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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7화 (7/144)

7화

한국 항공 연수원 인근에는 ‘시뮬레이터’라고 불리는 모의 항공 실험 장치가 구비되어 있었다. 이 장치의 내부는 규모만 작을 뿐 실제 비행기의 조종석과 거의 일치했다.

바로 이곳에서 모든 기장과 부기장들은 주기적으로 실제 비행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곤란한 상황들의 위기 대처 능력 따위를 테스트한다. 여기에서 합격해야만 계속 조종간을 잡을 수가 있었다. 그러지 못하면 자격을 박탈당할 수도 있어서 대부분 상당한 부담을 가지고 임했다.

현재 조종석에는 태주가, 그의 옆에는 평소 태주를 잘 따르는 부기장 선재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 깐깐한 표정을 한 검사 교관이 두 사람의 행동을 눈여겨보았다.

교관들이 설정해 둔 위치는 다롄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바다 한가운데였다.

급작스럽게 장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꼭 탄성이 좋은 그물 위에서 통통 튀는 것처럼 조종석이 들썩들썩했다. 운항 중 레이더에 극심한 적란운이 감지되어 결국 기체와 만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엔진이 여분까지 전부 고장이 나 곤란한 상황에 직면했다.

“설정이 이게 뭐야. 영화를 너무 봤네.”

기체 안에서는 도저히 헤아릴 수도 없는 수많은 위기 상황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이미 존재하는 매뉴얼부터 예기치 못한 변수에 이르기까지 당장 말하라고 해도 수백 가지는 대는 게 가능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어떤 식으로 발버둥을 쳐도 반드시 승객이 죽어 나가야만 하는 잔혹한 테스트여야 했던 건지 그의 상식으론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예? 선배님…… 뒤에 교관님이…….”

선재가 뒤쪽에 버티고 있는 교관의 눈치를 살피며 태주를 힐끗댔다. 그러나 태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만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이 상황을 가장 현명한 방식으로 타개해야 할 임무는 제게 주어졌고 이를 수행해야 시험 통과였다.

교관으로부터 제시된 조건에 의하면 이 아래에는 망망대해가 있었다. 전방은 대기에 먼지가 뒤섞인 듯 아득했다.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산자락이 좌우로 흔들리는 듯했고, 마치 강력한 태풍이 그들을 태운 항공기를 품에 감싸 안듯 쥐고 미친 듯이 흔드는 느낌마저 들었다. 모든 것이 아찔했다.

“젠장.”

잇새를 짓이긴 그는 요란하게 흔들리는 기체 안에서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숨을 삼켰다.

“회항할 수 있나?”

태주가 묻자 어깨를 굳히고 있던 선재가 꼿꼿하게 앉더니 요령껏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혀…… 현 위치에선 불가능합니다.”

“다롄 공항 활주로까지는.”

“역시 지금 엔진 상태로는 무리입니다. 비상 상황 선포하시겠습니까?”

“선포해. 바다에 비상 착륙하겠다.”

“바, 바다예요? 우리 다 죽어요!”

“어차피 뭘 해도 죽어.”

“헉, 이거 그런 거였어요?”

황망해하는 선재의 음성이 태주의 귓전을 스쳤다.

비틀거리는 칵핏 안에서 조종간을 쥔 두 사람은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털털거리는 소리가 귓전에 극대화될수록 위기의식은 고조됐다. 아울러 계기판이 요사스러운 붉은색으로 점등과 소등을 반복하며 위험한 상황을 도래했음을 끊임없이 알렸다. 처음엔 야무지게 자세를 고정하고 있던 선재는 이내 불안해하는 눈빛을 태주에게 간절히 날려 보냈다.

“선배, 이제 어떡해요.”

태주는 침착하게 좌우 날개의 도움 날개를 조절해 비행기의 기울기를 조정했다.

“객실에 벨트 착용 사인이나 해. 승무원들한테 구명조끼 활용 방법 시범 보이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인근 타워랑 교신은 내가 할게. 운 좋으면 누군간 살겠지.”

덜덜 손을 떨던 선재가 객실에 긴급 상황임을 알리기 위해 인터폰으로 연락을 취하는 사이, 태주는 가장 착륙하기 안전한 장소와 구명보트를 수배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관제탑과 교신을 시도했다. 해당 고도를 유지해도 될지 따위의 문의 사항을 전달하고, 조종석 측과 연락을 계속 취해 달라는 요구까지 마친 그는 긴장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던지 입술을 살짝 감쳐물었다.

“랜딩 기어 다운.”

“체크. 어어…… 플랩 펼치겠습니다! 플랩 더 내리겠습니다!”

“이 새끼야, 정신 안 차려?”

수선을 피우는 선재를 힐난한 그는 전방을 힐끗 살폈다. 덜컹거리던 기체가 갑자기 모든 동력을 잃고 나가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영부영하는 사이 완전히 엔진들이 정지한 것 같았다. 조종간의 두 사람은 심각한 얼굴로 레버를 단단히 쥐었다.

비행기는 엔진을 중심축으로 해 움직인다. 그게 모두 망가진 이상 최대한 예쁜 모양으로 안전하게 잘 떨어져서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는 수가 최선이었다.

태주는 그걸 인지한 순간 침을 꿀꺽 삼켰다. 아주 오래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누군가를 떠올리게 됐다.

그들은 죽기 직전의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태주가 찰나간의 상념에 젖어 있는 사이, 이윽고 어딘가로 지체 없이 추락하는 듯한 실감 나는 느낌이 이어졌다.

“우리 기체 떨어지는 거예요? 선배!”

“윽……!”

“서, 선배. 기장님, 기장님!”

퍼억! 그들이 어딘가에 제 몸이 부딪치는 것 같다고 생각할 때쯤, 동시에 조종석의 비상등이 번쩍 켜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태풍에 이리저리 휘말리고 있는 듯하던 칵핏 내부가 떨림을 멈추고 안정을 되찾았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양 사방이 고요했다.

삽시간에 환해진 주변을 둘러보며 선재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태주도 겨우 등을 기대고 편안한 한숨을 쉬었다.

“하, 씨발…… 별 좆같은.”

모의시험이 모두 끝난 것이다.

“2박 3일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한 기장님, 홍 기장님.”

“이렇게 끝입니까?”

“그렇습니다. 결과는 추후에 알려 드릴 예정입니다.”

“이거 영화 「설리」 오마주죠? 그런데 영화 주인공은 기적적으로 살았고, 우린 죽었네요. 승객들도 다 죽이고.”

미간을 좁힌 태주가 고개를 뒤로 젖혀 교관을 쳐다보았다. 밖으로 나가려던 교관은 그의 물음에 마음대로 생각하라는 양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기내에 태주와 선재, 두 사람만 남겨지자 그제야 선재가 궁싯댔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이거 영화 내용이랑 비슷한 상황이었어요?”

“너도 고생했다.”

“설마 우리 진짜로 죽은 거예요?”

“착륙은 잘했어. 이게 최선이었어. 목숨이야 수영 잘하면 살겠지.”

“와, 뭐 이런……. 살려고 모의시험도 하는 거 아닙니까? 죽게 두냐. 저 교관 뭐예요?”

이게 실제 상황이었다면 양 국가 해상 경찰들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구명보트 따위로 그들을 구명하고자 한들 승객들과 승무원들 대다수가 십중팔구 목숨을 잃을 터다. 태주는 굳이 죽게 만드는 건 좀 고약한 시험이라고 다시금 생각했다.

“그러게.”

“선배 겨우 2년 차 접어드셨는데 정말 회사 전방위에서 미움받으시네요.”

픽 웃음을 터트린 그는 지금 이 순간 문득 떠오르는 어떤 단정한 얼굴을 지우개로 훔치듯 머릿속에서 슥슥 지웠다.

* * *

기진맥진한 태주는 집 근처 편의점에 차를 세웠다. 피곤이 쌓여 있는 상태에서는 평소보다 적은 양의 알코올로도 금세 뻗을 수 있기 마련이다. 캔 맥주라도 살까 싶어 어설프게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는데, 가게 건물 구석쯤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강아지가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힐끗 쳐다보니 강아지와 놀아 주고 있는 인영도 함께 드러났다.

“관제?”

힐끗 돌아보는 모양새가 낯이 익었다. 차영이었다. 표본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집 근처에서 마주쳤을 땐 대부분 차영이 먼저 알은척을 하고, 태주가 무시했다. 그러나 오늘은 정반대였다. 차영은 웬일로 인사조차 하지 않고 강아지의 북슬북슬한 털만 만지느라 바빴다.

“뭐 합니까? 여기서. 퇴근한 거예요?”

결국 이번엔 태주가 먼저 알은체를 했다. 차영은 쳐다봐 주지 않았다. 다만 나른한 그의 음성이 들려온 순간부터 둥그런 귓바퀴가 서서히 붉어졌다.

“대체 존대했다, 반말했다. 갈피를 못 잡게. 헷갈리니까 하나만 하지 그래요.”

“놓으라는 거지?”

“제가 언제…….”

“하나만 하라며. 너 말 놓으라는 말을 이상하게 한다?”

차영은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면 보통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실수했다고 사과를 하죠. 저도 그걸 바란 거고요. 학교 다니면서 사회성 같은 건 전혀 안 배웠나 봐요?”

“난 보통이 아닌가 보지.”

“네, 그렇게 보여요. 성질머리가 남다르시지.”

“사람 면전에 대고 그런 소릴 하는 넌 대단히 착해? 여기서 뭐 하냐니까.”

시야 왼편에는 제 옆에 선 태주의 긴 다리가 있었다. 그걸 타고 시선을 쭉 들어 올린 차영이 그와 눈이 마주치자 한숨을 폭 내쉬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한태주의 얼굴을 볼 때마다 비현실적으로 잘나서 마법에 홀리는 기분이다.

“보면 몰라? 강아지 밥 주잖아.”

차영의 가차 없는 하대를 듣고 태주가 흥미로워하는 표정으로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으나, 거기까지였다. 의외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듯했다.

“그러니까 걔가 그렇게 살찌지. 난 대체 누구 짓인가 했네.”

“본인 개도 아니면서……. 남이야. 거슬리면 무시하고 가.”

“네가 아니라 편의점에 용건 있어서 온 거야.”

“그러면 볼일이나 보고 가. 가능하면 마주치지 말자며. 그쪽이 면장 찾아 준 나한테 한 말이거든? 괜히 용건도 없는 나한테 시비 걸지 말고 가.”

“싫어. 안 가.”

동시에 삑, 하고 스마트키로 차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태주가 차영더러 들으란 듯이 일부러 한 행동인 것 같았다.

불편한 사람이 피하면 될 걸 굳이 가던 길 멈춰서 말을 거는 용의를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아예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려는 듯 차의 문까지 잠그는 통에, 차영의 고개가 신호음이 들리는 편으로 절로 돌아갔다. 그 순간, 눈에 쨍한 파란색 스포츠카 한 대가 떡하니 들어왔다.

“싫긴 뭐가……. 와, 원래 차를 저렇게 화려한 걸 타?”

차를 한 번, 옆의 태주를 한 번 힐끗거린 차영은 질문을 해 놓고 스스로 납득한 듯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저렇게 눈에 띄는 차는 한태주 정도는 돼야 탈 자격이 있는 것 같았다.

“그날그날 내키는 거 번갈아 타.”

그의 대답을 듣고 불현듯 지갑을 찾아 주었던 이튿날의 일이 떠올랐다.

“차가 여러 대구나. 그럼 지난번에 탄 그 차는 뭔데?”

“지난번?”

“왜 있잖아. 대통령이 의전용 차로 탈 것 같은 되게 크고 천장 높고, 차 문 두껍고…….”

무슨 말을 하는지 귀 기울여 듣던 태주가 자세를 고쳐 섰다. 질문의 의미를 파악한 것이다.

“아, 그거. 그게 보였어? 네 차 골목 어귀 빠져나갈 때쯤 차 탔는데.”

“관제사들은 미세한 거 하나하나 다 잘 봐야 돼.”

“이차영 관제사 일을 아주 세심하게 잘하는 분이었구나.”

“비꼴 거면 가. 여기가 무슨 성격 더러운 거 티 내기 대회장인 줄 알아?”

“너 그날 차에서 나 어디로 사라지는지 계속 보고 있었어? 생각보다 집요하네.”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 순간 움찔한 차영이 난처해하는 기색으로 숨을 삼켰다. 가뜩이나 한태주는 자신이 본인에게 관심 있는 것 같다고 착각하는 것 같은데. 변명하기도 구차해서 차영은 일어나지도 못한 채로 계속 강아지의 목을 가볍게 긁어 댔다.

“운전하면서 우연히 본 거야. 당연히 후방을 확인해야지.”

사실 그날 자신이 계속 그를 의식하고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고 있었다는 건 지금에서야 깨닫게 됐다. 그리고 그걸 인정하는 건 꽤 당혹스러운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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