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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117화 (117/144)

117화

생각보다 인간이 눈을 마주치는 행위를 통해 교환하는 것들이 많다는 걸 이런 방식으로 깨닫게 되리라곤 예상 못 했다. 제 얼굴을 쳐다보고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어떤 눈길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지 시선을 교환했다면 눈치 빠른 한태주는 바로 알았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으니 부끄럽게도 의사 표현의 몸짓이나 직접적인 언어로 전달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아, 한태주.”

“제발 가지…….”

“나랑 사귀자.”

일순 태주가 굳게 입을 다물었다. 눅눅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고요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차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한번 헤어졌으니까. 다시 사귀자, 우리. 데이트도 하고, 잠도 자고, 가끔 싸우기도 하고.”

“…….”

“서로 명확히 어떤 사람인지 아는 상황에서 그거 전부 다시 시작하자고. 처음부터……. 이렇게 직관적이고 난이도는 최하인데 이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건 아니지?”

그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는데도 창백한 얼굴색과 실룩이는 볼 언저리, 그리고 잘근잘근 씹는 입술을 통해 복잡한 심경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손에 이어 뺨까지 파르르 떨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계속 입을 닫고 있던 그가 차영을 제 쪽으로 붙잡고 확, 잡아당겨 품에 안았다.

“내 말에 대답 안 해? 나 껴안기 전에 그게 먼저잖아.”

“난 너랑 헤어진 적이 없어. 그러니까, 다시 사귀고 말 것도 없단 뜻이야.”

“…….”

“말했잖아. 너 나한테 물렸다고.”

역시 한태주는 자신이 손아귀에 잡히지 않아 불안해하는 것보다 이런 뻔뻔한 모습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 자신에겐 없는 이런 모습들이 좋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물끄러미 그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던 차영이 그를 옆으로 살짝 밀고 침대 위에 제 몸을 조심스레 반쯤 누였다. 태주의 어깨에 편안하게 기대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그가 차영의 어깨나 목울대 등지의 붕대 위를 어루만졌다. 절박한 손길에 걱정과 애정이 가득했다. 이렇게 함께 안정적인 기류를 타고 끌어안고 있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차영은 이 감각이 아주 그리웠다는 것을 인정했다. 계속 안달이 나 자신을 만지작거리는 걸 보면 태주도 그런 게 분명했다.

“사고는…… 어떻게 된 거야?”

차영이 더욱 그에게 깊이 기대며 물었다.

“구체적으로 뭐가 궁금한 건데.”

“그냥. 다. 내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문 회장 노령이라, 시신 수습은 별로 어렵지 않았어. 사망 선고한 주치의도 집안에서 아주 오래 일한 사람이고.”

이 화제가 너무 자극적으로 들려서 차영은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나 그날 현장에 있었던 자신이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할 사건이기도 했다.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대상의 손에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건 어떤 의미에선 문 회장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형벌이었을 터다. 이 과정에서 태주가 받았을 상처가 신경이 쓰였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라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상대가 말이 없는 게 경청하고 있다는 의미임을 알아챈 태주가 침착한 어투로 문장을 이어 붙였다.

“윤 원장도 괜찮아. 그 사람이 이 병원을 추천했어. 안과 전문의라 내 눈 수술할 때도 참관인 자격으로 잠깐 들어왔었고. 지금은 요양하는 걸로 알아.”

“한 기장 수술은 잘 끝난 거 확실한 거지?”

“일단은. 정확한 건 붕대 안에 있는 안대를 풀어 봐야 알 수 있다는데. 상처 아물 때까지 절대 자극하지 말라고 했거든.”

“시야는 어떤데?”

“당연히 안대로 가려서 어두컴컴해.”

“두 눈 다 다친 거야?”

“그렇긴 한데 한쪽은 정도가 심했고, 다른 쪽은 괜찮아.”

“아파?”

“진통제 기운 떨어지면 약간. 그래 봐야 따끔거리는 정도니까 염려 안 해도 돼. 나보단 네가 걱정이지.”

무거운 음성을 곱씹던 차영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제 쪽에 귀를 기울이기 위함인지 살짝 얼굴을 숙이고 있는 모양새가 기시감이 일었다. 가슴이 싸해졌다. 이렇게 보니 잘 알겠다. 오래전 납골당에서 만났을 때처럼 희고 깨끗한 피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때처럼 풍성한 속눈썹이 보였으면 좋겠는데, 그게 가시거리에 없어서 안타까웠다.

몸을 비틀어 본격적으로 태주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의 턱을 살짝 붙잡고 보드라운 입술에 제 입술을 맞대어 문질렀다. 태주가 확 고개를 기울여 농밀하게 키스하려 하자 뒤로 고개를 빼서 그를 안달 나게 만들었다.

그가 픽 웃음을 터트렸다. 얼마 만에 보게 된 그의 웃는 얼굴인지 알 수 없었다. 눈은 하얀 붕대로 가려진 채 부드럽게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의 곡선이 유려했다. 그의 입매가 얼마나 근사한지, 여태까지 눈을 쳐다보면서 시선을 좇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바빠 제대로 그를 샅샅이 훑지 못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차영은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 연약한 물건을 쥐는 것처럼 그의 턱을 잡았다. 그러고는 새가 부리로 먹이를 쪼는 것 같이 여러 번 입술을 부딪쳤다. 쪽쪽. 가벼운 버드 키스를 선사하다 마지막엔 그의 아랫입술을 치아로 살짝 깨물었다.

그러자 태주가 차영의 어깨를 단단히 잡아 확, 침대 위로 끌어당겼다.

“아윽……!”

삽시간에 그를 올려다보게 된 차영이 낮은 탄성을 토해 냈다. 그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차영아, 아파?”

“한 기장 참 던지는 거 어지간히 좋아해.”

“네 앞에서 힘 조절이 잘 안 돼.”

“나 왜 눕혔는데?”

“하자.”

“앞도 안 보이면서.”

“네가 도와주면 돼.”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이야기 하던 와중에 섹스가 하고 싶어?”

“넌 싫어?”

“아니, 좋아……. 그 사람 보란 듯이 하고 싶어. 그래서 언제 눕히나 했어.”

몰아쉬듯 무거운 한숨을 내뱉은 차영이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는 태주의 붉은 입술을 만지작거리면서 덧붙였다.

“그런데 내가 아직 환자야. 함부로 이렇게 내동댕이치면 안 되고, 유리그릇처럼 살살 다뤄야 돼. 알지?”

알겠다는 양 태주의 커다란 손이 천천히 차영의 머리로 향했다.

그는 차영의 얼굴, 목과 어깨, 그리고 허리까지 이어지는 기다란 곡선을 쉬지 않고 따라 내려갔다. 환자복 아래로 붕대가 있는 자리, 거즈가 붙은 위치, 맨살이 만져지는 부위들까지 손의 감각으로 기억하듯 만져 댔다. 그러는 동안 차영은 이상한 목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은 제 입을 단속하느라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처, 천천히.”

“너무 오랜만이라 속도 조절이 잘…….”

태주가 채 말을 끝맺지도 못하고 나지막한 한숨을 터트렸다. 차영은 기시감을 느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태주의 말마따나 오랜만이라 정도가 더 심해졌을 뿐 원래부터 그는 자신만 눈앞에 있으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타고난 여유와 자신을 향한 안달이 뒤엉켜 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모습을 보이곤 했던 것이다.

평생을 산다 한들 이런 사람을 다시 만날 수나 있을까.

차영은 이 질문이 우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대답은 처음부터 ‘아니다’였다.

“하…….”

차영이 그의 뺨을 어루만지자, 태주가 연달아 한숨을 내뱉었다. 본능적으로 그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짐작한 차영이 손을 서서히 아래로 뻗어 그의 하반신을 더듬었다.

붕대에 가려 잘 보이진 않지만 그가 눈살을 찌푸렸으리란 예상은 쉽게 할 수 있었다.

“윽…….”

“언제 이렇게 딱딱하게 섰어?”

“네가 내 입에 혀 넣을 때부터. 아, 빌어먹을 못 참겠어. 지금 싸고 싶어.”

당황한 차영이 손을 떼어 내려 하자 태주가 그 위를 제 손으로 덥석 덮었다. 그러고는 제 것을 애무하듯 뻣뻣해진 성기의 윤곽을 따라 그리며 길게 쓸어내렸다.

“읏, 먼저 한번 뺄게.”

“먼저? 다음도 있어? 나 지금 유리그릇이라니까?”

그의 발기한 성기를 오로지 태주가 원하는 방향과 속도로 함께 매만지는 사이 차영의 것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두 사람의 손을 제 것에서 떼어 낸 그가 이번엔 병원복의 얇은 천 위로 서로의 성기를 격렬하게 문질렀다.

“아응, 아. 아……. 잠, 잠깐만. 천천, 아……. 나 아직 온몸이 다 쑤시고 아파.”

전신의 관절을 모조리 빼냈다가 다시 억지로 끼워 맞춘 듯, 아직은 온몸이 삐걱거리고 아팠다.

“알려 줘. 어디가 아픈지, 어디가 좋은지.”

앞이 캄캄할 텐데도 태주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제 하의를 아주 살짝 아래로 끌어 내리더니 고개를 든 성기를 허공으로 꺼냈다. 그러고는 차영의 상의를 자신의 하의만큼 몹시 살짝 걷어 올렸다. 뭘 하려는가 싶었는데 차영의 복부 위 붕대가 없는 좁은 면적에 선단부터 기둥 끝의 음낭까지 길게 비비고, 정신없이 문지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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