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치-51화 (51/144)

51화

바람이 선선했다. 창문을 열고 부드러운 공기가 제 뺨을 스치는 것을 만끽하던 차영은 태주가 앉아 있는 운전석 방향을 힐끗 돌아보았다.

그는 한쪽 손을 차영에게 맡기고 깍지를 낀 상태로, 다른 한 손으로만 핸들을 능숙하게 조정하는 중이었다. 이걸 놓고 좀 더 안전하게 갔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도합 세 번이나 피력했지만 그는 완강했다. 차영은 세 번 만에 녹다운 됐다.

“남이 운전해 주는 거 좋네. 왜 나 자꾸 기사로 쓰고 싶어 하는지 아주 잘 알겠어.”

“이차영 생각보다 뒤끝 길다.”

“엄청 길어. 한 기장이 잊을 만할 때쯤 또 이야기할 거야.”

“이제 와서 말인데, 그날은 정말 미안했어.”

“어떤 날 말하는 건지 모르겠어. 한태주 씨 나한테 미안할 짓 꽤 하셨나 봐.”

“그날, 목 졸랐던 날.”

“…….”

“가끔 예기치 않은 상황에 누가 날 건드리면 극도로 예민해져.”

그런 것 같다고 직감적으로 느끼고는 있었다. 자세히 물어봐도 되는 것인지 아직 확신이 안 서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중이었다. 고맙게도 그가 먼저 말을 꺼내 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런 건데? 이유도 알아?”

“어릴 때…… 외할아버지가 나한테 했던 일이 아직 트라우마로 남아 있어.”

“외할아버지? 혹시…… 체벌하셨어?”

“뭐 사전적 의미로는 비슷해. 내가 너무 되바라져서 겁을 좀 주고 싶었던 것 같아.”

“이런 거 물어봐도 되나?”

무척 조심스러운 음성이었다. 한 톤 낮아지고 끝이 조금 떨리는 것만 봐도 그랬는데, 심지어 맞잡고 있는 손에 가볍게 힘을 주는 것까지 고스란히 느껴져 태주는 설핏 웃었다. 차영은 대부분의 경우 아주 예의 바르고 공손했다. 그의 어머니의 훈육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이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충분히 상상이 가능한 올바른 영역이었다.

“뭐든 물어봐.”

“나도 이제 와서 물어보기 좀 그렇긴 한데, 그때, 한 기장 자다 울었을 때. 혹시 기억나?”

“당연히 나.”

“그것도 외할아버지 때문이야?”

“어떤 의미로는.”

술술 답변해 주고 있었으나, 어딘지 핵심 맥락은 비껴 나간 대답들이었다. 뭐든 물어보라고 했지만 그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노력일 뿐 어쩌면 진심이 아니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차영은 이쯤 접기로 했다.

입을 다문 채로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려고 하는데, 큰 도로를 벗어나 방파제가 보이는 바다의 인근에 도착했다.

핸들을 붙잡은 제 왼손의 시계를 확인한 태주가 갓길에 차를 세웠다. 적당히 출발하면 된다는 태주를 차영이 새벽부터 깨워 부지런히 달려온 덕분에 아직 병원에서 제시한 시각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시간 아직 꽤 남았거든. 여기서 쉬었다 가자.”

“그래? 어…… 저쪽에 브런치 파는 데 있다.”

차영이 창밖의 2층짜리 카페를 가리켰다. 저 위층에서 바다를 내다보면 꽤 운치가 있을 듯했다. 마침 선선한 바람이 부는 것도 완벽했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차영이 원하는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바닷가 카페 2층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경치가 근사했다. 대충 주문을 마치고 마치 바다에 빠지듯이 그 풍경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차영은 불현듯 태주가 제게 건넨 질문 때문에 삽시간에 생각이 많아졌다.

“너희 아버지는 어떻게 돌아가셨어? 돌아가시고는 어떻게 지냈지? 어머니랑 너.”

그는 더할 나위 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가장 아픈 부분을 찔렀다.

생각하기만 해도 괴로운 일이니 적당히 얼버무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차영은 태주의 앞에선 솔직하게 본심을 말하게 되곤 했다. 차영의 눈에 비친 그는 자신에게마저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는 매력적이고 자신만만한 사람인 만큼 상대를 허심탄회하게 만드는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자꾸 그랬다.

태주와 자신 간의 접점이 되는 인물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막무가내에 무례하기 짝이 없는 그이지만 사람을 무장 해제 시키는 묘한 부분이 기저에 감춰져 있기 때문일까.

그저 그를 좋아하기 때문일까.

이윽고 차영이 덤덤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아버진 경비행기 운항 중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음주를 했다는 누명을 쓰셨어. 난 그때 어렸고, 아무것도 몰랐지. 엄마 말론, 어느 날부턴가 아버지가 한참을 집에 안 오시니까 왜 몇 밤이나 지났는데도 안 돌아오시냐고 내가 계속 떼를 썼대.”

“…….”

“나중에 알게 됐어. 그게 죽었다는 거구나. 죽으면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구나. 영원히 다시는 볼 수가 없는 거구나. 슬픈 일이구나.”

차분한 음성 끝엔 미처 꼬리를 잘라 내지 못한 슬픔이 바람처럼 조금 묻어 있었다.

“아버지 누명 벗길 생각은 안 해 봤어?”

되묻는 태주의 음성 역시 여느 때보다 훨씬 더 낮아져 있었다.

“당연히 해 봤어. 이것도 나중에 알게 된 거긴 하지만 엄마가 백방으로 노력 많이 하셨대. 그런데 경찰에선 아버지 과실이라고 이미 사건을 축소해서 발표했고, 경비행기가 추락해서 사망자까지 낸 큰 사건인데 언론도 잠잠했다는 거야.”

실제로 어느 정도 나이가 찬 차영이 그 당시의 기사들을 찾아보려 애써 봤으나 지방 신문에 워낙 작게 단신으로 나 있는 것들이 전부여서 포기했다. 주요 일간지 어디에서도, 공중파 방송국 그 어느 곳에서도 그 사건에 대해 심도 있게 다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같이 인터넷망이 발달한 세상이었다면 여파가 달랐으리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죽음이 모두에게 공평한 건 아니었다. 시대의 발전 속도에 따라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에 따라서도 양상과 중요도가 달라졌다.

“그 후로 우리 사는 건 당연히 거지 같았어. 그러니까 가장이 없는 생활이나 경제력 같은 물리적인 의미 말고 심정적으로. 엄만 내 눈에 아주 강한 분이었는데. 꽤 나중에야 늘 혼자 몰래 우셨다는 걸 알게 됐지. 말하고 보니까 난 다 뒤늦게 깨달았네.”

“그때 넌 어렸다면서.”

“그게 면죄부가 될까?”

“당연히 돼.”

단정 짓듯 내뱉는 말투에는 분명한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태주 같은 사람이 그렇다고 말해 주니 차영도 그런 것 같아 아주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졌다.

“한 기장이 그렇게 말한 거니까?”

“응. 내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차영은 부드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나 사실 한국 항공에 감정이 별로 안 좋아. 아빠 곤란할 때 전혀 안 도와줬거든. 장례를 공항장으로 치르고 본사 보국탑에 이름도 새기고 싶었는데, 우리 이야기는 안 들어 주고 경찰 말에 따라 일방적으로 파직하는 바람에 그것도 못 하고 일반 납골당에 안치했어.”

“…….”

“분명히 그 사고엔 뭔가 있어. 그런데 그걸 밝힐 힘이 없어. 시간도 너무 많이 지났고…… 맞다, 그때 아버지랑 경비행기에 같이 탑승했던 사람이 있었대.”

시종일관 무표정하던 태주의 눈가가 움찔했다. 그러나 차영은 때마침 테이블 위의 샌드위치에 잠시 시선을 두는 바람에 못 보고 지나쳤다. 다시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을 때는 태주도 다시 제대로 표정을 정리한 뒤였다.

“엄마 말론 아빠가 지방 어디에 환자가 있어서 의사를 태우고 간다고 했다는데. 그런데 되게 대단한 사람이었나 봐. 우리한텐 알 권리가 있는 건데도 경찰은 끝끝내 누군지도 안 알려 주더라. 이름조차 알 수가 없었어. 결국 그 유족들은 우리 아버지를 원망하겠지? 다른 것보다 그게 너무 억울해. 한 번쯤 만나 보고 싶어. 그 사람 가족들은 뭔가 알고 있을 것도 같은데…….”

쨍그랑. 테이블 위에서 아이스커피를 담은 컵이 떨어졌다. 태주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다가 잘못 친 듯했다. 차영은 그 파열음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직원이 서둘러 다가와서 정리하는 동안 태주의 안색을 살폈으나 언제나와 같았다.

“한 기장 괜찮아? 피곤해? 나 때문에 예정보다 일찍 일어나서 그런가?”

“어제 비행하고 바로 운전을…… 해서 컨디션이 난조인가 봐.”

“병원 가는 동안이랑 올라갈 때는 운전 내가 할게.”

“금세 괜찮아져.”

“괜히 내가 새벽에 빨리 출발하자고 했나 보다.”

“그냥 컵 떨어뜨린 거야. 나 떨어뜨린 거 아니고. 그런 표정은 왜 해?”

바닥을 닦고 일어서는 직원에게 똑같은 아이스커피 한 잔을 더 주문한 태주는 차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별일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눈빛이어서, 차영도 겨우 끄덕였다.

왠지 숨이 막힐 듯한 적막이 흘렀다. 한태주가 자신보다 훨씬 더 제 앞가림을 잘한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는데 종종 보살펴야 하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차영은 직원이 주방 안쪽으로 사라진 뒤에라야 천천히 손을 뻗어 태주의 눈가를 매만졌다.

“난 한태주 절대 바닥에 떨어뜨리지 말아야겠다.”

이 말에 그가 픽 웃었다. 이상하게 조금 슬퍼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