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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108화 (108/144)

108화

“그건 교육이 아니라 그냥 학대예요.”

“우리 태주는 극복하고 잘 살 거야. 날 닮아 아주 강한 애거든. 오히려 겁을 내고 너를 구하러 오지 않는다면 크게 실망할 것 같구나.”

혈관이 다 터져서 새빨개진 눈자위가 아팠다. 그러나 차영은 문 회장을 노려보는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들어 그를 노려봤다.

아무래도 문 회장은 이 도전적인 눈길에 흥미를 느꼈던 모양이었다. 그는 제 허리를 숙였다. 그러고는 차영과 눈을 바로 맞은편에서 마주쳤다.

“한태주한테 사과해야겠어요. 내가 그 사람한테 외할아버지 닮은 것 같다고 말했었는데. 아니네요.”

“아니라고?”

“당신은 인간이 아니야.”

그가 질린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사이, 차영은 최대한 힘을 끌어 모아 고개를 한계까지 쳐들고, 그에게 퉤, 침을 뱉었다.

노인의 얼굴에 피 섞인 질척한 타액이 튀었다.

순간, 얼음장 같은 침묵이 흘렀다.

서둘러 안 실장이 다가오려고 하자, 문 회장은 제 손을 내밀어 오지 못하도록 저지하더니 직접 손수건을 꺼내 젖은 부위를 아주 느릿하게 닦아 냈다.

“나는 손이 많이 가는 녀석들이 좋다. 길들이는 맛이 있거든.”

싸늘한 표정을 지어 보인 문 회장이 어설프게 짚고 있던 지팡이를 다시 손에 단단하게 쥐었다. 이윽고 그가 그것을 치켜들었다.

차영은 이제부터 다가올 통증을 익히 알고 있었다. 도망칠 수 없으니 보지 않으려 눈을 질끈 감았다. 결국 자비 없는 신은 결박당한 차영을 위험에서 구해 주지 않았다.

타악! 한 차례 제 손바닥에 지팡이를 부딪쳐 본 문 회장이 이윽고 차영의 웅크린 몸 위를 미친 사람처럼 두들겨 대기 시작했다.

퍽! 퍽! 퍽! 이쯤 되니 마치 칼이나 총 따위의 흉기처럼 느껴지는 기다란 지팡이로 정신없이 차영의 머리와 어깨 등지를 내리쳤다.

“윽. 아……! 아흑!”

묶여 있는 차영의 몸으로는 방어전을 펼치기가 불가능했다. 가능했대도 이미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 어려웠을 것이다. 점점 무너져 내리는 차영의 무릎과 옆구리까지 가혹하리만치 때려 대는 문 회장의 아귀힘은 그 나이 대의 노인이 지닌 힘이라고 할 수 없었다.

“윽! 으윽……!”

떡메를 치듯 전신을 때려 대던 지팡이가, 어느 순간 툭 하고 동강 났다. 그러자 문 회장이 직접 차영을 짓밟으려고 다리를 뻗었다. 구두 굽이 차영의 목울대와 옆통수를 흠씬 짓이겼다.

“악……!”

비명을 지르면서 몸부림쳤으나, 누구도 구해 주지 못했다. 목구멍마저 타들어 갈 듯 아파서 최대한 데시벨을 끌어 올려 소리쳤다고 생각했지만 퍼져 나가는 소리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지금 제 모습은, 어쩌면 저기 죽은 듯이 기절해 있는 윤 원장보다도 더 잔인하고 참혹한 모양새를 띠고 있을지도 몰랐다.

마침내 누더기가 된 얼굴까지 걷어차려던 문 회장의 옆에 안 실장이 허겁지겁 뛰어왔다.

“회장님!”

그가 막아서는 바람에 문 회장도 가까스로 체통을 찾았다. 노인이 서서히 안 실장을 돌아봤다. 그는 휴대폰 아랫부분을 손으로 단단히 막은 채로 문 회장에게 귓속말했다. 잠자코 듣고 있던 문 회장은 거의 널브러진 차영을 힐끗 내려다보더니, 가볍게 턱짓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안됐구나.”

마침내 조용히 통화를 마친 안 실장이 문 회장의 옆에 우뚝 섰다. 뒤이어 문 회장이 수신호를 보내자, 스마트키로 차량의 시동을 거는 듯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실눈을 뜬 차영은 멀리서 깜빡거리는 헤드라이트 불빛을 제 시야에 온전히 담으려고 노력했다. 금세 엔진 소리가 묵직하게 이 너른 공간을 착실히 채워 갔다.

방금 전 안 실장이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 차영은 몰랐다. 지금 그가 문 회장의 명령을 받아 수행하고 있는 일로 미루어 태주와 관련된 일일 듯했다.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공포는 인간의 정신을 조금씩 침략하여 좀먹어 들어간다. 자신은 잠시 뒤 저 차에 치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그들이 저기에 자신을 직접 태워서 어느 낭떠러지 같은 곳에서 떨어뜨릴 가능성도 무시 못 했다.

온갖 음험한 상상을 하게 되니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눈 하나 깜빡하는 사이 문 회장이 안 실장으로 하여금 자신을 죽여 버리라고 명령할 것만 같았다. 덕분에 눈을 감는 것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영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려 가느다랗게 뜬 눈을 힘겹게 유지하고 있었다.

온몸의 감각에 집중하고 있자니 자신이 지탱하고 있는 바닥이 축축하고, 약간 따뜻하게 느껴졌다. 아마 제 피일 듯했다. 더 구타당했다간 이것으로 웅덩이를 만들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회장님,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곧 도련님도 이쪽으로 도착하실 테니 나머지 일은 저한테 맡기시고…….”

지팡이를 주워 들던 안 실장이 그렇게 말하자, 문 회장은 안 실장에게 손찌검했다. 철썩! 그의 얼굴을 내려친 손을 안 실장의 손수건을 이용해 닦더니, 마치 행커치프처럼 모양을 잡아 겉옷 주머니에 도로 꽂아 주었다.

그러다가도 차영의 타액이 튀었던 제 뺨을 손등으로 쓸어 보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을 보니 조금 전 차영에게 당한 모욕으로 도저히 분이 안 풀리는 듯했다. 갑작스럽게 차영을 묶은 밧줄을 풀어 주라고 명령을 하는 것이었다.

“이거 풀어.”

늘 명령에 복종하는 안 실장이 묵묵히 차영의 전신을 휘감고 있는 끈을 기둥에서 풀어냈다. 무거워진 차영의 몸이 앞으로 퍽, 고꾸라졌다. 그걸 놓치지 않은 문 회장은 차영의 머리채를 붙들고 뒤편의 반원 형태의 넓적한 수로관에 차영의 머리를 담가 버렸다.

“읍! 으읍……!”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사방에 튀었다. 공포가 턱밑까지 차오른 차영이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 몸부림을 쳤으나 그럴수록 문 회장의 가혹 행위는 더욱 모질어질 뿐이었다.

“얘야,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지.”

“으으읍! 으으!”

싸느랗게 식은 음식들처럼 늘어져 있던 차영의 몸이 일순 마지막 불꽃 같은 가느다란 생명력을 얻은 듯이 움찔거렸다. 숨이 너무 막혔던 탓이다.

살려 줘.

구해 줘.

넌 나를 살리고, 그런 다음 너도 살 거라고 했잖아.

이렇게 비참하게 죽고 싶지 않았다. 문 회장에게 고문을 당해 죽는 것보다 지금 당장 이 길로 도로에 뛰쳐나가 차에 치여 사망하는 쪽이 수천, 수만 배는 나았다.

섬광처럼 머릿속에 태주의 괴로워하는 듯한 얼굴이 스쳐 지나갔으나 그게 자신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산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여전히 차영은 머리채가 붙들린 채로 오랜 시간 한군데에 고여 있어 비릿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물속에 얼굴이 처박혀 있었다.

“읍……! 우욱……!”

머리가 통째로 살짝 들렸을 때 숨을 겨우 내뱉었다가, 찰나간의 구원을 맛보고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첨벙, 물속에 박힌 얼굴을 애써 도리질 쳐 봤지만 문 회장에게는 어린아이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의 미약한 힘이었다. 어깻죽지까지 죄다 젖어 갔다. 숨을 쉴 의지가 있는데, 그 통로가 가로막혀 있다는 현실은 엄청난 좌절감을 수반해 차영을 괴롭혔다.

으으. 으으으. 물속에서 괴로움을 토해 내던 차영의 몸이 천천히 늘어졌다.

“으…… 윽.”

전신에 힘이 빠진 그가 시체처럼 너부러졌다. 그제야 문 회장이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움켜쥔 손에 힘을 풀고 차영을 놓아주었다.

털썩. 까무러친 차영의 몸이 그대로 뒤로 고꾸라져 땅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의 머리부터 서서히 뒤로 넘어간 통에 한참 전부터 기절해 있던 윤 원장의 발치에 고개가 떨어졌다.

더러운 물체를 보듯 신발 뒤축으로 차영의 젖은 뺨을 툭 쳐 본 문 회장은 그가 정신을 잃었다는 확신이 분명하게 들었는지 말 못 할 몰골의 두 사람으로부터 뒤늦게 한 걸음을 물러섰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태주 녀석은. 어디쯤인가?”

“현재 차량 추적은 잠시 끊긴 상태입니다만 곧 이쪽으로 오실 것 같습니다. 회장님, 도련님은 단련된 분이십니다. 저와 회장님만으로는 벅찹니다. 차라리 이곳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시고 자택으로 돌아가시는 편이…….”

“나는 오늘 저 아이가 죽는 모습을 꼭 봐야겠다.”

그답지 않게 차영의 앞에서 다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던 문 회장은 꽤나 단호했다.

“그러면 여기에 사람을 좀 더 부르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혹시 몰라 대기 인원은 따라오게 했습니다. 현재 이곳 인근에 있습니다.”

“누굴 어떻게 믿어.”

“하지만 회장님.”

“난 여기서 죽어 나가는 놈들만 믿는다.”

그건 이 세상에 문 회장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란 게 생명을 잃고 죽은 자 정도뿐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안 실장이 알겠다는 양 고개를 꾸벅 숙이고 문 회장을 차량 쪽으로 안내했다.

뒷좌석에 편안히 올라탄 노인은 전방에 기절해 있는 차영을 잠시간 노려보다가, 무척 찝찝해하는 표정으로 제 손등을 이용해 뺨을 몇 번 닦아 냈다. 그러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일단 인근에서 대기하는 편이 낫겠어. 도움이 필요하면 다시 연락하지.”

동시에 차량 밖에서 안 실장이 나지막하게 통화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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