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차영은 절로 웃음이 샜다.
“한 기장 생각보다 꾸준하게 아기자기하네.”
“그렇게 귀여우면 또…….”
“이제 진짜 그만해.”
그가 다짜고짜 다시 얼굴을 들이밀어서, 차영이 손바닥으로 밀어냈다. 그도 반쯤은 장난이었던 것 같았다. 괜히 애꿎은 손바닥을 간질이다가 서서히 물러섰다.
“비행하느라 피곤하겠다. 얼른 가서 쉬어. 수고했어.”
“퇴근할 때 데리러 올게.”
“피로 쌓였을 텐데 뭐 하러. 내가 집에 도착하면 전화할게.”
“그 피로 널 봐야 풀려. 내가 올게. 가 봐, 일하다 억지로 나온 거잖아.”
말투는 평이했다. 음성도 언제나와 같았다. 공간의 특수성을 고려해 다소 낮고, 작아졌을 뿐이다. 그런데 뭔가 문장 중에 걸리는 게 있었다. 눈치를 보다가 태주보다 한발 앞서 나가려던 차영이 그를 돌아보았다.
“나 한 기장 보고 싶어서 나온 거야. 원래 억지로 뭐 잘 안 해. 나 착하게 생겨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생각보다 취향도 확고하고 고집도 엄청 세거든.”
“…….”
“그냥 기억하고 있으라고. 이따 까먹지 말고 꼭 데리러 와.”
그의 견장을 살짝 붙잡고 자세를 잡은 차영이 태주의 뺨에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누구라도 있을세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부리나케 도서관을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 시야에 담고 있던 태주는 아까 전 자신이 황급히 꽂아 두었던 책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차영에게 키스하면서 어설프게 밀어 넣은 덕택에 책등이 다른 책들에 비해서 조금 튀어나와 있었다.
그걸 지켜보는 그의 한숨이 깊었다.
책을 다시 제대로 꽂아 본래의 자리에 놓아둔 태주는 잠시 뒤 그곳을 벗어났다.
* * *
차영은 본래 거짓말이나 빈말 같은 건 할 줄 모르는 편인지 제가 했던 말을 충실하게 증명했다. 바깥에서의 스킨십에 시시때때로 우려를 표하긴 했지만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듯,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에 가까워지자 적극적으로 태주에게 매달렸다. 덕분에 차영의 집 현관 앞에서 가볍게 시작됐던 작별 인사 겸 입맞춤은 어느새 무르익어 농도 짙은 키스로 변해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빈틈없이 끌어안은 채로 입술을 맞물렸다.
호흡이 버거운 차영이 고개를 젓다가 뒷머리가 벽에 부딪힐 뻔한 것을 태주가 제 손바닥으로 지탱해 막았다.
“읏…….”
“괜찮아?”
“아파.”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건너편 호수에서 삐릭,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연스럽게 서둘러 문을 열고 현관 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둑이 무너지듯 벽면에 기대었다. 여전히 입맞춤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키스를 하면서 집 안으로 들어가려 하니 차영의 발걸음이 더뎠다. 성질 급한 태주는 그를 번쩍 안아 들었다.
거실 소파 위에 쓰러진 그들은 한순간도 쉬지 않았다.
급기야 태주의 손이 차영의 어깻죽지를 더듬었다. 그 야릇한 손길 덕분에 차영의 등허리가 바짝 긴장했다. 서로 입술을 닿았다 떼어 냈다 하는 와중에, 태주는 착실하게 차영의 옷가지들을 벗겨 나갔다. 키스에 열중하고 있어서 차영은 그걸 인지하지도 못한 것 같았다. 질끈 감은 눈 위의 속눈썹만이 태주가 제 혀를 입 속으로, 마치 밀부에 성기를 삽입하듯 난폭하게 밀어 넣을 때마다 파르르 떨렸다.
서서히 아래로 내려간 태주의 혀가 턱선을 훑고 지나가 목울대를 길게 핥았다. 울대뼈 위를 치아로 살짝 깨물고는 다시 회귀 본능이 인 생명체처럼 턱을 타고, 입술에 도달했다.
어깨와 팔뚝으로 이어지는 선을 타고 쭉 쓸어내리는 손길은 분명한 열기를 담고 있었다. 뜨겁고, 달뜬 서로의 호흡이 부드럽게 입술을 부딪칠 때마다 서로에게 전이됐다. 차영은 그가 주는 자극 때문에 온몸의 땀구멍이 전부 열리는 기분이었다. 숨이 가빠지고, 체온이 급속도로 상승했다. 눈을 감은 채로 도리질하는 차영의 두 팔을 들어 올린 태주는, 두툼하고 보드라운 스웨터를 단박에 벗겨 냈다.
마른 상체 위에 도드라진 유실을 혀끝으로 희롱하다 입 안에 머금자, 차영이 태주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밀어 넣었다.
“아윽……!”
뜨거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제가 내뱉은 소리에 지레 당황한 차영이 그제야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인지한 듯 몸을 덜덜 떨었다.
어느 틈에 벗겨져 있는 본인의 상체를 내려다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느껴졌다.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위를 점령하고 있는 태주를 올려다보는 시선에 아주 미약하지만 공포감이 묻어났다. 태주는 눈을 마주친 순간 그걸 알아챘으나, 이 순간을 뒤로 돌이킬 의지가 안 섰다.
그가 제 셔츠를 벗은 뒤 차영을 끌어안았다. 안긴 차영도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태주의 상체를 감쌌다. 줄곧 옷으로 감춰져 있던 탄탄한 상체의 탄력이 실제로 손바닥에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게 당황스러운 것 같았다.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태주가 차영의 다리 사이에 제 하체를 살짝 비볐다. 이미 발기한 하반신이 바지 위에서 터질 듯했다. 차영도 강직된 성기의 딱딱함이 느껴졌는지 잔뜩 억눌린 탄성을 내뱉었다.
“아……!”
“하…… 읏. 천…… 천천히.”
태주는 겁먹은 게 분명한 차영을 알고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차영의 앞섬을 거침없이 더듬었다. 설핏 고개를 든 성기의 윤곽이 태주의 손바닥에 잡혔다. 자극적인 손길이 그 위를 훑고 지나가자 차영이 양손으로 태주의 맨살 위를 정신없이 매만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굳게 다물린 바지 버클에 손을 올린 태주가 한쪽 손바닥으로 차영의 둔부를 지탱해서 골반을 들어 올리고는 그것을 풀었다. 그런 뒤 당연한 수순으로 바지를 벗겨 내려는데, 주머니에서 느닷없이 굴러떨어진 마그넷이 차영의 소파 위에 안착했다.
“한 기장 잠깐만……!”
“안 돼. 못 기다려.”
물건이 떨어지거나 말거나 태주의 안중에는 없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차영의 아랫입술을 열중해서 빨면서 바지를 마저 벗기려고 했다. 그러다가 무심코 들어 올린 시선의 끝에 벽면에 기차놀이 하듯 나란히 연결되어 붙어 있는 마그넷들을 확인하고 멈칫했다.
비행기 관제할 때의 차영은 아마 저렇게 일사불란하게 항공기들을 도열해 둘 것 같았다. 그러면 각 항공기들은 자신의 이착륙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게 너무 귀여웠다.
다시 차영을 내려다본 태주는 얇게 입고 엄청난 추위라도 만난 양 온몸을 떨어 대는 그에게 온 신경을 집중했다. 가만히 그것을 지켜만 보고 있자니 차영도 용기를 내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기다려 달랄 땐 무시하더니, 막상 별말 하지 않자 태주의 후속 행동이 없는 이유가 궁금한 듯했다.
태주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눈동자가 색정적이었다. 아마 본인은 모를 것이다. 그리고 접혔다 펴졌다는 반복하는 눈매에서 막연한 두려움과 기대감이 한꺼번에 넘실거렸다.
“무서워?”
“약간……. 계속할 거야?”
“네가 동의하면.”
“뭘 동의해야 하는데?”
“네 아랫도리를 마저 벗겨도 되는지, 아닌지.”
“벗고 나면.”
“내가 네 안에 더 깊이 파고들어도 되는지 아닌지도 동의해 줘야겠지. 안에 이걸 박아 넣고…… 네가 내 걸 물면, 나는 그 안을 쑤시고 헤집어서…….”
그가 삽입 운동을 하듯, 강직된 성기의 촉감이 차영에게도 전해지도록 허리를 크게 들썩였다. 도드라진 성기의 윤곽이 차영의 아랫도리에서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당황한 차영이 아무 말 못 하고 태주만 마냥 올려다보고 있자 그가 좀 더 빠듯하게 서로의 하체를 부딪쳤다. 뻣뻣한 바지의 천 아래 감춰진 차영의 회음 부위 위에 태주가 제 것을 부드럽게 앞뒤로 쓸다가 푹, 찔러 넣었다.
“아흑……!”
계속 태주가 물고 빨아 댄 통에 새빨개진 차영의 입술이 힘겹게 벌어졌다. 뜨거운 날숨이 두 사람 사이의 좁은 빈틈에 맴돌다가 흩어졌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차영이 제 입을 먼저 틀어막았다가, 그보다 더 급한 일을 해야 한다는 양 두 손을 힘겹게 내저었다.
“자, 잠깐만, 아…… 으…… 아래에서 계속 찌르는데?”
“발기했으니까 당연히 그렇겠지.”
천연덕스럽게 대꾸하고는 있으나 태주의 음성도 평소보다 훨씬 주파수가 낮아져 있었다. 각자의 뜨거운 눈동자가 서로의 살갗을 아플 정도로 주시했다. 태주의 것은 특히 더 날카로웠다. 차영은 그의 시선이 자신을 언젠간 벨 것 같다고 느꼈다.
“하, 한 기장 원래 발기하면 이 사이즈야? 내 생각보다 너무 큰데? 이런 크기가 아래로 들어온다고? 나 엄청 아픈 거 아냐?”
“그거참 안타깝네. 심지어 내 거 아직 덜 섰는데.”
“읏, 아…… 말도 안 돼.”
“하아…… 아프기만 할까? 그럼 인간들이 이걸 왜 해.”
그는 차영을 설득하기 위함인지, 제 욕망을 채워 넣기 위해선지 다시 하체를 요란하게 들썩였다. 차영의 양쪽 다리를 슬쩍 벌린 그가 퍽,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거세게 제 것을 삽입하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파르르 떠는 차영의 사타구니 사이에 뻣뻣해진 성기 끄트머리부터 음낭까지를 길게 비볐다. 깜짝 놀란 차영의 목울대가 미친 듯이 오르락내리락했다.
“하, 태주 씨 잠깐만. 한 기장…….”
“싫어?”
차영은 솔직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걸 내려다보고 있던 태주가 목구멍 안쪽이 긁히는 듯한 긴 울림 소리를 내며 한숨을 토해 냈다.
“그냥 싫지 않은 게 아니라 네가 좋아서 까무러치는 델 찌를 거야. 같이 좋자. 나만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