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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139화 (139/144)

139화

거실 창가에서는 비가 갠 밤하늘이 바로 들여다보였다. 그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위에는 가끔 함께 마시곤 하는 익숙한 라벨링의 와인과 카나페 따위의 간단한 안주들이 다였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충분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함께 공유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곁에 머물러 있는 일상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되새기면서 말이다.

태주의 품에 나른하게 기대어 있던 차영이 적막을 가르고 입을 열었다.

“내가 정말 열심히 생각해 봤는데, 한 기장 거기 가지 마.”

그간 태주는 매년 최선을 다해 신경 썼으나, 정작 당사자인 차영은 생일을 챙기는 일 자체를 꽤 낯설어하곤 했다. 그런 그가 어째서 굳이 시계까지 되돌려 가며 시간을 벌어 어제를 돌이키고자 하나 했더니, 차영은 두 사람이 처음 갈등을 빚었던 원인에 대해서 어떻게든 해결하고 넘어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 마음을 느낀 태주는 응당 그러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여 차영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 것으로 답했다.

“왜 허락 못 해 주겠다는 건지 안 물어봐?”

“왠지 알아. 그리고 나도 이미 그러려고 결정했어. 내 마음 편해지고 싶어서 네 생각을…… 일부러 안 했어.”

“못 했다고, 실수라고 안 하네. 너무 솔직한 거 아니야?”

“나 거짓말은 안 한다고 했잖아. 앞으로도 그럴 거야.”

“음. 그건 좋은 태도라고 봐.”

그가 픽 웃었다.

“내가 잘못한 거니까. 네가 어떻게 날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기 싫었어. 그러면 외할아버지 보러 가겠다고는 말도 꺼낼 수 없을 것 같았고.”

“응. 나 뉴스에서 그 사람 죽음 기리러 한 기장이 결국 왔다는 소식 듣는 거, 벌써 싫어.”

차영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이 타성에 의해 생을 마감하는 것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여전히 문 회장이 끔찍했다.

다만 이제는 이 세상에 그가 없고, 아울러 그의 처참했던 마지막 장면을 그린 사람이 태주였기에 애써 모르는 척 덮고 넘어갈 수 있었던 것뿐이다. 그래야만 했던 태주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건 같은 슬픔을 겪은 자신밖에 없었다. 그에게 가족이 되어 줄 사람도, 친구가 되어 줄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망설이는 말이 있는 듯 찰나간 짐짓 입술을 달싹이던 차영은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그냥 혼자 다녀와. 아무도 몰래. 한 기장만 아는 어떤 때에. 나한테도 숨기고.”

“차영아.”

“솔직히 그쪽이 외할아버질 보러 가는 게 위선이라는 내 생각은 아직도 유효해. 그런데 또…… 한편으론 한 기장이 앞으로 중간에 깨는 일 없이 제대로 잤으면 좋겠어. 그럴 때마다 같이 깨어나서 새벽 내내 괜히 미안한 기분이 드는 것도 나한테 못 할 짓 같아.”

“…….”

“미안해. 힘들어하는 건 아는데 난 거기까지밖에는 이해 못 해 주겠어. 나한테 오늘 못 준 생일 선물 준다고 생각하고 한 기장이 양보해 줘.”

가끔 차영은 태주 역시 자신과 같은 피해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의 말마따나 자신 역시 그의 생각을 일부러 안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는 어쨌든 문 회장의 핏줄이고 사고에 관한 역학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반대로 자신은 순도 100퍼센트의 피해자였다. 그 정보를 줄곧 머릿속에 입력해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되새기는 것이다.

아울러 본인의 아픔이 훨씬 크고, 이 문제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일들은 태주가 감당해야 마땅한 몫이라고 이미 제 안에서 정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정말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어쩌면 그가 아니라 차영이었다. 태주의 슬픔이 눈에 보인다고 말하면서, 그저 말뿐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게 너무 미안했다.

“난 차영이 네 말에만 귀 기울이고 네 말만 들어. 알잖아.”

상처 입은 그를 보호하기에 자신의 가림막은 너무도 연약하고 볼품없었다. 그래도 그는 제 말만 듣고 기꺼이 양보하겠다고 나선다.

애틋하게 손을 뻗은 차영이 태주의 손에 들린 와인 잔을 빼앗았다. 남은 포도주를 전부 한입에 털어 넣듯 마시고 그대로 태주에게 키스했다. 그가 본능적으로 차영에 등에 손을 두르고 보조를 맞췄다.

그의 보드라운 입술 위를 핥던 차영은 이내 축축하게 젖은 제 살덩이를 태주의 입 안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그의 혀가 그 위에 능숙하게 겹쳐졌다. 오래 숙성된 포도의 아찔한 향기가 서로의 입 안에서 은은하게 맴돌았다.

시작은 차영이 했지만 태주가 금세 주도권을 쥐었다. 그의 젖은 혀끝이 차영의 민감한 동굴 속에 파고들어 이곳저곳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태주는 부드러운 점막을 죄다 헐게 만들 기세로 입 안을 끈질기게 건드리고, 핥아 댔다. 자연히 돌기가 바짝 선 혀가 부딪치고, 질척한 타액이 저마다의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으응, 음…….”

나지막하게 신음하는 차영의 상체가 파르르 떨렸다. 그 바람에 서로가 걸친 옷끼리 마찰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평범한 효과음은 오늘따라 유난히 관능적이어서, 낯이 몹시 뜨거울 정도였다. 필연적으로 태주의 가운 자락을 어설프게 쥐고 있던 차영의 손아귀에 빠듯하게 힘이 들어갔다.

키스에 열중하고 있던 태주는 서서히 차영의 전신에 점점 힘이 실리는 걸 느끼곤 입술을 떼어 냈다. 얼굴이 벌게진 차영이 호흡을 고르는 사이 힐끗, 제 옷깃을 쥔 손을 내려다보았다. 하얀 손등에 핏줄이 서 있는 모습이 꽤 야릇했다.

입맛을 다신 그는 차영의 늘씬한 허리를 덥석 쥐었다. 그러고는 마른 몸을 번쩍 안아 들어 자신의 허벅지 위에 앉혔다. 동시에 차영이 태주의 가운 매듭을 풀고 얇은 천을 넓은 어깨 위로 어설프게 넘겼다. 사락. 공기 중에 그의 탄력적인 가슴팍이 드러났다. 그 탄탄하고 매끈한 살갗 위에 차영의 곧은 손가락이 가볍게 얹혀졌다. 태주는 고개를 젖히며 가라앉은 탄성을 토해 냈다.

“하…….”

“한태주, 나랑 이러는 거 좋아?”

“좀 더 이리 와 봐. 얼마나 좋은지 확인해 보게.”

쓰윽, 차영의 하체를 제 쪽으로 당긴 태주가 서로의 하반신을 야릇하게 문질렀다. 서서히 발기하기 시작한 성기들이 옷자락 아래에서 겹쳐졌다. 적나라할 정도로 표피의 질감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얼만큼 강직되어 있는지를 인지할 만큼은 됐다.

그의 것이 제 몸에 닿아 점점 약이 올라가고 있다는 걸 느끼자, 차영은 질척하게 키스할 때보다 숨이 더 버거워졌다. 태주의 위에 걸친 듯 앉아 있는 허리와 허벅지의 경계가 파들거렸다. 균형을 잡고 버티기 위해 그의 드러난 어깨 위를 지탱하듯 짚고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이윽고 그가 귀두로 푹 찌르듯이 제 음낭을 건드린 순간, 자신도 모르게 태주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쥐고 탄성을 터트렸다.

“아, 하윽, 아!”

“하, 젠장. 감질 맛 나. 차영아, 허리 흔들어 봐.”

거절의 의미로 살짝 허리를 일으켜 세우려 하니, 그가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양 골반을 더욱 세게 붙들어 행동을 통제해 왔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완전히 일어선 성기를 차영의 회음 부위 위에 꾹 짓눌렀다.

“싫…… 아윽. 이거 싫어, 나 그냥 벗겨 줘.”

“침실로 갈까?”

그의 은근한 물음을 듣고 차영이 헐떡이면서 끄덕였다.

조심스럽게 차영을 안아 든 태주가 침실로 직행했다. 걸어가면서 상체를 숙여 입술을 맞물리기에, 차영은 그의 어깻죽지를 절박하게 붙들면서 혀의 온기를 나누었다.

침대에 누운 뒤부터는 일사천리였다. 그들은 익숙하게 호흡을 조절했다. 태주의 커다란 손이 차영의 옷가지를 죄다 벗겨 성을 허물어뜨리고 자신이 허리춤에 걸치고 있던 가운도 순식간에 벗어 던졌다. 털썩, 차영의 몸이 먼저 푹신한 침대 위에 완전히 쓰러졌다. 그 위를 태주의 탄탄한 몸이 내려앉듯 뒤덮었다.

“아…….”

부드러운 차영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준 태주가 그의 입술에 제 혀를 물렸다. 그러면서 온몸을 완전하게 결합한 상태로 차영을 끌어안았다. 사타구니 사이에 태주의 다리가 비집고 들어오자마자 차영이 움찔했으나 그는 조금의 빈틈도 내어 주지 않고 차영을 속박하려 들었다.

어두움이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린 침실은 두 사람이 내는 필연적 마찰음을 제외한다면 무척 고요한 분위기가 흘렀다. 쉴 새 없이 키스하는 동안 딱딱해진 태주의 성기가 차영의 허벅지 안쪽을 끊임없이 건드렸다. 그러자 찰나간 입술이 떨어진 사이에 차영의 입술을 비집고 탄성이 새어 나왔다.

“아윽……!”

이 소리가 도화선이라도 된 양 태주의 손이 바빠졌다. 그는 허겁지겁 차영의 다리 사이를 벌리고 그 가운데에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꼿꼿하게 고개를 들고 서 있는 서로의 성기를 한데 겹쳐 쥐고 정신없이 흔들었다.

“아, 아! 으…… 너무 급해!”

“하, 아, 4박 5일 생각보다 너무 길었어. 일단 한 번 싸. 같이 느긋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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