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공항 관제탑 유리 벽으로 희뿌연 하늘과 드넓은 활주로가 바로 보였다.
강력하고 튼튼한 날개를 양옆에 달고 있는 거대한 금속 물체들이 그 위에서 느릿하고 여유롭게 움직였다. 그러나 멀리에서 그렇게 보일 뿐, 실제로 기체는 내부에 수십 수백 명의 승객을 품은 채로 바람의 저항과 싸워 가며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일 것이다. 곧 저 비행기들은 싸워서 이긴 끝에 서서히 떠올라 어두운 하늘에 잡아먹히듯 빨려 들어갈 터다. 그때부터는 그 어떤 안전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건 저 육중한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하는 동안 혼자 외롭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도와주는 야경꾼들이 활주로와 청사 내부, 그리고 이곳 관제탑에도 다수 포진되어 있었다.
모니터를 보면서 공항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기체들의 개수를 파악하던 관제사 한 사람도 그중 하나였다. 적당한 키에 깔끔하고 단아한 이목구비를 가진 남자였다. 명찰에 ‘이차영’이라고 적혀 있었다.
“일 이딴 식으로 할 거냐? 너 대신 욕이란 욕은 다 얻어먹은 이차영이는 뭔 죄야?”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몇몇 관제사들이 아직 착륙하지 못한 항공기들을 관제하는 사이, 탑장이 신입 관제사 한 사람을 매섭게 꾸짖었다. 그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려 퍼졌다.
관제탑 상층부 원형의 사무실 책상은 각종 관제 장비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다만 야간에는 주간에 비해 비행을 하는 항공기가 훨씬 적어서, 늦은 시간에는 이들의 동선을 지시해 줄 관제사들의 숫자도 자연스럽게 함께 줄어들었다. 그 때문에 지금은 기기들을 제어해 줄 사람들이 군데군데 비어 있는 상태인지라 지척에서 무슨 소란이 나면 고스란히 귀에 꽂혀 들려왔던 것이다. 힐끗 제 뒤쪽을 확인한 차영이 듣고도 모른 척할 수가 없어 마지못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탑장님, 그만하세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요.”
일이란 혼나면서 배우는 것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도 그렇게 연차를 쌓아 왔던 터라 웬만하면 이런 일에 관여하지 않는 그였으나, 이번 일만큼은 자신도 연관되어 있어 여러모로 어쩔 수가 없었다.
조금 전 공항의 활주로에서 착륙하던 외항사의 기체 한 대가 말썽을 일으켰다. 신입 관제사는 처음 겪어 보는 일이라 당황한 나머지 다른 기체들의 무선 교신을 전부 무시하고 해당 항공기 한 대에만 몇 분여간 매달려 있었던 일이 발생했다. 당연하게도 뒤따라 도착한 기체들의 동선은 전부 꼬였고, 열 대 가까이가 오밤중에 상공에서 공항 인근을 맴돌게 만들었던 터였다.
이 일을 수습한 게 비상근무를 끝내고 교대할 직원에게 인수인계까지 막 마친 차영이었다. 항의하는 사람들에게는 천편일률적으로 날씨 핑계를 댔지만 실상은 관제사의 미숙함에서 기인한 명백한 실수가 맞았다. 뒤늦게 연락을 받고 황급히 나타난 탑장이 이 일로 신입을 혼내고 있는 중이었다.
“차영이 너 비상근무 안 했으면 어떡할 뻔했냐.”
“다행히 했으니까 됐네요.”
“한국 항공에서 유독 뭐라고 하는 거 같던데?”
‘한국 항공’이라는 단어가 귓전에 스치자, 차영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차영이 너 표정이 왜 그래. 혹시 뭐 험한 소리 들은 거야? 내가 따져 줘?”
물론 다소 귀에 담기 험한 말을 들은 건 맞지만 차영이 멈칫한 건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말투나 태도의 무례함과 별개로 아까 교신한 기장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무척 뇌리에 깊이 남았다. 살면서 들어 봤던 음성 중 가장 인상적이라 타인에게 지극히 무관심한 차영조차 그의 얼굴이 궁금할 정도였다.
“그런 거 아니에요. 전 괜찮습니다. 기체도 무사히 착륙했고요.”
밤에는 모두가 낮보다 훨씬 민감해진다. 어두움은 담대한 사람도 약간의 용기를 잃게 만드는 못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공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경우 예기치 않은 불씨가 대형 인명 사고로도 이어질 수도 있어 특히 심했다. 항공사들의 반발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 수습한 이차영이 됐다고 하니 이쯤 하는 게 맞겠지. 아무튼 신입은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당분간 야간 관제에 계속 참석해. 선배들 문제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하는지 보라고. 다시 수습으로 보내 버리려다가 너도 놀랐을 것 같아서 이 정도로 끝내는 거다. 이만 가 봐들.”
탑장이 두 사람 모두 이만 할 일 하라는 듯 손짓했다. 당혹스러운 기색을 여전히 감추지 못하고 있는 신입이 재빠르게 제자리로 가 다시 관제 업무를 시작했다. 차영이 탑장에게 꾸벅 인사하고 이번에야말로 진짜 퇴근을 하려는데 누군가 문을 박차고 탑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방문자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도 그냥 지나쳐 갔을 것이다. 다만 이 불청객에게는 한 가지 특이 사항이 있었다. 모서리마다 각이 잡힌 한국 항공 기장의 제복을 입고 있다는 점이었다.
남자는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희고 깨끗한 피부 위에 짙은 눈썹과 날렵한 턱선이 눈길을 끌었다. 두툼한 천으로 뒤덮여 있는 길고 늘씬한 체구는 균형이 잘 잡혀 있어 나무랄 곳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큰 그의 압도적인 존재감 때문에 탑 안의 모든 시선이 침입자에게 쏠렸다. 창백한 얼굴 위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눈동자가 제게 눈길을 준 모두를 탐색하듯 쭉 둘러보았다. 표정이 굳어 있어서인지 묘한 한기마저 느껴졌다.
물론 이 한국 항공의 기장은 매우 눈에 띄는 미남이긴 했다. 하지만 단순히 거기까지였다면 차영도 약간의 흥미만 돋웠을 뿐 이렇게까지 가슴이 철렁하진 않았을 것이다.
“한국 항공 한태주 기장입니다. 방금 해당 항공 342기 조종간 잡았습니다. 약 20여 분 전에 저와 교신한 관제사?”
그 남자다.
이렇게 빨리 실물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차영은 몰래 침을 꿀꺽 삼켰다. 실제로 들은 음성은 교신할 때에 비해 몹시 에로틱해서 당황스러웠다. 무엇보다 본인의 목소리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수려한 외양을 지니고 있어서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 한태주 기장님. 그런데 갑자기 오셔서 그건 왜 물으시는지…….”
탑장이 난감한 사태가 벌어질 것을 예감하기라도 한 듯 먼저 나서려고 하자, 긴장한 채로 침묵하고 있던 차영이 한발 앞서 그의 앞을 막아섰다.
“접니다.”
무슨 일이냐는 듯 모습을 드러낸 그를 발견한 태주가 아주 유심히 그리고 꼼꼼하게 차영의 얼굴을 살폈다. 금세 차영을 주시하는 태주의 눈빛이 쉽게 형용하기 어려운 복잡한 색채를 머금었다. 시선을 교환한 그들은 잠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꽤 오묘한 기류의 침묵이 흘렀다.
“뭐 다른 용건 없으시면 제가 용무를 좀 봐도 될까요. 퇴근하던 길인데요.”
상대의 눈길을 받아 내고 있는 차영은 온몸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계속 날카로운 눈매의 그를 마주 보고 있자니 목구멍이 바싹 마르는 듯한 갈증마저 일었다. 대체로 선량한 선택을 하는 편이라 사람을 응시할 때 이렇게 초조했던 적이 손에 꼽는데 지금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도망치려 계제를 찾고자 했으나, 눈앞의 한태주는 그걸 용납하려 들지 않았다.
“관등 성명은?”
그가 오만한 어조로 다짜고짜 본인 소개를 종용하는 통에 차영은 좀 어이가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 남자는 유려한 외모와 근사한 음성, 좋은 직업 따위의 매력적인 외부 조건을 관료적인 말투로 전부 깎아 먹지 않을까 싶었다.
“기장님이 제 상사십니까?”
“이름이 뭐냐고.”
“이차영 관제사입니다.”
“이차영 관제사. 돈을 받았으면 일을 제대로 해야 되는 거 아닌가?”
“관제사들은 항공사 소속도 아니고 인천 공항 소속도 아니고 나랏밥 먹는 공무원들인데, 왜 기장님이 국가 예산을 신경 쓰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거기까지 들은 태주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차영 관제사,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입니다.”
“그 부분은 사유 설명드린 걸로 아는데요. 앞의 항공기 때문에 활주로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저희는 우선순위에 따라 적합한 관제를 한 거고.”
“나 아직 말 안 끝났는데.”
공평하게 한 번씩 상대의 말문을 강제로 끊은 두 사람은 잠시 말을 아꼈다. 차영이 계속해 보라는 양 침착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아주 찰나일지언정 그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자 하는 마음도 조금쯤은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긴장돼서 이 순간을 면피하고 싶은 마음이 끊임없이 일었다.
태주는 그 모습을 똑똑히 제 눈으로 지켜보며 용건을 이어 갔다.
“하늘에서의 1분은 지상의 한 시간보다도 체감상 훨씬 긴 시간입니다. 아무리 아마추어라도 그렇지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무슨 깡으로 승객이 300명 넘게 타 있는 비행기를 10분이나 관제도 없이 허공에서 빙빙 돌게 한 겁니까. 제정신이에요? 연료라도 부족했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문제 생겨서 사람이라도 다쳤으면 이차영 관제사, 그쪽이 책임질 건가?”
사람들은 조종석에 앉으면 광활한 하늘이 전부 보일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이는 실제와 달랐다. 시야는 정확히 정면의 극히 일부만 확보가 가능했다.
그들이 날고 있는 하늘도 제대로 볼 수가 없는데 하물며 다른 기체에서 바퀴가 안 빠지는지, 엔진에 문제가 있어 흔들리는지, 혹은 활주로에서 새가 몇 마리나 죽어서 이리저리 치여 다니는지 따위는 까맣게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조종사들은 좁은 공간에 앉아 관제탑의 지시만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아까 전 관제탑과 계속 소통이 잘 되지 않던 잡음 섞인 10여 분은 아주 능숙한 조종사인 태주로서도 꽤 난감했다.
“우리 쪽에서 사소한 실수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사소한 실수? 넌 이게 사소한 실수 같아?”
“그런데 아까부터 왜 자꾸 은근하게 반말이십니까? 저 아세요?”
“넌 알아야 반말해? 난 몰라도 해. 상대가 마음에 안 들 때, 무시하고 싶을 때, 열받아서 화내고 싶을 때! 내 손에 사람 목숨이 달려 있다는 게 어떤 건지, 너 진짜 몰라? 그렇게 책임감이 없어? 그럼 때려치워.”
“싸가지.”
“뭐?”
“너 개싸가지로 공항 전역에 정평 나 있어. 알기나 해?”
“그딴 걸 내가 알아야 돼?”
태주가 한 걸음 다가섰다. 어떤 추가 행동 없이 그저 둘 사이의 거리를 조금 좁힌 것뿐이었으나, 워낙 키가 크고 쌀쌀맞은 인상이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정작 차영은 두렵기는커녕 자신을 겨냥한 남자의 눈동자 안에 미묘한 우울과 슬픔이 느껴져서 난감했다.
아니, 왜 저렇게 심란하게 쳐다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