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track 01
그날은 야바의 불알 주머니가 유독 쪼그라든 날이었다. 그런 날은 몸이 쳐지고 머리에 지방이 낀 것처럼 더디게 돌아갔다. 뇌 영향을 지대하게 받는 혓바닥도 제멋대로 움직였다. 야바는 바지에 손을 넣고, 허벅지 살에 묻힌 음낭을 찾아 만지작거렸다. 텅 빈 주머니와 털오라기 하나 없는 성기가 서러웠다. 알만 없다 뿐 성기는 온전했고, 사정도 하는데 이 허전함은 어떤 감정에 비유해야 할지 모르겠다. 씨 없는 수박 앞에서 경건해지는 마음이나, 자궁 없는 여자가 눈물을 짜면 숙연해지는 감정과 상관있는 걸까? 정신은 여성을 갈망하지만, 육체가 갈망을 따라가지 못하는, 그 균형이 일그러진 세계말이다. 불알 주머니 상태에 따라 하루가 좌우된다는 건 비참한 일이었다.
머리맡 창문 블라인드를 걷어내자 책상과 TV에 햇볕이 와락 쏟아졌다. 야바는 빛 냄새를 맡다가 살덩이 몸을 일으켰다. 1인용 침대가 주저앉을 듯이 삐걱거렸다. 숙소에 딸린 욕실에 가서 샤워부터 했다. 덕지덕지 붙은 살을 씻으려면 한참 걸리기에 남들보다 빨리 움직여야 했다. 수증기가 물러나고 거울에는 안색 나쁜 패배자의 결정체가 나타났다. 칙칙한 피부에 눈코입은 살 무더기에 파묻혀 찾는데도 한참 걸릴 정도였다. 거울에서 시선을 긁어모으며 머리카락에 샴푸를 묻혔다. 축축 처진 살덩이를 가위로 잘라내고 싶지만, 숙소엔 칼이나 가위를 들이는 건 규칙위반이라 구하기가 여의치 않다. 요즘 야바가 파라디소 주방을 어슬렁대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숙소에는 7명이 둘, 둘, 셋 짝을 이뤄 방을 사용했는데 야바는 코카인과 함께 방을 썼다. 샤워를 마친 야바는 방에 있는 정수기 쪽으로 갔다. 뜨거운 물을 받고 손에 든 흰 가루를 넣었다. 순식간에 가루가 녹자 물이 좀 더 식도록 정수기 위에 올렸다. 코카인이 잠든 침대 앞에 섰다. 코카인은 습관처럼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단잠에 빠졌다.
9년 전, 둘이 함께 기하에게 납치당한 뒤 허름한 아파트에서 깨어났다. 눈을 떴을 때 채우는 고환을 훔쳐간 사람들보다 더 무서운 눈을 하고 있었다. 세진이는 그런 채우가 증오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지만, 원망도 사과하지도 않았다. 먼지처럼 가벼운 말로는 이 엄청난 뒤틀림을 바로잡을 수도, 구원할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채우는 더이상 그 일에 관해 말을 꺼내지 않았으며, 둘은 다시 친구가 되었다. 그 뒤 여기 끌려온 아이들과 함께 지독한 성악 훈련을 받으며 고객에게 걸맞은 몸가짐을 배우고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시간이 지나 세진이는 야바가 되었고, 채우는 코카인이 되었다. 23살이 된 지금, 코카인은 기적 같은 노래로 파라디소 중심이 되었고, 야바는 추한 몰골과 지방 덩어리만 남은 채 변두리로 밀려났다.
야바는 코카인이 덮은 이불을 확 젖혔다. 동시에 부드러운 옷감으로 감싼 몸체가 드러났다. 자신은 죽었다 깨도 가질 수 없는 곡선이었다. 코카인은 얼굴 대부분을 베개에 파묻은 채 야트막한 숨을 뱉고 있었다. 지금 아주 살짝만 목을 졸라준다면 질식사하기 좋을 자세였다. 손을 뻗어 코카인의 목덜미를 조르듯이 감쌌다. 야바의 피부와 혈관 속에 잠들었던 생명체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손아귀에는 힘이 들어갔다 풀어지며 이성과 본능을 오르락내리락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손 방향을 바꿔 코카인 어깨를 흔들었다.
“일어나.”
두어 번 어깨를 흔들자 누구나 넋 잃을 만한 얼굴이 베개 속에서 드러났다. 빛이 스민 피부는 아침에 볼법한 퍼석함 없이 윤기가 흘렀다. 코카인은 잠이 덜 깬 눈을 연신 감았다떴다. 야바는 그의 침대맡에서 작은 상자를 발견하고 집어들었다.
“웬 시계야?”
“어제 김 회장님이 주셨어. 너무 비싼 거라 거절했는데 하도 고집부리셔서 하는 수없이 받았어.”
김 회장은 간경화로 다 죽어가던 노인이었는데 코카인의 힐링을 받고 나서 완쾌되었다. 기적을 맛본 김 회장은 그 후 뻔질나게 코카인을 찾았다.
“진짜 노래만 불러주는 거 맞아?”
코카인이 시선을 내던졌다.
“무슨 뜻이야?”
“노래 몇 곡 불러준 대가라기엔 너무 비싸서. 게다가 힐링 비용도 충분히 냈을 텐데.”
물론 보통 노래가 아니지만. 야바는 짙은 남색 케이스를 침대맡에 올리고, 굳은 얼굴로 변한 코카인을 바라보았다. 표정과는 달리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그런 거 아니야. 손님과 개인적인 친분은 규칙에 어긋난다는 거 몰라?”
“규칙이라고 꼭 지키란 법은 없잖아. 전에 모르핀도 손님한테 엉덩이 대주다가 걸려서…….”
“그건 모르핀 얘기고. 아무튼 다음에 오시면 돌려 드릴 생각이야.”
“그냥 모른 척하고 받지? 다들 못 받아서 안달이잖아.”
“힐링 비만 해도 충분해. 회장님이 좋아진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음, 코카인은 더 실랑이하기 싫다는 듯 달콤한 신음을 내며 베개에 얼굴을 비볐다. “어차피 네 주머니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잖아.” 야바는 끝까지 꼬리를 물었지만, 상대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코카인 예약 명부에는 공란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노래에 홀린 사람은 약쟁이처럼 중독현상을 일으켰고, 고가의 선물 공세는 물론이거니와 노래를 듣고자 전 재산을 들어먹은 인간도 있었다. 그것은 또 다른 중독의 시발이었고, 기하가 노리는 것이었다. 야바는 침대 모서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할 일도 없는데 네 가면 닦아 줄까?”
“그럼 고맙지.”
“대신 내 운동화 빨아 주기.”
풋, 코카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입바람을 터트렸다. 야바는 방 한쪽으로 가 다리를 조금 벌리고 발성연습을 했다.
“아~~~아~~~~~”
변성하지 못한 목소리가 공명점을 울리며 음을 밟아 올라갔다. 잠시 후 샤워하고 돌아온 코카인도 합류했다. 코카인은 어느새 훌쩍 따라와 3옥타브를 넘어 7옥타브까지 앞질러 갔다. 야바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간격을 벌리려 목소리를 쥐어짰지만, 이미 코카인은 저만치에 있었다. 할 마음이 뚝 사라져 연습을 접고 침대에 드러누워 버렸다. 곧이어 발성 연습을 마친 코카인은 평소 습관대로 아까 야바가 떠놓은 물을 마셨다.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아무 의심 없이 말이다.
“누가 이랬어?”
헤쉬쉬는 대기실에 앉아 있는 청년들을 보며 말했다. 맑은 테너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누가 이랬냐고 묻잖아.”
헤쉬쉬의 손에는 베네치아 가면이 들려 있었다. 상아색 가면은 광대뼈가 깨진 상태였다. 가면 주인인 코카인은 그것을 망연하게 보고 있었다. “누구냐니까?!”헤쉬쉬가 재차 다그쳐도 청년들은 의아한 눈짓만 주고받았다. 야바는 조금 전 여섯 번째 샤워를 마치고, 보습 크림을 바른 다음 두툼한 팔뚝을 흰색 토시에다 욱여넣는 중이었다. 그때 발치에 망가진 가면이 떨어졌다. 고개를 들자 헤쉬쉬가 살벌하게 보며 물었다.
“너 아까 코카인 가면 가지고 다니는 거 봤는데. 니가 이랬냐?”
야바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니.”
아마 그럴 거다. 코카인 가면을 깨끗하게 손질하고 샤워하러 간 게 전부였다. 다시 토시를 끼는데 헤쉬쉬가 주먹만 한 것을 던졌다. 야바의 보습 크림이었다.
“그럼 이건? 가면에 보란 듯이 박혀 있던데, 여기서 이 크림 쓰는 거 너밖에 없잖아.”
“몰라. 기억 안 나.”
기억 안 난다는 건 진심이다. 진심이지만, 발뺌 못 할 증거까지 있으니 아마 자신이 그랬으리라 생각했다. 가끔 정신을 차리면 코카인 물건을 망가트리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으니까.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순간 코카인과 시선이 엮였다. 야바는 흐트러짐 없는 표정으로 그를 마주했다. 저 고결한 얼굴이 어떻게 일그러지면서 발광할지, 그럼 자신은 어떻게 대응할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심장이 벌떡거렸다. 그러나 코카인은 고요한 눈으로 바라볼 뿐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매번 코카인 대신 설치는 헤쉬쉬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야바의 얼굴에 매서운 주먹질을 퍼부었다.
“이 또라이 새끼! 더는 안 참아!”
그러면 코카인이 만류하는 뻔한 그림이 그려졌다.
“다른 거 쓰면 되니까 그만 해. 야바가 그런 거 아니라잖아. 또 경고 먹고 싶어?”
“니가 자꾸 봐 주니까 저 새끼도 까부는 거라고! 이거 놔봐 좀!!”
“그만 하라고 했잖아.”
코카인이 목소리를 낮추자 헤쉬쉬의 주먹이 멈칫했다. 코카인은 그 일이 있고 나서 아무리 화나는 일이 있어도 소리치지 않았다. 주문에라도 걸린 양 헤쉬쉬는 한숨을 쉬며 손을 내렸다. 그리고 험악한 눈초리로 야바를 노려보았다.
“한 번만 더 걸리면 내 손에 죽어. 그땐 누가 말려도 소용없을 줄 알아.”
코카인과 헤쉬쉬 모두 제자리에 돌아가고 청년들도 부산하게 의상을 점검했다.
“기분 나쁜 새끼.”
어디선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바는 무표정한 얼굴로 코피를 닦아냈다. 불현듯 볼 아래 벌레가 꿈틀거려 손톱으로 박박 긁었다. 한 때는 죽을 만큼 미안했다. 자신의 밀고로 인생 꼬인 코카인이기에 의무적인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나 죄책감이 증오로 바뀌는 건 약간의 시간과 사소한 사건 몇 개만으로 충분했다.
타악――――! 야바는 크림 통을 힘껏 내던졌다.
도시가 밤을 준비하면 테라피도 그만큼 바빠졌다. 파라디소는 테라피를 가장한 변태 소굴이었다. 인간이란 게 성욕을 못 풀면 심신에 하자가 생기므로 엄연히 테라피라는 게 기하의 주장이다. 채찍이나 쇠사슬이 없으면 발기 불능이거나, 소변을 받아먹어야 오르가즘을 느끼거나, 시체에 흥분하거나, 동물에게 깔려 신음하거나, 혹은 그 반대…. 비정상적인 성욕을 채울 데 없는 사람들 덕분에 파라디소는 10년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베네치아 가면을 쓴 청년 7명이 무대 뒤에서 대기 중이었다. 커튼 너머에서 기다리는 고객에게 노래를 불러줘야 했기에 입술은 드러난 가면이었다. 청년들은 일제히 풍성한 느낌의 흰색 바지와 민소매 상의, 팔뚝까지 덮는 토시를 착용한 공산품 인형 같았다. 2차 성징에서 가로막힌 목소리는 엷은 테너톤이 대부분이었고, 턱수염도 나지 않았다. 코카인은 파라디소에서 유일한 힐러였다. 나머지는 기하에게 잘못 걸려 화음이나 넣어주는 찌끄러기인데 야바도 그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그들 모두 아름다운 보이소프라노를 가졌고, 모두 마약이름이었으며, 모두 고자였다.
야바는 가면 틈새로 손가락을 최대한 쑤셔 넣어 피부가 뻘겋게 부어오를 만큼 긁어댔다. 또 벌레들이 기어나와 얼굴에 낀 지방을 뜯어먹었기 때문이었다. 눅눅한 피부에 지방까지 덕지덕지 붙었으니 수만 마리 벌레가 알을 까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언제부터 벌레가 몸에다 알을 깠는지는 기억이 없지만, 나날이 늘어가서 미칠 것만 같다. 예전에 혈관에 숨은 걸 모조리 빼내려다가 기하의 방해로 실패했다. 또 태워죽이려다가 헤쉬쉬의 방해로 실패, 질식사도 실패. 박멸 계획은 싸그리 실패로 돌아가서 묘안을 물색 중이다. 곧이어 눈알에서도 기어나오자 야바는 가면을 벗어던졌다.
“으으……!!”
땀구멍에 숨었던 벌레들까지 기어나와 속수무책이었다. 야바는 팔딱팔딱 날뛰며 더러운 것을 털어냈다. 그때 누군가 야바의 손을 우악스럽게 잡았다.
“얌전히 좀 있어.”
제지한 건 임수였다. 고환을 훔쳐간 도둑놈의 개였다. 야바는 매서운 눈을 하고 손을 뿌리쳤다.
“벌레 때문에 가려워. 샤워하고 와도 되지?”
“벌레 같은 건 없어. 그리고 반말하지 마.”
“나 잠깐 샤워하러 간다.”
“반말하지 말랬어. 이제 들어갈 시간이야. 좋은 말 할 때 가면 써.”
“가렵다는 말 안 들려?! 가려워! 가려워!”
야바가 소리 지르자 짜증 담은 눈초리가 와락 몰렸다. 야바는 팔을 벅벅 긁으며 벌레를 흘끗거렸다. 벌레는 아주 작고, 타원형 머리와 몸통에, 털인지 다린지 모를 게 숭숭 달렸다. 이렇게 또렷하게 보이는데 사람들은 위로 대신 또라이 취급이었다. 임수는 푸른색 커튼을 힐끔 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저분들, 사장님이 공들이는 분이야. 실수하면 알아서 해.”
“그래 봐야 고자 구경하러 온 변태들이잖아.”
“각박한 세상에 시달려서 심신을 치유하러 온 사람들이지. 남들하고 다른 건 조금 더 특별한 계층이라는 것뿐이야.”
“걔들은 노래엔 관심 없어. 다들 우리 물건이 제대로 달렸는지 아닌지만 궁금한 거야.”
“손님들은 너희들 아랫도리 사정 같은 건 몰라. 그걸 알게 되는 일이 생기면 그거야말로 문제지.”
“그리고 반말하지 마.” 하며 임수는 덧붙였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커튼 너머에서 들렸다.
“그럼 곧 들이겠습니다. 차 전무님.”
동시에 기하가 장막을 넘어왔다. 40대를 바라보는 그였지만, 세련된 차림과 행동 때문에 나이보다 젊어 보였다. 모두의 가면과 의상을 점검한 그가 코카인에게 말했다.
“불시에 들이닥쳐서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웠어. 지금 상태가 별로니까 잘 처신하고. 뭐, 알아서 잘하겠지만…. 오늘은 여기만 하고 푹 쉬어라.”
“네. 사장님.”
코카인을 선두로 청년들은 무대 위에 정렬했다. 야바도 임수 손에 끌려가는데 기하가 반대쪽 팔뚝을 잡으며 물었다.
“너 약은?”
“나 잠깐만 샤워 좀 하고 올게. 딱 10분만.”
“안 먹었군.” 기하가 한숨 쉬며 임수를 흘겨보았다.
“약 꼬박꼬박 챙기라고 했잖아.”
임수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했다. 기하는 다시 야바를 보며 미간을 꿈틀댔다.
“저 뒤에 있는 사람들, 이 시간에 예약도 없이 코카인을 부른 것만으로도 따로 설명이 필요 없겠지?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거든 얌전히 병풍 노릇 해 주라고. 그게 싫으면 감봉에 벌점 추가야. 특히 오늘은 따블로.”
야바는 손을 멈추고 말았다. 일주일 전, 이 사장이 야바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며 조롱했다. 다른 건 참아도 자신의 외모를 갖고 노는 것만은 못 참았다. 그 순간 이성이 날아가면서 주먹도 날아갔다. 파라디소에서 손님은 신이었다. 신의 면상에 주먹을 날린 야바는 신이 노여움을 풀 때까지 창고에 갇혔다. 풀려난 뒤에도 엄청난 벌점까지 주어졌는데 기하가 싼 걸로 끊어 준 덕에 간신히 ‘아웃’은 모면했다. 아웃 되면 불알 값도 물 건너가고 무서운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버텨야만 했다. 그때 다시 나타난 임수가 알약 몇 개를 야바 입속에 쑤셔 넣고 물도 들어부었다. 우울과 불안에서 해방 시켜주는 이 약은 벌써 1년째 먹고 있다. 야바는 약을 삼키다가 불쑥 손을 들어 기하의 턱을 만졌다. 푸르스름한 수염을 손끝으로 쓸며 물었다.
“면도 안 했어?”
기하는 흠칫했지만, 피하진 않았다. 야바는 가면을 통해 감정 없는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고자여서 좋은 점은 면도기 값 굳는 거 말고는 없는 거 같아. 계속 장점을 찾는 중인데 이거다 싶은 게 없어. 너라도 생각나면 말해 줄래?”
기하는 뒤늦게 야바 손을 내쳤다. 야바는 웃음이 새는 입술을 쥐어뜯으며 걸어갔다. 턱을 만지는 척하면서 기하에게 벌레알을 옮겼기 때문이었다. 아마 사나흘 뒤면 벌레가 득실득실한 방에서 일어날 거다. 이건 전초전에 불과했다. 언젠가 기하에게 자궁 없는 여자의 비애를 느끼도록 하고 말 것이다. 야바는 사장의 명령대로 동료 옆에서 얌전히 대기했다. 임수는 그런 야바를 무뚝뚝하게 주시했다.
“포기해. 언제 쟤한테 이겨본 적 있어?”
기하는 임수에게 한마디 던지고 걸음을 돌렸다. “그래도 반말은 아니죠.” 임수는 궁시렁거리며 따라갔다.
청년들이 서 있는 곳은 평지에서 약간 올라왔고 푸른 조명과 수증기로 물속에 가라앉은 재단을 방불케 했다. 모두 대기한 틈바구니에서 야바는 코카인을 힐끔거렸다. 코카인의 가면은 좀 특별했다. 가면을 덮은 금박은 훨씬 화려했고, 깃털 끝에 크리스탈 구슬이 달려 움직이면 맑은소리가 났다. 누구라도 소리를 따라 시선이 향하도록, 누가 봐도 그가 중심임을 알도록 말이다.
그때 양쪽으로 커튼이 촤악 열리자 인공 수초와 벽면 전체가 물속을 연상케 하는 밀실이 한눈에 보였다. 동시에 어디선가 남녀가 뒤섞인 웃음소리가 들렸다. 실내 한가운데 자리한 풀장과 물거품을 거슬러 바라보았다. 풀장 건너편에 있는 무리는 남녀가 한대 뒤엉켜 낄낄거리고 있었다. 테이블이며 바닥에 뒹구는 술병과 실내 가득한 마리화나 향은 그들이 이미 제정신이 아님을 예고했다. 헤쉬쉬가 코카인 귓전에다 속삭였다.
“완전히 맛이 갔잖아.”
“상관없어. 그냥 시작할게.”
코카인이 시작할 타이밍을 노리고 있을 때였다. 손님 무리에서 누군가 느릿느릿 일어섰다. 그는 직립보행하는 사람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휘청거리며 오다가 풀장에 빠져 물거품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친구들은 약에 쩔어 어떤 상황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다. 코카인과 찌끄러기들 모두 흠칫하며 당황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왜, 왜 저래?”
“꺼내줘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러나 송장 치르나 마나 하는 소란도 잠시였다. 곧이어 물거품 속에서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달팽이와 시합해도 한참 뒤질 만큼 느리게 헤엄쳐서 육지로 올라왔다. 순간 야바의 심장이 맹렬하게 공격당했다. 그 남자였다. 야바가 아는 건 기본적인 것뿐이었다. 그가 ‘차 이석’이라 불리는 사람이며, 이름을 대면 모두다 아는 태령가 손자이며,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여기에 오는데 지금껏 맨정신인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것 정도.
이석이 걸을 때마다 셔츠와 바지가 물을 척척 게워냈다. 그는 한눈팔지 않고 걸어와 가면에 가린 코카인을 물끄러미 보았다. 야바는 가면 아래 숨어서 그를 마음 놓고 보았다. 그는 턱을 치켜들고 봐야 할만큼 컸고 낮엔 단정하게 빗어넘겼을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시원하게 트인 눈매는 한번 주시하면 질릴 때까지 쳐다보고야 마는 끈질김이 있었다. 코카인은 그에게 고개를 조금 숙여 인사했다. 이석은 약에 쩔은 눈에 힘을 주며 어떻게든 코카인에게 초점을 집중하려 했다.
“안녕.”
성대까지 젖었는지 눅눅한 목소리였다.
“하도 반가워서 지름길로 왔지. 넌?”
“……예?”
“나 봐서 반갑냐고 묻는 거야.”
잠깐 침묵하던 코카인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석은 목을 조르는 넥타이를 뒤로 넘기며 그대로 손을 코카인의 가면에 가져갔다. 그러자 코카인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잡아뺐다.
“얼굴은 볼 수 없다고…….”
“아, 그랬지.”
이석은 가면에 댄 손을 거두었다. 상체를 기울여 겨우 드러난 코카인의 입술과 가면 구멍으로 보이는 눈동자를 관찰했다. 그 아래 얼굴을 보고 싶어 견딜 수 없는 표정이다. 그때 무리에서 있던 성재가 위에 올라탄 여자를 치우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휘청이며 당도한 그는 가면에서 반사되는 빛이 눈 부신지 미간을 찡그렸다.
“이건 또 무슨 축제의 향연이야? 누가 코카인이야? 코카인은 손!”
“맞춰 봐.”
이석이 말했다. 성재는 눈앞에 있는 청년을 껄렁껄렁하게 훑었다. “얘네. 딱 감이 왔어.” 하며 코카인을 정확히 짚었다.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 좀 까보지?”
성재가 코카인 가면에 손을 가져가자 이석은 그 손을 잡아 아래로 내렸다. 손아귀 움직임은 친구의 손목을 비트는 듯했다. “알았어. 알았어.” 하며 성재는 팔짱 낀 채 청년들을 살폈다. 이런 데 오는 부류는 어딜 가도 고개 숙일 일 없는 사람들이었다. 저들의 모습은 이미 서열이 정해진 정글에서나 볼 수 있는 평화였다.
“그럼 아직 얼굴도 못 봤단 건가? 차 이석이가 얼굴도 못 본 녀석한테 빠지다니…. 놀랄 노자군.”
“목소리만으로 상상하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야. 조를 땐 어떤 말투일지, 절정으로 갈 때 어떤 소리를 낼지 그런 거.”
이석은 말 그대로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이지만, 몇 겹이나 쳐진 비밀마저도 즐기는 듯했다. 코카인은 이미 익숙한지 동요 없이 대꾸했다.
“힐링을 원하신다고 하셔서 왔는데 저희가 방해됐다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목덜미는 약간 붉어진 상태였다. 이석은 때를 놓치지 않고 가면 아래 있는 코카인의 입술을 주시했다.
“이렇게 연약한 피부는 조금만 빨아도 금방 자국이 생기지. 입술색은 젖꼭지 색깔과 비슷하다는데, 흠…….”
그것은 말이라기보다 배설에 가까웠다. 성추행당한 마냥 코카인의 귓불 아래엔 땀이 맺혔고, 헤쉬쉬의 주먹이 희미하게 떨렸다. 이 모든 걸 그늘진 곳에서 지켜보던 야바는 시선을 돌려버렸다. 성재가 엄지로 풀장 너머에 있는 친구들을 가리켰다.
“니가 그렇게 노래를 잘한다고? 얼마나 대단한지 한 곡 뽑아봐라. 저기 상처입은 영혼이 아주 많으니까.”
“이왕이면 옷도 전부 벗어 던져! 우리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라구!”
친구들은 헤롱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인위적인 조소에 청년들 분위기가 싸늘해졌지만, 누구도 신의 조롱에 불만을 드러내지 못했다.
“아무거나 불러 줘. 우린 저기서 얌전히 감상하지.”
차이석은 코카인의 가면에 달린 깃털을 부드럽게 쓸고는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리던 그의 시선이 야바에게 부닥쳤다. 검은 눈동자가 신경까지 투과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현기증에서 빠져나오는 데까지 한참 걸렸다. 이석은 뜬금없이 검지로 자신의 오른쪽 볼을 가볍게 그었다.
“피 난다.”
야바는 가면 구멍을 통해 그를 멀거니 볼 뿐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수 없다는 게 맞을 거다. 피를 닦으려고 손을 움직이면 팔뚝 살이 출렁거릴 것이다. 축 처진 볼살이 손바닥에 밀리는 꼴도 보이기 싫었다. 반응 없는 야바를 보며 이석은 눈을 가늘게 좁히더니 매끈한 미소를 지었다. 기하는 저들의 친절함에 현혹되지 말라고 했다. 저토록 친절한 얼굴로 존나게 잔인해지는 부류라고 했다.
자신을 알지 못하는 눈동자가 떨어져 나갔다. 야바는 그가 등 돌린 틈을 타 볼을 문질렀다. 아까 심하게 긁어선지 흰 토시에 피가 배었다. 성재는 친구들 자리에 가서 앉았고 차이석도 휘적휘적 걸어가 무리에 합류했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요염한 여자가 한쪽 젖가슴을 비벼댔다. 그는 여자를 옆으로 치우며 상체를 소파 등받이에 묻었다. 앉았다기보단 빨래처럼 널린 듯했다. 차이석이 고개를 가볍게 틀며 말했다.
“들어 봐. 왜 모두 마약이름으로 지었는지 알게 될 거야.”
“거참, 옷이나 벗고 하라니까? 노래라는 게 듣는 것만 전부가 아니라구!”
“꺄하하…….”
사람들은 조소하거나, 시큰둥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환상적인 무대에 갇힌 청년들, 정적 위에 과일 씹는 소리, 술잔 부대끼는 소리가 감돌았다. 그 순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코카인의 음성이 빛처럼 퍼져 나갔다. [라흐마니노프의 Vocalise Op.34 No.14]였다.
AH~~~AH~~~~~~~~~
여자의 소프라노만큼 유려했지만, 훨씬 힘차고 폭발적이었다. 성인 남자에게서 결코 나올 수 없는 보이소프라노에 무방비 상태에 있던 그들은 모든 동작을 멈추었다. 비웃는 표정은 사진처럼 정지됐고, 시큰둥하던 사람의 눈이 더없이 커다래졌다. 사람이, 특히 성인 남자에게서 천연의 미성이 나오자 그 음색과 기교에 넋 빠진 얼굴이었다. 이성으로 판단하는 건 거기까지였다. 저음에선 가느다란 미성으로 붙들어 점점 기대감을 고조시켰다가 고음역에선 뇌를 관통하듯 거침없이 치고 올랐다. 상상을 초월한 음역에 청중은 주체 못할 만큼 황홀한 표정이었다. 그의 리드를 따르며 청년들이 화음을 빚어냈다. 특별한 가사 없는 단선율이었으나 신비로운 목소리는 물속처럼 깊고 풍부한 생명이 넘쳤다. 이 퇴폐적인 방이 담아내기엔 지극히 투명한 소리가 퍼졌다. 이석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초점 없는 눈으로 코카인을 보고 있었다. 다음 레퍼토리가 이어졌다. 바흐, 구노의 아베마리아였다.
Ave Maria, gratia plena Dominus tecum Benedicta tu in mulieribus
et benedictus fructus ventris tuis Jesus.
헤쉬쉬와 코카인이 한 음절씩 주고받다가 다시 코카인이 넘겨받았다. 같은 노랫말이어도 코카인을 통하면 특별한 언어가 됐다. 위대한 모성처럼 듣는이를 감싼다. 처음 야바의 영혼을 꽁꽁 묶어 버렸던 그날처럼 변함없이, 그보다 더 아름답고 신비롭게…. 야바는 노랫말을 잘근잘근 씹어 대충 뱉었다. 코카인의 들러리 설 생각도 없을뿐더러 성대에 살이 껴서 제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자기의 말라비틀어진 음낭이 열심히 노래했다.
Sancta Maria, Sancta Maria, Maria Ora Pro nobis
Nobis peccatoribus Nunc et in hora, in hora mortis nostrae
코카인이 몽환적인 음성으로 이끌자 찌끄러기들의 화음이 뒤따라갔다. 곧이어 코카인 목소리가 몇 겹이나 중첩된 화음을 짓밟고 올라섰다. 그치지 않고 야바의 화음도 짓뭉개고 더 높이 치고 올라갔다. 드넓은 방안이 좁게 느껴질 만큼 풍부한 성량이 구석구석에 공명했다. 정교한 음색과 맑은 비브라토는 그 옛날 뱃사공을 유혹했던 세이렌처럼 혼을 빼앗는 노랫소리였다. 청중은 성인이 자아내는 미성에 눈을 감고 몸과 마음을 늘어트렸다. 이석은 코카인에게서 시선을 고정한 채 몽롱한 눈을 하고 있었다. 코카인이 노래할 때마다 공기를 들이마시는 가슴이 부풀고 하늘거리는 어깨에 리듬이 올라탔다.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저 음성만으로 극상의 아름다움을 상상할 터였다.
야바는 제 시야에 난입한 빛을 홀리듯이 응시했다. 거대한 물거울에 반사된 빛이 눈을 찔렀다. 눈 감지 않고 그 시림을 음미했다. 빛의 미립자는 무엇일까? 빛의 미립자는 다른 사람의 어둠으로 이뤄졌다. 빛은 굴절도 후진도 없이 앞으로만 뻗어 나가기에, 저토록 이기적으로 빛나는 것이다. 야바는 제 고막을 찌르고 싶었다.
Amen. Amen. AH…….
코카인의 목소리가 공간에서 조용히 물러났다. 노랫소리보다 무거운 정적이 밀실을 짓눌렀다. 코카인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보다 스스로 몰입했던 시간에서 헤어나오는 일이 힘겨웠기 때문이었다. 다른 청년들 역시 코카인이 창조한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손님들은 모조리 넋 나간 표정이었고 반 전라의 여자들은 마스카라 범벅이 된 채 눈물까지 흘렸다. 어정쩡한 자세로 굳어 있던 친구들은 느닷없이 고함을 질렀다.
“이, 이거 죽이잖아! 어떻게 이런 목소리를 내지? 변성기는 훨씬 지난 거 같은데!”
“나 첫 소절 나올 때부터 숨을 못 쉬었어! 소름 돋은 것 좀 봐…!”
“뭐, 뭐야? 목소리가 꼭 플롯 소리 같아…!”
격앙된 여자들의 손 떨림이 여기서도 보일 정도였다. 성재도 믿기 어려운 표정으로 여운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요란한 가운데 차이석만은 움직이지 않았다. 상체를 소파 뒤로 한껏 젖혀서 목 없는 시체처럼 앉아 있었다. 그러다 머리가 천천히 올라와 앞으로 고꾸라졌고 물 먹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움켜쥐었다. 그가 다물린 입술을 조금 열며 후우, 하고 숨의 매듭을 풀었다.
“나 섰어.”
친구들이 불룩한 그의 중심에 과일을 던지며 낄낄거렸고, 여자들은 손사래 치며 야유를 보냈다. 이석은 혼자 심각했다. 코카인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야바는 불룩하게 솟은 그의 바지를 바라보다가 코카인을 보는 이석을 들여다보았다. 값비싼 수트는 원래 가치를 짐작 못 할 만큼 흐트러졌다. 그의 껍데기는 귀족이지만, 저 눈빛만은 시장바닥 생선가게에서나 봄직 한 냄새가 났다. 가끔 흘리는 웃음도 날생선 비늘처럼 가볍고 비리기만 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눈을 떼지 못하는 건…. 어쩌면 그것이 바다 냄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