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공항 정비소에 작업복을 입은 정비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왔다. 업무 때문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몇 분 전부터 일어나고 있는 때아닌 마찰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소란을 일으킨 사람은 같은 정비사들이 아니라 같은 한국 항공의 한태주 기장이었다. 그는 거대하고 육중한 항공기 날개 아래에 직원 한 사람을 세워 놓고 뭔가를 제 손에 내보이고 있었다. 그의 커다란 손바닥 위에 어른 손톱보다 조금 큰 나사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이거 내가 발견 못 했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날개랑 쉽게 눈이 안 가는 틈새 사이사이에 혹시라도 낀 물건 없는지 잘 확인하라고 분명히 말했죠. 프로 의식이 왜 이렇게 없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게…… 제가 어제 비상근무 때문에 오늘 깜빡 조느라.”
이 대답을 들은 태주는 미간을 구겼다.
“핑계도 어디서 제일 말 같지도 않은 걸 댑니까. 지금 본인 입으로 ‘저는 프로가 아닙니다’라고 광고한 꼴이라는 거 알긴 알아요? 이거 대체 어디서 굴러 나온 것 같습니까. 짐작 가는 데 있으면 다 말해 보세요. 이거 다 찾지 않으면 비행기는 이륙 못 합니다.”
“하지만…….”
“내가 안 띄운다고.”
“한 기장님.”
“누누이 말했죠. 비행기는 가장 안전한 상태여야 한다고요. 제발 나 정비고 내려와서 화내게 만들지 말아 달라고. 처음 인사할 때부터 간곡하게 부탁했잖아요. 잊었어요? 게다가 정비 팀 이런 문제 한두 번 아니죠. 내가 지난주에 명령서 내려왔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나흘 만에 똑같은 사고를 또 칩니까?”
이미 몇 번이고 기체의 안전에 관해 태주가 경고하듯 언급한 일이 있었고, 또 바로 며칠 전에도 비슷한 문제로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한국 항공 차원에서 정비 팀 측에 강력하게 시정 명령을 내렸던 터다. 한 번은 실수일지 모르지만 반복된다면 방치였다. 그래서 그는 이 상황을 더욱 참아 줄 수가 없었다.
“기장님, 나사 하나입니다. 다른 덴 없을지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네요.”
“네, 그렇습니다.”
직원이 고개를 푹 숙였다.
“다 찾으세요. 개수 확인해서 보고하시고요.”
“우선 다시 꼼꼼하게 기체 외부 점검과 분실된 나사들이 더 있는지 개수 점검을 해 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륙 예정 시간까지 끝낼 수 있습니까?”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조금만 출발을 지연하겠다고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가 대답 대신 흥미 본위로 구경을 하는 건지 걱정스러워서 상황을 가늠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다른 정비사들을 향해 힐끗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태주의 냉랭한 시선을 받고 움찔했다. 뭔가 자신들에게도 파편이 튀어 오르듯 불똥이 튈까 염려하는 기색들이 역력했다. 태주는 인상을 찌푸린 채로 정비 팀장에게 손짓했다. 결국 정비 팀장이 난감해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가 두 사람 사이로 다가왔다.
“이 사람 팀장님 부하 직원 아닙니까. 책임지시고 여기 인력 다 때려 박아서 정시 출발 가능하게 만들어요.”
“저, 한 기장님. 저희 직원들은 다 맡은 바 임무가 있어서. 최선은 다하겠지만…….”
“안 그러면 정식으로 정비 팀 전체를 탄원하는 공문을 올리겠습니다. 이거 이대로 비행기 날았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수백 명 목숨이 위험한데, 팀에서 책임질 수 있어요? 나사 하나, 드라이버 하나. 간과하다 주행 중에 사고 납니다. 일 터진 뒤에 후회하지 말고 미리 직원 교육 똑바로 하시는 게 낫지 않아요?”
“그러니까 시간을 좀 벌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내가 왜 하지도 않은 실수로 양해를 구하고 사과를 해야 하지?”
“…….”
“시간 내에 해결하세요.”
나사를 팀장의 어깨에 휙 던진 태주가 직원들 전체를 돌아섰다. 실수를 한 정비사가 무척 난처해하면서 떨어진 나사를 줍는 모습이 보였다. 걸어가는 그의 뒤통수에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꽂혀 들었으나, 그는 돌아보지 않고 뚜벅뚜벅 걸었다.
* * *
언제나의 아침처럼 관제탑 너머 공항 활주로는 분주하게 돌아갔다.
한 시간에 수십 대의 비행기들이 한국을 떠나기 위해 이륙하고, 또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 설레는 마음을 품고 착륙한다. 그들을 최대한 일사불란하게 오고 가도록 만들기 위해서 탑의 직원들은 쉼 없이 열심히 일했다.
항공기에 탑승하고 있는 승객들은 종종 자신들이 탄 비행기가 왜 이렇게 느리게 이륙하는지 기장들이 제대로 일을 하긴 하는 건지 불만을 갖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관제탑에서도 조종실에서도 너 나 할 것 없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는 타워, 에어프랑스 267. 34번 우측 활주로로 이동해 주십시오.」
- 「에어프랑스 267. 34번 우측 활주로로 이동하겠습니다.」
「이동 후 34번 우측 활주로로의 이륙을 허가합니다.」
- 「34번 우측 활주로로 이륙합니다.」
「저녁 하늘이 맑네요. 좋은 비행 되시길 바랍니다.」
혼잣말하듯, 대화하듯 나지막하게 마지막 인사를 내뱉은 차영은 평평한 활주로 위에서 바퀴를 굴려 매끄럽게 떠오르는 비행기를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차츰 멀어지는 모습을 보고 겨우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이때가 가장 뿌듯하고, 또 허무했다. 수백 명의 승객들은 자신의 안전한 관제에 따라 멀리 떠나갈 자유를 부여받지만, 정작 자신은 여기 이 탑 안에 오래전부터 갇힌 것처럼 외로이 남아 있게 되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말이다.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껴 보고 싶었다. 그러나 겁이 났다. 마치 아버지처럼 뭔가 문제가 생겨 외진 곳에 추락하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은 막연한 공포가 늘 욕망을 짓눌렀다.
“차영아, 나 왔어. 수고했다.”
“아, 선배 오셨어요. 수고는요.”
보물 상자처럼 쥐고 있던 장비를 내려놓은 차영이 제 어깨를 툭툭 치는 선배에게 묵례했다. 시간을 보니 교대해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았다. 마침 다른 직원들 몇몇이 뒤이어 들어왔다. 그들이 교대를 해 주면서 기상 상황이나 비행 정보에 관한 브리핑도 할 겸 하루의 인수인계차 두런두런 대화하는 소리가 차영의 귓전에 맴돌았다.
“나 올라오는 길에 에어사이드에 잠깐 누구 만나러 갔다가 들었는데, 오늘 아침에 한태주 기장 또 개지랄 났단다.”
“또 왜요? 어디에서? 아까 비행기 뜬 거 같긴 했는데. 무슨 일 있었나?”
“걔 왜, 비행 전에 정비소나 주기장 같은 데 가서 미리 기체 확인하는 습관 있댔잖아. 그런데 오늘은 거기에서 굴러다니는 나사를 발견한 거야.”
“어머, 어떡해. 나사는 왜요? 그런 거 하나 발견되면 비행기 바로 못 뜨지 않아요?”
“뭐 정비하다가 좀 졸았나 보지? 어떻게 사람이 완벽해. 그럴 수도 있지. 하여튼 나사 손톱만 한 거 하나 발견됐다고 정비 팀장을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쥐 잡듯이 잡더래. 팀원 간수 제대로 안 하느냐 이거지. 본인이 왕이야, 아주.”
“하루걸러 한 번이네요.”
“비행마다 하나씩 말썽 만들기.”
장비들을 챙기면서 그들이 웃었다. 안 그래도 몇 주 전 태주가 관제탑에 올라왔던 일 때문에 직원들 사이에서는 두고두고 안주처럼 별거 아닌 일로도 씹히고 있던 터였다. 그걸 의식해서인지 자기들끼리 하는 이야기였지만 이 안에 있는 사람들 다 들으라는 듯 목소리는 선명했다. 미끼가 하나 생기니 덥석 물어 험담하는 모양새가 퍽 재미있어 보였다.
그들은 탑장이 쓸데없는 소린 관두고 할 일이나 하라는 듯이 손짓하며 주의를 주자, 그제야 머쓱하게 자리로 돌아갔다. 우두커니 서서 그걸 듣고 있던 차영의 등을 동료 직원이 가볍게 쳤다.
“차영 씨 안 내려가? 우린 가자.”
“난 캐비닛 가서 겉옷 챙겨 나와야 돼. 먼저 가.”
“기다릴게. 자취인들끼리 의기투합해서 공항에서 저녁이나 먹고 가자고.”
차영은 알겠다는 양 어설프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동료의 팔을 슬쩍 잡고 물었다.
“그런데 한국 항공 지난주에도 비슷한 일 있지 않았어? 몬트리올 가는 거던가?”
“그랬나? 맞다. 그랬던 것 같다.”
동료가 고개를 갸웃하며 대수롭지 않게 응답했다. 차영은 혼잣말하듯 대꾸했다.
“그럼 화낼 만한 것 같은데.”
무심코 태주의 굳은 얼굴을 떠올리던 그는 휴대폰을 챙겨 들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 * *
찬 바람이 뺨을 엘 것 같았다. 올겨울의 날씨는 널을 뛰었다. 꼭 가을이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퍽 훈훈한 공기를 자랑하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머리털이 쭈뼛 서고 등골이 다 서늘할 정도로 쌀쌀한 날씨가 이어졌다. 오늘 공기는 후자의 경우로, 무척 찼다.
터미널 방향에서 공항 상주 직원용 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걷는 동안 냉기를 견디기가 힘들어서, 차영과 동료 직원은 각자의 손에 따뜻한 차 한 잔씩을 사서 쥐었다. 마시려는 의도라기보다는 온기를 느끼기 위해서였다.
“한태주도 성격 좀 고쳐야 돼.”
탑에서 내려오기 전에 들었던 이야기 때문인지 오늘 저녁 식사의 주요 반찬은 한태주였다. 심지어 식사 끝난 후에도 이어졌다. 차영이 조용히 듣는 데만 주력하며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불성실한 태도로 대화에 임하자 그는 더 열변을 토했다. 차영은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땅만 보고 걸었다.
“자기가 아무리 기장이라도 그렇지. 한국 항공 정비 팀장 짬밥이 얼만데 사람들 보는 데서 그래? 팀장님도 연봉 기장에 준할 만큼은 받지 않나? 그러다 사달 날걸.”
“하지만 한태주가 틀린 소리 한 건 없잖아.”
스마트키로 차 문을 연 차영이 제 차 쪽으로 가다 말고 주차장 한가운데에서 불현듯 우뚝 멈춰 섰다. 그의 갑작스러운 대답이 자신이 원했던 방향의 답은 아니었던지 동료 직원도 함께 발걸음을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