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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63화 (63/144)

63화

관제 탑장이 직원들 중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몇 사람을 제 책상 쪽으로 급히 소집했다. 그중에는 차영도 포함이었다.

“터미널에서 우리 쪽으로 연락 올라왔거든. 한국 항공 382편이 공항에 접근하고 있긴 한데 여태 아무 교신이 안 된다는데? 메시지도 없대. 너희 이거 무슨 일 같냐?”

“어…… 거리는 얼마나 남았어요?”

“이거 33번 우측 활주로지? 도착까지 7분 정도란다.”

“7분요? 진짜 금방이겠는데요. 기내에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에요?”

“글쎄다. 우리도 섹터 확인해서 계속 연락을 좀 취해 달래. 일단 주파수 잡아서 접촉해 봐. 아니, 한국까지 열 시간 넘게 잘 날아와선 왜 여기서 갑자기 저러는 거야? 우리 엿 먹이겠다는 거야 뭐야.”

대화를 곰곰이 듣고 있던 차영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선배 중 한 사람이 터미널 측과 연락해서 교신을 시도하는 사이, 그가 탑장을 붙잡고 물었다.

“한국 항공 382 이거 로마발 맞죠?”

“어, 보면 CAL 은근히 말썽이 잦아. 왜 저런다니. 아니면 우리 쪽 문제인가? 다들 혹시 모르니까 본인 관제 교신 장비들이랑 레이더, 기상 시설 장비 막론하고 다 한 번씩 오작동하는 거 있는지 확인해! 이상 있으면 바로 보고하고!”

그러나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은 탑장도, 차영도 잘 알았다. 하늘을 어두운 색으로 구현한 모니터 화면을 보면 현재 공항으로 접근하는 다른 항공기들은 무난히 관제사들과 통신이 되고 있었다. 특별히 눈에 띄는 이상도 없었다.

“탑장님, 혹시 한국 항공 382편 항공기 교신 장비에 문제 있는 거 아닐까요?”

“야, 그러면 진짜 큰일 아니냐? 종합 통제 센터에 당장 연락해서 항공기랑 위성 전화 되는지부터 확인하라고 해야겠다. 착륙은 시켜야지. 아마 본인들 기체 이상이라면 이미 문제 인식하고 있을 거야. 기장은 누구냐. 말 찰떡같이 알아듣는 똘똘한 인간이어야 할 텐데.”

“한태주예요.”

수화기를 들던 탑장이 그의 대답을 듣고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차영의 어깨를 떠밀었다.

“천만다행이네. 혹시 모르니까 차영이 넌 접근등 최대한 빡세게 틀라고 연락 넣고. 다들 들어! 잠깐 자기들 관제 홀딩하고 CAL382 저 애물단지 먼저 착륙시켜라. 기장이 한태주란다! 우리 쪽에 실수 있으면 작년에 차영이 다들 기억하지? 얘 꼴 난다.”

농담인 듯 진담인 듯 애매한 말투로 장난을 친 탑장이 통화를 시도했다. 걱정스러워하는 얼굴의 차영은 차마 웃지도 못했다. 그저 제자리로 돌아가 자신의 몫을 다하기 위해 어깨를 굳혔다.

* * *

퍽!

그대로 제 상체를 일으킨 태주는 본능적으로 반격했다. 그는 주먹을 날려 권 부기장의 안면을 강타했다. 워낙 악력이 셌는지 권 부기장이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털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태주는 그에게 여유를 오래 주지도, 봐주려 들지도 않았다.

자비 없이 멱살을 덥석 붙든 그가 권 부기장의 어깨에 달려 있는 금색 견장을 확, 떼어 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먼저 기장을 갈겨 버린 그쪽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나잇값도 못합니까? 당신한텐 이거 달 자격 없어. 나한테 불만이 있어도 하기한 후에 상황 정리했어야 합니다. 주먹도 그때 날렸어야 하고요. 그랬다면 당신이 나한테 두들겨 맞는 일은 있어도 견장을 뺏기는 일은 없었겠죠.”

그는 차갑게 힐난하곤 견장을 뒤쪽으로 던져 버렸다. 견장은 기장들의 목숨값이다. 생명을 담보로 수많은 항공 교육 과정을 거치고, 수천 시간의 운항 수련을 한 뒤라야 어깨에 달게 되는 명예이자 자랑이었다.

제 자존심과도 같은 견장이 땅에 추락하자 발끈한 권 부기장이 그에게 재차 달려들었다. 그리고 태주는 기습 공격을 두 번 당해 주진 않았다. 긴장하고 있는 상태의 그를 웬만한 사람은 못 당해 냈다. 평생을 그렇게 누가 간밤에 나타나 해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시키는 고단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곧바로 권 부기장의 목울대를 제 팔로 가로막아 행동을 통제한 그가 뒤이어 명치가 있는 복부 부근을 팔꿈치로 있는 힘껏 쳤다.

“으윽……!”

권 부기장이 예상치 못한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이, 태주는 교신 장비를 확인했다. 주파수를 맞추고 교신을 시도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상대가 응답했다.

터미널의 관제사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탑으로 착륙 요청 상황을 이전하는 동안, 태주는 아직도 통증으로 곤란해하고 있는 권 부기장을 힐끗 살폈다.

“지금부터 권 기장은 입 닥치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세요. 여기서 더 긁으면 저도 두 번은 참지 않겠습니다.”

“…….”

“그리고 당신 오늘 일 반드시 책임지게 될 거야. 조종간이나 잡아.”

“하…… 씨.”

“잡아.”

위압적인 눈빛의 태주가 턱을 타고 흐르는 핏줄기를 닦아 내곤 권 부기장에게 턱짓했다.

불행 중 다행히 비행기는 오토파일럿이라 잠시간 운전자가 자리를 비운다고 해도 그리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태주는 아무리 그렇다 해도 조종사의 자리 이탈을 용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눈앞에 당장 주먹이 수차례 오갈 만한 사건이 있다 한들 최소한 기체가 하늘에 떠 있을 때 조종석에서는 저질러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의 명령에 따라 마지못해 자세를 고쳐 앉는 권 부기장을 눈으로 확인한 태주는, 화를 다스리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정면의 계기판을 확인했다. 때마침 그립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기는 타워, 한국 항공 382. 들립니까?」

「한국 항공 382. 현재 교신 가능합니다.」

상대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소리가 태주의 귓전에 봄바람처럼 가볍게 스쳐 지나갔다. 분명 태주의 목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잠시간 말이 없는 것을 보면 뭔가 이쪽에 사고가 생겼으리라 짐작하고 크게 걱정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 저, 혹시 무슨 일…….

차영이 궁금했던 모양인지 조심스럽게 서두를 꺼냈다. 태주를 당장 시급한 기체의 착륙부터 처리하기 위해 바로 잘라 냈다.

「관제 없습니까?」

- 아. 급하니까 한국어로 하겠습니다. 바람은 320도 방향에서 11노트로 붑니다. 현재 한국 항공 382편은 우선 착륙 기체에 해당됩니다. 33번 우측 활주로에 착륙하시면 됩니다. 유도등을 밝게 켜 뒀습니다.

「한국 항공 382. 33번 우측 활주로에 착륙하겠습니다.」

- 안전하게, 내려오세요.

끝인사를 하는 차영의 음성 끝이 아주 살짝 떨렸다. 태주는 한국말로 덤덤히 대답했다.

“네, 염려 고맙습니다.”

도착 지점을 확인한 태주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불빛을 향해 착륙을 시도했다. 조종석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누구도 지레짐작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러운 착륙이었다.

끼이이익. 바퀴가 지면을 굴러가면서 마찰하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창밖은 꽤 어두웠다.

마침내 그가 운항한 거대한 항공기가 관제탑의 지시에 따라 무사히 착륙을 마친 뒤 주기장에 정지했다. 출입문을 열고 승객들이 내려도 될 상황임을 알린 그는 제 할 도리를 모두 마친 뒤라야 편안하게 기대어 앉았다. 그는 한참 뒤, 깊은숨을 내뱉었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가볍게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와중에, 인터폰이 다시 울렸다.

“네, 칵핏입니다.”

- 승객 322분 모두 하기 완료하였습니다.

“알겠습니다.”

간단하게 대꾸한 그는 운항 일지를 작성하려는 권 부기장에게서 서류철을 빼앗아 들었다. 그러고는 내용을 직접 기재했다. 권 부기장이 어이없다는 듯이 그를 직시했다.

바로 그 순간, 대충 휘갈겨 쓰듯 작성한 운항 일지를 내던진 그가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부기장의 멱살을 일방적으로 붙잡아 끌고 조종석을 빠져나갔다.

“윽! 이거 놔!”

권 부기장은 민항사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군에서 교관이었던 탓에 힘이 만만치 않았다. 저항하면서 상대를 밀어내고, 또 몸을 부딪쳐 가면서 거부하는 바람에 태주의 얼굴과 목 주변에 붉은 상처들이 생겼다. 그럼에도 그보다 어리고 잘 단련된 태주가 완력에는 한 수 앞섰다.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은 태주는 바닥에 떨어진 견장을 지그시 짓밟고 부기장을 억지로 끌어당겼다. 지금부터 자신이 할 행동은 비좁은 이 안에서 할 짓이 못 되는 탓도 있었고, 또 조종석 안에 권 부기장은 머물러 있을 자격이 없어서라는 판단이기도 했다.

“한 기장님, 채신머리없이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놔요, 이거!”

“나와!”

“한 기장!”

타악! 몸싸움을 하면서 승부에서 밀린 권 부기장의 몸이 탑승교의 유리창에 먼저 부딪혔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당신은 프로 의식도 없어? 당신 말마따나 새파랗게 어린 기장한테 싫은 소리 좀 듣는 게, 수백 명 목숨보다 중요해? 만에 하나 내 쪽 장비에도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어서 진짜 큰 사고로 이어졌으면 어떡할 뻔했어. 게다가 운항 중에 기장을 폭행해? 이 새낀 하나하나 안 멍청한 구석이 없어.”

“이 새끼? 너 말 다 했어? 그래, 물론 폭행은 잘못한 거 알아. 하지만 너야말로 도대체 몇 번을 사람 쪽팔리게 만드는 거야. 오죽하면 그 말을 못 했겠어! 그리고 내가 너보다 몇 살이 많은 줄은 알아? 감히 어른 견장을 뜯어서 던져?”

“내가 이래서 꼰대를 싫어하는 거야. 논리가 사라지면 꼭 나이를 들먹여. 나보다 먼저 태어나서 몇 년 더 산 게 대수야?”

뒤늦게 쫓아온 승무원들이 두 사람 사이를 말렸다. 각자에게 몇 명씩 달라붙은 승무원들이 그들의 팔을 붙잡으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체온이 불쾌한 태주는 야멸치게 쳐 냈다. 그는 권 부기장에게 더 주먹을 날리려다가, 자신이 이런 사람과 더 대치하면서 힘을 빼는 것마저 아깝게 느껴져 관뒀다.

“너 다신 내 눈에 띄지 마.”

그는 승무원들에게 두 팔이 붙잡힌 권 기장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그러고는 그대로 탑승교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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