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치-67화 (67/144)

67화

브리핑을 받기 위해 운항 관리 팀 사무실에 모여든 승무원들은 좀처럼 평정을 찾지 못하고 연신 웅성거렸다. 한국 항공 자체 개발 메신저인 「CALINE」에서 돌고 있는 두 가지 이야기들 때문이었다. 하나는 사주인 문현기 회장의 아내이자, 한국 항공 기념 재단의 이사장인 김선화 여사의 부고 소식이었다.

사람이 지상에 태어나 추후에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승무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그녀의 사망 소식이 아니라 두 번째 소문 탓이 컸다. 그들이 종종 기내에서 마주치곤 하는 한태주 기장에 관한 이야기였다.

메신저의 공통 게시판 같은 공간에 그를 비토하는 익명의 글이 게재됐고, 이는 유례없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어제오늘 메신저에 접속한 사람은 모두 읽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제목은 이랬다.

〈CAL 한태주 기장은 대영 한국 항공 문현기 회장의 하나뿐인 외손자입니다.〉

성명서 형식의 이 서투른 글에는 작성자가 직접 목격한 상황에 대해 상세히 적혀 있었다.

본사 주차장에서 문 회장의 수족으로 잘 알려져 있는 안진석 실장이 모습을 드러내 그를 ‘도련님’이라는 전근대적인 호칭으로 지칭했던 것과, 한 기장이 작고한 김 이사장을 ‘외할머니’라고 불렀던 상황, 그리고 한 기장과 안 실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함께 차를 타고 사라진 일, 그 과정에서 안 실장이 무척 정중하고 공손하게 그를 의전 했던 일 모두를 담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 기장이 한국 항공 진급 내규에 어긋나는 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손쉽게 기장 견장을 단 것이나, 무슨 말썽을 일으켜도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이 모두 이 때문 아니겠냐며 사주의 낙하산 인사를 강력한 어조로 규탄했다. 또한 본인에게 ‘운항 승무원 자격을 박탈해 버리고 싶은 걸 참았다’라는 협박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던 정황을 대충이나마 설명하며 그의 권위 의식을 꼬집었다.

꽤나 신랄한 어투여서, 한 기장의 운항 능력까지 폄훼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그나마 찾을 수 있는 관대한 지점이었다.

그냥 이러한 글만 있었다면 누군가 태주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깎아내리기 위해 낭설을 퍼트린 게 아니냐고 생각할 법도 했으나, 이 글은 당시 목격한 현장을 휴대폰으로 촬영한 짤막한 증거 영상을 제시하고 있었다. 안 실장은 화면을 등지고 있어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태주는 정면에서 보였다.

거리가 꽤 돼서 음성은 아주 작게 웅얼거리듯이 들렸고, 잡음이 많았다. 그러나 태주의 입 모양을 보면 글이 설명하고 있는 내용과 거의 유사했다. 또 실제로 태주가 안 실장을 향해 고압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것도 짧은 영상 속에 모두 드러나 있었다.

“이거 진짜일까?”

동료 승무원 중 한 사람이 꽤 놀란 얼굴로 화면의 영상을 보고 있는 도윤을 휴게실로 이끌었다. 그러고는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물었다.

“글쎄…… 증거가 너무 빼도 박도 못하겠긴 하네.”

“도윤이 너 뭐 좀 들은 거 없어? 지난번에 같이 오사카에서 차도 마셨잖아.”

“그건…… 나한테 관심 있는 거 아냐. 그때 좀 중요한 용건이 있었어. 나 그 사람 잘 몰라.”

“끝까지 모르쇠네.”

“진짜 몰라. 그건 그냥 친구의 친구라서 그런 거라고 설명했잖아.”

“친구의 친구면 나랑도 친구인 거지.”

“나 곧 청첩장 찍는다. 자꾸 아쉽게 만들지 마.”

도윤은 눈을 가늘게 뜨고 억울함을 가득 담아 동료를 째려봤다.

“어우, 알았어. 어쨌든 이 영상이랑 글 올린 건 권 부캡이겠지? 아무래도 둘이 같이 징계받으러 갔던 날 같은데.”

“한 캡 제복 안 입고 있으니까 확신 못 하는 거 아냐?”

“한 캡은 원래 본사 갈 때 제복 안 갖춰 입고 그냥 가더라. 지난번에 마주친 적 있어. 그러고 보니까 진짜 한 캡은 실제 비행 제외한 모든 업무에서 규칙을 거의 안 지키긴 하네.”

물론 사주의 일가친척이 특혜를 입고 일정한 자리에 취임하는 일은 한국의 기업에서 보기 드문 광경은 아니다. 그러나 전문적인 기술을 요구하는 직종인 경우에는 비난의 강도가 더욱 심해질 수 있었다. 물론 태주는 매우 훌륭한 기장이었으나, 본인이 혼자서만 고고하고 꼿꼿한 만큼 내·외부에 적도 많았다.

그가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얼마나 열정을 갖고 임하는지 따위는 보지 않은 채 그저 깎아내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사내 어디에든 존재할 수 있었고, 또 상황을 잘 모르는 대다수는 부정적인 여론에 쉽게 휩쓸리기 마련이었다. 도윤은 왠지 모든 비난을 감수할 게 뻔한 그를 약간 변호해 주고 싶었다.

“이때다 싶어서 권 부캡이 악성 루머 만들어 복수하려는 거 아니야? 본인만 징계받아서?”

“그럴 수도 있는데 영상이 너무 확실하게 증거로 남아 있지 않아?”

“입 모양이야 추측하기 마련이지. 소리도 잘 안 들리던데…… 사주 고명딸 되게 옛날에 사고로 죽었댔잖아. 문 회장이 엄청 아끼고 사랑했다고. 죽을 때 미혼이었던 걸로 아는데.”

“맞다, 그랬어. 미국에서 의사를 한댔나 의대생이었댔나 그랬지?”

“게다가 만에 하나 그런 딸 핏줄 있었으면 진작 알리지 않았을까? 기장은 왜 시켜. 아무리 잘 벌어도 어쨌든 몸 상해 가면서 일하는 기술직인데.”

“그건 그렇긴 한데…….”

두 사람이 대화하는 중에, 메신저에 알림이 하나 도착했다. 오전 내내 돌고 있던 소문을 확실시해 주는 공문이었다. 김선화 이사장의 정식 부고 소식이었다. 생전에 망자가 바랐던 대로 조용히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다만 식장에 외부인의 출입은 제한하나 사내 인사들의 출입은 허락한다고 하니 팀장급 이상은 조문을 권장한다는 메시지가 첨부되어 있었다.

“사무장은 여기 조문 가려나? 그러면 우리 중 몇 사람 비행 없으면 의전 가야겠네. 장례식 가 보면 알겠지. 한 캡 있는지, 없는지.”

동료가 휴대폰 화면을 보며 그러자,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던 도윤은 뭔가 생각난 듯이 제 휴대폰을 들고 휴게실을 빠져나갔다.

딸칵. 문을 닫고 나온 그녀는 복도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창가로 걸었다. 그러면서 낯익은 이름을 찾아내 전화를 걸었다.

“어, 차영아. 지금 통화 괜찮아? 나 오늘 국내선 퀵턴인데, 오후에 잠깐 볼 수 있어?”

그녀는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창문을 반쯤 열었다.

* * *

캐비닛 거울 속에는 단추를 목 끝까지 야무지게 잘 잠근 차영이 서 있었다. 그는 혈색이 좀 안 좋아 보이는 제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캐비닛 문을 닫아 버렸다.

휴대폰을 확인해 봤지만 태주로부터 걸려 온 전화 같은 건 없었다. 어제 약속을 취소해야 할 것 같다고 전화가 왔을 때 이후로 꼬박 하루가 지나 있었다. 도윤을 만나기로 한 공항 내부의 실내 공원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심란한 마음만큼 무거웠다.

그가 막 선선한 공기가 맴도는 공항 철도 근방의 실내 공원으로 들어오자, 벤치에 앉아 있던 도윤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차영이 너 얼굴 왜 이래? 아파?”

“아냐. 멀쩡해. 왜 보자고 했어?”

“보고 싶으니까 보자고 하지. 다른 이유 뭐 있겠어.”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 그녀는 제 옆자리를 툭툭 쳤다. 그러고는 마지못해 자리를 잡는 차영의 손에 아직 냉기가 선연한 캔 음료를 쥐여 주었다.

“실은 이런 거 통화로 묻기가 좀 그래서…… 있잖아. 차영아, 한태주 씨 오늘 어디 갔어?”

“한 기장? 그걸 네가 왜 물어?”

“아니, 비행은 확실히 없거든. 오늘 심 테스트 하는 날이라던데 거기에도 안 나타났대. 그런 거 건너뛴 적은 없었던 사람이라 지금 이 순간에 대체 어디 있을지 궁금해서.”

질문의 뉘앙스가 선뜻 의미를 알아채기 쉽지 않았다. 차영은 약간의 의구심을 담아 옆의 그녀를 힐끗 살폈다. 그러자 그녀가 살짝 상체를 낮춰 차영에게 기울이더니 비밀스러운 이야기 하듯 속삭였다.

“너 한국 항공 사주 와이프 어제 죽은 거 알아?”

툭, 들고 있던 캔을 떨어뜨린 차영이 놀라 그녀에게서 상체를 쑥 빼냈다. 오늘 하루 종일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었던 탓에 동료들이 대화하는 데 전혀 끼지 않고 일, 그리고 일만 반복했다. 그러다가 짬이 나면 휴대폰을 한번 봤다가, 또다시 일의 연속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들이 티타임을 가지면서 이야기를 하던 중에 한국 항공 어쩌고 하는 말들을 들은 것 같긴 했다. 그게 이제야 잔상처럼 떠올랐다.

“어제? 어제 언제?”

“자세한 시간까진 나도 몰라. 아까 보니까 뉴스에도 부고 소식 나오는 것 같긴 하던데. 공항에선 다들 그 이야기 하고 넘어가기도 했고. 뉴스 정도는 보지. 너 종일 정신 딴 데 팔려 있었나 보네.”

정곡을 찔려 아니라고 할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계속 마음에 걸렸던 터라 가슴이 싸했다. 어제 통화를 마칠 때쯤 태주는 그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했었다. 그때가 이미 오전이 아닌 오후였으니 그 상황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했다. 태주가 외할머니를 얼마나 애틋하게 생각하는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차영은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그런 그를 도윤이 아주 의미심장한 눈길로 관찰하고 있었다.

“야, 이차영.”

“또 왜…….”

“한태주 대영 그룹 외손자지.”

발치에 떨어진 캔을 뒤늦게 주워 들던 차영은 한 번 더 그걸 떨어뜨릴 뻔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니라고 하지 마라. 지금 네 반응은 내게 확신을 주기에 군더더기 없이 완벽했으니까.”

차마 대답할 말이 없어 입을 닫게 됐다. 자신과 오래 봐 온 데다 원래 눈치도 빠른 도윤은 아마 지금 자신의 반응을 통해 생각보다 많은 사항들을 유추할 수 있었을 터다. 손을 달싹거리던 그녀가 차영의 등을 철썩 때렸다.

“웬일이니 진짜. 웬 떡이야!”

“사람 죽었다는데 웬 떡이냐니 얘 미친 거 아니야?”

“야, 김선화 이사장 나이도 지긋해.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거야. 남은 사람은 살아야지. 어쩐지 범상치가 않았어. 일개 기장 이름을 퍼스트 타는 기업인 승객들이 가끔 알더라니까. 한태주 기장이 너 되게 잘 본 것 같던데. 둘이 얼마나 친해? 어느 정도 사생활 공유하니? 나중에 그 사람이 대영 그룹 본사에 자리라도 하나 주면 너한텐 그게 웬 횡재냐 이거야.”

떡은 무슨. 횡재도 더더욱 아니다. 자신과 태주는 단순하게 우정을 교류하는 친구 사이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둘 중 누군가가 성별이라도 파격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어차피 영원히 못 먹을 그림의 떡일 뿐이다. 설사 준대도 함부로 삼켰다간 목이 막힐 것 같았다. 자신은 그저 그런 계산 없이 그와 연애를 하고 싶었다. 차영이 별소릴 다 듣겠다는 듯 미간을 구기고 있자 그녀는 이런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했다.

“한 기장이 너한테 장례식장에 오라고 안 해?”

차영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이 아직 문 회장에게 노출되기 전이었다면 편한 친구 사이인 것처럼 조문을 가는 상상 정도는 해 볼 수 있었겠지만, 태주의 말에 의하면 이미 제 신변은 그쪽에 전부 노출이 된 것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 거기 얼굴이라도 드러냈다가 무슨 험한 꼴을 보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아직 제 외할머니와 관련된 상황에 대해 차영에게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있는 건 그런 이유도 일부 있을 터다.

“조문객 필요하면 오라고 하겠지.”

“무슨 말이 그러냐? 친구끼리 당연히 가야지. 경사는 안 가도 조사는 가야 되는 법이야. 두고두고 서운한 거 마음에 사무친단 말이야. 나 안 그래도 우리 사무장 조문 갈 때 따라오라는 명령 받았거든. 가끔 이런 거 차출돼서…… 너도 그때 같이 갈래?”

“사양할게.”

말이 끝나고 도윤이 채 숨을 돌리기도 전에 차영은 대꾸했다.

“야, 이 김에 그쪽 가족들한테도 눈도장 좀 찍지 왜. 문 회장이라든가…… 문 회장.”

“그런 걸 내가 왜 해?”

“이차영 정말 너무 야멸치다. 지난번 어머니랑 깜짝 이벤트로 만나게 해 준 것도 그렇고 한 캡은 너 꽤 아끼는 것 같던데 보은 안 해?”

“도윤이 네가 바라는 게 내가 한 기장한테 고마움을 표시하는 거야, 이 일로 나중에 나한테 콩고물이 떨어지는 거야?”

“둘 다!”

“됐어.”

그녀는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차영의 어깻죽지를 아직 따지 않은 캔으로 몇 번 두드리는가 싶더니, 알겠다는 양 일어섰다. 기내용 캐리어를 끌고 인사도 없이 차영을 두고 가려다가 다시 분한 듯한 거친 발걸음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벤치에 앉아 있던 차영은 제 앞에 그림자를 만든 그녀를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또 뭐.”

“진짜 안 가?”

“안 가.”

“제발 좀 먹으라고 입 바로 앞에 숟가락을 대 줘도 안 떠먹어. 너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한테 이게 얼마나 엄청난 기회인지……! 하, 됐다. 됐어. 어휴, 등신 머저리.”

낮게 혀를 차던 그녀가 굽이 낮은 구두코로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러고는 이번에야말로 차영을 그대로 두고 자취를 감췄다. 남겨진 차영은 잠시 그곳에 머물렀다.

모여 있는 식물들로부터 풀 냄새가 물씬 풍겨 왔다. 분명 평소엔 좋아하는 자연의 향기였는데, 지금은 좋은지도 모르겠다. 이 순간 자신의 표정을 직접 보진 않았지만 형용하기 어려운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낸 그는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인터넷 기사들부터 검색해 봤다. 한국 항공이라고 검색하니 상단에 부고 소식이 바로 노출됐다. 기사가 많지는 않았다. 그나마 있는 기사들을 보니 일반인 조문은 받지 않으며 고인의 유지에 따라 최대한 조촐하게 장을 치를 예정이라는 듯했다. 그래서 회사 차원에서도 조용히 넘어가려는 모양이다.

“하…….”

그리고 아직도 태주로부터 연락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