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이윽고 태주는 반라가 된 차영의 가슴팍 유실을 손가락으로 희롱하기 시작했다. 곧고 기다란 손가락 사이에 끼워 굴리면서 아래로는 제 것을 차영의 몸 위에 계속 문질러 댔다. 차영이 본능적으로 반응하며 바르작거렸다.
“아, 아, 응…….”
숨이 점점 더 가빠졌다. 얼굴을 터질 듯이 달아올랐고, 하반신의 사정도 제 얼굴색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차영은 머릿속으로 그의 성기가 제 안에 침입하는 장면을 그려 봤다. 놀랍게도 너무나도 쉽게 상상됐다. 거북하지도 않았다. 도리어 그와 결합하면 어떤 느낌일지 알고 싶은 욕구도 거셌다.
다만 아직은 그 미지의 세계가 무서웠다.
“하, 하, 하, 한태주!”
정신없이 신음하다 절박하게 그의 이름을 부르자, 태주가 멈칫했다.
그의 기대를 배반해야 하는 차영이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러나 멈추려면 그가 이성을 지니고 제게 의사를 묻고 있는 지금밖에 없으리란 걸, 같은 남자인 차영은 잘 알았다.
“정말 미안한데 나 아직은…….”
잔뜩 성이 나 뻣뻣하게 곤두선 성기가 계속 차영의 복부 주변을 압박하고 있었다. 반쯤 선 차영의 것도 그에게 느껴질 터다.
“아직은?”
“정말 싫은 건 아닌데. 마음의 준비가…….”
더 노골적인 표현은 입에 담을 수가 없어서,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가만히 그런 차영을 내려다보던 태주는 의외로 보채거나 조르지 않았다. 그저 조심스럽게 그의 옆에 털썩, 모로 눕는 것을 택했다.
적막이 얇은 천처럼 내려앉아 두 사람의 몸 위를 덮어 갔다.
“쫄긴.”
“안 쫄았어.”
종종 차영은 말과 행동이 대놓고 따로 놀았다. 뭔가를 숨기는 데 서툰 것이다. 지금도 그랬다. 말과 달리 눈에 띄게 안도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차영은 사랑스러웠다. 태주가 차영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네, 그러세요. 이차영 씨가 누구보다 용감하신 걸 잊었네.”
“안 할 거야?”
“다음에. 다음에 하자.”
“그래도 돼?”
“억지로 하는 플레이가 더 좋아? 그럼 참고하고.”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섰는데 괜찮나 싶어서.”
차영의 음성이 기어들어 갔다.
사실 태주도 이쯤에서 관둬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다. 차영은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고 처음부터 분명히 언질을 준 바 있었고, 그걸 애써 무시한 채 여기까지 정신없이 그를 이끌고 온 것은 자신이었다. 그러나 마음이 급해서 몸이 주인의 의지를 반하고 움직였다.
차영을 으스러져라 꽉 끌어안은 태주는 그의 눈두덩 위에 한 번씩 번갈아 입을 맞추고, 자세를 고쳐 누웠다. 천을 사이에 두고 맞닿은 하반신이 차영은 좀 난감한 듯했다.
“그런데 나는 또 언제부터 섰지? 기억이 안 나.”
“너 내가 여기 빨 때. 여기 좋아하는구나, 잘 알았어.”
그가 짓궂게 차영의 가슴팍을 꾹 눌렀다. 얼굴이 확 달아오른 차영이 그의 손을 내쳤다.
“놀리지 마.”
“창피해? 그럴 거 없어. 난 아까 너랑 손잡을 때 이미 섰거든.”
“사춘기야? 닿으면 서게. 그런데 진짜 이거 어떻게 해?”
“뭘 어떻게 하면 네가 감당이나 할 수 있어? 그냥 기다려. 속으로 노래 부르는 중이니까.”
“뭐 불러? 우리나라 애국가 불러?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는 슬픈…….”
“찬불가 부른다.”
“한 기장 종교 있어?”
“없어. 넌 애국심 넘쳐서 애국가 불러?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폴 매카트니 노랠 부를 순 없잖아.”
“으. 징그럽게…….”
껴안고 있으면 흥분한 상태가 도리어 오래 지속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서로 숨소리만 공유한 채로 잠시 숨죽이고 있자 가쁘던 호흡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태주가 등과 팔 등지를 조심스럽게 만지작대는 손길도 맹렬하게 타는 듯했던 방금 전과 달리 담백했다.
두 사람 모두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뒤에는 태주가 차영의 스웨터를 다시 입혀 주고, 제 셔츠도 도로 꿰어 입었다. 그가 벗기고, 다시 입히는 과정에서 차영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마치 어린아이라도 된 기분을 느꼈다.
여전히 누워 있는 차영을 태주가 빤히 내려다보았다. 이에 호응하듯 시선을 마주하고 있던 차영이 어설프게 몸을 일으켰다. 자연스럽게 태주도 앉자, 그의 품에 편안하게 기댔다. 그러고는 장난감 다루듯 그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크고 뼈마디가 예쁜 손이었다.
“차영이 너…… 혹시 비행기 타 보려고 했던 적은 있어? 아주 어릴 때 기억도 안 나는 경험 이후로는 못 타 봤다며.”
둘 사이에 내려앉은 침묵은 불편한 사이의 그것처럼 불안하지 않았다. 그러나 태주는 기어코 적막을 깨고 싶은 모양이었다. 허벅지 아래에서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는 홍콩 마그넷을 벽면에 붙여 둔 차영은 주방으로 향했다. 그가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몇 개 꺼내 가져오자, 태주가 뚜껑을 따서 각자의 앞에 놓았다. 그런 뒤라야 차영의 대답이 이어졌다.
“있긴 있어. 한번은 학교에서 여행으로 제주도에 가려고 했거든. 그때 타려고 했는데 내가 기내에서 운항 중에 사고가 나면 어떡하냐면서 막 발작했대. 기절했었는지 그 뒤의 일은 기억도 안 나. 비행기는 예정된 운항 시간이 있으니까 나랑 우리 반 부담임 선생님이랑 반장만 김포 공항에 내리고 무정하게 출발했지. 그때 그 반장이 도윤이야.”
“구도윤 씨? 그때부터 친구구나. 너에 대해서도 많이 알겠네.”
“그런 편이지. 그때 엄마한테 나 인계해 주느라 인사한 뒤로는 가끔 엄마가 같이 밥도 사 주시고 그랬거든. 그리고 내 기억엔 없는데…… 공포는 기저에 아직 남아 있나 봐. 그때 이후로도 계속 타는 게 안 내켜.”
태주가 차영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생각이 많은 얼굴이었다.
“시험 삼아 어디 가까운 데라도 가 볼래? 국내선은 퀵턴이 많아. 내가 탄 걸 너도 타고 갔다가, 내가 올 때 너도 같이 오는 거지. 관광하고 싶으면 일정 조정해서 그렇게 해도 되고.”
“비행기 굳이 안 타도…… 사는 데 큰 지장 없어. 여행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안 내켜?”
“조금.”
“당연히 네가 싫어서 평생 안 타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하늘을 좋아하면서도 못 타는 건 극복했으면 좋겠어. 문제가 뭐든. 내가 도와주고 싶어.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거야.”
왜였을까.
어떤 면으로 뜯어봐도 이해심이 부족한 그는 자신이 품고 있는 이 막연한 공포에 대해서만큼은 다 이해하는 사람처럼 말한다.
“한태주 기장은 그런 이타적인 대사랑은 별로 안 어울리는데…….”
“넌 주식이 쌀이라고 밥만 먹고 살아? 가끔 나도 그런 말 할 때 있어.”
“또 기절하면 어떡해. 그땐 어리기라도 했지.”
“날 믿고, 차영아.”
“한 기장에 대한 신뢰와는 별개의 문제야. 나한텐 이게 도박이라고.”
“그게 모험이든, 도박이든. 우선 나를 한번 믿어 보면 어때? 밑지는 장사는 아니잖아. 한번 시도해 보고. 안 되면 또 다른 방법 찾고. 응?”
고개를 살짝 옆으로 튼 차영이 태주를 쳐다봤다. 장난스러운 기색이라곤 전혀 없는 진지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제안은 솔깃할 만한 것이었다. 태주라면 정말 가능하게 만들어 줄 것도 같아서, 흔들렸다. 그러나 여전히 그 거대한 기체가 두려운 것도 사실인지라 갈팡질팡했다.
“하지만 난…….”
“무서워?”
솔직하게 털어놓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차영은 그에게 기댄 채로 끄덕였다. 사락, 머리카락이 그의 어깨에 쓸리면서 부드러운 마찰음이 일었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듯하던 태주가 차영의 붉은 입술을 조심스럽게 지분거렸다.
“가까이에서 보면, 하늘이 얼마나 예쁜 줄 알아?”
“알지만.”
“아니, 차영이 넌 아직 몰라. 그건 봐야 알 수 있어.”
단호하게 대꾸한 태주가 제 허리를 곧게 세웠다. 뒤이어 차영의 양어깨를 붙잡고 아주 가까운 위치에서 눈을 마주쳐 왔다. 서로의 호흡이 닿을 듯한 지근거리였다. 상대의 눈가가 일렁이는 모습이나, 눈동자가 담고 있는 대상의 형태까지 고스란히 들여다보였다.
“난 그걸 네가 꼭 봤으면 좋겠어.”
“한 기장.”
차영이 애써 마음을 다잡고 그를 부르며 말을 덧붙이려는 순간, 태주의 매력적인 중저음이 두 사람 사이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내가 널 날게 해 줄게.”
철렁, 마음이 내려앉은 차영은 입을 한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날개가 타들어 간 새를 날게 하겠다고 천명하는 그에게, 차영은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마음속에 자연의 이치상 만나선 안 되는 뜨거운 여름과 차가운 겨울이 한데 모여 치열하게 알력 다툼을 해 대는 기분이었다. 태주의 상냥한 배려가 고마운 한편, 굳이 이 불편한 화두를 꺼내 자신의 속내를 복잡하게 만드는 그를 향해 필연적인 원망도 조금 일었다.
그 혼란스러운 마음을 읽은 모양인지 이내 곧고 큼지막한 태주의 손이 차영의 눈가를 어루만졌다. 그러고는 턱을 붙잡고 제 고개를 기울여 가볍게 입을 맞췄다. 새털 같은 촉감이 닿았다 떨어짐과 동시에 부드럽게 내리감겼던 차영의 눈꺼풀도 천천히 올라가 투명한 눈동자를 다시 드러냈다.
심란해하는 기색으로 입술만 잘근잘근 씹던 차영이 결국 태주의 품에 와락, 달려들었다.
한참을 말없이 그를 끌어안고 있자 태주가 부드럽게 등을 토닥여 왔다.
자신을 달래는 그의 손길과 이어지는 음성은 어울리지 않게 눈물이 날 만큼 다정했다.
“괜찮아. 아무것도 걱정할 거 없어.”
그래서였을까.
차영은 끝내 어떤 대답도 해 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