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어플-293화 (293/303)

EP.293 293화 - 라스베가스와 7P 섹스나이트(5)

“오, 공항이 꽤 넓어 보이네.”

“진짜. 와아, 여기가 라스베가스?”

12시간이 넘는 비행이 끝이 났다.

스트레칭을 한번 시원하게 하고 다 같이 비행기에서 내려 게이트를 걷자, 예화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뭔가 공항인데도 벌써 외국이라는 느낌이 딱 든다아.”

그녀의 눈빛은 초롱초롱했다. 예화답지 않은 굉장히 순진무구한 표정. 나는 귀엽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일본 갔을 때는 우리나라랑 막 완전 다르다는 느낌은 안 들었었는데.”

“응응.”

예화가 곧바로 답했고, 나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해외여행은 별로 안 다녔다고 했는데. 그럼 미국은 처음인가?”

예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완전 처음. 애초에 해외는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일본이랑~ 캄보디아 갔다 오고, 또 부모님이랑 중국 한 번 들려본 게 끝이라서. 아! 우리 같이 간 건 빼고.”

“캄보디아? 와, 수학여행을 캄보디아로 가?”

“그치, 특이하지? 흐히. 그땐 가서 더워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 수정이랑 같은 조 됐었는데, 서로 부채질만 해주고 끝났어.”

꺄르르 웃는 예화를 바라보며 나도 같이 웃었다.

수정이랑 예화는 같은 여고를 나왔으니까, 둘의 수학여행은 추억이 매우 비슷할 것이다. 나중에 수정이한테도 어땠냐고 물어봐야지.

막 코끼리 같은 것도 타고 그랬을까?

간지나잖아?

나도 한번 가보고 싶네.

“리아는 어때, 좀 외국이라는 느낌이 들어?”

“네에. 뭔가 공기부터 다른 것 같아요.”

리아가 내 손을 붙잡은 채로 긍정했다. 예화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진짜. 근데 여긴 길거리 돌아다니다 보면, 막 대마초 냄새도 막 풍기고 그런다는데.”

“아, 맞아맞아. 나도 그거 읽었어.”

여행 가기 전에 여행지에 대한 간단한 정보조사는 필수였다.

라스베가스가 속해 있는 네바다주는 기호용 대마초가 합법이라서, 막 거리에서도 사람들이 푹푹 피고 그런다고 한다.

그래도 뭐, 조금 정도 냄새만 맡는 건 상관없겠지?

생각해보니 내 히로인들 중에는 담배 피우는 히로인이 한 명도 없었다.

은주나 하린이도 담배는 안 피우고.

나중에 담배 피우는 히로인을 추가하게 되면 어떡하지. 히로인 어플에서 금연 관련된 아이템이라도 찾아서 권해야 하나.

공항을 걸어 나가며,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초롱초롱-

예화는 여전히 흥미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고, 리아는 예화보다는 차분한 표정이었다.

이미 나랑 수정이랑 한번 같이 미국에 와봐서 그런가. 그래도 그녀의 얼굴에도 들뜬 기색이 꽤 어려 있었다.

“일단, 호텔로 가서 체크인하고 룸서비스로 저녁 먹은 다음, 오늘은 좀 쉬자.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까. 음...... 그래도 바로 들어가기는 아쉬우면 공항이라도 좀 돌아다녀 볼까? 아니면, 그냥 곧바로 호텔에 들어가서 쉴까?”

같이 입국심사를 무사히 마친 뒤, 예화와 리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한국시간으로 거의 새벽 1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미국 라스베가스 시간으로 거의 밤 10시가 돼서야 도착했다.

지금은 10시 반. 여러모로 시간이 좀 애매하긴 하다.

“짐도 딱히 없으니까, 공항 좀 구경하고 들어가자!”

“저두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오케이~.”

아마 공항을 돌아보고 가면 11시가 넘어서야 나올 수도 있을 테지만, 매캐런 공항은 호텔에서 그렇게까지 멀지는 않다.

게다가 보통 미국의 밤길이 위험한 데에 반해, 라스베가스는 사람이 워낙 많고 곳곳마다 경찰차가 대기하고 있으니까.

밤에도 치안이 상당히 좋다고 들었다.

구경하고 들어가도 상관없겠지.

특히 유명한 벨라지오 분수 쇼 같은 경우는 밤 12시까지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일단 여기 슬롯머신도 있다는데. 내일 카지노 가기 전에 맛보기 좀 할래?”

“맛보기? 아, 좋아! 가자, 가자.”

“오케이. 슬롯머신이 어디 있을까.”

“어...... 저기 바로 있는데?”

“응?”

예화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그 끝에 슬롯머신 라운지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뭐야.

아니, 무슨 공항이 수화물 찾는 곳부터 슬롯머신이 있어?

여러모로 대단한 곳이네.

예화가 낮게 읊조렸다.

“후우우...... 나 보이는 것 같아.”

“응? 뭐가.”

“잭팟을 터뜨리고 승리의 미소를 짓는 내 모습이.”

“으흐흐.”

날카로운 눈빛을 하며 라운지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럼, 리아도 할 거지?”

“네에.”

“좋아, 가자!”

“가자아!”

“가요오!”

그리고.

몇 분 뒤.

드르르륵-

삐입-

“아......”

“......이거 뭐야아. 내 30달러 순식간에 사라졌어.”

“이야. 치킨 두 마리가 사라졌네.”

“저도 피자 한 판이 사라졌어요......”

우리는 당첨된 것 하나 없이, 그냥 거지처럼 라운지 밖으로 너털너털 나오게 되었다.

나와 예화, 델리아 합쳐서 거의 100달러 가까이 소비했다.

10만 원이 넘는 돈이 허공으로 사라져버린 순간이었다.

편의점에서 즉석 복권을 긁어도 이것보다 훨씬 많이 회수하겠다!

아무래도 상당히 운이 없는 편이 아닐까.

‘잭팟은 바라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혹시나 될까 싶어서 행운추적자를 착용하고 슬롯머신들을 바라봤는데, 황금빛으로 계속해서 빛나고 있는 머신은 하나도 없었다.

어느 순간, 정말로 인지하기도 힘든 찰나의 시간에 살짝 황금빛으로 빛나는 머신들이 몇몇 했지만, 그건 정확한 타이밍에 누르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로또는 그냥 용지만 보면 바로 번호가 빛나는데 말이야.

로또의 난이도가 잭팟보다 쉽다니.

이거 버근가?

터벅터벅-

“와, 근데 슬롯머신들 진짜 많다.”

“그러게. 지금까지 본 것만 해도 몇 개야. 종류도 엄청 다양한 것 같은데.”

수화물 찾는 곳에서부터 시작해서, 슬롯머신은 공항 곳곳마다 끊이지를 않고 있었다.

“우리 한 번 더 해볼래?”

예화를 바라보며 묻자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윽, 아니.”

“왜, 보였다면서. 잭팟을 터뜨리고 승리의 미소를 짓는 모습이.”

“으으, 잘못 본 것 같아아.”

고오오오급 빌라를 두 채나 가지고 있고, 나나 음악 장비에는 돈을 쓰는 걸 전혀 아끼지 않으면서, 이런 건 은근 아까워한다.

나는 델리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럼 리아야 우리끼리만 할까?”

“아, 네에. 좋아요.”

“더 적게 딴 쪽이 많이 딴 쪽한테 키스해 주기, 어때?”

순간적으로 리아가 예화를 흘끗 바라보았지만, 이내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헤헤, 좋아요오.”

“아! 치사하다!”

“그럼 너도 들어와.”

“읏.”

“쫄려? 쫄리면-.”

“안 죽어!”

예화는 지갑에서 환전한 달러들을 마치 카드 게임의 카드 꺼내듯이 꺼냈고, 우리는 그렇게......

다시......

드르르륵-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헐, 리아 또 당첨됐어?”

“대박, 얼마야?”

“500점. 200 달러인 것 같은데요?”

리아가 50달러로 자그마치 700달러를 따는 대단한 장면을 바라보게 되었다.

잭팟 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정도면 정말로 상당한 성과가 아닐까.

쪽-

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틈을 타서 리아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헤헤.”

리아는 마치 수줍은 처녀 같은 미소를 지었다.

“으으.”

예화가 분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쩌겠는가.

승부의 세계는 냉혹한 법이었다.

터벅터벅-

“헐, 저기는 꽃 자판기도 있어.”

슬롯머신 라운지에서 나와 또 공항 내부를 조금 더 돌아다녔다.

여러 종류의 가게들이 있고, 그 컨셉에 맞춘 자판기들 또한 많이 설치되어 있었다.

과자는 물론이고 무슨 화장품 자판기에, 휴대폰이랑 카메라 자판기에...... 예화가 말한 대로 꽃 자판기도 설치되어 있었다.

보스턴 호텔에서 샴페인 자판기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놀랐는데. 이런 것들은 상당히 신기하다.

흐음.

“꽃 두 개 뽑아볼까?”

“응? 왜?”

나는 아무 말 없이 하얀색 꽃 하나랑 노란색 꽃 하나를 뽑았다.

그냥 꽃만 달랑 나오는 게 아니라, 선물 주기 쉽게 포장도 잘 돼 있네.

꽃을 집어 들고 델리아랑 에화한테 각각 하나씩 건네주었다.

“그야, 꽃 옆에 꽃을 두고 싶은 건 당연하니까.”

와, 씨.

미친 오글거린다.

“으프흐흐흐. 뭐야아.”

“아......”

일부러 느끼한 표정을 하며 둘에게 꽃을 건네주고 그렇게 말하자, 예화는 바보같이 웃었다.

델리아는......

응?

왜 감동 받은 표정이야.

나는 웃고 있는 예화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야, 그렇게 웃다 눈물까지 흘리겠다. 나 상처받아?”

“으흐힛, 아니이. 멘트 구려어어.”

솔직히 내가 말해놓고도 살짝 소름 돋기는 했다.

근데, 이런 거 가끔 해주면 재밌다고.

“이상하네, 너무 기뻐서 안겨야 하는 타이밍인데.”

“흣, 고마워.”

쪽-

예화는 기습적으로 나를 안고 내 입술에 뽀뽀했고, 나는 만족스럽게 다시 둘에게 건네준 꽃을 빼앗았다.

스윽, 슥-

“아! 근데, 왜 다시 가져가!”

“왜? 가지고 다니기 불편하지 않아?”

“꽃 옆에 꽃 두고싶다며어.”

“흐, 아공간에 넣어뒀다가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다시 화분에 담아서 줄게.”

“아아.”

예화는 고개를 끄덕였고, 델리아 또한 얌전히 내게 꽃을 건네주었다,

“이제 볼 거 다 봤으니, 슬슬 들어갈까?”

슬롯머신도 했고, 자판기 구경도 하면서 공항을 산책 삼아 많이 돌아다녔다.

“웅, 그러자.”

“델리아도 뭐 아쉬운 거 없지?”

“네에.”

“좋아좋아.”

우리는 스트립으로 나와, 곧바로 버스 위에 올라탔다.

109번과 202번 버스를 갈아타며 30분 정도를 바깥 경치를 구경했다..

스트립에는 각 나라의 컨셉에 맞는 호텔들이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와아, 저기는 진짜 에펠탑처럼 해놨구나.”

“그러게, 신기하다.”

“멋있어요.”

버스에서 내려 번쩍번쩍 빛나는 라스베가스의 밤길을 조금 걸으니 우리는 목표한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가 시저 펠리스 호텔.”

“되게 크다아.”

로비로 들어가 곧바로 카운터로 향했다.

원래는 체크인하는데 사람이 많아서 줄을 서기도 해야 한다는데, 우리는 워낙 늦게 와서 그런 것 없이 바로 체크인 데스크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나는 외국인들 뺨치는 유창한 영어 실력을 뽐내며( 사실 히로인 어플의 3시간짜리 영어 알약을 먹었다 ) 체크인을 마쳤다.

그리고 무사히 호텔 방을 배정받았다.

“올라가자. 우리 39층이야.”

“헐, 39층?”

“응.”

“와아, 전망 되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기대된다.”

시저 팰리스 호텔은 Forum, Julius, Palace, Octavius, Augustus의 다섯 가지 룸 등급이 나뉘어 있었는데, 우리는 그중 가장 좋은 아우구스투스 룸에 묵게 되었다.

커다란 창문 밖으로 스트립의 엄청난 경치와 벨라지오 분수 쇼를 볼 수 있다는데, 너무 좋지.

“내일은 뭐부터 해볼래? 카지노?”

“카지노랑 또오, 길거리만 걸어 다녀도 해볼 게 되게 많을 것 같아요. 저녁에는 분수 쇼 구경하고......”

그렇게 우리는, 39층으로 올라가 내일 뭘 할지 이야기하며 복도를 걸었다.

그때였다.

팍-

“아.”

“읏.”

예화와 델리아랑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한눈을 팔고 있었는데, 반대편에서 오는 누군가와 부딪쳤다.

“아, 저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

나는 곧바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를 했다.

상대는 핑크색의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엄청나게 예쁜 여성이었다.

와 씨, 뭔데.

외모 능력치가 최소한 80은 되겠다.

오늘 공항을 돌아다니고 버스를 타고 거리를 둘러보면서 본 여성 중에서, 예화와 델리아를 제외하고 가장 예뻤다.

물론, 속으로만 감탄했고 겉으로는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다.

겉으로 예쁘다는 눈을 하면 분명 또 둘의 따가운 눈빛이 쏟아지겠지.

그렇게 나는 그냥 사과한 다음 다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아, 시발새끼. 대체 눈을 어디에 쳐 팔고 다니는 거야. 좆같게.”

......?

뭐지?

갑자기 뒤에서 굉장히 찰진 욕이 들려왔다.

참고로 영어였다.

지금은 히로인 어플의 영어 알약을 먹은 상태라, 영어도 우리나라 말처럼 그냥 귀에 쏙쏙 꽂혀 들어왔다.

자동 번역 기능이라고 해야 하나. 보스턴에 갔을 때도 먹었던 알약이다.

그나저나 저거 나한테 한 말 맞지?

“뭐야? 방금 진현이한테 한 거야?”

“그런 것 같은데요.”

예화와 델리아도 욕을 알아들었는지 서로를 보며 말했다.

진짜 오랜만에 들은 뜻밖에 욕설에, 나는 약간 얼떨떨한 느낌을 받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스윽-

내가 뒤를 돌아보고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는지, 여성도 슬쩍 나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붉은색으로 빛나는 새빨간 눈동자를 통해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왜, 뭘 봐. 시발,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어. 기분 더럽게.”

라고 말했다.

아니......

뭐지?

......미친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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