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러-1화 (1/42)

힐러-Intro 01

쫓기는 자.

그것은 아이가 인지한 첫 번째 죄악이었다.

아이라는 방패를 앞세워 그때의 감정에만 충실해도 되는 순결한 악이었다.

세진이가 사는 동네는 햇볕이 제일 빨리 닿는 곳이었다. 손 뻗으면 닿을 만큼 하늘에 가까워서 계절을 가장 빨리 맞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은 세상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살아도 저 아랫동네를 갈망했다. 그래서 새벽 일찍 일터에 나가 밤늦게나 돌아올 정도로 일했지만, 그들의 가난은 점점 깊어졌다.

세진이는 형과 단둘이 살았다. 아빠는 공사판에서 벽돌을 맞아 몇 달째 식물인간처럼 병원에 누워만 있었다. 엄마는 술 담배를 벗 삼아 신세 한탄하기 바빠서 아빠를 돌볼 시간이 모자랐다. 엄마가 술병을 든 모습은 세진이가 자궁에 있을 때도 목격한 적이 있었다. 뼈마저 에이는 성탄절, 그날도 만취했던 엄마는 동네 길목에서 얼어 죽고 말았다. 그 후로 세진이에게 성탄절은 악몽이 되었다.

“곱다. 엄마를 닮아 곱기도 하지. 그래도 남의 서방 넘보다가 동사자한테 잡혀간 애미 팔자는 닮지 말아야지.”

골목 평상에 앉은 할머니가 두어 개만 남은 이빨을 내보이며 주절거렸다. 이어 박복한 것이라느니 반푼이 형이 동생 팔자까지 망쳤다느니, 온통 세진이 앞날을 걱정하는 말을 늘어놨다. 세진이는 앞날이 걱정되지도, 지금 처한 현실이 화나지도 않았다. 그냥 하루하루 견디는 게 너무 숨차서 앞날을 걱정할 새가 없었다. 할머니가 사탕을 내밀며 오라고 손짓하자 눈썹을 찡그리며 걸음 속력을 올렸다.

세진이 집은 비탈진 동네 중간에 있었다. 여느 집과 다름없이 옆집과 다닥다닥 붙었고, 기울어진 지붕과 갈라진 벽틈에 시멘트를 발라놓았다. 문을 열자 누런 테이프에 지탱한 유리가 달그락거렸다. 신발을 벗고 들어서는데 지린내가 솔솔 풍겨 코끝을 찡그렸다. 부엌을 지나 방에 들어서니 멍하게 앉은 형이 보였다. 다짜고짜 형이 덮은 이불을 들추었다. 역시나 형 츄리닝 바지에 대참사가 일어났다.

“아 진짜! 기저귀는 언제 뺐어? 내가 올 때까지 차고 있으랬지?”

형은 발길질 당한 개 같은 표정을 지었다.

“싫어요…. 축축하고 살도 아파요…….”

형은 14살인 동생에게 존댓말을 했다. 그의 세계에선 어린 동생이 가장 무서운 존재이자, 든든한 보호자이기 때문이었다. 형은 21살이나 됐는데도 기저귀가 없으면 온통 물바다로 만들었다. 세진이가 챙기지 않으면 몇 날 며칠 악취를 풍겼다. 대학교에도, 회사에도 안 다녔고, 이불 한 채와 옷걸이뿐인 방이 형의 세상 전부였다. 동네 사람들은 그런 형을 반푼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미웠고, 그렇게 불리는 형이 부끄러웠다. 그런데 교회에서 성가대 누나가 형 같은 사람을 자폐증 환자라고 했다. 자기 세계에 갇혀 누구도 들이지 않는 마음의 병에 걸렸으며 제때 치료 못 해서 병이 깊어진 것뿐이라고 했다. 병에 걸린 줄도 모르고 짜증 냈던 건 미안했지만, 아무리 포장하더라도 형이 보탬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형을 부엌에 끌고 가 바지를 벗기고 아래쪽에 물을 들이부었다.

“차가워요! 차가워요!”

“그러게 누가 기저귀 빼래? 보일러도 고장 나고 가스도 끊겨서 따뜻한 물 없단 말야.”

세진이가 매운 눈으로 노려보자 그는 떡진 머리카락을 만지며 눈길을 피했다. 그러다 얼음장 같은 물을 견디다 못해 부엌 구석으로 도망쳤다. 사탕으로 회유해도 그는 벽에 붙어선 움직이지 않았다. 세진이는 손가락으로 찬장을 가리켰다.

“어? 쥐다! 냄비 안에 저거 쥐 꼬랑지 맞지?”

형의 신경이 찬장으로 옮겨가자 놓치지 않고 물을 들이쳤다. 형은 울상 지었고, 세진이는 으하하 웃어젖혔다. 아빠는 젊은 시절 듬직한 풍채와 준수한 외모로 동네 처자들을 후렸다고 들었다.- 그 중 한 명이 엄마였다.- 형은 아빠를 빼닮은 외모지만, 그가 지닌 마음의 병이 훌륭한 외모를 빛바래게 했다. 육체를 못 따라잡는 정신을 가진 사람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런 형 몫까지 대신해 세진이의 정신은 이미 나이를 뛰어넘은 건지도 모르겠다.

별안간 세진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찬물에 언 형의 하체를 수건으로 닦는데 느닷없이 형 것이 부피를 늘리는 것이었다. 재빨리 형 발목에 걸친 바지와 팬티를 끌어 올리는 순간이었다. 큼지막한 손이 세진이 머리통을 쥐더니 볼과 입술에 축축한 뭔가 비벼졌다. 형의 성기였다. 형은 헉헉거리며 동생 뒷머리를 바짝 끌어당겼고 허리 짓에 속도를 올렸다. 매번 조심한다는 것이 또 이 지경이었다. 주먹으로 형의 골반이며 가슴을 두드려팼다.

“아! 으읍! 놔! 이거 놔! 미친 새꺄!”

“헉! 헉……!!”

머리통을 볼모로 잡힌 채 발버둥쳐도 우악스러운 힘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세진이의 여린 볼과 입술은 혈육의 본능에 겁간당했다. 머리에 쏟아지는 숨소리는 더 게걸스러워졌고, 고지를 향하는 성기가 꿈틀거렸다. 이윽고 그가 성기 대가리를 세진이 입속에 쑤셔 넣으려 했다. 머리에 빨간 등이 켜졌다. 세진이는 싱크대를 더듬어 프라이팬을 잡고는 봐주지 않고 휘둘렀다. 요란한 타격음과 함께 형의 하체가 저만치 떨어졌다. 형은 어깨를 쥔 채 울 듯한 얼굴이었다.

“아야……. 아파….”

짐승 같은 행동과는 어울리지 않는 칭얼거림이었다. 성기는 여전히 풀지 못한 욕구를 향해 치솟아 있었다. 세진이는 구역질을 참으며 점액으로 더러워진 얼굴을 닦았다. 매서운 시선을 내던졌다.

“한 번만 더 이런 짓 하면 경찰한테 확 잘라가라고 할 줄 알아.”

그는 살벌한 분위기는 기막히게 감지가 빨랐다. 아마 엄마 덕분일 것이다. 형은 제 성기를 손으로 가리며 잘못했다고 빌었다. 그는 지금껏 연애 한 번 못 해봤고, 앞으로도 그럴 터였다. 음모가 무성한 성기는 형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장식품이었다. 문득 잔인한 상상이 머리를 스쳤다. 세진이는 그 균형이 어긋난 하체에 물 한 바가지가 들이쳤다.

형 세수도 마저 시키고 함께 라면을 먹었다. 나라에서 지원금을 주지만 그걸로는 형 코에 갖다 붙이기도 어려웠고, 교회에서 나눠준 쌀도 떨어져 다음 주까진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세진이는 면발을 빨아당기는 형을 보았다. 가끔 형을 보면 발가벗겨 쫓아내고 싶다가도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누군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건 어깨가 부서질 듯한 중압감이었고 부서지지 않게 힘내야만 하는 이유였다. 저 밀폐된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자신뿐이므로, 다 큰 형 뒤치다꺼리나 하는 자신이 불쌍하면서도 우월감을 느꼈다. 어느덧 그릇을 말끔하게 비운 형이 동생의 라면 그릇을 힐끔거렸다. 세진이는 젓가락을 자근자근 물었다.

“형은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세진이요. 동생이 제일 좋아요.”

“진짜?”

“예.”

이런 선택을 강요하는 건 간소한 즐거움이었다. 이 맛도 없다면 다 큰 형 똥수발, 밥수발한 보람마저 없을 테니까.

“이럴 때만?”

형이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세진이는 못 이기는 척하며 제 몫의 라면을 형 그릇에다 덜어주었다. “감사합니다.” 하며 형이 꾸벅 인사했다. 바로 이럴 때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을 때였다. 형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손등으로 꾹꾹 눌러 닦아주고 그가 또 강아지 눈을 하기 전에 얼른 먹었다. 젓가락질 두어 번에 그릇이 금세 휑해지자 국물을 남김없이 마시며 주린 배를 채웠다.

“이놈의 새끼! 어디 엄마한테 바락바락 대들어?!”

“엄마 진짜 미쳤어? 저 사람들 다 치우라고 했지?! 기어이 나 환장하는 꼴 볼려고 그러냐고?!”

“아악…! 뭐 하는 거야?! 뭐하고 있어?! 형 좀 진정시켜 봐!”

오늘도 싸움 소리가 담을 넘어왔다. 아마 채우네 집일 것이다. 채우 형이 난동 부리는지 유리 깨지는 소리, 찰싹거리는 마찰음이 들렸다. 세진이 형은 구석으로 가서 귀를 꽉 막았다. 곧이어 문 걷어차는 소리와 함께 신경질적인 발걸음 소리가 집 앞을 지나갔다. 채우는 몇 집 건너에 사는 이웃인데 식구라곤 엄마와 고등학생 형이 전부였다. 그들은 가까이 갈 수 없는 공기를 만들어 동네 사람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이상한 점은 그렇게 고립된 집에 매일 같이 사람들이 드나든다는 것이었다. 방문객들은 어딘가 아파 보였는데 채우 집에만 갔다 나오면 거짓말처럼 화사해졌다. 반면에 채우와 그 애 형은 점점 불행해 보였다. 그 믿기지 않는 비밀을 알게 된 건 얼마 후의 일이었다.

그날은 형욱과 동네 폐가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형욱은 아랫동네 큰 아파트에서 사는데도 윗동네에 자주 놀러 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형욱이 이름만 듣다가 친해진 건 중학교에 들어와 같은 반이 되고 나서부터인데 교회도 형욱이 권유로 다닌 것이었다. 밥짓는 냄새가 동네 구석구석에 퍼지자 뱃속이 아우성 했다. 해가 저무는 골목을 나란히 걸으며 형욱이 옆모습을 곁눈질했다. 아직은 미성숙한 턱선과 셔츠 사이에 있는 목덜미가 눈을 붙잡았다. 그 애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땀 냄새가 코에 아른거렸다. 세진이 눈동자가 스르륵 풀려 갔다. 세진이는 남자애가 좋았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듯이 가슴이 떨리고 손잡고 싶은 그런 느낌이었다. 이왕이면 예쁘장한 남자애보다 형욱처럼 덩치도 크고 성깔도 있는…….

한번은 동네 할머니가 농담 삼아 좋아하는 애가 있느냐고 묻길래 아무렇지 않게 형욱이라고 대답했다. 할머니는 손을 내저으며 “아니, 아니. 손잡고 뽀뽀하고 싶은 여자애 말이야.” 하고 걸근대며 웃었다. 거듭 같은 답을 했더니 할머니는 그 모든 게 반푼이 형 뒤치다꺼리 때문이라고 동정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 있어 대상을 선택하는 우선순위가 좋고 싫음이 아니라 고추가 달리고 안 달리고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진실을 얘기하면 엄한 형이 반푼이가 되는 수모를 당했기에 세진이는 상황에 따라 가짜 진실을 얘기하기로 했다.

그때 골목 끝자락에 자그마한 인영이 어른거렸다. 채우였다. 채우는 남자애치고 예쁘장한 얼굴이라 어딜 가나 시선의 중심에 있었다. 동갑에다 속 썩이는 형에, 앙칼진 엄마, 그런 공통점 때문인지 처음부터 채우에게 관심이 갔다. 그러나 채우는 조퇴하기 일쑤였고 집밖에 나오는 일도 없었다. 오늘 채우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밤으로 넘어가는 하늘 아래 서 있었다. 밤 갈색 머리카락이 슬픈 음악처럼 바람에 나풀거렸다. 지금 다가가 채우 어깨를 치면 파사삭 가루가 되어 사라질 것 같았다. 문득 눈길을 돌렸을 때 채우를 노려보는 형욱이 있었다.

“저 자식 언제 손 좀 봐 줄 생각인데 너도 같이할래?”

형욱이 세진이 어깨에 팔을 올리자 닿은 곳에 진한 전류가 흘렀다. 세진이는 어깨를 점령한 체온을 잊고 간신히 물었다.

“가만있는 애를 뭐 하려고 손을 봐줘? 손금 배웠냐?”

형욱은 시답잖은 농담에 피식 웃었다.

“왠지 그런 거 있잖아. 이상하게 눈에 거슬리는 자식들. 저 자식 계속 벼르는 중이야.”

학교나 동네에서 채우를 눈엣가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특히 형욱이 심했다. 그렇지만, 형욱의 반감은 이상하게도 세진이를 불안하게 했다.

“니가 애냐? 유치하게 그런 짓 하지 마.”

노려보면서 눈길 주지 마. 흉보면서 걔 얘기 입에 담지 마. 손 봐준다는 핑계로 만지지 마.

세진이는 자신만의 고백을 목구멍 깊이 숨겼다.

결국, 우려하던 일이 생기고 말았다. 며칠간 채우를 대하는 형욱의 태도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우리 엄마가 채우네 집에 다녀온 날부터 아주 펄펄 날아다닌다니까? 맨날 허리 아프다고 짜증 부리고 일 시켰는데 얼마나 좋은지 몰라. 채우와 잠깐 얘기도 해봤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녀석이더라고.”

아까부터 채우 얘기만 주절대는 형욱이 목소리가 짜증났다. 세진이는 참지 못하고 잘라내 버렸다.

“갑자기 왜 그래? 예전엔 못 잡아먹어 안달하더니…….”

형욱은 머쓱한 얼굴로 대답했다.

“뭐가? 언제는 사이 좋게 지내라며?”

“내가 언제? 그냥 괴롭히지 말라고 했지.”

“그게 그거야. 엄마도 채우 덕분에 허리 나은 거니까 괴롭히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지 뭐겠냐? 우리 엄마 성질 알지?”

채우 덕분에 엄마 허리가 나았다니….

“어떻게 중학생이 몇 년 동안 아팠던 허리를 낫게 해? 채우가 침이라도 놔 줬대?”

“자세한 말은 안 하던데? 그나저나 엄마가 그 후로 매일같이 채우네 집에 들락거려서 큰일이야. 저녁도 안 하고 가면 아빠하고 난 어쩌라는 거야?”

“매일 가면 엄마끼리도 친하겠네?”

“그러거나 말거나. 아~ 짜증 나. 참, 나한테도 입단속 하랬으니까 너도 조심해라.”

형욱은 말과는 다르게 히죽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로 둘이 함께 폐가에 가는 일은 없었다.

그날은 비가 찝찝하게 내리는 수요일이었다. 세진이는 형욱이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꼬박꼬박 나갔다. 교회에서 매주 쌀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세진이는 빈 교회에 앉아 여대생에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여대생은 성가대 선생이고, 형이 자폐증이라는 걸 알려준 사람이었다. 그녀가 우연히 세진이 노래를 듣고나서 성가대에 들라고 권유했지만, 형 때문에 시간을 쪼갤 수 없었기에 매번 거절했다. 하는 수 없이 여대생은 예배를 마친 뒤 세진이에게 따로 노래 요청을 했다. 오늘은 카치니의 ‘아베마리아’였다. 처음 부탁받았을 땐 외국어로 된 노래라 쫄았는데 가사가 거의 없어서 생각보다 쉽게 익혔다. 교실에 잔잔히 울리는 노래를 들으며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Ave~ Maria~~ Ah~~~ Ah~~~

세진이는 노래를 듣는 것보다 직접 부르는 게 즐거웠다. 그 순간만은 괴로움이 머리에서 사라졌고, 입속에 가득한 노랫말과 흘려보내는 선율과 노래하는 자신뿐이었다. 총천연색 멜로디가 사방으로 퍼졌다. 입을 떠났다가 되돌아오는 울림은 시간을 역행해서 자궁에 있을 때의 기억을 일깨웠다. 자그마한 몸을 움츠리고 자궁벽을 통해 들었던 소리와 그때 보았던 풍경, 세진이는 그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눈을 감고서 제가 만드는 선율에 취해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시선이 와 닿았다. 노랫말을 읊조리며 정체를 찾아 눈을 굴렸고, 정체를 찾았을 때 노래를 뚝 그쳐 버렸다. 창밖에서 채우가 훔쳐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채우가 교회에 있는 건지 의아했다. 범인을 발견한 건 세진인데 정작 채우야말로 뭔가 발견했다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채우는 이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왜 노래 안 해?”

고개를 돌리니 여대생이 말똥말똥한 눈을 하고 있다.

“아니요. 사레가 걸려서요.”

‘뭐야…. 기분 나쁜 자식.’ 세진이는 신경을 돌리며 완창했다. 눈감은 여대생은 여운을 음미했다.

“너 진짜 노래 잘하는구나. 잘한다는 말로는 좀 부족하고…. 뭐라고 해야 하지? 네 목소리 너무 청아해서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져. 돌아서면 또 듣고 싶고, 자꾸 귀에 맴돌고…….”

그녀는 긴 머리카락을 어깨로 넘기며 말을 이었다.

“나 사실 두통이랑 불면증이 심하거든. 그런데 네 노래 들은 날은 두통도 없어지고, 아침까지 푹 잠들어. 아무튼 너 여기서 썩는 게 아까울 정도야.”

그녀는 털이 북실북실한 가방에서 CD를 꺼내 내밀었다.

“참. 이거 리베라 소년합창단이라고 네 또래 애들이 노래하는 거야. 다음에 좀 불러줄래?”

CD에 적힌 영어를 보자마자 눈앞이 까매졌다. “거기 한글로 발음 적어놨어.” 낌새를 눈치챈 여대생이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아, 너 이번 크리스마스 때 독창 안 해볼래?”

“독창이요?”

“응. 아무리 성가대에 들어오라고 해도 네가 거절하니까 크리스마스 때만이라도 부탁해.”

“하지만, 성가대도 아닌 애가 독창하면 다른 애들이 싫어할 걸요?”

“안 그래도 애들한테 물어봤는데 모두 괜찮대. 목사님도 좋아하셨고. 그날 사람들한테 네 노래 들려주고 싶어. 장담하는데 모두 선생님처럼 행복해할 거야.”

행복씩이나…. 당황스러운 제의지만 노래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이 머리에 맴돌았다. 그녀는 매번 세진이 노래에 오그라들 만큼 칭찬 일색이었고 내심 세진이 스스로 인정하는 실력이었다. 반푼수 형 때문에 팔자 꼬인 불쌍한 아이가 아니라 오직 노래로 인정받는 건 처음이었다. 꼭 해보고 싶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여대생은 뛸 듯이 기뻐했다. 가방을 들춰 맨 그녀가 말했다.

“그럼 다음 주부터 연습 시작하자. 너도 바쁘니까 시간 많이 안 뺏을게.”

문으로 나가려던 그녀가 머뭇거렸다.

“저기…내일도 노래 불러줄래?”

“내일요? 하지만, 그제도 불러줬잖아요.”

“그냥… 아까도 말했듯이 네 노래는 계속 듣고 싶기도 하고…. 아, 교회 오기 번거로우면 내가 너희 집에 가도 괜찮은데…….”

집엔 형도 있고 냄새도 지독해서 누굴 들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여대생은 이상했다. 이상하다기 보다 귀찮았다. 전엔 한 달에 한 번만 노래 요청하던 것이 언제부턴가 일주일에 한 번, 삼일에 한 번꼴로 잦아진 것이다. CD를 만지며 대답을 고사하자 그녀는 아쉽다는 얼굴로 돌아갔다. 그리고 교회에 채우를 데려온 게 형욱이라는 건 차후에 알게 된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 성탄절 공연을 일주일 앞두었을 때였다. 그날 부를 노래는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이었고, 세진이 독창을 필두로 나머지 9명이 화음을 넣기로 했다. 그런데 연습 첫날부터 문제가 생겼다. 기존 성가대원들과의 마찰이라면 차라리 나았다. 형욱과 채우가 교회 뒤쪽에 앉아 연습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아까부터 둘은 주거니 받거니 실랑이 중이었다. 세진이는 부글거리는 속을 다스리며 눈길을 안 주려고 애썼다. 갑자기 형욱이 여대생에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채우 노래 잘하는데 성가대 좀 시켜주죠?”

그 순간 채우 안색이 석고상처럼 변했다. 여대생은 흥미를 보였다.

“그래? 채우가 노래를 잘했어?”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말이 필요 없대요. 죽은 사람도 벌떡 일어날 정도라던데요?”

“그럼 너도 성가대 해볼래? 말할 때 목소리가 깨끗해서 노래할 때도 예쁠 거야.”

여대생의 말에도 채우는 대답없이 얼어 있었다. 세진이는 발아래가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둘이서 보란 듯이 알짱거리는 것도 모자라 기어코 세진이의 영역까지 채우를 떠미는 형욱이 증오스러웠다. 주먹을 꽉 쥔 채 형욱을 노려보지만, 놈의 눈엔 채우밖에 안 보이는 듯했다. 묘한 공기가 흐르자 형욱이 실없이 웃었다.

“혹시 이 노래 몰라서 그래? 너 머리도 좋으니까 금세 외울 거야.”

“안 불러.”

채우는 차갑게 말했다.

“에이~ 빼지 말고 딱 한 번 해봐. 엄마가 하도 칭찬해서 나도 예전부터 듣고 싶었다구. 왜?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게 부끄러워서 그러냐?”

형욱이 이토록 너저분한 인간인 건 처음 알았다. 채우는 자신이 화났다는 걸 온몸으로 뿜어내는데 형욱은 눈치 없이 채우 옆구리를 꾹꾹 찔렀다.

“뻗대지 말고 딱 한 번만…….”

“안 부른다고.”

“아니 도대체…….”

“안 불러. 안 불러. 안 부른다고 했잖아―――――――――!!”

쩡―――――― 하고 소리가 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찰나였다.

“으윽―――――!”

“꺄아악―――――!”

창문과 피아노 건반이 거칠게 흔들렸다. 형욱이 머리를 움켜쥔 채 바닥을 뒹굴더니 코피를 흘렸다. 성가대 부원 모두 머리를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세진이는 숨을 들이켠 채 멍하게 있었다. 사람들이 왜 갑자기 저러는지 이해가 안 됐다. 조금 전 섬뜩한 것이 피부를 긁었지만, 저들처럼 몸을 못 가눌 정도는 아니었다. 가까스로 정신 차린 아이들과 여대생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첨예한 비명이 사라지기 전에 소리의 주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형욱을 싸늘하게 쳐다보았다.

“앞으로 나 아는 척하면 죽여버릴 거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채우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형욱은 느닷없는 결별선언에 코피를 닦을 정신도 없어 보였다. 눈앞에서 차이는 형욱을 보니 동정은커녕 속이 후련했다.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하고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세진이 자신이 채우를 잡으러 가는지, 스스로 멱살 쥐며 다그치면서도 발길은 멈추지 않았다. 있는 힘껏 쫓아가다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구르고 말았다. 바지가 구멍 나고, 무르팍에 피가 나도 눈으로는 채우를 찾았다.

교회에서 나와 녀석이 종종 숨는 골목으로 달려갔다. 주변을 서성거리는데 담벼락 끄트머리에서 자그마한 발끝이 보였다. 고개를 쭉 빼고 살피니 역시 발 주인은 채우였다. 터덜터덜 걸어가 채우 앞에 섰다. 채우는 불청객에게 차가운 시선만 보낼 뿐 떠나진 않았다. 세진이는 조심조심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이번에도 아무 반응 없자 세진이는 슬그머니 벽에다 등을 기댔다. 서로 뱉어내는 숨결의 입자가 찬 공기에 뭉쳤다가 흩어졌다. 세진이는 바닥에 뒹구는 유리조각을 손바닥에 얹고 햇볕에 비추었다. 시린 빛깔을 보며 불쑥 말했다.

“나 네 옆 반이야.”

채우의 눈동자가 옮겨왔다. 그리고 뜻밖의 말을 했다.

“알아. 1학년 2반.”

어라? 의외의 대답에 세진이 눈이 등잔만 해졌다.

“그럼 내 이름도 알아?”

“장세진.”

“그럼 우리 엄마 없는 것도? 우리 아빠 병원에 있는 것도? 우리 형 모자란 것도?”

채우는 부지런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안중에도 없는 줄 알았는데 연타로 놀라움을 안겨줬다. 소개할 필요가 없어지자 또 분위기가 휑해졌다. 세진이는 채우를 훔쳐보았다. 멀리서 볼 땐 바람에도 휩쓸려갈 듯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강단 있어 보이는 눈빛과 입술이었다. 그렇지만 신기루를 닮은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그래서 사라지기 전에 꼭 물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노래 안 하는데? 내가 그렇게 잘하면 신나서 하겠다.”

채우는 묵묵부답이지만, 아까처럼 날카로운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세진이도 말하기 싫은 걸 억지로 끄집어낼 요량은 없기에 궁금증을 접기로 했다. 한 차례 몰려온 떠돌이 바람이 바닥을 휘돌아 나뭇잎을 주워담고는 훌쩍 떠나갔다. 세진이는 괜스레 구멍 난 바지를 만지작거렸다. 대화도 없이 맹숭맹숭한 시간임에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채우도 자리를 피하지 않는 걸 보면 같은 기분일 거라고 생각했다. 콧잔등이 얼어붙고, 엉덩이가 얼얼해질 즈음 채우가 입을 열었다.

“난 노래하면 안 돼.”

또 저 말만 하고 어딘가로 날아갈 것 같아, 세진이는 신중하고 신중하게 물었다.

“……왜?”

“형이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하지 말라고 했어.”

“왜… 형이 노래하지 말랬는데?”

채우는 희미하게 웃었다. 웃음도 울음도 아닌 그 표정에 가슴 언저리가 답답해졌다.

“엄마는 원래 여기 이사 오기 전에 음식점에서 일했어.”

채우는 벽에다 머리를 기댔다. 그리고 놀라운 얘길 들려주었다.

“하루는 엄마 친구들이 놀러 왔어. 공사판에서 일하는 아저씨랑 술집 다니는 아줌마도 있었는데 술 마시고 놀다가 심심했는지 나한테 노래를 시켰어. 난 그냥 동요 중에 생각나는 거 아무거나 부르고 방에 들어왔어.”

“…그런데?”

“그런데 그 사람들이 다음날에도 집에 찾아와서 나한테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어. 다음 날도, 그 다음 날에도……. 몇 시간이나 노래만 듣는 거야. 가끔 우는 사람도 있었어. 그러다 엄마가 그 사람들한테 장난삼아 돈을 내라고 했어. 그 사람들이 군소리 없이 돈을 내니까 엄마는 계속 돈을 올렸어. 어떤 아저씨는 한 달 치 월급을 들고왔고, 어떤 아줌마는 금목걸이로 대신 준 적도 있었어.”

거짓말! 세진이는 튀어나오는 소리를 가까스로 참았다. 애들 동요나 듣자고 월급에 폐물까지 바치다니, 아무리 세상에 통달한 세진이라도 곧이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채우의 눈빛은 너무 진지했다.

“그때부터 엄마는 식당도 관두고 나한테 매일 조퇴하라고 했어. 엄마가 고생 안 하고 집에 있어서 좋았지만, 점점 무서워졌어. 그 사람들은 계속 아팠는데도 병원에 안 가고 나한테 왔어.”

“왜?”

“모르겠어. 그냥 내 노래를 들으면 안 아프대. 형은 엄마도 그 사람들도 미친 거라고 했어.”

“…….”

“그래서 형이 고집을 부려서 여기에 이사온 거야. 그 사람들이 쫓아올까 봐 내 이름도 바꾸고….”

“이름까지? 원래 이름이 뭔데?”

“예전 이름은 생각도 하기 싫어. 전부 다 버리고 싶어…….”

채우는 그저 먹먹한 표정만 지었다. 이름까지 버리고 과거로부터 도피했지만, 결국 엄마 때문에 똑같은 일이 반복된 것이다.

“그래서 노래가 싫어진 거야?”

“싫은 것보다 무서워……. 지금도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집에 가기 싫어.”

채우는 아우성에서 벗어나려는 듯이 귀를 막았다. 그럼 채우 집에 드나들던 사람들이 모두 노래를 들으려고…. 세진이는 이 얘기를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리가 복잡해졌다. 한편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어른들에게 휘둘리는 채우가 불쌍했다. 시무룩하게 있던 채우가 난데없이 세진이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이 얘기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알았지?”

“나만 비밀로 하면 뭐해. 너도 형욱이한테는 말했을 거잖아.”

“안 했어. 걘 아무것도 몰라.”

형욱이 조차 모르는 비밀을 공유한다니 왠지 자신이 형욱이 위에 선 기분이 들었다. 몇 번이나 확인하고서 세진이는 벌떡 일어나 녀석을 집으로 끌고 갔다. 형이 있고 집안에 악취가 진동했지만, 채우집보다 나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하니 형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라면을 끓여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함께 먹어치웠다. 둘이서 부른 배를 두드리며 부엌에 있을 때였다. 채우는 머뭇머뭇 입을 뗐다가, 다물었다가 아까부터 계속 저랬다. “뭐야?”하고 눈으로 재촉하니 그제야 채우가 말문을 열었다.

“세진이 넌 언제부터 노래 불렀어?”

“그걸 어떻게 일일이 기억해? 할 때가 됐으니까 했겠지.”

“전에 교회에서 네 노래 들었을 때 솔직히 놀랐어. 내가 본 사람 중에 최고로 잘해서…….”

“아, 뭐…….”

머쓱함에 세진이는 발끝에 걸리는 싱크대를 툭툭 쳤다. 채우는 뭔가 초조한 듯이 손톱을 잘근거렸다.

“전에 너 교회에서 성가대 선생님한테 노래 불러줬잖아. 혹시…그 선생님 점점 자주 오지 않아? 아니면 어디가 아파 보이거나…….”

“두통이 좀 좋아졌다고는 했는데, 나 기분 좋으라고 괜히 하는 말이겠지.”

“그 선생님 말고 계속 찾아오는 사람은 없고?”

“글쎄. 가끔 목사님도 불러달라고 하셨고, 집사 아줌마 한 분도…….”

그러고 보니 형한테는 한 번도 노래 불러준 적이 없었다. 해 줘봐야 알기나 할까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엄마 아빠는 서로 물어뜯기에 바빠서 세진이 노래에 귀 기울일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그때 상념을 깨부수는 말이 들렸다.

“너 성탄절에 독창 안 하면 안 돼?”

그건 부탁이라기보다 명령에 가까웠다. 세진이 목소리가 절로 차가워졌다.

“왜?”

“모르겠어. 사실 전에 네 노래 들었을 때 그래야 한다는 기분이 들었어.”

“이유를 말해야 들어주든지 말든지 할 거 아냐? 아니, 알아도 난 할 거야.”

“하지 마. 그냥 하지 마!”

“그러니까 왜 그러냐고?!”

“나도 모르겠어! 그냥 하지 마!”

“진짜 까불래?!”

세진이는 채우 멱살을 쥐었다. 서로 씩씩거리며 노려보다가 세진이가 먼저 손을 거뒀고, 채우도 시선을 틀어버렸다. 곰팡이 낀 벽에 기대며 죄 없는 찬장만 노려보았다. 늘 세진이에게 붙은 수식어구 없이 온전히 그것만으로 인정받는 게 바로 노래였다. 노래는 돌파구이고 산소통인데 그걸 포기하라니…. 밑도 끝도 없이 목숨을 빼앗기는 기분이 들었다. 채우가 억지 부리는 이유를 설명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괜한 충동에 떠밀려 녀석을 집에 들인 게 후회막급이었다. 성가대 연습에나 가려고 자리를 털다가 채우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건 호기심을 가장한 경쟁심이었다.

“그럼 네 노래 한 번만 들어보자.”

채우의 미간이 은박지처럼 구겨졌다.

“형이 안 된다고 했댔잖아.”

자꾸 빼는 걸 보니 의욕이 더 불타올랐다. 세진이는 채우 쪽으로 고쳐앉았다.

“형한테 말 안 하면 되잖아. 어차피 나 말고도 어른들한테 불러줬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잖아.”

“…….”

“그래! 나한테 독창하지 말랬지? 너 노래 하는 거 봐서 나도 결정할게.”

물론 거짓말이었다. 이제 호기심은 필사적으로 바뀌었다. 대체 어떤 노래기에 엄마를 미치게 하고, 어른들이 돈까지 갖다 바치는 건지, 그 비밀을 반드시 알아내라고 검은 목소리가 속삭였다.

“응? 딱 한 번만. 네 노래 들은 거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독창도 생각해볼 테니까…….”

“진짜야?”

지금껏 단호했던 채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세진이는 그 흔들림이 날아갈까 봐 눈도 깜짝이지 않았다. 왜 그토록 무서워하는 노래를 하면서까지 세진이 독창을 막으려는지 저의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채우조차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였다. 몇 시간 같은 찰나가 지나고 채우는 입술을 지그시 물며 말했다.

“그럼…딱 한 번만이야. 약속 지켜야 돼.”

“응.”

자세를 고쳐 앉고 채우에게 집중했다. 채우는 또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노랫소리를 흘려보냈다. 그 순간, 세진이는 귀에 녹아드는 음색에 넋을 잃고 말았다. 노랫소리는 빛보다 빠르게 퍼졌다.

Ah~Ah~ Ave~ Maria~~ Ah~~~ Ah~~~

곡선을 닮은 음성이 흩날려 저기 어두운 곳까지 상냥하게 채워주었다. 그 잔향이 사라지기 전에 다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뒤따라온 노랫말이 또 그 위로 치며 올라가고, 마치 두 사람이 부르듯이 선율은 끊어지는 일이 결코 없었다. 채우의 입술과 콧잔등에 빛이 반사됐다. 그 투명함을 닮은 목소리 입자는 살갗과 심장에 스며들어 온몸을 결박했다. 잡티 없는 목소리엔 바이올린이 있고, 하프가 있고, 클라리넷이 있고……. 세상 모든 악기가 들어 있었다. 세진이는 머릿속이 점점 몽롱해졌다.

Ave~ Maria~~ Ah~~~

청량한 음색이 퍼져 주변 풍경까지 모두 빨아들였다. 냄새도 없고 형체도 없이 벽에 부딪혀 또 다른 울림을 자아냈다. 가장 높은 음이다 싶으면 다시 치고 올라갔고, 한계에 왔다 싶으면 더 높이 치고 올라가 황홀경에 빠지도록 했다. 호흡 위를 거니는 무결점의 음색은 너무 아늑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곰팡이 낀 벽 틈에도, 마른 나뭇가지에도, 얼어붙은 땅에도 닿아 이 계절에 볼 수 없는 그림을 그렸다. 수만 가지의 빛깔로 천국을 그리게 했다. 마치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서만 노래하라고 만든 목소리처럼. 그것은 처음 느끼는 무아지경이었고, 공포였다. 이대로 더 있다간 어딘가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아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비명을 지를 뻔했다. 아까 넘어져서 까진 상처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점점 눈앞이 흐려지고 숨이 차올랐다.

“그만 해. 그만 해!”

발작처럼 소리를 지르는 순간 채우의 노래가 뚝 그쳤다. 천국도 사라졌다.

“그만 하라고…….”그렇게 말하는 세진이 목소리는 고막을 뜯어내고 싶을 만큼 듣기 싫었다. 도망치고 싶지만, 노래의 잔향이 몸에 달라붙어서 놔 주지 않았다. 그제야 채우가 부른 노래가 아베마리아란 걸 알았다. 무릎 위에 떨어지는 눈물이 피처럼 번졌다. 세진이는 짠맛이 밴 입술을 깨물고 가까스로 목소리를 끄집어냈다.

“이, 이…노래 어떻게 알았어? 우리 나이에 아는 애 거의 없는데…….”

얼굴이 굳었던 채우도 이내 차분하게 대답했다.

“전에 네가 노래하는 거 들었으니까.”

“……그때 한 번만 듣고… 모두 기억한다고?”

부디 자신의 목소리가 아무렇지 않게 들렸으면 했다. “응.” 채우는 머리를 위에서 아래로 끄덕였다. 그 순간 세진이 심장이 내리막 쳤다. 까닭 모를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때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흠칫했다. 언제 일어난 건지 어둑한 방에서 형이 상반신을 어정쩡하게 세운 채 굳어 있었다. 문득 형의 눈동자에서 뭔가 반짝거렸다. 반짝이는 수분은 넘쳐나는 벅차오름의 흔적일 터였다. 그리고 지금껏 누구와도 눈을 맞추지 않던 형이, 세진이 외엔 어떤 것에도 반응하지 않던 그 형이 채우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그가 넋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노, 노래 해주세요…. 또 해 주세요…….”

채우 형이 옳았다. 그 애는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하지 말았어야 했다.

“누가 반긴다고 거길 가?! 한 번만 더 그 집에 가면 경찰한테 잡아가라고 할 거야!”

“채우 노래 듣고 싶어요…. 한 번만 듣게 해주세요…….”

형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원했다. 그가 제일 무서워하는 말임에도 그 열망이 두려움마저 쳐냈다. 그날부터 형은 채우 집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눈만 마주쳐도 채우만 찾았다. 채우는요? 채우 안 왔어요? 채우 집에 데려다 줘요. 채우 데려와 주세요. 채우, 채우…….

“안 와! 안 온다고 했잖아!”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형은 바지에 똥오줌을 지렸고, 식음을 전폐했고,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세진이는 처음으로 형에게 지독한 감정을 느꼈다. 지금껏 형을 버리고 버리지 않고의 선택권을 쥔 건 세진이었다. 그런데 더이상 자신은 형에게 절대적인 존재도, 제일 좋아하는 사람도, 보호자도 아니었다. 걸리적대는 방해꾼일 뿐이었다. 그게 너무 무서웠다.

세진이는 밖에서 테이프로 문을 고정하고 고장 난 TV와 바위를 두 개 쟁여놓았다. 반푼이라도 힘 하나는 장사였기에 탈출할 위험이 컸다. 문을 잘 확인하고는 슈퍼로 발길을 서두르다가 멈춰 서고 말았다. 골목 전봇대 근처에서 형욱이 낯선 남자와 얘기하는 걸 발견한 것이다. 남자는 동네를 빙 둘러보더니 반대쪽으로 내려갔다. 터덜터덜 걸어가니 형욱이 어색한 얼굴로 맞아주었다. 아무리 미운 감정이 크더라도 좋아하는 감정을 모조리 짓밟긴 힘든 모양이다. 이렇게 심장이 뛰는 걸 보면 말이다.

“아까 그 남자 누구야?”

“그냥. 이것저것 물어보길래…….”

아~ 하며 세진이는 고개를 주억댔다. 좀 더 얘기하려는 구실일 뿐 그 남자가 누군지 궁금한 건 아니었다. 형욱은 찝찝한 표정으로 남자가 사라진 곳을 쳐다보다가 건성으로 인사를 남기고 달려갔다. 형욱이 뛰어가는 곳은 채우의 집이었다.

“언제 또 폐가에 안 갈래……?”

제 목소리만 홀로 바닥에 나동굴었다. 형욱이가 버림받길 바랬고, 바람대로 됐지만, 형욱은 돌아오지 않았다. 채우가 세진이 주변을 하나씩 점령해도 너그러이 이해하려 했다. 돈에 미친 엄마에, 개망나니 형까지 딸린 채우는 누가 봐도 동정받아 마땅하니까. 그토록 불쌍한 애한테 신경 써주는 것까지 뭐라 할 수 없으니까. 수시로 끓어오르는 질투심을 동정심으로 바꾸려 몸부림쳤다. 그렇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채우에게 달려가는 형욱이 등을 바라봐도, 채우만 찾는 형 목소리를 들어도, 아직 까지는 그 애를 동정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만약 그 일만 없었다면 말이다.

시간은 빠르게 뛰어 성탄절 당일에 도착했다.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도 오늘만은 얼굴에 행복을 밝혔다. 교회는 트리와 눈사람 인형으로 꾸몄고 안팎은 발 디딜 틈 없이 북새통이었다. 예상대로 채우와 형욱은 오지 않았다. 아침부터 형을 씻기고 옷을 입혀 교회에 데려왔다. “집에 갈래요….”자꾸 엉덩이를 들썩이는 형을 달래고 얼렀다. 사람들이 힐끔거렸다. 어눌한 말주변이나 궁색한 지능만 감춘다면 어디에 내놔도 어깨에 힘 들어가게 할 형이었다. 형은 사람 많은 곳을 질색하지만, 오늘은 세진이가 처음으로 형한테 노래를 들려주는 날이었다.

“노래 부르면 바로 내려올 테니까 어디 가지 마.”

형에게 컵에 담은 촛불은 쥐여 주며 신신당부하고 무대 뒤로 달려갔다. 날개 달린 천사 옷과 동그란 소품을 머리에 끼었다. 세진이 양옆으로 성가대 부원들이 섰다. 성가대 모두 긴장한 기색이 가득했고, 세진이도 심장을 게워낼 지경이었다. 빨간 커튼이 양쪽으로 갈라지고 컴컴한 무대에 불이 켜졌다. 객석에 사람들이 든 촛불은 도시 야경처럼 넘실거렸다. 알록달록한 빛에 둘러싸인 아이들은 성탄절에 잠시 놀러 온 요정 같았다. 피아노 반주가 시작되자 성가대가 앳된 목소리로 선창했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당신과 만나는 그날을 기억할게요~]

오늘 어쩌면 엄마가 남긴 성탄절의 악몽 대신 진짜 추억을 만들지도 모른다. 그게 세진이가 형에게 주고 싶은 성탄절 선물이었다. 아이들이 만드는 화음 위에 세진이는 제 목소리를 살며시 얹었다. 형을 위한 노래가…….

[창틀 위엔 촛불이 까만 밤을 숨으며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여가겠죠~

헤어져 있을 때나 함께 있을 때도 나에겐 아무 상관 없어요~

아직도 내 맘은 항상 그대 곁에 언제까지라도 영원히…….]

세진이의 목소리가 강당에 퍼졌다. 아직 채우의 노래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노래할 때만은 잡념이 사라졌다. 애써 노력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세진이는 자신을 위해서만 노래했고, 제 음색에 도취 되곤 했다. 그렇지만, 만약 이 무색무취의 목소리로 무언가를 만질 수 있다면, 사람들이 그 감촉을 느낄 수만 있다면, 저 의자와 온종일 서 있는 나무와 오염된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기를, 오염된 모든 것을 비우고 처음부터 새롭게 채우기를…. 아주 가끔은 그렇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세진이 노래가 입속에서 뭉개졌다. 갑자기 노래가 그치자 피아노 반주 선생 얼굴이 굳어갔다. 아이들도 술렁거렸다. 컴컴한 강당에는 노랗고 빨간 전구만 눈을 깜빡거렸다. 세진이는 멍하게 한 곳을 바라보았다. 홀로 촛불만 남은 형의 자리를…….

콰앙―――――――!

세진이는 천사복도 벗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려왔다. 집에 오자마자 문을 열어젖혔다. 방안엔 어둠과 썰렁한 공기만 뒹굴었다. 하아…하아…점점 숨이 고지에 올랐다. 망설임 없이 걸음을 돌렸다. 형이 지금 이 시간에, 오늘 같은 날에, 동생까지 내팽개치고 갈만한 곳은 하나밖에 없었다.

“개새끼! 병신새끼! 혼자서는 똥오줌도 못 가리는 바보 병신!”

찬비가 내리는 골목을 뛰어갔다. 혹한을 머금은 빗물이 칼처럼 살갗을 베었다. 동네 어디선가 누군가 캐롤송을 불러 재꼈다. 누구는 선물을 풀어보느라 정신없을 터였다. 형은 누가 제일 좋아? 세진이가 제일 좋아요. 최고로 좋아요.

“거짓말! 거짓말! 지랄하지 마!!”

그건 형의 감정이 아니라, 세진이가 가짜 진실을 말했듯이 형도 가짜 진실을 말한 것뿐이다. 형욱이도 마찬가지였다. 채우와 가장 가까운 이웃인 자신은 밟고 가기 좋은 다리였다. 정신을 차려 주변을 둘러보니 채우가 야금야금 세진이의 것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세진이가 언 손이 헐도록 이불빨래 해야만, 허리가 부서지도록 밥해다 바쳐야만, 억지로 강요해야만, 형은 듣고 싶은 말을 적선해줬다. 만약 형을 빼앗길 준비가 돼 있었다면 충격은 덜 했을까? 면역력 없는 상태에서 헤집어진 상처는 쉽사리 회생하지 않았다. 대신 상처 자리에 새로운 악의가 겹겹이 쌓여갔다. 독창도 엉망진창이 됐고 성탄절의 악몽이 하나 더 생기고 말았다. 다시는 성탄절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세진이는 저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찝찔한 눈물이 입속에 들어오자 그제야 이 슬픔이 실감 났다.

“흐윽…윽…….”

빗속에 뒤섞이는 뽀얀 입김은 서글펐다. 뻥 뚫린 가슴으로 칼바람이 지나갔다. 구불구불 빛바랜 골목을 지나 갈림길에 들어서고 가파른 비탈을 달려갔다. 형형한 눈으로 채우 집을 주시했다. 그때였다.

그만 해요! 그만!! 싫어――――――!!

어둠을 찢는 절규소리에 세진이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불길한 예감이 치덕치덕 달라붙었다. 다리를 박차며 모퉁이를 돌았다. 채우 집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갔다. 불빛 없이 적막한 집을 빗소리가 사납게 두드렸다. 천천히 다가가 현관문을 열었다. 끼이익… 소름 끼치는 소리뿐, 집 안은 암흑에 잠겨 있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집으로 들어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 순간 뒤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경기하듯 고개를 돌리자 깊은 어둠 안에 있는 남자가 보였다. 그는 검은 하늘 같은 우산을 어깨에 받치고서 세진이를 응시했다. 그의 손가락에 끼인 담배 연기가 처녀 귀신 옷자락처럼 하늘거렸다. 오소소한 팔을 쓰다듬으며 대문 너머를 곁눈질해도 지나가는 이 하나 없었다. 담배를 한 모금 피우던 남자가 기습처럼 입을 뗐다.

“너 이 집에 사나?”

정체 모를 사람에게 구구절절이 말할 수 없으니 대충 얼버무렸다.

“아니요. 전 그냥… 잠깐 놀러 온 거예요.”

“이 시간에 남의 집에 멋대로 들락거리다니, 가정 교육을 받다 말은 모양이군. 아, 괜찮아. 아저씨는 거짓말을 많이 해봐서 거짓말인지 아닌지 잘 알거든.”

모호한 말에 이어 남자는 빗물을 헤집으며 걸어왔다. 그가 세진이 앞에 당도하자 그제야 쳐다보면 목 아플 만큼 키가 크다는 걸 느꼈다. 움푹 팬 남자의 볼에 크고 작은 흉터가 과거 내력을 대변하는 듯했다. 낯선 남자가 내뿜는 위압감은 혹한보다 더 몸을 얼게 했다. 그러다 세진이는 헉, 하며 숨을 멈췄다. 그의 목덜미에 커다란 전갈이 붙었기 때문이었다.

“네 이름은?”

남자가 다시 물었다. 대체 누구인지, 왜 이런 걸 묻는지 짐작하기 어려웠으나 주변을 감싼 습한 공기가 대답하도록 만들었다. 세진이는 주춤거리며 말했다.

“자, 장세진…….”

“몇 살?”

“여, 열네 살요…….”

그 순간, 남자는 이빨을 번뜩이며 웃었다.

“널 찾으려고 좆 빠지게 돌아다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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