입 닥쳐.”
“너나 닥쳐.”
야바는 놈의 손가락을 꺾으며 떼어냈다. 차이석의 시선이 야바에게 향했다. 그의 입가에 짓궂은 미소가 걸렸다.
“벌레 퇴치 약?”
야바는 그의 입꼬리를 빤히 보았다. 어젯밤 그의 감촉이 닿았던 피부가 모두 뜨거워졌다. 기하의 목소리가 뭉근한 기분을 깨부쉈다.
“아, 별건 아니고, 이건 그냥 알아두시기만 하라는 건데…. 야바 녀석이 아무리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은 짓을 해도 머리는 건드리지 말아 주십시오. 두통이 있어서 특히 머리 쪽이 예민합니다.”
이석의 눈길이 야바의 머리에서 발아래까지 긁어 내렸다가 떨어져 나갔다.
“어디 때릴 때도 없어요.”
“마지막으로 10시 안에는 반드시 돌려보내 주십시오. 다른 건 둘째치고 시간 엄수는 꼭 지켜 주시길 바랍니다. 사정상 늦더라도 반드시 데려와 주십시오. 행여 외박하는 일은 없도록…….”
“그럴 일 없어요.”
차이석은 단칼에 대답했다.
“그러길 바랍니다.”
기하의 눈빛에 힘이 들어갔다. 그에 이석의 시선이 꿈틀거렸다.
“끝입니까?”
“예. 전무님.”
예민한 기운을 풀어헤친 기하는 정중한 미소를 지었다. 차이석은 곧바로 야바의 팔을 붙들며 일어났다. 걸음을 옮기려다 말고 우뚝 멈췄다. 그는 뒷목을 긁으며 말했다.
“믿음직한 지원군을 얻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모두 잘해낼 거라고 믿어요. 모든 변수에 대한 대응책은 생각 중이니 골치 아픈 건 신경 안 써도 돼요.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놈이 항상 뒤통수를 치죠. 경험상 내가 실수했던 일은 극히 드뭅니다. 언제나 상대방 실수로 일이 틀어졌죠.”
차이석은 정돈한 머리카락을 손으로 흐트러트렸다.
“당신들도 예외란 법은 없을 겁니다. 물론 모든 건 내가 알아서 하겠지만, 만에 하나 당신들이 섣부른 실수를 할 경우…. 사장, 실장,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
차이석은 길다란 손가락으로 기하와 임수를 차례로 찍었다. 기하와 임수의 얼굴은 전에 없이 굳었다. 손가락은 마지막으로 야바에게 당도했다. 날을 세웠던 손가락이 야바의 입술을 나른하게 스쳤다.
“그리고 너.”
그 순간 차이석의 눈에 잔혹한 빛이 섬뜩하게 번쩍였다. 똬리 튼 사냥감의 뼈를 으스러트려 모조리 씹어 삼키듯 사납게 뇌까렸다.
“전부 나한테 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