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치-13화 (13/144)

13화

“한태주 씨, 지금 뭐 하는 거냐고.”

“카풀. 몰라? 사전적 의미 설명해 줘?”

“내려. 난 동의한 적 없어.”

“이 안은 사적인 공간인가 보지?”

“이걸 확 부어 버리는 수가 있다. 아직 뜨거워.”

차영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태주는 도리어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우리 같은 집 살잖아. 좀 더 동거인에 대한 배려심을 갖추는 게 어때.”

“왜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를 해? 같은 건물에서 각자 집을 대여해서 사는 거겠지.”

“그거나 이거나.”

“전혀 다르지.”

“난 관점의 차이라고 생각해. 도착하면 깨워 줘.”

그러나 강경한 차영의 거부 반응에도 그는 마치 어린애처럼 막무가내였다.

“내가 한 기장 운전기사야? 당장 내리라니까. 본인이 타고 온 차 있을 거 아냐. 따로 가.”

“기장들 운전 잘 안 해. 사고 날 수 있고 위험 부담도 커서.”

“그러면 택시 타. 공항 철도, 버스, 리무진. 아무거나 골라 타면 되잖아.”

“정 카풀이 싫으면 저녁 같이 먹자. 배고파.”

“기내에서 안 먹었어?”

“나 기내식 맛없어서 싫어.”

“난 구내식당에서 저녁 먹고 나왔어.”

“치사하네, 입주민.”

“사람들 있는 데서 입주민이라고 부르기만 해. 괜한 오해 사는 거 질색이고 사절이야.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이거저거 한 기장에 대해서 물어볼 것도 골치 아파.”

“알았어, 관제.”

이 또라이가.

차영이 슬리브로 감싼 컵 쥔 손을 부들부들 떨다가, 하는 수 없이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았다. 자신 쪽을 향해 모로 누워 있던 그가 창가로 자세를 고쳐 누웠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말문을 차단하고 등을 보이고 있으니 충만해져 있던 자신의 전투력까지 미묘하게 저하됐다.

그를 천천히 살피다 보니 어깨에 달린 견장에 재차 눈이 갔다. 그의 부드러운 머리카락과 넓은 등, 전체적으로 기다란 실루엣까지 하나씩 살펴보던 차영은 하는 수 없이 운전대를 잡았다.

“겉옷은 어쩌고.”

“캐리어에.”

“그러면 한 기장 캐리어는 어쩌고.”

“국내선이라 짐이 별로 없었어. 내 차 트렁크에 뒀으니까 나중에 찾아가면 돼. 이제 그만 물어봐. 춥고, 배고프고, 귀찮아.”

“거지가 따로 없네. 알았으니까 안전벨트라도 매.”

“벌금은 차주인 네가 물 건데 내가 왜.”

대꾸하는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한층 낮아져 있었다. 아까 전 차 밖에서 들은 게 착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진짜 원래 이렇게 제멋대로인 거냐고 물어보려 했으나, 그로부터 나올 대답이 뻔해서 차영은 입을 다물고 그가 누운 조수석의 열선을 올렸다. 그러고는 차량의 뒤편을 힐끗 살폈다. 일전에 태주가 자신에게 건네줬던 남색 담요가 쇼핑백에 잘 접혀 담겨 있었다. 언제 마주칠지 몰라서 상비하고 다녔던 터다.

조심스럽게 그걸 꺼내 태주에게 덮어 준 차영은 천천히 주행을 시작했다.

* * *

벌써 차에 탑승한 지 한 시간째였다.

공항에서 집까지는 차로 15분, 출퇴근 시간에 막혀도 30분 이내에는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였다. 덕분에 차영의 차는 집 앞 야외 주차장에 주차된 채로 한참을 머물렀다.

태주는 잠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잠버릇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자세 한 번 고치지 않고 얌전히 누운 채로 반 시간을 거뜬히 버텼다. 안전벨트를 풀고, 제 카 시트까지 조금 뒤로 넘긴 차영은 아까 전의 태주처럼 몸을 모로 뉘고 잠든 그를 관찰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얼굴의 옆모습이 매끄러웠다. 늘씬한 콧잔등을 따라 입술까지 이루어진 곡선이 선명하고 유려했다. 허공에서 그 선을 따라 그려 보던 차영이 흠칫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진짜.

정말이지, 그와 있으면 번번이 자신이 이상해지는 기분이다.

“한태주 씨, 한 기장. 다 왔어.”

조심스럽게 손을 뻗은 차영이 그의 위를 덮은 담요를 살짝 붙잡았다. 그러고는 어깻죽지를 붙잡아 깨우려고 하는데, 그의 체온과 맞닿는 동시에 손이 덥석 붙들렸다.

“헉……!”

도리어 깜짝 놀란 차영이 숨을 몰아쉬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틈에 고요히 잠들어 있던 태주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차영의 손목과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 반격했다.

“읏, 다 왔…… 지금 뭐 하는 거야!”

타악! 태주가 난폭하게 밀어붙이는 통에 운전석 창문에 제 뒤통수를 부딪치게 된 차영이 눈을 질끈 감았다. 태주는 괴로워하고 있는 차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폭주했다. 울대뼈가 툭 튀어나온 목울대를 팔뚝으로 압박하고 한 손으로는 차영의 목을 힘껏 졸랐다.

“윽……. 하지…… 놔!”

목이 짓눌려 잘 나오지 않는 음성으로 힘겹게 애원했지만 점점 더 손아귀 힘으로 내리누르는 강도가 심해질 뿐이었다. 고통스러운 숨을 토해 내던 차영은 가까스로 태주의 손등 위롤 제 손으로 짚었다. 덜덜 떨리는 손바닥이 그의 피부 위에 마찰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괴력을 발휘해 차영의 손을 뿌리쳤다.

“윽, 읏. 그만, 제발…… 윽!”

무자비한 태도로 차영을 결박하던 태주는 급기야 턱까지 자극하면서 아예 숨통을 끊어 놓으려 들었다. 온몸을 바르작거리던 차영은 젖 먹던 힘까지 열심히 끌어모아 낭떠러지에 선 기분으로 그의 이름을 절박하게 외쳤다.

“한태주! 제발 좀 진정해.”

바로 그때였다.

흔들리는 차영의 눈동자와 태주의 색이 까맣게 죽어 있는 눈동자가 느릿하게 마주쳤다. 뒤늦게 태주가 제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를 인지한 듯했다. 그가 서서히 차영을 압박하고 있던 제 양손을 거두었다. 자유로워진 차영은 기침을 토해 냈다.

“왜 그……. 허억. 집에 왔다고 알려 주려고 한 거야!”

겨우 단어들을 꺼내 놓는 차영의 상체를, 태주가 와락 끌어안았다.

귓전에서 그가 쌔근거리는 거친 숨이 고스란히 전이됐다. 많이 동요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 기장?”

“미안.”

“…….”

“미안해, 차영아. 너인 줄 몰랐어.”

알아. 그 짧은 말이 입 안에서만 맴돌고 나와 주지 않았다. 하나 응답하지 않아도 태주는 왠지 제 대답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이다.

그는 설명하지 않았고 자신도 그에 관해 잘 모르긴 하지만 조금 전 난폭한 행위를 했을 때 태주는 자신은커녕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사람 같았다. 이런 표현이 다른 사람도 아닌 그에게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어린아이처럼 매우 겁에 질려 있는 듯했다.

“저기, 한 기장. 이제 놔줘. 나 괜찮아.”

슬쩍 어깨를 밀어내니 그가 순순히 상체를 뒤로 빼 차영을 놓아주었다. 본의 아니게 끌어안고 있을 땐 민망한 줄 몰랐는데, 떨어지고 나니 곧바로 서로의 당혹이 느껴져 차 안의 기류가 퍽 난감해졌다.

차영은 지금 이 순간 그의 표정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어두워진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통에 쉽지 않았다.

“먼저 내릴게.”

“잠깐만, 한 기장.”

불시에 내리려는 태주를 차영이 말로 붙들었다. 그제야 그가 차영을 돌아보았다. 그의 음울한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몇 번이고 계속 마음에 걸렸던 바로 그 눈빛이다.

차영은 좀 더 그에게 말을 붙여 보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방금 전의 거친 행동은 분명히 차영 개인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반응에 명백한 적개심이 섞여 있다는 것이 광폭한 손길에서 분명히 전이됐다. 짐작건대 이 세상에 태주가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해야 할 만한 위험한 누군가가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태주가 그 어느 때보다도 거부하는 눈빛과 기색으로 무언의 저항을 하고 있어서 몇 마디 외엔 건넬 시도조차 해 보지 못했다. 그는 뭐랄까, 넋이 조금 나간 듯 보였다.

지난번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그는 누군가가 자신이 미처 선제 방어하지 못한 상황에서 몸을 건드리는 행위에 발작적으로 저항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그 기피가 단순한 거부 반응이 아니라 저변의 무거운 심리 상태를 깔고 있는 듯해서 계속 마음에 걸렸다.

“한 기장, 괜찮은 거야?”

“방금 목 졸린 건 넌데 왜 나한테 괜찮냐고 물어봐.”

태주가 허탈하게 대답했다.

“그러게. 목 졸린 건 난데 왜 내 눈에 그쪽이 더 안 괜찮아 보일까.”

“일단 집에 돌아가서, 네 목 주변 꼼꼼히 살펴보고 상처 생겼으면 말해. 아주 작아도 꼭 이야기해. 치료비 줄게. 간다.”

차영이 그를 붙들기도 전에, 태주가 제 할 말만 빠르게 마치곤 조수석의 문을 벌컥 열었다. 그가 땅에 발을 내디디면서 조금 전까지 덮고 있던 담요가 함께 떨어졌다.

“그거 한태주 씨가 지난번에 빌려준 거. 땅에 떨어졌네. 다시 세탁해서 줄게.”

“그냥 버려.”

“내가 다시 빨아다 주는 게 싫으면 직접 갖고 가. 나 그거 계속 갖고 있는 거 싫어.”

볼 때마다 자꾸 태주가 함께 생각났다. 그리고 차영은 그게 손톱 주변의 거스러미처럼 몹시 불편하고, 또 가끔은 그걸 뜯어낸 것처럼 아주 기분 나쁘게 따끔거렸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 마음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태주는 묵묵히 담요를 내려다보다가 그것을 주워 들었다. 그러고는 건물로 향하는 길에 있는 쓰레기통에 담요를 버려 버렸다. 그를 따라 내려서 함께 올라가려던 차영은 당황한 나머지 그대로 모든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근원 모를 허탈함을 느끼면서 운전대 위에 턱을 괸 채로 태주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너 대체 뭐가 문제야?”

그는 묘하게 모든 것이 비밀스럽다.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차영의 음성이 이미 공동 현관을 지나쳐 간 그에게 닿을 리가 없었다.

결국 태주는 끝내 차영을 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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