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Intro 02
추적하는 자.
이 모든 일은 아버지의 일기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일기장에 적힌 글귀가 기하 인생을 바꿔 놓았다.
급조한 사무실은 작은 매트리스 하나와 이 빠진 책상, 검은 소파가 전부였다. 적막한 사무실 한가운데서 기하는 담배를 피우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벽 한 면이 유리로 돼 있어 넓게 펼쳐진 야경이 사진을 연상케 했다. 뒤에선 임수가 며칠간 밤새운 상관의 어깨를 주물렀다. 기하의 목덜미를 감은 전갈문신이 부하의 손짓에 꿈틀거렸다. 한참의 침묵을 깨고 임수가 물었다.
“형님. 자꾸 여쭤봐서 죄송하지만…. 정말로 아버지 말씀을 믿으십니까?”
“아버지는 믿지 않지만, 아버지의 연구는 믿어. 그들에게 빠지지만 않았어도 학계에선 알아주는 양반이었을 거니까.”
기하의 부친은 음성학을 연구하던 남자였다. 인간의 목소리에 매료돼 성대가 지닌 잠재력을 연구하고 수집했다. 수만 가지 목소리에 심취했던 부친은 영혼을 치유하는 목소리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마음뿐 아니라 몸의 상처까지 치유하는 마력적인 음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태어날 때부터 다르다고 한다. 인간의 첫 발성인 울음소리로 신과 소통하며 기적을 일으키는 존재. 부친은 그들을 힐러(healer)라고 불렀다.
“하지만, 허무맹랑한 주장이 학계에서 외면당하는 건 당연했지. 아버지는 철저히 혼자만의 싸움을 시작했어. 내가 대학생이던 때 아버지가 11살 먹은 남자애 하나를 데려왔지. 워낙 방랑벽이 심했던 양반이라 밖에서 낳아온 자식인 줄 알았어. 그런데 노래로 앵벌이 하던 걸 연구 샘플이랍시고 주워왔다더군. 어머니와 나는 미친 짓거리라고 했지. 아버지 연구소에 가기 전까지는 말이야.”
조용히 경청하던 임수가 말했다.
“그때 아이의 노래를 들으신 거군요.”
“아…….”
기하는 탄성을 내며 그때의 충격을 되짚었다. 그날은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연구소에 찾아갔던 날이었다. 어머니의 이혼서류를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부친은 평생 남의 목소리를 쫓아다니느라 정작 부인과 자식의 외침은 듣지 못한 남자였다. 기하는 끝내 아버지 주장이 상상력 과잉이 낳은 헛소리라고 치부했을 것이다. 만약 그 노래를 듣지 않았다면 말이다. 연구소에 들어서자 몸에 기계를 덕지덕지 단 소년이 보였다. 그리고 소년의 노랫소리를 듣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소년의 미성은 그 어떤 기계음이나 인공적인 효과조차 없었다. 오로지 성대의 울림만으로 영혼을 빨아당기는 태초의 소리였고, 완벽함 그 자체였다. 처음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기하는 울고 있었다.
“연구소 가기 며칠 전에 술 취한 상태로 오토바이를 몰다가 사고가 났어.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팔도 부러지고 얼굴도 엉망이었지. 그런데 아이의 노래를 다 듣고 난 뒤에 깨끗하게 나아있는 거야. 백번 양보해서 그게 내 착각이라고 해도…. 만약 나와 아버지를 홀린 것처럼 다른 사람을 홀렸다면, 이거야말로 굉장한 장사가 되지 않겠어?”
흥분한 기하와는 달리 임수는 여전히 못 미더운 눈치였다.
“아버님 데이터가 믿을 만할까요? 평범한 힐링 음악이나 플라세보 효과일지도 모르잖습니까?”
“차원이 달라. 희귀병 2명, 우울증에서 치매까지 5명 완치, 암환자 3명 모두 4기에서 2기로 넘어가, 두 달 뒤엔 암세포가 깨끗하게 사라졌어. 그때 실험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아직 까지 멀쩡하게 살아 있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고. 믿어지나? 약을 쓰거나 배를 가르지 않고도 완벽하게 치료한 거야. 우리 테라피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건 없다구.”
“이렇게 의료 사업까지 손대실 줄 몰랐습니다.”
“비꼬지 마. 나도 모처럼 기분 좋으니까.”
기하는 담배를 물며 웃었다.
“아버지가 계셨다면 좀 더 많은 정보를 얻었을 거야. 논문도 미완성이고 그쪽으로 문외한인 내가 모르는 것투성이야. 그렇다고 자문을 구할 만큼 믿을만한 인간도 없고…….”
“부친께선 의문사 당하셨다고 하셨죠?”
임수는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기하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부친은 연구 도중에 사망했고, 실험 도중 정신착란을 일으켰던 소년은 병원으로 끌려간 직후 자살했다. 의지할 건 아버지의 연구자료뿐, 맨땅에 헤딩하는 심경으로 전국에 사람을 풀었다. 제보가 들어오면 달려갔으나 모두 노래만 그럴싸하게 부르는 껍데기였다. 실낱같은 정보만 있으면 자다가도 뛰쳐나갔고,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그 짓을 자그마치 4년이나 했다. 이제 힐러의 존재를 믿고 안 믿고를 논할 단계는 넘어섰다. 그 존재를 의심한다면 4년이 통째로 공중분해 되는 것이다. 그토록 아버지를 비웃던 자신이 똑같은 전철을 밟아가는 모습에 조소 짓기도 했다. 그러나 상품적인 기대치를 떠나 다시 한번 ‘그들’의 노래를 듣고 싶었다. 부친이 그러했듯이 기하도 그들의 노랫소리에 홀린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약없는 이 짓거리에 익명의 투자자도 점차 시들해졌고, 손을 떼겠다고 선언할 무렵 또 다른 정보가 들어왔다. 부천에서 노래로 병을 고치는 아이가 있다는 것이다. 도착했을 때 식구는 이미 떠난 상태였다. 그 후 서울 부근에서 봤다는 정보로 근방을 뒤지다가 여기까지 왔다.
“올해 안으로 갖다 바치지 않으면 투자도 물 건너가는 거야.”
기하가 새 담배를 꺼내 물자 임수가 민첩하게 불을 붙였다. 산도적 같은 겉모습에 비해 다람쥐처럼 날랜 행동이었다. 임수는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고 사무실 어딘가로 눈길을 돌렸다.
“그래서 저 아이가 바로 그…‘힐러’라는 말씀이시군요.”
임수의 시선이 도착한 곳에 기하의 눈길도 당도했다. 방 모서리엔 아이 하나가 쪼그려앉아 숨죽여 울고 있었다. 조금 전에 데려온 아이였다. 기하는 아이에게 다가가 눈높이에 맞게 앉았다. 그간 사기성 짙은 소문에 비해 정보도 정확했고 인근에 떠도는 얘기도 심상치 않았다. 이번만은 느낌이 달랐다. 기하는 단전에서 솟구치는 짜릿함을 숨겨야 했다.
“너도 놀랐겠지만, 아저씨도 너 찾아 안 가본 데가 없으니까 이해해다오.”
그의 목덜미를 감은 정갈 문신이 세진이의 시야를 움츠러들게 했다. 습하고 어두운 내부에서 빛이라곤 천장에 매달린 백열등뿐이었다. 앞에 버틴 길쭉한 다리들을 망연자실 바라보았다. 남자들의 다리는 저주에 걸린 기괴한 숲 나무처럼 보였다. 세진이는 바들바들 떨며 한껏 움츠러든 목소리로 말했다.
“보내 주세요. 아저씨……. 보, 보내…….”
기하는 흡족한 미소가 떠있는 입술에다 담배를 가져갔다.
“지금부터 아저씨가 작은 테스트를 할 거란다.”
그러더니 기하는 칼을 끄집어내 제 손을 죽 그었다. 세진이는 숨을 멈추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이 세진이 코앞에 다가왔고 음산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넌 지금부터 노래를 불러서 이 상처를 낫게 해야 돼. 그래야만 여기에서 멀쩡히 걸어나갈 수 있어.”
세진이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노래로 상처를 고치라니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기절할 듯이 어지러웠고 심장이 정신없이 뛰어댔다.
“저, 저는 그런 거……못 해요. 저, 저는…….”
아이가 온 힘을 다해 절규하자 뒤쪽에 있던 임수가 말했다.
“그렇게 겁주시면 나오던 노래도 도로 들어가겠습니다.”
“그건 내가 판단할 테니 잔말 말고 불러나 보라구. 동요든 가요든 아무거나.”
“전 아저씨들이 찾는 애가 아니에요! 노래로 누구 고쳐준 적도 없어요! 진짜예요!”
임수가 성큼성큼 다가와 무뚝뚝하게 말했다.
“우리도 시간이 없다. 올해 안에 널 데려가지 않으면 아저씨들도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으니까. 이미 부천 근방에서 네 소문을 들었어. 노래할 상황은 아니지만, 시늉이라도 해봐.”
“흐윽…그런 거 못 해요…. 으윽…. 저, 전 부천에 살아본 적도 없어요. 5살 때부터 이 동네에 살았어요….”
그 순간 기하와 임수의 표정이 점차 굳어갔다. 기하는 세진이의 어깨를 붙들며 말했다.
“부천에 살았고 안 살았고는 중요한 게 아니야. 니가 윤단세라는 사실이 중요한 거지. ”
“흐윽… 아니에요. 저, 저는 윤단세가 아니에요…….”
“너 아까 분명히 단세라고 했잖아!”
“세, 세진예요. 장세진…이라고 아까 말했잖아요…. 윽, 흐윽…….”
임수가 고개를 휙 돌려 물었다.
“형님. 데려오실 때 확인하셨습니까?”
기하는 안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확인했다.
“반년 동안 그 이름만 신물 나게 달고 다녔어. 이름, 가족관계, 나이까지 확인했어. 사진이 없어서 얼굴 확인까진 못했지만, 이봐. 다 집어치우고서라도 직접 집에서 잡아왔잖아? 그것 말고 확실한 게 더 있나?”
“단세, 장세진…. 아까 형님께서도 좀 흥분하신 상태였고, 애들이야 발음이 어눌하니 비슷하게 들리셨을 수도 있습니다.”
좀 전까지 흥분에 번들거렸던 기하의 눈동자가 싸해졌다. 그는 눈을 부라리며 세진이의 팔을 잡아 비틀었다.
“이 아저씬 말이야. 그 좆 같은 일기장 하나만 믿고, 4년간 좆 빠지게 너희를 찾아다녔어. 난 지금 무척 지쳤어. 그러니까 이제부터 한마디도 허투루 대답하면 안 돼. 이 녀석은 나보다 훨씬 성미가 급하거든.”
“…….”
“그 개 같은 노래로 다 죽어가는 새끼들 치료한 적 있어? 없어?”
기하 손에 들린 칼이 세진이 목덜미 언저리에서 시퍼런 이를 갈았다. 세진이는 목 베인 것처럼 뚝뚝 숨 끊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윽, 흐윽……. 사,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짜지 말고 대답이나 해!”
세진이는 눈을 감으며 눈물 콧물 먹은 소리로 울먹였다. 다른 사람의 것인 듯한 목소리는 추접했고, 궁상맞기 그지없었다. 너무나 두려웠다. 차라리 자신이 그가 찾는 사람이길 바랬다.
“저… 저는 그런 거…못 해요…. 노래 불러서… 아픈 사람 치료해 준 적도 없어요…….”
그 순간 기하의 표정은 너무 딱딱해서 합성사진 같았다. 제 머리카락을 쥐어뜯던 기하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졌다. “씨발!” 그는 욕설을 뱉으며 책상과 의자를 포악하게 걷어차고 주먹질했다. 세진이는 몸을 웅크린 채 가슴이 불룩할 만큼 숨을 들이켰다. 모조리 때려 부수고 돌아온 기하가 다시 아이에게 얼굴을 가까이 디밀었다.
“좋아. 다 좋으니까 그 동네에 단세란 애새끼가 사는지 안 사는지만 말해. 미리 말하는데 두 번 묻게 하지 마!”
살기 감도는 네 개의 눈알이 세진이에게 집중됐다. 세진이의 신경은 온통 그가 쥔 칼에만 쏠렸다. 세진이는 창백해진 입술을 열었다.
“……그, 그런 애 안 살아요…. 그런 이름도…처음 들었어요…….”
그런 기적 같은 일이 가능할 리 없지만, 그게 가능한 사람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채우의 말일 뿐 세진이는 애초에 믿지 않았고, 채우는 단세가 아니다. 그러니 저들이 쫓는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허상일 것이다. 이제 그런 이름도, 그런 능력을 지닌 사람도 들어본 적 없다고 말하면 끝나는 거였다.
“그런데…저도 누구한테서 들은 거라서 잘 모르지만…….”
그것은 아이가 인지한 첫 번째 죄악이었다. 아이라는 방패를 앞세워 그때의 감정에만 충실해도 되는 순결한 악이었다.
“우리 동네에… 진짜 노래를 잘하는 애 하나가 있긴 한데…….”
절망에 빠진 사내들의 시선이 하나 둘 옮겨왔다.
“제 친구 엄마가 그 애 집에 다닌 뒤로 허리병이 나았다고 했어요…. 그뿐만 아니라 예전에도 아픈 사람들이 병원에 안 가고 그 애한테만 찾아갔다고 들었어요…. 그 애 노래를 들으려고 월급이나 폐물까지 갖다 바쳤다고……. 그래서 그 애도 이름까지 바꾸고 이사 온 거라고 했어요…….”
아이의 가슴은 차가워진 지 오래고, 고집스레 벌어진 상처엔 피고름이 흘렀다. 이 고통에서 헤어나오는 방법은 그것뿐일 거라는 믿음 하나였다. 세진이는 시선을 저 암흑의 밑바닥에 떨구었다. 가득 고였던 눈물도 함께 추락했다.
“아까 그 집에 사는 애가 맞을 거에요…….”
그 순간 라이터를 든 기하의 손이 정지했다. 임수와 기하의 시선이 맞부딪혔다. 기하는 필터를 잘근잘근 씹으며 생각에 잠겼다가 담배를 탁 뱉었다. 세진이 중심에다 날 선 칼을 죽 긋는 시늉을 했다.
“허튼소리면 좆을 통째로 잘라 줄 거야.”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났다. 세진이는 가슴에 통증이 점점 더해져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세상에 의지할 건 오로지 혼자뿐인 듯이 어깨와 다리를 꽉 부둥켜안고 있었다. 몸이 떨리는 건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꾸 뭔가 어긋난 기분이 드는 건 아까부터 사무실 한쪽에 있는 남자 두 명 때문이었다. 한 명은 노인이며, 하나는 아들뻘 돼 보이는 남자인데 모두 흰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이 가져온 검은색 가방이 공포를 배가시켰다. 그때 누군가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자 임수와 그 손에 잡힌 아이가 들어왔다. 채우였다. 영문 모르게 끌려온 아이는 겁에 질려 눈만 깜빡거렸다. 채우는 이 상황에 대한 두려움보다 다른 뭔가에 넋이 나간 얼굴이었고,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임수가 채우를 툭 던지자 세진이 위에 짐짝처럼 나뒹굴었다.
뭔가에 질린 눈을 한 임수는 기하에게 뭔가 귓속말했다. 가만히 듣던 기하의 표정이 임수보다 굳어 버렸다. 기하가 간단한 질문을 한 다음 채우에게 노래를 시켰다. 기하는 혼이 빠진 듯한 채우의 뺨을 몇 대나 후려쳤고 공포에 질린 채우가 간신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가 그쳐갈 무렵 기하는 그제야 머리가 맑아진 얼굴을 했다. 아까 칼로 그었던 손바닥 상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것이다. 기하와 임수는 형언할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기적적인 결과를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기하는 깨끗한 손바닥을 앞뒤로 뒤집으며 확인을 거듭했다. 그 손을 씰룩거리는 입가로 가져갔다. 그것은 풋내기 시절 첫 오르가즘과도 같았다. 얼떨떨함과 짜릿함이 한꺼번에 치밀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런. 기하는 삐져나오는 웃음소리를 틀어막고 채우 앞에 내려앉았다. 피로 얼룩진 아이는 초점 없는 눈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기하는 아이의 턱을 들어 시선을 맞추었다.
“혹부리영감을 알아?”
애초에 대답을 들으려고 한 질문은 아니니 그는 아랑곳없이 말을 이었다.
“혹부리영감은 도깨비도 홀릴 만한 천상의 목소리를 가졌지. 영감은 귀찮은 혹을 떼려고 도깨비에게 사기 친 거겠지만, 나는 목소리의 비밀이 혹에 있었다고 믿었어. 너도 비슷해. 내 아버지도 너희 목소리의 비밀이 불알에 있다고 믿으셨으니까.”
채우는 공포 한가운데서도 침착한 눈으로 암담한 현실을 마주했다. 어쩌면 영혼이 빠져나가 공포조차 못 느끼는 듯했다. 그 표정이 무척 흡족한 듯 기하는 미소를 남기고 일어섰다. “시작해요.” 그는 대기하고 있던 남자 둘에게 말했다. 노인과 젊은 남자가 검은색 가방을 들고 채우에게 다가갔다. 기하는 안 주머니에서 이어플러그를 건네 임수에게 하나 던지고 자신의 귓구멍에도 깊이 끼웠다.
“고주파 필터와 차음 기능이 있지. 최대 160데시벨까지 차음 된다더군. 만약을 대비해서 하는 게 좋을 거야.”
“왜 갑자기 이런 걸…….”
“하는 게 좋다면 그렇게 알고 하는 거야.”
상관의 명령에 임수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이어플러그를 끼웠다. 기하는 남은 것을 남자들에게 내밀었다.
“당신들도 이걸 하는 게 좋을 겁니다.”
“됐소이다. 서로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거니 수술하는데 불편할 거요.”
“차라리 그쪽이 더 나을 걸요?”
“괜찮소.”
“해요.”
노인은 눈을 흘기며 이어플러그를 받고는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조수 역시 이어플러그를 받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뭐, 싫다면야…….”
기하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코웃음 쳤다. 의료 기구가 일렬로 들은 가방에 임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설마 통째로 잘라내는 겁니까? 그…내시처럼 말입니다.”
늙은 남자가 금이빨을 보이며 대답했다.
“성기는 그대로 두고 고환만 적출 해도 호르몬 생성을 못 하니 2차 성징이 멈출 거요. 잔금은 수술 끝날 때까지 현금으로 준비하시오.”
“고환도 완벽하게 도려내지 않으면 재생한다던데 어설프게 뿌리나 남기지 말아요.”
노인은 곱지 않은 시선을 기하에게 돌려주며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정식 면허증은 없는 사람이지만, 뒷골목에서는 알아주는 솜씨였다. 기하의 성기에 다마를 박아준 사람이기도 했다. 기하는 지갑에서 되는대로 돈을 꺼내며 임수를 흘끔 보았다.
“천상의 목소리도 변성기 앞에선 맥을 못 추다니 재밌지 않아? 변성기가 오면 신이 내린 능력이 허무하게 퇴화하는 거지. 요즘 애들은 성장이 빨라서 언제 성대순이 변할지 몰라. 그게 내일 아침일지도 모른다구.”
“그런데 저 애는 어쩌실 겁니까? 아무 상관 없으니 그만 돌려보내시는 게…….”
기하는 그제야 세진이란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눈물범벅이 된 아이를 물끄러미 보던 기하는 지갑에서 남은 돈을 모조리 끄집어냈다.
“그냥 둘 다 해버리지. 어차피 병풍도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형님.”
임수는 놀란 눈으로 상관을 쳐다보았다. 기하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마지막 희망을 바라는 밀고자를 보았다.
“아니. 저 녀석 마음에 들어. 아까 말할 때 목소리가 제법 좋더군. 노래시켜도 괜찮을 거야.”
“이봐요.” 기하는 손가락으로 세진이를 가리키며 노인에게 신호를 보냈다. 노인과 조수는 세진이와 채우를 떼어놨다. 세진이는 숨을 홉 들이키며 가느다랗게 울먹였다. 분명 자신은 보내주리라 생각했는데 남자는 되레 단단히 문을 걸어 잠갔다. 세진이는 노인이 든 메스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운명의 열쇠를 쥔 사람들을 절박하게 바라보지만, 그는 느긋하게 담배만 피웠다.
한쪽에선 임수와 늙은 남자가 채우를 잡아다 바닥에 눌렀다. 노인은 주사기 공기를 빼내고 곧장 채우의 팔에 찔렀다. 노인 옆에는 시퍼렇게 독 오른 메스와 투명 호스가 준비 태세를 갖추었다. 주름진 손이 채우의 팬티를 벗겨 냈고, 다른 손이 메스를 들었다. 채우는 여전히 넋 나간 얼굴로 반항조차 없었다. 채우도, 저 남자들도 너무 이상했다. 세진이는 채우 쪽으로 손을 뻗어 보았다. 한발 앞선 조수가 세진이 팔을 무릎으로 짓누르더니 주삿바늘을 꽂아 버렸다. 곧바로 약물이 들어왔다.
“으윽…!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세진이는 온 힘을 다해 발길질했다. 아무리 외쳐도 밀고자의 기도는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약기운이 순식간에 혈관을 돌아 몸을 늘어지게 했다. 차츰 흐려지는 시야로 채우가 보였다. 손을 내뻗어도 너무 멀리 있었다. 채우 몸을 적신 핏물은 누구의 것일까? 문득 흐린 정신을 뚫고 고약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 순간 조수가 세진이 바지와 팬티를 한번에 잡아 내렸다. 다리가 벌어지고 고환에 차가운 뭔가가 닿았다. 칼끝이 여린 살갗을 뚫자 핏물이 배어 나왔다. 그 낱낱의 장면들이 파편이 되어 눈에 박혀 들었다. 무중력 상태처럼 귀가 먹먹했고 남자의 입 모양만이 시야를 점령했다. 그제야 세진이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한순간 까만 눈동자에 불꽃이 일던 찰나였다.
“으…….”
으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
세진이는 눈을 까뒤집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본능에 가까운 절규였다. 가질 수 없는 것을 열망한 죗값은 화형보다 끔찍했다. 눈물 젖은 얼굴은 공포에 범벅됐고 토악질 같은 절규가 쏟아졌다. 멍하게 늘어졌던 채우의 눈이 조금씩 흔들렸다. 그를 기점으로 채우도 비명을 내질렀다. 솟구치는 절규는 신경을 찌르는 음성이었다. 이 극한의 두려움과 위험을 신에게 알리려는 듯 소리를 높이 쏘아 올렸다. 피 토하는 비명이 공중으로 내뻗는 순간, 기하는 머리와 귀에 엄청난 압력을 느꼈다. 형체 없는 공격이 이어 플러그를 파고들었다. 이어 뾰족한 바늘 수백 개가 고막과 머리에 박히는 듯했다.
“씨발……!!”
기하는 이를 악물며 귀를 세게 막았다. 눈알이 쥐어 비틀리듯이 고통스러웠다. 비장이 뒤집어질 만큼 역겹고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잔혹한 소리였다.
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
소리가 증폭돼 공간을 휩쓸고, 공간에 균열이 일어갔다. 형광등이 터져 암흑천지로 변하고, 도시야경을 담은 유리창이 깨져 기하를 덮쳤다. 이어플러그를 뚫고 들려오는 소리는 세포까지 전율케 했다. 노인은 머리를 쥐며 바닥을 기었다. 조수 역시 제 머리를 감싼 채 몸을 뒤틀었다. 그 순간이었다. 노인의 눈과 코에서 피가 터지고, 그의 머리통이 산산이 조각났다. 단말마를 끝으로 조수의 두개골이 쪼개져 뇌수가 흘러나왔다. 주인 모를 절규가 뒤섞였다. 가늠할 수 없는 어느 순간, 아이들의 비명이 사라졌다. 임수는 귀를 막은 채 코피를 흘리며 바닥을 기었다. 피 냄새가 진동하는 공간이 잠시간의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바닥과 벽에는 핏물이 쩍쩍 엉겨붙었고, 머리 잃은 시체가 경련했다. 절규가 메아리치는 연옥에서 기하는 경악에 휩싸였다.
기하는 과거로 돌아간 듯한 장면에 움직이지 못했다. 아버지의 죽음이 목격자도 없는 의문사라고 알려졌지만, 엄연히 목격자가 존재했다. 바로 기하 자신이었다. 어머니의 이혼서류를 전달하려고 연구소를 찾았던 날, 소년은 노래를 하다가 돌연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부친의 두개골이 형체를 알지 못할 만큼 터졌다. 둔기로 친 것도 아니고 벽에 밀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소년은 실성한 양 비명만 내질렀다.
기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가까스로 세워 벽에 기댔다. 코피를 닦으며 실신한 채우를 응시했다. 아이는 마취약에 못 이긴 건지, 자신이 저지른 일을 감당하기 힘들어 기절한 건지 알 수는 없었다.
차, 찾았다. 이 녀석은 진짜다! 진짜!
기하는 아버지의 일기장에 적힌 글귀를 곱씹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울음소리부터가 다르다.
인간의 잠재의식을 침범해 성역을 뒤흔드는 제3의 목소리,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목소리.
그들의 노랫소리는 천국을 보여주고, 그들의 비명 소리는 지옥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