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병원 1층 휴게실에서는 태주가 어린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광경이라 차영은 태주 모르게 사진도 한 장 찍어서 남겼다.
그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비행기나 헬리콥터 따위의 물체가 하늘을 할 수 있는 원리인 양력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날개가 회전하면, 양력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힘이 생겨. 그러면 이 헬리콥터는 어떻게 될까? 말해 볼 사람.”
사람을 가리는 그이기에 이런 일은 무척 학을 떼고 싫어하기만 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능숙하게 잘 진행하고 있었다. 왠지 기특했다.
먼발치에서 그런 태주를 지켜보고 있던 차영은 멋쩍은 기분이 들어 그로부터 등을 돌렸다. 태주가 아이들을 다루는 동안 제게는 생각할 것이 많이 있었다.
요양 간호사가 지나가듯 하는 말을 듣기로 그가 이곳에서 이수해야 하는 봉사 시간은 고작 한 시간가량이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보통은 기장들이 병원을 선택할 수 있어서, 공항 인근을 가장 선호하고 이쪽으로는 좀처럼 와 주질 않는다는 듯했다. 심지어 공항에서 제공한 의전 차량도 아닌 자차를 이용해 방문한 사람은 태주가 처음이었다는 것이다.
이쯤 되니 차영은 자신에게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던 그의 진짜 의도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곳은 제 어머니가 일하고 있는 병원이었다. 바닷가 근처 카페에서 빠져나와 그가 이곳 병원의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었을 때는, 애초에 상상도 못 했던 일이라 내심 정말 깜짝 놀랐다.
그에게 말한 적은 없었으나, 뒤늦게 생각해 보니 동종 업계에 제 친구인 도윤이 있으니 알아내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마 오사카에서 마주쳤을 때 물어본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가정하면 제게 닥친 많은 상황들이 퍼즐처럼 잘 조합됐다.
차영은 제 손목시계를 살폈다. 시작한 지 10분가량이 지난 참이었으니 시간은 꽤 남아 있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려는데 아까 전 그가 맡겼던 차 키가 만져졌다.
돌아보니 태주가 차영을 향해 힐끗 시선을 던졌다가 픽 웃는 것이 보였다. 휴대폰을 흔들어 보인 차영이 휴게실을 빠져나왔다.
나오자마자 그가 한 일은 제 어머니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내려오면서도 그녀를 만날 생각 같은 건 안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걸어서 3분이면 닿는 곳에 그녀가 있는데도 쌩하니 도로 올라가 버릴 순 없었다.
- 차영이?
“엄마?”
전화를 걸자마자 반가운 그녀의 목소리가 귓전을 간지럽혔다.
- 안 그래도 엄마가 전화하려고 했어. 너 어떻게 된 거야?
“뭐가?”
- 너 여기 내려와 있는 거 아니야?
“그걸 어떻게 알았어?”
황급히 주변을 돌아봤지만 어머니의 모습은 안 보였다.
- 도윤이한테 들었어. 어제 갑자기 전화를 해서는 자기 여기로 내려올 거라고 꼭 내일 반차를 내라고 신신당부를 하더니, 오늘 또 전화해선 계획이 바뀌어서 자기 말고 네가 올 거라고 그러던데? 엄마가 아는 건 다 설명했어. 이제 네가 말해 봐. 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이야?
역시 자신의 짐작대로 태주가 계획한 일이 맞았던 모양이다. 추측이지만 어머니와 자신이 자주 안 보고 산다는 이야기 때문에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게 아닐까 싶었다. 여기에서 나올 일이 없는 도윤의 이름을 듣자마자 맥락이 유추가 됐다.
자신이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문제도, 어머니와 피치 못하게 일정한 거리를 두는 문제도 그는 해결하고 싶어 했다.
왜 자꾸만 제 삶의 조금씩 비틀어진 부분들을 정상 궤도에 돌려놓으려고 하는 것일까.
‘내가 막 안쓰럽나…….’
그런 거라면 조금은 이해됐다. 자신도 태주를 향해 비슷한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그가 훨씬 강인하고, 튼튼한데 어떤 면에선 자신이 그를 지켜 줘야 할 것 같았다.
“말하자면 좀 복잡한데…… 어떤 사람이 내가 엄마 보고 싶어 하는 거 알고 중간에서 핑계 만들어서 좀 도와준 것 같아. 엄마 그런데 반차야?”
- 응, 퇴근길이야.
“그럼 나랑 잠깐 봐. 여기 A동이야.”
- 엄마 B동. 여기 암 병동이라 시끄러우면 안 돼. 엄마가 갈게. 출입구에서 만나.
휴대폰을 귀에 댄 채로 서둘러 건물을 빠져나간 차영은 그녀가 있을 병동 위치부터 확인했다. 두리번거리면서 찾다 보니 마침내 그녀의 모습이 서서히 가까워졌다.
천천히 걸어간 차영이 그녀와 마주 안았다. 분명 자신이 키와 체구가 더 컸는데 그녀가 품에 안아 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포근하고 따뜻했다. 타이밍 좋게 부드러운 바람이 두 사람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살짝 상체를 떼어 내고 서로를 쳐다보는 시선에는 애틋함이 담겨 있었다. 연초에 아버지 납골당에 같이 갔던 이후로는 그녀의 얼굴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우리 차영이 몇 달 사이에 얼굴 많이 좋아졌다.”
“그래 보여?”
그녀는 끄덕끄덕했다. 마치 미리 짜기라도 한 듯 가볍게 상대에게 한쪽 팔을 뻗은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손을 붙잡고 걸었다. 녹음이 가득한 산책로를 걷다가 제일 먼저 발견된 하얀색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엄마 반차는 처음 써 보나?”
“응. 그동안 월차 정도만 써 봤지. 낮에 갑자기 사라지면 노인들은 금세 사람 찾아. 잘 때까지 기다렸다가 퇴근하고, 또 이튿날 새벽같이 나와야 돼. 아침잠은 얼마나 없는지들 아니?”
불만스럽게 말하지만 애정이 가득해 보였다.
“그런데 우리 차영이 얼굴 얼마나 오래 볼 수 있어? 바로 올라가 봐야 돼?”
“아…… 엄마 반차까지 냈는데 정작 내가 오래는 못 있어. 동행이 있거든.”
“아쉽다. 우리 차영이 엄마 보러 처음 내려온 건데…….”
안쓰러움과 아쉬움 따위의 복합적인 감정들을 가득 담은 그녀의 시선이 차영을 향했다. 미소 지은 그가 정면의 공간적 배경을 눈에 담았다. 여긴 경치도 좋고, 공기도 신선했다. 나중에 이런 곳으로 와서 지내도 괜찮을 성싶었다.
그동안의 차영은 이상하게 아버지의 유골이 있고, 그가 평생 헌신했던 공항 인근을 차마 떠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늘 그 주변을 맴돌게 됐다. 어머니와는 그리움을 소비하는 방식이 정반대였다. 그녀는 초콜릿처럼 숨겨 두고, 또 아껴 먹으려 했다면 차영은 지근거리에 두고 종종 어떤 기제들에 의해 강제로 떠올리면서 외로워했다.
그래서였을까. 차영은 관제사가 되기로 결정했을 때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리고 이 말을 그녀에게 전했을 때, 그녀는 앞에서 미소 지었고 밤에는 방에 가서 울었다.
아버지를 따라 파일럿이 되고 싶어 했던 차영이 왜 현실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해야 했는지 그 이유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일 터다.
“남쪽 지역이라 꽃이 훨씬 빨리 피고 지나 보네.”
수도권에는 화사한 봄꽃들이 만개해 조금씩 떨어져 가고 있는 참이지만, 이곳은 산자락의 꽃들이 이미 한참 전에 전부 지고 스러진 모양새였다. 마치 그다음 계절이 빨리 찾아와 자신들을 무덥게 만들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여기가 훨씬 더 따뜻해. 겨울에 진가를 발휘하니까 그때 또 놀러 와.”
“기회 되면. 엄마 이쪽에서 지내는 거 좋아?”
“좋고 말고 할 게 뭐 있어.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지.”
“그런가?”
“그런 거야. 그런데 엄마랑 만나게 주선해 준 사람은 누구야? 친구? 동료?”
어찌 보면 친구라고도 칭할 수 있었고 넓은 의미에선 동료라고도 부를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뭐라고 그를 수식해야 가장 정확할지는 모르겠다.
제 어머니는 말할 수 없으면 대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거짓말하는 것보다 침묵이 훨씬 현명한 대처라고 믿고, 여태까지 그런 모습들을 직접 실행해 보여 주는 것으로 차영을 가르쳤다. 그도 그녀의 아들이 맞기는 한지 잠시 말을 아꼈다.
“우리 아들 갑자기 말이 없네. 친구도 동료도 아닌가 봐?”
그저 웃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래서 아까 태주가 이곳의 위치를 기계에 입력했을 때도, 병원 건물에 도착했을 때도 그에게 여기가 어머니가 일하는 곳이라는 것을 선뜻 밝히지 못했던 것이다. 어머니도, 태주도 자신에게 창피한 존재가 아니라 도리어 자랑스러운 사람들이었지만, 정작 서로를 서로에게 소개해 줄 자신은 안 생겼다.
“아무래도 아까 말한 동행자 같은데, 혹시 그때 그 담요?”
“하…… 맞다 그거 엄마가 봤었지. 응, 그 사람.”
솔직하게 대꾸한 차영이 체념이 섞인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아마 태주와 어머니가 마주칠 일은 웬만하면 없으리라는 생각 때문에 굳이 숨기지 않을 수 있는 것일 터다.
“얼마나 선량한 사람이야? 이것도 물어보면 안 돼?”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어. 그 사람이 만인에게 선량한 사람인지 어떤지. 알게 된 지도 얼마 안 됐어. 한 반년 좀 넘었나.”
“그런데 여기까지 같이 왔어?”
“일 핑계도 있었고, 또…….”
차영은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다가 작심한 듯 내뱉었다.
“그냥 내가 좋아해.”
그녀는 이 대답에 좀 놀란 것 같았다. 여태까지의 차영은 이런 본인의 애정 관계 같은 문제를 그녀의 앞에서 수면 위로 올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결벽증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철저히 노출하지 않고 함구했다. 덕분에 차영이 누군가를 좋아한 적이 있었는지, 사귀어 본 경험이 있긴 한 건지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인 그녀마저 까맣게 몰랐다.
찰나간 침묵하던 그녀는 두 사람 사이에 놓인 공백을 애써 메우기라도 하듯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대답했다.
“우리 차영이 같은 까다로운 사람이 좋아하고 있으면 만인에게 착하고 친절한 사람이겠네.”
“내가 까다롭다고? 나 무던하지 않나?”
“무슨 소리야. 넌 생각보다 남한테 곁을 안 줘. 웃으면서 다 보여 주는 것 같아도 정신 차려 보면 가림막이 이렇게…… 높이 나 있지.”
그녀는 두 사람 사이의 공간에 어림잡아 높이를 가늠하듯 손을 들어 올렸다.
“네가 슬프다거나 힘들단 소리를 여태 한 마디도 한 적이 없다고 도윤이가 섭섭해서 얼마나 투덜댔었는데. 걔도 한 10년 버티다가 이제는 아예 네 성격이려니 하고 포기했단다.”
“그 사람이 착한 사람이냐고 열 명한테 물어보면 아홉 명이 아니라 대답할 것 같긴 한데.”
“나머지 한 명은 너고?”
“최소한 나한테 그런 사람이긴 해. 그래서 너무 무서워.”
“너한테 잘해 주는데 왜 무서워.”
“모르겠어. 불안해. 왜일까.”
“원래 콩깍지 씌면 그래. 갖고 있는데도 더 많이 갖고 싶지. 그걸 욕심이라 그러는 거야. 우리 차영이 살면서 뭐 욕심내는 걸 엄마가 본 적이 없는데…….”
“나야 뭐, 순하고 착했지. 인정.”
“지금도 그래.”
모자는 편안한 웃음을 터트렸다.
“나중에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생기게 되면 엄마한테도 소개해 줘.”
그럴 수 있을까. 보수적인 편에 옛날 사람인 엄마가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으려나.
물론 자신이 관제사가 되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처럼 그녀는 분명히 별말 안 하고 제 선택을 지지해 주리라. 하지만 한편 그때처럼 몰래 울게 될지도 모른다. 소수나 이단으로 사는 게 힘들 것이라는 걸, 사회가 돌아가는 이치를 잘 아는 그녀로선 능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영조차도 태주와의 미래엔 확신 없었다. 그냥 지금 좋았고. 그래서 조심스러웠고, 그게 다였다.
잠시 상념에 빠진 그가 별말 없이 앉아 있는데, 어머니는 안정을 주기 위해서인지 덤덤한 목소리로 그를 배려했다.
“네가 선택했으면 누구라도 괜찮아. 엄만 널 잘 알아. 네가 골랐으면 안 보고도 무조건 찬성이야. 딱 하나, 현재 가정이 있는 유부녀만 아니면 돼.”
그는 픽 웃었다. 그러다가 휴대폰이 진동해서 반사적으로 화면을 살폈다. 메시지였다.
[차 키 거기 있어?]
태주였다. 답장을 하려고 하는데 한 개가 더 도착했다.
[그거 타고 내일 올라오면 되겠다.]
주머니를 뒤져 아까 전 손에 잡혔던 차 키를 꺼냈다. 여기까지 다 계산해 뒀던 지점인 모양이다. 가벼운 한숨을 내뱉은 차영이 그녀의 옆모습을 응시했다.
“엄마 혹시 나 오늘 자고 가도 돼? 엄마만 괜찮으면……. 그냥 물어보는 거니까 너무 부담 갖지는 말고.”
“어머, 그래도 돼? 부담이라니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철썩! 그의 등을 야무지게 내려친 그녀가 이내 좋아서 아이처럼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 마음이 진심 같아서, 몰래 가슴을 쓸어내린 그도 그녀를 따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