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고인은 한국 항공 본사 근처 협력 대학 병원 장례식장에 정중히 모셨다. 철저하게 취재진과 민간인 출입을 제한하고 있어서, 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대영 그룹의 계열사 임원진들이나 간부급 인사들, 그리고 정·재계의 유력 인사들이 방문해 허전한 자리를 메웠다. 누군가의 개인적인 죽음 때문에 마련된 자리이지만, 아주 정치적인 공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태주는 외할머니의 영전 앞에서 내도록 침묵하고 있었다.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혈색도 사라졌다.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그는 오직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런 태주를 문 회장은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인사시키고자 했다. 이게 그를 큰 힘 들이지 않고 대외적으로 내보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여긴 듯했다. 태주가 자리를 피하지도 않을 게 자명했고, 고인의 가는 길 앞이라 인내할 테니 마찰을 최소화할 수도 있었던 터다.
“상주 완장은 끝까지 안 찰 셈이냐?”
“장례식장 지키고 있는 것도 여태까지 같이 겪어 온 세월 생각해서 최대한 타협한 거예요. 여기서 더 바라지 마세요.”
“그래도 네 외할머니는 잘 따랐지 않니?”
“그랬죠.”
과거형이다. 주의 집중을 요하는 까다로운 상대일 경우, 말 한마디도 결코 허투루 듣지 않는 문 회장은 그 사실을 기민하게 눈치챘으나, 일단 함구했다.
때마침 분향을 마친 조문객들이 유족의 슬픔을 위로하려 그들의 앞에 섰다. 고령인 문 회장을 배려해 맞절을 하는 대신 인사는 악수로 대신했다.
“그런데 외손자분은 처음 뵙습니다. 그간 회장님께서 총명하시다고 워낙 자랑 많이 하셨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돼 영광입니다.”
계열사 사장단 중 한 사람이 태주를 향해 꾸벅 인사하고 악수를 청했다. 그러나 태주는 고개만 가볍게 숙여 보이고 차갑게 응답했다.
“네, 그런데 고인 앞에서 영광이라는 말은 좀 맞지 않는 것 같고요.”
머쓱해진 상황에서 문 회장이 구원 투수로 나섰다.
“알다시피 우리 항공사 책임 기장이야. 실전 좀 쌓고 경영 수업 시키려고 내가 미국 항공사에 있는 놈을 스카우트했지. 현직에 있던 경영자가 회사를 경영하면 실무자들이 겪는 애로 사항들에 대해서 훨씬 잘 알고 공감할 수 있지 않겠나.”
“그렇습니다. 더 신뢰감을 줄 수도 있고요. 곧 입적하실 거란 말씀 전해 들었습니다.”
“그래야지. 제 엄마 닮아 아주 똑똑해.”
더 듣고 있기가 역겨웠다. 추모에 온 정신을 기울여도 모자랄 상황마저 자신의 필요에 의해 이용하고 있는 제 외할아버지 때문에 환멸이 일었다. 이런 식으로 강제 데뷔전을 치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평생을 동고동락한 아내에 대한 최소한의 의리는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얼마나 복잡하고 심오한지, 태주의 단순한 짐작은 단박에 틀렸다.
견디다 못한 그가 이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고 들었다. 그러자 문 회장이 손을 뻗어 그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치우시죠. 사람들 보는 앞에서 제가 걷어 내는 것보단 나을 것 같은데요.”
“또 조문객이 오는구나.”
어느 틈에 사장이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사라진 뒤였다. 조문실 바깥은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 모양인지 부산했다. 현재 시간은 새벽을 향해 가고 있는 야심한 밤이었다. 최대한 조용히 치르고 있는 것인데도 종일 도대체 몇 사람의 방문객을 맞았는지 모르겠다. 셀 수 없었다.
망자의 상냥한 미소가 담긴 영정 사진을 힐끗 쳐다본 그가 하는 수 없이 자세를 고쳐 서는데,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도윤을 비롯한 한국 항공 객실 승무원들 몇몇이었다. 각 팀의 사무장들 중 시간이 맞는 사람들끼리 함께 온 것 같았다. 다들 제복 차림이었다.
그들은 문 회장의 옆에 서 있는 태주를 보고 잠시 눈치를 살피면서 웅성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차분하게 분향을 하고 상주석에 인사를 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태주도 묵례했다. 그러고 고개를 들다가, 사무장들의 한참 뒤편에 선 도윤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입술을 달싹이는 모양새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다. 무슨 이야기를 꺼내고 싶은지 안 들어도 잘 알 것 같았다.
조문실을 빠져나가면서 사무장들이 태주를 몇 번이나 돌아보았다. 그때까지도 그는 아무런 동요 없이 그 자리에 묶이기라도 한 듯 반듯하게 서 있었다. 그러다가 모두 빠져나가고 그나마 조용한 시간이 되자, 천천히 제 옆의 외할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저 자리 잠깐 비우겠습니다. 조문객 중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이야기 좀 하려는 거니까 뒤에 감시 붙이지 마세요.”
그러고는 대답도 듣지 않은 채 그곳을 빠져나왔다.
나오자마자 간단히라도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향하던 승무원들이 바로 보였다. 늦은 시간이라 뭔가를 넣는 게 부대낄 테지만 최대한 유족과 망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려는 것 같았다. 그들을 쫓아간 태주가 도윤의 앞에 우뚝 섰다. 승무원들이 깜짝 놀라 그런 태주를 바라보았다.
“구도윤 씨 아까 나한테 하려던 말 뭡니까.”
“아, 그게…….”
그녀는 호기심이 충만해진 눈으로 자신과 태주를 보는 선배들이 신경 쓰이는 듯했다. 그러나 태주는 도윤의 기분이나 처한 상황 같은 것에 관심을 둘 여유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못 느꼈다. 재촉하듯이 그녀를 향해 눈짓하자,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아니, 차영이요. 걔 한 캡 외할머니 돌아가신 거 아까 낮까지도 모르고 있던데. 좀 너무하신 것 같아서.”
“…….”
“걔는 아니라고 됐다고 하는데…… 제가 차영이 어떤 앤지 잘 알잖아요. 좀 서툰 면이 있긴 해도 친구네 집 어른 돌아가신 일 그냥 넘길 정도로 냉정하고 모진 애는 절대 아니에요. 애초에 한 기장님이 불러 줘야 오든 말든 결정하죠. 둘이 친한 거 아니에요? 걔 지금 엄청 신경 쓰고 있을 거예요.”
그녀를 빤히 직시하고 있던 태주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도윤이 뭔가 더 말을 덧붙이기도 전에 냉정하게 돌아섰다.
* * *
창밖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지면에 물줄기가 닿는 소리가 퍽 구슬프게 들렸다.
올여름은 한동안 마른장마가 오는가 싶더니, 뒤늦게 열대 지방의 기후처럼 소나기가 예고 없이 종종 내렸다. 비가 온다 한들 계절이 여름이라 바깥은 후덥지근할 터다. 습도도 높으니 불쾌지수는 최악으로 치달을 게 뻔했다.
거실 안은 에어컨을 최저 온도로 틀어 놓은 지 한참이라 뼈가 시릴 정도로 냉기가 돌았다. 그런데 차영은 이상하게 창밖의 날씨를 정통으로 겪고 있는 것처럼 온몸이 찐득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불편해서가 아닐까 싶었다.
[당초 비공개 장례식으로 치러진다고 알려졌으나 유족들은 이날 이른 새벽부터 정·재계를 비롯한 각계 인사와 범 대영 그룹 계열사 임원들로부터 문상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영 그룹 홍보 팀은 평소 문 회장과 교류가 있던 주요 기업인들을 비롯하여 국무총리와 주한 외교 사절단 등의 친분 관계가 있는 이들의 조문까지 거절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판단에, 부의는 받지 않는 것으로 하고…….]
자정에 하는 심야 뉴스에서는 한국 항공 기념 재단의 김선화 재단 이사장이 정확한 날짜로는 그제 오후 서거했다는 소식을 꽤나 큰 꼭지로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 식장 내부의 촬영은 금지된 모양이었다. 병원 장례식장의 건물 외경과 VIP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고급 외제 차들의 행렬만 계속 자료 화면으로 활용하는 게 눈에 띄었다.
휴대폰은 아직까지도 잠잠했다. 이 정도라면 태주의 의사는 어림짐작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의 죽음을 차영에게 제 입으로 알릴 생각이 없는 것이다. 하긴 말해 준다 한들 자신이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그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도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도 섭섭했다. 태주는 대부분의 순간마다 정말 좋은 연인이었으나, 아주 이따금 자신을 등한시하는 모습을 비쳐 서운하게 만들었다. 다만 그가 의도한 바는 전혀 아닌 데다 잠시 연락하지 않는 것 외에 딱히 대단한 묘수도 없었을 테니 탓할 수도 없었다.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씁쓸하게 내려다보던 차영이 이내 모니터 전원을 끄고 침실로 들어가려던 차였다. 드르륵. 진동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하고 깜짝 놀란 그는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한 기장?”
상대는 좀처럼 말이 없었다.
“한태주 씨.”
- 기다렸지. 연락을 한다는 게…… 그동안 정신이 너무 없었어.
“착한 내가 참아 주려고 했는데 목소리 들으니까 갑자기 막 화내고 싶다.”
- 그래도 돼.
“생각 중이야. 화낼지, 위로해 줄지.”
- 화내고 그다음에 위로해 주면 되겠네.
연이어 들리는 것은 아주 무거운 음성이었다. 차영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아무리 요즘 시대에 남의 조부모 상은 챙기지 않는다 해도, 태주에게 외할머니가 가지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것을 아는데 전화 정도는 해 주었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은 들었다.
미리 알려 줬다면. 지금 이렇게 무겁고 눅눅한 음성으로 한숨 쉬듯 말하는 태주의 슬픔을 조금쯤 나눠 지게 해 주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뉴스로 알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 듣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입으로 직접 힘들다고 말해 줬다면 차영은 기꺼이 그의 괴로운 심정을 함께 떠안았을 것이다.
- 뭐 해. 빨리 화내. 그래야 위로받지.
“한 기장한테 아직 내가 큰 위안이 안 되지?”
- 아냐,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도 힘 나.
“못 믿겠어. 좀 더 빨리 전화 한 통 해 줬으면 그 말 믿었을 텐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 마지막에 내가 외롭게 가시라고 그랬어. 괜히 화풀이한 것 같아서 좀 후회돼. 계속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 처음엔 너한테 전화를 할까도 했는데. 그랬다가 내가 무너질 것 같아서……. 그러면 여기서 도망칠까 봐.
대충 짐작하는 상황으론 모든 걸 알 순 없지만. 최소한 그가 속상해하고 있단 건 알겠다.
- 이제 나한텐 정말 너밖에 없어.
“…….”
- 사랑해, 차영아.
차영은 움찔했다. 너무 긴장한 탓에 손이 뻣뻣하게 굳어 갔다. 주변 공기가 냉랭한데도 그의 급작스러운 사랑 고백이 스쳐 지나간 귓전만큼은 뜨끈뜨끈한 느낌이었다.
지금 한태주가 무척 슬픈 시간을 겪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의 고백을 듣고 솔직히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게 미안했다. 난감해진 차영은 대답 대신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미 전원을 꺼 버린 텔레비전 모니터는 새카맣게 색이 죽어 있었다. 그 위에 아주 조심스러운 표정과 자세를 하고 휴대폰을 붙들고 있는 자신의 실루엣이 비쳤다. 태주가 침묵하면서 낮은 숨소리만 내뱉자, 창밖에서 추적거리는 빗소리가 무척 크게 들렸다.
- 보고 싶다.
“…….”
- 왜 말이 없어 뭐라고 더 말해 봐.
“한태주. 나도 너처럼 에둘러 말하는 거 싫어. 비겁하게 굴지 말고 네가 원하는 걸 말해.”
그가 가볍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걸 듣는 순간, 차영은 굳이 말로 꺼내지 않는 그의 바람과 생각을 확실히 느꼈다. 굳은 결심을 한 표정으로 묵묵히 거실의 선반에서 차 키를 챙겼다. 운동화를 황급히 구겨 신고, 현관의 앞에 서서 문고리를 붙잡았다.
- 내가 그래도 돼?
“왜 안 되는데? 내가 조문은커녕 문전 박대라도 당할 것 같아서? 누가 조문한대?”
- …….
“빨리 말해. 나 현관 앞이야. 인생 타이밍인 거 알지.”
- 보고 싶어 미치겠어. 지금 당장 보러 와 줘.
동시에 문을 벌컥 열고 밖으로 나간 차영은 승강기를 기다릴 짧은 시간마저 없어서 계단으로 초조하게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