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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12화 (12/144)

12화

“뭐 솔직히 엄밀히 따지면 그렇긴 한데 오죽하면 사람들이 맞는 말 하는데도 욕하겠어? 그리고 그게 이차영 입에서 나올 소린 아니지?”

“내 입에서 나올 소리, 아닌 소리가 어디 있어. 이야기 들어 보니까 정비사가 조느라 뭐 떨어뜨려 놓고 그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면서. 그쪽이 프로 의식 없었던 것도 맞고, 무엇보다 몇 번 경고 줬는데도 같은 실수 반복한 거잖아. 그러다 진짜 하늘에서 사고 나.”

“에이, 비행기가 얼마나 안전한데. 사고 그렇게 쉽게 안 나. 한 기장 유난인 거 맞아.”

“아냐, 나더라.”

차영의 음성이 꽤나 쓸쓸했다. 동료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특별한 이유도 없이, 되게 쉽게 나더라고.”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다는 걸 인지한 차영이 어색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아니, 왜, 전 세계에 항공기 사건 사고 많잖아.”

사실 항공기 안전 문제에 관한 한, 차영은 언제나 극도로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한 치의 오류도,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아주 오래전부터 품고 있었다.

기체에서 지나가던 새가 털고 간 얇은 깃털 하나만 발견되어도 정비 팀에서는 쉽게 비상이 걸린다. 이는 단순히 깃털 하나가 아니었다. 새의 유체가 어디에 있을지도 알 수 없고, 그걸 모르고 지나갔을 시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었다. 하물며 금속 물질인 나사라니, 뭐가 어디에 더 있을지 알 수 없기에 비행을 앞둔 한태주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다만 말하는 방법이 잘못됐거나, 자세가 그다지 부드럽지 않았으리라. 듣는 사람을 기죽이는 낮은 목소리와 특유의 못된 말투로 퉁명스럽게 구는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아마 지극히 맞는 말을 하고도 그 때문에 점수를 죄다 깎아 먹었을 터다.

“한태주 편드네? 차영이 너 그 인간한테 무슨 꼴 당했는지 까맣게 잊었어?”

“편들긴 무슨 편을 들어. 그때도 우리 쪽에서 관제를 잘못한 건 맞잖아. 그날도 틀린 소린 없었어. 말투가 무례하고 재수 없어서 그랬지. 뭐, 우리도 한 소리 들은 대신 잘 넘겼고.”

관제탑의 직원들은 최대한 작은 소동으로 무마하려고 했지만, 사실 그날 10여 분간 조종석과 교신이 안 됐던 일은 항공사 측에서 따지고 넘어가자면 도저히 그냥 덮고 넘어가기 어려운 중대한 업무 실수였다. 그런데 한태주가 탑까지 올라와서 난리를 피워 준 덕분에 해당 직원은 시말서 한 장조차 쓰지 않고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다.

솔직히 차영은 그를 몇 차례 겪고 보니 왜 이렇게 공항이 떠들썩할 정도로 두루 욕을 먹는지 이해가 안 됐다. 물론 정비 팀 직원들이 기분 나쁠 수는 있겠지만 애초에 문제가 안 생겼으면 그도 그렇게 모질었을 필요가 없었던 일이다.

“너 이상하다?”

“뭐가 맞는지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다음에 같은 일 안 생기니까. 들을 땐 불쾌할 수 있어도 멀리 보면 그게 맞는다고 생각해. 결국 한태주 기장은 본인 할 일 한 거 아냐?”

“단순히 본인 할 일인데 공항이 이렇게 떠들썩해?”

“그건 단순히 한태주 욕하는 게 다들 재미있는 거잖아. 방금 전에도 식당 가니까 공항 직원들 다 그 이야기밖에 안 하던데 뭐. 정비 팀 직원들끼리 너무 예의가 없었다고 한 마디씩 하는 수준이 아니고 다 같이 달라붙어서 그러는 거, 어린 나이에 기장 단 거 부러워서 그러는 건데 거기에 우리까지 동참할 필요 없다고 봐.”

“밥 먹으면서 계속 네 앞에서 걔 욕한 나 들으라는 거지?”

“그냥 내 눈엔 흐름이 그렇다는 거야.”

“막상 본인은 욕먹는 거 개의치 않아 하는 거 같던데?”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발끈하려던 차영의 귓가에 아주 익숙한 단어가, 오감을 자극하는 음험한 목소리로 들렸다.

“관제.”

자칫하다 이 추운 날씨에 주차장에서 아무런 소득도 없는 소모적인 말다툼으로 번질 뻔한 상황에 시의적절한 맥 끊기였다. 차영은 어떤 형태든 다툼에는 익숙지 않았다. 제 문제도 아니고 남 일로 자꾸 화가 나려는 자신이 낯설던 차였다. 차영과 동료 직원이 자연스럽게 뒤쪽을 돌아보는데 두 팔로 차체를 지탱하고 그들 쪽을 주시하고 있는 남자가 한 사람 보였다.

“한태주 기장?”

예의 소문의 주인공이었다. 동료 직원이 여태까지 그의 험담을 한 죄를 인지하고 눈치를 살피다가, 이내 난감해하는 얼굴로 먼저 가겠다는 인사를 차영의 귓가에 속삭이듯이 건넸다. 그러고는 서둘러 제 차 쪽으로 모습을 감췄다. 차영은 동료의 차량이 주차장을 빠져나갈 때까지 담쟁이덩굴에 제 발목이 묶이기라도 한 양 같은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그 모습을 주시했다. 그러다 시야에서 차가 사라지자 용기를 내 태주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이 제게 닿는 자리마다 바늘에 찔리는 것처럼 따가웠다.

“한 기장 오늘 비행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기체는 떴다던데요.”

그가 선 자리로 천천히 다가서자 짓고 있는 표정이 더욱 선연하게 보였다. 나른한 눈동자가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한 번 차영을 한 번 바라보는 것으로 제 눈길을 공평하게 분배했을 때, 그와 몇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 다다랐다.

지척에서 보니 빈틈없는 악보처럼 제복을 갖춰 입은 완전한 모습이 왠지 낯설었다. 넓은 어깨 위의 견장은 오늘따라 꽤 무거워 보였다. 조금은 지친 듯 평소보다 안색이 창백해 꽤나 처연해 보였다. 편의점 앞에서 함께 술을 마셨을 때, 그가 묘하게 머리 위에 하늘을 얹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때와 비슷했다.

“제주라서, 오전에 갔다가 몇 시간 쉬고 바로 퀵턴 했어.”

“그래서 벌써 돌아온 거예요?”

“응, 좀 전에. 그러니까 난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로 하루 내내 욕을 먹은 셈이지.”

“내일도 먹을걸요?”

“상관없어. 관제탑까지 소문났으면 이미 뻔한 거 아냐.”

“나랑 동료 하는 얘기 다 들었어요?”

“청력이 워낙 좋아서.”

태주는 장난스럽게 넘기면서 픽 웃음을 터트렸다. 차영은 웃어지지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선 그의 차가운 말투에 상처 입은 피해자 중 한 사람인 자신이 이런 기분이 드는 게 우습지만, 태주가 좀 안쓰러웠다.

“웃기는.”

“울까, 그럼? 넌 지금 퇴근해?”

“네, 보시다시피.”

“그런데 관제, 우리 지난번에 집 앞에서 만났을 땐 호기롭게 말을 놓지 않았나?”

“그거야 거긴 사적인 장소고 여긴 엄연히 제 직장이니까 보는 눈도 있고…….”

“아, 우리 회사에선 내외하는 사이였어? 그게 더 간지럽고 웃긴 거 아냐? 상황극 찍어?”

기가 막힌 차영이 졌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일할 땐 지극히 제정신인 것 같은데, 오직 그 부분에서만 그렇고 그 외의 모든 상황에서 그는 비상식적이다. 진심으로 걱정한 자신이 이렇게 바보 같을 수가 없었다.

“관제, 우리 결혼할래? 사람들 앞에서 내 편 들어 준 사람 처음이야.”

순간 차영은 움찔했다. 괜히 심장이 가파르게 들썩거리는 기분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청혼을 받은 건 난생처음이다. 그러나 피차 남자끼리에, ‘술 취해서 키스’ 타령을 할 때처럼 그도 장난이라는 걸 알아서 이내 고개를 젓게 됐다.

“놀고 계시네요.”

“넌 이게 노는 걸로 보여? 나 아주 진지해.”

“부모님이 지어 준 이름 두고 관제라고 부르지 좀 마요. 기분 나빠요. 난 그렇다 치고 우리 부모님에 대한 예의까지 국 끓여 먹었어요?”

신경질적으로 흘겨보니, 그가 개의치 않아 하는 태도로 차체를 툭툭 쳤다. 그러고는 차영을 향해 더 가까이 오라는 양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당연히 그걸 본 차영의 두 다리는 조금도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뭐 해. 이리 안 오고.”

차영은 태주가 했던 손짓을 고스란히 흉내 냈다.

“내가 개새끼인 줄 알아요? 가정 교육을 어디로 받은 거예요?”

“어떻게 해야 나한테 오는데.”

그의 음성이 일순 땅끝까지 가라앉을 듯 푹 잠겼다. 차영은 착각인가 싶어 흘려 넘겼다.

“안 해도 어차피 가니까 그딴 거 하지 말라고요. 그쪽이 기대고 있는 차 내 차잖아.”

태주가 그제야 차체에 기댄 제 몸을 슬쩍 떼어 내고 두 팔을 들어 보였다. 뒤늦게 차영이 운전석으로 다가가서 문을 열려는데 어느 틈에 태주가 조수석에 제 한 몸을 태운 뒤였다. 팔만 차체에 걸친 채로 안을 들여다보니 카 시트까지 길게 눕혀 편안하게 자세를 고쳐 앉는 것이었다. 차영이 조금만 더 인내심이 없었다면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그의 몸 위에 부었을 것이다.

“안 내립니까?”

“카풀 하자.”

잇새를 짓이긴 차영이 자신도 차에 탔다. 문을 탁, 닫고 태주를 응시했다. 그 역시 살짝 몸을 모로 누인 채 팔을 괴고 자신을 마주 보았다. 누운 그를 보니 차영은 괜히 기분이 야릇했다.

자신은 그 때문에 시시때때로 심정적으로 크든 작든 영향을 받고 있는데, 그는 시종일관 상대의 기분 같은 건 아랑곳없이 제멋대로였다. 그래서 기분이 복잡했다. 가슴이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뛰면서도, 동시에 머리에는 분노로 열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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